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4
“……오늘도 평온하구나.”
낚시터를 운영하는 백 씨가 희끗해진 머리카락을 쓰다듬었다.
“요즘 직장 다니는 애들은 은퇴 후에 찻집 차리는 게 꿈인 녀석들이 많다더구만.”
“은퇴 계획도 시대에 따라 바뀌는 게지. 우리 때는 열이면 열 낚시터 차리고 유유자적 사는 게 꿈이라고 하지 않았던가.”
“하지만 이룬 놈은 별로 없지. 아닌가?”
백씨의 지렁이를 사러 온 단골이 고개를 끄덕거렸다.
“맞아. 자네는 복 받은 게지. 나도 당구장 차리는 게 꿈이었는데.”
“왜 그만 뒀나?”
“당구가 예전 같지 않더라고. 그렇다고 피씨방을 차리자니, 내가 뭐 아는 게 있어야지.”
손님이 투덜거리며 지렁이 통 하나를 내밀었다.
“그나저나 백 씨. 지렁이가 더위를 처먹었는지 너무 볼품이 없는데 좀 싱싱한 놈으로 바꿔 줘.”
“더위가 뭘 했기에 지렁이한테까지 잡아먹히나? 자네 말대로면 지렁이만 잔뜩 길러도 이 비루먹을 지구온난화가 없어지겠구만.”
“헛소리 말고.”
손님이 정색하자, 백 씨가 헛기침을 했다.
“크흠……. 자네 낚시 실력이 비루한 걸 왜 지렁이 탓을 하는가. 오늘 지렁이 사 간 사람들이 죄다 손맛을 보고 있는데 말이지?”
“씨이. 낚시에 실력이 어딨나? 그냥 대 드리우고 멍하니 있으면 물고기가 무는 것을.”
“어복魚福 또한 실력이라네.”
“운도 실력이라…….”
손님의 표정이 팍 구겨졌다.
“그 말을 은퇴해서까지 듣게 될 줄이야. 나도 운이 좀만 있었으면 별 네 개도 달아 봤을 텐데.”
“이제 와서 그런 말이 무슨 쓸모가 있을까.”
단골을 보며 백 씨가 빙그레 웃었다.
지금이야 지렁이가 더위를 먹었는가 아닌가로 낚시점 주인과 옥신각신하는 신세지만, 이 남자는 10년 전만 해도 말 한마디로 여름 땡볕에 일만 대군을 바닥에 데굴데굴 굴릴 수 있는 무소불위의 권력자, 사단장 출신이었다.
그뿐인가?
낚시터 구석에서 물고기가 문 줄도 모르고 꾸벅꾸벅 조는 놈은 한때 내로라하던 가수였고, 무슨 개틀링건마냥 낚싯대 여섯 개를 쪼르르르 늘어놓고 매처럼 수면을 주시하는 놈은 컨테이너 박스 수백 대를 실은 배를 끌고 파나마 운하를 제집처럼 드나들던 운송업의 대가다.
죄다 한가락 하던 사람들이라는 거다.
‘이른 낮부터 낚시질하는 놈들이 다 그렇지.’
저 사람들에게는 대부분 두 가지의 공통점이 있다. 첫 번째는 꽤나 여유롭다는 것이다.
동방예의지국인 대한민국의 사람들은 예의를 알지만, 돈이란 놈은 예의를 몰라 노인과 아이를 가리지 않는다.
여유롭지 않은 이들이 노인이라는 이유만으로 평일 아침부터 낚시터에서 노닥거릴 수 있을 정도로, 대한민국의 경제는 만만하지 않다는 뜻이다.
‘그리고 두 번째는…… 여유로움을 즐길 줄 모르는 멍청이들이라는 점이지.’
자본주의 세계에서 돈이 많다는 건, 다시 말하자면 치열하게 살아왔다는 것이다.
인간이란 적응의 동물이라, 한 삼십 년 정도 치열하게 살아오면 긴장감 없는 인생이라는 것에 도무지 적응을 못 하게 되는 모양이다.
“놀 때 놀고 일할 때 일하는 놈들은 천재지.”
“맞네. 보통은 잘 노는 놈은 일을 할 줄 모르고, 일 잘하는 놈은 놀 줄을 모르지.”
“그리고 여기는 놀 줄 모르는 놈들만 천지삐까리고 말야.”
백 씨와 사단장을 포함해, 여기 모인 사람들은 죄다 그런 사람들이다. 돈은 필요 없어도, 일거리는 필요한 사람들 말이다.
“낚시터라는 게 그런 사람들을 위한 파라다이스 아니겠는가.”
언제 물고기가 물지 알 수 없으므로 낚시꾼은 필연적으로 긴장감을 놓지 못하게 된다.
하지만 동시에 낚시라는 건, 아무리 낚시에 도가 튼 사람이라도 낚아 올리는 시간보다는 기다리는 시간이 더 많은 행위이기도 하다.
그 긴장감과 여유로움의 묘한 조화야말로 낚시의 묘미다. 특히 고된 삶에 지쳐 약간의 여유를 바라면서도 무료함을 견딜 줄을 모르는 은퇴자들에게는, 이곳이야말로 자신들의 모순된 니즈를 완벽하게 충족시켜 주는 공간인 셈이다.
“……평일 낮부터 이런 양반들이 모여든 게 단순한 우연은 아니라는 거지.”
“맞네, 맞아. 우리 딴에는 놀 줄 모르는 거지만, 남들 딴에는 놀지도 않고 일만 하는 야심가들로 보였을 테니까.”
사단장이 끌끌거리며 웃었다.
“집에서 죽치고 앉아있느니, 그 시간에 나와 물고기 몇 마리라도 낚아 가면 뭔가 보람찬 느낌이 든단 말이지.”
“보람 찾으려면 차라리 진짜 일을 하지 그러나?”
“에이, 내 나이에 일은 무슨. 지금 일을 시작해 봐야 기껏해야 허드렛일 정도일 텐데. 이제 와서 남들 명령 듣는 것도 못 할 일이지. 난 낚시가 좋아. 유전자에 각인된 즐거움이랄까?”
“유전자에 각인된 즐거움이라, 과연 그 말이 맞군. 인간이 말도 없이 우가우가하던 시절부터 낚시는 있었으니.”
“이렇게 재밌는 걸 요즘 애들은 왜 잘 안 즐기는지 몰라. 아무리 둘러봐도 온통 나이 먹은 남정네들뿐이니.”
백 씨가 신선한 지렁이 한 통을 꺼냈다.
“어쩔 수 없는 일 아니겠는가. 낚시는 시간이 많이 들고, 요즘 젊은이들은 시간이 없지. 헌데 말일세…….”
사단장의 눈이 가게 바깥쪽으로 향했다.
“오늘은 평소와는 좀 다른 게 보이는군.”
“다른 거?”
“저기 보게. 젊은이가 있군.”
창밖으로 보이는 건 아직 30대도 되지 않아 보이는 새파란 남자였다.
“보아하니 낚시를 즐기는 것 같지는 않은데. 낚시터에 어올리는 인간이 아니야.”
“얼굴만 보고 어찌 아는가?”
“나 참. 내가 전직 사단장이네. 지휘에서 가장 중요한 게 뭔지 아나? 사람을 보는 안목이야.”
“지렁이는 못 보더만.”
“……뭐야?”
사단장이 눈을 부릅떴다. 백 씨가 재빨리 말을 돌렸다.
“낚시터에 안 어울린다라, 그 이유는 뭔가?”
“눈빛만 봐도 알지.”
“관상학인가?”
“비슷해. 솔직히 나는 관상이 완전히 믿을 건 못 되도 한 80%는 맞는다고 생각한다네. 저 애만 봐도 그렇지. 목표가 뚜렷한 눈이야.”
“오호, 목표라.”
“이런 곳엔 어울리지 않는 인간이지. 한 30년쯤 지난 후라면 이 곳에 앉아 있는 놈들처럼 될지도 모르지만, 지금은 아니야.”
그 말은 더없는 칭찬이다. 적어도 금전적으로는 더할 나위 없는 사람이 되었다는 뜻이니.
하지만 백 씨에게 그런 건 별로 중요하지 않았다.
“아무튼 내 손님은 아니라는 뜻이군. 30년 후면 나도 오늘내일 하고 있을 테니 말이야.”
“어허. 자네도 거상이 되려면 멀었구만.”
“거상?”
“그런 말도 못 들어 봤는가? 마티즈를 사러 온 손님에게 마티즈를 팔면 3류 상인, 마티즈를 사러 온 손님에게 쏘나타를 팔아치우면 2류 상인, 운전면허도 없는 사람한테 마티즈를 팔아치울 수 있으면 1류 상인이라는 말 말야.”
“이보게. 친구.”
이야기를 다 들은 백 씨가 피식 웃었다.
“1류 상인이 되고 싶었으면 내가 여기서 낚시방이나 하고 있겠나? 진작에 무역회사를 차렸지! 지금 나에겐 안온함이 제일이라네.”
“그야 그렇지만…….”
“이 낚시방도 그냥 돈 까먹지나 않으면 다행인 소일거리일 뿐. 이제 와서 무슨 부귀영화를 누리겠는가? 팔아도 그만 안 팔아도 그만이지.”
백 씨가 인자한 표정으로 미소 지은 그 순간이었다.
“저, 백 씨.”
“왜 그러나.”
“저 젊은이, 이쪽으로 오는군.”
“으응?”
의심스러운 눈초리로 백 씨가 사단장을 바라봤다.
“아까는 낚시하러 온 게 아니라며?”
“……갑자기 하고 싶어졌다거나?”
사단장이 눈을 데굴데굴 굴리며 모른 척을 했다. 백씨가 허어, 하고 눈을 길게 찢었다.
“됐네, 됐어. 말을 말지. 손님 받게 저기 구석에서 잠깐 기다리게.”
“어어, 내 지렁이는?”
“대충 손님 가면 주겠네.”
잠시 후, 딸랑거리는 소리와 함께 낚시방의 문이 열렸다.
근엄한 얼굴로 그 입장을 지켜보던 백 씨의 허리가……
“어서 오십시오, 손님!”
그대로 쑤욱 굽혀졌다.
“언제나 손님에게 최고의 낚시용품을 제공하는 천안낚시상회입니다. 어떤 물건을 찾으시나요?”
“초보용 낚시대를 좀.”
“초보용 낚싯대! 이 쪽으로 오십시오!”
뒤에서 그 모습을 지켜보던 사단장이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혀를 끌끌 찼다.
‘아까는 소일거리라더니?’
저게 어떻게 소일거리를 다루는 태도인가? ‘별로 중요한 일 아닙니다.’라며 중요한 일도 대충 하던 중위들에게 꼭 보여주고 싶은 모습이었다.
‘90도 직각 인사?’
중한 일을 할 때는 뭐 오체투지라도 하는 건가?
……지금 백 씨의 태도를 보면 진짜 그럴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저렇게 예의 바른 사람이 왜 내가 지렁이 사러 올 때는 맨날 틱틱거리만 할꼬…….’
하지만, 생각해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잡아 놓은 물고기에는 소흘해지는 법이니.
* * *
“뭐여, 장비 완전 새 건데?”
“저렇게 젊은 양반이 평일에 낚시를 하러 오나?”
“취미인가 보죠!”
“그렇다기에는 영 초보티가 풀풀 난다 아잉교?”
새 낚싯대와 때 하나 없는 모자를 쓰고, 누가 보기에도 ‘나 초짜요.’ 하는 얼굴로 걸어오는 형우를 바라보는 낚시 고인물들의 입에 침이 고였다.
‘생각대로야.’
형우는 시선을 눈치채지 못한 척 자리에 앉아서, 일부러 혼잣말을 조금 크게 했다.
“이거…… 이렇게 하는 건가?”
동시에 제멋대로 낚싯대를 조물거리자, 여기저기서 비명소리가 튀어나왔다.
“어이고, 저러면 다 망가지는데!”
“세상에!”
어떻게 낚시대를 거치하고 바늘에 지렁이를 꿰려는 순간, 드디어 입질이 왔다.
물고기가 아니라 사람을 낚았다는 뜻이다.
“……거, 낚시 처음이요?”
4월의 햇빛 아래 대머리가 유달리 빛났다.
‘낚였구나!’
그 모습을 보며 형우가 씩 웃었다.
* * *
“에헤에이!”
“그기 아니지, 그기! 저 멀리 휘리릭! 하고 던지라니께!”
“아니! 낚시 그렇게 하는 거 아니라니까!”
여기저기서 터져 나오는 훈수에, 형우의 정신이 아득해졌다.
‘……헬스장의 역설이 먹히기는 했는데.’
문제는 훈수의 대상이 자신이 아니라는 거였다.
“다들 닥치쇼 내 알아서 할 테니! 으허허허허, 역시 새 낚싯대가 좋구만!”
대머리 아저씨가 기분 좋게 형우의 낚싯대를 부웅- 휘둘렀다. ‘낚시를 알려줄 테니 잘 보라’며 자신의 낚싯대를 냅다 가져가 버린 것이다.
……애초에 이게 훈수가 맞기는 한 걸까? 바둑을 예로 들면, 훈수라는 건 옆에서 여기에 둬라 저기에 둬라 하는 게 훈수가 아닌가?
아예 너 답답하니 나와 봐! 하면서 바둑을 대신 둬 버리면, 그건 훈수가 아니라 강탈이라고 부르는 게 맞지 않을까?
‘맞네, 이건 강탈이야!’
한 시점 늦게 알아차린 형우가 망연자실한 표정을 지었다.
“으이구, 정 형! 얼라 낚싯대를 아예 뺏어 가면 어째요.”
보다 못했는지, 노란 모자를 쓴 옆의 아저씨가 혀를 끌끌 찼다.
“내가 알려 주지.”
“예?”
“자네 아까 떡밥 새로 샀지? 제일 비싼 거 같던데. 맞나?”
“아, 맞아요.”
“줘 보게. 내가 대신 해 주지.”
노란모자가 익숙한 손짓으로 떡밥을 조물거렸다.
“일단은 물고기를 끌어모으려면 떡밥을 휙 뿌려 줘야 하는데, 이걸 밑밥이라고 부른다네.”
드디어 상식인이 등장했나 싶어 형우가 눈을 빛냈다.
“이렇게 하는 거라네!”
촤아악!
노란 모자가 형우가 사 온 떡밥을 물가에 휙 뿌렸다.
우글우글!
순식간에 물고기가 몰려들었다. 거기까지는 참 좋았는데……
“방향이 너무 오른쪽 아닌가요? 제 낚싯대는 반대 쪽에 있는데…….”
“어이쿠.”
노란모자가 능청스럽게 뒤통수를 긁적거렸다.
“나이가 들다 보니 손이 떨려서 말일세.”
그런 것 치고는 너무 정확하게 아저씨가 낚시하던 쪽으로 밑밥이 뿌려졌는데?
누가 봐도 고의인데?
형우는 그저 멍한 얼굴로 눈만 끔뻑거렸다.
‘낚시터는 무서운 곳이구나.’
자신 또한 요즘 이런저런 일을 겪으며 나름 기가 세졌다 자부했었는데.
하지만 눈앞에서 이게 옳다 저게 옳다 하는 중년인들의 모양새를 보자니, 나는 그저 우물 안 개구리일 뿐이었구나, 싶은 생각밖에 안 들었다.
‘……하지만, 내가 여기에 기싸움을 배우러 온 건 아니지. 낚시를 하러 온 것도 아니고 말야.’
주목적은 어디까지나 자신을 도와줄 만한 소설 전문가를 만나 슬럼프를 극복하는 것이다.
다행히도 이 대머리 아저씨는 처음 보는 사람임에도 불구하고 자신에게 꽤 살갑게 대해주는 느낌이었다. 이 정도면 사전작업은 충분하리라.
“저기요, 선생님.”
형우는 그대로 옆에서 형우의 낚싯대를 제 것처럼 휘두르고 있는 대머리 아저씨에게 말을 걸었다.
“혹시 이 낚시터 사람들이랑 잘 아세요?”
“그럼, 당연하지. 내가 여기 단골이거든.”
대머리 아저씨가 고개를 끄덕였다. 형우의 표정이 활짝 펴졌다.
“그렇다면 혹시 말이예요.”
형우가 지금껏 묵혀뒀던 본론을 꺼냈다.
“여기 계신 분들 중에 혹시 소설에 대해서 잘 아시는 분이 계신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