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3
4월의 첫 번째 일요일.
원래라면 반쯤 비어 있어야 할 대학교의 교정이 휴일답지 않게 북적거렸다.
“……사람이 뭐 이리 많아?”
이제 갓 성인이 되었을까 싶은 남자, 정주현이 질린 듯이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이 사람들 중에서 150명만 뽑힌단 말이지.”
새삼 그게 얼마나 힘든 일인지 실감이 났다.
“아, 표지판 저기 있다.”
멀리 <스패로우 팩토리 아카데미 시험 전방 300m> 라고 써진 표지판이 보였다.
교정이 생각보다도 더 넓어서, 표지판이 없었으면 길을 찾는 데 꽤 고생했을 것이 분명했다.
‘역시 한국대학교라는 건가.’
3년 전, 그러니까 고등학교에 갓 입학했을 때만 해도 주현은 다른 1학년들이 그리하듯이, 한국대나 천하대, 태평대 같은 명문대에서 공부하기를 꿈꾸는 학생이었다.
‘뭐, 어떻게 한국대에 오기는 왔네.’
정확히는 거기 학생이 아니라, 그저 빌린 건물에 온 거기는 했지만, 아무튼 어디 가서 ‘나 한국대학교에서 시험 봤어!’라고 해도 아주 거짓말은 아니게 된 셈이다.
“그나저나 언덕…… 진짜 높네.”
한국대 졸업생은 허벅지 두께만 봐도 안다는 말이 허언이 아닌 모양이다. 겨우겨우 땀을 뻘뻘 흘리며 B동 앞에 도착했다.
“허억, 허억.”
“괜찮으세요?”
도착하자마자 한 남자가 주현에게 말을 걸어왔다. 검은 모자를 푹 눌러 쓴 남자였는데, 아무래도 안내요원인 것 같았다.
“물 드시겠어요?”
“아, 감사합니다.”
그대로 남자가 내민 물통을 벌컥벌컥 마셨다.
“아, 감사합니다. 안내요원이신가요?”
“아 네……. 일단은요.”
“그러면 여기가 짹카데미 시험 장소 맞나요?”
“짹카데미요?”
남자가 주현을 의아하게 쳐다봤다.
“지저귐 시험장소라면 여기가 맞기는 한데…… 사람들이 지저귐을 짹카데미라고 부르나 보죠?”
“어…… 예. 제가 듣기로는 그렇더라고요. 스패로우 팩토리의 상징인 참새랑 아카데미를 합쳐서 짹카데미! 아무래도 스카데미나 참카데미는 어감이 좀 별로니까 말이죠. 요즘은 줄임말 같은 게 유행하잖아요.”
“줄임말이라기엔…….”
의아한 표정으로 남자가 대꾸했다.
“오히려 글자 수가 한 글자 늘어났잖아요.”
“심리적 줄임말이죠.”
“심리적 줄임말?”
“네. 줄임말이라는 게 편하게 말하려고 있는 거잖아요? 지저귐보다는 아무래도 짹카데미가 훨씬 직관적이잖아요?”
그 말을 들은 남자가 약간 상처입은 표정을 지었다.
“저…… 지저귐이라는 이름이 별론가요?”
“별로까지는 아닌데, 좀 두루뭉술한 느낌이긴 하죠.”
“끄응……. 그냥 매니저님한테 제목 지으라고 할걸. 지금이라도 이름을 바꿔야 하나?”
곤란하다는 듯 남자가 머리를 벅벅 긁었다.
“아무튼 정주현 씨는 4층으로 올라가시면 돼요. 세 번째 시험장입니다.”
“아, 감사합니다!”
그대로 정주현이 문에 들어가려는 찰나.
“저기요, 정주현 씨?”
남자가 말을 걸어왔다.
“방금 말씀하신 심리적 줄임말이라는 거 있잖아요, 그거 혹시 원래 쓰는 말인가요?”
“어…… 아닐걸요?”
정주현이 고개를 저었다.
“그냥 방금 생각나서 한 말이예요. 어디서 본 걸 수도 있긴 한데, 기억나는 건 없네요.”
“생각해 낸 표현이라.”
모자 아래로 남자의 웃는 입이 보였다.
“엄청 좋은 표현이었어요.”
“정말요?”
칭찬을 들은 주현의 표정이 확 밝아졌다. 그런 주현을 보며 남자가 손을 흔들었다.
“오늘 시험 힘내시고요. 아마도 잘 보실 수 있을 거예요.”
“예. 말씀 감사합니다.”
“그럼, 파이팅!”
남자의 응원을 받은 주현이 뜀박질하듯 계단을 올라갔다.
“이제 슬슬 다 왔나?”
뛰어 올라가는 주현을 보며 남자는 모자를 벗었다.
“억지를 써서 안내요원까지 했는데, 시간까지 어기면 혜선이가 가만있지 않겠지?”
그렇게 중얼거린 남자, 형우는 그대로 시험장까지 뛰어 올라갔다.
* * *
“시험시간은 앞으로 2시간이고, 먼저 끝난 사람은 빠르게 제출하고 나가셔도 좋습니다.”
그 말을 끝으로 감독관은 자리에 앉았다.
꿀꺽.
시험장 여기저기서 침 넘기는 소리가 들려왔다.
시험을 감독하는 사람이 다름 아닌 서지원인 까닭이었다.
‘저 사람이 바로 손대는 작가마다 성공시킨다는 그 전설의 편집자구나.’
나도 저 사람의 손에 뽑히고 싶다!
그곳에 모인 사람들의 눈에 불꽃이 튀었다. 정주현 또한 예외는 아니었다.
‘1차 시험은 분명 300명을 남긴다고 했어. 750명 중의 300명이면, 해볼 만해!’
주현의 눈빛이 시험지에 구멍이라도 낼 듯이 이글이글 빛났다. 얼마 전에 봤던 수능에서조차 이 정도 집중력을 발휘해 본 적은 없었다.
그대로 첫 번째 문제 속으로 고개를 처박았다.
Q1. 최근에 가장 감명 깊게 읽었던 웹소설 하나의 제목을 적고, 거기에 대한 생각을 2,000자 내외로 서술하시오.
(단, 스패로우 팩토리에서 출판된 소설은 제한다.)
독후감이라.
그야말로 웹소설 아카데미스러운 문제였다. 문제를 보자마자 주현의 볼펜이 빠르게 답안지 위를 누볐다.
‘스패로우 팩토리 작품을 빼고 가장 좋아하는 작품이라……. 당연히 <타이레놀 먹는 천재 도적>이지!’
스팀펑크 풍의 세계관에서 총을 쏘며 적을 죽이는 만성 두통의 시크한 도적!
정주현은 신나서 줄거리를 줄줄 적어 내려갔다.
주인공이 게임 속으로 들어간 일, 몸이 약해서 약을 먹는 것, 점점 강해지는 것, 악당을 처리하는 것, 카르텔의 수장이 된 일…….
‘……어라?’
그러다 보니 2,000자를 훌쩍 넘겼다. <타이레놀 먹는 천재도적>의 줄거리를 표현하기에 2,000자는 부족해도 너무 부족했다.
‘그냥 좀 더 적지 뭐!’
원래 분량이란 건 대충 쓰는 놈들 때문에 최소분량이 있는 거 아니겠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혹시 모르지. 많이 쓰면 노력이 가상해서 가산점이라도 더 줄지?’
그대로 슉슉-
삼천 자, 사천 자를 넘어 거의 오천 자를 썼을 때 1번 문제를 끝낼 수 있었다.
‘좋아, 좋아!’
그대로 콧김을 훅 뿜은 정주현은 2번 문제로 넘어갔다.
Q2. 판타지, 레이드물, 로맨스물 중 하나의 장면을 구상하고, 2,000자 내외로 짧게 완성하시오.
(이전에 본인이 연재한 소설을 써도 상관없으나, 타인의 작품 도용은 불허함.)
‘휴우, 다행이다!’
괄호 안에 문장을 본 주현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만약 여기서 구상까지 하라고 했으면 좀 막막했을 텐데, 다행히 예전에 연재했던 소설의 내용을 적어도 괜찮다고 했다.
‘전에 썼던 소설 중 제일 재밌었던 부분이…….’
지금 생각나는 부분은 두 부분이다.
‘첫 번째는 주인공이 기연을 얻는 부분이고.’
몇 안 되는 독자들의 호평을 받았던 부분이다.
‘그리고 두 번째는…….’
주인공이 자신의 이득을 위해 지금까지 도와줬던 삼촌을 독살하는 부분이었다.
여기는 호불호가 굉장히 많이 갈렸다.
-아니, 아무리 그래도 삼촌을 죽임?
-주인공 진짜 싸패련이네?
같은 부정적인 의견도 많았고.
-아니 저기서 삼촌을 죽이네;
-막 나가는 주인공 좀 괜찮은 것 같기도?
같은, 긍정적인 의견도 많았다.
“흐음…….”
잠깐 고민하던 정주현은 결론을 내렸다.
‘모난 돌이 정 맞는다잖아. 평범하게 가자.’
그대로 주인공이 기연을 얻는 장면을 쭉쭉 써 내려 갔다. 그렇게 답을 다 썼을 때였다.
“시험시간 3분 남았습니다!”
감독관의 목소리가 시험장 안에 울러퍼졌다. 주현이 숨을 헉, 하고 들이쉬었다.
‘벌써 3분밖에 안 남았다고?’
1번과 2번 문제에 너무 많은 시간을 쏟아버렸다.
‘큰일 났다!’
정주현이 재빨리 3번 문제로 눈을 돌렸다.
만약 3번 문제가 앞선 문제처럼 생각을 많이 요구하는 문제라면, 시간 오버로 써보지도 못하고 탈락할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이건?”
3번 문제를 본 주현의 눈이 크게 떠졌다. 문제는 간단했고, 심지어 단답형이었다.
Q3. 작가가 가장 잘 걸리는 병은 무엇일까요?
문제의 의도라던지, 오랜 고민 따위를 할 생각은 없었다.
“시험시간 1분 남았습니다! 마무리 해 주세요!”
주현의 심장이 쿵쿵 뛰었다.
‘에라 모르겠다!’
고민할 시간 따위는 없었다.
될대로 되라는 심정으로, 주현은 그냥 자신이 직접 겪었던 질환을 적었다.
그대로 펜이 종이에서 떨어지는 순간,
삐이이이이익-!
시험 종료 소리가 들렸다.
* * *
시험이 끝난 후의 스패로우 팩토리 사무실.
김형우, 천우희, 안재욱, 서지원, 신혜선, 서민홍의 여섯 명은 700장의 시험지를 두고 옹기종기 모여앉았다.
“와, 이 구민효라는 사람. 1번 진짜 잘 썼네요.”
“1번 문제가 가장 좋아하는 소설을 감평하라는 거였죠? 안재욱 작가님이 직접 내신 문제잖아요.”
“그렇죠.”
서민홍의 말에 안재욱이 고개를 끄덕거렸다.
“<타이레놀 먹는 천재 도적>을 가지고 답을 썼던데, 이 사람, 완전 천재인 것 같아.”
“어떻기에 그래요?”
“직접 보실래요?”
안재욱이 서민홍에게 답안지를 내밀었다. 서민홍이 천천히 그 답안지를 읽었다.
[위 소설에서 가장 특징적인 건 세계관의 결합이다. 느와르도, 스팀펑크도, 게임 시스템도 웹소설에서는 그리 드물지 않은 소재이지만. 그 셋을 섞어서 쓴 작품은 내가 알기로 <타이레놀 먹는 천재 도적>이 유일하다. 평범한 것들을 섞어서 평범하지 않게 만드는 그 스킬이야말로, 위 작품의 가장 괄목할만한 점이다. 그 부분을 세세하게 따져보자면….]
“과연, 잘 쓰기는 했는데….”
서민홍이 고개를 살짝 꺾었다.
“그냥 평범한 수준 아닌가요? 안재욱 작가님이 그렇게 극찬할 정도인가?”
“뭐… 그렇게 생각하실 수도 있는데. 제 생각은 좀 다르거든요. 뭐랄까, 이 사람은 꼭 제 속을 꿰뚫어 본 것 같다고 해야 하나.”
“속이요?”
“네. 사실 문제를 낼 때 문제 속에 힌트를 약간 숨겨뒀었거든요. 여기요.”
안재욱이 가리키는 것은 ‘스패로우 팩토리의 소설은 제외한다.’라는 주의사항 문구였다.
“이 말을 왜 넣었는지 기억하세요?”
“형평성을 위해서죠.”
작가들이란 자기 작품을 사랑하는 사람들이다.
그런 작가들이 ‘가장 좋아하는 작품’에 자기 작품을 떡하니 적어놓은 사람을 보면 당연히 호감이 갈 수밖에 없는 일이니.
“그런 걸 미연에 방지하려고 넣은 거잖아요.”
“맞아요. 그러니까 눈치 빠른 사람이라면 이것만 보고도 심사위원이 작가라는 걸 알 수 있다는 거지요. 서민홍 편집자님. 편집자님이 심사위원에 정체를 알았다면 어떻게 하실 것 같으세요?”
“……그 사람에게 맞춤 답안을 쓰겠죠. 이제야 왜 이 답안지를 그렇게 칭찬했는지 알겠네요.”
서민홍이 고개를 끄덕거렸다.
독자나 편집자라면 타 작품의 줄거리를 흥미 있게 읽을지도 모르는 일이지만, 작가는 좀 다르다.
작가가 주로 보는 건 소설의 줄거리가 아니라, 소설의 성공 요인이다. 다른 소설과 차별화되는 점 같은 부분 말이다.
‘그렇게 보자면, 확실하게 만점이군.’
소설의 줄거리는 단 한 줄도 넣지 않고, 소설의 전략만 2,000자로 설명한 셈이니. 자신의 속을 꿰뚫어 본 것 같다는 안재욱의 말도 과장이 아니었던 셈이다.
“게다가 더 놀라운 건 2,000자를 딱 맞췄다는 거죠. 거의 강박적인 수준으로.”
“그 부분은 저도 바로 이해하겠네요.”
작가는 규격에 집착한다. 한 편에 5,500자에서 6,500자라는 말이 괜히 생긴 게 아니다.
그보다 길어지면 작품이 루즈해지고, 그보다 적으면 독자들이 만족하지 못하는 걸 알기에 그렇게 하는 것이다.
“2번, 3번은 볼 필요도 없겠네요. 이 정도면 합격을 줘도 되겠죠?”
“물론입니다.”
안재욱이 ‘합격’이라는 폴더 안으로 구민효의 답안지를 집어넣었다.
“저도 한 명 있어요.”
그 뒤를 이은 건 천우희였다. 천우희가 낸 건 직접 2,000자의 소설을 쓰는 2번 문제였다.
“이 조준구라는 사람, 무조건 합격시켜요.”
“왜요?”
“얼굴 보려고.”
천우희의 표정이 반쯤 분노한 것처럼 보였다.
‘……대체 뭘 썼기에?’
조준구가 쓴 소설의 내용은 단순했다. 주인공이 게임 속으로 들어가고, 기연을 얻고, 게임을 클리어해나가다가…….
[정민아, 일어나야지! 아침이야! 등교 시간이란다!]
꿈으로 끝났다.
…엥?
“이게 왜 갑자기 이렇게 되는 거죠?”
“저도 몰라요.”
천우희가 무시무시한 얼굴로 싱긋 웃었다.
“그래서 물어보려고요.”
“그, 그게 합격 이유에요?”
“기껏 몰입해서 읽고 있는데 이딴 식으로 끝내? 내 옆에 두고 조진다.”
“아무리 그래도…….”
“놔둬요.”
서민홍을 제지한 건 지원이었다.
“아예 평범한 것보다는, 저렇게라도 이목을 끄는 작가가 더 좋은 작가 아니겠어요?”
“맞아요 언니. 내 말이 그 말.”
꿈보단 해몽이었지만, 그 해몽을 하는 사람이 자신의 상관과 출판사 대표작가라면 사슴 보고 고라니라고 해도 맞다고 하는 수밖에 없었다.
“……저도 한 명 찾은 것 같아요.”
그다음에 손을 들어 올린 건 형우였다.
“정주현이라는 사람이 쓴 건데. 두 분 말 들어 보면 1번이랑 2번은 완전 오답이네요.”
정주현의 1번 답은 줄거리만 주구장창 쓴 데다 분량까지 오버했고, 2번에는 딱히 시선이 가지 않는 그저 그런 평범한 이야기를 썼다.
“하지만 제가 낸 3번은 완벽하게 맞췄어요.”
“3번이라면…… 작가가 걸리는 병이요?”
“네.”
정주현이 쓴 답은 단 두 글자였다.
[치질]
“이건 직접 겪어본 사람 말고는 모르거든요. 치질 걸릴 만큼 오래 앉아 있을 수 있는 사람이면.”
형우가 씩 웃었다.
“오래 굴릴 수 있다는 거죠.”
“아무리 그래도…….”
서민홍이 조심스럽게 반박했다.
“저희가 시험을 보는 게, 좋은 작가를 찾기 위해서지 않습니까? 근데 이거 하나로는 아무것도 알 수 없는데요.”
“에이, 매니저님. 세상에 처음부터 괜찮은 작가가 어딨어요?”
“예?”
“뗀석기도 갈다 보면 간석기 되는 거고, 거기에서 더 갈아서 불 지르면 철기 되는 거 아니겠습니까?”
안재욱의 문제가 똑똑한 작가를 선별하기 위함이었고, 천우희의 문제가 센스 있는 작가를 선별하기 위함이었다면.
“치질 세 번 걸릴 정도로 진득하게 엉덩이 붙이고 있으면 말이죠, 누구라도 괜찮은 거 하나는 써낼 수 있단 말입니다!”
형우의 문제는 오로지, 근성 있는 사람을 선별하기 위한 문제였던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