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환상을 쓰겟다-171화 (171/200)
  • #170

    한국대학교의 대강당大講堂.

    그 가운데에 있는 거대한 연단은 꽤나 역사적인 공간이라고 할 수 있겠다.

    누군가는 저 위에서 현대사에 남을 선언을 하기도 했고, 누군가는 지식의 상아탑의 높이를 한 뼘은 높여 줄 위대한 연구를 발표하기도 했다.

    실제로 현대사 쪽 책을 살펴보면 이 연단의 모습을 간간이 볼 수 있을 정도다.

    그 역사성을 담보하기라도 하듯, 건물이 몇 번이나 리모델링되는 와중에도 이 연단만큼은 몇 번의 보수와 수리 외에는 건들지 않았다고 한다.

    그토록 위대한 역사와 지엄한 모습을 앞에 둔 형우는 자신도 모르게…….

    ‘……왜 또 나야?’

    한숨을 쉬었다.

    -저번에도 형우 작가님이 하셨죠?

    -맞아요. 형우 작가님이 하시면 되겠네요.

    안재욱이나 서지원이 그렇게 말하는 건, 뭐 그럴 수 있다고 넘어갈 수 있지만.

    -맞아. 형우 너 연설은 진짜로 잘하잖아?

    형우에게 칭찬을 하면 혀에 가시가 돋는 병이 있는 천우희조차 그렇게 말하는 걸 보면 좀 소름이 돋았다.

    -내가 보기엔 재능도 있다니까? 너는 소설 소재 막히면 정치인을 해도 될 거야.

    -정치인이요? 야당? 여당?

    -그야 당연히 ㅇ…….

    -거기까지! 더 말하면 큰일 나요!

    지원이 황급하게 천우희의 입을 막았다.

    하기야, 유명인이 정치 발언이나 사상 발언을 하는 것만큼 위험한 일이 또 없다.

    절반은 좋아하겠지만, 반대로 절반은 잃어버린다는 뜻이니까.

    ‘……뭐.’

    하지만 요즘 연설에 재미를 붙인 것도 사실이기는 했다. 실력도 좀 는 것 같고.

    어떻게 알았느냐면…….

    -아 맞다! 연설하니까 생각난 건데, 저 예전에 연수 작가님한테 재밌는 거 받았거든요.

    -뭔데요?

    -형우 작가님이 <한국 대학교의 리더>행사 때 했던 연설인데…….

    처음에는 나 그때도 지금이랑 똑같지 않았어? 라고 생각했지만…… 동영상을 틀자마자 마음이 바뀌었다.

    -저↗희어↘머니께→서는…….

    그 한마디를 듣는 순간, 형우는 익룡이 될 수밖에 없었다. 7옥타브를 오가는 고음역대의 소리를 지르며 두 팔을 펄럭여 재빨리 화면을 가렸다는 뜻이다.

    “으아아아아아아아악!”

    분명 기억 속에서는 괜찮았던 것 같은데?

    그럴듯했던 것 같은데?

    근데…… 저 북한 뉴스 초반부에 나올 것 같은 요상한 발성은 대체 뭐지?

    기억이란 늘 미화되기 마련이라는 것을 다시금 되새기며, 형우는 연단에 올렸다.

    톡톡.

    자연스러운 동작으로 마이크의 상태를 체크한 뒤, 그대로 심호흡을 하며 강당에 모인 스패로우 팩토리의 학생들과 천천히 눈을 맞췄다.

    752명의 지원자 중 최종 합격했던 150명.

    그리고 한 달이 지난 지금은 그중에서도 꽤 많은 수가 버티지 못하고 떨어져 나가, 87명의 학생만이 남아 있었다.

    ‘선생 셋을 합치면 90이야. 좋은 숫자지.’

    형우는 작가답게 약간의 강박증이 있는 편이었고, 아무래도 맞아떨어지지 않는 숫자보다는 맞아떨어지는 숫자를 더 선호하는 편이었다.

    “오늘 이곳에 여러분을 모은 것은, 한 가지 질문을 하기 위함입니다.”

    그대로, 형우의 입에서 긴 이야기가 흘러나왔다.

    * * *

    “……그러니까, 이번 행사에 C&N이 참여 의사를 밝혔다는 거잖아.”

    “그것도 엄청 잘 쓰는 애들을 데리고 말야.”

    “완전 우리를 뭉개버릴 생각이라는 건데.”

    “허억…….”

    형우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학생들 사이에 웅성거림이 퍼져나갔다. 형우는 그 점을 딱히 터치하지 않았다.

    ‘하긴…… 무섭겠지.’

    인간의 성장에는 벽이라는 게 필요한 법이지만, 그 벽을 굳이 만나고 싶어 하는 사람은 세상에 많지 않은 법이다. 그것이 넘기 힘들 정도로 거대해 보이는 벽이라면 더더욱 말이다.

    ‘상대가 그 C&N이 선별하고 선별한 지망생들이니까.’

    아니, 애초에 ‘지망생’이라고 부르는 것 자체가 이상하다. 차라리 혜선의 말마따나 ‘재수생’이라는 말이 더 어울린다.

    C&N이라는 강남 D 학원 뺨치는 명문 재수학원에 등록된 A급 재수생들. 1라운드부터 최종보스가 등장한 것이나 다름없는 상황이었다.

    ‘도전을 좋아하는 사람도 망설일 만한 일인데, 하물며 여기 모인 사람들은 대부분 그런 경험이 없는 사람들이니까.’

    그러니, 아마 반대하겠지. 형우는 조심스럽게 마이크를 붙잡았다.

    “여러분이 무조건 해야 한다는 게 아닙니다. 여러분들이 원한다면 저희는 그 제안을 거절할 거예요. 이건 애초에 갑자기 들어온 C&N 쪽이…….”

    “무슨 소리예요? 해야죠.”

    그렇게 말한 건, 형우 반 학생인 정주현이었다.

    “상대가 뭐 좀 잘나가는 애들인 건 알겠는데, 그래 봐야 지망생이잖아요. 그럼 할 만하지, 안 그래요?”

    “맞지.”

    옆에서 조준구가 고개를 끄덕거렸다.

    “거 뭐냐, C&N 애들은 글 쓰다가 울어본 적 있대? 내 생각엔 없을 것 같은데.”

    “토해 본 적도 없을걸?”

    “맞아요. 글 쓰다가 다리가 찢어져서 사족보행 해본 적도 분명 없겠지! 나 그날 금성인 바이러스에서 섭외 들어왔었다니까.”

    “……그건 글 때문은 아닌 것 같은데.”

    쩝, 하는 소리를 낸 건 구민효였다.

    “하지만, 해볼 만하다고 생각은 해요. 저도 글을 쓴 지는 이제 한 달 째라 소설의 재능 같은 건 솔직히 잘 모르겠지만…….”

    구민효가 연단을 바라보며 이야기했다.

    “그래도 노력이 뭔지는 대충 안다고 자부해요. 그리고 노력만 본다면, 이곳에 있는 사람들이 거기에 있는 사람들보다 절대 못하지는 않을 거예요.”

    그 말과 동시에, 강당 여기저기서 소란이 일어났다.

    “옳소, 옳소!”

    “우리보다 더 노력했으면 그게 사람이냐? 빡글머신 T-3000이지?”

    “소설이니까 N-3000이 낫지 않냐? 소설은 영어로 novel이잖아?”

    “방금 말한 놈 조준구지? 그러니까 네 소설 속 개그가 재미가 없는 거야!”

    “맞다, 준구야! 군대 있을 때는 네 개그에 후임들이 바닥을 데굴데굴 굴렀겠지? 여기선 어림도 없어!”

    “방금 이빨 턴 놈들 누구냐?”

    조준구의 이마에 힘줄이 삐쭉 돋았다. 연단 위에 있던 형우는 참지 못하고 쿡, 웃음을 터트렸다.

    ‘내가 실수했네.’

    방금까지만 해도, 형우는 자신들에게 배운 학생들을 그저 지망생이라고 생각했다.

    도전은 아직 해본 적 없는, 도전을 위해 힘을 비축하는 지망생.

    ‘하지만 아니었던 것 같네.’

    이 강당에 모인 87명의 학생들이 하고 있는 건 준비 따위가 아니었다.

    “여러분은…… 하루하루가 도전이었나 보네요.”

    “엥? 당연한 거 아녜요?”

    자신도 모르게 흘러나온 형우의 중얼거림을 들은 87개의 시선이 저절로 형우에게 꽂혔다.

    “혹시 하루에 7시간 글쓰기 시키고 집에서 숙제로 1만 자 써오기 시키면서 그게 도전이 아니라고 생각했던 거예요?”

    “150명 중 70명이 도망갔는데도 이걸 그냥 단순한 워밍업으로 취급했다는 거야?”

    “피도 눈물도 없는 신인류인가?”

    “피도 눈물도 없는 사람이 어떻게 소설은 그렇게 감동적으로 쓰지?”

    “준구 형이 로맨스 은근 괜찮게 쓰는 거랑 비슷한 거 아닐까요?”

    “아니, 이 자식들은 왜 자꾸 아까부터 나만 갖고 그래? 맞짱 뜰까? 방금 말한 거 누구야?”

    “방금 주현이가 말한 것 같아!”

    “맞아! 하루에 근력운동 세 시간씩 하는 주현이가 한 말이야! 근데 마지막에 맞짱이라고 그랬나?”

    정주현이 그랬다, 라는 말을 들은 준구의 표정이 까맣게 물들었다.

    “마, 맞짱은 무슨 자식들아! 막창 먹자고 한 거야, 막창 먹자고!”

    “그건 네가 쏘는 거 맞지?”

    “역시 준구 형이다!”

    으음.

    어떤 집단이든, 세 개의 포지션이 꼭 필요하다고들 한다. 일단 첫 번째는 분위기를 끌어올리는 광대, 분위기 메이커다.

    ‘모두에게 질타받지만 동시에 모두에게 사랑받는 사람.’

    조준구가 딱 그랬다.

    그리고 두 번째는.

    “자자, 다들 진정하시고요.”

    끌어올린 분위기를 능수능란하게 조종하는 조율사, 리더다.

    “일단 막창은 제가 살게요.”

    “민효 누나가요?”

    “네. 제가 준구 씨가 한턱 쏠 기회를 뺏는 건 아니겠죠?”

    “아뇨아뇨! 뺏다니! 가당치도 않습니다! 오히려 감사해야죠! 민효 누나 최고!”

    구민효는 누가 봐도 저 무리의 리더처럼 보였다.

    “그러면 바로 갈까요? 다들 싫은 사람 없죠?”

    “저…….”

    주현이 조심스럽게 손을 들어 올렸다.

    “저는 못 갈 것 같아요.”

    “뭐? 주현아. 갑자기 왜 빠져?”

    “오늘 소설 고칠 데가 좀 있는 것 같아서요.”

    “고칠 데?”

    “네. 지금 안 고치면 좀 안 될 것 같다고 해야 하나…….”

    주현이 쭈뼛거리며 말했다.

    “다른 분들은 가세요. 제 일이니까.”

    “이 자식이.”

    조준구가 눈을 부라렸다.

    “니가 그렇게 하면 우리도 못 가잖아, 이 자식아!”

    “에이 씨, 막창은 글렀네. 나도 글이나 써야지.”

    “내 노트북 어디에 뒀더라?”

    그리고 세 번째는 사냥개(hound)이다.

    ‘어쩌면, 집단에서 가장 중요한 사람이지.’

    분위기메이커는 ‘쟤는 원래 좀 이상한 애잖아.’라는 느낌이라서, 경각심이 들지 않는다.

    리더는 ‘저 사람은 원래 대단한 사람이지.’에 가까운 느낌이라, 쫓아갈 엄두가 나지 않는다.

    하지만 하운드는 다르다.

    ‘우리와 비슷한 녀석.’

    ‘쟤한테 따라잡히면 좀 그럴 것 같은데?’

    ‘쟤 정도는 내가 이길 것 같은데……?’

    라는 생각이 절로 들게 만드는, 적절한 목표로서 기능하는 사람을 뜻한다.

    ‘하운드의 능력에 따라 집단 전체의 능력이 좌우되는 경우도 많지.’

    사냥개의 앞에 있는 것은 그로부터 도망쳐야 하는 사냥감이고, 사냥개의 뒤에 있는 것은 언젠가 사냥개를 따라잡아야 하는 사냥꾼들이다.

    그런 식으로, 앞에 있는 자들에게는 위기감을, 뒤떨어진 자들에게는 승부욕을 주는 존재.

    정주현이 딱 그랬다.

    ‘리더에 광대, 거기에 사냥개까지. 언제 이렇게 효율적인 공동체가 됐지?’

    그 답은 곧 알 수 있었다.

    ‘……우리 때문인가?’

    형우는 학생들의 일과표를 떠올렸다.

    -야, 나 오늘도 털렸다.

    -난 오늘 토 두 번 함.

    -우리 반 두 명 탈주했더라.

    -우리 반은 세 명 쫓겨났음. 낄낄낄낄.

    모두가 매일같이 털렸고.

    -뭐냐, 왜 웃냐?

    -그냥 웃겨서.

    -애들이 미쳐가네. 낄낄낄.

    -넌 왜 웃냐?

    -몰라!

    함께 털리다 보니 유대감이 생겨났고.

    -야, 맨날 털리기만 하니까 좀 그런데?

    -내 소설 이상한 데 있냐?

    -나도 좀 봐줘 봐. 또 털릴까 무섭다.

    자연스럽게 공동체를 만들었으며.

    -네가 소설 똑바로 안 봐줘서 털렸잖아! 난 빡세게 읽어 줬는데?

    -야, 안 되겠다. 규칙을 정해야겠어.

    그 과정에서 규칙이 생겼고, 역할이 배분되면서 자연스럽게 효율적인 소설공동체가 구성되고 만 것이다.

    ‘……소설공동체라니.’

    마르크스도, 스탈린도 실패했던 그 체계가, 지금 다시 이곳에서 발돋움하고 있었으니.

    짝짝짝

    아아, 그 이름 찬란한 스패로우 팩토리여라.

    “허억!”

    박수 치던 형우가 깜짝 놀라 두 손을 뗐다.

    자신도 모르게 박수를 오른쪽 왼쪽이 아니라, 위아래로 치고 있었던 것이다. 그것도 흡족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면서 말이다!

    * * *

    뉴튜브 실시간 인기 동영상.

    <월드 배틀> 예고편(최초공개 21분 전)

    -이거 전에 다큐에서 나왔던 그거임?

    -ㅇㅇ 스패로우 팩토리에서 하는 거.

    -근데 C&N도 참가한다고 들었는데.

    -원래는 스패로우 팩토리에서 하는 거였는데, C&N이 참가희망했다고함.

    -올ㅋㅋ대기업의 위엄을 보여주려는 건가?

    -대기업의 위엄은 개뿔ㅋㅋ 스패로우 팩토리 작품 ㄱㅆㅅㅌㅊ인데 그걸 모르네.

    -스패로우 팩토리 작품 재밌긴 한데, 상위작만 재밌지 완전 허리 끊겨있다 아님?

    -그 허리 보충하려고 아카데미 만든 거잖아.

    -C&N 뒤졌다고는 하는데 여전히 제일 크잖음. 상위작도 솔직히 여전히 개꿀잼인데. 스패로우 팩토리랑 다르게 허리랑 다리도 탄탄함.

    -ㄹㅇㅋㅋ강팀은 허리가 강해야 강팀이다. 메이저급 선수 두고도 시즌 내내 죽만 쒔던 주황색 야구팀 생각해보면 쉽자나?

    -하필 거기도 조류네 ㅋㅋ

    -근데 C&N도 요즘은 좀 퀄리티 떨어지던데. 뭔가 분량 늘어지는 기분 드는 작품 많아짐.

    -서지원 나가서 그런 거 아님?

    -내가 들어보니 요즘 C&N 편집부 인력난으로 장난 아니라더라.

    -ㅋㅋㅋ방구석 전문가 나셨고요~

    -나도 내 친구가 미국 대통령이라 아는데 조만간 전쟁난다함ㅋㅋㅋㅋ

    -그래도 여전히 스패로우팩토리<

    -맞음. C&N은 전체적으로 다 재밌음.

    -네 다음 델리만쥬.

    -아 ㅋㅋㅋ그 작가는 반칙이지.

    -이제 시간 됐다.

    치이이익-

    안녕하세요, 여러분! 하이, Hi~!

    전문가적인 딕션과 발성으로 내뱉는, 누구나 할 수 있을 법한 가볍고 발랄한 대사.

    그 말을 뱉는 사람이 뒤집어쓰고 있는 무시무시한 스크림 가면은 이질적이면서도 동시에 시선을 잡아끈다.

    ‘가벼움 뒤에 숨은 노력, 그리고 사람들의 이목을 한 번에 잡아끄는 화려함이라.’

    그야말로 웹소설이다.

    스크림 가면이 살짝 들썩인다.

    웹소설 전문 리뷰어, 웹타쿠입니다! 오늘은 예전에 예고했다시피, 스패로우 팩토리와 C&N이 합작으로 펼쳐내는 필극筆克을 주제로 한 컨텐츠, <월드 배틀>로 만나볼 건데요?

    서론은 재미없으니 이쯤 하도록 하고!

    참가팀 4개, 총 120명의 참가자가 펼치는 국내 최초 소설 서바이벌 배틀! <월드 배틀>! 바로 시작하겠습니다!

    웹타쿠의 호쾌한 선언과 함께.

    <월드 배틀>의 막이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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