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6
노인의 이름은 황계백이었는데, 논산 근처에서는 꽤나 기인으로 이름 높은 사람이라고 했다. <세상에 놀라운 일이!>같은 데서도 몇 번 섭외가 왔었는데, 죄다 거절했었다고.
“나는 사람들의 관심을 위해서 이렇게 입고 다니는 게 아니다! 끊임없이 마음속에 계백장군의 의협심을 담고 다니기 위한 것이야!”
그렇게 말하며, 노인은 자신의 뒤에 놓인 계백장군의 초상화를 가리켰다.
‘옷 컨셉이 뭔가 싶었는데, 최대한 계백장군이랑 비슷하게 입고 다닌 거였군.’
그러니까, 따지자면 계백 장군 코스튬 플레이랄까. 애니메이션이나 게임 캐릭터로 코스프레를 하는 건 자주 봤어도, 계백장군 코스프레는 처음 봤다.
“내 이름도 원래는 이게 아니였는데, 개명한 거지.”
“…그렇게까지요?”
“어머니가 주신 이름을 버리는 건 가슴 아픈 일이었지만, 그래도 나한테는 계백 장군이 어버이만큼이나 놀라운 인물이었으니 어쩔 수 없었다. 꼬마야, 너도 계백 장군님의 일화는 알지?”
형우가 고개를 끄덕거렸다.
관창을 필두로 한 신라군과 계백이 이끄는 백제군이 황산벌에서 격돌한 전투야, 대한민국에서 초등교육 받았다면 모르는 사람이 없는 이야기가 아닌가.
“출정하기 전날, 계백 장군은 자신의 아내와 자식을 스스로의 칼로 베었다.”
이 부분은 역사학자들 사이에서도 해석이 다분하다고 들었다. 신라의 포로가 되면 기구하게 살아야 할 것이 자명하기에 죽였다는 말도 있지만, 전쟁을 앞둔 제물이라는 설 또한 나름의 힘을 얻고 있으니.
마치 그리스의 대장군 아가멤논이 트로이의 전쟁 때 떨어진 부하들의 사기를 고취하기 위해 자신의 딸을 제물로 바쳤듯, 그와 비슷하게 백제군의 사기를 위해 제물을 바쳤다는 거다.
“작가님은 어떻게 생각하세요?”
“나는 그 부분을 생각하지 않는다.”
황계백이 굳은 표정으로 말했다.
“계백 장군이 왜 자신의 가족을 죽였는가, 그 부분은 고의적이라고 할 만큼 깔끔하게 생략되어 있지.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따라 계백 장군은 패배를 알면서도 적과 맞서 싸우는 강맹한 장군이 되기도 하고, 무슨 수를 써서라도 전투에서 승리하려는 철혈의 장군이 되기도 한다네. 그리고 나는 이 두 가지가 모두 계백 장군의 모습이라고 생각한다네.”
옳게 사용한 생략 기법의 묘미랄까.
“그래서 나는 계백 장군의 이야기를 남긴 사람이 아주 뛰어난 이야기꾼이라고 생각한다네. 내가 목표로 하는 작가 또한 그런 작가지.”
“그래서 무협을?”
“맞아.”
황계백이 고개를 끄덕거렸다.
“선악의 관점에서 본다면 계백 장군의 일화는 아주 애매한 데가 있지만, 의협심이라는 관점에서 보면 둘 모두가 의협심이거든.”
가족에 대한 의리든, 혹은 나라에 대한 의리든. 계백이 그 ‘의리’를 위해 자신의 소중한 것을 희생하여 전장으로 나아갔다는 일은 변하지 않으니.
“자네, 판타지의 시조가 누구인지 아나?”
“<팔지의 제왕>을 쓴 J.R.R톨킨이죠.”
“반만 맞았네.”
황계백이 고개를 끄덕거렸다.
“톨킨이 <팔지의 제왕>으로 판타지 소설을 시작한 건 맞지만, ‘판타지’ 자체는 그 이전부터 있었어. 인류 최초의 서사시인 ‘길가메시 서사시’ 또한 따지자면 판타지지. 그렇다면 묻겠네, 무협의 시작은 어디인가?”
“어….”
김용이라고 대답하면, 김용은 무협지의 시작일 뿐 무협의 시작은 아니라고 할 것 같다. 그보다 더 옛날 작품들을 떠올렸다.
“<삼국지>나 <수호지>요? 어쩌면 <서유기>나….”
“<삼국지>는 왕에 대한 이야기고, <서유기>는 부처에 대한 이야기지. <수호지>는 협객에 대한 이야기라는 점이 얼추 비슷하지만, 그보다 더 옛날 이야기가 있다네. 사마천의 <사기>지. ‘허무하다’라는 단어를 셰익스피어가 만들었듯이, ‘협객’이라는 단어는 사마천이 만들었거든.”
뛰어난 작가는 종종 사전을 바꾸는 법이라고, 황계백이 설명했다.
* * *
사기에서 이르길,
유명한 검객이 길을 가다 우는 아이를 마주쳤다.
“왜 울고 있느냐?”
검객이 묻자, 아이가 대답했다.
“나라가 제 가족을 억울하게 죽였습니다.”
“그래서 어쩌고 싶으냐?”
“복수를 하고 싶은데, 방도가 없습니다.”
그 말에, 검객이 웃었다.
“내 검을 주면 사내답게 복수를 하겠느냐?”
“검이 있어도 힘이 없으니, 복수가 아니라 개죽음을 당할 뿐입니다.”
“죽음이 무서우냐?”
“죽음은 두렵지 않으나, 복수를 하지 못하는 것은 두렵습니다.”
그 말을 들은 검객이 또다시 웃었다.
“죽음이 두렵지 않다 하는 자들 중 죽음을 두려워하지 아니하는 자를 본 일이 없다. 그러니, 내가 검을 줄 테니 스스로 목숨을 끊거라. 그러면 내가 복수를 대신해 주겠다.”
“…주십시오.”
그렇게 검을 받은 아이는, 한순간도 망설이지 않고 그대로 자신의 가슴에 검을 박아넣었다.
“약속을 지켜… 주십시오.”
그렇게, 아이의 시체를 보며 검객은 후회했다.
검객이 아이에게 알려주고자 했던 건 죽음이라는 것에 대한 두려움과 삶의 대한 희망이었을진대.
진짜로 아이가 죽어버렸다니.
“…그 약속은 이루어질 것이다.”
검객은 그 자리에서 그대로 칼을 뽑아 들고 관아를 찾았다. 관아의 모든 사람을 베어 죽인 후, 아이 부모의 복수를 대신 했다.
그리고 감옥에 스스로 걸어 들어가 자신의 죄를 고하고 목이 잘려 죽었다.
“사마천은 이 검객을 보고 협객이라고 표현했지.”
선과 악이라든지, 옳고 그름이라든지 하는 것이 아니라, 약속과 신의를 바탕으로 행동하는 인간. 그것이 사마천이 말한 ‘협객’이었다.
“니체가 말한 오버멘쉬(초인) 또한 이 맥락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무협의 협이란, 이런 태도를 말하는 거다.”
“…그렇군요.”
뭔가 크게 깨달은 형우가 고개를 끄덕거렸다. 실수하지 않는 인간이 아니라, 자신의 실수를 책임지는 인간이라는 건가.
“그러나, 너의 소설에는 그런 게 없구나.”
형우가 지난 며칠간 적어냈던 무협소설을 보며, 황계백이 평가했다.
“무협과 무협이 아닌 것의 차이는 주인공이 마법을 쓰느냐, 무공을 쓰느냐의 차이가 아니다. 협객이 등장하느냐 아니냐의 차이지.”
“하지만요.”
형우가 지적했다.
“협객이 등장하지 않는 무협도 있잖아요?”
“맞다. 흔히 신무협이라고 부르는 장르에서는 종종 협객이 아닌 자가 등장하기도 하지.”
황계백이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협객이 아닌 자를 쓰기 위해서 작가는 협객에 대해 알고 있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어떻게 협객이 아닌 것을 알겠느냐?”
“오.”
형우는 솔직하게 감탄했다.
뭔가 이미지만 봤을 때는 ‘신무혀어어업? 그딴 건 무협이 아니야! 꾸짖을 갈!’하고 외칠 것 같았는데. 의외로 순순히 인정하는 태도가 아닌가.
황계백이 소설가라기보다는 도인같은 태도로 계속해서 자신의 협객론을 늘어놓았다.
“텅 빈 항아리를 생각해 보거라. 항아리는 그 자체로는 아무것도 담고 있지 않지만, 그 존재로 인해 항아리의 안과 밖이 나뉘는 법이지. 무협에서 의협심이란 그런 것이다.”
기준이 없으면 아무것도 되지 않는다는 뜻인가, 그 말은 조금 이해할 만했다.
세계 2차대전의 사령관인 아이젠하워는 이런 말을 했다. ‘나는 모든 일을 할 때 반드시 계획을 세운다. 하지만 계획대로 되는 일은 없다.’
이 말을 ‘전쟁에는 계획이 필요하지 않다.’라고 이해했다면 그건 아주 심한 오독이다. 아이젠하워가 말하는 것은 계획이라는 기준의 필요성이기 때문이다.
세상 모든 일은 기준을 축으로 움직이기 때문에, 반대로 말하면 기준점이 없다면 세상 모든 추상적인 개념들은 의미를 잃어버리고 마는 것이다. 어쩌면 추상적이지 않은 것들까지도.
“…의협심이 무협의 기준점이라는 거군요.”
“그렇다.”
만족스럽다는 듯이 황계백이 수염을 쓰다듬었다.
“허나, 아까도 말했다시피, 네가 지금 쓴 소설에는 협객도, 협객이 아닌 것도 느껴지지 않는구나. 그래서 다시 묻겠는데, 아해야. 너는 정말로 무협을 쓰고 싶은 것이 맞느냐?”
* * *
“무협이란 거… 진짜로 어렵구나.”
황계백의 집에서 나오는 길, 형우는 한숨을 푹 내쉬었다. 무협이 어렵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형우가 생각한 어려움은 배경지식에 대한 어려움이었지 개념에 대한 어려움은 아니었다.
‘의협심이라….’
새로운 어려움을 알아냈다는 것만으로도 얻은 게 없는 건 아니었으나, 얻고자 하는 건 얻지 못한 기분이랄까. 형우는 결국 ‘무협을 쓰고 싶은 게 맞느냐?’라는 황계백의 질문에 대답하지 못했다.
작가란, 입이 아니라 작품으로 말해야 하는 법이므로.
“협객과 의협이라.”
일단 숙소라도 하나 잡고 일주일 정도 진득하게 고민하면서 소설의 주인공을 다시 한번 생각해 보기로 했다.
지이잉-
때맞춰 휴대폰이 울렸다.
지원 : 말씀하신 대로 논산 근처에 숙소 예약해 뒀습니다! 가서 편하게 글 쓰세요!
지원 : 아무래도 호텔이나 모텔은 좀 집중이 안 될 것 같아서, 렌탈하우스로 준비했습니다!
편집자인 지원은 형우를 위해 괜찮은 숙소를 예약해 줬다. 바쁜 와중에도 사소한 것 하나하나에 신경 써 주는 게 꽤 고맙게 느껴졌다.
형우 : 스패로우 팩토리 일도 힘들 텐데, 이런 일까지 신경 써 주셔서 감사합니다.
지원 : 감사하다뇻!
지원 : (손을 내젓는 사자 이모티콘)
지원 : 편집자가 당연히 해야 하는 일인 걸요! 작가 있고 출판사 있지, 출판사 있고 작가 있답니까?
지원 : 그리고 서민홍 매니저님 들어오시면서 조금 여유가 생겼기도 하고요. 아, 맞다. 어제 서의재 작가님 웹툰 올라갔는데, 보셨나요?
의재의 만화라면, <아이언 타이거>의 웹툰을 말하는 게 분명했다. 그게 벌써 됐나? 형우는 그대로 인터넷 창에 <아이언 타이거>를 검색했다.
아이언 타이거 – Tonny / 서의재
게이트가 열리고, 아이가 사라졌다.
모든 것이 어제와는 달라져 버린 세상 속에서,
만년 회사원 김철호의 헌터 생활이 시작된다.
스토리, 판타지 / 15세 이용가
첫날에는 프롤로그를 포함한 3화가 올라왔다. 웹툰 자체는 며칠 전에 의재가 보내줘서 이미 몇 번이나 읽어 봤지만, 그래도 한 번 더 읽었다.
“괜찮네.”
전작인 <전설의 보안관>이 웹툰화 되었을 때, 그림작가인 송의진 선생님은 80년대 만화가 특유의 극화체로 웹툰을 그렸었다.
그와 달리, 이번에 새로 나온 <아이언 타이거>의 그림을 담당하는 tonny작가는 젊은 작가답게 그보다 훨씬 현대적인 그림체로 그림을 그렸다.
적당한 데포르메와 적절한 배경의 활용. 적합한 그라데이션과 디지털틱한 배색이, 21세기 서울이라는 소설의 배경과 잘 어우러지는 느낌이었다.
“몰입감 끝내주네.”
숨도 못 쉬고, 그대로 댓글창까지 한 번에 읽었다.
현주면주
캔디 굽는 중…캔디 굽는 중…캔디 굽는 중…캔디 굽는 중…캔디 굽는 중…캔디 굽는 중…캔디 굽는 중….
호크라테스
김철호 너무 잘생긴 거 아니예요???저게 애 딸린 유부남이라고??? 거짓말하지마!!!!!!!!!!!
소기메스꺼워
참새치 x 서의재는 진짜 전설이다. 거기에 tonny작가님 그림체도 진짜 찰떡인듯!
스포방지위원회
아니 소설 읽었다고 스포좀 하지 마세요!!!!웹툰으로 처음 보는 사람도 있을 텐데!
토헿
선배 뭐야… 설레잖아.
룬호잇
저 저기 중간에 나온 엑스트라 남캐분 너무 제취향인데 제가 집에 데려가서 턱시도 입히고 목에 보타이도 걸어주고 캔 잔뜩 달린 자동차에 실어서 하와이 3박 4일정도 다녀와도 될까요?
ㄴ와; 이거 내 중학교 상상연애급인데.
ㄴ중학교 때 어땠는데요?
ㄴ여자애랑 말 한마디 나누고 손녀 이름까지 지어둠.
ㄴㅋㅋㅋㅋ남자나 여자나 다를 게 없네.
ㄴ어차피 같은 인간인 것을. 무량수불.
칸타빌레
여러분 이제 숨 쉬셔도 됩니다.
휴우, 마지막 댓글창을 보고서 형우도 멈췄던 숨을 내쉬었다.
“서의재 미친 거 아냐?”
읽을 때마다 저절로 숨이 턱 멈춰질 정도로 웹툰의 몰입감이 장난 아니었다.
“<전설의 보안관> 때랑은 분위기가 좀 다르네.”
특히 캐릭터가 잘생겼다느니, 얼굴이 내 취향이라느니 하는 캐릭터 조형에 대한 호평이 많았다. 극화체로 그린 <전설의 보안관> 때에는 보지 못했던 댓글들이다.
게다가 마지막의 “숨 쉬셔도 됩니다.”라는 댓글은, 거의 형우가 지금까지 봤던 극찬 중에서도 최고의 극찬에 가까운 말이었다.
그런 칭찬이 나온 이유는 쉽게 알 수 있었다.
‘의재 폼이 장난 아니게 올랐잖아.’
캐릭터의 조형이나 그림체에 대한 칭찬은 당연히 그림작가의 실력에 기인하는 것이지만, 몰입도와 긴박감은 전적으로 스토리 작가의 실력에 기인하는 거라고 생각한다.
‘내 라이벌? 당연히 너지.’
예전에 의재가 했던 말이 저절로 떠올랐다.
그때에는 솔직히 웃고 넘겼었다. 이제 막 만화를 시작한 애가 이미 성공가도를 달리고 있는 자신을 향해 라이벌 운운하니 당연한 일이었다.
형우는 인성이 나쁜 편은 아니었지만, 창작자라는 자부심 또한 상당한 편이었으므로 의재의 말을 그렇게 깊게 생각하지 않았다. 마치 이제 갓 실버를 단 초등학생이 “내 꿈은 프로게이머.”라고 말하는 걸 바라보는 기분이었달까.
하지만, 지금 의재의 솜씨를 본다면, 더 이상 그런 식의 과소평가는 할 수 없을 것 같다. 의재는 정말로 대단했고, 최고의 만화가를 향해 한 걸음씩 확실하게 전진하고 있었다.
‘…나도 가만있을 수 없겠는데.’
<나나야 연대기>의 작가로 유명한 루이스 캐럴은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작가에게 가장 좋은 친구란 창작 의욕을 불태워 주는 친구라고. 그래서 그는 <팔지의 제왕>의 작가인 J.R.R톨킨과 막역지우로 지냈다고 한다.
그리고 루이스 캐럴에게 톨킨이 있었다면, 형우에게는 의재가 있었다. 아니, 그보다 더 나았다.
의재의 웹툰이 형우에게 불러일으켜 준 건, 창작 의욕을 넘어서 창작 동기에 가까웠으니.
‘친구를 위해 좋은 직장을 포기할 정도로 의리 넘치면서도, 동시에 그 친구를 따라잡기 위해 노력하는 주인공이라.’
그야말로 황계백이 말했던 의협심이 아닌가. 그대로 의재에게 전화를 걸려다가, 곧 관뒀다. 지금은 아직 이르다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소설을 완성하고, 그때 말해도 늦지 않아.’
형우는 그대로 다리에 힘을 주고, 렌탈하우스까지 쭉 뻗어 있는 오르막길을 그대로 내달렸다.
“뺘악!”
갑작스러운 속도감에, 새장 속 참치가 비명을 질렀다.
“미안, 그런데 어쩔 수 없어!”
당장이라도 노트북을 두드리고 싶어 손이 근질근질한 느낌이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