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환상을 쓰겟다-139화 (139/200)
  • #138

    자급자족自給自足.

    말 그대로 내가 만들어서 내가 쓴다는 뜻이다. 형우의 의견대로 아카데미를 만들어 직접 작가를 육성한다면, C&N으로 인한 작가 유출은 걱정하지 않아도 될 것이다. 하지만, 세상일이라는 게 아이디어대로만 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는가.

    “일단 가장 큰 문제는, 역시 자원입니다.”

    사무실로 돌아온 지원의 말에 형우가 고개를 끄덕거렸다.

    “역시 아카데미 같은 걸 하려면 돈이 있어야겠죠. 건물도 빌려야 하고.”

    “아니, 그런 문제가 아니에요. 그런 건 화상강의 같은 걸로 해결하면 의외로 싸게 먹히니까. 문제는 인력이라고요. 작가 혼자서는 아카데미를 꾸려 나갈 수가 없어요.”

    군대로 치자면 형우는 작전을 지위하는 장교다. 하지만 어디 전쟁이 장교만으로 되던가? 그 뒤에는 물자와 자원 등을 원활하게 공급해 줄 행정관이 반드시 필요했다.

    “솔직히 저희는 지금 인력난이라, 지금 인력으로 새로 일을 벌이기가 좀 그렇습니다.”

    “새로 뽑으면 되잖아요?”

    “그게…… 말처럼 쉽지 않아서요.”

    이런 큰 프로젝트는 일반적인 평사원으로는 이끌 수 없다. 필요한 건 경력직이다.

    “적어도 한 5년 정도는 이 바닥에 있었던 사람이 아니면…… 감당하기 힘들지 않을까. 하지만 그런 사람이라면 스패로우 팩토리같은 중소기업이 아니라 대기업을 노릴 테죠. 아니면 자기 사업을 하던가.”

    “웃돈을 주고 데려올 수는 없을까요?”

    “……그게, 얼마 전에 사업을 확장해서 지금은 회사에 돈이 별로 없거든요. 줄 수 있는 월급이래봐야 한 달에 300정도?”

    “세상에.”

    형우가 입을 쩍 벌렸다.

    그러니까, 월에 300정도 받으면서도 사업 하나를 굴릴 정도로 유능한 사람이 필요하다는 거다.

    “그런 사람이 세상에 있기는 해요?”

    자본주의의 인재상은 간단하다. 유능한 사람은 몸값이 비싸다. 싸고 일 잘하는 회사원? 그런 건 드라마에서나 나오는 인간상이 아닌가.

    “……그나마 생각을 해 보자면, 대기업에서 오랫동안 일하다가 강압적인 기업구조에 환멸을 느껴서 조금 돈을 덜 받더라도 즐겁게 일할 만한 직장을 찾아 헤매는 낭만을 가진 직장인, 정도면 가능하겠네요.”

    지원의 말을 들은 형우가 고개를 내저었다.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뜻이다. 직장인과 낭만이라니, 그보다 더 안 어울리는 말은 아마 고양이와 목줄 정도밖에 없을 테니까.

    ‘또 딜레마구나.’

    돈을 벌기 위해서는 고급 인력이 필요한데, 고급 인력을 위해서는 또 돈이 필요한 딜레마적인 상황이었다. 형우가 한숨을 푹 쉬었다.

    “어디 그런 사람 하늘에서 뚝 안 떨어지나.”

    당연히 그럴 리는 없다.

    사람이 하늘에서 떨어질 수는 없으니까. 하지만, 문을 열고 들어올 수는 있었다.

    딸랑-

    회의 도중 들리는 문소리에, 자연스럽게 셋의 시선이 문 쪽으로 이동했다.

    “저, 여기가 스패로우 팩토리 맞죠?”

    체크무늬 셔츠를 입은 덩치 큰 남자 한 명이, 어색한 듯이 뒷목을 긁적거렸다. 형우도 아는 얼굴이었다.

    “……홍 매니저님?”

    C&N의 편집자인 홍 매니저였다. 지원이 의심 섞인 눈초리로 홍 매니저를 위아래로 살폈다.

    “……혹시 염탐이라도 하러 오신 건가요?”

    “아, 아뇨! 염탐이라뇨!”

    홍 매니저가 당황한 듯 손을 내저었다..

    “저 이제 C&N사람 아닙니다! 퇴사했거든요!”

    “퇴사요?”

    퇴사라는 말을 들은 지원의 눈이 동그래졌다. 아까까지 흘리던 경계심 또한 누그러진 것이 육안으로도 보였다.

    “왜 갑자기요?”

    “그게 말입니다, 사실은…….”

    홍 매니저가 그간의 사정을 설명했다.

    * * *

    1주일 전, C&N.

    “서민홍 편집자.”

    “예, 예?”

    서민홍, 편집부에서는 그를 홍 매니저라고 불렀다. 본래라면 ‘서 매니저’가 맞겠지만, 수석 편집자인 지원과 헷갈린다는 이유만으로 자연스럽게 이름의 끝부분을 따서 홍 매니저가 됐다.

    ‘홍 매니저가 뭐냐, 홍 매니저가! 우리 아버지가 슬퍼하신다고!’

    예전에는 그 부분이 조금, 아니 꽤 많이 불만이었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오히려 서 수석이 있을 때가 백 배는 나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옛날이 좋았지, 옛날이!’

    요즘 들어 서민홍은 <다크 나이트 라이즈>에서 고든 경감이 그랬듯이, 하루하루 살얼음판을 걷는 기분에 휩싸여 있었다. 그 이유의 90%는 지금 자신의 앞에서 눈을 부라리고 있는 C&N의 신임 사장, 윤정아 때문이었다.

    “고작 세 명밖에 못 빼냈다는 말이죠, 지금?”

    “세 명이라고 해도 사실상 3분의 1을 빼 온 건데요.”

    “…그걸 지금 말이라고. 하아, 이런 사람이 장르소설 편집부의 관리자라니.”

    윤정아의 서슬 퍼런 질책 앞에 선 서민홍은 몸을 덜덜 떨었다. 등 뒤에서 식은땀이 삐질 흘렀다.

    “됐어요, 일단 가 보세요. 앞으로도 스패로우 팩토리는 계속 잘 주시하고.”

    “…알겠습니다.”

    그렇게 고개를 꾸벅 숙인 후 서민홍은 그대로 화장실로 향해서, 평소에 자주 사용하는 두 번째 변기칸으로 쏙 들어갔다.

    사내 정치와 강압적인 분위기로 가득해서 서로가 서로를 게슈타포처럼 감시하는 C&N에서, 유일하게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아도 되는 공간이었다.

    “흐윽.”

    셔츠를 벗어 보니, 등 부분이 완전히 땀으로 젖어 있었다. 얼마나 긴장했는지 알 수 있는 부분이었다. 가장 먼저 떠오르는 단어는 ‘너무하다’라는 단어였다.

    ‘내가 관리자 되고 싶다고 했었냐?’

    회사에는 두 타입의 사람이 있다. 관리자 타입과 실무 타입이 그것이다.

    직장인들의 어록에는 이런 말이 있다. 실무자는 개똥을 싸고, 관리자는 금똥을 싼다고. 그러니까, 대부분의 인식에서는 실무자<관리자라는 공식이 어느 정도 성립하는 셈이다.

    하지만 일단 금똥을 싸기 위해서는 금을 먹을 줄 알아야 하는 거 아니겠는가? 서민홍은 자기객관화가 확실한 편이었고, 자신이 그런 커다란 일을 소화할 능력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잘 알았다.

    군대에 있을 때도 중대장이 시키려던 분대장 자리를 스스로 거절할 정도였고, 주변 동기들은 자신의 후임에게 분대장을 양보한 자신을 이상한 놈 취급했으나, 막상 자신은 행복하기만 했다.

    ‘사람마다 타고난 게 다른 건데!’

    인생에서 노력의 비중은 작지 않지만, 그게 전부는 아니다. 대충 비율로 따지면 노력이 70% 정도고, 나머지가 30% 정도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천성은 노력으로 할 수 없는 30%에 해당하는 부분이다. 70%인 노력을 갈고닦아서 30%를 극복해라? 그런 말을 하는 놈은 사회생활을 해 본 적 없는 녀석일 테다. 공무원 시험만 봐도 알 수 있지 않나? 전체 점수의 1%, 2%도 안 되는 가산점에 목을 매다는 사람이 천지다.

    그렇게 한참을 고민한 결과, 서민홍은 2라는 숫자를 떠올렸다.

    말도 안 되는 일을 시킨 것에서 1스텍.

    그리고, 말도 안 되는 일을 어거지로 수행했는데, 잘하지 못했다고 까인 거에서 2스텍이라는 뜻이다.

    그리고 그게 언제가 될지 모르겠지만 2가 3이 되는 날에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C&N을 뛰쳐나가리라 다짐했다.

    쏴아아-

    서민홍은 그대로 물을 내리고 손을 박박 씻었다. 그대로 물기를 털고 나오려는 순간.

    “지금 대체 이게 뭐 하는 거예요? 당신들이 이러고도 편집자야!”

    서민홍은 3스택을 마주치고 말았다.

    * * *

    델리만쥬는 떨리는 마음으로 최신화의 댓글을 확인했다.

    윤지만만 : 이거 점점 루즈해지네 글이;

    starscream : 진짜 어떻게든 참고 봤는데 더 이상은 못볼 듯.

    TimeStop : 아니 C&N갔다고 해서 기대했는데 넘어가고 나니까 작품이 더 무너지는 건 대체 뭐임?

    KooroX : 이 작가님이 그 독자랑 키배떴다는 작가님인가요? 자신감에 비해 작품은 영;;

    LOLOLOLO : 작가님 저 미치는 꼴 보고 싶어요?

    댓글들을 확인하는 델리만쥬의 표정이 순식간에 흙빛으로 썩어들어갔다.

    드르륵- 드륵.

    신경질적으로 마우스 휠을 돌린 후에야 겨우 소설에 대한 칭찬을 하나 찾아내는 데 성공했다.

    소설고든램쥐 : 작가님. 저는 이 소설을 읽고 웹소설 작가의 꿈을 꾸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그다음에 이어지는 글을 보자마자, 희망이 사라졌다.

    소설고든램쥐 : 이런 소설도 돈을 버는데 저는 더 많이 벌 수 있을 것 같아서요ㅋㅋ

    “이 새끼가! 사람을 놀려!”

    참지 못한 델리만쥬가 키보드를 박살냈다.

    “이건 말도 안 돼. 왜 갑자기 이렇게 된 거지?”

    며칠 전, 델리만쥬는 C&N으로부터 연락을 받았다. 스패로우 팩토리의 두 배 대우를 해 줄 테니, 이쪽으로 넘어오라는 제안이었다.

    ‘역시, 스패로우 팩토리 놈들은 눈이 없어! 봐봐, 대기업은 내 진가를 알아보잖아!’

    사실은 출혈경쟁의 일환이었지만, 그런 사정을 새까맣게 모르고 알고 싶지도 않았던 델리만쥬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매니지먼트를 옮겼다.

    “대기업도 인정한 작품인데, 왜 이리 악플만 잔뜩이지? 다른 작품도 나처럼 악플이 달리나?”

    그대로 델리만쥬는 자신과 비슷한 시기에 유료화를 들어갔던 작품들을 찾아봤다. 김뿔테 작가의 <흡연 검성>도 그중 하나였다.

    나미아미타불 : 허허허 이번화도 허니-잼이로군요.

    현주면주 : 진짜 이 작가… 가둬두고 글만 쓰게 하고 싶다.

    막시무스 : 아니 여기서 끊는다고? 거의 저희 부대 행보관급 절단실력이시네요;

    멍애 : 김뿔테 그는 신인가? 김뿔테 펀치! 김뿔테 펀치!

    소설고든램쥐 : 이 소설을 읽고 웹소설가의 꿈을 접었습니다. 아무나 하는 게 아니로군요.

    오로지 칭찬 일색이었다. 심지어 자기 소설에 대고 페름기 운석충돌급 치명타를 박아넣었던 ‘소설고든램쥐’의 댓글이 기가 막혔다.

    “아니, 대체 왜 이런 거야?”

    김뿔테와 자신의 차이는 무엇일까? 일단 성별이 다르고, 나이가 다르고, 출신지가 다르고, 장르가 다르고, 그 외에는….

    “알았다! 출판사! 출판사가 바뀌었어!”

    목욕하던 아르키메데스도 깜짝 놀랄 만한 비명을 질러낸 델리만쥬는, 그대로 한달음에 C&N의 장르소설편집부로 냅다 달려가 소리를 질렀다.

    “사장 나와! 사장 나오라고!”

    “저, 자, 작가님?”

    “사장 나와아아아! 내 말이 장난 같냐? 니들이 내 소설 조져놨으니까 책임지라고!”

    화장실에서 똥을 싸고 나오자마자 현실 똥을 마주하게 된 홍 매니저, 서민홍은 한숨을 푹 내쉬었다.

    ‘나오겠냐?’

    여기가 무슨 동네 국밥집도 아니고, 여기는 기업이다. 사장 나오라고 할 때마다 사장이 나올 수 있으려면, 아마 유명 닌자 만화에 나오는 노란 머리 분신술 애호가 정도가 되어야 할 테다.

    “작가님, 제가 장르소설 편집부 담당자 서민홍입니다.”

    “당신이 사장이야?”

    “편집부 편집장 대리 맡고 있습니다.”

    “편집장? 그래, 당신 정도면 되겠네.”

    델리만쥬는 그대로 자신의 휴대폰을 꺼내 서민홍에게 내밀었다.

    “아저씨, 이거 보이죠? 댓글 곱창난 거!”

    “보이네요.”

    “보이네요? 보이네요? 할 말이 그것뿐이얏! 당신들 월급 받고 하는 게 뭐야!”

    미치겠네.

    월급 네가 주냐? 하는 말이 목 끝까지 차올랐지만, 서민홍은 겨우겨우 꾹꾹 눌러 담았다.

    “델리만쥬 작가님 담당한 편집자가 누구죠?”

    “저, 접니다. 홍 매니저님.”

    윤진이 손을 들어 올렸다.

    “윤진 님, 편집할 때 문제 있었습니까?”

    “그, 그게요. 분명 교정본을 보내 드렸었는데 작가님께서 전부 다 반려하셨거든요.”

    “…그렇군요.”

    서민홍이 델리만쥬를 향해 시선을 돌렸다.

    “저, 작가님. 저희는 어디까지나 작가님 생각을 최우선으로 존중합니다. 그런데, 작가님께서 반려하셨다면 그걸 저희 쪽에 책임을 묻는 건 좀 과한 처사가 아닌지….”

    “닥쳐!”

    델리만쥬가 소리를 질렀다.

    “애초에 너희가 반려되지 않을 만큼 편집을 잘했으면 됐잖아!”

    돌겠네.

    그게 가능했으면 우리가 작가 하고 있지 편집자 하고 있겠냐? 안 그래도 인원 빠듯한데 편집만큼은 진짜 카페인 먹는 하마처럼 일해서 겨우겨우 세련되게 빼놨는데. 이제 와서 뭐라고? 하는 소리가 목 끝까지 차올랐지만, 이번에도 참았다.

    “작가님, 작가님이 바라시는 게 뭡니까, 저희한테?”

    “사과해!”

    “죄송합니다.”

    “똑바로 해!”

    진짜 뉴런 끊어지겠네.

    “…여기서 갑질하면 뭐, 소설이 갑자기 좋아집니까?”

    이번에는 못 참았다.

    더 참으면 분명 암에 걸렸을 거다.

    ‘말도 안 되는 일을 시작하면서 욕먹고, 말도 안 되는 일을 하다가 욕먹고, 이제는 그 일을 끝냈는데도 또 욕을 처먹는구나.’

    삼식이도 이런 삼식이가 없다. 그런 홍 매니저의 상념을 깬 건 얼굴에 닿는 차가운 방울들이다. 이게 뭔지는 생각할 필요도 없었다.

    “사장 나와아아아아!”

    “거참, 침 좀 그만 튀겨요!”

    참다못한 서민홍이 소리를 빽 질렀다.

    “어, 지, 지금 소리 지른 거야?”

    “일단 그건 됐고요, 델리만쥬 작가님. 사장 보러 간다고 했죠. 잘 들으세요. 저기 밖에 엘리베이터 보이시죠? 저거 타고 8층 누르시면 사장실 바로 있거든요. 그쪽으로 찾아가시면 되고요.”

    그대로 서민홍은 품을 뒤져 종이봉투를 꺼냈다.

    모든 직장인들이 가슴에 품고 다닌다는 최종병기, 사직서였다.

    “가시는 김에 이것도 좀 사장님께 전달해 주세요. 그리고 말도 전달해 주시죠. 서민홍 매니저 오늘부로 퇴사한다고!”

    그러니까, 3스택이었다는 거다.

    * * *

    “그러니까, 서민홍 매니저님이 그것 때문에 C&N을 때려치우고 나왔다는 거예요?”

    “네, 그렇습니다. 그렇게 일주일 정도 놀다 보니까, 다시 일을 해야겠다 싶더라고요. 그래서 말인데…….”

    홍 매니저가 어색하게 웃었다.

    “……일자리 좀 구할 수 있을까요?”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