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환상을 쓰겟다-144화 (144/200)

#143

“와우.”

형우는 눈앞에 놓인 큼지막한 토마호크 스테이크를 바라봤다. 방금까지 눈앞에서 구워지던 것이다.

“맛은 좀 괜찮으신가요?”

그렇게 묻는 쉐프는, 예전에 TV에서도 몇 번 얼굴을 봤던 대한민국의 유명 쉐프였다.

“…역시 교보재문고.”

한국 최고의 서점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데려온 식당 또한 미슐랭 3성에 빛나는 한국 최고의 식당이었다. 형우는 그대로 스테이크를 썰어 살짝 씹었다.

“세상에.”

입 안에서 육즙의 쓰나미가 터지는 느낌이었다. 이게 세상에서 제일 맛있는 음식이라는 데에 전 재산의 절반 정도는 걸 수 있었다.

“제가 지금까지 먹었던 스테이크는 피카츄돈가스였군요.”

“감사합니다.”

극찬을 들은 쉐프는 흡족한 표정으로 돌아갔다. 솔직히 말하면 형우가 먹던 스테이크와 피카츄돈가스의 차이보다, 지금 먹는 토마호크와 평소에 먹던 스테이크의 차이가 더 컸다.

“김형우 작가님, 팬이 참 많으시던데요.”

그렇게 한참 스테이크를 씹고 있는데, 익숙한 뉘앙스의 소리가 들렸다.

‘설마 또 시작인가?’

아니나 다를까, 한 남자가 아니꼽다는 시선으로 형우를 쳐다보고 있었다.

‘왠지 무슨 말을 할지 알 것 같은데.’

이 흐름대로라면 아마 다음 말은 ‘웹소설이….’

“…돈이 좀 되기는 하나 봐요?”

맞췄다.

해 본 김에 다음 말까지 맞춰 보면 아마, ‘저는 아무리 돈을 많이 벌어도….’

“…그런 글은 못 쓰겠던데. 정말 대단하십니다.”

만점이었다. 형우는 마치 자신이 노스타라다무스가 된 듯한 느낌을 받았다. <세상에 놀라운 일이!>가 종영하지 않았으면 나가 봤을 텐데.

‘이런 인간은 왜 가는 곳마다 있냐. 무슨 돌부리도 아니고.’

첫 번째가 공태준이었고, 두 번째가 정진욱이었으니, 이번이 세 번짼가? 아무리 짜증 나는 일도 한 세 번쯤 겪으면 지루하기만 한 법이다.

‘하품 하면 뭐라 하겠지?’

그런 형우의 기분을 아는지 모르는지, 그 작가는 계속해서 형우의 옆에서 헛소리를 늘어놓았다.

“안 그렇습니까, 작가님? 웹소설은 예술이라고 부르기 좀 그렇잖아요?”

“왜 그렇죠?”

“그야 예술이란 참신함이 있어야 하니까요!”

남자가 자신감 넘치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하지만 웹소설은 레시피대로만 쓰지요! 그 어디에 참신함과 예술성이 있습니까?”

“레시피요?”

그 말을 듣자 하품은 좀 가셨다.

그 자리를 대신한 건 비웃음이었다.

“작가님. 혹시 산타클로스도 믿으시나요?”

“……산타요?”

“아, 산타는 안 믿으시는구나. 난 또.”

형우가 눈앞에 놓인 와인잔을 툭툭 치며 말했다.

“따라하기만 하면 돈이 벌리는 레시피 같은 이야기를 하시기에 혹시 착한 일 하면 밤에 선물 주고 가는 빨간 모자 할아버지 이야기도 믿으시는 줄 알았죠.”

“……뭐요?”

“애초에, 따라하기만 해서 돈을 벌 수 있으면 그게 대체 왜 레시피입니까? 현자의 돌이지. 뭐, 허무맹랑하기 그지없다는 점에서는 둘이 별로 다르지는 않는데…….”

콰앙!

갑자기 난 소음에 형우는 말을 끝마치지 못했다. 책상을 내려친 남자가 잡아먹을 듯한 표정으로 형우를 노려보고 있었다.

다음에 무슨 말을 할 지도 뻔했다. 아마 ‘지금 돈 좀 번다고 예술을 무시하는 겁니까?’ 겠지?

“지금 돈 좀 번다고 예술을 무시하시는….”

“거기까지 하죠? 더 듣기 좀 그런데?”

옆 테이블에서 들려온 목소리에, 남자의 목이 그 쪽으로 홱 돌아갔다. 그대로 두 눈이 터질 듯이 커졌다.

“……다, 당신은?”

“돈이 부러우면 저런 글을 쓰고, 예술을 하고 싶으면 닥치고 하던 거나 하세요. 괜히 꿍얼대지 말고. 입맛 떨어지니까.”

자신에게 시비를 걸었던 사람의 이름은 몰랐지만, 지금 저 말을 하는 사람은 형우도 아는 작가였다.

‘모르면 간첩이지.’

그녀의 이름은 최윤희.

올해의 소설 1위에 선정된 <돌을 사랑한 여자>를 쓴 작가였다.

* * *

“최, 최윤희 작가님?”

최윤희에게 막말을 들은 남자가 눈을 끔뻑거렸다.

“방금 그 말, 저한테 한 말입니까?”

“진짜 몰라서 묻는 건 아니죠?”

“어떻게 그런 말을!”

남자는 현존 최고의 순문학 작가가 자신을 비난한다는 걸 믿을 수 없다는 듯이 굴었다.

“혹시 같은 학교라고 편들어 주시는 겁니까?”

“나 참. 작가라는 사람이 오캄의 면도날도 모르나?”

푸근한 인상과는 다르게 최윤희의 말은 들고 있는 나이프처럼 뾰족했다.

“동문이고 나발이고, 그냥 당신 하는 말이 마음에 안 든다고, 이 개차반아!”

그 날선 말에 멘탈을 갈기갈기 찢긴 남자가 질 수 없다는 듯 소리를 질렀다.

이게 클레오파트라 게임이면 남자가 이겼겠지만, 아쉽게도 말싸움의 룰은 데시벨과 옥타브가 높은 사람이 이기는 게 아니지 않는가.

“이건 모욕입니다! 작가님, 제게 막말했다는 소문이 퍼지면 작가님이라고 멀쩡할 줄 아십니까?”

“뭐래.”

최윤희가 비웃었다.

“그러는 당신은 참새치 작가 욕했다는 소문 퍼지면 멀쩡할 수 있을 것 같아 그랬어요? 오늘 온 사람들 수만 봐도 비교가 안 되던데?”

“이익!”

이어지는 최윤희의 팩폭에, 그 이름 모를 작가는 결국 먹던 토마호크를 내동댕이쳤다.

“못 들어주겠군요! 이 일 절대로 그냥 넘어가지 않을 겁니다! 두고 보자고요!”

3류 악당같은 대사를 남긴 채, 남자는 얼굴을 붉히며 가게 바깥으로 뛰쳐나갔다.

“두고 보긴 뭘 두고 봐? 지가 무슨 난초야?”

* * *

한바탕 소란이 끝난 후, 형우는 최윤희에게 감사인사를 전했다.

“편 들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최윤희는 별것 아니라는 듯 손을 내저었다.

“뭘 감사까지야. 그냥 제가 입맛 떨어져서 그런 거예요. 돼지기름에 절인 마늘은 맛있기라도 하지, 열등감 절어 있는 인간은 도무지 쓸 데도 없다니까요.”

스테이크에 곁들여 나온 마늘 가니쉬를 우물거리며 최윤희가 말했다.

“그나저나 형우 작가님, 방금 저보고 고맙다고 했죠?”

“네.”

“그러면요, 단돈 육천 원으로 고마움을 갚을 수 있는 기회를 드릴게요.”

“육천 원이요?”

“초면에 실례가 안 된다면, 저희끼리 간단하게 맥주 한 잔 어떠세요? 소설 이야기나 좀 하면서.”

“허어.”

평소라면 쌍수를 들고 반색을 할 일이었지만, 오늘은 별로 날이 좋지가 않았다.

‘가는 날이 장날이라더니.’

아쉬운 표정으로 형우가 대답했다.

“죄송하지만 전 오늘 다른 약속이 좀 있어서요. 혹시 다음에는 안 될까요?”

“다른 약속이요?”

“네. 아는 후배랑 선약이 있거든요.”

“혹시 그 분도 웹소설 작가님이에요?”

“네.”

오늘 이 자리가 끝난 후, 오랜만에 연수를 만나 잠깐 소설 이야기를 하기로 했었다.

“물론 저도 최윤희 작가님이랑 이야기를 나눠 보고 싶지만 아무래도 선약을 깨는 건…….”

“안 되죠, 안 돼. 사람 봐 가면서 약속 깨는 건 할 짓이 아니죠.”

“이해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휴우, 형우가 한숨을 푹 쉬었다.

‘헤밍웨이 당하지 않아서 다행이다.’

미국의 위대한 작가 헤밍웨이는 친구에게 총을 선물받은 적이 있는데, 총을 받자마자 똑바로 작동하는지 본다며 그대로 닭을 쏴버렸다고 한다.

총이 잘 작동하는지 확인해 본다는 이유였다.

‘그거라면 허공에 쏴 봐도 되지 않는가?’

깜짝 놀란 친구의 질문에, 헤밍웨이는 허허 웃으면서 이렇게 대답했다.

‘나한테 필요한 건 잘 격발되는 총이 아니라네. 잘 죽이는 총이지.’

……이 사건으로 인해, 헤밍웨이는 작가의 괴팍함을 나타내는 상징적인 인물이 되어 버렸으니. 괴팍한 작가들에게 당한 문학 종사자들이 ‘헤밍웨이 당했다.’라는 표현을 즐겨 쓰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하지만, 뒤이어 나온 최윤희 작가의 말을 들은 형우는 재빨리 자신의 생각을 수정해야만 했다.

“……하지만, 제가 약속을 같이 나가는 건 어떨까요? 그거는 약속 위반이 아니잖아요.”

“예?”

“그러니까, 형우 작가님 약속에 저도 가고 싶다고요. 어차피 그 분도 웹소설 작가라면서요.”

“그건 그렇긴 한데…….”

“그러면 약속도 안 깨도 되고, 저랑 이야기도 할 수 있고! 도랑치고 물고기 잡고, 님도 보고 뽕도 따고, 꿩 먹고 알 먹고!”

짐짓 발랄한 표정으로 최윤희가 박수를 짝짝 쳤다. 그 모습을 본 형우가 넌저시 중얼거렸다.

‘……아, 헤밍웨이 당했네.’

* * *

한국 대학교의 명물로 손꼽히는 두유집. 연수는 노트북을 펼친 채로 형우를 기다리고 있었다.

잠시 후, 딸랑거리는 소리와 함께 카페의 문이 열리며 형우와 최윤희가 들어왔다.

“오래 기다렸어?”

“아뇨, 저도 방금 왔어요. 뒤에 계신 분은….”

“아까 전화로 말했던 최윤희 작가님이야.”

“최윤희!”

연수의 눈이 잠깐 반짝거리다가, 곧 침울해졌다. 일단 처음의 반짝거림은 연수가 최윤희의 팬이라서 그렇다.

한국 대학교를 먼저 졸업한 선배인데다가, 최근 청년들의 마음을 울리는 수 많은 단편집들로 이름을 날리는 순문학 작가다. 아마 문창과 여학생을 아무나 잡고 ‘제일 좋아하는 최근 작가가 누구예요?’라고 물어본다면 십중팔구는 최윤희라고 대답할 테다. 연수도 예외는 아니었다.

‘그런데 왜 하필 형우 선배랑…?’

그게 침울함의 이유였다. 다른 이유로 최윤희를 만났다면 아무렇지 않게 팬심을 표현했을 텐데, 하필 형우 선배랑 같이 오다니.

‘형우 선배는 이상형이 어떤 여자예요?’

‘나는 나보다 글 잘 쓰는 여자가 좋아.’

예전에 형우에게 글을 배울 때 들었던 이야기가 넌지시 떠올랐다.

형우보다 글 잘 쓰는 여자. 젊은 소설가들의 우상이자 이번 해에 들어 올해의 소설 1위에까지 선정된 최윤희라면 충분히 그 조건에 부합하지 않을까? 하는 불안한 예감이 저도 모르게 들었다.

‘아니야, 그럴 거면 천우희 작가님도 있었잖아. 천우희 작가님이랑도 별 이야기가 없는 걸 보면….’

애써 그렇게 생각해 봐도, 이미 마음 한켠에 꿍하니 박힌 불안감은 어쩔 수가 없었다. 그래서,

“어어… 최윤희 작가님은 왜 같이 오신 거예요?”

하고, 1회 초부터 몸쪽 꽉 찬 직구를 던졌다. 최윤희가 호호 하고 웃었다.

“당연히 형우 작가님한테 관심이 있어서죠.”

저 말은 굉장히 중의적이다. ‘형우’ 작가님에게 관심이 있거나, 혹은 형우 ‘작가’님에게 관심이 있거나. 어쩌면 둘 다일 수도 있다.

이번에는 슬라이더로 꺾었다.

“최윤희 작가님, 장르소설을 좋아하세요?”

“어떨 것 같아요?”

“잘 모르겠어요.”

“솔직히 말하면, 그렇게 즐기는 편은 아니에요.”

그 말을 들은 연수의 표정이 거의 경악으로 변했다.

장르소설을 싫은데 형우를 쫓아왔다면, 그 말은 곧 형우에게 관심이 있다는 뜻이 아닌가?

그런 연수의 표정을 보며, 최윤희가 짓궂게 웃었다.

“꿈이나 모험, 로망. 그런 식의 읽으면 즐거워지는 글이 나쁘다고는 생각 안 하는데, 내가 읽고 쓰기에는 영 잘 안 맞아서. 읽을수록 뭔가 찝찝해지는 이야기를 쓰는 게 성미에 좀 더 맞는달까?”

‘읽으면 찝찝해지는 이야기’라는 말은, 작가들이 흔히 한국 문학을 이야기할 때 주로 사용하는 약간 자조적인 말이다. 경악에 빠진 연수 대신 말을 받은 건 형우였다.

“뭐, 그럴 수도 있죠.”

“어라라. 뭔가 기분 나빠할 줄 알았는데, 의외네요?”

“기분 나빠할 게 뭐 있어요.”

어떤 사람이 ‘소설은 무조건 순문학만이 옳다.’라고 말했으면 그 부분에 대해 불만을 표했을지 모르나, ‘내 취향에는 장르문학이 잘 안 맞는다.’라고 한다면, 딱히 거기에 뭐라 할 말은 없다.

앞의 말은 아집이고, 뒤의 말은 호불호였으니까.

“하지만 요즘 들어서, 배워 볼까 생각은 좀 하고 있어요. 상당히 진지하게.”

“배우다니요, 장르문학을?”

그렇다면, 역시 형우가 아니라 소설이 탐나서 여기까지 쫓아온 건가?

연수가 부활했다.

“그래서 형우 선배랑 약속을 잡은 거예요?”

“맞아요.”

최윤희가 고개를 끄덕거렸다. 연수의 표정이 아리송하게 변했다.

“아까는 별로 안 좋아하신다면서요?”

“이걸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제가 예전에 일 때문에 한 1년 정도 동남아를 갔던 일이 있었거든요?”

갑자기 최윤희가 썰을 풀기 시작했다.

“동남아에 가니까, 과일도 맛있고 사람들도 좋고 날씨도 좋고, 코끼리 뿌우우 거리는 것도 좋고 한데. 딱 하나가 안 좋았어요. 뭐였게요?”

“제가 해외를 안 가봐서….”

“음식! 정확히 말하면 고수가 문제였죠.”

‘고수’라는 말을 듣자마자 형우의 얼굴이 찌푸려졌다. 예전에 의재와 갔던 베트남 쌀국수 집에서 뭣도 모르고 ‘현지인처럼 먹어야 진짜 음식이지!’라는 생각에 고수를 넣고 시켰다가 한 젓가락 먹고 죄다 쓰레기통에 양보한 기억 때문이다.

“처음에는 영 못 먹겠더라고요. 비누 맛 같기도 하고, 세제 맛 같기도 한 게, 저는 처음에 진짜 퐁퐁으로 그릇 닦고 제대로 안 씻어서 그런 줄 알고 음식 바꿔달라고 했다니까요?”

“컴플레인을 건 거예요?”

“그럴 뻔 했죠. 가이드가 옆에서 말렸기에 망정이지.”

“……큰일날 뻔 하셨네요.”

한국에서 김치찌개를 시켰는데 안에 마늘이 들었다며 환불시킨 거랑 비슷한 상황이니. 상황에 따라서 인종차별주의자로까지 몰릴 수 있는 행동 아닌가.

가이드가 참 난처했겠군.

“그래서 첫 끼는 아무것도 못 먹고, 둘째 날에는 과일만 먹었어요. 근데 그러다 보니 문득 오기가 든 거야. 그래봐야 저것도 음식인데, 사람이 음식한테 져야 쓰겠어요?”

너무 낯선 음식은, 우리의 뇌가 ‘음식’이라고 인식하지 못하고 ‘독극물’이라고 인식해서 토해내려고 한다고 한다.

“그래서, 저는 제 멍청하고 둔한 300g짜리 두개골 속 살덩어리한테 똑똑히 알려주기로 했어요. 멍청한 두뇌야! 이건 음식이야! 독이 아니라고!”

“…본인의 두뇌한테요?”

“인정할 건 인정해야죠. 전 제 두뇌보다 똑똑해요. 그걸 아는 사람이 진짜 똑똑한 사람이죠.”

그렇게 최윤희는 자신의 똑똑함을 증명하기 위해서, 고수풀을 향해 선전포고를 했던 것이다.

비누냄새 나는 혈투의 시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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