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9
비가 온 뒤에는 땅이 굳는다는 말이 있다.
스패로우 팩토리 아카데미 사업이 딱 그랬다.
“오히려 노이즈 마케팅이 되었다는 거죠.”
찌라시일보의 삽질 덕분에, 스패로우 팩토리에 대한 세간의 관심이 두 배로 늘었다.
조명윤이 공개한 스패로우 팩토리 강의의 무편집 영상 덕분이었다.
흔한 반도의 강의실 사이다
조회수 : 9.2만 추천 3만.
-작품만 사이다인줄 알았는데 인간 자체가 사이다네.
-ㄹㅇ 인자사 그 자체임.
-나도 조별과제 구라친 선배한테 저렇게 했어야 됐는데. 조별과제 3주간 장례식만 5번 간 K대학교 2학년 김준X 보고있냐?
ㄴ뭔 코난임? 가는 데마다 사람이 죽나봐.
-구라를 칠거면 성의라도 있어야지. <탓짜>도 안 봤나 봄. 혼을 담긴 구라를 쳐라, 이 말이야!
어느새 뉴튜브를 타고 영상이 여기저기 퍼졌고, 영상을 보는 사람들마다 모두 현실 사이다에 감동하며 따봉을 아끼지 않았다.
그리고, 그 영상을 본 사람 중에는 C&N의 사장, 윤정아도 포함되어 있었다.
“잘 안 됐단 말이죠?”
윤정아가 다리를 턱 꼬고 물었다. 그녀의 앞에서 한 남자가 고개를 조아렸다.
“죄송합니다. 그쪽에서 녹화본을 가지고 있었을 줄은…….”
그렇게 말하는 남자는, 찌라시일보의 국장이었다.
아니, 사실 국장이라는 칭호도 어울리지 않는다. 기껏해야 직원 다섯 명짜리 삼류 인터넷 신문사에 불과하니까.
“국장님이 그러셨잖아요.”
윤정아가 또각또각, 힐 소리를 내면서 다가왔다.
“확실하다고.”
이틀 전, 이 남자는 윤정아의 사무실로 헐레벌떡 달려와서는 그렇게 말했다.
스패로우 팩토리를 방해할 만한 확실한 건수가 있다고.
“그런데 확실하지 않았네요?”
“분명히 그렇게 말은 했지만…….”
“됐어요. 당신들을 믿은 내가 잘못이지.”
윤정아가 귀찮다는 듯 손을 내저었다. 그 손짓에 따라, 찌라시일보의 국장이 뒷걸음질로 물러났다.
‘크게 기대하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혹시나 싶었는데.’
윤정아가 기분 나쁘다는 표정으로 손가락을 까딱거렸다. 평소라면 아마, 이런 말도 안 되는 계획에 손을 빌려주지는 않았을 것이다.
지금의 자신은, 정상적인 상태가 아니다.
‘스패로우 팩토리…….’
자신의 동생인 윤정식은 세상에서 제일 스패로우 팩토리를 증오하는 사람이 자신인 줄 알겠지만, 그건 천만의 말씀이다.
‘그런 건 아무것도 아니야.’
아들을 잃어버린 자신에게 비한다면 말이다.
윤정아는 어제 미국에서 전해진 소식을 곱씹었다.
-공태준, 아니, 윤태준님에 대해 급히 말씀드릴 게 있습니다.
-말씀하세요.
-……대마를 피우신 것 같습니다. 다행히 해당 주가 대마가 합법인 주라서 법적으로는 문제가 없지만, 알려는 드려야 할 것 같아서요.
-대마요?
-아마 타향살이가 너무 힘드셨던 게 아닌가……. 그런 생각이 듭니다.
대마라니.
하늘이 무너지는 듯한 충격이었다.
-내 아들이, 태준이가 그럴 리 없어.
-그럴 리가 없다고!
자신의 착한 아들. 작가였던 남편을 똑 닮아 한국대학교 문창과까지 들어간 아들.
그런 아들이 이유 없이 비뚤어졌을 리가 없다.
‘그래.’
답은 곧 나왔다.
‘스패로우 팩토리 때문이야.’
아니, 정확히는 얼굴도 본 적 없는 김형우라는 놈을 만나고서부터다.
‘그러니까, 다시 되돌리겠어.’
스패로우 팩토리도, 김형우도.
원래부터 없었던 것처럼 없애버리면.
자신의 아들은 분명히 다시 되돌아오리라.
‘조금만 기다려다오, 태준아. 엄마가 다 알아서 해 놓을게.’
윤정아의 두 눈에서 모성애라는 이름의 광기가 조용하게 불타올랐다.
* * *
하지만, 이런 윤정아의 불같은 분노와는 다르게 지저귐은 좋은 파도에 올라탄 배처럼 순조롭게 앞으로 나아가고 있었다.
“뉴튜브 영상에 다큐멘터리까지! 미쳤나 봐요!”
지원이 기분 좋게 비명을 질렀다.
아카데미를 시작한 이후, 스패로우 팩토리의 직원 셋은 일을 정확하게 삼등분했다.
아카데미 건은 서민홍이 맡고, 스페셜 위크 플랫폼 사업은 혜선이 맡았다. 지원은 그 모든 것을 총괄하면서, 평소에 하던 편집작업을 겸했다.
“지금 사장님이 담당하시는 작가가 몇 명이죠?”
“팔십 명 조금 안 될걸요?”
“세상에.”
혜선이 눈살을 찌푸렸다.
작가 팔십 명.
심지어 그 대부분은 지금 연재 중인 작가다.
‘하루에 80개의 작품을 편집한다고?’
아무리 빠르게 일을 처리한다고 해도, 한 작품에 최소한 15분은 넘게 걸린다.
그렇다면 네 작품을 보는 데에는 한 시간.
팔십 개의 작품을 모두 보려면, 20시간이다.
“사장님 혹시 헤르미온느인가요?”
“예?”
“그…… <해리 포터> 3편 보면 헤르미온느가 타임머신을 가지고 하루를 48시간으로 쓰잖아요. 좀 그러신가 하고.”
“에이, 설마요!”
“그럼 대체 어떻게 편집을 하시는 거예요?”
“열심히 하면 다 된답니다!”
지원이 허허, 하고 웃었다.
‘……보통 그 정도면 열심히 해도 안 될텐데?’
지원은 항상 형우를 보고 괴물 같은 사람이라고 하지만, 혜선이 보기에는 지원 또한 만만치 않은 괴물이었다.
“그나저나, 혜선 씨. 스페셜 위크 사업은 어때요?”
“아, 이미 새로 아카데미 게시판 신설해 놨습니다. 이제 지저귐에서 아카데미생들이 연재를 시작하면, 바로 들어갈 수 있을 거예요.”
“역시 혜선 씨! 완전 마음에 들어!”
혜선에게 엄지를 치켜든 후 혜선이 시선을 돌린 건 서민홍 매니저 쪽이었다.
“다큐멘터리 촬영은 언제부터 시작이죠?”
“사흘 후부터 시작한다고 언질 받았습니다. 물 들어온 김에 노 젓는다나요.”
“그거 좋네요.”
“아, 사장님.”
그때 혜선이 손을 들어 올렸다.
“제가 구상한 게 좀 있는데, 좀 들어보시겠어요?”
“당연하죠! 뭘 구상했죠?”
“이겁니다.”
혜선이 미리 준비해 뒀던 ppt 화면을 띄웠다.
제목은, <스포츠 프로젝트>였다.
“스포츠 프로젝트?”
“네.”
혜선이 고개를 끄덕였다.
“스패로우 팩토리의 플랫폼 스페셜 위크는 미국 코믹스에서 영감을 얻어 운영하는 플랫폼입니다. 단순한 웹소설을 넘어 세계관 사업과 캐릭터 사업을 염두에 두고 있죠.”
“맞아요.”
“이번 프로젝트는 그 부분을 어떻게 더 강조할 수 있을지에 대해 고민하여 구상하였습니다.”
혜선이 PPT 화면을 넘겼다.
거기에는 대한민국의 4대 스포츠 종목인 K리그, KBL, KBO, 그리고 V-리그의 로고가 떠올라 있었다.
“사람들은 스포츠를 좋아합니다. 그러나 좋아하는 것에도 경중은 있죠. 사람들이 가장 좋아하는 건 아무래도 구기종목입니다.”
“맞아요.”
서민홍이 고개를 끄덕였다.
“한때 박태한 선수나 김윤아 선수 덕분에 수영이나 피겨 스케이팅 붐이 일기도 했는데……. 결국 오래가지는 않았죠.”
“왜 그랬을까요? 슈퍼스타도 있고 계기도 있었는데. 왜 결국 구기종목만큼 대중스포츠의 자리를 차지하지 못했을까?”
“흐음……. 쉽게 할 수 없는 종목이라서요?”
지원이 대답했다.
“축구는 쉽게 즐길 수 있지만, 피겨는 그렇지 않잖아요.”
“글쎄요. 축구나 농구라면 그 말이 맞겠지만, 야구는요? 야구는 실제로 즐기는 사람이 그리 많지 않잖아요. 적어도, 수영보다는 적을 것 같은데요.”
야구는 어려운 스포츠다.
축구를 처음 해 보는 사람도 공을 차서 골대에 넣을 수는 있다.
하지만, 야구를 처음 해 보는 사람은 공을 스트라이크 존에 넣는 것조차 버겁지 않은가.
“만약 단순히 생활 스포츠이기에 유명했다면, 수영이나 배드민턴, 테니스 같은 것도 4대리그에 속했을 겁니다. 하지만 그렇지가 않죠.”
“그러면 왜 저 스포츠가 유독 유행하죠?”
“팀 스포츠라 그렇습니다.”
그 말을 들은 서민홍이 아! 하고 박수를 쳤다.
“저도 한때 야구를 즐겨 봤는데, 응원하는 팀이 있으면 그냥 즐거워지더라고요. 직접 해 본 건 캐치볼 몇 번이 전부지만요.”
“네. 그래서 저는 이 부분을 아카데미에 접목해 볼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 봤습니다.”
소설가들을 팀으로 묶은 후, 플랫폼 내에서 경쟁시킨다.
그것이 바로 혜선의 아이디어였다.
“하지만…….”
서민홍이 반박했다.
“그게 과연 될까요? 소설이라는 건 결국 혼자 쓰는 건데요.”
“스페셜 위크가 단순히 소설을 만드는 사업이라면 그랬겠지요. 하지만 스페셜 위크는 세계관 사업이잖아요?”
“그 말은 곧…….”
“네. 팀으로 묶인 작가들은 같은 세계관을 공유하게 될 겁니다.”
“허어.”
서민홍이 숨을 내쉬었다.
사실 작금의 웹소설 시장에도 세계관이라는 것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다.
일단 김용의 무협 세계관은 아예 하나의 장르로 자리 잡았고, 대여점 시절에는 소드마스터와 써클 마법식으로 대표되는 세계관이 존재했다.
머블 코믹스나 디씨 코믹스는 히어로들이 뛰어노는 세계관을 구축하고 있고, <워크래프트의 세계>같은 게임 같은 것도 수십, 수백 개의 파생작을 낳은 거대 세계관으로 기능하고 있다.
하지만, 이것들을 팀으로 묶고 경쟁시키겠다는 발상은 정말이지, 특이하다고밖에 할 수가 없었다.
‘하지만.’
아예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랩퍼들이 팀을 이뤄 경쟁하는 <기브미더머니> 같은 프로그램은 이미 몇 번이나 M사의 최고 시청률을 갈아치웠다.
각자의 컨셉을 가진 각자의 세계관이 경쟁하고, 붙는다. 꽤 매력있는 발상이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합니다. <기브미더머니>가 성공한 이유는 그게 방송되어 시청자들에게 공감을 이끌어냈기 때문이잖아요.”
“그 부분도 생각했습니다. 말이 나온 김에 이제 슬슬 오실 때가 됐는데…….”
그 타이밍에 맞춰, 똑똑- 하는 소리가 들렸다.
“안녕하세요! 오랜만이에요!”
“저는 얼마 전에 왔었지만요.”
문을 열고 들어온 건 MBS의 PD인 조명윤과, 그 아내이자 <달이 빛나는 밤>의 MC였던 제나였다.
서민홍이 흐음, 하는 소리를 냈다.
“다큐멘터리를 이용하자는 건가요? 물론 괜찮은 생각이지만, 다큐멘터리는 기껏해야 한 화잖아요. 그걸로는…….”
“지속성이 떨어지죠. 알고 있어요.”
혜선이 말을 이어나갔다.
“하지만, 뉴튜브는 어떨까요?”
“뉴튜브요?”
“네. 요즘 <구라 사나이>나 <모니 게임> 등, 뉴튜브 컨텐츠도 엄청나게 뜨잖아요?”
세계관 프로젝트에 경쟁 시스템, 거기에 뉴튜브까지. 혜선은 정말 이 프로젝트에 모든 것을 다 쏟아부을 생각이었다.
“아이디어 자체는 좋아요. 하지만.”
지원이 물었다.
“그걸 해 줄 뉴튜버가 있을까요? 우리끼리 하기에도 인지도가 부족할 텐데요.”
“어머 선생님.”
제나가 손을 살짝 내저었다.
“제가 왜 왔다고 생각하세요? 설마 그냥 남편 따라 데이트 나온 줄 알았어요? 아, 물론 그것도 있기는 한데, 그것만은 아니라고요.”
그 말을 들은 지원의 고개가 갸웃, 꺾였다.
“제나 님이 뉴튜브를 하시나요? 들어본 적이 없는 것 같은데…….”
“본업이 아니라 취미라서, 가면 쓰고 하거든요.”
“가면이요?”
“이거예요.”
가방을 뒤진 제나가 가면 하나를 꺼냈다.
“저건……?”
하얀색 해골을 길쭉하게 늘려 놓은 듯한 괴기스러운 스크림 가면.
웹소설 종사자라면, 모를 수가 없는 가면이다.
“설마, 제나님이?”
“맞아요!”
제나가 그대로 가면을 뒤집어썼다.
그리고 곧, 익숙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반갑습니다, 여러분! 웹타쿠입니다아!”
대한민국 웹소설 리뷰 채널에서 늘 세 손가락 안에 꼽히는 초대형 뉴튜버 웹타쿠.
‘왠지 모르게 목소리 연기에서 전문성이 느껴진다 했더니만…….’
그 정체는, 전직 가수이자 성우.
MBS <달이 빛나는 밤>의 메인 MC, 제나였던 것이다.
“이상, 여기까지가 제가 구상한 프로젝트입니다.”
그 말을 끝으로, PPT는 끝났다.
‘성공할 수 있을까?’
지원의 머릿속이 팽팽 돌았다.
하지만, 고민은 길지 않았다.
얼핏 봐도, 혜선이 이 프로젝트를 구상하면서 얼마나 진땀을 뺐을지 예상이 가기 때문이었다.
‘팀원이 이렇게 열심히 노력한 일에 퇴짜를 놓는다면, 리더로서의 자격이 없지.’
그렇게 생각하며 지원은, 호쾌하게 말했다.
“까짓거 한번 해 보죠.”
스페셜 위크, 지저귐에 이은 스패로우 팩토리의 세 번째 프로젝트. ‘월드 배틀’의 시작이었다.
* * *
“월드 배틀이요?”
그 이름을 들은 형우가 피식 웃었다.
“매니저님, 왜 하필 월드 배틀이에요?”
“그게 멋있잖아요!”
서민홍이 대답했다.
처음에는 팀 배틀이나, 아니면 혜선이 처음 구상한 ‘스포츠 프로젝트’ 등의 이름을 쓰려고 했지만, 서민홍이 극구 반대했다.
“세계관끼리의 싸움이잖아요! 월드 배틀로 하죠!”
좀 유치하지만, 그만큼 멋있다.
합체 변신 로봇 같은 거다.
로망을 자극한다는 뜻이다.
“형우 작가님은 제목이 마음에 안 드세요?”
“아뇨. 좀 유치하지만, 그래도 기억에 잘 남고 좋네요.”
형우가 고개를 끄덕거렸다.
“월드 배틀이라…….”
세계관별 팀 배틀이라고 했지만, 아마도 그 내용은 세 개 반의 싸움이 될 것이다.
“나도 마음에 들어.”
“저도요. 재밌겠는데요?”
천우희와 안재욱도 동의했다. 특히 천우희는 아예 만면에 웃음까지 빙그레 띤 채였다.
‘형우 녀석을 이겨 볼 기회잖아?’
형우를 만난 이후로 맨날 지기만 해서 자존심이 잔뜩 상해 있는 천우희에게는 이만한 기회가 또 없었던 것이다.
“그나저나, 상품은 뭐죠?”
“아, 마침 그 이야기 하려고 했어요. 스폰이 들어왔거든요.”
“스폰? 어디서요?”
“의자 브랜드에서요. 고급 의자를 지원해 주겠다고 하더라고요.”
보통 의자회사가 스폰을 가장 많이 하는 것은 프로게임팀이다. 하루 종일 의자에 앉아 있는 이들이기에, 의자의 노출도가 높기 때문이다.
“작가도 크게 다르지 않으니까. 그럴 만하네.”
“네. 일단 150명 전원에게 20만 원 상당의 고급 의자를 제공하고, 그 중 뛰어난 사람들한테는 300만 원짜리 의자를 상금과 함께 제공하기로 했어요.”
150명에게 제공되는 노멀 타입 의자만 해도 3천만 원에 달하는 비용이다.
세상이 얼마나 스패로우 팩토리를 좋게 보고 있는지 알 수 있는 부분이었지만, 형우의 관심을 동하게 한 건 마지막 부분이었다.
“300만 원짜리 의자요?”
형우가 슬금슬금 서민홍에게 다가와 물었다.
“그거 혹시, 저희도 받을 수 있는 건가요?”
서민홍이 기다렸다는 듯이 활짝 웃었다.
“그럴 것 같아서 미리 가져왔는데. 보시겠어요?”
“당연하죠!”
형우가 펄쩍 뛰었다.
다른 것에는 심하다 싶을 정도로 돈을 아끼는 형우였지만, 글에 관련된 도구만큼은 언제나 돈을 아끼지 않고 펑펑 써댔으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