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4
“처음에는 아주 잘게 썰어가지구 쌈에 조금씩 넣어 먹었어요. 다행히 한국에서 가져 온 소주랑 삼겹살이 좀 남았었거든요.”
첫 입엔 진짜로 토를 했고, 두 번째 입에는 헛구역질을 했다.
“세 번째 먹을 때는 좀 괜찮아 진 것 같아서 호기롭게 한 쌈 가득 싸서 먹었다가 또 토를 했고요. 얼마나 구역질이 나오는지, 혹시 애 가졌나 싶더라고요.”
쿨럭쿨럭!
직접적인 묘사에, 커피를 뿜을 뻔 했다.
“어머머, 좀 말투가 셌나?”
“아닙니다, 계속하세요.”
형우가 입가의 커피를 슥 닦았다.
“아무튼 그렇게 먹다 보니까, 한 일주일 쯤 지나니 괜찮아 진 거예요. 그렇게 1년을 버틴 뒤 한국에 다시 오니까, 자꾸 그 맛이 생각나더라고. 그래서 요즘은 어떻게 됐냐면.”
그녀는 크로스백을 뒤적여 뭔가를 꺼냈다. 후추통 비슷하게 생겼는데, 냄새가 예사롭지 않다.
“그거 혹시…?”
“고수통이죠. 말린 고수가 들어 있어요. 커피에라도 한번 뿌려 드실래요?”
“…사양하겠습니다.”
“카푸치노에 올라가는 계피랑 같은 맥락인데.”
“그게 어떻게 같은 맥락이에요?”
형우가 질색팔색하는 표정을 지었다. 최윤희가 또 다시 호호 하고 웃었다.
“아무튼, 저는 세상에 좋아할 수 있는 두 가지가 있다고 생각해요. 하나는 쉬워서 좋아하는 거고, 두 번째는 어려워서 좋아하는 거죠. 저한테 고수는 후자였고요.”
형우가 고개를 끄덕거렸다.
“장르 소설이 고수 같은 거다?”
“글쎄요, 익숙해지기 전까진 모르겠죠. 하지만 저는 모험심이 좀 있다고 자부하는 편이라서. 그래서 말인데, 형우 작가님.”
최윤희가 몸을 앞쪽으로 기울였다.
“웹소설을 쓸 때 가장 중요한 게 뭘까요?”
“어, 어…… 잠시만요!”
연수가 제지했다.
“그 이야기를 꼭 지금 해야 할까요? 늦었는데요?”
“늦긴요. 이제 고작 여섯 시인데?”
“그, 그게 아닌데…….”
이상하게 호들갑을 떠는 연수를 무시한 채, 최윤희가 다시 형우에게 질문을 이어나갔다.
“……순문학이랑 다른 점 중에서 이 부분은 유의해야 한다, 싶은 거.”
“템포죠.”
형우가 한 마디로 일축했다.
“책이 아니라 휴대폰으로 본다는 점을 유의해 두고 써야 해요. 순문학에서는 한 줄인 문장이 휴대폰으로 보면 다섯 줄이 되기도 하니까. 같은 문장이여도 그게 다섯 줄로 보이면 읽기가 꺼려지거든요.”
“오호, 참고할게요.”
“그리고 템포 다음에는….”
“네네.”
그렇게 한 시간.
“…이런 식으로 전개를 하다가, 중간에 한 번 꺾는 장면에서는….”
“아하.”
그리고 두 시간.
“그리고….”
“또 있어요?”
“아직 반도 안 했는데요?”
“반도 안 했다고요?”
이번엔 최윤희가 질색팔색할 차례였다.
그 모습을 보며, 연수가 한숨을 푹 쉬었다.
‘……그러게 늦었다니까.’
* * *
형우의 설명이 다 끝난 것은 11시가 넘어서였다.
“아하하… 얼추 알고는 있었지만, 형우 작가님은 진짜 글에 대한 열정이 넘치시는 분이시네요.”
“다른 작가님들도 마찬가지죠.”
“에이, 저는 그렇게까지는 안…… 아니, 못 하죠.”
최윤희도 소설로 경지를 이룬 작가이니만큼, 소설에 대한 애정은 남들에게 뒤지지 않았다.
그러니, 애정의 차이가 아니라 애정을 표현하는 방식의 차이었다.
소설에 대한 최윤희의 마음이 사춘기 소녀처럼 소담하고 푸근한 것이었다면, 형우는 마치 <로미오와 줄리엣>에 나오는 로미오처럼 끊임없이 직진만 밟는 느낌이랄까.
‘어휴 기 빨리네.’
최윤희가 손으로 연신 부채질을 했다. 감속도 브레이크도 없이 F1써킷을 빙글빙글 도는 듯 혼란스러운 기분이었다.
“이런 이야기를 할 줄 알았으면 준비를 했을 텐데, 갑자기 물어보셔서 대답이 좀 어설펐네요.”
“하하하…… 전혀 안 어설펐으니 괜찮습니다. 참고가 많이 됐어요.”
최윤희가 애써 웃었다. 형우도 마주 웃었다.
“도움이 됐다니 다행이네요. 그나저나 최윤희 작가님. 혹시 생각하고 있는 장르가 있으신가요?”
“장르라…… 아마 성애 소설이 되지 않을까요?”
“서, 성애 소설이요?”
최윤희의 말에 깜짝 놀란 것은 연수였다.
오늘 연수의 감정 기복은 거의 히말라야 마운틴의 등고선을 방불케 했다.
“그, 그러니까 야한 소설 말하는 거죠?”
성애性愛소설. 말 그대로 성과 사랑을 다룬 장르로, 속된 말로 야설이라고도 부르는 장르.
“네. 야한 소설이요.”
최윤희가 신동업의 표정처럼 해석의 여지가 다분한 미소를 지었다.
“한평생 뭔가 점잖은 글만 쓰다 보니까 가끔은 확! 일탈하고 싶은 기분이라고 해야 할까요?”
“아까 형우 선배한테 감평받고 싶다면서요. 그러니까, 그, 그런 걸 형우 선배한테 보내겠다는 거예요?”
“네. 그래야 전문가한테 감평을 받죠.”
연수가 당황한 듯 형우의 옷깃을 잡았다.
“서, 선배! 무슨 말 좀 해 봐요!”
“…무슨 말?”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형우가 연수를 바라봤다.
“소설 감평을 받으려면 당연히 보내 줘야 하는 거 아냐?”
“성애 소설이라잖아요! 서서서, 성애 소설!”
누군가가 쓴 성애 소설을 형우가 감평을 해 준다? 말이 되는 것 같으면서도, 그게 성애 소설이라는 점에서 뭔가 불안한 느낌이 들었다.
‘말려야 돼!’
그 생각 말고는 어떤 생각도 안 들었다.
“차라리 매니저님 전화번호를 알려드리는 건 어때요?”
“연수야, 남의 연락처를 함부로 알려주는 건 예의가 아니잖아.”
“갑자기 원론적인 이야기 하지 말고!”
연수가 소리를 질렀다.
“남의 연락처를 알려주는 건 예의가 아니지만, 지금은 경우가 좀 다르잖아요! 최윤희 작가가 쓴 웹소설을 받을 수만 있다면 지원 편집자님은 분명 쓸개 하나 정도는 충분히 내 줄 거예요!”
“어어, 그런가…?”
…논리적으로 반박할 데가 없었다.
“그러면 그렇게 할까요? 제 생각에도 제가 보는 것보다는 편집자님이 보는 게 더 정확할 것 같고.”
“그래 주시면 감사하지요.”
“으음, 아무리 그래도 막 알려주는 건 좀 그러니까. 편집자님께 전화 좀 하고 올게요.”
그대로 형우는 바깥으로 나갔고, 카페에는 최윤희와 연수 둘만 남았다.
홀짝-
연수가 커피를 마시면서 연신 최윤희를 힐끗거렸다. 시선을 눈치챈 최윤희가 먼저 말을 걸었다.
“저 연수 작가님.”
“네?”
“형우 작가님 좋아하시나 봐요.”
“푸흡!”
연수는 마시던 커피를 흘릴 뻔했으나, 운동선수 특유의 바디 컨트롤로 겨우겨우 막아낼 수 있었다.
“어, 어, 어, 왜, 왜 갑자기 그러세요?”
“아까부터 티 엄청 나던데? 계속 저 경계하고 있잖아요. 근데 티 낼 사람이 틀렸네. 내가 아니라 형우 작가님한테 내야지.”
“안 좋아하거든요!”
“에이, 그런 사람이면 35살 넘은 결혼한 아줌마를 경계하지는 않지.”
“누가 경계를…… 아니, 잠깐만요.”
최윤희의 말을 곱씹던 연수가 눈을 화등잔만하게 떴다.
“결혼하셨어요?”
“볼래요?”
그렇게 말하며, 최윤희는 휴대폰을 들어 올렸다. 그녀의 휴대폰 배경 화면 위에는, 곰돌이 모자를 쓴 한 아이의 사진이 올라와 있었다.
“귀엽죠? 저희 애에요.”
그 화면을 본 연수의 얼굴이 붉어졌다.
‘……나, 지금까지 쉐도우 복싱 한 거야?’
그러니까 최윤희가 눈치를 채지.
그러니까.
* * *
“내 생각에는, 아예 확 나가는 것도 나쁘지 않아요.”
“화, 확 나가다니요? 그건 너무….”
“아냐, 이러다가 그냥 놓친다니까?”
오늘 처음 만난 연수와 최윤희였지만, 둘은 마치 몇 년은 알고 지낸 것처럼 이야기했다.
여자들 사이의 연애담은 남자들 사이의 군대 이야기와 비슷한 것이라서, 잘 모르는 사람들 사이도 금방 끈적끈적하게 만들어 주는 것이다.
“경쟁자가 없다면, 수비드로 오래오래 끓이면 언젠가 요리가 되겠죠. 근데 경쟁자가 있담서?”
“경쟁자라고 할 것까지는….”
“아냐, 아냐. 남자들만 늑대가 아니라, 여자들도 늑대인 건 매한가지야. 솔직히 형우 작가, 젊은데다가 능력도 있잖아요. 경쟁자가 없을 리 없지. 그러니까 그냥 확! 당겨버려요!”
“목소리! 목소리!”
연수가 다급하게 손짓했다.
“……그러다가 까이면 어떻게 해요?”
“그럼 다른 남자 찾아야지. 까이는 게 시간 낭비보다 백만 배 나아요.”
“……저랑 형우 선배는 같은 곳에서 일하는걸요. 그러다 어색해 지면요?”
“그러면요…….”
잠시 고민하던 최윤희가 대답했다.
“좋아한다는 말을 절대로 하지 마요.”
“방금은 확 고백하라면서요?”
“아니지, 아냐. 생각해 봐요, 왜 옆나라 정치인들이 왜 미안하다는 말을 그렇게 싫어할까?”
그건 말의 특수성 때문이다.
미안하다고 하는 순간, 잘못을 저지른 게 되니까. 반대로 말하면 미안하다고만 안 하면 일단 잘못은 아닌 게 된다.
“그거랑 비슷해요. 다른 모든 걸 다 해도 좋아한다는 말만 안 하면 고백은 아닌 거거든. 다시 예전 관계로 돌아갈 수 있다는…… 연수 작가님?”
연수는 아쉽게도 최윤희의 연애학개론을 듣지 못했다. 작가란 상상력의 동물이고, 연수 또한 그 틀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하기 때문이었다.
‘모, 모든 걸 다……?’
모든 게 뭐지? 모든 게 모든 건가? 그러니까 모든 게...
그렇게 얼굴이 새빨개져서 자신의 상상력의 한계를 실험하는 연수. 오만 가지로 뻗어나가는 상상력은 형우가 들어오고서야 겨우겨우 멈췄다.
* * *
“저는 이만 가야겠어요. 집에 애가 기다려서. 그리고 연수 작가님.”
“에, 예?”
“화이팅!”
부아앙-
최윤희의 차가 서울의 어둠을 뚫고 달렸다. 최윤희를 보낸 뒤, 연수는 잠깐 우물쭈물하다가 힘겹게 이야기를 꺼냈다.
“…저, 선배.”
“응?”
“선배 이번에 <아이언 타이거> 완결 치셨잖아요. 저도 곧 완결인데… 이번 주말에 어디 놀러라도 안 갈래요? 그…… 휴식의 일환으로?”
“이번 주말은 좀 힘들겠는데.”
형우가 머리를 긁적거렸다.
“선약이 있어서 말이지.”
“선약이라면요?”
“천우희 작가님이랑 동물원에 가기로 했거든.”
“…뭐라고요?”
그냥 넘어갈 수 없는 이야기라, 연수는 그 내용을 꼬치꼬치 캐물었다. 형우는 그런 연수에게 천우희가 하루 종일 차를 몰고 다니며 자신을 도와줬던 일과, 소원을 하나 들어주겠다고 약속했다는 이야기를 했다.
“원래는 와인 바를 가자고 했었는데, 중간에 마음이 바뀌신 모양이더라고.”
며칠 전, 형우는 천우희에게 은혜를 갚기 위해 전화를 걸었다.
‘천우희 작가님, 저번에 와인 바 가기로 했잖아요. 조만간 어떠세요? 제가 저번에 지원 편집자님이랑 한 군데 가 봤는데, 거기 좋더라고요.’
‘지원 언니랑 갔던 데라고?’
그 말을 듣자마자, 천우희의 목소리가 변했다.
‘싫어! 나 와인 끊었어.’
‘어…… 언제는 와인 바 가자면서요?’
‘다른 데로 가!’
‘다른 데 어디요?’
‘도, 동물원! 동물원 갈 거야!’
형우의 이야기를 들은 연수가 혀를 찼다.
“헐. 그걸 듣고도 아무 생각이 안 들었어요?”
“무슨 생각?”
“에휴, 내가 말을 말지.”
그 대화만으로 연수는 모든 상황을 이해했다.
형우랑 와인 바를 가고 싶다. 하지만, 다른 여자랑 같이 갔던 데를 가기에는 자존심이 상해버리니 도중에 목적지를 바꾼 거다.
“그거 누가 봐도 데이트잖아요!”
“데이트 아니야. 나도 혹시나 싶어 물어봤거든. 그랬더니 자료조사의 일환이라고 하더라.”
“로맨스 작가가 동물원에서 자료조사 할 게 뭐가 있대요?”
“거 뭐더라… 짐승들의 로맨스를 연구하고 싶다고 했었나….”
짐승들의 로맨스는 개뿔! 너야말로 짐승이로구나!
연수가 이를 으득 갈았다.
로맨스 자료조사? 틀린 말은 아니겠지! 자기가 좋아하는 남자랑 꽁냥거리면서 솜사탕 뜯으면 그거야말로 자료조사이고말고!
‘이런 식으로 선배를 불러낸단 말이지…?’
최윤희의 말이 맞았다.
형우의 주변에는 늑대들이 우글거린다.
‘마음 단단히 먹어, 서연수!’
그대로 연수가 숨을 크게 쉬고, 형우의 팔을 붙잡았다.
“선배. 그거, 꼭 둘이 갈 필요는 없는 거죠?”
“……응?”
“저도 같이 가도 돼요?”
연수가 씨이이익 웃었다.
“선배도 오늘 저랑 약속 자리에 최윤희 작가님 데리고 왔잖아요. 최윤희 작가님은 되는데 저는 안 돼요?”
“으음…….”
형우가 생각에 잠겼다.
“반박할 방법이 없군.‘
만점짜리 논리였다.
* * *
“……뭐야.”
연수를 보자마자, 천우희가 선글라스를 내리고서 얼굴을 찌푸렸다. 어플로 찍어서 확인해 본다면 분명 당황 100%가 나올 법한 표정이다.
“연수도 동물원에서 자료조사 할 게 있다고 하더라고요.”
“…연수 작가님이 쓰시는 거 아포칼립스 액션물 아냐? 대체 동물원에서 뭐 볼 게 있다고?”
“천우희 작가님이 동물들의 로맨스를 연구한다고 하시는 걸 들으니까, 저도 갑자기 동물들의 싸움을 연구하고 싶은 거 있죠?”
연수가 밝게 미소 지으며 능청스럽게 이야기했다. “그나저나 동물들의 로맨스라니! 진짜 대단한 것 같아요! 근데 동물원 동물들한테 그런 게 있을까요? 차라리 집에서 <동물의 왕국>을 보시는 게 낫지 않았을까요?”
“흐음, 동물들의 싸움이야말로 <동물의 왕국>에 더 잘 나오지 않을까 싶은데요.”
“저는 집에 TV가 없어서요! 역시 우희 언니는 돈 번 시간이 길어서 그러신지 집에 TV도 있고 좋네요! 아, 언니라고 불러도 되죠?”
“이게….”
쳇, 하고 혀를 찬 천우희가 그대로 짜증스럽게 차의 시동을 걸었다. 부아아앙 소리를 내며 차체가 크게 한 번 떨렸다.
“그러면 저도 말 편하게 할게요. 아, 그나저나 가기 전에 기름 좀 넣어야겠네! 딜러가 거짓말을 했나 봐. 분명 코끼리를 태워도 잘 가는 차라고 했는데, 오늘 이상하게 페달이 좀 무겁네?”
“이잇…!”
…분명 둘 다 표정은 웃고 있는데, 눈이 무섭다.
던지는 말은 하나하나가 모두 이중 삼중으로 계산된 비수들처럼 느껴졌다.
‘멀미 날 것 같네.’
그런 느낌으로, 형우는 창문을 열고 밖을 바라봤다. 산과 강을 보고 있으니 그나마 좀 괜찮아지는 기분이었다.
“앞에는 강산江山이고 뒤에서는 암투暗鬪라….”
순간, 그런 문장이 떠올랐다.
겉으로는 아름다운 강산이지만, 뒤에서는 끊임없는 혈전이 벌어지는……
‘이거 혹시……?’
형우는 그대로 품 속에서 노트와 펜을 꺼내들었다. 참으로 오랜만에 찾아오는 영감이 아닌가.
* * *
용인시에 위치한 한 동물원. 수많은 동물들이 뛰어놀고 있고, 관광객들은 기쁜 표정으로 동물들의 재롱을 구경하며 환한 미소를 짓는다.
하지만, 그 와중에 미소를 짓지 못하는 사람이 둘 있었다. 연수와 천우희였다.
“…에휴. 이게 아닌데.”
“호랑이야, 제발 좀 일어나라!”
둘이 바라보고 있는 건 형우다. 형우는 지금 벌써 한 시간째 잠든 호랑이의 움직임을 천천히 바라보며 노트에 뭔가를 적고 있다.
“오옷!”
드디어, 잠을 자던 호랑이가 일어나 기지개를 켜더니 몸을 휘리릭 돌렸다. 형우는 그대로 노트에 뭔가를 스슥 휘갈겼다.
[호랑이의 움직임은 묵직하면서도 날렵하다. 걸을 때는 발을 살짝 안으로 말고, 꼬리는….]
그렇게 10분을 더 있은 후에, 다음에는 뱀 쪽으로 이동했다. 뱀 앞에서도 한 시간을 내리 보냈다.
결국 그 모습을 보다 답답해진 연수와 천우희가 가서 직접적으로 물었다.
“지금 뭐 하는 거예요?”
“뭐긴 뭐야, 자료조사지.”
형우는 그렇게 말하며 자신의 노트를 펼쳐 보여줬다.
[뱀의 배 쪽을 자세히 보면 발톱이 있는데….]
[두루미의 머리에 있는 건 자세히 보면 좀 징그럽게 생겼다.]
그 안에는 뱀, 호랑이, 두루미의 움직임과 행동 등이 빼곡하게 적혀 있었다.
“사마귀는 혹시 없나?”“……보통 동물원에 사마귀는 없죠.”
“아쉽네.”
뱀, 호랑이, 두루미에 이어 사마귀까지?
‘대체 무슨 조사를 하는 거지?’
더욱 더 아리송해진 천우희와 연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