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5
“소설가, 그래 소설가란 말이지…….”
형우의 질문을 들은 대머리 아저씨가 요상한 표정을 지었다.
“난 모르겠는데. 자네들은 혹시 아나?”
“모르지. 소설가가 있던가?”
“애초에 우리 시대에 유명했던 소설가들은 죄다 교과서에 실려 있지 않나?”
“예?”
형우가 당황했다.
“자, 잘 생각해 보세요! 분명 여기에…….”
“없네.”
노란 모자가 단호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여기에는 소설가가 없어. 내가 확실하게 알지.”
“아…….”
그 말을 들은 형우의 표정이 무너졌다.
지금까지 했던 모든 게 시간 낭비였다니.
‘이번에는.’
형우가 새장을 슬쩍 바라봤다.
‘네가 실수한 것 같다, 참치야.’
형우의 마음을 꿈에도 모르는 참치는 세상 모르고 잠들어 있었다. 그렇게 돌아가려는 순간, 대머리 아저씨가 물어왔다.
“그나저나 소설가는 왜 찾나?”
“그게요, 사실 제가 소설가라서요.”
“소설가?”
“네. 요즘 뭐랄까, 슬럼프 같은 게 와서요. 근데 슬럼프 극복에 도움을 줄 수 있는 사람이 이 근처에 있다는 얘기를 들었습니다.”
“슬럼프 극복? 어떻게 하는 건데?”
“뭐…… 조언을 듣는다거나, 아니면 새로운 영감을 발견하거나요.”
“알겠군!”
대머리 아저씨가 큼지막한 손으로 박수를 쳤다.
“그러니까 소설가가 필요한 게 아니라 소설의 완성을 도와줄 사람이 필요하다는 거로군?”
“예, 예. 얼추 비슷합니다.”
“그거라면 잘 찾아왔네! 자.”
대머리 아저씨가 엄지손가락을 척 들어 올렸다.
“자네가 찾는 사람이 바로 나일세.”
“예?”
“나라고.”
당당하게 말하는 대머리 아저씨를 보며 형우가 두 눈을 끔뻑거렸다.
“……선생님, 소설가였습니까?”
“소설가는 아니지. 하지만 소설을 도와줄 수는 있네.”
“어떻게요?”
“내 인생으로 소설을 쓰면 분명 베스트셀러가 될 테니까!”
퍽!
그 순간, 형우는 대머리 아저씨의 정수리를 보았다. 누군가가 아저씨의 뒤통수를 후려 깐 것이다.
“뭐야!”
“……정 형.”
노란모자가 자신의 왼손을 탈탈 털었다.
“좀 조용히 이야기하시오. 물고기 다 달아나겠네.”
“으음. 너무 시끄러웠나? 미안하네.”
대머리 아저씨가 머리를 긁적거리며 사과했다. 낚시터에서 시끄럽게 굴면 한 대 맞아도 싸지- 라고 말하는 듯한 태도였다.
“낚시나 하시오, 낚시나. 그리고 소설가 양반.”
“예?”
“자네는 표정부터 좀 풀게. 어복이 달아나.”
노란모자가 중얼거렸다.
“이곳에 영감을 얻으러 왔다면서?”
“그렇습니다.”
“낚시는 예로부터 인간에게 무궁한 영감을 주던 소재라고 들었네. 자네도 소설가라면 헤밍웨이 정도는 알겠지.”
형우가 고개를 끄덕였다.
소설가 지망생이 헤밍웨이를 모른다면 간첩이다.
순문학은 말할 것도 없고, 웹소설도 마찬가지다.
그가 평생을 갈고 닦은 하드보일드한 문체는, 현대 웹소설 문체와 무척이나 가까웠으니까.
“헤밍웨이는 노인이 낚시하는 모습을 보고서 <노인과 바다>라는 걸출한 작품을 써냈지. 그 작품에는 모두가 인정하는 최고의 명대사가 하나 있다네. 뭔지 아는가?”
물론 알고 있다.
“인간은 패배하기 위해 살아가지 않는다.”
“맞아, 그거지.”
노란 모자가 고개를 끄덕이며 낚싯대를 구부렸다.
“그리고 자네가 겪는 슬럼프라는 녀석은 다른 말로 하면 패배주의가 아닌가.”
자신감이 없어지고, 과거의 자신보다 못할 것 같고, 앞으로 잘할 자신이 없어지는.
말 그대로의 패배주의다.
“천천히 고민하게.”
피잉-!
탄력을 탄 낚싯대가 저수지 위를 날았다.
“여기는 낚시터야. 고민할 시간은 충분히 많지. 영감이란 순간의 번뜩임이기도 하지만, 길고 긴 수행의 결과기도 하니 말일세.”
가만 듣던 대머리 아저씨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나보고 말 많다더니 자네가 더 말이 많은데?”
“저는 조곤조곤 말했습니다. 정 형. 물고기는 귀가 나빠서 조곤조곤 말하면 안 도망갑니다.”
“나도 네 뒤통수 한번 후려 까도 되냐?”
“어허. 목소리 낮추시래도요.”
대머리 아저씨와 노란 모자가 서로 투닥거렸다.
하지만 형우는 그 싸움을 신경쓰지 않았다.
방금 노란모자가 했던 기묘한 말 때문이었다.
‘인간은 패배하기 위해 살지 않는다라…….’
형우는 그대로 낚시 의자를 펼쳐 그 위에 앉았다.
딱히 거창한 의도가 있었던 건 아니다.
‘……어차피 낚시도구도 사 버렸으니까.’
부디 이곳에 온 게 허탕이 아니기를 바라며.
피잉-!
형우는 최대한 멀리 낚싯줄을 집어 던졌다.
* * *
낚시터는 조용하지만, 고요하지는 않다.
사람이 모인 곳이면 응당 그렇듯이, 그 사이에서는 조곤조곤 이야기가 피어나오는 법이다.
“……소설가 양반. 내 이야기 좀 들어보겠나?”
아까와는 사뭇 다른 진중한 분위기로, 대머리 아저씨가 말했다.
“자네가 소설가라니까 하는 말일세. 내가 아까 말했던 말은 진심이거든.”
“아까 했던 말이라면…… 선생님의 이야기가 베스트셀러가 될 거라는 그거요?”
대답하는 형우의 표정이 뭔가 석연치 않았다.
과거 수업 시간에 한다은 교수님에게 들었던 이야기가 떠올랐기 때문이었다.
-너희들이 소설가가 되면 가끔, 자신의 이야기를 써 달라는 사람들이 생길 거야.
-하지만 안타깝게도, 모든 이야기가 소설이 될 수는 없어. 쑥과 잔디가 겉보기엔 똑같은 풀이지만 쑥으로는 국을 끓일 수 있어도 잔디로는 국을 끓일 수 없는 것처럼.
한다은 교수님뿐만이 아니다. 대부분의 소설가들이 입을 모아 이야기하는바.
모든 이야기가 소설이 될 수는 없다.
소설은 단순히 글로 써 놓은 이야기가 아니기 때문이다. 소설에는 주제가 있어야 하고, 소설가는 그 주제에 맞춰 플롯을 짜고 이야기를 분배한다.
아무리 멋진 이야기가 있다고 해도, 그 이야기가 작가의 주제 의식과 맞지 않는다면 그 이야기는 소설이 될 수 없는 것이다.
초콜렛이 맛있다고 해서 밥에 초콜릿을 올리면 음식이 아니라 누렁이 밥이 되는 것과 같은 이치다.
‘게다가, 그렇게 엄청난 이야기가 나올 것 같지도 않은데…….’
괜히 나중에 ‘이야기를 듣고 왜 소설로 안 쓰냐?’ 같은 피곤한 일을 겪는 것보다야, 먼저 거절하는 게 백 배는 나을 것 같았다.
“그게…….”
그렇게 형우가 거절 의사를 밝히려는 순간.
부웅-
형우의 낚싯대 끝이 활처럼 휘었다.
“어어, 저거!”
대머리 아저씨가 벌떡 일어났다.
“뭐 해! 잡게, 잡아!”
“어어? 이야기는요!”
“이야기는 다음에 해도 안 늦어! 자네도 손맛은 봐야 할 거 아닌가? 낚싯대 잡아!”
그 서슬 퍼런 기세에, 형우는 자신도 모르게 낚싯대를 쥐었다.
이번에는 대머리 아저씨도 낚싯대를 빼앗아 가지 않았다.
“그대로 당겨어어어!”
“으아앗!”
대를 타고 전해지는 생물의 움직임이 소름 끼칠 만큼 실감 났다.
오른쪽, 왼쪽, 뒤틀기.
그 모든 감각들이 손끝을 타고 생생하게 전해졌다.
‘이게 손맛인가?’
하지만 멍 때리고 있을 시간은 없었다.
자칫하다간 잡은 고기가 실을 끊고 도망가버릴지도 모르니까. 그만큼 큰 놈이었다.
“메기인가?”
“이 정도로 휘면 가물치일지도?”
“예끼! 어떤 미친 사장이 자기 낚시터에 가물치를 풀어놔?”
“메기는 뭐 풀 먹고 큰답니까?”
“어어, 무작정 당기지 말게! 입이 찢어질 테니!”
주변의 낚시꾼들이 한 마디씩 보탰지만, 형우의 귀에는 어떤 것도 들어오지 않았다.
세상에 자신의 손끝과 낚싯대와 물고기만이 존재하는 것 같은 기묘한 감각이 왠지 모르게 익숙했다.
‘이거 설마…….’
물고기가 오른쪽으로 가면, 오른쪽을 살짝 풀어 줬다. 왼쪽으로 가면 반대로 했다.
뒤틀 때는 힘을 빼 버렸다.
그렇게 한참의 줄다리기가 끝난 후.
촤아악-!
낚싯대가 치켜 올라가고, 수염 달린 생물이 허공을 가로질렀다. 마치 신화 속의 용 같았다.
“메기네, 메기야!”
“두 척(60cm)은 되겠구만!”
“오늘 제일 큰 놈인데?”
사람들이 환호했지만, 그중 형우의 귀에 들어오는 말은 한마디도 없었다.
‘메기랑 내가 이어져 있는 것 같았어.’
말도 안 되는 감각이다.
아직도 손끝이 떨렸다.
형우가 물고기를 느끼듯, 물고기도 자신을 느꼈을까?
물과 뭍, 서로 관계없는 곳에서 살아가던 두 생명체가 하나의 실을 두고 이어지는 그 감각.
‘이건 역시…… 아는 감각이야.’
왜 모르겠는가.
서로 관련 없는 사람들이, 얇디얇은 인연을 통해 만나서 서로를 느끼는 것.
그것이야말로 소설小說인 것을.
그 순간, 형우의 머릿속에 떠오른 것은 최근에 있었던 일련의 사건들이었다.
‘언제부터였지?’
내가 다른 사람 말을 무시하게 된 게?
-정수야, 네가 소설에 대해 뭘 안다고….
-아냐, 연수야. 혼자 해 볼게.
-들어 봐야 도움도 안 될 텐데. 괜히 집중력만 흐트러지지.
그제야, 형우는 깨달았다.
‘근본부터 틀렸어.’
모든 이야기가 소설이 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소설의 근본이 이야기인 것은 변하지 않는다.
‘……전후관계를 완전히 착각하고 있었어.’
작가는 자신이 쓸 소설에 맞춰 이야기를 취사선택하는 형편 좋은 요리사가 아니다.
작가는 수많은 이야기들을 그러모아 어떻게든 소설을 써내야 하는, 무인도의 걸인이다.
언제나 이야기에 굶주려있어야 하는데, 제멋대로 저 사람의 이야기는 쓸모가 없을 거라고.
저 사람의 이야기는 들을 필요도 없다고.
그런 오만한 생각을 하고 있었다.
‘네가 작가냐? 이 세상에서 제일 멍청한…….’
그렇게 한참 자책을 하고 있을 때였다.
반짝-
갑작스레 터져 나온 빛무리 탓에, 형우의 눈살이 찌푸려졌다.
‘……역광?’
정확히는 대머리 아저씨의 머리에서 반사되는 빛이었다. 그 두툼한 오른손에는 형우가 잡은 메기가 힘있게 꿈틀거리고 있었다.
“저수지의 왕을 잡았군. 손맛이 어떤가?”
“손맛이라…….”
고민할 것도 없이, 형우는 그대로 엄지손가락을 척 치켜들었다.
“최고였어요!”
“그렇지, 최고지! 아깝군. 이 녀석을 내가 잡았어야 하는 건데…….”
그렇게 투덜거리는 대머리 아저씨를 보며, 형우가 씨익 웃었다.
“그나저나, 아저씨. 아까 하던 이야기 말인데요.”
“아, 그거 말인가? 보니까 별로 듣고 싶지 않아 하는 것 같은데, 그러면 괜히…….”
“아뇨! 절대 아니에요!”
형우가 재빨리 두 손을 내저었다.
“듣고 싶어요.”
그 말을 들은 대머리 아저씨가 활짝 웃었다.
누런 치아 사이에서 금니 하나가 반짝거렸다.
‘저걸 이제 보다니.’
아까는 금이라는 걸 알지도 못했는데.
유심히 봐야 보이는 것들이 세상에는 있는 모양이고, 그것이야말로 소설인 법이니.
* * *
“……내 이름은 정철산일세. 예전에는 파나마 운하와 수에즈 운하를 내 집처럼 드나들었었는데 한 번은 수에즈에 갔을 때….”
“어, 잠시만요!”
늘 가지고 다니는 수첩에 대머리 아저씨, 정철산의 이야기를 빼곡히 적던 형우가 갑자기 난색을 표했다.
“잉크가 다 됐나 봐요. 여분도 안 가져왔는데….”
“쯧.”
옆에서 이야기를 가만 듣고 있던 노란 모자가 볼펜 하나를 휙 던져 줬다.
“그걸 쓰게.”
“…가, 감사합니다!”
낚시꾼이 품에 볼펜을 넣고 다닌다는 게 좀 이상하게 느껴지기는 했지만, 그냥 습관인가보다 했다.
‘군대만 해도 고작 2년인데 요즘도 애국가 들으면 발이 빳빳하게 굳잖아. 비슷한 거겠지.’
다나까 같은 건 실생활과 관련되어있다 보니 의외로 쉽게 고쳤는데, 애국가가 들리면 저절로 발이 멈추는 건 여전히 고쳐지지가 않았다.
습관의 무서움이었다.
“계속 말씀 하세요!”
“음, 그러니까….”
정철산의 말은 그 뒤로도 삼십 분 정도 쭉 이어졌다.
“출항 이틀 전에 알게 됐다네. 이 빌어먹을 놈들이 돈 욕심이 그득해서 적재량을 속인 거지.”
“적재량을요? 그러면 안 되는 거 아니에요?”
“당연히 안 되지. 하중이 초과된 배는 사고가 나기 쉬워지고, 바다에서 사고가 난다는 건 곧 인명사고로 이어진다는 것과 같으니까.”
“그래서 어떻게 됐죠?”
“바로 선주, 그러니까 무역회사에 담판을 때리러 갔지. 그냥 눈 딱 감으라고 하더군. 근데 내가 또 그게 되나? 그대로 관세청에 신고했지.”
“112도 아니고 왜 관세청이죠?”
“출항이 며칠 안 남았으니까. 어떤 집단이든 돈 받아내는 데가 제일 빠른 법이거든.”
결국 관세청은 그 배의 비리를 잡아냈고, 추가 적재량만큼의 세금과 벌금을 혹독하게 때렸다.
“그리고 난 짤렸지.”
법률적 보호장치가 있는 요즘도 내부고발자는 경시당하기 마련인데, 몇십 년 전이면 오죽했겠는가?
“하지만 후회는 안 해. 그거 모른 척하고 나갔다가 사고라도 나서 누구 한 명 뒈졌어 봐. 낚시터는 개뿔, 물 근처에도 못 갔을 거야.”
그렇게 정철산의 이야기는 끝났다.
“저, 이야기 끝났나?”
“백 씨가 무슨 일이오? 가게 안 해요?”
“어차피 올 놈들 다 왔는데 뭔 가게야. 그나저나 젊은이, 소설가라면서?”
그때, 백 씨가 너스레를 떨며 형우의 옆에 걸터앉았다.
“거, 내 이야기도 좀 들어줄 수 있겠나? 소설로 써주면 더 좋고 말야.”
“선생님 이야기를요?”
“맨입으로는 아니고….”
백 씨가 들고 온 비닐봉지를 뒤져 버터구이 오징어와 막걸리 한 통을 꺼냈다.
“이거면 말이 좀 통하지 않겠나?”
그 모습을 본 주변 사람들이 볼멘소리를 터트렸다.
“백 영감님! 단골인 우리한테는 저런 거 안 주면서!”
“니네랑 소설가분이랑 같냐?”
“이왕 하는 거 나도 껴 주쇼!”
“낚시나 해!”
“옆에서 술판 벌이는데 낚시가 눈에 들어온답니까! 저도 껴 줘요!”
“저도요!”
여기저기서 낚시를 하던 사람들이 낚싯대를 내팽개치고 형우의 주변에 모여들었다.
“거참. 알았다, 알았어! 잠시 기다려 봐라!”
호탕하게 말한 백 씨는, 그대로 점포를 뒤져 막걸리를 한 아름 챙겨가지고 돌아왔다.
“오늘은 사장님이 미쳤어요 한 번 간다!”
“자린고비 백 영감님이 무슨 일이래?”
“젊은 애 앞에서 멋진 척하고 싶은 거지!”
“방금 말한 새끼는 술 손도 대지 마라.”
하하하- 왁자지껄한 웃음소리가 터졌고.
슈슈슉-
형우의 볼펜이 또다시 수첩 위를 내달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