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환상을 쓰겟다-148화 (148/200)

#147

“후우.”

형우는 한숨을 내쉬며, 자신이 완성한 새로운 무협 소설을 찬찬히 훑었다.

<권객拳客>.

단어로 된 제목.

최신 트렌드에 맞는 제목은 아니다.

‘이게 1질 작품이었으면 이런 제목을 붙이지는 않았겠지.’

차라리 <내 주먹이 너무 강함>, <주먹만 쓰는데 칼이 동강동강 부러짐>같은 제목을 쓰지 않았을까 싶다. 신인들은 제목으로라도 독자들의 이목을 팍팍 끌어야 하니까.

그런 제목들에 비하자면 권객이라는 제목은 지나치게 평범해서 사람들의 이목을 잡아 끌기에는 뭔가 부족한 느낌이 없지 않았다.

그럼에도 형우는 이 제목을 골랐다.

‘이 제목이 소설을 가장 잘 표현하니까.’

소설에서 제목이란, 중요하지 않은 듯 하면서도 동시에 중요하다. 어느 정도로 중요하냐고 묻는다면, 딱 도로에서 이정표가 하는 역할만큼 중요하다고 할 수 있겠다.

영국의 대문호 <셰익스피어>는 자신의 작품 제목에 주인공의 이름을 붙이는 걸 선호했다. <로미오와 줄리엣>이나, <햄릿>, <오셀로> 등이 그렇다.

그렇다면 셰익스피어는 왜 자신의 희곡에 이런 제목을 붙였을까? 제목을 짓기가 귀찮아서?

‘그럴 리가 없지.’

셰익스피어는 독자들에게 힌트를 준 것이다.

자신의 작품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캐릭터라고.

‘아가사 크리스티도 마찬가지지.’

영국인이 두 번째로 사랑하는 작가인 아가사 크리스티의 작품은 대부분 사건을 제목으로 했다.

그녀가 자신의 작품에 <그리고 아무도 없었다>라던지 같은 제목을 붙인 것도 위와 같은 맥락이다.

자신의 작품에서 가장 중요한 건 사건이라는 것을 넌지시 알려주고 있는 것이다.

형우의 새로운 제목인 <권객> 또한 이 이유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

‘검객劍客이라는 말은 있어도, 권객拳客이라는 말은 없다.’

권사拳士가 아니라 권객拳客이라고? 누군가는 ‘괜히 배배 꼬아 어렵게 생각하는 거 아냐?’라고 볼 수도 있겠다.

‘하지만.’

객客이라는 한자가 무협에서 어떤 위치를 차지하는지 안다면, 이 말은 조금 다른 방식으로 해석할 수 있게 된다.

무와 함께 무림에서 가장 중요한 것, 그것은 바로 협객俠客이다.

‘그리고 무협에 등장하는 수백 개의 무기들 중에 뒤에 객이 붙는 무기는 오직 하나, 검 뿐이야.’

검객이라는 말은 있어도, 창객이라던지 권객이라던지 하는 말은 없다.

‘무기 사이에 우열은 없을 텐데.’

오직 검만이 그렇게 위대하게 평가받다니.

형우는 그 부분에서 마치 목에 생선 가시가 걸린 듯한 기분을 받았다.

그 기묘한 정체는 곧 알 수 있었다.

-장르소설 뭐, 문학성도 없는 거.

-장르소설이요? 하하하. 저희 아이들이 좋아한답니다. 사인 좀 해 주시겠어요? 아, 당연히 저는 읽은 적이 없습니다.

-저 신춘문예 공부하던 지망생인데요, 요즘 카페 알바하기 너무 귀찮아서 그런데 장르소설 그거 돈 좀 되나요? 금방 쓸 수 있을 것 같은데요.

-에이, 외국 판타지 소설이라면 모를까. 한국 웹소설은 좀 그렇죠?

“이거네.”

형우의 현실과, 무협의 가상이 교차했다.

형우가 겪은 일들이 무협의 탈을 쓰고 소설 속으로 천천히 스며 들어갔다.

[허허허… 권법 뭐 실전성도 없는 거.]

[권법이요? 하하하. 저희 아이들이 이제 곧 다섯 살이 되는데. 검술 배우기는 아직 이르니 권법이라도 잠깐 가르칠까 합니다. 뭐, 나중에 검법을 배운다면 권각술은 쓸 일이 없겠지만서요!]

[소도는 무당검객이라고 하네. 무당에서 10년간 검술을 배웠는데, 요즘 검 들고 다니기가 좀 힘들더군. 그래서 말인데, 권각술 그거 싸울 때 좀 도움은 되나? 금방 배울 수 있을 듯한데.]

[어허, 소림의 권각술이라면 모를까. 새외문파의 권각술이 뭐 그리 대단하겠는가?]

으음.

글로 써 놓고 보니 아주 열불이 터졌다.

‘타란티노 형님 말이 이해가 되네.’

영화감독인 쿠앤틴 타란티노는 한 인터뷰에서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보통 저는 제 영화에 나오는 악역을 좋아하는데, <쟝고>에서는 그럴 수가 없더군요. 악당을 너무 잘 만들어서 저까지 화가 나는 게 아니겠습니까? 그래서 더 잔인하게 죽여야겠다고 마음먹었죠.’

사람 마음이 다 거기서 거기라더니, 지금 형우가 느끼는 감정도 비슷했다.

‘어, 화나네?’

타다다닥-

형우의 손이 다음 문장을 재빨리 썼다.

[네가 무당검객이라고? 그게 뭐? 나는 무명권객이다!]

[뭐어? 실력이 좋은 데 왜 검이 아니라 주먹을 배웠냐고? 내 맘이지, 이 새끼야! 덜 좋은 주먹맛 좀 볼래?]

[아니, 당신이 무슨 천하대검수야, 강호최강검이야? 뭐 이리 칼부심이 길어? 부심 부릴 거면 적어도 나보다 유명해지고 입 털지?]

친구인 의재에서 모티브를 따온 권객의 주인공이 무당검수를 쥐어팼다.

“와아, 이거.”

자신의 소설을 몇 번이나 읽던 형우가 밝게 웃으며 저장 버튼을 눌렀다.

“……진짜 좋은데?”

법과 질서가 있는 21세기 한국에서는 감히 팰 수 없으니, 교묘하게 무림으로 배경을 바꿔서 고까운 놈들을 소설 속에서 줘팬다!

누군가 보기엔 망상이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그게 대체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누구도 상처입히지 않고, 누구도 욕하지 않고, 그러면서도 한없이 즐겁고 통쾌한 것.’

그거야말로 풍자諷刺와 해학諧謔의 본질인 것을.

타다다닥!

형우의 손이 바람을 탄 도사의 발걸음처럼 호쾌하게 키보드 위를 달렸다.

형우의 세 번째 소설 <권객>은 그렇게 탄생했다.

* * *

“자네가 쓴 소설에는 협俠이…….”

황계백의 진중한 목소리가 긴장한 형우의 귀를 파고들었다.

“……있군. 맞네, 확실한 무협이야.”

“휴우우우!”

형우가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일단 생각난 김에 기세 좋게 써 내려가기는 했는데, 정작 황계백이 ‘이건 무협이 아니야!’라고 하면 말짱 도루묵이 되는 것이니.

“감사합니다, 선생님.”

“이 짧은 시간에 용케도 이해했군. 어떻게 했는지 이야기를 좀 들을 수 있겠는가?”

“이야기라면…… 알겠습니다.”

형우는 의협심 넘치는 자신의 친구와, 자신을 무시하던 사람들에게서 소설의 모티브를 얻어냈다는 것을 밝혔다.

“하하, 그리된 거로군.”

형우의 이야기를 다 들은 황계백이 웃음을 터트렸다.

“그러니 당연히 소설 속에 협이 있을 수밖에.”

“저 선생님……?”

형우가 겸연쩍은 얼굴로 뒷머리를 긁적거렸다.

“무슨 말씀인지 잘 모르겠는데, 혹시 설명해 주실 수 있으실까요?”

“어려울 것 없지. 무협의 주인공이란 무엇인가?”

황계백이 도포 자락을 휙 내저었다.

“바람을 다스리고, 마른 하늘에 비를 내리고, 땅을 접어 달리고, 그리 해야 무협의 주인공이 되는 것이 아니다!”

“그렇다면요?”

“협이란 선악과 관계 없이 자신의 의지를 관철하는 것이다! 선악과 의지의 가장 큰 차이가 무엇이겠느냐?”

“어… 모르겠습니다.”

“선한 일을 행하는 자를 욕하는 건 악인밖에 없겠지만, 협객은 다르다. 자신의 길을 행할 때에는 굳이 악인이 아닌 사람에게도 욕을 먹기 십상이지!”

“그렇습니다!”

“그러니 무협이란…….”

형우는 두 팔을 모으고 초롱초롱한 눈으로 노인의 다음 말을 기다렸다.

‘황계백 선생님이라면!’

한국 무협의 대가로 수십 년간 외길로 무협만을 팠고, 한때는 지방에 있는 대학교에서 무협 소설 강의까지 했던 사람이다.

황계백이 지엄한 표정으로 수염을 쓰다듬었다. 마치 옛 신화 속에 나올 법한 고고한 도사의 복장을 한 황계백이 더없이 진지한 표정을 지었다.

꿀꺽, 침 넘어가는 소리가 유달리 컸다.

마침내, 황계백의 입이 열렸다.

“……그런 새끼들을 죄다 때려잡는 거다! 착한 놈 나쁜 놈의 이분법이면 주인공은 나쁜 놈밖에 못 때려잡으니까!”

“……예?”

뭐지?

뭘 잘못 들었나?

눈을 끔뻑이는 형우를 보며, 노인이 말을 이었다.

“세상에는 화나는 일이 너무나도 많지만, 그중 나쁜 놈만 나를 화나게 하는 건 아니지. 그렇지 않으냐?”

“……어, 그렇죠?”

“살다 보면 착한 놈을 때려 주고 싶을 때도 많은 법이니! 그러니 사람들이 무협을 좋아하는 게다!”

“어라, 어?”

틀린 말은 아니다.

톨킨의 <팔찌의 제왕>을 보면, 레골라스는 사사건건 김리에게 짜증 나게 굴지만, 그렇다고 김리가 레골라스를 냅다 패지는 않는다.

둘 다 착한 편에 속해 있으니까.

“하지만 무협은 다르다! 선악이고 나발이고 상대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면.”

“마음에 안 들면요?”

“아니, 아니지. 마음에 안 드는 게 아니라…… 맞다, 상대의 협의가 나의 협의와 다르다면!”

황계백이 열변을 토했다.

“냅다 패버릴 수 있는 게 무협이다! 이 얼마나 통쾌하고 좋으냐? 이게 카타르시스지!”

어…….

역시 틀린 말은 아니다.

무협에서 무武는 결국 때리는 것이니.

……적어도 저 도사 복장만 아니면 좋았을 텐데. 도사 입에서 팬다 어쩐다 이야기가 나오니 뭔가 꺼림찍한 기분이 드는 형우였다.

“아무튼!”

그렇게 한참이나 도복을 나풀거리던 황계백이 갑자기 형우 쪽으로 시선을 휙 돌렸다.

“자네 소설도 마찬가지라는 거네!”

“제 소설이요?”

“솔직히 고까운 녀석들 패는 소설 쓰면서 즐거웠지 않았나?”

귀신…… 이 아니라, 도사네.

“즐겁기는 했는데…….”

“그 호쾌함과 즐거움이야말로 무협의 본질이고 소설의 본질이네! 무협이란 분노의 미학인 셈이지.”

비극이 슬픔의 미학이고, 희극이 기쁨의 미학이라면, 무협이란 분노의 미학이다. 형우가 되물었다.

“폭력의 미학이 아니라요?”

“폭력은 수단일 뿐. 핵심은 분노라네. 어떤 상황에서 분노해야 하고, 어떤 상황에서 분노하지 말아야 하는가. 무협이란 그것을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지.”

“아까는 패는 것에서 느껴지는 카타르시스라면서요?”

“생각해 보게. 아무나 팬다면, 그걸로 카타르시스가 느껴지는가? 주인공이 지나가는 어린아이를 패면 독자들은 거기서 카타르시스가 아니라 역겨움을 느끼게 될 수밖에 없지. 중요한 건 싸움 그 자체가 아니라, 싸우는 이유인 법이니.”

더없이 진지한 노인의 눈빛을 보며, 형우는 고개를 끄덕거렸다.

“무협의 미학이군요.”

“인간의 미학이지.”

선문답처럼 보이는 대화를 나누며, 둘이 동시에 씩 웃었다.

소설의 미학은 인간의 미학이다.

그것이 웹소설이든, 노벨 문학상을 받은 작품이든 인간에 대한 탐구라는 그 본질만큼은 변하지 않는다. 무협 또한 어찌 예외겠는가.

“좋은 말씀 감사했습니다. 황계백 작가님.”

그런 존경심을 담아, 형우가 공손하게 두 손을 모아 고개를 숙였다.

그 모습을 보며, 황계백도 두 손을 모았다.

“나 또한 오랜만에 소설 이야기를 나눌 수 있어서 좋았다네. 소설이 완성되면 다시 찾아오시게.”

그대로 황계백 또한 형우에게 고개를 숙였다.

노인과 청년, 제자와 스승. 그런 것이 아니라.

소설가 대 소설가로 상대를 존중하겠다는, 그런 의미가 함뿍 담겨 있는 정겨운 인사였다.

* * *

일주일간의 논산 생활을 뒤로한 채, 형우는 다시 기차역을 찾았다.

“좀 정신없기는 했지만.”

그래도 수확은 확실하게 있었다.

“뺘악! 뺘악!”

새장이 불편한지, 참치가 날개를 퍼덕거렸다.

“미안, 미안. 불편하겠지만 조금만 참아. 집 가자마자 풀어 줄게.”

“삐우욱!”

뭔가 단단히 삐친 모양이라, 해바라기씨를 새로 한 통 사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엄마, 저 사람 봐. 새장 들고 기차 타.”

“해리포터인가?”

“근데 저건 참샌데? 해리포터는 부엉이야.”

“아니야! 해리포터는 올빼미야! 얼굴이 ㅇ자로 생겼으면 올빼미, ㅂ처럼 생겼으면 부엉이야!”

요즘은 기차 탈 때마다 슈퍼스타가 되는 기분이다. 하기야, 강아지나 고양이에 비하자면 새는 꽤 특이한 반려동물 쪽에 속하니까.

‘그래도 참샌데, 흔한 동물을 왜 신기해할까요?’

예전에 어머니한테 그렇게 물었었는데, 어머니는 새삼 지혜로운 대답을 해 주셨다.

‘너 예전에 TV에서 애완 바퀴벌레 보고 저게 뭐냐고 했잖니. 따지자면 바퀴벌레도 흔하다.’

‘아.’

……참치가 들었으면 자신을 바퀴벌레에 빗댄 것에 크게 역정을 냈겠지만. 다행히 그때는 자고 있었으니. 뒷담은 나라님도 어떻게 못 한다는 거다.

“성격 더러운 녀석.”

“뺘악?”

갑자기 욕을 먹은 참치가 날뛰었지만, 다행히 녀석은 새장 속에 있었다.

“뺘아아아아아악!”

그런 참치를 보며 비웃어준 뒤, 형우는 기차 위에 올라탔다.

‘소설은 언제쯤 쓸 수 있으려나.’

황계백은 괴짜였지만, 동시에 아는 것도 많았다.

진짜로 무협 소설에 나오는 기인처럼 느껴질 만큼.

‘씨앗은 심었어.’

의재를 모티브로 한 주인공.

그리고 ‘세계제일권객이 된다.’라는 배경까지.

이제 남은 건, 캐릭터에 어울리는 스토리를 생각해 내는 것 정도다.

‘좋은 스토리가 아니라, 좋은 캐릭터를 생각하고 거기에 어울리는 스토리를 짜거라.’

헤어지기 전, 황계백이 해 주었던 조언이다.

‘무협은 엇비슷한 하나의 세계관에서 펼쳐지는 이야기다 보니, 무엇을 쓰든 독자들은 어디서 본 이야기라고 생각하기 쉽다. 그걸 막기 위해서는, 멋진 이야기가 아니라 멋진 캐릭터를 생각해야 하는 법이다. 멋진 캐릭터는 평범한 이야기도 아주 멋지게 만드니까 말이다.’

멋진 캐릭터.

주인공을 받쳐 주는 매력 있는 조연助演을 말하는 것이다.

‘그런 캐릭터가 두셋 정도 떠오르게 되면, 작가가 가만히 있어도 캐릭터들끼리 알아서 강호를 뛰놀게 될 테다. 무협소설이 다른 장르소설들에 비해 유달리 장편이 많은 이유이기도 하지.’

황계백이 해준 거짓말 같은 이야기를 떠올리며, 형우는 피식 웃었다.

‘캐릭터들이 알아서 뛰어논다라. 정말 그랬으면 좋겠네.’

잠시 후, 서울로 향하는 KTX가 부드러운 소리를 내며 움직이기 시작했다. 형우는 노트북을 잠시 덮고, 창밖을 멍하니 응시했다.

참으로 신기한 광경이었다.

분명 움직이는 것은 자신이고, 고정된 것은 산과 들일진데.

오히려 자신은 가만히 있는데 산과 들이 뒤로 달려가는 것처럼 느껴지니 말이다.

그러니까, 보이는 것은 강호江湖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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