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1
“그러니까….”
지원이 벙벙한 표정으로 형우를 바라봤다.
“휴식 기간에 신작을 구상하느라 논산을 다녀오고 거기에 대학교까지 들러서 아카데미 장소까지 빌려 왔다고요?”
“넵!”
“작가님. 그게요….”
휴식 기간 동안 형우의 행적을 듣는 지원의 표정은, 기쁘다기보다는 오히려 약간 화가 난 듯이 보였다.
“그게 휴식이에요?”
본래라면 몇 번이고 고맙다고 하는 것이 맞지만, 지원은 결코 그럴 수가 없었다.
“제가 분명히 말했잖아요. 이대로 무리하시면 저번처럼 쓰러지신다고요!”
“무리요? 무리한 적은 없는데요?”
이해할 수 없다는 듯 형우가 되물었다.
“저 완전 푹 쉬었어요! 꿀 같은 휴식이었는데요?”
“그게 무슨 휴식이에요? 출장근무 다녀온 거지!”
“평소보다 일을 적게 했으니 휴식 맞잖아요? 자, 보세요!”
형우는 자신의 얼굴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얼굴부터 좋아졌다고요!”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
쏘아붙이던 지원의 말이 턱 멈췄다.
분명 말이 안 되어야 하는데…….
‘……뭐지?’
다크서클도 없어졌고, 살도 조금 올랐다.
저번이 피곤에 찌든 개기름으로 지저분해 보였다면, 오늘 형우의 얼굴은 마치 잘 닦은 조선백자처럼 윤기가 좔좔 흘렀다.
누가 봐도 좋은 공기 마시면서 좋은 것 먹고 근심 걱정 없이 푹 놀고 온 사람 얼굴이었다.
‘……이건 말이 안 되는데? 진짜 그걸 휴식이라고 생각한단 말야?’
그 순간 지원의 머릿속에 떠오른 것은 예전에 봤던 미국의 호러작가 스티븐 킹의 인터뷰였다.
-킹 작가님은 휴식할 때 뭘 하십니까?
-단편소설을 쓰지요.
-그건 일이잖아요?
-일할 때는 장편소설을 씁니다.
-글을 안 쓸 때는 그럼 뭘 하시죠?
-저야말로 궁금한데요. 다른 작가들은 글을 안 쓸 때 대체 뭘 한답니까?
그 인터뷰를 봤을 때는 그냥 과장 섞인 방송용 인터뷰 정도로 생각했던 지원이지만, 지금 형우의 모습을 보면 생각을 고쳐먹을 수밖에 없었다.
‘그런 사람이…… 진짜 있네.’
등잔 밑이 어둡다더니.
지원이 믿을 수 없는 표정으로 형우를 바라봤다.
본인이 휴식이라고 생각한다는데, 지원이 가서 ‘그건 휴식이 아니야!’ 라고 윽박지르는 것도 너무 이상한 그림이 아닌가?
“알겠습니다. 그래도…….”
뭔가 맥이 탁 풀려버린 지원이었지만, 해야 할 말은 확실하게 했다.
“……다음에 이런 일을 하실 때면 저희한테 말씀 좀 하고 해 주세요. 면목이 없어지잖아요. 원래 저희가 했어야 하는 일인데, 제가 부족해서 괜히 적가님한테…….”
“에이!”
그 순간, 형우가 지원의 말을 억지스럽게 끊어냈다.
“지금 또 미안하다고 하려고 했죠?”
“그게…….”
“편집자님, 제가 여기저기 다니는 동안 편집자님은 놀거나 편하게 쉬거나 했었나요? 아니죠?”
형우가 지원을 가만 바라봤다.
“스스로 열심히 안 했다면 모를까, 열심히 했다면 누군가에게 미안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해요.”
형우가 씩 웃었다.
“그러니까, 죄책감을 느낄 필요는 없어요.”
“죄책감이요?”
“저는 이왕이면 매니저님한테 미안한 사람보다는 고마운 사람이 되고 싶거든요.”
지원은 자신도 모르게 멍하니 형우를 바라봤다. 그 시선에 의아함이 묻어났다.
‘고마운 사람이라.’
사람들은 보통 고마운 사람보다는 미안한 사람이 되고 싶어한다.
속죄는 흔하지만 보은은 흔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런데 작가님은 정 반대시네요.”
미련한 건가? 아니면 순진함?
‘둘 다 아니지.’
이건 배려다.
질척거리며 달라붙는 죄책감 대신 발음하기만 해도 따뜻해지는 배려.
때맞춰 열린 창문으로 바람이 불어 들어왔다.
“그거…… 완전 마음에 드네요.”
“그 말도 오랜만에 듣는 것 같네요?”
눈이 마주친 둘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동시에 싱긋 웃었다.
“작가님. 저희가 만난 게 작년 이맘 때였죠?”
“어라, 아직 1년밖에 안 됐나요?”
“일이 하도 많았어야 말이죠.”
게으름뱅이는 느리게 움직이지만 빠르게 늙는다.
하는 게 없기에 하루하루는 더디게 가지만, 그렇게 살다 보면 어느새 1년이 지나가 있다는 뜻이다.
“반대로, 부지런한 이들은 빠르게 움직이지만 천천히 늙는다고 하죠.”
바쁜 하루하루가 모여, 충실한 1년이 된다. 그리고 충실한 1년의 밀도는 지금까지 살아왔던 모든 삶들을 통틀어 가장 묵직하고도 든든했다.
“이번 프로젝트, 성공하겠죠?”
“당연하죠.”
형우의 질문에, 지원이 고개를 끄덕거렸다.
“다들 열심히 하고 있으니까요. 지금 혜선 씨도 천우희 작가님 설득하러 갔고, 서민홍 매니저님도…… 아! 서민홍 매니저님도 공동대표 직함 다셨다는 이야기 했던가요?”
“오호, 서민홍 매니저님이요?”
“네. 얼마나 열심히 하시는데요! 덕분에 아카데미 프로젝트도 착착 진행되는 중이고요. 아, 그나저나 저희 아카데미 제목은 뭘로 할까요?”
“제가 생각을 하나 해 봤기는 한데…….”
스패로우 팩토리의 두 번째 프로젝트,
아카데미 <지저귐>이 시작되는 순간이었다.
* * *
뚜두둑, 뚜둑두두두두두둑! 뚜욱!
사람의 어깨에서 난다고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우악스러운 뼈 소리가 작업실 가득히 퍼져나갔다.
하지만 정작 그 소리를 낸 사람은 고통 따위는 안중에도 없다는 듯이 만면에 기쁨 100%의 미소를 띄워 올리고 있었다.
“완결이드아아아아아!”
천우희가 펜을 집어 던지며 소리쳤다.
“펜은 왜 집어 던지시는 거죠?”
“기분 내려고요. 졸업하면 학사모 집어던지잖아요.”
“…펜은 관련도 없잖아요.”
“그렇다고 노트북을 집어 던질 수는 없잖아요?”
“으흠….”
혜선이 이해할 수 없다는 듯이 천우희를 바라봤다.
‘완결만 하면 사람이 미치는 건가?’
총 연재 7개월, 외전 포함 263화로 천우희의 최신작인 <쓰면 예뻐지는 안경>은 그 여정을 끝냈다.
‘하기야, 기뻐할 만큼 좋은 작품이긴 하지.’
지금까지 천우희의 대표작으로 불리던 것은 <블랙기업이지만 사장님 얼굴이 복지라 괜찮아요!>라는 전전작이었다.
그다음에 썼던 <망국의 테라피스트>는 막판에 정신 차리고 어느 정도 회복하기는 했지만, 결국 <블랙기업>을 뛰어넘지는 못했던 것이다.
“하지만 이번에는 달랐죠!”
천우희가 소리를 질렀다.
“글을 쓸 때는 언제나 영혼을 갈아서 쓴다고 자부하지만, 이번 <쓰면 예뻐지는 안경>에는 특별히 조금 더 세심하게 영혼을 갈아 넣었거든요!”
저번 작품이 믹서기로 만든 고급 두부였다면, 이번 작품은 숙련된 장인이 비지땀을 흘리며 맷돌로 손수 갈아낸 수제 두부 같은 느낌이라고 할까.
“그런 만큼 투박해진 게 문제긴 하지만, 그래도 괜찮아요. 거칠지만 재밌었으니까요!”
이번 작품을 시작하면서 천우희는 큰 결심을 하나 했다. 지금까지 꾸준히 발전시켜 왔던 자신만의 공식을 포기한 것이다.
“막상 버리자니 좀 아깝긴 했는데, 그래도 일단은 버렸어요!”
공식은 좋은 것이었지만, 공식대로만 쓰면 결국 공식이 아닌 것은 못 쓰게 되는 법이었으니.
이번에는 울타리를 부수고 새로운 땅을 개척하는 식으로 글을 써냈다.
지금까지 천우희의 울타리 안이 아스팔트와 신식 건물이 죽 늘어져 있던 번화가였다면, 새로 개척한 곳은 거칠기 짝이 없었다.
어떤 곳은 늪지대였고 어떤 곳은 황무지였다. 그 탓에 세련됨이 좀 사라지고 투박해졌다.
“하지만, 동시에 넓어졌다는 느낌이 들더라고요.”
지금까지 천우희는 자신의 소설 세계 외의 세계에 별 관심이 없는 오만한 왕이었다.
마치 천공의 성에 살아가는 주민들처럼 말이다.
하지만, 이번 작품은 달랐다.
원래의 세계를 버리고 땅으로 내려와, 끊임없이 영토를 확장했다.
폭군의 소설.
“그게 <쓰면 예뻐지는 안경>을 쓸 때의 천우희의 컨셉이었다고요! 제가 바로 로맨스 소설계의 광개토대왕이었던 거죠!”
“광개토대왕이라….”
차라리 대체역사 쓰는 사람이 저렇게 말하면 조금이나마 그럴 듯 했을 텐데.
‘완결 쳤으면 미칠 만도 하지.’
신사의 나라 영국에서도 프랑스와의 축구를 이긴 날이면 소리 지르는 취객 정도는 봐준다고 하지 않던가.
‘…패배하는 날이면 선수단 자동차에 불을 지르는 양반들이니, 소리 지르는 것 정도면 뭐….’
그러고 보면 작가도 훌리건이랑 좀 비슷한 데가 있다. 작품이 성공하면 난동을 부리고, 작품이 실패하면… 사고를 친다.
“뭐야, 누가 내 머리 때렸어!”
자기가 집어 던진 펜에 머리를 맞고 주위를 두리번거리는 천우희를 보며 혜선이 빙그레 미소 지었다.
왜 작가들이 유달리 단명하는지에 대한 이유를 알 것 같은 기분이었다.
***
“허억, 허억!”
결국 한참이나 난동을 피우던 천우희가 제풀에 지쳐 의자에 엎어졌다.
“다 끝났나요?”
“체, 체력이… 무, 물 좀 가져다주세요.”
“여기요.”
혜선은 미리 준비해 뒀던 잔을 내밀었다. 천우희는 그 물을 벌컥거리며 마셨다.
풀잎 하나 띄워둘 걸 그랬나.
“하아아…! 살겠다! 이 빌어먹을 작가라는 직업은 체력이 후달려서 맘대로 기뻐하지도 못한다니까요?”
“…안 그런 작가도 많던데.”
“누가요?”
“으음….”
당장 떠오르는 건 연수였다.
만약 연수가 완결을 지었을 때 천우희처럼 행동한다면? 잘은 모르겠지만 순식간에 SNS스타가 될 수 있지 않을까.
운동선수 출신이니만큼, 펜이 아니라 아령을 집어 던질지도 모르는 일이다.
“…연수가 그렇게 안 해서 다행이지요.”
“서연수?”
그 이름을 듣자마자, 천우희의 눈이 돌아갔다.
“저기요 혜선 씨. 제 앞에서 걔 이야기 꺼내지 마요.”
“예?”
“아무튼 꺼내지 마요.”
…둘이 뭔 일이 있었나?
아무튼 눈빛을 보니 안 꺼내는 게 낫다 싶었다.
오늘 온 것 이유가 다른 작가 이야기를 하기 위한 것은 아니니.
“다음 주부터 아카데미 사업 시작하기로 한 거, 알고 계시죠?”
“알죠.”
“그래서 말인데, 천우희 작가님. 혹시 한두 달 정도 강사를 맡아 주실 수 있을까요?”
“저 방금 완결지었는데요.”
천우희가 질렸다는 듯이 고개를 저었다.
“저도 좀 쉬어야 하지 않겠어요? 요즘 거의 하루 3빡씩 했는데?”
1빡은 아주 빡세게 쉬지 않고 글쓰기의 줄임말로, 하루 3빡을 했다는 건 하루 평균 15,000자의 글을 써냈다는 걸 뜻했다.
“그래서 좀 지쳤다고 해야 하나. 솔직히 저도 공동대표기는 하지만, 아카데미는 제 소관이 아니잖아요.”
“그렇죠.”
혜선이 고개를 끄덕거렸다.
형우와는 달리 천우희나 연수 같은 경우엔 ‘공동대표’라는 말을 어느 정도 선택권이 있는 전속작가 정도의 의미로 받아들이고 있었다.
‘사실 이게 정상이고 형우가 특이한 거지.’
남을 잘 돕는 사람이 있으면 그 사람은 착한 사람임이 분명하지만, 그렇다고 남을 돕지 않는 사람이 나쁜 사람인 건 또 아닌 것과 마찬가지다.
“그러면 실례 많았습니다. 몸조리 잘하세요.”
만약 지원이었다면, 이대로 일어나서 스패로우 팩토리로 돌아왔을 테지만….
“아쉽네요…. 형우 작가님은 하신다고 하시던데.”
혜선이 천우희더러 들으라는 듯이 중얼거렸다.
꿈틀.
천우희의 눈썹이 살짝 움직였다.
“천우희 작가님이 안 하시면… 뭐랄까. 누가 보면 천우희 작가님이 형우 작가님보다 끗발이 딸린다고 생각할지도….”
움찔.
이번엔 팔까지 조금 올라왔다.
하지만, 딱 거기까지였다.
‘어라?’
혜선의 눈빛이 변했다.
‘이 정도로 말하면 알아서 올 줄 알았는데….’
첫 번째인 설득은 실패했고, 비장의 수였던 형우와의 라이벌리티를 이용하는 것도 실패했다.
‘어떻게 한다?’
이대로 돌아가서 다른 작가를 구하기에는 스패로우 팩토리에는 그만한 여력이 없다. 그렇다고 무릎을 꿇고 싹싹 빌기도 그렇다. 작가라는 생물은 섬세하기 짝이 없어서, 의욕 없는 일을 억지로 시켜 봐야 역효과만 나기 마련이다.
그러니까… 어떻게든 천우희의 의욕을 되살려서 스스로 제발 하게 해 달라고 매달리게 만들어야하는데….
‘…잠깐.’
호승심?
뭔가가 혜선의 머릿속을 스치고 지나갔다.
‘호승심보다 더 강한 게 뭐지?’
적개심.
라이벌에게는 호승심을 품지만, 적에게는 적개심을 품는다.
그리고, 혜선은 방금 천우희의 눈에서 적개심을 발견하지 않았던가?
“아, 맞다! 연수!”
갑자기 생각났다는 듯이, 혜선이 박수를 딱 쳤다.
“연수를 시키면 되겠네! 혼자서는 힘들더라도 형우가 도와주면….”
휙!
그 순간 뭔가가 혜선의 손목을 향해 날아들었다.
천우희의 손이었다.
“형우랑 걔랑 붙여 놓는다고요?”
“어쩔 수 없죠. 강사가 부족하니까요. 천우희 작가님이 해 주시면 그런 일은 없겠지만….”
“할게요.”
“예?”
“한다고요.”
천우희의 두 눈이 당장에라도 뛰쳐나갈 듯 뜨겁게 불타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