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환상을 쓰겟다-157화 (157/200)
  • #156

    “스패로우 팩토리 아카데미, ‘지저귐’에 들어오신 여러분을 환영합니다. 저는 지저귐의 강사를 맡고 있는 김형우라고 합니다.”

    형우가 고개를 숙이자마자 동시에 150인분의 박수 소리가 튀어나왔다.

    그대로 고개를 들어 올리면서, 형우는 그 백오십 명의 얼굴을 하나하나 살폈다.

    “여러분은 면접 날과 오늘까지 해서 저를 두 번 본 거겠지만, 사실 저는 여러분과 만나는 게 세 번째랍니다. 시험 첫날 모자 쓰고 안내하던 사람이 사실 저였거든요. 알아채셨던 분 계신가요?”

    그 말이 끝나자마자 여기저기 수군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안내하던 사람이 있었어?

    -있잖아. 그, 네가 찐따 같다고 한 사람!

    -내가 언제, 미쳤어! 미쳤어!

    그 속닥거리는 소리 탓에 조금 시무룩해졌다.

    놀라우리만치 누구도 눈치채지 못했던 것이다.

    “……아무튼, 거기서 여러분들을 안내하고 있는데 누가 찾아와서 이렇게 묻더라고요. 저기요, 짹카데미 시험장이 어딘지 아세요? 그때 처음으로 알았어요. 아, 사람들이 스패로우 팩토리 아카데미를 짹카데미라고 부르는구나. 지금이라도 이름을 짹카데미라고 바꿔야 하나? 그랬더니 편집자님께서 그러시더라고요.”

    한 호흡 쉬고 말했다.

    “사람들이 부르는 쪽으로 이름 바꾸면 정치인 중 절반 정도는 이름을 개새끼로 바꾸어야 할 텐데요?”

    와하하- 웃음이 터져 나왔다. 어제 미국 스탠디업 코미디를 보며 준비를 한게 도움이 됐다.

    풀린 분위기 속에서, 형우는 이야기를 계속해나갔다.

    “짹카데미라는 별명을 싫어하지는 않아요. 오히려 꽤 귀엽다고 생각하지요. 하지만, 별명은 어디까지나 별명일 뿐이죠. 저희 아카데미의 정식 명칭은 지저귐이 맞습니다.”

    지저귐, 그 이름을 처음 정한 건 형우였다. 오늘 이 사람들을 이 자리에 모은 것은, 그 이유를 이야기하고자 위함이었다.

    “어떤 소설들은 이해할 수 없을 만큼 뛰어나고 위대합니다. 꼭 문학에 속해서 이야기하는 게 아닙니다. 예컨대 미국의 작가인 해리엇 비처는 <톰 아저씨의 오두막집>이라는 소설을 통해 노예제의 비참함을 세상에 알렸습니다. 후에 전쟁에 승리한 링컨 대통령은 그녀에게 ‘위대한 전쟁을 일으킨 작은 부인(the little lady who started this big war)’이라는 찬사를 보냈지요. 그뿐만이 아니죠.”

    후대의 정신분석학자들과 허무주의자들에게 어마어마한 영감을 주어 학문의 토대를 마련했던 윌리엄 셰익스피어나, 지금도 수많은 사람들의 정신적 토대가 되고 있는 성경 등.

    형우의 입에서 위대한 이야기와 위대한 작가들의 이름이 주르륵 흘러나왔다.

    “세상을 바꾸는 이야기들이죠. 이 중 그런 걸 쓸 수 있는 사람은 아마 없을 겁니다.”

    뜬금없는 말에, 학생들이 당황했다.

    “그리고.”

    당황한 이들을 보며, 형우가 살짝 미소 지었다.

    “될 필요도 없고요.”

    위대함이란 폭풍과도 같다.

    세상을 뒤집고, 기후를 바꾸는 폭풍.

    “그런 폭풍은 기후에 있어서 무엇보다도 중요합니다. 하지만 우리가 정말로 편안하게 여기는 건 폭풍이 아니라 따뜻한 산들바람일 테지요.”

    중요한 것과 좋아하는 것은, 분명 다르다.

    “그래서 지저귐입니다.”

    자신만이 알고 있는 자그마한 비밀창고에 드러누워 듣는 새소리처럼, 독자에게 부담 없는 편안함을 주는 소설.

    “그것이 바로 저희 스패로우 팩토리에서 추구하는 소설의 방향성이라는 거지요.”

    “그러면.”

    학생 중 누군가가 소리쳐 물었다.

    “저희는 위대한 작가가 될 수 없는 건가요?”

    “아니요. 저는 다만, 세상을 바꿀 수 있는 소설을 쓸 수 없다고 했을 뿐이에요.”

    “그게 그거 아닌가요?”

    “으음, 혹시 김순욱 작가님이라고 아세요?”

    “김순욱 작가님이라면 그, 막장 드라마 쓰시는…….”

    “맞아요.”

    형우가 고개를 끄덕였다.

    “김순욱 작가님은 흔히 말하는 막장 드라마 작가죠. 얼굴에 점 찍고 복수하는 드라마랑 비싼 아파트에서 살인사건 벌어지는 드라마가 유명하죠.”

    “……네. 본 적이 있어요.”

    “저는 좋아한답니다. 그리고 존경하기도 하죠.”

    대한민국에 위대한 드라마 작가들은 많다. <허깨비>를 쓴 김온숙 작가님이나, <시그널보내>를 쓴 김준희 작가님도 있다. 그 작품들 중 가장 뛰어난 작품을 고르라면, 솔직히 잘 모르겠다.

    하지만 가장 존경하는 작가를 묻는다면, 형우는 무조건 김순욱 작가라고 대답할 것이다.

    그녀의 신념 때문이었다.

    “다음 화를 보고 싶어 죽을 만큼 궁금한 작품을 쓰는 게 김순욱 작가님의 목표라고 하시더라고요. 왜 그럴까요?”

    “……어, 시청률을 위해서요?”

    여기저기 웃음이 터졌다. 형우도 웃었다.

    “물론 그것도 없진 않겠지만, 김순욱 작가님이 원하시는 건 사람들이 다음 날을 기대하게 하는 거래요. 하루하루 살기도 힘든 현대인들이 자신의 드라마로 인해 다음 날을 기대하게 된다면, 막장 드라마 작가 정도의 별명은 기쁘게 받아들일 수 있다고. 그렇게 말씀하시더군요.”

    지루하고 힘든 오늘을 버거워하는 이들을 위해 필요한 것은 엄청나게 거대한 것이 아니다.

    다음 화가 기대되는 드라마나, 5분짜리 웹소설처럼. 아주 사소한 것이면 충분할지도 모른다.

    “그렇게 열 명, 백 명, 천 명……. 아니, 만 명에 십만 명까지. 그 많은 사람들의 내일에 희망을 줄 수 있는 이야기를 쓰는 작가라면, 그 작가는 위대한 사람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요? 어떻게 생각하세요, 정주현 학생?”

    질문을 했던 정주현이 잠깐 눈을 깜빡이더니.

    “위대하다고……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저도 그렇게 생각한답니다.”

    그 말을 끝남과 동시에,

    -짝짝짝.

    여기저기서 박수가 터져 나오기 시작했다.

    새의 울음소리처럼 자그맣게 시작했던 박수 소리는 사람들을 타고 조금씩 커지더니, 이윽고 강당 전체를 울릴 정도로 크고 웅장하게 울려 퍼졌다.

    * * *

    “정주현 학생!”

    오리엔테이션 강의가 끝나고, 형우는 재빨리 교실에서 나가려는 정주현을 불러 세웠다.

    “아까 질문 좋았어요.”

    “어어, 괜히 멍청한 소리를 한 건 아닌지…….”

    “하나도 안 멍청했어요.”

    궁금한 게 있는데도 입을 딱 닫고 있으면 그게 멍청이지, 모르는 건 멍청이가 아니다.

    “오히려 멋있었어요. 위대한 작가라.”

    웹소설을 쓰면서 위대함을 논하는 사람은 의외로 드물다.

    “좀 놀랐어요.”

    “뜬구름 잡는 이야기였나요?”

    “아뇨, 놀리는 게 아니라 진심이예요. 하지만 궁금하긴 하던데요. 왜 그런 질문을 하셨죠?”

    “그게…….”

    주현이 조심스레 이야기했다.

    “제가 하는 일이 가치 있는 일인지 잘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어서요.”

    “으음, 가치라.”

    “아무래도 그렇잖아요. 세계문학전집 같은 데 적힌 작품에 비하면, 웹소설은 좀……. 아, 이런 말은 혹시 불편하신가요?”

    “아뇨. 불편하지 않아요.”

    내가 지금 하는 일이 옳은 일인가?

    그 질문은 문제가 없다. 오히려 이런 질문을 한 번도 하지 않고 사는 게 잘못된 거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형우는 진지하게 대답했다.

    “세계문학전집이라고 하니까 생각난 건데, 혹시 찰스 디킨스에 대해 좀 아세요?”

    “<크리스마스 캐롤>쓴 사람이잖아요.”

    “네. 미국문학의 아버지라고 불리는 분이죠. 하지만 그 분도 생전에는 너무 대중적인 글을 쓴다며 공격받은 일이 있었다는군요.”

    “정말요?”

    처음 들어보는 이야기에 정주현의 눈이 동그랗게 커졌다. 형우가 천천히 설명했다.

    “사실, 우리가 고전이라고 부르는 작품 중에 적지 않은 수는 당시 대중문학으로 평가받던 것들이기도 해요. 당연한 일이죠. 많은 사람이 읽는 글이 후대에 전해지기 쉬울 테니까요. 그러니까.”

    형우가 주현의 어깨를 톡톡 두드렸다.

    “저도, 정주현 작가님도 가능성은 있어요. 위대해질 가능성 말이죠.”

    그 말과 동시에- 띵동땡동 하는 소리가 들렸다.

    쉬는시간이 끝났다는 종소리다.

    “이제 슬슬 수업에 들어갈 텐데, 준비하셔야죠?”

    그 말을 들은 정주현의 표정이 밝아졌다.

    “잘 부탁드립니다!”

    정주현이 후다닥 형우를 뒤따라갔다.

    ‘만약 나중에 자신이 정말로 위대해져서 자서전을 쓰게 된다면 첫 줄은 분명 이렇게 시작하겠지.’

    나는 그날, 위대한 스승을 만났다.

    그리고 두 번째 줄은…….

    * * *

    이러다 뒤지겠네.

    정주현은 후들거리는 다리를 붙들고, 자신의 앞에 펼쳐진 드넓은 초록 대지를 바라봤다.

    한국대학교의 잔디밭은 참으로 그럴듯하다.

    관리가 잘 된 인조 잔디의 초록빛이 4월의 햇살과 얼마나 잘 어우러지는지.

    그야말로 자연미와 조형미의 조화라고 해야 할까, 인간과 자연의 쌍생이라는 오랜 질문에 대한 해답과도 같은 풍광이라고 할까.

    그대로 대자로 드러누워 하늘을 보며 춘곤증에 못 이기는 척 눈이라도 살짝 감고 싶어지는 그런 장소일 텐데.

    “으아아아아악! 이 개 같은 잔디밭은 뭐 이리 커!”

    정주현이 그대로 바닥에 엎어진 그 순간.

    삐이이이이익.

    뒤에서 호루라기 소리가 들려왔다.

    “벌써 쓰러지면 어떻게 합니까?”

    빨간 모자를 쓴 형우가 호루라기를 입에서 떼며 소리쳤다.

    “농땡이 피우면 한 바퀴 추가합니다!”

    “이거 너무 힘들…….”

    삐이이이익!

    “으아악!”

    도중에 멈춰서는 사람이 있을 때마다, 형우는 그쪽으로 달려가서 등을 떠밀었다.

    “소설가한테 제일 중요한 건 체력입니다!”

    형우가 그대로 쓰러진 정주현의 어깨를 잡아 일으켰다.

    “체력이 없으면! 소설도 못 써요! 따라 합니다. 체력은 국…… 아니, 필력이다!”

    “체력은 필력이다!”

    “지금부터 노동요를 제창한다! 노동요는 멋진! 소설가!”

    “멋진! 소설가!”

    “노동요 시작 하나 둘 셋!”

    “소설가로, 하! 태어나서, 하!”

    “에이, 그거 아니잖아요.”

    형우가 이를 드러내며 웃었다.

    “그건 멋진 소설가가 아니라 진짜 소설가잖아요!”

    ……아, 맞다.

    멋진 소설가는 멋있는! 소설가! 어쩌고였지…….

    “똑바로 부르죠!”

    “멋있는! 으아아악!”

    지나가는 다른 학생들이 그런 정주현을 불쌍하다는 듯이 바라봤다.

    ‘에휴, 그러니까 좀 뛰지.’

    ‘저걸 걸리냐.’

    ‘낙오되면 강제로 노래를 시키는 강사가 있다? 뿌슝빠슝?’

    노래를 부르면서 달리면… 당연히 더 숨이 찬다.

    더 숨이 차면, 당연히 달리기가 느려진다.

    하지만 형우는 항상 제일 뒤처진 놈한테 달려가서 노래를 시킨다. 지금의 정주현처럼.

    ‘그게 싫으면…….’

    방법은 오직 하나뿐.

    ‘뛴다, 죽어라 뛴다!’

    그렇게, 형우반에 배정된 오십 명의 수강생들은 잔디밭의 무식한 크기를 욕하며 할당량인 열 바퀴를 모두 채웠다.

    “끄, 끝났다!”

    “눈앞이 노랗다!”

    한 바퀴에 400m로 설계된 운동장이니, 거진 4km를 뛰었던 셈이다.

    평범하게 운동했던 사람이라면 어찌저찌 뛸 수 있는 거리겠지만, 그들은 하루종일 의자에만 앉아 있었던 운동 부족 지망생들이었으니.

    “허억, 허억!”

    “무, 물!”

    “나 땀이 안 멈춰!”

    ……다들 심장이 도망갈세라 부여잡고 있었고, 세상의 이산화탄소가 모자랄세라 호흡을 가쁘게 쉬고 있었다. 그런 그들을 보며, 형우가 씩 웃었다.

    “안에 샤워실 있으니까, 씻고 모이세요. 아, 음료수도 따로 준비해 놨고요.”

    “와! 음료수!”

    “겁나 달콤합니다!”

    그렇게, 사람들이 떠난 자리에는 둥그런 엉덩이 자국 오십 개만 덩그러니 남아 있었다.

    * * *

    이제는 글쓰기를 배우겠지?

    하지만, 형우는 보란 듯이 학생들의 그런 기대를 깔끔하게 무시했다.

    “여러분, 아무리 여러분이 글을 열심히 써도 허리 박살 나면 작가질 못 합니다!”

    눈이 멀어도 소설가는 할 수 있다. 아르헨티나 최고의 소설가인 보르헤스가 그랬듯이.

    하지만, 허리가 망가지면 창작은 불가능하다.

    토가시 작가의 <사냥꾼X사냥꾼>이 괜히 연재가 멈춘 게 아니고, 우미노 치카의 <3월의 라이온>이 괜히 갑자기 연재가 느려진 게 아니라는 뜻이다.

    “그러니까, 오늘은 집에서 간단하게 할 수 있는 코어 강화 운동을 세 개 정도 배워볼 겁니다!”

    그렇게 한 시간 동안 슈퍼맨 자세와 플랭크, 데드버그 운동을 배웠다.

    “데드버그 운동은 죽은 벌레에서 이름을 따 온 건데 이게 골반 좌우 균형에…… 거기 두 분! 오른 다리랑 왼팔이 움직이는 거예요, 왜 오른팔 오른 다리가 같이 움직여요? 어어, 정주현 씨! 데드버그라고 해서 진짜 죽은 척하면 어쩝니까? 일어나요! 두 세트 더 해야죠!”

    유산소에 이어 무산소 맨몸운동까지 하고 나니 오장육부 중 꼬이지 않은 데가 없었다.

    ‘이제 다음 시간에는 글을 쓰겠지?’

    오산이었다.

    “이번에는 스트레칭 방법을 배워볼 거예요. 스트레칭하는 법만 똑바로 알아도 스트레스가 절반으로 줄어듭니다! 일단은 햄스트링부터 하나, 둘, 셋… 거기 정주현 씨! 스트레칭을 하라니까 왜 로봇 춤을 춰요?”

    “로봇 춤이 아니라 이게 스트레칭…….”

    “다리가 가슴까지도 안 올라가요?”

    “……네.”

    “정말 유연하시군요 정주현씨.”

    형우가 혀를 쯧쯧 찼다.

    “이거 좋은 방법이 하나 있긴 한데. 학교 다닐 때 발레 배우던 애한테 들은 거거든요.”

    “발레요?”

    “네. 발레 선수들이 팔다리 쭉쭉 찢는 특급 비밀인데. 관심 있어요?”

    “그게…….”

    관심 없다고 고개를 저으려고 했지만, 형우의 움직임이 더 빨랐다.

    “잡아요.”

    “넵! 참새치 작가님!”

    “존명!”

    형우의 추종자인 근육질 남자 두 명이 정주현의 팔다리를 잡았다. 뛸 때도 코어운동 할 때도 싱글벙글하며 운동하던 사람들이다.

    ‘헬스장이나 가지 저런 인간들이 왜 아카데미를 와?’

    주현의 내적 외침과는 관계없이, 그의 두 팔다리는 잡히고 말았다. 흐흐흐, 웃으며 형우가 다가왔다.

    “조금 아프겠지만 참아요. 이게 다 글쓰기에 도움 되는 거니까! 일단 햄스트링부터 갈까요?”

    다가오는 거미를 보는 모기의 심정이 이러할까?

    굵직한 무당거미의 두 독니처럼, 형우의 두 발바닥이 주현의 허벅지 안쪽에 닿았다.

    앞으로 다가올 미래를 상상하며 주현은 이를 악물고 눈을 꽉 감았…….

    쫘악!

    “으아아아아아아악!”

    주현의 비명이 강의동을 가득 채웠다. 그런 주현의 귓속으로 형우의 목소리가 들렸다.

    -발레리노 친구들이 그러더라고요. 유연성을 늘리다 보면 팔다리가 찢어지는 게 아니라고. 정확히는 그 반대래요.

    -……팔다리를 찢고 나면 유연성이 늘어나는 게 맞다고요.

    그 생각을 마지막으로,

    사타구니부터 밀려오는 아득한 고통으로 인해 주현은 그대로 잠깐 정신을 잃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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