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5
정주현의 친구들은 그를 이렇게 불렀다.
웹소설에 인생을 바친 남자라고.
-아니, 어떻게 사람이 하루 종일 소설만 보냐?
사람이니까 그러지, 짐승이 소설 읽는 거 봤냐?
-얘 버스비 아껴서 소설에 돈 박는다고 아침 여섯 시 반에 집에서 나온다더라.
버스비 왔다 갔다 2천 원이면 웹소설이 스무 편인데. 걸으면서 소설 보면 왠지 재밌기도 하고.
-그러다가 전봇대에 머리 부딪혀서 이마에 바느질했다며?
음. 그건 좀 흑역사지.
소설 읽다가 전봇대에 박았다고 하니까, 의사가 혹시 읽고 있던 게 돈키호테냐며 낄낄거렸다.
그러니까, 풍차에 돌진한 돈키호테랑 전봇대에 부딪힌 자신을 동일시하는 참으로 고급진 지식인 개그였던 셈이다.
“그렇게 고등학교를 보냈습니다.”
수업시간에도, 쉬는시간에도, 심지어 점심시간에도. 정주현은 하루 종일 소설 속에서 살았다.
“지루한 일상보다는 소설 속 세계가 훨씬 재밌었거든요.”
하지만 한쪽 팔이 멋진 금속으로 되어 있는 금발머리 소년이 말하듯, 세상의 기본은 등가교환等價交換인 법이니.
시간을 웹소설에 때려박은 만큼 자연스럽게 성적 또한 나락으로 치닫기 시작했다.
소설에 결제한 돈의 액수가 올라갈 때마다, 성적표에 적힌 등급도 조금씩 올라갔다.
4.5에서 5.5, 마지막 본 모의고사는 6.5였다.
그렇게 수능날이 다가왔다.
공부한 건 없는데 이상하게 기분이 좋았다.
왠지 다 잘 될 것 같은 느낌.
그리고 수능을 본 후, 정주현은 외쳤다.
“…됐다.”
좆됐다.
777이라는 숫자를 보며 주현이 중얼거렸다.
여기가 정선의 강원랜드였으면 아마 소리를 질러도 골백 번은 질렀을 테지만, 아쉽게도 주현이 보고 있는 것은 강원랜드의 슬롯머신이 아니었다.
자신의 성적표였다.
-공부를 안 했으면 운이라도 좋지 그랬니.
777이 행운의 숫자라는 말은 대체 누가 만든 걸까? 전 세계가 나를 두고 몰래카메라라도 하고 있는 게 아닐까? 영화 <트X먼 쇼>처럼.
그게 아니라면 <인셉X>처럼 지금 현실이 꿈일지도 모른다.
-이 성적이면 강원도에 있는 모 대학 정도밖에는…….
담임과의 상담이 끝난 후, 터벅터벅 나온 정주현은 주머니에서 컴퓨터용 사인펜을 꺼내 책상에 던졌다.
이게 꿈이라면 싸인펜이 세로로 설 테다.
영화처럼.
터억-
싸인펜은 정말로 세로로 섰다.
하지만 꿈이라는 생각은 하나도 안 들었다. 책상 여기저기에 상처처럼 남아 있는 까맣고 빨간 흔적들 때문이었다.
그것들이야말로.
세워진 싸인펜을 보기 위해 주현이 골백번이나 계속해서 의미 없는 행위를 반복했다는 증거였으니까.
* * *
“그렇게 777이라는 점수를 들고 강원도로 갔습니다. OT날이었죠.”
“OT라…….”
주현의 말을 듣던 형우의 표정이 살짝 일그러졌다. 형우가 공태준에게 몹쓸 말을 들었던 것도 OT때였으니, 동병상련이라는 거다.
“무슨 말을 들었나요?”
“말을 들었다기보다…… 기합을 받았죠.”
“기합이요?”
“네. 도착하자마자 해가 질 때까지 영문도 모르고 기합을 받았습니다. 그래도 취업률 100%라고 쓰여 있기에 좀 괜찮은 대학일 줄 알았는데, 오산이었죠.”
“그래서 학교를 그만뒀나요?”
“아뇨. 기합까진 어떻게 참아 보려고 했는데… 문제는 그다음이었던 것 같아요.”
네 시간에 걸친 기합으로 기진맥진해진 신입생 앞에 등장했던 것은 커다란 세숫대야와 스무 통의 막걸리였다.
“뭐였더라, 학교 전통의 세족식이라던가.”
세숫대야에 가득 담긴 희멀건 막걸리.
그리고 그 안을 휘젓는 선배들의 발.
-이게 뱀술보다 더 좋은 발술이라는 거다. 영광으로 생각하고 마셔!
-남기면 한 바퀴 더 돈다, 알겠지?
-야. 저 새끼 쓰러졌다. 동기애가 저렇게 없어서야…… 쯧쯔, 빨리 깨워!
그 소름끼치는 광경을 보는 순간, 정주현은 느꼈다. 여기는 학교가 아니라 지옥이로구나.
내가 공부를 안 해서 벌을 받는구나.
“……때려 치워야겠다. 그렇게 생각했어요.”
다음 날 바로 대학교를 접었다.
“다행히 1주일이 지나지 않아 전액 환불은 받았습니다. 그걸로 재수 학원을 다니거나 공무원 준비를 하기로 마음먹고 그대로 인터넷을 켰죠. 유명 학원, 이라고 검색했었어요.”
그리고, 그런 정주현의 눈에 들어온 것이 바로 스패로우 팩토리의 아카데미 모집 공고였던 것이다.
“지금이 4월이니까…… 아마 그게 한 달 전이었죠. 지원 공고를 보니 ‘웹소설을 쓰신 적이 있거나 관심이 있으신 분.’이라고 쓰여 있었던 것 같은데… 맞죠?”
주현의 질문에 형우가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요. 그래서 소설을 쓰기 시작했나요?”
“네. 그날부터 웹소설을 쓰기 시작했습니다. 아무래도 관심 있는 사람보다는 써 본 사람을 더 좋아할 것 같아서요.”
그렇게 한 달, 짧다면 짧은 시간이었지만 정주현은 매일같이 쉬지 않고 하루에 한 편씩은 꼭 소설을 썼다.
“학창 시절 때도 안 하던 공부를 하려다 보니까 막 좀이 쑤시고 그 탓에 치질까지 생겼지만…… 병원에서도 소설은 썼어요.”
“흐음…….”
그 말을 들은 형우가 볼펜 끝으로 책상을 톡톡 건드렸다.
‘허, 허억!’
그 모습을 보는 정주현의 심장이 덜컥, 하고 멈췄다. 볼펜이 건드리는 것이 책상이 아니라 자신의 관자놀이인 기분이었다.
‘내가 대답을 잘못했나?’
아까 웃으며 농담을 나누던 사람이라고는 생각하기 힘들 정도로 날카로운 눈빛에 저절로 고개가 살짝 숙여졌다. 그 위로, 형우의 날선 질문이 날아들었다.
“왜 재수나 공무원 대신 소설을 택했죠? 쉬워 보여서? 아니면 공부는 죽어도 못 하겠어서?”
“두, 둘 다 아닙니다!”
“아니면?”
“나, 낭비하기가 싫었으니까요!”
겨우겨우 대답한 주현의 얼굴을 보던 형우의 눈썹이 살짝 치켜 올라갔다.
“낭비라면?”
“그, 그러니까…….”
정주현이 침을 꿀꺽 삼키고, 주먹을 꽉 쥐었다.
“저는 고등학교 내내 웹소설만 봤었잖아요. 주변에서는 그걸 보고 맨날 낭비라고 했었어요. 하지만요, 저는 그 시간이 진짜 즐거웠거든요.”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겠지만, 일단 나오는 대로 말했다.
“그러니까, 즐거웠으니까, 그 시간이 낭비가 아니었으면 했어요. 그걸 낭비라고 생각하면 더 이상 즐거운 시간이 아닐 것 같아서. 그러니까, 그게…….”
“본인이 웹소설 작가가 되면, 그 시간은 낭비가 아니라 투자가 되는 거다.”
뒷말을 형우가 이었다. 깜짝 놀란 주현이 고개를 들어 앞쪽을 바라봤다.
“그 말을 하고 싶은 거죠, 정주현 씨?”
“예? 그, 그게….”
“잘 들었습니다. 참 좋네요. 고개 들어 보세요.”
“고개요?”
“어서.”
“네, 네!”
주현이 그대로 고개를 치켜들었다.
시야 가득히 들어오는 것은.
“대답 좋았어요.”
언제 날선 표정을 지었느냐는 듯 푸근하게 미소짓고 있는 형우의 얼굴과, 그 옆에서 긴급전화 버튼을 띄운 채 한숨을 푹 내쉬는 천우희의 모습이었다.
* * *
길이 짧아졌나?
올 때는 다리도 무겁고 숨도 찼던 것 같은데, 막상 갈 때 보니 그리 길지 않다는 느낌이었다.
왠지 모르게 짐 하나를 덜어놓은 듯한 홀가분한 기분이라고 할까.
‘그런데….’
다리는 가벼워졌지만, 왠지 모르게 시선이 자꾸 뒤쪽으로 향했다. 터벅터벅, 오늘 함께 면접을 봤던 사람들이 삼삼오오 걸어 내려오는 것이 보였다.
-어, 엄마. 나 붙었어. 면접 별거 아니더라. 난 붙을 줄 알았다니까? 아니, 고작 학원이 아니라니까? 여기가 얼마나 잘 나가냐면….
-떨어졌어. 말을 너무 더듬었나… 아니 뭐, 대학 떨어진 것도 아니고 입사 시험 떨어진 것도 아닌데 뭘 상심이야. 그냥 학원인데.
면접 결과는 당일날 바로 나왔다. 스패로우 팩토리는 예고했던 대로 150명만을 남겼다. 정주현은 자신의 휴대폰을 바라봤다.
합격.
한 달 전에 대학교에서 날아온 같은 단어를 봤을 때는 별생각이 들지 않았다. 그러니 이번에도 비슷하지 않을까.
멀리 표지판 하나가 보였다. 오면서 봤던, [스패로우 팩토리 면접까지 앞으로 300m]라고 적혀 있는 화살표 모양 표지판이었다.
왠지 모르게 그 화살표를 따라 시선이 이동했다. 방금 나온 B동 건물이 노을빛에 물들어 있다.
노을빛이라는 건 사실 태양빛이 먼지에 난반사가 된 거라던데. 저토록 노을이 밝은 걸 보니 분명 오늘은 미세먼지가 꽤 많을 게 분명하다.
“흐읍.”
그렇지 않으면, 이렇게 눈이 따갑고 콧물이 나오려고 할 리가 없지 않은가.
-정주현 씨가 좋은 작가가 될지는 저도 잘 모르겠지만, 재능이 있는 건 확실하다고 생각해요.
-재능이요?
-네. 고등학교 삼 년 내내 웹소설을 팠던 것도, 병원에 가서도 펜을 놓지 않았던 것도. 모두 다 제가 보기엔 좋은 재능인걸요. 누가 그랬거든요, 소설은 엉덩이로 쓰는 거라고요.
나가기 직전, 형우는 그렇게 말했다. 단순한 인사치레일지도 모르지만. 정주현은 그 말속에서 뭐라고 표현하기 힘든 기분을 느꼈다.
지금까지 누구도 자신의 행동을 보고 재능이라고 말해 주지 않았었다. 심지어 자신조차도 그렇게 생각했다.
하지만…… 형우는 달랐다.
그런 자신의 모습을 보고 재능이라고 말했다. 무언가에 진심으로 몰두할 수 있는 거야말로 최고의 재능이라는 그 말이, 정주현의 가슴팍을 쿡쿡 찔렀다.
“……에이씨, 오늘 미세먼지 진짜 심하네. 눈까지 따끔거리는거 봐.”
정주현이 소매로 눈을 쓱 문질렀다.
옷 위로 두 줄기의 물 자국이 선명했다.
* * *
“즈그으, 슨승늠?”
“뭐라고, 정수야?”
“즈그 흘믈으 읐는드….”
올해 고등학교 3학년이 된 김정수가 애매한 발음으로 형우에게 말을 걸었다.
발음이 애매한 이유는 이를 악물어서 그렇다.
이를 악문 이유는 형우에게 화가 나서 그랬고, 형우에게 화가 난 이유는… 안재욱에게 들었던 형우의 면접 이야기 때문이었다.
“즈윽으 흥으….”
“이 열고 말해라. 네 소설 요즘 시들하던데, 임플란트 값까지 물려면 어쩌려고 해.”
“아니! 그 이야기가 지금 왜 나와요!”
정수가 열불을 냈다.
“다른 사람한테는 예쁘게 말해 주면서! 나한테만 맨날 막말해!”
“그만큼 내가 너를 친하게 생각한다는 뜻 아니겠니, 정수야? 아니면 딱딱하게 대할까? 김형우 말고 김딱딱 씨 해?”
“…에휴, 됐고, 아무튼!”
정수가 다시 눈을 화르륵 불태웠다.
“재욱이 형한테 아카데미 면접 이야기 다 들었거든요? 거기에 주연인가 하는 사람이 왔다면서요?”
“주현이야. 정주현.”
“맞아, 정주현!”
“아는 사람이야?”
“몰라요! 쌩판 남이죠!”
“근데 왜 화를 내?”
“나한테 한 이야기랑 다르니까 그렇죠!”
정수가 억울하다는 듯 가슴을 팡팡 쳤다.
“나한테는요, 예? 소설로 도망치지 말라면서 공부부터 하고 소설은 그다음에 하라 했잖아요!”
“그랬지?”
“근데 왜 그 주현인가 하는 사람한테는 그렇게 말 안 해요?”
“뭐야, 고작 그거였어?”
형우가 싱겁다는 듯 픽 웃었다.
“너랑 그 사람이랑은 상황이 다르잖아.”
“둘 다 공부 못 하고 소설 쓰는 사람인데, 같은 거 아니예요?”
“마음가짐이 다르지.”
공부를 못 해서 공부 대신 소설을 쓴다. 정수의 말대로, 겉으로 보기에 둘의 상황은 비슷하다.
하지만 처음 만났을 때의 정수는 ‘공부보다 소설이 쉬우니까 소설로 성공하자!’라는 근거 없는 마인드로 무장한 녀석이었다.
“하지만 그 사람은 그러지 않았거든. 공부도 소설도 모두 힘들다는 걸 알고 있었어.”
“으음…….”
정수가 어렵다는 듯 머리를 긁적였다.
“그게 그렇게 많이 다른 건가?”
“각오가 다르지.”
세상일의 대부분은 힘들다는 걸 알고 각오한 채로 들어가도 고된 게 대부분이다.
“어린아이는 불에 가까이 가면 안 되지만, 요리사는 그래도 되잖아. 왜냐면, 요리사는 불이 얼마나 무서운지 아니까.”
“오.”
정수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비유 좋은데요?”
“작가잖아.”
“저도 작간데.”
“너보단 내가 좀 더 낫지.”
“노재수.”
정수가 툴툴거렸다. 형우가 피식 웃었다,
“그나저나 정수 너, 진짜로 아카데미는 안 올 거야?”
“강사 섭외인가요?”
“학생이지 뭔 강사야?”
“에이, 그러면 안 갈래요. 내 글 쓰기도 바쁜데.”
“잔소리 귀신 챕터는 끝났잖아. 다음 편 히로인은 누구야? 고준희? 아니면 뉴페이스?”
“뉴페이스에요.”
정수가 쓰는 장르는 라이트노벨, 그중에서도 특히 ‘표지 히로인’이라고 불리우는 장르다.
한 장마다 그 장을 이끌어나가는 메인 캐릭터가 바뀐다는 뜻이다.
“소설 이야기 나온 김에 이야기하자면… 다음 이야기는 커다란 귀신 이야기거든요. 삼척귀신!”
“…팔척귀신이겠지. 삼척이면 난쟁이잖아. 한 척이 30.3cm인데.”
“아 맞다! 삼척동자랑 헷갈렸어요! 팔척귀신!”
“근데 팔척이여도 240cm잖아. 옛날에는 무서웠을지 몰라도, 요즘은 좀 흔한 거 아닌가? 농구선수들 키 다 그 정도는 되지 않나?”
“…키 240짜리 농구선수가 어딨어요? 사람 키가 무슨 신발 사이즈인 줄 아나.”
“네 토익 점수는 신발 사이즈… 아얏! 이 자식이, 이제 나를 막 패네?”
“맞을 말을 하니까!”
정수와 형우가 서로 마주 보고 으르렁거렸다.
내일 모래 대학 입시인 정수와, 저번 달에 대학교를 졸업한 형우였지만, 남자의 싸움에 나이란 의미가 없는 것이니.
“너 자꾸 그러면 소설 쓸 때 안 도와준다.”
“그러면 저도 엊그제 선생님이 무협 소설 연구한다며 거울 주먹으로 때려 부순 거 소문낼 거예요.”
“그걸… 봤어?”
“보기만 했겠어요? 듣기도 들었지. 뭐라더라, 덤벼 봐. 내 자신이라도 때려눕혀 줄….”
“으아악! 그건 대사라고, 대사!”
“그근 드스르그 드스~”
“하지 말라면 하지 마!”
“흐즈 믈르믄… 으악!”
형우가 집어던진 베개를 맞고 정수가 쓰러졌다.
그대로 달려든 정수의 옆차기를 맞고 형우가 콜록콜록거렸다.
“야, 먼지 너무 많다. 문 열자!”
“좋아요, 좋아!”
둘이 동시에 창문을 활짝 열었다. 멀리 보이는 강 근처로 벚나무가 줄지어 서 있는 게 보였다.
“아직도 꽃이 안 피었네. 보통 벚꽃은 3월에 피지 않나?”
“정수야 일본 애니 좀 그만 봐.”
“저는 라이트노벨 쓰는데요? 굶어 죽으라는 건가?”
그 말에 형우가 헛기침했다.
“……험험, 서울의 벚꽃은 4월 초나 되어야 핀단다.”
그러니, 이제 곧 꽃이 피어날 것이다.
지나긴 겨울을 지나고, 피어나는 꽃.
그것이 나무에게 있어서 승리는 아니겠지만.
‘적어도, 신호탄 정도는 되겠지.’
스패로우 팩토리의 아카데미 프로젝트.
C&N을 향한 첫 번째 반격의 신호탄이 쏘아 올려진 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