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7
아카데미 ‘지저귐’, 소위 짹카데미의 첫 번째 수업이 끝난 것은 7시가 다 되어서였다.
“우와, 안재욱 작가님 멋있었지.”
“배운 것도 진짜 많은 것 같아.”
가장 먼저 건물에서 나온 건 안재욱이 담당하는 C반 학생들이었다. 셋은 캔커피를 홀짝거리며 오늘 수업에 대해 사담을 나눴다.
“민효 언니는 어땠어요?”
“저요?”
“네. 오늘 수업 중에 범죄 소설도 조금 배웠잖아요? 언니 변호사잖아요!”
“으음, 저는 범죄 소설 좋아해요.”
“고증 잘 된 것들 말하는 거죠?”
“아뇨. 고증이 별로여도 재미만 있으면 상관없다고 생각해요.”
지금 떠오르는 건 군대 드라마인 <태양의 후회>다. 모두가 고증이 별로라고 대차게 욕했지만, 막상 군인들도 재밌게 보던 드라마가 아닌가.
“변호사가 보는 범죄 드라마라고 뭐 다르겠어요. 말이 되면 신기하게 보고, 말이 안 되면 그것대로 웃으면서 보면 되는 거죠.”
“오오.”
따라오던 두 명의 여학생이 감탄 어린 시선을 보냈다. 길을 걷는 내내, 두 학생의 질문은 계속해서 이어졌다.
“변호사인데 여기 다닐 시간이 있어요? 짹카데미 두 달 넘게 하잖아요?”
“이번에 사무실 옮기는 김에 잠깐 공백기가 생겨서요. 예전부터 소설은 꼭 한번 써 보고 싶었거든요.”
“아하, 웹소설 작가로 부캐 키우시는구나.”
부캐. 서브 캐릭터의 준말로, 본업을 놔둔 채 부업으로 크리에이팅을 하는 사람을 일컫는 신조어다. 뉴튜브를 하는 의사나, 패션 블로그를 하는 회사원 등이 여기에 해당된다.
“웹소설 쓰는 변호사라니, 멋있어요.”
“형사물이나 법조물 쓰면 잘 쓰실 것 같아요!”
“그런가요?”
선망의 시선으로 자신을 쳐다보는 두 여학생을 보며, 구민효가 캔커피를 홀짝 마셨다.
“잘 봐주셔서 고맙긴 하지만…… 저도 소설을 써 보는 건 처음이라 잘 모르겠네요.”
“언니는 당연히 잘할 거예요! 그 어려운 사법고시도 패스했잖아요? 거기에 비하면 웹소설쯤이야!”
“맞아요, 사법고시 붙으려면 막 하루 세 시간 자고 공부만 해야 한다던데? 그것보다는 소설이 좀 더 쉽죠? 오늘 수업도 그렇게 어렵지 않고….”
“으음…… 수업이 쉬웠나요?”
구민효가 고개를 갸웃했다.
“전 어렵던데?”
“에이, 어렵긴 뭐가 어려워요? 대충 들어도 다 알겠던데? 은주야, 안 그래?”
“어, 어엉. 나도 쉬웠어.”
“으음, 그러면요…… 저쪽 한번 볼래요?”
구민효가 학생들의 뒤쪽을 가리켰다.
B반, 그러니까 천우희 반의 학생들이 강의동에서 비척비척 걸어 나오고 있었다.
“나 내일…… 나올 수 있을까?”
“차라리 군대를 한 번 더 갈래.”
“이게 무슨 아카데미야?”
퀭한 얼굴. 벌벌 떨리는 손.
여섯 시간 사이 육 년은 늙은 듯한 얼굴.
마치 영화 <미이라>의 한 장면 같은 그 행렬을 바라보며, 두 여학생이 입을 쩍 벌렸다.
“쟤네들 천우희 선생님 반 애들이잖아?”
“대체 무슨 일이…….”
“치열한 하루를 보냈겠지요. 저 친구들한테 가서 웹소설이 얼마나 어렵냐고 물어보면, 사법고시고 외무고시고 뭐고 웹소설이 세상에서 제일 어렵다고 대답할 거예요. 그리고 그게.”
구민효가 캔커피를 쓰레기통에 집어 던졌다.
“열심히 한다는 거구요.”
태앵-!
캔이 빗나갔다. 손이 떨린 탓이다.
오늘 하루종일 수업을 들으면서, 단 한 글자도 놓치지 않기 위해 필기를 해댔으니까.
대충 들어도 알 것 같은 수업이었다고?
‘대충 들으니까 쉬워 보인 거겠지.’
구민효가 느끼기에, 수업은 쉽지 않았다.
두께가 두껍고, 생각할 것도 많았다.
그러니, 수업이 쉬운 게 아니다. 그냥 저들이 쉽게 들었을 뿐이다.
“……성공한 사람들에 대한 가장 큰 오해는 힘든 일을 해서 성공했다는 생각이라고 하더군요.”
구민효의 생각에는 그 반대다.
힘든 일을 해서 성공한 게 아니라, 어떤 일이든 힘들게 했기에 성공한 것이다.
“무슨 말을 하는지 대충 알겠죠?”
두 여학생을 바라보며, 구민효가 홱 돌아섰다.
또각또각-
규칙적인 하이힐 소리가 내리막길에 울려 퍼졌다.
* * *
“죽겠다.”
천우희 반의 학생, 조준구가 중얼거렸다.
“야 너… 첫 문단 썼냐?”
“아니. 첫 줄도 못 썼다.”
“……나도.”
천우희의 첫 시간은 간단했다
첫 문단 쓰기.
-첫 문단이 잘 되면 이백 화도 쓸 수 있어! 하지만 첫 문단이 구리면 삼십 화도 안 돼서 머리털을 쥐어 뽑게 될걸?
-소설이 음식이라면 첫 문단은 메뉴판이야! 음식 맛이 아무리 개판이어도 일단 메뉴판에서 그럴듯하면 시키기는 하는 법이지!
-낯선 천장이다? 오냐, 낯선 천장 보여 줄까? 이따위로 도입부를 시작하면 누가 보겠냐!
-제국력 3811년 쓴 새끼 누구야? 3611년엔 무슨 일 있었는지 말할 수 있으면 봐준다. 아무 일도 없었다고? 너 인마, 체호프의 총이라고 알아?
-총이 나왔다면 반드시 쏴야 한다는….
-그걸 아는 놈이 이렇게 써! 내가 체호프가 아닌 걸 다행으로 여겨! 나한테 총이 있었으면 지금 바로 쏴 버렸을 테니까!
그렇게.
첫 문단을 쓰고 지우고 쓰고 지우고 쓰고 얻어맞고 쓰고 찢기고 쓰고 지우고 쓰고 지우고 또 썼다. 마치 끝없는 마라톤 같았다.
“저기 C반 애들 간다.”
“안재욱 선생님네 반?”
“……쟤네들 표정 엄청 좋아 보이네. 저기는 좀 편하게 수업하나 봐.”
“아닌 것 같던데.”
조준구가 고개를 저었다.
“아까 화장실 가는 김에 옆 반 슬쩍 바라봤거든. 절반은 엄청나게 열심히 필기하고 있고, 절반은 피식거리면서 핸드폰이나 두드리고 있더라.”
“뭐야, 첫날부터 포기야?”
“포기가 아니라 더닝크루거겠지.”
더닝 크루거 효과.
사람의 자신감과 지식량을 나타내는 그래프로, 흔히 ‘학사가 석사보다 더 전문가처럼 군다.’라는 말로 요약할 수 있다는 뜻이다.
조금 더 삿되게 요약하자면…….
“쥐뿔도 없는 놈이 제 잘난 줄 안다는 거지.”
“그렇군.”
조준구가 고개를 끄덕였다.
“약간 스쿼트 같은 수업인가 보네.”
“스쿼트?”
“응. 스쿼트가 진짜 자세 개판으로 하면 의외로 엄청 편하게 할 수 있거든. 근데 정자세로 조지면 두 세트만 해도 허벅지가 터져나가지.”
쉽게 들으면 쉽지만, 어렵게 들으면 어려워지는 수업. 그게 안재욱의 스타일인 모양이었다.
“그에 비하면 우리는 뭐랄까…….”
“……마라톤이지.”
근육 자극이 목적인 근력운동은 정자세로 할수록 힘이 많이 들어가는 식으로 설계되어 있다.
하지만 마라톤 같은 기록 종목은 그렇지 않다. 어떤 식으로 뛰든, 일단 42.195km를 뛰면 힘들다.
요령 따위는 생각할 수도 없다. 아니, 오히려 요령을 피우면 더 힘들어진다. 이런 종목에서 정자세란 가장 몸에 부담이 적게 가는 자세이므로.
천우희의 수업이 딱 그런 스타일이었다.
“그래도 준구야.”
“응?”
“우리 존나 열심히 한 것 같지 않냐? 솔직히 우리보다 더 열심히 쓰는 놈 세상에 드물걸?”
“그건 그래.”
준구가 고개를 끄덕였다.
“이대로 두 달 버티면 진짜 소설에 통달할 것 같은 느낌이 있지.”
“고생 끝에 낙이 온다잖냐.”
“맞아. 이렇게 큰 고생 했는데 낙 안 오면 좀 억울하거든요? 혹시 우리보다 더 열심히 한 사람들이 있다면 또 모르긴 하겠다.”
“에이, 그게 말이 되냐? 걷는 것도 지금 겨우 걷는데. 우리보다 더 열심히 하려면 걷지도 못할 정도로…….”
그렇게 말하는 순간.
“으어어, 으어어어어.”
“히이익!”
강당의 문을 열고 뭔가가 네 발로 기어 나왔다.
조준구의 눈이 경악으로 물들었다.
‘에, 엑소시스트?’
하지만 자세히 보니 뒤집어지지는 않았다.
‘뭐야, 그냥 평범한 사족보행이잖…… 응?’
그게 평범할 리가 없지 않은가.
인류가 직립보행을 시작한 지 어언 360만 년인데, 대체 왜 저 많은 사람들이 기어 나온다는 말인가?
그 뒤로도 행렬은 이어졌다.
기어가지는 않았지만, 비척거리는 사람.
걸을 때마다 신음을 내뱉으며 꿈틀거리는 사람.
그 움직임에는 인간이 설립한 유기적인 질서라는 것이 완전히 결여되어 있는 것처럼 보였다.
표정이나 움직임이나 행동이나, 인간답다기보다는 불쾌한 골짜기의 어느 지점에 캠핑을 하고 있는 듯한 모습.
조준구는 그중에서 아는 얼굴을 발견했다.
“저기요!”
면접 날 자신의 옆에 앉아 있던 남자, 정주현이었다.
“대,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거예요? 무슨 수업을 했기에?”
“……데미…… 안….”
“헤르만 헤세의 데미안이요?”
“매…… 가…… 다리….”
“매디슨 카운티의 다리?”
처음에는 명작 소설의 제목인 줄 알았건만, 그게 아니었다.
그건 절규였다.
“아카데미…… 안 할거야…….”
“매번…… 가위처럼…… 다리가 찢겨…….”
“죽일 거야! 아니, 죽을 거야!”
그런 이해할 수 없기에 끔찍한 소리들을 중얼거리며, 한 무리의 인간들이 스핑크스의 퀴즈처럼 지나갔다.
맨 앞에는 네 발, 중간엔 두 발, 후열은 세 발이었다는 뜻이다.
“야.”
그 기묘함을 넘어 경이로운 행렬을 바라보던 조준구가 허탈하게 중얼거렸다.
“쟤네가 뭘 한지는 몰라도…….”
“어.”
“……우리보다 빡센 것 같은데? 어떻게 글을 써야 다리가 아작나지? 다리를 버리고 글솜씨를 얻은 건가? 뭔 인어공주야?”
“인어공주는 그 반대야 미친놈아.”
“아 맞네.”
“하지만.”
준구가 머리를 긁적거렸다.
“나도 같은 생각이다.”
분명 미치도록 열심히 했다고 생각했는데, 하늘 위에는 하늘이 또 있었다.
순간의 자존심이 박살 나고, 그깟 것도 노력이라며 두들겨 맞은 기분이다.
“친구야. 우리 좀 더 하다 갈까? 저렇게 될 때까지 해야지.”
“준구야.”
조준구를 바라보며, 친구가 방긋 미소 지었다.
“너 혼자 하렴.”
난 오늘 충분히 열심히 했어.
* * *
‘이게 무슨 소설 아카데미야?’
샤워하면서 정주현은 사타구니를 바라봤다.
“흐억.”
허벅지 안쪽이 완전히 푸르딩딩하게 부풀어 올라 있었다. 햄스트링 유연성을 길러준다며 형우가 다리를 쭉 찢은 탓이다.
‘내가 북경오리냐? 다리를 죽 찢게?’
눈물이 찔끔 흘렀다.
어려움? 그 정도는 충분히 예상했다. 세상에 힘들이지 않고 성공할 수 있는 일이 뭐 있겠는가?
주현은 고등학교 3년을 내리 논 대가로 지방대에 갔고, 그곳에서 노력하지 않은 자의 말로를 약간이나마 경험했다. 그리고 이왕이면 그게 예습이 아니라 경고였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이제부터라도 노력해라. 아니면 다시 여기로 돌아오게 될 거다, 라는 그런 경고 말이다. 그래서 소설가를 결심하고 이를 악물었다.
그런데.
‘소설은 안 쓰고 몸만 굴리네!’
유산소에 코어 운동, 거기에 스트레칭까지!
소설가 전에 헬스 트레이너가 먼저 되게 생겼다.
적어도 소설 쓰는 법을 가르쳐 주면서 했으면 그나마 이해라도 됐을 텐데. 운동만 주구장창 하고 있지 않은가.
-저희, 글은 언제 쓰나요?
-아 맞다. 그 이야기를 안 했군요.
한 학생의 질문에, 형우가 박수를 짝짝 쳐서 사람들을 모았다.
-여기서 배운 게 끝이 아닙니다. 집에서 스스로 하셔야 해요.
-스스로라면, 어떻게요?
-하루에 1만 자씩 꼭 쓰세요. 매주 월요일마다 검사할 겁니다. 아, 주말은 쉬세요. 1주일에 5만 자면 충분합니다.
-그럼 아카데미에서는 운동만 하나요?
-에이, 설마요.
형우가 손을 내저었다.
-준비가 되었다 싶으면 시작할 거예요! 그러니 지금은 운동부터 열심히 하죠?
세상 무책임한 말이었다.
글을 배우려고 학원에 왔는데, 집에서 쓰라니.
일단 책상에 앉기는 했는데, 몸이 힘들어서 도저히 글 쓸 힘이 나지 않았다.
‘……내일 나가지 말까?’
어차피 가봐야 개 같은 운동만 주구장창 할 테고.
그 시간에 차라리 혼자 글을 읽고 쓰자. 그게 더 성공할 확률이 높겠네.
꽤 그럴듯하게 느껴지는 생각이었다.
‘내일 내가 다시 글을 쓰러 나가면 난 사람이 아니라 개돼지다, 개돼지!’
그대로, 주현은 이불을 끌어안고 잠을 청했다.
그리고 다음 날.
“정주현 학생? 일찍 왔네요?”
환하게 웃는 형우를 보며, 주현이 고개를 살짝 숙였다.
“멍멍 꿀꿀.”
“……예?”
형우는 왜 갑자기 자신의 제자가 브레멘 음악대가 되어 버렸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 * *
5일이 지나고, 토요일이 됐다.
여전히 글은 한 자도 배우지 못했다.
‘……그런데 숙제는 있고 말야.’
하루 1만 자. 주현은 5일 동안 한 자도 적지 않았다. 그러니까 이틀 내로 5만 자를 적어야 한다는 건데….
‘그게 됐으면 내가 이미 작가 하고 있지!’
하루 종일 앉아 있어도 오천 자 쓰면 다행인데, 어떻게 이틀 만에 오만 자를 쓴단 말인가?
그것도 이렇게 진이 다 빠진 몸으로?
‘……진작에 때려치웠어야 하는데.’
그렇게 생각하면서도 주현은 습관처럼 컴퓨터를 켜고 키보드를 잡았다.
타다다닥.
주현의 손이 키보드 위를 달렸다.
‘…어라?’
주현의 표정이 살짝 의아해졌다.
오늘따라 이상하게 글빨이 좀 잘 나오는 기분이었다.
“오랜만에 써서 그런가?”
그렇게, 오천 자를 완성한 후에 시계를 확인했다. 작업을 시작한 지 1시간이 채 지나지 않았다.
“혹시 시계가 고장났나?”
휴대폰을 확인해 봤다.
시계가 고장난 건 아니었다.
“……응?”
글빨이 올라간 것뿐만 아니라, 글을 쓰는 속도도 확연하게 빨라졌다. 타자가 빨라졌나?
‘아니, 타자가 빨라진 게 아냐.’
그저, 집중하지 못하는 시간이 획기적으로 줄었을 뿐이다. 그대로 5,500자의 1차 퇴고를 마친 후, 그대로 2화를 들어갔다.
‘아니, 잠깐.’
형우의 말이 떠올랐다.
-작업 하나를 끝내고 다음 작업으로 넘어갈 때는 몸 컨디션이랑 관계없이 스트레칭을 꼭 한 번은 해 주는 게 좋아요.
일단은 그 말대로 했다.
손을 쭉 뻗고, 몸의 근육을 쭉쭉 늘려 줬다.
“……딱히 좋은지 모르겠는데.”
그대로 다시 작업을 시작했다. 한 시간이 지나고 또 스트레칭을 했다.
“아닌가? 좀 효과가 있는 것 같기도 하고…….”
그렇게 다음 날이 밝았을 때.
“주현아 일어나야…… 허억!”
깜짝 놀란 어머니가 엉덩방아를 찧었다.
“주, 주현아? 뭐 하니?”
“스트레칭이요, 엄마. 이게 아치 자세라는 건데….”
영화 <엑소시스트>처럼 몸을 까뒤집은 주현이 씩 웃으며 어머니를 반겼다.
그런 주현의 노트북 화면에서는 밤새 완성한 5만자의 소설이 깜빡거리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