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9
“그것까지는 좋은데요.”
지원이 이해가 되지 않는다는 투로 되물었다.
“그런데 왜 하필 스패로우 팩토리로 오셨죠? 서 매니저님 경력이면 어디서도 환영받을 텐데요.”
“그야, C&N이 적이라고 보고 있으니까요.”
당연하다는 듯 서민홍이 대답했다.
“C&N이 스패로우 팩토리를 때린다는 건, 반대로 이야기하자면 스패로우 팩토리가 C&N이 무서워할 만한 잠재력을 갖고 있다는 뜻 아니겠습니까? 이왕이면 일은 그런 데서 해야죠.”
“아까는 안온한 직장이 좋다면서요?”
“조금 다릅니다.”
서민홍이 고개를 저었다.
“저도 향상심은 있고, 이왕이면 좋은 데서 일하고 싶습니다. 그냥 관리자를 하기 싫은 것뿐이에요!”
“…어어, 야망이 있는 건가요, 없는 건가요?”
“제가 꿈꾸는 건 제왕이 아니라 일인지하 만인지상입니다! 제갈공명, 강태공, 장량 말입니다.”
“허어….”
갑자기 무협소설에나 나올 법한 단어를 내뱉으니, 역시 오랜 시간 출판업계에 종사한 매니저답기는 하다.
“게다가, 형우 작가님 때문이기도 하죠.”
“형우 작가님이요? 어느 면에서?”
“그, 제가 마지막에 작가한테 갑질을 당하지 않았습니까. 그것도 엄청 끔찍하게요.”
목에 전기가 통한 것처럼 서민홍이 얼굴을 바르르르 떨었다. 하기야, 그런 사람 만나면 전기 충격보다 더 충격적이긴 할 거다.
“그러다 보니 형우 작가님이 떠오르더라고요. 기억나세요, 작가님? 예전에 C&N 들르셨을 때 서 매니저님 몰래 저희한테 홍삼 돌린 거?”
“에엑, 그런 일이 있었어요?”
지원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제가 누누이 말했잖아요! 작가가 매니저한테 선물 주는 거 아니라고!”
“에이, 그래도 어떻게 그래요. 그리고 결국 그 홍삼 한 팩 덕분에 유능한 매니저가 저희 쪽으로 왔잖아요? 그러면 좋은 거 아닌가?”
“흐음, 홍삼 한 팩에 서민홍 매니저님이면….”
지원이 단어를 곰곰이 찾았다.
“일론 머스크도 깜짝 놀랄 투자의 귀재시네요. 수익률이 500만 배는 될 거예요. 저는 마음에 들어요. 혜선 씨 생각은 어때요? 약속했던 임시환 닮은 병약 미소년은 아닌데, 하루 11시간 일은 가능하신 분이세요.”
“그거야말로 제 이상형이거든요.”
혜선이 고개를 끄덕거렸다.
“마침 인력이 딱 필요하던 참이기도 했고.”
“그럼 뭐, 낙점이네요!”
그렇게 얼렁뚱땅, 홍 매니저는 스타트업 출판사 스패로우 팩토리에 참여하게 되었다.
그 말은 곧, 아카데미 프로젝트를 시동할 최소한의 조건이 갖춰졌다는 뜻이기도 했다.
* * *
웹소설 아카데미의 큰 그림은 대충 잡혔지만, 이제 디테일하게 프로젝트를 시동하기까지는 아직 시간이 좀 남았다.
“저희야 이제 한창 바빠질 텐데, 형우 작가님은 뭘 하실 생각이세요?”
“저는 이제 바로 차기작 준비해야죠.”
“흐음, 작가님. 제가 여간해서는 이런 말 안 하는 데 말이죠.”
지원이 그런 형우를 만류했다.
“잠깐 쉬시는 건 어떨까요? 휴식이요.”
“휴식요?”
“네. 열심히 일 하시는 건 좋지만, 진짜 이렇게 일만 하시면 몸 상하시거든요. <전설의 보안관>부터 <아이언 타이거>까지 쉬신 적 없으시잖아요?”
“가끔 소설 쓰다가 힘들면 쉬었는데.”
“휴일이랑 휴가는 다르죠.”
지원이 못을 딱 박았다.
“지금 형우 님에게 필요한 건 휴일이 아니라 휴양이에요. 아카데미 실행할 때까지 한 달 정도는 푹 쉬시는 게 어떠세요?”
“으음, 그럴까요.”
“물론 싫으시겠지만, 지금 몸과 마음을 재충전하면 나중에 글 쓸 때도… 예? 방금 뭐라고…?”
“하겠다고요, 휴식.”
형우가 고개를 끄덕거렸다. 안 그래도 요즘 좀 휴식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삼삼히 들던 차였다.
몸과 정신을 최근 너무 혹사시켰다는 점도 있지만, 그보다 큰 건 딱히 떠오르는 소재가 없다는 거였다.
“소재 떠오를 때까지 잠시 쉴까 해요.”
그렇게 말하는 형우의 표정에는 조급함이 없었다.
“어어, 왜요…?”
“쉬라면서요?”
“그건 맞는데. 작가님 전에 <전설의 보안관> 완결 쳤을 때는 제가 그렇게 쉬라고 해도 꾸역꾸역 바로 <아이언 타이거> 연재 들어가셨잖아요?”
“그때랑은 좀 다르거든요.”
예전에 헤밍웨이가 이런 말을 했다. ‘누구나 작가를 할 수 있지만, 오래 작가를 할 수는 없다.’
<전설의 보안관>을 완결지은 후, 형우가 다급하게 바로 <아이언 타이거>를 쓴 가장 큰 이유이기도 했다. 혹여 열정이 식어버릴까 두려워 재빨리 2질을 써 내려갔던 것이다.
‘하지만 그런 일은 없었지.’
돈을 벌 대로 벌고, 영예도 누렸지만, 다행히 가슴 속에 있는 창작에 대한 열정은 그대로다. 아니, 오히려 처음보다 더 뜨거워졌다.
2질을 넘어 3질, 4질, 5질을 쓰더라도 식지 않을 것처럼 끊임없이 타오르는 용광로의 모습이, 이제는 확연하게 느껴졌다.
“그러니까 뭐, 더 이상 조급할 이유는 없죠.”
조급함 대신에 자리 잡은 건 자신감이다. 다음 작품도 무조건 성공할 거라는 자신감이 아니라, 자신은 언제든지 기쁜 마음으로 책상에 앉아 고민의 밤을 지새울 수 있을 거라는- 그런 자신감.
“작가가 아니라 도사가 되셨네요.”
“에이, 너무 비행기 태우신다.”
그렇게 말한 형우는, 그대로 노트북을 챙겨 들었다. 이제 홍 매니저도 들어왔으니 막힌 일 처리도 잘 돌아갈 테고, 자신이 스패로우 팩토리에 앉아 있어 봐야 방해만 될 게 분명하다.
“지금까지 사무실 잘 썼습니다.”
“뭘요, 필요할 때마다 오세요. 저희도 형우 작가님이 옆에서 열심히 하니까 덩달아 힘이 나던걸요.”
지원이 슬쩍 웃었다.
“쉬는 동안 혹시 좋은 휴양지 같은 데 필요하시면 연락 주세요. 많이 알거든요.”
“으음, 지금은 필요 없을 것 같아요. 일정이 좀 있어서.”
“벌써 휴양지를 예약해 두신 거예요?”
“휴양지는 아니고.”
형우가 볼을 긁적거렸다.
“내일이 졸업식이거든요.”
* * *
2월의 마지막 주.
아직 개강하지 않은 캠퍼스가 학생들로 북적거린다. 대부분은 이번 회차 졸업생들이다.
“자꾸 흘러내리네.”
연수는 괜히 흘러내리는 머리카락을 쥐어 네모반듯한 학사모 안쪽으로 집어넣었다.
“졸업식이라….”
아직도 실감이 안 났다.
뭔가 가슴속에서 피어오르는 밍숭맹숭한 기분을 느끼며, 연수는 지난 4년간 열심히 다녔던 대학교의 교정을 빙 둘러봤다.
“이제 사회인이구나.”
바른 말로 하자면 소설가로서 연재를 시작한 순간 사회생활을 시작한 거나 마찬가지였지만, 지금은 그런 사소한 것들은 상큼하게 무시하고 ‘졸업’이라는 단어가 주는 여운을 즐기고 싶었다.
‘형우 선배도 그랬지. 소설은 개연성보단 연출이 중요하다고.’
연수는 교정을 향해 길게 시선을 뻗었다.
“브이 해봐, 김-치!”
“김치!”
누군가는 자신의 학우들과 사진을 찍기 바빴고.
“애들아, 우리 사회 나가서도 꼭 연락하자.”
“당연하지, 야, 울지 마! 왜 울어! 평생 헤어지는 사람도 아니고!”
“그래도 이게….”
누군가는 눈물을 찔끔 흘리고 있다.
“여기를 3년을 더 다녀야 한다는 거지?”
“…학위 못 따면 3년 아닐 수도 있다.”
“에휴. 내가 미쳤었나?”
저건 두말할 필요도 없이 대학원생들이겠네.
“우하하하하! 드디어 졸업이다! 해바아아앙!”
그리고 그 한가운데서 주변의 시선 따위 아랑곳하지 않는다는 듯, 정신 나간 사람처럼 학사모를 내던지며 소리치는 사람은.
‘…에휴.’
연수의 2년 선배인 서의재였다.
“너무 시끄럽잖아요.”
“뭐 어때, 졸업식인데? 난 전역보다 지금이 더 기쁜 느낌이야.”
“어어, 잘 모르겠네요. 군대를 안 가 봐서.”
“으흠, 그래도 전역은 너무 갔나. 전역 절반 정도로 하자. 그래도 전역의 절반이면 세상에서 두 번째로 기쁜 일 정도는 돼. 적어도 대한민국 군필자라면 죄다 공감할 걸.”
그게 어느 정도인지는 모르겠으나, 아무튼 선배가 기뻐 미칠 것 같다는 것 정도는 알 수 있었다.
“그나저나, 형우랑 현수는?”
“형우 선배는 잠깐 교수님이 부르셔서 올라갔고, 현수 선배는 졸업생 대표라서 연설 준비하잖아요.”
“오호, 애제자와 졸업생이라! 축하할 일이군!”
자신의 친한 친구 둘이 이런 식으로 두각을 드러내고 있으면 뭔가 속앓이를 할 법도 하건만, 의협심 가득한 서의재라는 남자에게는 그런 게 없었다.
‘이걸 속이 넓다고 해야 할지, 아니면 뭐가 없다고 해야 할지….’
그래도 팔은 안으로 굽고 가재는 게 편이라고, 연수는 일단 전자 쪽으로 생각하기로 했다.
-아아, 잠시 후 이번 연도 한국대학교 졸업식이 시작합니다. 참가자분들은 대강당으로 이동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때맞춰 졸업식을 알리는 알람 소리가 들렸다.
* * *
“이상, 지금까지 학사장님의 축사였습니다. 다음 차례는, 졸업생들의 졸업 공연이 있겠습니다!”
짝짝짝-!
모였던 모든 사람들 사이에서 박수가 터져 나왔다. 다만, 그들 중 한 명은 좀 감상이 다른 것 같다.
“그만 좀 졸고 일어나요!”
연수가 꾸벅꾸벅 조는 의재의 옆구리를 살짝 찔렀다.
“……어어, 끝났어?”
“아직 안 끝났어요!”
“근데 왜 깨워?”
“졸업식에서 누가 자요!”
시작부터 꾸벅꾸벅 조는 걸 몇 번이나 깨웠는데, 그럴 때마다 의재는 배터리 다 떨어진 휴대폰을 강제로 켠 듯이 3초도 안 돼서 다시 의식을 잃어버렸다.
“한 번만 더 졸면 그때는 손가락 찌르기가 아니라 주먹으로 칠 거예요.”
“에이, 아무리 너라도 이렇게 좁은 데서 주먹질을 어떻게 하냐?”
“혹시 브루스 리의 원 인치 펀치라고 아세요?”
“너 뭐 졸업 진로가 론다 로우지냐?”
이 무서운 후배가 이제는 한국의 태권도와 영국의 복싱을 넘어 중국의 절권도까지 넘보는구나. 아니, 브루스 리는 미국인이었으니 중국의 절권도가 아니라 미국의 절권도인가?
미국이든 중국이든 간에 아무튼, 의재는 그런 걸 맞고 싶은 생각이 추호도 없었다.
“야, 너는 진짜 내가 얼마나 열심히 작업하는지 몰라서 그래! 그거 알면 미안해서라도 나 못 깨웠다.”
“작업은 저도 하거든요!”
“에휴, 말을 말자.”
옛말에 법원권근이라고 했고, 원인치 펀치는 그 주먹 중에서도 제일 가까운 주먹이니.
끄응, 하며 크게 기지개를 켠 후 주위를 휘휘 둘러보던 의재가 이상하다는 듯이 물었다.
“그나저나 형우 놈은 아직 안 왔어?”
“그러게요? 현수 선배는 대표 연설 준비하느라 안 온다 치고, 형우 선배는 어디 갔지?”
“걔 또 뭐 꾸미고 있는 거 아니… 응?”
말을 끝마미치고 전.
파바바바밧-!
갑자기 강당의 모든 조명이 꺼졌다. 어두워진 강당에서 사람들이 웅성거렸다.
“갑자기 뭐야, 정전인가?”
“정전은 아닌 것 같은데?”
그 어둠 사이로 사사삭- 하며 한 무리의 사람들이 분주하게 움직이는 소리가 들렸다.
그렇게 1분 정도가 지나고.
파앗-!
조명이 다시 켜졌다.
“어어, 저기 연단 좀 봐!”
그 곳은 더 이상 연단이 아니었다. 1분 사이, 엄숙한 연단은 갖가지 조형물로 가득한 무대로 바뀌어 있었다.
“저, 저거 혹시.”
“맞아요.”
그 모습을 본 연수와 의재도 눈을 동그랗게 떴다. 연단이 무대가 되었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쟤가 왜 저기서 나오냐?”
무대 한 가운데에서 연수와 의재가 너무나도 잘 알고 있는 사람이 마이크를 쥐고 걸어나왔다.
“…안녕하십니까, 이번 해의 졸업생 공연을 맡게 된 문창과 김형우라고 합니다.”
형우의 목소리는 평온하기 그지없었다. 오히려 당황한 것은 관객 쪽이니, 약간의 주객전도였다.
“요즘 흔히 종합예술이라는 말이 자주 쓰입니다. 음악이면 음악, 미술이면 미술, 문학이면 문학이었던 시대가 지나고 있기 때문입니다.”
종합예술.
영화나 오페라 등, 분야를 달리하는 수많은 예술들을 엮어 만드는 분야를 뜻한다.
“저희 또한 학생이자 한 명의 예술인으로서, 새로운 시대에 발을 맞추었습니다. 저희 졸업생들이 힘을 모아 만든, 이번 한국대학교 졸업 공연의 장르는.”
형우가 뒤쪽의 무대를 가리킨다.
“뮤지컬입니다.”
* * *
지금으로부터 세 달 전.
형우의 담당 교수인 한다은은 수업이 끝난 형우를 잠시 교수실로 불러서 한 가지 제안을 했다.
“타과 학생들과 협업을 해 볼 생각은 없니? 이번 졸업 공연으로 말야.”
“…졸업 공연을요?”
“형우 학생, 제발 좀 부탁하네!”
한다은 교수의 옆에서, 나이가 60이 넘어 보이는 노회한 노교수가 거들었다. 오가며 몇 번 본 일이 있던 공연과의 교수였다.
“내 형우 학생이 쓴 졸업 작품을 봤네. 그걸 보자마자 영감이 빡, 하고 오더군. 이건 연극으로 만들어야 한다. 그렇게 말야!”
“제 졸업 작품이라면….”
“<영웅과 나> 말일세!”
<영웅과 나>. 꽤 오랜만에 듣는 작품명이었다.
예전에 고향에서 참치와 함께 폐창고에 들어가 중학교 때 자신이 썼던 소설 를 발견한 형우는, 그 소설을 모티브로 두 개의 소설을 썼다.
하나는 지금 절찬리에 연재 중인 시리즈 <아이언 타이거>였고, 다른 하나는 학교 공모전과 졸업작품으로 제출했던 <영웅과 나>였다.
“그 작품은 연극으로 쓴 게 아닌데요?”
“당연히 <영웅과 나>를 그대로 옮긴다는 건 아니야. 각색할 생각이네. 혹시 <위치드>라는 뮤지컬을 본 적 있나?”
노교수의 질문에 형우가 고개를 저었다.
“이름만 들어 봤습니다.”
“허어, 그 명작을 안 보다니. 나중에 내 제자들이 공연하면 표를 구해다 줄 테니 꼭 보고 오게. 아무튼, 중요한 건 이게 아니지.”
교수가 흠흠, 하고 헛기침을 하더니 본론으로 들어갔다.
“<위치드>는 본래 프랭크 바움이 쓴 <오주의 마법사>에서 다섯 줄밖에 언급되지 않는 서쪽 마녀를 주인공으로 한 뮤지컬이야.”
“재창작이로군요.”
“맞아, 역시 이해가 빠르군.”
원작이 있는 이야기를 다른 이야기로 가져가는 방법에는 크게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원본을 유지하며 타 장르로 각색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아예 모티브만 따 와서 재창작하는 것이다.
노교수가 예로 든 <오주의 마법사>로 비유하자면, 디즈니에서 영화화한 <오주의 마법사>는 전자에 가깝고, 아까 가열차게 설명한 <위치드>는 후자에 가깝다.
“그래서 말인데, 나는 <영웅과 나>를 재창작하고 싶네.”
“재창작이라면, 어떤 방식으로요?”
“<위치드>를 쓴 홀츠만이 도로시와 양철 거인보다 다섯 줄 등장한 서쪽 마녀에게 더 관심을 가졌듯, 내가 자네의 작품에서 주목했던 건 주인공인 아이와 그 아버지가 아니라, 그런 둘을 바라보는 어머니였다네.”
“어머니라….”
<영웅과 나>에는 어머니의 이야기가 크게 나오지 않는다. 당연한 말이다. 주인공은 어디까지나 영웅인 아버지와 아들이 나였으니까.
“아픈 남편과 그 옆에서 소설을 쓰는 아들을 바라보는 어머니의 심정이 예술이 아니라면 그 무엇이 예술이겠는가?”
노교수의 두 눈에서 예술혼이 이글거렸다. 그 열기에는 형우마저 탄복했다.
“알겠습니다. 그러면 <영웅과 나>를 연극화하는 걸로….”
“잠깐!”
형우가 승낙하려는 찰나, 갑자기 문창과 교수실의 문이 홱 하고 열렸다.
그 안으로 머리를 들이민 건 ‘나 음대 교수요.’라고 말하는 듯한 꼬불꼬불한 머리카락의 중년 남자였다.
“이런 이야기를 음대 빼고 문창과랑 공연과 둘이서 한단 말요?”
“…성악과 장 교수?”
“우리도 껴 줘요! 연극 말고 오페라로 합시다, 작곡은 우리가 할 테니!”
그 말이 끝나기 무섭게 복도에서 우당탕탕 하는 소리가 또 들려왔다.
“오페라? 오페라아아아아?”
페인트가 잔뜩 묻은 앞치마를 입은 미술과 여교수가 어이없다는 듯 세 명의 교수를 번갈아 바라봤다.
“우리 미술과만 쏙 빼놓고 작당하기 있습니까?”
“…연극, 오페라, 그다음은 뭡니까?”
“뮤지컬로 해요! 우리가 무대 꾸밀 테니까!”
…그렇게 해서.
총 4개 과가 연합한 역대 최고 스케일의 졸업공연, <굿 이브닝, 마더>가 탄생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