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환상을 쓰겟다-155화 (155/200)
  • #154

    “흐읍.”

    스패로우 팩토리 아카데미의 면접실 앞.

    정주현은 잔뜩 긴장한 채로 문만 바라봤다.

    ‘……진짜로 학원 들어갈 때 면접까지 보다니.’

    재수하는 친구들과 술을 마시면서 했던 대화가 자연스레 떠올랐다.

    -나 이번에 D학원 떨어졌잖아.

    -학원도 떨어져?

    -당연하지. D학원 들어가는 게 인서울 대학 가기보다 힘들다더라. 올해 재수 특강 경쟁률이 몇이더라? 23대 1이었나?

    -학원이 거기뿐이래? 뭐하러 면접까지 보면서 들어가냐? 어차피 돈 내고 다닐 거.

    주현은 그렇게 말했던 자신의 입을 콕콕, 때렸다.

    ‘내가 미쳤지, 미쳤어! 무슨 망발을!’

    땅은 작고 인구는 많다는 대한민국의 경쟁이란 건, 직접 겪어보니 말 그대로 장난이 아니었다.

    ‘비단 입시학원만 그런 것도 아니라던데.’

    노량진에 위치한 유명 공무원 학원이라던지, 강남에 위치한 유명 영어학원 같은 것들도 별반 다르지 않다고 들었다.

    그러니 요즘 최고의 상한가를 달리고 있는 스패로우 팩토리의 웹소설 스쿨이 이 정도로 붐비는 것쯤이야.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 아니겠는가.

    ‘떨어지면 어떡하지?’

    그렇게 긴장하며 침을 꿀꺽, 삼킨 순간.

    끼이익-

    문이 열리며 20대 후반으로 보이는 한 여자가 면접실에서 나왔다. 이름이 아마 구민효였나, 그랬을 테다.

    ‘그나저나 표정이…… 왜 이리 편해 보이지?’

    지금까지 면접에 들어갔다 나온 사람들은 죄다 죽을 듯한 표정으로 나왔었는데.

    구민효는 그런 기색이 거의 없었다. 심지어 면접 시간도 상당히 길었는데 말이다.

    ‘원래 긴장을 잘 안 하는 성격인가? 아니면 면접을 기막히게 잘 본 건가?’

    어느 쪽이든 부럽기 그지없었다.

    “다음, 조준구 씨 들어오세요!”

    “히, 히익! 들어갑니다!”

    그 호명에 맞춰, 주현의 앞에 있었던 사람이 긴장한 표정으로 면접실에 들어갔다.

    차례를 기다리는 주현의 가슴이 세차게 뛰었다.

    그리고 2분이 채 지나지 않았을 때.

    “흐어억, 죄, 죄송합니다! 감사합니다! 아니, 죄송합니다!‘

    조준구가 면접실에서 뛰쳐나왔다.

    구민효가 긴 면접시간과 여유로운 표정으로 주현을 놀라게 했다면, 조준구는 정확하게 그 반대의 것으로 주현을 놀라게 만들었다. 일단 2분밖에 안 되는 짧은 면접시간에 첫 번째로 놀랐고.

    “허억.”

    하얗게 질린 표정 탓에 두 번째로 놀랐다.

    알비노처럼 뜬 얼굴에 덜덜 떨리는 볼은 마치 중력가속도 훈련을 갓 마친 신참 파일럿처럼 보였다. 물론 원심분리기에서 빙빙 돌아간 것은 그의 몸이 아니라 멘탈이었겠지만 말이다.

    ’안에서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거지?‘

    하지만 그리 오래 생각할 여유는 없었다.

    “정주현 씨! 들어오세요!”

    바로 다음 차례가 자신이었으니까.

    * * *

    “안재욱 작가님 면접 진짜 잘 보시네요.”

    “하하, 회사원 출신이니까요.”

    안재욱이 쑥스럽다는 듯 웃었다.

    “그나저나 구민효 씨 어땠어요? 말 진짜 잘하시지 않아요?”

    “그냥 문 열자마자 자신감이 빡 느껴지는 게, 뭘 해도 잘할 것 같은 사람이죠.”

    “듣자 하니 변호사라면서요? 변호사 일 하면서 글까지 쓰려고 한다니, 진짜 대단해요.”

    “요즘 뭐, 그런 사람 종종 있잖아요. <조류독감 닥터>쓰신 은는이가 작가님이라던지. 그분은 의사잖아요.”

    “의사에 작가에, 뉴튜브도 하시던데. 구독자 70만.”

    “……괴물이죠, 괴물. 구민효 작가님도 그 정도만 해 주면 좋겠는데.”

    “은는이가 작가님을 ‘그 정도’라고 하기에는 허들이 꽤 높은 느낌이긴 하네요.”

    “에헤이, 꿈은 크게 잡는 거죠!”

    안재욱을 보고 지원이 너스레를 떨었다.

    “그리고 제가 보기에는 안재욱 작가님도 똑같이 대단하시던데요. 변호사를 상대로 면접을 보면서도 말을 그렇게 잘하시데요? 꿋꿋하게?”

    “꿋꿋한 걸로는… 저보다 천우희 작가님이 더 하기는 했지만서요.”

    “천우희 작가님은… 에휴.”

    천우희를 바라보며 지원이 한숨을 푹 쉬었다.

    구민효 다음으로 들어온 조준구의 면접 때문이었다.

    -조준구 씨, 이 소설 대체 무슨 생각으로 쓴 거예요? 결말이 왜 이따위인 거지? 자기기만?

    조준구가 들어오자마자 천우희는 거기에 대고 냅다 소리부터 질렀다.

    -내가 진짜 <반짝반짝길>이후로 이런 결말은 난생 처음 본다! 어어, 이 자식이 웃어? 편집자님, 저 새끼 웃는데요?

    -웃는 게 아니라 당황해서 미친 것 같은….

    -됐어! 조준구! 너 합격이야, 다음부터 나와!

    -직접 옆에 두고 조진다!

    ……그 어이없는 면접 내용을 떠올린 지원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천우희 작가님이 좀 심하게 굴기는 했죠.”

    “심하긴 뭐가? 욕만 하고 떨어트린 것도 아니고. 붙여줬으니 된거 아닌가?”

    “무서워서 안 오면 어쩌려고요?”

    “안 오면 뭐.”

    천우희가 퉁명스럽게 대답했다.

    “자기한테 온 기회도 잡을 줄 모르는 바보 멍청이인 거지. 안 그래, 형우야?”

    “……다음 사람 들어오라고 할까요?”

    괜히 다른 사람 말다툼에 끼어들고 싶지 않았던 형우는 재빨리 말을 돌렸다.

    “다음 사람 누구죠?”

    “다음 사람이…… 보자보자.”

    지원은 그대로 태블릿 PC의 버튼을 눌렀다.

    “아, 이분! 형우 작가님이 뽑으신 분이네요. 정주현이요.”

    “그래요? 이거 기대되는데요.”

    형우가 자세를 바르게 고쳐앉았다.

    * * *

    이곳에 들어오기 전, 정주현은 몇 번이나 자신의 모습을 시뮬레이션했다.

    ‘어깨와 가슴은 빳빳하게 펴고, 허리는 90도로 폴더인사를 하는 거야. 매너 있는 모습으로!’

    하지만, 실전은 만만하지 않았다.

    “아, 아, 안녕하세요, 저, 정주혀현입니다……!”

    빳빳하게 펴진 것은 허리였고, 폴더처럼 접힌 것은 어깨와 가슴이었다.

    매너모드를 켠 휴대폰에 전화가 왔을 때처럼 온 몸이 부르르르 떨리는 것도 빼놓을 수 없었다.

    “정주현씨, 괜찮으세요?”

    “저, 저는 괜찮습니다! 저, 정말입니다!”

    그렇게 말하는 정주현의 볼이 파르르 떨렸다.

    “어릴 때는 자동차에도 치여 봤습니다! 열일곱 바늘을 꿰맸지요! 그러니 거, 거뜬합니다! 뽑아 주시면 차에 한 번 더 치일 수도 있습니다!”

    “그게 무슨…….”

    과포화라는 현상이 있다.

    손난로 같은 것에 쓰이는 과학적 원리인데, 과포화 상태의 물질은 겉으로는 안정되어 보이지만 약간의 충격만 주면 그대로 딱딱하게 굳으며 열을 내뿜는다고 한다.

    지금의 정주현처럼 말이다.

    “그, 그그그, 그러니까, 그게 마, 말입니다…….”

    볼에서 시작된 떨림이 어느새 온몸으로 번졌다.

    심장이 두근거리고, 숨이 빠르게 뛰었다.

    자칫하다가는 과호흡 증후군이나 패닉이 올지도 모르는 순간.

    “정주현 씨, 조금만 진정하세요.”

    따뜻한 말과 함께, 어느새 자리에서 일어난 형우가 정주현을 향해 뚜벅뚜벅 걸어갔다.

    “저희 예전에 한번 봤었죠? 시험장 앞에서요. 제가 물통을 빌려드렸었는데.”

    “어…… 혹시, 그 검은 모자?”

    “네. 기억하시죠?”

    주현은 곧 건물 앞 안내요원을 떠올렸다.

    그때는 모자에 후드티 차림이기는 했지만, 자세히 보니 둘이 같은 사람임을 알 수 있었다.

    “그때 시험 잘 보라고 했었는데, 진짜로 잘 보셨나 봐요. 면접까지 오신 걸 보니.”

    “그, 그러니까…….”

    주현이 머리를 긁적거렸다.

    “그러면…… 그때 안내해주시던 분이 참새치 작가님?”

    “맞아요. 저예요. 정주현 씨. 그래서 말인데, 제가 주현 씨에게 조언을 하나 드리려고 해요.”

    형우가 진지한 표정으로 주현을 바라봤다.

    “제가 다음에 하는 말은 좀 이해하기 힘들지도 모르시겠지만, 집중하고 잘 들으세요.”

    “……네.”

    “일단 들이마시고, 내쉬세요. 전문 용어로는 들숨 날숨이죠. 둘이 같이 하면 안 됩니다.”

    “들숨 날…… 예?”

    진지하게 듣던 주현의 표정이 이상하게 변했다. 그리고 곧,

    “푸흡!”

    하고, 웃음이 터져 나왔다.

    “…그게 뭐가 어려운 거예요?”

    “듣기 전에는 못 하는 것 같던데?”

    “그건 너무 긴장해서….”

    “지금은 아니죠?”

    “…어?”

    정주현은 자신의 손을 바라봤다.

    아까까지만 해도 손끝이 덜덜 떨렸었는데, 지금은 전혀 그런 기미가 없었다.

    그제야 주현은 형우의 말이 자신의 긴장을 풀어주기 위해서라는 것을 이해했다.

    “어…… 어, 죄송합니다.”

    “괜찮아요. 사람이 긴장하면 그럴 수도 있죠. 일다나 숨부터 쭉 쉬세요.”

    공황이란 건 익숙하지 않은 상황에서 온다. 폐쇄공포증이나 광장공포증처럼 말이다.

    그래서 형우는 자신과 정주현이 구면임을 강조했다. 이 곳이 결코 낯선 곳이 아님을 상기시켜주기 위해서였다.

    ‘먹혀서 다행이네.’

    일단 숨을 고르기 시작했으니, 이제 다시 비슷한 일을 겪지는 않을 테다.

    “저…… 혹시, 떨어지는 건가요?”

    잠시 후, 숨을 고른 정주현이 멋쩍게 물었다.

    “여, 역시 그렇겠죠? 회사라면 보통 긴장을 많이 하는 사람을 쓰고 싶지는 않을 테니까…….”

    “여기가 회사라면 그랬을지도 모르겠네요. 하지만. 저희는 회사원이 아니라 작가를 뽑으려고 하는 거니까요.

    걱정하는 주현을 향해, 형우가 미소지었다.

    “아직까진 세이프에요. 면접 다시 시작해 볼까요?”

    * * *

    “일단 첫 번째 질문부터 할게요. 본인이 어떻게 1차를 합격했다고 생각하세요?”

    잠시 고민하던 정주현이 조심스럽게 대답했다.

    “아마 1번 문제랑 2번 문제를 잘 맞혔던 게 아닌가 싶습니다.”

    “1번이랑 2번이요? 3번 문제는?”

    “3번은 틀렸을 것 같은데…… 아닌가요?”

    “그게…….”

    형우가 멋쩍게 볼을 긁적거렸다.

    “정확히 반대거든요. 3번만 맞췄습니다. 1번이랑 2번은 뭐랄까…….”

    “명명백백한 오답이었죠.”

    안재욱이 대신 대답해 줬다.

    “수상할 정도로 정확하게 틀리셨더라고요. 어쩌면 이렇게 정확하게 틀렸지? 싶을 정도였죠.”

    “2번도 마찬가지였어.”

    천우희가 고개를 도리도리 저었다.

    “스킬도 빵점, 참신함도 빵점. 그러면 어그로라도 있으면 좋을 텐데 그것조차도 빵점. 숫제 음식점에서 컵라면 나오는 느낌이었지 뭐야.”

    “커, 컵라면……!”

    그 직설적인 비난을 들은 주현의 표정이 순식간에 핼쑥해졌다.

    “정주현 씨, 괜찮으세요?”

    “괜찮습니다……. 제 걱정은 마세요. 오기 전에 청심환 먹고 왔거든요.”

    “죄송합니다. 이 작가님들이 원래 이렇게 말하시는 분들이 아니신데, 소설에 대해 말할 때는 좀 진중해지시는 분들이라서요. 페르소나가 강하다고 해야 하나.”

    “엥?”

    그 말에 반응한 건 천우희였다.

    “그 말을 네가 나한테 한다고?”

    “갑자기 왜요? 저 면접하잖아요. 방해 좀 그만 해요!”

    “아니, 페르소나는 네가 제일…….”

    투덜거리는 천우희를 슬쩍 밀어낸 형우는 헛기침을 두어 번 하고 다시 정주현을 바라봤다.

    “……아무튼, 저희가 정주현 씨를 뽑은 건 3번 답을 잘 써서입니다. 작가가 가장 잘 걸리는 병을 치질이라고 말한 부분이요. 사실 그게 정답이거든요.”

    자매품으로는 허리디스크와 젊은 나이에 오는 노안, 터널 증후군 등이 있다.

    “성공한 작가들은 대개 이런 병을 달고 삽니다. 운동선수들이 무릎 연골이 빠지는 것과 마찬가지죠. 제가 왜 이런 이야기를 하는 것 같으세요?”

    “잘… 모르겠습니다.”

    “겁을 주는 겁니다.”

    굳이 돌려 말하지 않았다.

    “꿈을 위한 로망은 언제나 좋죠. 하지만 로망은 멋지지 않은 것들을 하나도 알려주지 않습니다. 치질로 신음하거나, 혼잣말을 많이 하게 된다거나, 좁아진 인간관계 탓에 외로움을 자주 느끼게 된다는 것들 말이죠.”

    세상에 쉬운 일은 없다. 모든 일들은 저마다의 고충이 있는 법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고충이 알려진 직업과 고충이 알려지지 않은 직업은 분명 차이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작가라는 직업은 후자에 가깝죠.”

    운동선수를 꿈꾸는 사람들은 연골이 나갈 것을 각오하고 들어가지만, 작가를 꿈꾸면서 만성 치질로 입원하는 모습을 그리는 사람은 많이 없으니.

    “그 질문을 한 이유는 그거였어요. 저는 각오가 되어 있는 사람을 좋아하거든요. 그래서 말인데.”

    면접장에 들어온 이후 처음으로, 형우의 표정이 더없이 진지하게 변했다.

    “정주현 씨는 왜 글을 쓰고 싶다고 결심했죠?”

    그렇게 묻는 형우의 눈이 순식간에 싸늘해졌다. 그 눈빛을 본 천우희가 혀를 쯧쯧 찼다.

    ‘내 저럴 줄 알았지. 누가 누구보고 페르소나가 세다는 거야. 지가 제일 세면서.’

    그리고 동시에, 측은한 눈빛으로 정주현을 바라봤다. 작가의 페르소나를 뒤집어 쓴 형우는 천우희나 안재욱보다 더한 독설가가 되고는 했으니.

    ‘미리 엠뷸런스 불러야 하는 거 아냐?’

    그렇게 1분이 지났을 때.

    “저는…….”

    정주현의 입이 천천히 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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