소설리스트

환상을 쓰겟다-176화 (176/200)
  • #175

    뉘엿뉘엿 해가 저무는 시간.

    얼굴에 뚫은 구멍의 개수가 10개도 넘을듯한 남자의 귀에서 해골 귀걸이가 찰랑거렸다.

    하지만 그보다 더 마음에 드는 건 목에 걸고 있는 십자가 목걸이다. 일반적인 십자가 목걸이와는 그 궤를 달리하는 역십자 모양이다.

    십자가가 크리스쳔이라면, 역십자는 당연히 사탄일 테다.

    “사탄숭배! 반신론! 이게 바로 메탈이지!”

    주채모가 비명에 가까운 샤우팅을 질렀다.

    “지치지도 않나, 저 사람은.”

    형우는 B동 건물 안에서, 그런 주채모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사탄숭배는 무슨.’

    애초에 역십자는 이단의 상징도, 사탄숭배의 상징조차 아니다. 나는 죄를 지었으므로 예수님과 같은 십자가에 매달릴 수 없다며, 죽음의 순간까지 회개를 거듭한 성인聖人 베드로의 상징이다.

    본래의 십자가만치 성스러우면 성스러웠지, 사탄이랑은 별 관련이 없는 상징이라는 뜻이다.

    ‘뒤집으면 욕이라니. 너무 1차원적인 거 아냐?’

    그 논리대로면 거울은 자기 얼굴에 침 뱉는 기계겠고, 데칼코마니는 총 맞을 짓이겠다.

    “멍청한 사람이 신념을 가지면 무섭다더니.”

    누군가가 그런 말을 했다.

    책을 안 읽은 사람은 괜찮지만, 책을 한 권만 읽은 사람은 문제가 있다고.

    지금 주채모의 상태가 딱 그랬다.

    “끼야아아아앗! 이게 메탈이다-!”

    이상한 신념에 휩싸여서, 하루 종일 소리를 질러대고 있지 않은가.

    컨셉이라면 진작에 그만뒀을 텐데, 혼자 남아서도 저렇게 하고 있는 걸 보면… 나름대로는 메탈에 진심이었던 것 같다.

    문제는, 그 진심을 전하는 방법이 잘못되어도 너무 잘못되었다는 거겠지.

    보통 사람들이었다면 집에서 피나는 노력을 한 뒤 실력으로 증명하는 것을 택할 텐데, 저 사람은 실력은 쥐뿔도 없으면서 제 고집만 내세우며 장르에 대한 혐오감만 잔뜩 일으키고 있다.

    아무리 순수한 의도라도, 그 방식이 글러 먹었다면… 그건 안 된다.

    사랑은 좋은 것이지만, 대학교 공지 톡방에서 대뜸 과대에게 고백을 하는 건 아주아주 나쁜 짓인 것과 같은 맥락이라는 거다.

    “그러니까, 뭔가 조처를 해야 하는데.”

    일단 지원에게 물어보니, 저쪽에서 공연을 해도 된다는 허가를 받아낸 건 사실이라고 했다.

    -하지만 보통 그런 허가가 잘 나오는 편이 아닌데, 아무래도 입김이 좀 들어갔다고 봐야죠. C&N 정도의 유망한 기업이라면 누구나 연을 맺고 싶어하는 법이니까.

    -인맥이 세상의 전부는 아니지만, 사업은 인맥이 전부거든요.

    즉, 사회적으로 연결된 모종의 역학관계에 의해, 우리가 저 독실한(?) 메탈리스트를 밀어내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한 일이라는 뜻이다.

    “…하늘에서 불벼락이라도 떨어지지 않는 한은, 어쩔 수 없다는 거구나.”

    어떻게 계란판이라도 더 구해와야 하나.

    그렇게 생각하는 순간.

    우르르르릉-!

    거대한 소리와 함께, 하늘부터 그림자가 졌다.

    “뭐지?”

    먹구름인가 싶어 하늘을 바라봤지만, 구름은 아니었다. 그보다 훨씬 포악하고, 잔뜩 성질이 나 있으며, 훨씬 더 두려운….

    푸드더더덕-! 퍼더덕!

    참새였다.

    그것도, 수백 수천 마리.

    서울에 있는 모든 참새란 참새는 다 모아놓은 것 같은 광경.

    “뺘아아아악!”아니나다를까, 그 선두는 너무나도 익숙한 부리 모양을 가진 자신의 참새, 참치였다.

    “이게 대체 무슨….”

    그 모습을 본 형우는 혼란에 빠졌다.

    * * *

    하지만, 형우보다 더 큰 혼란에 빠진 존재가 있었으니.

    “무, 묵시록의 메뚜기 떼?”

    주채모가 입을 쩍 벌렸다.

    “하늘마저 내 노래에 감동한 건가?”

    눈물을 글썽거리며 주채모는 마이크를 쥐었다.

    날아드는 참새를 바라보며 결의를 다졌다.

    “좋다, 와라! 최고의 공연을 만들자!”

    그리고, 성대에 힘을 주고.

    고음을 내려는 순간….

    콕.

    뭔가가 허벅지를 쪼았다.

    그게 시작이었다.

    콕콕,

    콕콕콕

    콕콕콕콕콕콕콕콕콕!

    수백 마리의 참새가 달려들어 주채모의 몸을 사정없이 물어뜯었다.

    “아얏, 아야얏!”

    그것까진 참을 수 있었다. 하지만.

    “안돼, 안 돼! 이 자식들아!”

    수천 마리의 참새들이 콘서트를 위한 장비들을 공격하는 것을 본 주채모는 꽤나 오랜만에 제정신을 차리는 데에 성공했다.

    41만 원짜리 엠프.

    피복이 벗겨지고 부품들이 흩날린다.

    그보다 더 비싼 기타.

    기타 줄은 새들의 부리 가는 도구가 되었다.

    그리고 기타 음향 장비들까지. 그 모든 것들이….

    푸드드더더덕-!

    참새들에 의해 개박살이 나고 있었던 것이다!

    십만 원, 백만 원, 삼백만 원.

    액수가 점점 커졌고.

    “그만둬, 그만두라고!”

    주채모의 비명 소리의 데시벨과 옥타브도 조금씩 높아져 갔다.

    “제발!”

    목울대에 힘줄이 수없이 돋았다.

    그리고, 가장 아끼던 117만 원짜리 한정판 나이키 조던 운동화에 새가 똥을 뿌리는 순간.

    “끄… 아아아아아아악!”

    주채모는 음악을 시작한 이후, 가장 높은 고음을 질러내는 데에 성공했다.

    진정한 뮤지션이라면 기뻐 마지않을 일이었다.

    * * *

    윤정아가 손톱을 잘근잘근 씹었다.

    모든 일에는 플랜A와 플랜B가 있다. A는 자신이 잘하는 것이고, B는 상대를 방해하는 것이다.

    누군가는 페어 플레이가 아니라며 욕할지도 모르지만, 패자의 욕설만큼 공허한 것이 세상에 또 없는 것 또한 사실이다.

    그것을 모르는 사람은 세상에 거의 없지만, 행할 수 있느냐는 또 다른 문제다. 도덕이니 법 같은 것을 어기는 일은 의외로 쉽지 않은 법이니까.

    “허나.”

    힘든 일에는 늘 그만큼의 대가가 따른다. 도덕을 넘어선다는 것도, 그와 같은 맥락이다.

    거리낌 없이 질서를 벗어던질 수 있는 이들만이 승부사가 되고, 승리를 거머쥘 수 있다는 뜻이다.

    아버지, 윤태형은 두 명의 자식들에게 자신의 기질을 반씩 물려줬다. 동생인 윤정식이 리더로서의 자질을 많이 가져갔다면.

    윤정아는 승부사적 기질을 많이 가져갔다.

    윤정식은 도박을 좋아하지 않는다. 얻는 것보단 잃어버리지 않는 데에 집중한다. 좋은 전략이지만, 가끔은 유약하다는 생각이 든다.

    저번에 공판석과 관련해서 서지원에게 한 방 먹었을 때도 그랬다. 자칫하다가는 박재진에게 세력이 밀릴 뻔하지 않았나. 만약 시기적절하게 자신이 개입하지 않았다면, 지금 C&N의 책임자는 윤정식이 아니라 박재진이었을지도 모른다.

    동생이 스패로우 팩토리와의 싸움을 모두 자신에게 일임한 것도 같은 이유다. 녀석은 싸우는 법을 잘 모르니까, 괜한 고집을 부리지 않고 더 잘하는 이에게 맡기는 거다.

    리더로서 뛰어난 판단이고, 의욕도 꽤 넘쳤다. 방식도 흠잡을 데 없었다고 생각하지만, 이상하게 일을 벌일 때마다 묘하게 꼬이는 느낌이 들었다.

    오늘만 해도 그렇다.

    “실패했다고요?”

    비서의 이야기를 듣자마자 그만, 그게 무슨 개소리야? 라고 내뱉을 뻔했다.

    겉보기엔 유치해 보여도, 꽤 공들여 준비한 계획이었다.

    구청으로부터 공연 허가서도 받아내고, 소리가 좋은 앰프 몇 개도 구비해 뒀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파파라치도 준비했다.

    만약 시비라도 붙으면 곧바로 ‘스패로우 팩토리, 이번에는 거리 음악가에게 갑질-?’같은 기사를 다이렉트로 인터넷에 뿌려줄 생각이었다.

    소음 자체로 방해가 될 수 있으면 좋고, 만약 그 소음을 해결하더라도 이차적인 언론 공세로 판을 흔들어 놓을 계획이었는데….

    “참새가 갑자기 공격을 해 왔다니요?”

    그것도 수천 마리의 습격. 그냥 말로만 들었다면 윤정아도 분명 믿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증거가 너무나도 명확했다. 이미 연관검색어 순위에도 ‘참새떼 습격’이 올라왔고, 몇몇 조류학자들이 진상 파악을 위해 나서기도 했다.

    -참새나 까마귀 같은 조류는 의외로 기억력이 좋아서 자신에게 해코지를 하는 사람들의 얼굴을 기억하고 복수하기도 합니다.

    -또한 어느 정도의 집단 또한 형성하고 있기에, 특정한 계기가 있다면 이런 집단활동을 벌이는 경우가 해외에도 종종….

    조류학자들이 열심히설명했지만, 별로 귀에 들어오지는 않았다. 자연재해고 나발이고, 중요한 것은 그 일이 ‘일어났다’라는 것이다.

    잔뜩 공들인 일이 말도 안 되는 초자연 현상 덕에 물거품이 되었다.

    ‘자연재해니까 어쩔 수 없었어. 그러니 내 잘못 아님!’으로 끝낼 수 있으면 좋으련만. 세상일이라는 게 그렇게 쉽지는 않다. 아무리 어이없는 일을 당해도, 그다음을 생각해야 한다.

    분노를 가라앉히고, 차분하게 그림을 다시 그렸다. 여전히 C&N의 상위작가들은 스패로우 팩토리의 지망생들을 압살하고 있다.

    플랜A는 건재하다.

    기업인으로서 늘 기억해야 하는 것. 상위 20%가 전체의 80%를 독식한다. 8대 2의 법칙은 언제나 옳다.

    시장의 영역임과 동시에 심리의 영역이다. 앤디 워홀이 말했듯이, 유명함은 유명함을 낳는다.

    [월드 배틀 3주 차 정산표!]

    1위 <황혼의 저격수> - 리본 작가 -

    2위 <비 내리는 날만 강해짐> - 파펀 작가 ▲1

    3위 <하늘에서 떨어졌다> - 약심장 작가 ▲1

    4위 <21세기 여포봉선> - 돈벌자돈 작가 ▼2

    5위 <힐러가 주먹이 너무 셈> - 토비 작가 -

    누군가는 예술은 운빨이라고 말하지만, 이 지표를 보면 그렇지도 않다.

    첫 주부터 1위부터 5위까지를 굳건하게 지키는 이 다섯 명의 작가들은 C&N이 암암리에 섭외한 ‘중고 신인’ 작가들이니 말이다.

    왜 굳이 다섯 명인가 묻는다면, <월드 배틀>에서 상을 받는 사람이 다섯 명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이게 끝도 아니고.”

    뒤이은 6, 7, 8위도 모두 C&N이다. 스패로우 팩토리의 첫 번째 작품은 9위에 가서야 등장한다.

    “흐음.”

    조금 신경 쓰이기는 하지만, 걸리는 수준은 아니다. 이제 고작 한 주가 남았고, 한주 사이에 커다란 이변이 생길 것 같지는 않았다.

    <월드 배틀>의 모든 상은 C&N이 휩쓸 테고, 사람들은 이렇게 생각할 테다.

    역시 C&N이구나, 라고.

    말 그대로, 올라타서 두들겨 패는 식의 승리라는 뜻이다.

    “그래도 일단 수고비는 줘야지.”

    그대로 윤정아는 휴대폰을 까딱거렸다.

    “스패로우 팩토리가 9위였으니까.”

    그 위의 여덟 명만 주면, 아마 충분할 것이다.

    * * *

    “거참, 뭐 등비수열도 아니고. 계속 줄어드는군.”

    도수형이 책상에 발을 올리고 거만하게 말했다.

    시작할 때는 서른 명이었지만, 첫째 주에는 열다섯 명. 그리고 이제는 여덟 명만이 남았다.

    “아마 그 여덟 명 외에는 또 편집자도 붙여주지 않을 테죠?”

    “그러겠지.”

    “너무하네요.”

    고유민은 그 부분이 여전히 마음에 걸렸다. 양심 탓이다.

    차라리 도수형이나 윤정아처럼 돈이면 다 된다는 식의 마인드면 속이 쓰릴 일이 없을 테고, 양심이 지금보다 조금 더 강한 편이었으면 뿌리치고 나왔을 텐데.

    어떤 경우든, 스스로에게 가장 좋지 않은 것은 애매함인 것 같다.

    허나, 애매한 양심이지만 돈을 받고도 일을 던져버릴 정도로 완전히 비루먹지는 않았다. 마지막 4주 차.

    “남은 여덟 명은 한 명도 낙오시키지 않을 생각입니다.”

    떨어진 이들에 대한 나름의 속죄… 라고 한다면 너무 과한 거고, 그냥 스스로의 양심에 대한 최소한의 변명거리에 불과하겠지만.

    “어어, 이 새끼 봐라.”

    한참이나 소설들을 부스럭거리던 도수형이 갑자기 얼굴을 구기며 뭔가를 검색했다.

    무엇을 검색하는가 바라보니 다른 소설들을 찾아보고 있다.

    “자, 여기… 찾았다. 맞네, 이거.”

    “무슨 말이에요?”

    “직접 봐라.”

    도수형이 두 개의 소설을 동시에 내밀었다.

    “이거 혹시.”

    “보고도 몰라? 표절이잖아.”

    과연, 한눈에 봐도 문장을 그대로 빼다 박았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이걸 어떻게 알았어요? 원래 알고 있던 작품이예요?”

    “아니. 처음 보는 건데.”

    “그런데 어떻게 알았어요?”

    “척 하면 척이지. 갑자기 문장 템포가 확 바뀌더라고.”

    뭐랄까, 영국 드라마 하나가 생각난다. 싸이코패스가 싸이코패스를 찾아 죽이는 내용의 드라마였는데, 싸이코패스이기에 싸이코패스의 특징을 이해하고 있다… 같은 설정이 나왔다.

    지금 도수형이 딱 그랬다. 표절작가라서 표절을 잘 찾아낸다라.

    설정이라던지, 장면에 대한 표절이라면 도의적으로는 욕을 먹을지언정 법적으로는 문제가 없는 것이 보통인데, 문장의 경우에는… 문제가 꽤 심해질 수밖에 없다.

    “하기야, 조바심이 났겠지. 낮은 순위권 애들이 나가떨어지는 거 보면.”

    “그러겠죠.”

    고유민은 주머니를 뒤져 휴대폰을 꺼냈다. 도수형이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으로 고유민을 바라봤다.

    “지금 뭐 하려고?”

    “고치라고 해야죠. 아직 올라가기 전에 발견했으니, 지금이라도 고치면…….”

    “나 참. 뭐하러 그런 짓을 해.”

    도수형이 피식 웃었다.

    “좋은 문장이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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