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2
C&N의 파격적인 행보는 금세 스패로우 팩토리의 귀에도 들어갔다.
“칼을 갈았나 보네요.”
“역시 안 하는 게…….”
지원의 말에, 혜선이 불안한 표정으로 대꾸했다.
학생들이 모두 동의했다는 말에 어쩔 수 없이 인정하기는 한 혜선이었으나, 한 번 당해본 일에 대한 공포라는 것은 쉽게 사라지지 않는 법이니까.
“뭐.”
끼어든 형우가 어깨를 으쓱거렸다.
“다들 어느 정도는 예상했잖아요?”
“하긴….”
C&N은 업계 최고다.
최고란 작은 움직임만으로 세간의 이목을 잡아끄는 법. 작은 흠도 그들에겐 커다란 흠이 된다.
그런 C&N이 움직였다는 건, 곧 자기 나름대로의 필승전략이 있다는 뜻이었으니까.
“저희 생각보다 스케일이 좀 커지긴 했지만, 결국 요지는 똑같아요.”
소설을 쓴다. 그리고 결과로 승부한다.
그야말로 필극이다.
“그러니, 저쪽보다 잘 쓰면 되는 거예요.”
굳은 다짐을 세운 이의 눈빛으로, 형우가 말했다.
지원은 말했다. 이기면 최고고, 져도 조그맣게 지면 승리나 다름없다고.
지원은 기업가였기에 그런 생각을 하는 게 당연하고, 필요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혜선도 마찬가지다. 패배를 상정하는 것 또한 회사를 운영하는 입장에서 필수 불가결한 일이다.
허나.
“저희는 작가잖아요.”
공동대표라고는 하지만, 형우는 일단 <월드 배틀>에 작가로서 나섰다.
작게 패배한다? 티 나지 않게 진다?
그런 생각은 애초부터 하지도 않았다.
“이왕 할 거면 이겨야죠.”
매일 여섯 캔의 에너지 드링크를 비우고, 마그네슘과 아연을 시리얼처럼 뜯어 먹는 한이 있더라도.
“어떻게든 최고의 글을 써내야죠.”
그렇게 말하는 형우를 보며,
“아.”
혜선은 자신도 모르게 그런 소리를 냈다.
* * *
떠오르는 기억은 3년 전의 기억이다.
-조금 더 일찍 넘겼으면 좋았을 텐데요. 그러면 지금보다 돈을 다섯 배는 더 받았을 거 아닙니까.
-회사라는 건 말입니다, 실패했을 때 적자를 보지 않는 것만 해도 성공이라고 합니다.
자신이 힘겹게 만들었던 회사를 송두리째 빼앗긴 순간이었다. 여기까지가 기억.
그다음부터는, 악몽惡夢이다.
-잔당들이 잔뜩이나 모였군.
-너희가 정말 우리를 이길 수 있을 줄 알았어?
-그러게, 내 말을 들었어야지.
공태준, 공판석, 윤정아, 윤정식.
그 네 개의 얼굴들이 자신을 보며 비웃는다.
하하하하,
하하하,
하하…….
“허억!”
혜선이 가쁜 숨을 내쉬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괜찮아?”
형우가 그런 혜선에게 달려왔다.
그 모습을 보니 조금 진정이 되는 느낌이다.
“어라?”
주위를 둘러보니 사무실이다.
업무 도중 깜빡하고 잠이 든 모양이었다.
“……아직 퇴근 안 했네?”
“오늘 소설이 좀 막혀서.”
형우가 컴퓨터를 가리켰다.
“웬일로 컴퓨터로 썼네.”
“어, 어어. 노트북으로 쓰기 좀 그래서.”
“……뭐가 그렇다는 건지. 작가들은 참 이상해.”
혜선이 하품을 쭈욱 했다.
“한번 봐도 돼?”
“나야 환영이지.”
형우가 자리를 양보했다.
[난 잘하고 있었어요. 혼자서 마교도 일곱 명을 처치했죠. 최악의 결과가 됐지만, 그게 내 잘못은 아니죠.]
[물론이지. 그런데 표정이 왜 그래?]
[죽은 사람들을 봤어요. 그러니까 와 닿더라고요. 이겨서 돌아갈 수 있을까요?]
혜선이 눈을 비볐다.
“여기서 막힌 거구나.”
“맞아. 내가 주인공이었다면 어떻게 했을까. 그걸 모르겠어. 너라면 어떻게 했을 것 같아?”
“음…….”
혜선이 편집자적 시선으로 설명했다.
“내가 이 캐릭터였다면 아마, 그냥 앉아만 있지는 않았겠지. 주인공은 꽤 능력이 있잖아?”
“그렇지.”
“최선을 다했는데도 실패한 거니까. 너무 고민만 하고 있어도 매력 없지. 지금 할 수 있는 걸 하든가, 아니면 힘을 더 키우든가로 전개하는 게 가장 좋을 것 같아. 아니면.”
“아니면?”
“주인공이 뭘 할 수 있나를 고민하는 장면을 넣는 것도 괜찮을 것 같네. 새롭게 목표 지정을 하는 거지.”
혜선의 말을 들은 형우가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러면, 다음 화도 봐줘.”
“다 못 썼다며 다음 화가 있어?”
“일단 봐줘. 나는 화장실 다녀올 테니까.”
“알겠어.”
혜선은 형우 소설의 다음 화로 넘어갔다.
“……어라?”
잠이 확 달아났다.
[너도 그렇게 했으면 좋겠어.]
단 한 문장. 그게 끝이었다.
아무리 기다려도 형우는 돌아오지 않았다.
그대로 튀어버린 모양이었다.
“허얼……”
혜선은 모니터 화면을 바라보며, 당황스러운 듯이 입만 뻐끔거리고 있었다.
* * *
<월드 배틀>의 1주 차.
프롤로그를 포함한 1화부터 5화 사이의 선작으로 그 순위가 결정되는 시기다.
“소설의 첫인상이라는 거죠.”
아이돌로 치자면 비쥬얼이라고 할 수 있는, 초반 유입을 결정하는 중요한 파트다.
“물론 초반 깡패로는 한계가 있다고들 하지만, 초반 약골보다는 초반 깡패가 낫죠.”
“맞아요. 초반부가 너무 별로면 애초에 읽지를 않으니까요.”
형우의 말에 안재욱이 맞장구쳤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 성적은….”
“흐음.”
일단 확실한 호재가 있다.
“역시 형우 작가님 세계관이 1등 찍으셨네요.”
월드 이터의 1위를 달리고 있는 세계관은 형우가 담당하는 반의 세계관인 <무림유사>였다.
“<권객> 초반부는 진짜 대박이라니까요.”
“그건… 헤헤.”
형우가 팔불출처럼 웃었다.
자신이 쓰면서도 초반부만은 <전설의 보안관>이나 <아이언 타이거>를 압살한다고 생각했다.
과연, 독자의 생각도 그렇게 다르지는 않았던 모양. <권객>의 상승세를 바탕으로 <무림유사> 또한 가파른 상승세를 기록했다.
그 뒤를 이은 건 천우희와 안재욱이었고, C&N이 담당하는 <포탈 서울>은 꼴찌였다.
“팀 점수 20%는 따고 간 거나 마찬가진데요.”
“그건 맞지만….”
좋은 점은 딱 거기까지였다.
“저희가 메인인 경기가 아니잖아요.”
<월드 배틀>은 결국 기성들 간의 싸움이 아니라, 신인들 간의 싸움이었으니까.
“기성들을 뺀 지표로 보면 C&N 쪽이 확실하게 우세해요. 상위권을 보면, 그중에 절반이 C&N 작가들이잖아요.”
“맞아요. 그 중에서도 특히 1위 작품은 진짜로….”
안재욱이 조심스럽게 말을 골랐다.
“찢었죠.”
1위 작품은 리본 작가의 <황혼의 저격수>.
전직 저격수였던 헌터가 포탈로 엉망이 된 서울을 유랑하는 컨셉의 작품이었는데, 필력과 몰입도가 이미 기성의 그것과 별다를 게 없었다.
“어떻게 이런 사람이 여태까지 작품을 안 내고 있을 수 있었죠?”
“…모르겠네요. 그나저나.”
형우가 한숨을 푹 쉬었다.
“학생들이 주눅 들지 않았어야 할 텐데요.”
“그렇죠.”
누구나 그럴듯한 계획이 있다, 처맞기 전까진.
타이슨이 한 말이다.
‘그리고 이건… 사실상 처맞은 거나 다름없지.’
교실 문을 보며, 형우가 침을 꿀꺽 삼켰다.
모두가 엉엉 울고 있어도 어쩔 수 없다고 생각했다.
‘그걸 어떻게 달래줘야 하나….’
그렇게 생각하며, 형우는 살짝 문고리를 열었다.
그런 형우가 마주쳤던 것은.
“정주현 씨! 여기에서 새로운 히로인을 추가할 필요가 있을까요? 예전에 써 뒀던 캐릭터가 있잖아. 그쪽으로 가는 게 더 어울릴 것 같은데요.”
“어어, 생각해 볼게요.”
“그리고 구민효 작가님은, 지나치게 전문적이야. 그 전문성이 오히려 연출을 잡아먹어. 이 분이 쓰는 게 법정 드라마지, 법정 다큐멘터리는 아니잖아? 고증에 이 정도로 집착할 필요는….”
“바로 고치겠습니다.”
“그리고 조준구 작가님은….”
모든 학생들이 노트북에 고개를 처박고 뭔가를 열심히 써내려가고 있었다. 그리고, 그 사이에는 혜선이 서 있었다.
“왔어?”
“이게 무슨 일이야?”
“요 며칠 학생들 작품을 쭈르륵 읽었는데 말야, 이것만 고치면 괜찮아지겠다 싶은 점들이 꽤 많이 보이더라고. 그래서 충고해 주러 온 거야!”
“어어… 90명을 다?”
“그건 아니지.”
혜선이 고개를 저었다.
“확실하게 보이는 사람만, 그런 사람만 해 주는 거야. 이미 잘 쓰는 사람은 건드릴 필요 없잖아.”
“그러니까, 뒤처지는 사람을 중심으로?”
“으음, 비슷해. 뭐, 꼭 뒤처지는 사람이 아니라도 더 좋아질 점이 보이면 충고해 주기는 하지만, 뒤처지는 사람이 중심인 건 맞지.”
지난 며칠, 혜선은 자신이 해야하는 일이 무엇인지를 곰곰이 생각했다.
“어차피 여기서 이기고 지고는 너희가 할 문제지, 내가 할 수 있는 문제는 아니더라고.”
“응.”
“그래서 생각을 해 봤어. 내가 뭘 할 수 있을까. 그러다가 문득 잊고 있던 게 떠오르더라.”
“잊고 있던 거?”
“우리가 왜 <월드 배틀>을 열고, 지저귐을 열었는지에 대한 거 말야. 우리가 여기서 이렇게 열심히 하는 건 결국 새로운 작가를 키워내기 위해서잖아.”
“그렇지.”
“지금 잘 쓰고 있는 사람들은 이미 작가나 다름없다고 생각해. 그러면 결국 내가 해야 하는 건 아직 작가가 되지 못한 사람들을 작가가 될 수 있도록 돕는 거겠지.”
C&N에게 이기든, 지든. 그건 중요하지 않다.
더 중요한 것은 애초의 목표대로, 더 많은 작가를 키워내는 것이다.
“여기 모인 사람들은 작가가 되기 위해 모인 사람들이잖아. 뛰어난 작가를 만드는 것도 좋지만, 이왕이면 여기에 모인 사람들이 모두 만족할 만한 걸 갖고 갔으면 좋겠어. 그거야말로 프론트가 해야 할 일 아닐까.”
그게 혜선이 내린 결론이었다.
“그러니까, 너희들은 그대로 열심히 써. 나는 그사이에 작가를 더 많이 만들어 낼 테니까.”
혜선이 교실 구석을 향해 후다다닥 뛰었다.
‘…뭐지?’
C&N 어쩌고 하면서 풀 죽어 있던 게 엊그제 같은데, 회복이 빨라도 너무 빨랐다.
‘다른 사람을 보는 것 같네.’
그런 혜선을 보고 있자니, 문득 한 생각이 머리를 휩쓸고 지나갔다.
-불안 상태를 극복하고 자신감이 뿜어져 나오면요, 사람은 존이라는 상태에 들어가게 돼요.
-뮤즈라고도 부르는 그거죠!
으음.
그건 아는데.
‘그 존이라는 게… 편집자한테도 적용되는 거였구나.’
그런 생각이 저절로 드는 형우였다.
* * *
“15명이 30위 안에 들었다는 거죠?”
윤정아의 말에, 도수형이 피식 웃었다.
“C&N, C&N 하더니. 별거 아니네?”
“소설이라는 게 운칠기삼이잖아요?”
“다 변명이지.”
도수형이 피식 웃었다.
“운칠기삼인 건 저쪽도 마찬가진데.”
“그래도 이기고 있는 건 맞아요.”
“못 이기면 그런 망신이 있을까. 그나저나 이번에도 돈을 좀 쓰셨나 본데요.”
“들으셨군요.”
이곳으로 오기 전, 윤정아는 30위 안에 든 15명의 학생을 대상으로 250만 원을 다시 한번 전송했다.
“이기는 사람한테는 상을 줘야죠. 그래야 할 맛이 나잖아요. 경쟁심도 생기고.”
“경쟁심이라, 좋죠.”
도수형이 노트북 자판을 톡톡 건드렸다. 노트북 위에 떠 있는 화면은 C&N의 참가자들이 썼던 소설의 목록이었다.
“서른 개라. 너무 많네.”
마우스가 움직이며, 열다섯 개의 한글 파일을 쓰레기통으로 집어넣었다.
30위 안에 들지 못한 C&N의 작품들이었다.
“이 녀석들은 이미 글렀잖아요.”
“맞아요.”
윤정아도 동의했다.
“아무리 5화까지가 첫인상이라고 해도, 30위도 들지 못한 작품이라면 더 볼 필요도 없죠.”
“상대가 스패로우 팩토리라면 더더욱 말입니다. 전략상으로 필요 없다고 할까요.”
도수형와 윤정아의 전략은 간단했다.
안 되는 놈은 빠르게 쳐내고, 싹수가 보이는 놈들에게만 올인한다.
“선작 천짜리 작품 열다섯 개를 만드느니, 선작 만 오천짜리 작품 하나를 만드는 게 나으니까. 편집자들도 위쪽 15명을 중심으로 배정될 겁니다.”
“잠시만요.”
그때까지 듣고 있던 고유민이 토를 달았다.
“그러면 아래쪽에 위치한 애들한테는요? 편집자 배정을 따로 안 해 주나요?”
“네. 이미 글렀잖아요.”
“그건… 지나치게 차별대우 아닙니까?”
“이 사회에서 차별은 당연한 거예요. 정확히는 바닥이 필요하죠. 뭐, 영원한 차별은 아녜요. 그쪽에서 치고 올라오면 언제든 자리는 바뀔 테니.”
“편집을 안 해준다면서요? 편집자의 도움도 받지 못하는데 어떻게 아래가 치고 올라와요?”
고유민이 따져 물었다.
“말도 안 되는 거잖아요.”
“애초에 떨어지지 않았으면 되는 문제잖아요.”
“그럴 거면 차라리 하위권 애들보고 그만두라고 하세요! 지금이라도 다른 길 찾게!”
“어머, 그럴 순 없죠.”
윤정아가 호호 웃었다.
“바닥이 있어야 다른 사람들이 경각심을 가지고 더 열심히 할 게 아니겠어요?”
“그게…!”
고유민의 안색이 파랗게 질렸다.
뛰어난 사람한테 상을 주는 거야 누구도 말리지 않는다. 하지만 뛰어나지 않은 사람에게 벌을 주는 건 다른 문제다.
이건 숫제 작가들을 죄다 망쳐버리는 일이 아닌가?
“유민아.”
계속되는 고유민의 생각을 끊어낸 것은 도수형이었다.
“적당히 해, 적당히.”
“적당히라뇨?”
“착한 척 그만하라고, 자식아. 너도 결국 육천만 원, 그것 때문에 여기 붙어 있는 거 아냐? 전에도 말했잖아. 맘에 안 들면 돈 내놓고 가라니까.”
“그게…….”
“네 동생 유학 보낸다며?”
도수형이 말했다.
“얼굴도 몇 번 못 본 애들 열다섯 명보단 동생을 먼저 생각해야 하지 않겠어?”
“으윽….”
“너무 열 내지 마. 만약 욕하는 놈이 있다면 걔는 기회가 없어서 욕하는 거야. 육천만 원과 열다섯 명 사이에서 선택할 기회가. 만약 그런 기회가 왔다면, 모두가 같은 선택을 할걸.”
도수형이 씨익 웃었다.
“지금 네가 하는 것과 똑같은 선택 말야.”
뭐라 성을 내려던 고유민은 그만 입을 다물고 말았다.
“역시, 두 분 작가님은 이해가 빠르셔서 좋네요.”
그 모습을 본 윤정아가 빙긋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