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환상을 쓰겟다-153화 (153/200)
  • #152

    “이제 시작이네요.”

    지원이 날카로운 시선으로 자료들을 살폈다.

    그 앞에 선 혜선과 서민홍 또한 긴장하기는 매한가지였다.

    ‘지난 일주일, 진짜 죽을 뻔했죠?’

    ‘맞아요. 오늘 보니 살이 5kg이나 빠졌던데. 혜선 씨는요?’

    ‘저는 오히려 3kg 쪘는데… 이왕이면 반대로 해 주지. 신은 없나 봐요.’

    ‘그러게나 말입니다.’

    자료를 몇 번이나 검토하던 지원이 만족스럽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거렸다.

    “정부 지원사업으로 방향을 잡은 건 진짜 신의 한 수였던 것 같네요. 고생하셨습니다. 서민홍 매니저님.”

    “예전에 한번 해본 적이 있었거든요.”

    서민홍이 고개를 끄덕거렸다.

    대한민국 최초의 웹소설 지원사업은 지금으로부터 10년 전에 있었던 M사의 <창작스쿨>이라는 작가 양성 사업이었다.

    “그 사업이 성공한 후부터는, 의외로 문체부에서 작가 양성 사업에 지원을 많이 해 주거든요. 마침 그쪽에 아는 사람도 있었고.”

    “유동현 작가님이요?”

    “맞습니다.”

    지원은 문체부 장르문학 관련 자문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는 한 노작가의 얼굴을 떠올렸다.

    “잘 계시던가요?”

    “단 걸 너무 많이 드시는 것만 빼면요.”

    “뭐, 그래도 하루에 양치 세 번 하시고 산책 한 시간 하신다니까. 여간한 작가들보다 나을 거예요.”

    “그건…… 그렇죠.”

    서민홍이 고개를 끄덕였다.

    자기관리에 소홀한 작가님들은 하루에 담배 두 갑을 태운 후 양치도 안 하고 잠에 들기도 한다.

    “그 상태로 카페에 나가서 글을 쓰다가 쫓겨나기도 하고, 그런 주제에 난동 피우다가 소문 쫙 깔려서 출판사 위신 깎아 먹기도 하고… 으윽, 내가 그때 생각만 하면…!”

    “사장님! 진정하세요! 진정!”

    “으으윽…!”

    뒷목을 붙잡는 지원을 서민홍이 부축했다.

    지친 사람에게 가장 먼저 사라지는 것은 여유와 절제인 법이니. 이럴 때일수록 고혈압을 조심해야 하는 법이다.

    “…아무튼.”

    잠시 후, 정신을 차린 지원이 말을 이어나갔다.

    “모집공고에는 몇 명이나 신청이 왔죠?”

    “그게….”

    서민홍이 조심스럽게 말했다.

    “칠백 명 정도입니다.”

    “칠백 명이라. 생각보다 많이…… 뭐라고요? 칠백 명?”

    당황한 지원이 소리를 높였다.

    “칠백 명이라고요? 칠십 명이 아니라?”

    “칠백 하고도 오십 두 명 더 있네요.”

    혜선이 덧붙였다. 지원의 눈이 툭 튀어나올 듯 커졌다.

    “……그렇게 많으면 문제가 좀 생기는데.”

    지원의 얼굴에 순간적으로 두 개의 표정이 스쳤다. 첫 번째는 역시 네임벨류에 대한 기쁨이다.

    하지만 대개의 경우 기쁨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 뭔가에 너무 기뻤던 나머지 방방 뛰다가 고꾸라져서 변을 당했다는 이야기는 다윈상 수상 목록 외에는 보기 힘든 부분이니까. 문제는 다른 데에 있었다.

    “……수용이 될까요?”

    역시, 가장 큰 문제는 장소 문제였다.

    강남에 위치해 있는 우리나라 최대의 입시 학원인 D 모 학원의 경우, 1,500명의 수강생을 수용하기 위해 6층짜리 빌딩을 하나도 아니고 두 개나 짓지 않았던가.

    “단순히 계산하면 칠백 명을 수용하기 위해서는 6층짜리 빌딩이 하나는 있어야 하는데…….”

    이번에 한국대학교에서 빌린 건물은 총 수용 인원 50명의 강의실 세 개다.

    그마저도 예상치를 좀 크게 잡았다고 생각했다.

    “저희가 애초에 생각한 게 백 명 정도였죠?”

    “맞아요. 동네에서 좀 크게 하는 학원의 학생들이 대충 그 정도 숫자니까요.”

    “그마저도 너무 많이 잡은 것 같아서 좀 줄여야 하나 고민했었는데…….”

    안 줄여서 다행이라고 하기에는, 그래도 숫자가 너무 많다.

    기존에 생각했던 인원의 일곱배도 넘는 숫자가 아닌가.

    ‘내가 뭔가를 실수했나?’

    C&N에서 오래 일했던 지원과 서민홍도 아카데미 사업을 벌인 건 처음이다.

    잘 나가는 출판사라 작가들이 알아서 찾아오는데, 뭐하러 번거롭게 아카데미 같은 걸 하겠는가?

    “그래서 실수를 했을지도…….”

    “아뇨. 실수는 없었어요.”

    혜선이 단호하게 말했다.

    “누구라도 이 이상으로 견적을 내진 않았을 거예요.”

    “그야 그렇지만.”

    사회란 오묘해서 실수가 오히려 이득이 되어 돌아오기도 하고, 실수를 하지 않았기에 일이 꼬여버리기도 한다. 지금은 딱 후자의 상황이었다.

    “갑자기 사람이 이렇게 몰린 이유가 뭘까요?”

    “아마 형우랑 천우희 작가님 덕분이 아닐까요?”

    혜선이 똑똑해 보이는 표정을 지었다.

    “보통 아카데미를 한다고 해도 현업 작가가 하는 일은 보통 드물거든요. 해도 이벤트 성인 경우가 대부분이고요.”

    하지만 스패로우 팩토리의 강사진은 전부가 한 달 전까지만 해도 작품을 연재하는 현역들이다.

    “……같은 작가라고 해도 사람들은 아무래도 전직 작가보다는 현업 작가를 좀 더 믿을만하게 본다는 거죠.”

    특히 그게 요즘 한창 꽃가루마냥 끗발을 날려 대는 김형우와 천우희라면 더더욱.

    “거기에 안재욱 작가님까지 있잖아요.”

    “그렇긴 한데, 그것만으로 보기에는 지나치게 많은 인원인 것 같은데. 칠백 명이면 전국의 지망생 중 절반이 모여들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잖아요?”

    최근에 열린 M사의 공모전을 보면, 총 3,000작품이 시작해서 그 절반인 1,500작품 정도가 살아남았다. 그러니 지망생의 절반-이라는 지원의 말은 어느 정도는 일리가 있는 말일 테다.

    “그건 제가 대답을 할 수 있을 것 같은데요.”

    서민홍이 태블릿 PC를 톡톡 건드려 화면 하나를 띄웠다.

    “이게 뭐지요?”

    “한국 대학교에서 온 요청입니다. 아카데미에 자기네 학생들을 좀 넣을 수 있냐고 묻더군요.”

    “에엥? 한국대학교에서요? 직접?”

    지원의 눈이 아까보다 두 배로 커졌다.

    한국대학교가 어디인가?

    학과장인 한다은이 장르소설 과도 아니고 장르소설 과목을 하나 추가하겠다고 했을 때도 이를 악물고 일어났던 곳이 한국대학교라는 곳이다.

    은사였던 천병옥에게 들어 보니, 이번에 스패로우 팩토리에 대한 건물 대여 건으로도 꽤 말이 많았다고 들었다.

    “이번 건만 해도 총장님에 문창과 교수님 둘이 밀어붙여서 겨우 통과했다고 들었는데, 지난 며칠 사이 대체 무슨 변덕이 불었대요?”

    “그게 아마….”

    잠시 고민하던 서민홍이 대답했다.

    “최윤희 작가님 덕분이 아닐지.”

    “아하.”

    지원이 고개를 끄덕거렸다.

    “최윤희 작가님 건이라면…… 그럴 만하죠.”

    며칠 전, 스패로우 팩토리- 정확히는 스패로우 팩토리에서 운영하는 스페셜 위크에는 커다란 호재 하나가 있었다.

    최윤희의 신작 웹소설이 연재되기 시작한 것이다.

    “그렇게 잘 쓰실 거라고는 상상도 못 했는데.”

    “중고신인의 무서움이죠.”

    처음에 순문학 작가인 최윤희가 웹소설을 쓴다고 했을 때, 지원은 기대보다는 불안을 먼저 느꼈다.

    ‘잘 쓰실 수 있을까?’

    성공해서 얻을 것보다는 실패했을 때 잃을 게 더 많은 상황이었다.

    하지만, 지원의 그 생각은 최윤희가 보내준 <변덕스러운 황녀님!>의 초고를 읽는 순간 싹 사라졌다.

    ‘이거… 진짜 웹소설 처음 써 본 거 맞아?’

    미리 예고했던 대로 <변덕스러운 황녀님>은 성애 소설, 그러니까 19금 소설이다.

    보통 19금 소설이라고 이야기하면 사람들이 떠올리는 것들이 있다. 끈적끈적한 애증 관계나, 팜므파탈, 혹은 SM 같은 것들 말이다.

    ‘하지만… 여기에는 그런 느낌이 없어.’

    오히려 통통 튀고 재기발랄하다.

    그 이유는 쉽게 찾을 수 있었다.

    ‘주인공이 젊어.’

    최윤희의 소설 주인공의 나이는 20세.

    성애소설의 주인공이 되기에는 약간 거부감이 느껴지는 나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최윤희는 그런 고정관념을 비웃기라도 하듯 주인공의 나이를 20세로 설정했다.

    -성애라는 게 꼭 끈적하고 은밀할 필요는 없잖아요? 따지자면 자연스러운 거고, 성인이라면 누구나 할 수 있는 건데.

    어떻게 보면 누구나 할 수 있는 단순한 생각이다.

    이 단순한 생각을 소설 속에서 표현한 방법 또한 간단하기 그지없다. 그저 주인공의 나이를 다소 낮췄을 뿐이다.

    하지만, 그 효과는 결코 작지 않았다.

    ‘1%의 특별함이 99%의 평범함을 평범하지 않은 것으로 만든다.’

    흔히 말해지는 웹소설의 공식을, 최윤희는 자신의 소설을 통해 완벽하게 증명하고 있었다.

    ‘…이건 뭐, 센스가 엄청나다고 해야 하나.’

    가끔 그런 사람이 있다.

    축구든 농구든 탁구든, 손만 대면 다 평균 이상으로 잘해 버리는 사람.

    <슬램덩X>의 강백호를 보면 농구를 배우자마자 천부적인 운동신경을 발휘해서 그대로 덩크슛을 꽂아버리지 않던가.

    최윤희의 소설에서 느껴지는 느낌이 딱 그랬다.

    천우희가 로맨스의 달인이고, 형우가 웹소설의 장인이라면. 최윤희는 그냥 소설을 잘 쓴다.

    “최신화 구매 수가 얼마였죠?”

    “2만 정도요.”

    “2만이라…….”

    형우의 <아이언 타이거>나 천우희의 <쓰면 예뻐지는 안경>에 비하자면 절반에 겨우 미치는 정도였지만, 19금이라는 걸 감안하면 실로 어마어마한 수치다.

    “지금 매출표 보면, 판무랑 로맨스 다음으로 높은 게 19금 부문이던데요? C&N있을 때도 이런 건 본 적이 없는데.”

    3사 플랫폼에도 19금 카테고리가 있기는 하지만, 보통 19금 소설이 대박을 치는 경우는 많지 않다. 애초에 독자 수가 크지 않기 때문이다.

    멀리 갈 필요도 없이 영화만 봐도, 청불영화가 천만을 돌파한 사례는 없지 않은가.

    “……유료화 성공 후부터는 SNS에 글도 많이 올리시더라고요.”

    샤넬 향수로 시작해서

    독일 브랜드에서 산 유모차.

    남편에게 선물한 롤렉스 시계 등등….

    “플렉스를 좀…… 많이 하셨죠.”

    “스패로우 팩토리 칭찬 글도 많이 쓰셨고, 웹소설 쓰는 게 재밌다는 이야기도 자주 하시고요.”

    그제야 이해한 지원이 고개를 끄덕거렸다.

    대단한 사람을 숨풍숨풍 쏟아내는 한국대학교지만, 그중에서도 최윤희는 학교의 명예를 다섯 배는 올려 주는 대단한 인물이다.

    “그런 사람이 갑자기 장르문학에 호의적인 시선을 쭉쭉 보내버리니 학교 쪽에서도 고민이 많았겠군요.”

    “한국대학교가 장르문학을 배척한다는 이야기가 나오면 당연히 ‘그러면 최윤희도 배척하는 거냐?’라는 이야기도 함께 나올 수밖에 없으니까요.”

    그리고 결국, 한국대학교는 순문학의 마지노선이라는 허울뿐인 명예 대신 최윤희를 택했다.

    “……그래서 칠백 명이군요.”

    현직 작가로 이루어진 강사진에, 명문대학교의 푸쉬, 거기에 ‘최윤희가 있는 출판사’라는 타이틀까지. 성공할 이유가 많아도 너무 많았다.

    “혜선씨. 한국대학교 나왔죠?”

    “네.”

    “저희가 빌린 건물에 칠백 명 수용이 될까요? 아니면 추가로 빌린다던가?”

    “어림도 없죠.”

    혜선이 고개를 저었다.

    “칠백 명을 다 수용하려면 건물을 빌리는 게 아니라 후배들을 쫓아내야 할걸요. 설령 가능하다 해도 재정적인 여력도 없고요.”

    “칫.”

    지원이 아쉽다는 듯 혀를 찼다.

    작가가 늘어나고 소설들이 성공하면서 규모가 커진 스패로우 팩토리었지만, 버는 족족 사업비로 들어간 탓에 운용 가능한 자산은 쥐꼬리만큼밖에 없었던 것이다.

    “……수강생들한테 돈을 받을 걸 그랬나 봐요.”

    “그랬으면 국가지원사업은커녕, 대학교 건물도 못 빌렸을 걸요? 그것들 다 장사가 아니라 교육사업이라고 해서 따낸 건데.”

    “아쉬워서 그냥 해 본 소리죠. 에휴, 그러면 결국 수강생을 줄여야 한다는 건데.”

    지원이 아깝다는 듯이 머리를 긁적거렸다.

    “면접이라도 봐야 할까요?”

    “…작가를 어떻게 면접으로 뽑아요? 글을 봐야 알지.”

    “그것도 좀 그래요. 칠백 명이 넘는 사람 글을 다 보기에는 저희 인력이 부족하거든요. 차라리 시험을 보는 건 어때요?”

    서민홍의 의견에 혜선이 격하게 동의했다.

    “그거 좋네요! 문제만 잘 낸다면 괜찮을지도?”

    “시간도 절약되고 인원도 많이 필요가 없죠. 저희끼리 말고, 다른 작가님들도 모셔서 의논해 보는 게….”

    열띤 토론의 현장을 보며, 지원이 슬쩍 웃었다.

    ‘오려는 사람이 너무 많아서 덜어낸다니.’

    더없이 행복한 고민이다.

    최윤희와 한국 대학교와 아카데미 사업.

    일견 보기에는 관계없어 보이는 것들이, 한순간에 꽉 묶여 스패로우 팩토리에 긍정적인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었다.

    게다가 더 놀라운 것은, 이 묘한 기류를 만들어 낸 것은, 이곳에 모인 직원들이 아니라 이 자리에 없는 한 작가라는 점이다.

    지원은 그대로 어딘가로 전화를 걸었다.

    -여보세요?

    언제 들어도 편안한 목소리가 지원을 반겼다.

    “여보세요, 예. 형우 작가님. 네, 다름이 아니라 이번 아카데미에 지원한 사람이 많아서 시험을 좀 볼까 하는데, 거기에 관련해서 의논할 게 좀….”

    수화기를 들고 있는 지원의 표정에 편안한 미소가 서서히 번져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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