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0
꿀꺽.
지저귐의 학생들 150명이 거대한 스크린 앞에 옹기종기 모여앉아 있었다.
“나 티비 나오는 거 처음인데.”
“아니, 다큐 찍는 거 알았으면 화장하고 왔는데. 왜 하필 그때 오냐?”
“넌 비비라도 발랐잖아. 나는…….”
오늘은 조명윤 PD가 감독한 미래 직업 다큐멘터리의 방영 날이었다.
시간은 결코 황금시간대라고는 할 수 없는 오후 4시였지만, 그런 것은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TV에 나온다는 게 어딘가!
“시작한다, 시작해!”
광고가 끝난 후, TV 가득히 한국대학교의 건물이 들어왔다.
대한민국 최고의 소설 아카데미가 오픈했다는 소식을 듣고, 그곳을 찾아간 제작진!
-저기요, 혹시 여기가 소설 아카데미 하는 곳 맞나요?
-아, 여기는 아니고 저쪽으로 가셔야 해요.
-저쪽이라면… 오잉?
하, 한국대학교?
-저, 그러면 아카데미를 하는 곳이 한국대학교 문창과인가요?
-아뇨, 아뇨. 문창과는 아니에요.
-그럼요?
-한국대학교 건물을 빌려서 아카데미를 하고 있는 겁니다.
-정말요?
한국대학교에서 한국대학교 학생이 아닌 사람들이 웹소설을 배운다는 믿기 힘든 말!
과연 사실일까?
그 진위를 판별하기 위해, 제작진은 재빨리 그곳으로 올라가 봤습니다.
다음 장면은 건물 안에서의 이야기였다.
가장 먼저 스크린에 비친 것은, 우는 학생의 모습과, 그런 학생을 못마땅하다는 듯 바라보는 천우희의 얼굴이었다.
-왜 울어?
-소설이 잘 안 나와서요.
-나도 소설을 써 봤으니 그 마음은 알지. 나도 울어도 봤어. 그런데 말야.
-예?
-그 눈물을 다 합쳐서 소설 속에 집어넣어도 이 소설만큼 신파극이 쩔지는 않겠다.
-허억.
-눈물? 울 수도 있지. 근데 네 소설 가져다주면서 울지는 마. 그거 읽는 사람 무시하는 거야.
-정 울고 싶으면, 잘 쓰고 울어. 성공해서 울라고. 패자의 눈물에는 관심 없으니까.
-조준구. 들어가. 그리고 다시 써서 나와. 언제든지 기다려 줄 테니까.
그 다음으로 카메라가 담은 것은 안재욱 반의 모습이었다.
-왜 이렇게 썼죠?
-여기서는 주인공이 강하고 능력 있는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주인공이 강해야 한다? 어째서죠?
-그래야 먼치킨 소설이니까요.
-먼치킨 소설은 그냥 주인공이 강하기만 해서 다 이기면 되는 쉬운 소설이다? 독자들이 그렇게 단순하다는 뜻인가요?
-죄송합니다. 다시 공부하겠습니다.
-구민효 씨는 변호사시죠?
-네.
-제가 알기로는 법에서 제일 중요한 게 기본법과 헌법이라고 들었는데, 맞나요?
-맞습니다.
-그러면 그 헌법은, 단순히 외우고 공부하면 끝인가요?
-아니죠. 끊임없이 정진해야 합니다.
-그렇겠죠. 소설도 마찬가지입니다. 기본이란 건, 단순히 외운다고 끝이 아니죠. 끊임없이 단련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해했습니다.
-그러면 다음 작품 기대할게요. 구민효 씨에게 거는 기대가 큽니다.
마지막은 당연히, 형우의 차례였다.
-다시 한번 읽어 봤어요?
-네. 읽어 봤습니다.
-어때요?
-어, 좀 감정이 과잉된 것 같기도 하고.
-감정이 과잉됐다고요? 이게?
-어….
-난 엄청 재밌는데? 캐릭터 구성 좋고, 시선 확 끌고, 밀 때 밀고, 당길 때 당기고.
-허억.
그 말을 들은 학생이 눈물을 지었다.
인터뷰어가 바로 감격에 찬 학생에게 다가가 물었다.
-김형우 작가님한테 극찬을 받으셨는데? 어떤 기분이세요?
-제가 사실은요, 공부를 못 해서 학창시절 내내 칭찬을 못 받아 봤거든요. 그런데 이렇게 칭찬을 받게 돼서…… 말로 할 수 없을 만큼 기쁩니다.
-혹시 앞으로의 목표가 있을까요?
-칭찬 한 번에 만족하지 않고, 선생님뿐만이 아니라 독자님들도 재밌게 즐기실 수 있는 좋은 소설을 쓰고 싶어요. 누군가가 내일을 기대할 만한, 그런 위대한 소설이요.
그렇게 세 개의 반에 대한 촬영을 마친 카메라맨이 다음으로 찾아간 것은, 스패로우 팩토리의 대표인 지원이었다.
-지금 이 곳에서 벌어지는 일에 대해 설명을 해 주실 수 있을까요?
-물론이지요. 저희 아카데미는 웹소설을 가르치는 것을 주로 하고 있는 국가지원 사업이고요, 최근에는 또 다른 사업을 구상 중에 있습니다.
-또 다른 사업이라면?
-이번에 플랫폼과의 제휴를 통해 그곳에 신작을 연재할 생각입니다. 아마 조만간 자세한 내용이 공개될 테니, 많은 관심 가져 주었으면 좋겠습니다.
지원의 인터뷰를 마지막으로 클로징 멘트가 떠올랐다.
한국대학교 강의실에 모여 오늘도 웹소설을 준비하는 백 오십 명의 학생들!
이 학생들이 언젠가 독자의 마음을 울리기를 바란다!
그렇게, 다큐멘터리는 끝났다.
“오오오!”
그와 동시에, 백 오십 명의 학생들의 눈이 한 학생에게로 향했다.
“인터뷰 멋있다!”
“대단하다!”
“대문호다 대문호!”
모두가 웃는 가운데, 한 명만이 웃지 못하고 얼굴이 빨개진 채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그만 웃어 줘. 부탁이야 애들아…….”
내가 왜 저기서 저런 말을 했지?
한참을 후회하는 정주현이었다.
* * *
밈(Meme).
인터넷에서 시작되어 커뮤니티나 SNS으로 퍼져나가는 유행어나 패러디를 말하는 신조어다.
주로 개그 프로그램 같은 데서 파생하는 경우가 많지만, 꼭 그렇지만도 않다.
“예전에 <마셰코>라는 쉐프들이 경쟁하는 프로그램에서도 밈이 나왔죠.”
“아, 저 그거 알아요. ~를 곁들인, 그거 맞죠?”
“……그거 봤을 때는 별세계 이야기인 줄 알았는데.”
안재욱과 천우희, 형우까지 모두 울상을 지었다.
다큐멘터리가 방영된 이후, 그 셋은 모두 밈화가 되고 말았던 것이다.
“사람들이 나보고 천든램지라더라.”
“말을 좀 심하게 하긴 했죠. 그래도 저보다는 낫잖아요.”
안재욱이 한숨을 푹 쉬었다.
“저보고는 소설 대법관이래요. 소설가가 변호사한테 법에 대해 뭐라고 했다고.”
“좀 웃긴 상황이긴 하죠.”
“……그런 뜻 아닌데.”
하지만 이 둘은 그래도 형우보다는 나았다.
“저는 소설밀땅남이라는데요.”
“헉.”
“누가 제 목소리 편집해서 노래도 만들었던데요. 그것도 힙합으로요.”
대한민국 사람들은 남의 목소리를 악기 삼아 음악을 편집하는 걸 참 좋아한다.
검스트 같은 BJ나 유지석 같은 MC의 목소리가 편집된 것을 보면서 좀 웃기다고 생각했었는데.
“설마 제가 당할 줄은…….”
형우의 목소리에 비트를 깔아 힙합처럼 개조한 ‘오늘의 벌스! 소설밀땅남 참새치’라는 리믹스 뉴튜브의 조회수는 벌써 30만을 넘었다.
“……제 소설 1화 조회수보다 많거든요 그거.”
“이참에 저희 셋이 뉴튜브를 할까요?”
“나쁘지 않은 생각일지도요.”
점점 미쳐가는 세 명의 작가들을 보며, 서지원이 피식거렸다.
“그럴 시간 없으실걸요? 얼마 안 남았잖아요. 스패로우 팩토리에 소설 올리는 날.”
“이제 한 달 남았죠?”
“네. 뉴튜브 촬영도 이미 준비됐구요. 작가님들은 이제 슬슬 어떤 세계관을 고를지 학생들과 함께 의논하신 다음에 소설을 쓰시면 됩니다.”
“학생들만 쓰게 하는 건 아니지?”
“네.”
천우희의 질문에 지원이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래도 멘토와 멘티가 함께 뭔가를 작업한다는 게 훨씬 보기가 좋잖아요. 이목을 끌기에도 좋고요. <기브미더머니>의 프로듀서 합동 공연 같은 느낌이라면 이해가 쉬울까요?”
“이해했어.”
“네. 아무래도 일정이 빠듯하니 세계관 설정 정도는 최대한 빨리 해 주시는 게 좋을 것 같아요.”
지원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누군가가 손을 번쩍 들어올렸다. 안재욱이었다.
“저희는 어느 정도 결정 났습니다.”
“벌써요?”
“네.”
자신만만한 표정으로 안재욱이 씩 웃었다.
“저희는 현대판타지와 전문가물을 기반으로 한 세계관을 선택할 것 같아요. 이름은 <콜센터>라고 부르기로 했습니다.”
“<콜센터>? 이름 좋은데요. 어떤 느낌이죠?”
“이 세계관에는 ‘콜센터’라는 이름의 신이 있습니다. 그리고 이 신은 커다란 열망을 가진 사람들에게 단 한 번, 전화기를 내려주지요. 소원을 이뤄주는 전화기를 말이죠.”
“소원이요?”
“단순히 백만장자가 되고 싶다. 이런 소원은 이뤄주지 않아요. 대신, 이 신은 그 사람을 원하는 장소로 다시 되돌려 줍니다.”
“회귀, 빙의, 환생이군요.”
“네. 이 설정이 있으면 현대판타지의 기본이 되는 회귀, 빙의, 환생을 하나의 세계관으로 엮어낼 수 있습니다. 그런 이름에서 <콜센터>지요. 제가 여태껏 썼던 <아주 양심적인 보험 설계사>라던지 <택견 쓰는 보디가드>도 이 콜센터 덕분에 회귀한 것으로 설정하면 되고요.”
“오오.”
안재욱의 설명을 들은 형우가 박수를 짝짝 쳤다.
“……과연, 안재욱 작가님.”
안재욱의 별명은 설정덕후다.
소설을 쓸 때 무엇보다도 고증과 설정을 중요시하는 사람이라는 뜻이다.
‘그리고 설정이란, 복잡한 것이 아니라 간단한 것일수록 좋다는 거지.’
단순하기에, 가져다 붙이기도 응용하기도 쉽다.
안재욱의 소설 미학이 담겨 있는 설정이었다.
“아, 그거라면 나도 준비했어.”
천우희도 나도 질세라 손을 들어 올렸다.
“나는 판타지 세계관이지.”
“판타지는 하나의 세계관으로 엮기 힘들지 않나요? 작가님마다 다르게 쓰잖아요.”
지원이 지적했지만, 천우희는 그 정도는 이미 예상했다는 듯한 태도로 말을 이어나갔다.
“그래서 우리 세계관 이름은 <영웅의 섬>이야. 하나의 거대한 바다를 놔두고, 수십 수백 개의 섬이 있지. 각자의 세계관은 각자의 섬에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다루는 거야.”
“괜찮긴 한데, 그래서는 세계관이라고 할 수 없지 않을까요? 안재욱 작가님같은 유기적 통일성이 없잖아요.”
“끝까지 들어 봐. 모든 섬들은 다 다르지만, 하나의 설화를 공유해. 그게 <영웅의 섬>이라는 설화인데, 각 섬의 영웅들이 모여 세상을 멸망시키려던 마왕을 퇴치했다는 설화야.”
“설화요?”
“그리고 섬에서 벌어지는 모든 이야기는 그 영웅들이 등장하는 이야기가 될 테지. 영웅이 등장하지 않는 판타지는 세상에 없으니까.”
“아하!”
형우가 또 박수를 짝짝, 하고 쳤다.
“아르고 호 원정대로군요! 맞죠?”
“맞아. 그리스 로마 신화에서 모티브를 얻었지.”
멀티 유니버스의 시작은 어디일까?
누군가는 머블 코믹스라고 말하겠지만, 사실 멀티 유니버스의 최초는 그리스 로마 신화다.
뭉뚱그려 ‘그리스’라고 말하지만, 당시의 그리스는 50개가 넘는 도시국가들의 연합이었다.
그리고 이 도시국가들에 퍼져 있는 수많은 설화와 이야기들을 집대성해서 하나의 이야기로 꾸려낸 것이 바로 <그리스 로마 신화>다.
“……그리고 각국에서 모인 50명의 영웅들이 함께 출항하는 이야기인 아르고 호 원정대 이야기가 존재함으로써 그 모든 이야기는 유기적 통일성을 갖고 하나의 세계관으로 결합되죠.”
“맞아. 내가 예전에 썼던 정령사 시리즈나, <망국의 테라피스트>가 이 <영웅의 섬> 세계관에 속해 있는 것으로 하려고. 당연히 신작도 마찬가지고.”
“좋군요. 그럼 남은 사람은 한 명인데.”
그다음에 지원이 바라본 건 당연히 형우였다.
“형우 작가님은 뭔가 준비하셨나요?”
“저는 아직 고민 중입니다.”
지금 형우는 두 가지 사이에서 고민하고 있다.
<아이언 타이거>를 기반으로 한 헌터-레이드 물의 세계관이거나, 혹은 새롭게 쓸 <권객>을 기반으로 한 무협 소설이거나.
“솔직히 안전하게 가자면 기존에 있는 <포탈 서울>의 세계관을 기반으로 레이드물을 쓰는 게 맞겠지만…… 아무래도 차기작은 무협으로 생각하고 있어서요.”
“……흐음.”
지원이 달력을 확인했다.
“시간이 많지는 않네요.”
웹소설 아카데미 생도들의 모습을 담아 버라이어티 프로그램처럼 구성한 웹타쿠의 <월드 배틀>은 지금 촬영 준비로 한창이었다.
“한 달. 그 정도는 가능하겠어요.”
지원이 계산을 끝마쳤다.
“그 이상은 안 돼요. 다큐멘터리 덕분에 지금 사람들 관심도도 최상인 지금이 적기라고요. 지금을 놓치면, 스패로우 팩토리는 언제 날아오를 수 있을지 장담할 수 없어요.”
오디세우스의 군함은 옳지 않은 바람을 타고 침몰했지만, 좋은 바람을 만난 그의 뗏목은 불과 2주 만에 고향 땅 이타카에 도착했다.
기류라는 것은 그런 것이다.
아주 큰 것도 기류를 잘못 만나면 무너지고, 아주 작은 것도 때를 잘 탄다면 대성한다는 거다.
“그러니 그 안에는 결정해 주세요.”
“물론입니다.”
굳은 얼굴로 형우가 고개를 끄덕였다.
이번 프로젝트는 지금까지 계획했던 것들을 몽땅 한 데로 그러모아 던지는 마지막 한 방이다.
“제 잘못으로 소중한 기회를 날려버릴 생각은 추호도 없으니까요.”
형우가 주먹을 불끈 쥐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