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환상을 쓰겟다-159화 (159/200)

#158

따악, 따악.

지저귐의 강의 준비실에서는 때아닌 바둑두는 소리가 방 가득 울려 퍼졌다.

“소설을 쓴다는 건 어떤 면에서 보면 바둑을 둔다는 것과 비슷하다고 생각합니다. 작가와 독자가 서로의 일수를 교환하는 것이니.”

“듣고 보니 그런 것 같기도 합니다.”

서민홍이 흑돌을 귀에 놓으며 말을 이었다.

“작가의 수가 다 읽히면 재미가 없고, 또 아예 읽히지 않아도 재미가 없지요.”

“그래서 말인데, 아카데미 사업은 어떻습니까, 서민홍 매니저님?”

“셋 다 아주 잘하고 있지요.”

서민홍의 말에, 남자가 고개를 끄덕였다.

“참 놀랍더군요. 같은 작가인데, 세 명이 가르치는 스타일이 모두 다르니 말입니다.”

“스타일이요?”

“예. 마침 바둑을 두고 있으니 바둑으로 비유를 해 보자면…….”

잠시 고민하던 서민홍이 적절한 비유를 떠올렸다.

“천우희 작가는 마치 조훈현 같습니다.”

“제비 조훈현 말이지요?”

한국에서는 빠른 것을 비유할 때 ‘토끼 같다’라고 하지만, 옆나라 일본에서는 ‘제비 같다’는 말을 조금 더 많이 쓴다고 한다.

“조 국수는 아무래도 일본에서 바둑을 배웠으니까요.”

“하지만 일본 바둑과는 완전히 스타일이 달랐죠.”

당시 일본의 바둑은 포석의 위치와 집의 모양을 중요시하는 정석적인 기풍이 대세였다고 한다.

“하지만 조 국수는 정석을 잘 지키지 않았죠.”

정석을 무시하고 상대를 혼란에 빠트리는 변칙적이고 빠른 바둑.

그렇기에 조훈현은 제비라는 별명을 얻었다.

“그런 부분에서, 천우희 작가는 조 국수를 좀 닮았습니다.”

“어느 점에서 말입니까?”

“독자의 뒤통수를 쳐야 한다고 그러더군요.”

“허허, 뒤통수요?”

남자의 웃음소리를 들으며, 서민홍은 천우희의 수업내용을 떠올렸다.

-독자들이 A만 생각하게 만든 뒤, B를 쓰는 거야. 완전히 뒤통수를 때리는 거지.

-뒤통수요?

-어. 매번 치라는 게 아니고, 한두 번이면 충분해. 독자들은 한 번만 뒤통수를 맞아도 ‘이번에도 갑자기 전개 꺾이는 거 아냐?’라면서 긴장하면서 소설을 읽게 되거든. 그것 또한 또 다른 재미지.

-그러니까, 말도 안 되는 전개를 해라?

-무슨 소리야! 내 말은 변수를 만들라는 거지, 소설을 망치라는 게 아냐! 독자가 결코 예상하지 못한 게 한 번은 필요하다는 거지!

그렇기에 그녀는 센스있는 학생들을 뽑았다.

-누군가를 속이는 건 머리가 아니라 센스로 하는 거거든. 완전히 판을 뒤흔들어서 이게 맞는지 저게 맞는지 구분할 수도 없이 만들어야 해.

그 말은, 그야말로 조 국수의 바둑을 닮았다.

서민홍의 말을 들은 남자가 허허 웃었다.

“그거 괜찮은 비유로군요. 조훈현이 있다면 당연히 이창호도 있겠지요?”

“물론입니다.”

조훈현의 뒤를 이은 슈퍼스타 이창호. 그는 조훈현의 제자였지만, 기풍은 조훈현과 정반대였다.

더없이 정석적이고, 완벽주의자다.

“그런 의미에서 보자면…… 안재욱 작가님이야말로 이창호에 비견될 수 있겠군요.”

변칙을 중요시하는 천우희와 다르게, 안재욱이 중요시하는 건 정석이다.

-독자들이 100을 생각한다면, 저희는 101, 102만 하면 충분합니다.

-그렇게 꾸준히, 매화마다 독자들이 원하는 것보다 조금 더한 즐거움을 주는 거지요. 뭔가를 크게 할 필요도 없고, 소설에서 도박을 할 필요도 없지요.

-조금씩, 계속 넘어서면 되는 겁니다.

남자가 호오, 하는 소리를 냈다.

“그야말로 이창호군요.”

변수를 중시하던 조훈현은 크게 이기고 크게 지는 경우가 많았다. 크게 차이가 날 때는 열 집 넘게 차이가 날 때도 있었으니.

하지만 이창호는 정 반대로, 이길때는 작게 이기고 질 때도 작게 지는 사람이었다.

“그렇기에 꾸준할 수 있었고요.”

정석과 기본이 가진 힘은 꾸준함이다.

그래서 안재욱은 이해력 좋은 사람들을 자신의 학생으로 선별했다.

-정석은 쉽지 않습니다. 오히려 정석이기에 어렵지요. 똑똑해야만 하는 겁니다.

그래서 이창호다.

“그리고 마지막은 역시.”

“이세돌이지요.”

조훈현과 이창호도 위대한 바둑기사들이지만, 유명함으로 따지자면 이세돌에게 못 미친다.

구글의 최첨단 AI 알파고를 상대로 승리한 한 번의 대국이 교과서에 남겨질 정도로 위대한 승리였던 탓이다.

“조훈현이 변칙적이고 이창호가 정석적이라면, 이세돌은…….”

“중후하지요. 힘이 있습니다.”

조훈현이 초반부터 판을 흔들고, 이창호가 끝까지 자신의 페이스를 유지했다면,

이세돌은 초반에 쌓아둔 이득을 바탕으로 상대에게 적극적으로 힘 싸움을 거는 기풍을 선호했다.

형우가 그랬다.

-체력을 키워요! 글에는 체력이 필요합니다!

-일단 몸을 완성해야 해요. 글은 그다음입니다! 기본이 구질구질한 탑은 결코 높게 올라갈 수 없는 법이니까!

지난 2주, 형우는 학생들의 체력만을 길렀다.

그리고 이제 와서야 글을 시작했다고 들었다.

“어느 정도 기본이 쌓이고 힘이 비축되었으니, 이제 강하게 때리겠군요.”

“그렇겠지요.”

서민홍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나저나, 너무 세게 때리지 않아야 할 텐데 말이죠.”

“설마 그러겠습니까.”

함께 바둑을 두던 남자, 조명윤이 허허 웃었다.

“들으면 들을수록 저도 관심이 확실하게 동하긴 하네요. 마침 저희가 다큐멘터리를 기획하고 있기도 하고요.”

MBS의 PD 조명윤이 오늘 스패로우 팩토리의 사무실을 찾아온 이유는, MBS에서 새로 기획한 다큐멘터리의 촬영 때문이었다.

“미래 직업을 주제로 5부작 정도를 구성할 계획인데, 마침 짹카데미 소식이 들리지 뭡니까. 형우 작가님이랑 서지원 사장님과는 예전에도 인연이 한번 있기도 했고요.”

“저희는 언제든지 환영입니다. PD님만 괜찮으시다면요.”

“제가 안 괜찮을 리가 있겠습니까? 오히려 제가 부탁드리고 싶은 부분이지요. 그래서 말인데. 지금 견학해봐도 괜찮겠습니까?”

“어느 반으로요?”

“다 구미가 당기지만 아무래도…….”

조명윤이 씩 웃었다.

“예전 인연도 있겠다. 김형우 작가님 반을 먼저 보고 싶네요. 물론 그 전에 바둑은 끝내야겠지만요.”

“아, 바둑말인데…….”

서민홍이 우물쭈물거렸다.

“이미 끝났습니다. 제가 이겼거든요.”

“에이, 그게 무슨…….”

그대로 바둑판을 본 조명윤의 눈이 크게 커졌다.

어느새 대마가 몽땅 죽어 있었던 것이다.

“바둑…… 잘 두시는군요.”

“자랑은 아니지만 초등학생 때까지는 바둑기사가 꿈이었답니다.”

서민홍이 헤헤, 하고 웃었다.

* * *

“저희 과제 있었죠?”

“네에!”

“하하하, 혹시 누가 대신 써 주고, 그런 건 없죠?”

“없어요!”

학생들의 대답을 들은 형우가 흡족하게 웃었다.

‘역시, 체력부터 기르는 게 맞았어.’

소설을 쓰기 위해 가장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 첫째는 당연히 소설을 쓰고자 하는 마음가짐이다.

‘그리고 여기 모인 사람 중, 그런 마음가짐이 안 된 사람은 없겠지.’

그러면 두 번째는 무엇인가?

영감? 번뜩이는 센스? 열정?

다 틀렸다.

‘체력.’

체력이 없다면 아무리 센스가 있어도 집중력이 흐트러진다.

집중력을 잃는 시간이 많아질수록, 열정 또한 식어버리기 일쑤다.

그래서, 형우는 지난 2주간 이들에게 체력을 주었다. 글을 쓸 수 있을 정도의 기본 체력.

“어땠어요? 배운 게 효과가 있던가요?”

“끄응…….”

학생들이 떨떠름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거렸다.

솔직히 말하면, 도움이 엄청 많이 됐다.

‘그런데…… 인정하기는 죽어도 싫다!’

체력단련이 효과가 있다는 걸 인정해버리면, 앞으로도 그걸 계속해야 한다는 뜻이었으니까.

‘그랬다간 진짜 죽을지도 모르는데.’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을 때, 형우의 목소리가 다시금 강의실에 울려 퍼졌다.

“아 맞다. 혹시 과제 안 하신 분 있으면 손 들어 보세요.”

슬금슬금.

여기저기서 손이 듬성듬성 올라왔다.

“흐음, 다섯 명이 안 했군요.”

총 50명 중 다섯 명. 그리 많지 않은 숫자였지만.

그들의 얼굴을 바라보는 형우의 얼굴은 그다지 좋아 보이지 않았다.

그 험악한 분위기 속에서, 누군가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죄송합니다. 다음에는 꼭…….”

“‘다음에는 꼭’이라뇨?”

형우가 그대로 강의실 문을 가리켰다.

“나가세요.”

“예?”

“다음 수업은 안 나오셔도 됩니다.”

형우의 손가락 끝은 단호했다.

숙제를 안 해온 학생들이 항변했다.

“저, 숙제를 안 한 건 정말 죄송하지만, 진짜로 시간이 없었습니다. 저희 할머니가…….”

“그래요, 아주 중요한 일이었겠지요. 하지만, 중요한 일을 했다는 게 모든 일의 면죄부가 될 수 있는 건 아닙니다.”

사람마다 사정이 있는 거야, 당연한 일이다. 숙제를 못 해올 수도 있다.

“바쁜 일이 있었다는 건 유감이지만, 숙제가 아닌 다른 걸 택했다면 적어도 그 책임은 져야 할 겁니다. 오늘 뭘 배울지 알고 계시나요?”

“……모르겠습니다.”

“그럼 알려드리죠. 오늘 수업은 여러분이 쓴 소설로 할 겁니다. 자신의 아이디어를 보여 주고, 다른 사람의 아이디어를 듣는 시간이죠. 하지만, 과제를 해 오지 않은 여러분은 어떤 것도 내밀 것이 없군요.”

완전 도둑놈 심보가 따로 없는 행동이 아닌가?

“회비 없이 계모임에 들 수는 없는 법이지요. 그러니까…….”

형우가 다시 한번 바깥쪽을 가리켰다.

“나가세요. 다섯 명 모두, 당장.”

* * *

“미친!”

스패로우 팩토리에서 쫓겨난 다섯 학생이 옹기종기 모여 분통을 터트렸다.

“아니, 숙제 한 번 안 해올 수도 있지, 그걸 가지고 쫓아내? 내가 어떻게 붙었는데!”

“맞아요, 맞아!”

“게다가 지금까지 달리기만 시켜놓고 글을 쓰라니, 이거 뭔가 잘못돼도 단단히 잘못된 거 아냐? 국가지원사업이라며?”

“야, 장윤태. 너는 왜 아무 말도 없어? 네가 괜히 쓸데없는 말 해서 쫓겨난 거 아냐?”

네 명의 시선이 귀에 이어폰을 꽂고 있는 장윤태를 향해 내리꽂혔다. 그제야 장윤태가 이어폰을 벗어들었다.

“아, 편집 잘 됐나 확인하고 있었어요.”

“편집?”

장윤태가 휴대폰을 내밀었다.

-저희 할머니가…….

-당장 나가세요.

화내는 형우의 목소리와 질문하는 장윤태의 목소리가 교묘하게 짜깁기되어 애매하게 편집되어 있었다.

“……이걸 언제 찍은 거야? 아니, 왜 찍었어?”

“습관이라서요. 왠지 화낼 것 같길래.”

장윤태가 가슴을 쭉 펴며 말했다.

“고딩일 때는 저한테 뭐라고 하는 교사 한 명 골로 보낸 적도 있다구요.”

“교사를…… 보내?”

“네. 과잉징벌이라던지 폭력 교사 이런 거로 묶으면 그냥 골로 가거든요. 그래서 말인데…….”

장윤태가 소곤거렸다.

“이 사업도 국가지원사업이잖아요? 그걸 빌미로 해서 그냥 보내버리죠? 국가지원사업인데 학생들을 멋대로 쫓아낸다거나, 소설 아카데미인데 군대처럼 달리기나 시킨다거나. 아, 이거 좋네요. 국가지원 아카데미, 군대인가 교육의 장인가?”

“그, 그래도 되는 거야……?”

“그럼 당하고만 있을 거예요? 우리가 쫓겨났으니, 저 인간들도 쫓아내야죠.”

장윤태가 기분 나쁜 표정으로 속삭였다.

“나락 보내자고요.”

그 이야기를 듣는 나머지 학생의 표정도 점점 심각해지기 시작했다.

* * *

찌라시뉴스 1보.

<스패로우 팩토리 아카데미 내부 고발 등장! 이곳은 군대인가, 문학의 장인가?>

최근 큰 기대를 이끌며 시작했던 스패로우 팩토리 아카데미 ‘지저귐’의 내부를 고발한 녹화본이 터지며 큰 논란에 휩싸였다.

학생 : 저희 할머니가 아프셔서요.

지저귐 강사 : 하하하.

학생 : 아니, 할머니가 …….

지저귐 강사 : 할머니가 소설 대신 써 주시는 거 아니잖아요?

할머니가 아프다는데도 오히려 비웃고 윽박지르는 모습에서, 저희는 심각한 충격을 느꼈습니다.

이 제보를 접수한 저희 찌라시일보의 기자는 그대로 해당 학생을 향해 인터뷰를 요청했습니다.

J씨 : 저희 할머니가 아프셔서 숙제를 못 했거든요. 그런데 그걸 빌미로 나가라는 거예요. 아니, 숙제를 안 한 건 잘못이지만. 국가사업이잖아요. 게다가, 그 저번 주랑 저저번 주도 계속해서 소설은 안 가르치고 달리기만 시키더라고요. 달리기에서 낙오되면 기합을 주고요.

K씨 : 안에서는 다른 소문도 있어요. 이게 지원금만 타 먹는 날림사업이라 학생들을 죄다 떨어트리는 거라고 …….

기합과 억압, 그리고 어쩌면 사기까지.

이것이 한국 웹소설의 본모습일까요?

이상, 찌라시일보 김조작 기자였습니다.

댓글

-뭐야, 나 여기 떨어졌는데 완전 개판이네.

-참새치 작가 인성 맞음? 패드립까지 치네.

-트리위키에도 논란 떴음, 팩트 맞는 듯.

ㄴ트리위키가 어떻게 팩트임?

-이거 이럴 리가 없는데; 참새치 작가님 절대 이러실 분 아님.

ㄴ댓글알바비 얼마 받냐?

“우와…….”

그 모습을 지켜보던 조명윤이 중얼거렸다.

“목소리 편집점이 아주 예술인데요? 이거 만든 사람 우리 방송사 스카웃해야겠어?”

“농담이라도 그런 말은 하지 마세요. 에휴.”

지원이 관자놀이를 슬슬 문질렀다.

“때 맞춰 온 피디님이 원본 녹화를 따뒀으니 망정이지, 이것만 나갔으면 진짜 일 커질 뻔했네요.”

“그러니까요. 슬슬 새로운 댓글이 달릴 때가 됐는데.”

그대로 댓글을 새로고침했다.

-야 이거 해명 떴는데? 저거 말 짜깁기한 거임.

-ㅇㅇ나도 봤음. 여기 수강생 말 들어 보니까 숙제 안 해서 나가라고 한 건데, 교묘하게 짜깁기해서 학생한테 패드립한것처럼 바꾼거.

-그니까 할머니 핑계로 조별과제 무임승차하려다가 일침맞고 쫓겨났다는 뜻이지?

ㄴ와 이해 못하고 있었는데 이 댓글 보니까 정신 확듬. 제정신이냐?

ㄴ보나마나 할머니 아픈 것도 구라일 듯.

ㄴ애초에 갑자기 할머니 나오는 것부터 이상했다.

ㄴ님 아까 욕하시던 분 아님? 숲속친구들보소.

ㄴ어허.

-저거 J씨 누군지 밝혀졌는데 SNS 닫았음ㅋㅋ

ㄴ예전에 교사 억까해서 옷 벗게 한 사람이라더라. 역시 사람 고쳐쓰는 거 아님!

ㄴ그것도 재수사 들어가야하는거 아닌가? 저런 애들은 깜빵 가야지.

ㄴ스패로우팩토리에서 고소하지 않을까?

고소는 이미 했다.

이미 변호사에게 자료를 보냈으니, 조만간 정식으로 고소장이 제출될 것이다.

“그쪽에서는 뭐랍니까?”

“한 번만 봐달래요. 고양이가 썼다나.”

“고양이가요? 허어….”

조명윤이 혀를 찼다.

“법정에서는 그렇게 말하지 말아야 할 텐데요. 분명 법정모독죄가 추가될 테니.”

“그러게 말이에요.”

그 어이없는 변명을 다시금 떠올린 지원의 표정에 비웃음이 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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