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환상을 쓰겟다-175화 (175/200)
  • #174

    “낙오자들이 많군요.”

    윤정아가 쯧, 하는 소리를 냈다.

    <월드 배틀>의 3주 차에 이르러서는 원심분리기에 회전한 혈액처럼 그 층이 명확하게 나뉘었다.

    가장 아래에 있는 건 1주 차에 30위권 진입에 실패했던 C&N의 낙오 작가들이었다.

    편집자가 없었으니, 당연하다면 당연한 일이었다.

    “신경 쓰지 않습니다.”

    아래를 보는 건 패배자스러운 마인드다. 그래서 윤정아는 위쪽을 바라봤다.’

    여전히 1위부터 5위는 C&N의 세탁 작가들이 자리하고 있었고, 그 밑으로도 C&N의 이름이 듬성듬성 보였다.

    “…여기까지는 좋은데.”

    새롭게 들어온 몇몇 이름들을 보며, 윤정아가 얼굴을 찌푸렸다.

    9위 - <깡패가 법을 너무 잘 앎> - 구민효.

    14위 - <정통무협을 여행하는 21세기인을 위한 안내서> - 정주현

    21위 - <유랑하는 마법사> - 조준구

    ….

    주차가 지날수록, 상위권으로 진입하는 스패로우 팩토리의 인원들이 조금씩 늘어났다.

    “아직 걱정할 수준은 아니지만, 그냥 가만히 놔둘 순 없겠네요. 두 번째 방법을 좀 써야겠어요.”

    “두 번째 방법이요?”

    고유민의 질문에 윤정아가 씩 웃었다.

    “이기는 방법은 두 개가 있어요. 본인이 강해지는 것이 첫 번째고, 타인을 약하게 만드는 것이 두 번째죠.”

    “약하게 한다면….”

    “공교롭게도 스패로우 팩토리가 있는 B동은 한국대학교 부지 구석에 있더군요. 그래서 말인데… 홍대에서 밴드 하나를 섭외해 놨습니다.”

    “설마?”

    “예. 우리 고생하는 스패로우 팩토리 친구들을 위해, 노래 한 곡 정도 선물해 줘야죠.”

    과연 시끄러운 음악 소리를 들으면서도 집중할 수 있나 보자고.

    “세상에….”

    메탈 음악이라니.

    비겁하고, 어떻게 보면 유치하지만….

    생각보다 잘 먹혀들 것 같은 것도 사실이다.

    작가라는 인간들은 기본적으로 예민함을 탑재한 인간들이니까.

    가끔 음악을 듣거나, 혹은 약간의 생활 소음 속에서 글을 쓰는 것을 즐기는 사람들이야 있지만, 딱 그 정도 수준이다.

    스티븐 킹이 메탈 음악을 들으면서 소설을 쓴다는 인터뷰는 봤지만, 그 외에는 들어본 적 없다.

    ‘게다가 아마추어라고? 그것도 홍대산?’

    노래 실력은… 안 들어도 알 것 같은 느낌이다.

    아마 메탈의 탈을 쓴 소음공해일 확률이 높다. 대중성은 무시하고 그들만의 예술만을 추구하는 부류라든가.

    그런 노래라면, 스티븐 킹조차 듣지 못하고 자신의 지팡이를 던져버리고 말 것이 분명할 터.

    ‘지독하군.’

    고유민은 어쩔 수 없이, 그렇게 생각하고 말았다.

    * * *

    쟈쟈쟈쟈쟈쟈쟈쟈앙-!

    끼아아아아야야아아아아악!

    지저귐의 본사가 있는 B동.

    전쟁을 방불케 하는 소음이 바깥에서부터 들려왔다.

    “……으으윽, 오늘도야.”

    “미치겠네.”

    스패로우 팩토리의 학생들이 얼굴을 찌푸렸다.

    처음에는 공연이라도 하나 싶어서 어떻게든 참아왔지만, 벌써 삼 일째다.

    인내심이 슬슬 한계에 달했다는 뜻이다.

    “한국대학교에서는 뭐라고 안 해요?”

    “집요하게 B동만 노리잖아요. 그것도 저희만 있는 시간에 맞춰서요.”

    누가 봐도 고의적이다. 결국 참지 못한 형우가 벌떡 일어섰다.

    “제가 가서 한 마디하고 올게요!”

    “아뇨.”

    그런 형우를 제지한 건 지원이었다.

    “제가 갈게요.”

    “편집자님이요?”

    “네.”

    그렇게 말하는 지원에게서, 흉흉하고 무서운 기세가 줄줄 흘러나왔다.

    “화나셨어요?”

    “당연하죠. 이렇게 조잡하게 방해하는데.”

    지원이 싱긋 미소 지었다.

    “어떻게 화를 안 낼 수 있겠어요.”

    그 모습이 얼마나 무섭던지.

    지원이 이토록 화를 내는 건 처음 보는 듯한 기분이 드는 형우였다.

    * * *

    쟝쟈기장-!

    완벽한 기타 소리.

    두두두두두두두두두두두둥.

    사나이의 심장을 울리는 드럼 비트.

    마이크가 손으로 빨려 들어왔고.

    밴드의 리더, 주채모는 숨을 크게 들이쉬었다.

    그리고.

    “끼야아아아아아아아아악-!”

    하고 높게 소리를 질렀다.

    지난 2년간 질렀던 소리 중 가장 사악하게 튀어나오는 비명 소리에, 채모가 게슴츠레하게 미소 지었다.

    ‘보고 있나, 세상아.’

    이것이 진짜 음악이다.

    비리비리한 아이돌 음악도 아니다, 지루해서 하품이 나올 것 같은 발라드도 아니다, 찐따들이 있는 척하고 싶어서 지껄이는 힙합도, 소울이 담긴 척하면서 대중에 찌든 락도.

    모두 다 음악이 아니다.

    “인간의 원초적 본능이 가득 담긴 메탈이야말로 진짜 음악이란 말이다 이 자식들아아아---!”

    찌이잉-!

    한계를 넘은 마이크와 스피커가 비명을 질렀다.

    그 사이, 채모도 한계를 넘고 있었다.

    더 넓은 경지로 나아가려던 그 순간.

    “거기, 잠깐만요…?”

    누군가가 말을 걸었다.

    “아앙?”

    채모의 눈썹이 길게 휘었다. 분노로 관자놀이가 덜덜 떨렸다.

    “뮤즈가 코앞이었단 말이다! 방금 네가 무슨 짓을 했는지 알기나 해?”

    눈을 부라린 채모가 뚜벅뚜벅 걸어갔다.

    “방금 그 한 마디 때문에, 이 세계의 메탈이 오 년은 퇴보했을지도 모른다고, 자식아!”

    “메탈이요?”

    여자가 눈을 끔뻑거렸다.

    “방금 그게, 메탈이라고오?”

    “물론 너는 모르겠지! 진짜 음악을!”

    “허어.”

    어이없다는 듯이 여자가 한숨을 내쉬었다.

    “누가 그래요? 그딴 게 메탈이라고? 이런 건…!”

    지원이 이를 악물었다.

    “…메탈이 아니야아아아!”

    지원이 그대로 무대 위로 달려 올라가, 기타리스트의 기타를 뺏었다.

    “잘 봐, 기타는!”

    그대로 지원이 기타를 당겼다.

    “이렇게 치는 거야!”

    쨔아아아아앙-!

    기타 줄이 매섭게 진동하며, 아까와는 확연하게 다른 음색이 멀리 퍼져나갔다.

    “그리고 너, 상어지느러미!”

    “저… 저요?”

    “여기 상어지느러미 비슷한 게 너 말도 또 누가 있어! 빨리 드럼 쳐!”

    가운데 머리만 놔두고 빡빡 민 남자가 퍼뜩 정신을 차렸다.

    “예, 옙!”

    “더 빨리! 점심 안 먹었냐?”

    “지금은 열 시라 아직….”

    “시끄럽고 더 빨리 쳐!”

    두두두두두두두두, 두두, 두두두두두!

    쨔자자자자장-!

    압도적인 실력, 경이로운 카리스마!

    격렬한 드럼 비트와 강렬한 일렉기타의 소리가 강당 가득히 울려 퍼졌다.

    멀찍이서 이 모습을 지켜보던 형우가 중얼거렸다.

    “이렇게 들어 보면… 메탈도 나쁘지 않은데?”

    장르는 죄가 없다.

    메탈이 별로인 게 아니라 연주하는 사람들이 별로였을 뿐이다.

    * * *

    지원은 그 사이에서 계속해서 뭔가를 알려줬다.

    “야, 장발!”

    “옙!”

    “아까 이빨로 코드 치는 퍼포먼스 하던데, 그거 송곳니로 하면 이빨 다 나가! 어금니로 하는 거야, 어금니로, 잘 봐!”

    쟝쟈자자자장장-!

    지원이 시범을 보였다.

    그 와중에 아침에 하고 온 립글로즈가 온통 번져서 메탈 밴드에 꽤 어울리는 모습이 되었다.

    “봤냐? 이게 메탈이야! 니들이 하는 건 그냥 돼지 멱따는 소리 흉내 내기 페스티벌이고!”

    기타리스트가 입을 쩍 벌렸다.

    “누, 누구신데 메탈을 이렇게 잘….”

    “나는 알 것 같아.”

    상어지느러미는 눈치가 좀 빨랐다.

    “7년 전, 홍대 일대를 다 썰어버렸다는 전설의 헤비메탈 그룹…. 거기 리더가 여자였다고 들었어.”

    “그, 그 말은….”

    상어지느러미와 기타리스트가 동시에 지원을 바라봤다.

    “메, 메탈 퀸?”

    “헹.”

    지원이 코밑을 쓱 문질렀다.

    “아직도 나를 알아보는 사람이 있네.”

    “영광입니다!”

    상어지느러미가 지원에게 달려들었다.

    “사인 부탁드립니다! 팬이에요!”

    “그렇게 메탈을 잘하셨는데, 왜 그만두셨죠?”

    “취미였으니까.”

    지원이 딱 잘라 말했다.

    “딱 그 정도였어. 내 실력으로 뭐, ‘한라산’ 같은 명문 메탈 밴드의 상대가 되겠어?”

    “그건….”

    “그리고 반대로 말하면, 너희는 지금 취미 수준도 안 돼. 공연을 하는 것 자체가 문제야.”

    지원이 하나하나 문제를 짚었다.

    “퍼포먼스만 집중해서 코드도 똑바로 못 치는 놈.”

    “허억.”

    “머리 스타일 만드느라 연습은 게을리해서, 스틱 잡은 지 10분 만에 헉헉거리는 놈.”

    “티, 티 났나요?”

    “그리고… 고음병 걸려서 소리만 지르면 그게 고음인 줄 아는 놈까지.”

    지원이 신랄하게 비판했다.

    “니들은 아직 공연할 타이밍이 아냐! 집에 가서 연습이나 더 해, 이 자식들아!”

    그제야 지원의 분노가 평소와 다르게 느껴졌던 이유를 알겠다.

    그 근거를 취향에 두고 있는 분노는 원초적이다.

    “기본도 없으면서 튀고 싶다고 메탈에 찝적거리는 너희 같은 놈들 때문에 선량한 메탈리스트들이 홍대병이다 힙스터다 하면서 욕을 처먹는 거 아냐!”

    지금까지 형우가 봤던 지원의 분노는 대부분 머리에서 나온 분노였지만, 지금의 분노는 가슴에서 나오는 분노였다.

    “감히 내가 좋아하는 메탈을! 쓰레기로 만들어? 이 개자식들아아! 그건, 메탈이, 아니야아아!!!!!”

    지원의 호통에, 상어지느러미와 기타리스트는 시무룩한 표정으로 주섬주섬 자기 장비를 챙겨 들었다.

    하지만.

    “……네가 그렇게 음악을 잘 알아?”

    채모는 그러지 않았다.

    “뭔데 우리를 평가해? 네가 음악의 신이야? 찰리 채플린이야?”

    하아.

    그 모습을 보며 지원은 한숨을 쉬었다.

    힙스터의 3단계가 있다.

    1단계는 그냥 마이너한 걸 좋아하는 거다.

    그리고 2단계는, 마이너에 대한 선호가 도를 넘은 나머지 메이저를 혐오하게 되는 거다.

    여기부터는 힙스터‘병’이라고 불러도 좋다.

    그리고 3단계는.

    ‘자기 빼고는 다 찐따들이라고 생각하는 거지.’

    다른 애들은 기껏해야 1, 2단계였던 것 같은데, 채모는 좀 심한 중증 3단계였다.

    “찰리 채플린이라.”

    그리고 3단계의 진짜로 나쁜 점이 있다.

    3단계에 들어선 사람들은 이상한 선민의식에 휩싸여서, 사실은 아는 것이 거의 없으면서도 자신이 똑똑하다고 생각해 버리고 마는 것이다.

    “뭔 코미디 찍어?”

    “엥?”

    “찰리 채플린이 아니라, 레드 재플린이겠지, 이 멍청아!”

    레드 제플린은 하얗고 검은 콥스페인팅을 했고, 찰리 채플린은 나치의 수장 아돌프 히틀러 분장을 즐겨 한 사람이니.

    “아, 아무튼!”

    채모가 빠르게 손을 내저었다.

    “우리는 여기서 공연을 할 거야, 네가 말릴 권한은 없어.”

    “다른 곳도 많잖아? 왜 하필 여기야? 그것도 연습도 다 안 된 상태로?”

    “여기서 해야 하니까!”

    “…얼마 받았냐? C&N이 얼마 줬어?”

    채모의 몸이 움찔거렸다.

    “참 치졸한 수를 쓰네요.”

    형우의 말에, 지원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 사이, 상어지느러미와 기타리스트가 채모를 설득하기 위해 다가갔다.

    “저, 리더. 이건 진짜 아닌 것 같은데.”

    “맞아. 채모야. 저분 메탈 퀸이잖아. 저분이 연습 안 됐다고 하면 진짜 안 된 거야. 연습 좀 더 하고 무대 서자.”

    “뭔 개소리야?”

    하지만 채모는 막무가내였다.

    “너희들 소울 몰라? 언제부터 사람들 눈치 보면서 음악 했어?”

    “눈치는 보는 게 맞지 않냐? 음악은 결국 다른 사람 들으라고 하는 건데.”

    “이 자식들이! 니네가 그러고도 락커야!”

    채모가 성을 냈다.

    “가려면 너희끼리 꺼져! 나는 여기서 할 거야!”

    “맘대로 해라. 우린 갈란다.”

    그대로 두 명은 자신의 장비를 챙긴 뒤, 지원에게 인사까지 꾸벅 하고 자리에서 떠났다.

    그리고.

    “끼아아아아아아아악-!”

    반주도 없이, 처량한 채모의 목소리가 높게 울러퍼졌다.

    그사이, B동으로 돌아온 지원이 단호하게 말했다.

    “창문 죄다 닫아요. 악기 소리 빠졌으니 소리가 줄어들었을 거예요. 실력을 보아하니 성량만으로 여기까지 닿지는 못할 것 같고.”

    “하긴, 아까 소리 질렀던 매니저님에 비하면….”

    “예?”

    지원이 세상 인자하게 웃었다.

    “뭐라고 하셨죠?”

    하지만 그 목소리에서 느껴지는 낯선 살기에, 형우는 재빨리 말을 돌렸다.

    “…어어, 소리가 약간 들리긴 하는데요?”

    “이 정도면 생활 소음 수준이죠.”

    지원이 어깨를 으쓱거렸다.

    “오늘따라 자동차가 많다고 생각하기로 하죠.”

    “예, 뭐.”

    어련하시겠어요.

    형우가 쩝, 소리를 냈다.

    * * *

    “허억.”

    지원이 다가오자, 몇몇 학생들이 백스페이스를 연타했다. 그 중 한 명이 유달리 동작이 느렸던 탓에, 지원에게 딱 걸리고 말았다.

    “뭘 쓰고 계셨기에 제가 오니까 감추시죠?”

    당황한 정주현이 머리를 굴렸다.

    뭘 감췄다고 해야 속아 넘어갈까? 당연히 감춰야 하는 게 뭐가 있지?

    생각은 길지 않았다.

    “야, 야동 보고 있었습니다!”

    “야동이요? 여기서?”

    “소, 소설 내용에 필요해서…!”

    생각을 좀 길게 할 걸 그랬다.

    지원이 의심스러운 눈초리로 주현을 째려보더니.

    “에잇!”

    하고 두 손을 뻗어 Ctrl키와 Z키를 동시에 눌렀다.

    “허억!”

    화면 가득히, 주현이 애써 감췄던 글씨들이 떠올랐다.

    “역시 소설이었군요.”

    “…네.”

    “그런데 왜 감췄어요? 보통 소설을 감추나?”

    지원이 묻자, 주현이 고개를 숙였다.

    “그… 제가 최근에 형우 작가님이 주셨던 <정의는 무엇인가>를 읽었거든요?”

    “네, 그래서요?”

    “그런데 그 내용이 좀 좋아서… 소설에 좀 넣어보려고 했어요. 그니까, 철학적인 걸 조금.”

    “으흠.”

    지원이 계속해보라는 듯 손을 까닥거렸다.

    “그런데 왜 숨기신 거죠?”

    “그… 매니저님은 그런 걸 싫어하시잖아요?”

    지원이 곰곰이 기억을 되새기더니, 이해할 수 없다는 듯이 물었다.

    “그런 말을 한 기억은 없는 것 같은데….”

    “그게요.”

    주현은 오늘 아침에 있었던 밴드와 지원 사이의 헤프닝을 떠올렸다.

    멀리 있어서 자세히 듣지는 못했지만, 힙스터가 어쩌고 하는 이야기는 확실하게 들었다.

    그다음에 사람들이 쫓겨나는 걸 봤으니 아마도… 서희가 황소를 쫓아낸 것처럼 뛰어난 언변으로 상대를 물리쳤으리라.

    심지어 스킨헤드를 한 사람은 눈물까지 찔끔 닦는 것처럼 보였다.

    “그그그, 제가 괜히 멍청한 짓을 했어요. 에이, 웹소설에 철학이라니. 너무 어울리지 않는 힙스터 짓을 한 거죠. 그걸 아는데도 저도 모르게 썼다가 그 편집자님 표정을 보니 뭔가 ‘아 이건 아니구나!’하고 깨달았다고 할까, 뭔지 아시죠?”

    “…그래요, 큰일 날 뻔했네요.”

    “그, 그렇죠? 이런 글을 그대로 냈으면….”

    “아뇨.”

    지원이 정정했다.

    “지웠으면 큰일날 뻔했다는 거예요.”

    “예?”

    “글 좋아요.”

    눈을 동그랗게 뜬 주현을 보며, 지원이 씩 웃었다.

    “고민 많이 했나 봐요. 스토리에 나름의 철학을 담기 위해서 애쓴 흔적이 보여요.”

    “어, 어어… 편집자님은 튀는 짓을 싫어하시는 게…?”

    “제가 싫어하는 건 노력도 안 하고 뽐내기만 하는 허세에요. 만약 마이너를 싫어하는 것처럼 보였다면 아마, 허세를 부리는 쪽이 마이너 쪽에 더 많아서 그런 걸 거예요.”

    “마이너가 허세를 더 많이 부리나요?”

    “아는 사람이 적어서 티가 잘 안 나니까요. 하지만, 주현 씨 작품은 노력한 티가 나서 좋기만 한걸요. 안 그래요, 작가님?”

    “맞아요.”

    어느새 다가온 형우가 고개를 끄덕거렸다.

    “장르나 기법은 죄가 없어요. 문제는 늘 그걸 하는 사람한테 있죠.”

    어떤 것을 쓰든지, 어떤 방법을 쓰든지.

    “잘하기만 한다면 사람들은 그걸 좋아해 줄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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