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환상을 쓰겟다-142화 (142/200)
  • #141

    졸업식이 끝나고 5일 후. 어느새 3월이 찾아왔다.

    “작년 이맘때는 휴학계 집어던지고 뭐 해야 할지 진짜 더럽게 막막했는데.”

    지금은 그저.

    한가롭다.

    “이게 휴식인가….”

    형우가 중얼거렸다. 웹소설을 시작한 후로, 아니, 문창과에 들어간 후부터 지금까지 7년간 거의 휴식이랄 것 없이 달려오기만 했다.

    사실 저번처럼 바로 차기작을 시작할까 고민해 보기도 했지만, 지금으로서는 딱히 떠오르는 게 없었다. 형우는 그 이유를 대충 짐작했다.

    ‘인풋이 부족해서겠지.’

    소설가들의 명언 중에는 이런 말이 있다. 인생을 사는 일은 그릇을 넓히는 일이고 소설을 쓰는 일은 그 그릇에 물을 넣는 일이라고.

    다시 말하자면, 충분한 인생의 경험이 없다면 밀도 있는 소설을 쓰기 힘들다는 뜻이다. 이번 휴식은 그런 식의, 소설을 위한 휴식이었다.

    “그릇이 별로인데 소설을 써 봐야 두꺼비 없는 콩쥐팥쥐 시뮬레이터밖에 안 되는 거니까.”

    게다가, 최근 들어 2질을 완결지으면서 소설가로서의 미래에 대한 불안감이 어느 정도 희석된 것도 있었다. 더닝크루거 그래프로 보자면, 어느 정도 오른쪽으로 상당히 치우쳤을 것 같다.

    불안감에 가득 찬 상태로 휴식을 하는 건 시간 낭비였겠지만, 지금처럼 확신이 가득 찬 상태에서의 휴식은 득이 되면 득이 됐지 독이 되지는 않으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분명 그랬는데.”

    인간의 인생을 가장 잘 비유한 소설가가 있다면, 그건 아마도 미국의 작가인 오 헨리일 것 같다. 그가 평생에 걸쳐 쓴 기라성같은 작품들이 가득이지만, 그중에서도 형우가 가장 좋아하는 건 역시 <경찰관과 찬송가>라는 단편 소설이다.

    소설 속 가난한 주인공은 추운 겨울을 보내기 위해 범죄를 저질러 교도소에 들어갈 계획을 세운다. 남자의 첫 범죄는 세상에서 가장 흉악한 범죄 중 하나인 무전취식이다.

    고급 식당에 들어가 난생 처음 보는 요리를 우적우적 뜯고 ‘난 돈이 없으니 경찰관을 부르시오!’라고 하지만, 가게 주인은 경찰관을 부르는 대신 직접 20년 요리로 다져진 우락부락한 주먹 솜씨를 사용해 사적 제제를 가한다.

    그다음에도 주인공은 이런저런 쫌생이 짓을 하지만, 번번이 막혀버린다. 성희롱으로 잡혀가기 위해 치마를 들춘 여자는 매춘부라서 오히려 호객을 당하고, 길거리에서 시비를 건 남자는 하필 좀도둑이라서 경찰에게 감사를 받는 식이다.

    그래서 우리의 쫌생이 주인공은 결국, 이것이 새 인간으로 거듭나라는 신의 뜻이라고 생각하며 마지막으로 교회에 가서 감사 기도를 올린다. 이야기가 여기에서 끝났다면 <경찰관과 찬송가>는 구두쇠 스크루지를 주인공으로 한 찰스 디킨스의 <크리스마스 캐럴>과 같은 인간회개의 스토리일지도 모르겠으나, 오 헨리는 찰스 디킨스의 아류가 되고 싶지 않다는 굳은 의지로 다음 장면에서 기막힌 반전을 넣는다.

    ‘이 자다!’

    ‘이 자가 교회를 무단 침입했다!’

    한 무리의 경찰이 들이닥쳐 주인공을 구속하는 것이 그 내용이다. 죄명은 ‘성당 무단침입죄’고, 구형은 3개월이다. 이 소설에서 오 헨리가 우리에게 하고 싶은 말은 무엇이었을까?

    “인생은 마음대로 안 된다는 거지.”

    자신에게 온 한 통의 메시지를 보며, 형우는 그렇게 헛웃음을 지었다.

    [참새치 작가님, 교보재문고 주민호입니다. 이번에 <올해의 소설>의 작가님들을 초청하여 사인회를 열까 하는데, 작가님 생각은 어떠신지 여쭙고 싶습니다. 만약 생각이 있으시면 답장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아이언 타이거>는 교보재문고 ‘올해의 소설’ 8위에 선정되었다. 어찌 보면 낮게 보일 수도 있는 순위였지만, 웹소설이 표를 받은 것 자체가 최초라고 들었다.

    따지자면, 2002년 월드컵 때 한국이 최로로 4강을 간 것 정도의 호재랄까. 독일이나 브라질처럼 4강을 밥 먹듯이 가는 데가 보면 ‘고작 4강 가지고 왜 저 요란이지?’라고 생각할지도 모르겠으나, 정글에서 피어난 거대한 나무와 아스팔트 사이에서 피어난 민들레를 보고 무조건적으로 ‘거대한 나무가 더 위대하다.’라고 말하는 것도 영 감수성 없는 행동이라는 거다.

    “그나저나 이걸 까맣게 잊고 있었네.”

    기억력이 나쁘다기보단, 최근에 있었던 일들이 하도 다이나믹했던 탓이다. 일이 너무 바쁘면 다른 일은 잊게되는 심리랄까. 한국의 유명 CEO 중 한 명은 군대 입대 전날까지 너무 바쁘게 일을 하느라, 실수로 자신이 입대한다는 것을 가족들에게 말하는 걸 깜빡했다고 하지 않던가.

    “그것보다는 낫지 뭐.”

    그렇게 대충 넘긴 형우는 그대로 주민호에게 참가하겠다고 답장을 보냈다.

    * * *

    내달리는 버스 안, 형우는 바깥 풍경을 바라봤다. 어느새 3월, 봄이 완연하고, 아지랑이 가득한 땅은 김이 솔솔 피어나는 식빵처럼 말랑해 보인다.

    “그래도 땅속까지 다 녹으려면 좀 더 기다려야겠지.”

    겉으로는 갓 구운 식빵처럼 보이는 땅이지만, 사실 저 땅은 요즘 유행하는 ‘겉바속촉’의 시대관을 역주행하는 ‘겉촉속바’의 애매한 지표다. 봄 날씨는 겨우내 얼어붙었던 지표의 내부를 녹이기에는 충분하지 않다. 충청도 골짜기에서 2년간 야전삽을 쥐고 매일같이 두더지 잡기 시뮬레이션을 했던 형우는 그것을 몸으로 배워 알았다.

    ‘내가 두더지였지.’

    그리고 찾는 쪽은 대대장이거나, 연대장이거나, 가끔은 사단장이다. 그 외에는 두더지 잡기와 규칙이 같다. 잡히면 뒤진다. 잡히지 않기 위한 가장 좋은 방법은, 땅을 파고 숨어 들어가는 거다.

    처음에는 땅이 콱콱 파이지만, 한 50cm만 뚫고 들어가면 땅은 여전히 꽝꽝 얼어 있다. 그걸 야전삽으로 파고 있노라면 ‘사실 철기보다 토기가 더 단단한 게 아닐까?’라는 철기문명에 대한 근본적인 회의감이 가슴 깊숙이 차오르게 된다.

    ‘그렇게 열심히 팠는데, 짬밥 20년 차 연대장은 기어코 나를 찾아냈었지.’

    갑자기 휘적휘적 걸어와서 ‘작년에 우리가 못 찾은 팀이 아마 여기 숨었었지? 올해도 있나?’하고 그대로 형우를 찾아내 버렸다.

    차라리 땅을 덜 파서 걸렸다거나 위장이 허접해서 걸렸다면 덜 억울했을 텐데, 이건 사실상 불가항력이고 자연재해였다.

    물론 군대는 불가항력이었다고 해서 봐주는 만만한 곳이 아니었으니, 형우는 어쩔 수 없이 중대장에게 불려가 장장 4시간동안 군인정신에 대한 설교를 받아야만 했다.

    “…아무튼, 땅이 다 녹는 건 한 6월 정도인가.”

    형우가 생각하는 건 역시 아버지의 이장 문제다. 다행히도 <아이언 타이거>는 <전설의 보안관>보다도 돈을 훨씬 더 많이 벌었다.

    총 매출 6억. 아무래도 네이비 웹소설 어워드에서 대상을 탄 게 컸다.

    가장 좋은 작품에 대상을 주고, 대상이라서 또 가장 좋은 작품이 되고. 소설의 선순환이랄까. 그렇게 모은 돈은 어느새 어머니와 약속했던 10억이 조금 넘었다. 이제 기다리기만 하면 된다.

    미약한 것들이 물과 햇빛을 뿌리로 바꾸어내는 지단한 노력의 과정이 끝나면 깊은 땅 또한 흐드러지게 녹아 퍼지고 말 테고, 그때가 되면 아버지는 드디어 죽기 전 당신이 바라셨던 고향 땅에 다시금 몸을 뉘일 수 있게 될 것이다.

    그렇다면 전래동화처럼 ‘잘 됐군, 잘 됐어!’라고 말하며 끝낼 수 있으리라.

    [다음 정류장은 송파 자동차 면허시험장입니다.]

    어느새 버스가 도착했다.

    오늘은 지금까지 벼려왔던 운전면허 시험을 보는 날이다. 정확히는 기능시험이었다.

    * * *

    2번 김형우 나오세요.

    와이퍼를 돌려주세요

    틱틱, 드륵, 위잉, 위잉.

    깜빡이를 켜 보세요.

    띵동- 띵동-

    그럼 출발하세요.

    삑.

    불합격입니다.

    “엑.”

    시작한 지 2분 만에 형우는 1종 보통면허 기능시험에서 떨어졌다.

    “…맞다, 사이드 브레이크.”

    실수로 사이드 브레이크를 내리고 출발하는 것을 잊었다. 차체는 그대로 크게 덜컹- 거리더니, 그대로 2분 만에 도로주행시험비 8만 원이 허공으로 날아갔다.

    ‘2분만에 8만 원? 이거 완전 날강도 아냐?’

    20분이면 80만 원, 1시간이면 240만원.

    하루 8시간씩 30일 일하면 5억 7천 600만원이다.

    물론 이 계산이 그 근본부터 글러먹은 계산이라는 건 알지만, 그래도 속이 쓰리는 건 어쩔 수 없었다.

    벌써 세 번째다.

    처음에는 T자 주차를 하다가 탈선해서 보도블록 위에 바퀴를 올려버렸고, 두 번째에는 첫 코스인 오르막길에서 기어 조정을 실수해서 기적의 후진을 했다.

    그리고 세 번째가 지금이다.

    “어떻게 떨어지는 시간이 점점 빨라지냐.”

    터벅터벅 걸어가는데, 자신에게 운전 연수를 해 줬던 연수원이 혀를 쯧쯧 차는 게 보인다. 마치 ‘저래서 도로 나가겠나?’ 하는 표정 같다.

    “돌겠네, 진짜…….”

    1시간 걸려서 왔는데, 2분 만에 떨어지고 다시 돌아가야 한다니.

    “응?”

    그렇게 터벅터벅 걸어가던 차, 멀리서 익숙한 자동차가 눈에 띄었다. 반짝반짝거리는 외제차에 어울리지 않는 헬로 키티 한 마리가 떡하니 붙어 있었다.

    마치 한 마리에 30만 원이 넘는 생선으로 매운탕을 끓인 듯한 기묘한 센스랄까. 그리고 형우는 저런 센스를 가진 사람을 한 명 알고 있었다.

    “…비슷한 센스를 가진 사람인가?”

    그 자동차는 그대로 형우의 앞에 끽, 소리를 내며 멈췄다. 하기야, 세상에 저런 괴상한 센스를 가진 사람이 두 명이나 있을 리 없지.

    유리창이 내려가고, 익숙한 선글라스와 이태리 장인이 한 땀 한 땀 만들었다는, 겉보기에는 아X다스 89,000원짜리 제품과 다른 부분을 찾을 수 없는 추리링이 보였다.

    “어, 김형우? 어디 가고 있었어?”

    “에휴, 다른 사람일 리가 없지.”

    천우희였다.

    * * *

    “그러니까 운전면허를 세 번 떨어졌다고? 그것도 주행도 아니고 기능에서?”

    우하핫! 천우희가 참지 못하고 웃음을 터트렸다.

    “진짜 너는 운전하지 마라. 네가 갈 수 있는 곳은 부산도 아니고 서울도 아니고, 딱 한 곳이야.”

    “어딘데요?”

    “황천.”

    “…….”

    자신의 말이 웃겨 죽겠다는 듯, 천우희는 또다시 웃음을 와라락 터트렸다.

    “…너무 웃는 거 아녜요? 천우희 작가님은 한 번에 붙었어요?”

    “나야 당연히 한 번에 붙었지. 그것도 1종! 보이냐?”

    그렇게 말하며, 천우희는 자신의 운전면허증을 당당하게 내밀었다.

    “으음.”

    아무래도 운전면허증에 적힌 11이라는 숫자보다는, 그 옆에 보이는 증명사진이 더 신경 쓰인다.

    “…이 사람 누구예요?”

    “흐아앗!”

    천우희가 당황한다. 사진이란 보통 정면에서 찍으면 이상하게 나오기 마련이고, 특히 증명사진은 더욱 그런 감이 있다. 거기에 증명사진을 찍을 때는 포토샵이나 소다 등의 앱을 활용할 수도 없으니, 사진이 못나게 나오는 것은 당연지사다.

    “그런 것 치고도 좀 못 나오긴 하셨네.”

    “계속 그럴 거야?”

    “눈이 지금이랑 다른 것 같은데.”

    “거기까지. 한마디 더 하면 죽일 거야.”

    천우희가 으르렁거렸다. 형우는 왠지 모를 통쾌함을 느꼈다.

    “이상하네요. 제가 예전에 <전설의 보안관> 쓸 때, 한참 로맨스를 많이 봤었거든요?”

    “갑자기 왜 딴 이야기야? 불안해지게.”

    “들어 봐요. 로맨스 소설에서 보면요, 남자 주인공이 여자 주인공한테 ‘오늘 매니큐어 바뀌었네요?’라고 하면 여자 주인공이 좋아했거든요.”

    “…너 혹시.”

    “그런데 왜 눈이 바뀐 걸 알아차리면… 으앗!”

    결국 형우는 천우희에게 옆구리를 한 대 맞았다.

    “그거랑 이거랑 같냐?”

    “미용이라는 측면에서 보면….”

    “죽는다, 진짜?”

    언제나 드는 생각이지만 천우희는 뭔가 놀리는 재미가 있다. 작가 대 작가로 만날 때는 항상 깜짝깜짝 놀랄 정도로 프로다운 모습을 보여주지만, 소설이라는 주제를 떼어놓고 보자면 천우희는 허당 쪽이 맞는 듯하다.

    “그나저나, 잠실 쪽에 내려주면 돼?”

    “네, 오늘 소설 사인회 있어서요. 교보재문고에서.”

    “사인회라.”

    천우희가 피식 웃었다.

    “이번이 처음인가? 네 이름값 생각해 보면 좀 늦은 감이 있기는 하네.”

    “자랑하려고요?”

    “당연하지. 나는 사인회를 열 번도 넘게 해봤는데 말야, 그중 한 번은 팬들 사이에서 주먹다짐이….”

    아무리 생각해도 사인회 도중에 주먹다짐이 일어날 일은 없을 것 같지만, 이런 말은 확실한 거짓이 판별되지 않는 이상 사실로 취급해 주는 것이 관례다. 마치 부모님이 가끔 하는 ‘나 학창시절엔 다른 애들이 졸졸 쫓아다녔어.’ 같은 느낌이랄까.

    거기에 대고 에이 구라치지 마세요 하는 건 그냥 선전포고일 뿐이다. 그대로 2차전이 벌어지고 말 테고, 십중팔구 폴란드 꼴이 나는 건 이쪽일 테지. 그래서 그냥 아아, 그렇군요! 하고 넘어갔다.

    “그나저나, 이번엔 긴장 안 하는 것 같다?”

    “긴장할 일이 뭐 있겠어요. 어차피 제가 주인공도 아닌데.”

    형우의 <아이언 타이거>가 ‘올해의 소설’ 중 하나로 선정된 건 사실이나, 그래봐야 8등이다.

    모든 소설 중 8등이라는 건 쾌재이긴 하지만, 같이 참가하는 사람들이 너무 쟁쟁하다고 할까. 자신이 손홍민이라고 치면, 옆에는 메시와 모드리치, 네이마르와 수아레즈가 떡 버티고 서 있는 셈이니.

    “단독 사인회라면 모르겠지만, 지금은 기대 안 하는 게 맞을 것 같아요.”

    “흐음, 글쎄.”

    천우희가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었다.

    “내 생각에는 반대일 것 같은데. 조금 긴장하는 편이 나을걸?”

    * * *

    아쉽게도? 아니면 다행이게도?

    서로 반대되는 조사가 분명하건만, 무슨 조사를 붙여야 어울릴지 모르겠다.

    “거기, 밀지 마세요!”

    “거기 세 번째, 새치기는 안 됩니다. 맨 뒤로 가세요!”

    “아니! 무슨 새치기입니까, 여기가 제 자리라니까요? 어어, 나 주먹으로 친 거 누구야?”

    결론부터 말하자면, 천우희의 말이 모두 다 맞았다. 이 자리에 모인 열다섯 명의 작가들 중, 형우의 줄이 가장 길었다. 그것도 압도적으로.

    마치 초보자의 테트리스 게임 같은 느낌이랄까.

    “아무리 해도 줄이 줄어들지 않는다는 점까지 비슷하잖아.”

    마지막에 헤어지기 전 천우희가 했던 말이 기억난다.

    ‘그, 네가 말한 축구선수 사인회 있잖아, 한국에서 열리면 손홍민 선수 줄이 제일 길지 않을까?’

    그 말이 맞았다.

    “참새치 작가님! <전설의 보안관> 재밌게 읽었어요! 그건 혹시 양장본으로 안 나오나요?”

    “<아이언 타이거> 순문학판으로도 읽었고 웹소설도 전부 봤습니다! 다음 작품 언제 시작하세요?”

    …그러니까, 이 ‘올해의 소설’ 사인회에 모여든 대부분의 사람들은, 순문학의 팬덤이 아니라 장르문학의 팬덤이었던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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