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환상을 쓰겟다-136화 (136/200)
  • #135

    현주면주 : 와 김뿔테 작가님 요즘 삘타셨나? 작품이 갑자기 엄청 재밌네요!

    타롱 : 검성님 미쳐 ㅠㅠ

    막시무스 : 젓가락으로 몬스터 잡는거 보소.

    매너모드55 : 나 오늘부터 이 소설 안 봄. 100화쌓일 때까지 숨 참는다. 흡!

    자라나라소설소설 : 작품 분위기가 너무 좋네요. 지난화도 그렇고 한편한편 쓰실 때마다 주인공이랑 같이 작가님도 레벨업 하시는 느낌입니다.

    그 수많은 호평들을 보며, 김뿔테는 속으로 쾌재를 내질렀다.

    ‘참새치 작가님 말이 맞았잖아!’

    사실, 형우가 김뿔테의 작품을 본격적으로 손댔던 것은 아니다. 오히려 소설 진행을 고쳐 보라던가, 주인공의 대사를 바꾸라던가 하는 말은 편집자인 지원에게 더 많이 들었다.

    형우가 해 준 조언은 편집자가 해 줄 수 있는 조언과는 좀 궤가 달랐다.

    “혹시 소설 쓸 때, 시간을 따로 두고 쓰세요?”

    “아뇨, 저는 그냥 생각날 때마다 쓰는데요.”

    “으음, 그거 별로 안 좋아요.”

    그렇게 말하며, 형우가 보여준 건 처음부터 끝까지 쭉 영어로 써진 한 논문이었다.

    “이게 뭐예요?”

    “4년 전에 미국에서 나온 과학 논문이에요. 호르몬 관련이죠.”

    “…과학 논문이요?”

    웹소설에 대한 조언이라면 캐릭터는 어떻게, 작품은 어떻게, 하는 말을 들을 줄 알았는데. 갑자기 나온 논문에 좀 당황스러웠다. 그렇게 묻자, 형우가 손을 내저었다.

    “에이, 그런 건 저보다 편집자님이 훨씬 잘 보시죠. 제가 알려드릴 건 다른 거예요. 그러니까, 작가가 작가한테 해 주는 조언이랄까.”

    “…그게 뭔데요?”

    “들어 보세요. 이 논문은 그러니까, 인간의 신체 리듬과 감정의 상관관계를 설명한 거거든요.”

    형우가 영어 논문을 들이밀었다. 영어는 초중고 교육과정에서 배운 것과 토익 700점이 전부였던 김뿔테는 그 내용을 반도 이해할 수 없었지만, 일단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 그래서 하고 싶은 말이 뭔데요?”

    “우리가 감성이랑 머리로 글을 쓴다고 하지만, 사실 생각해 보면 감성이라는 것도 결국에는 뇌에서 나오는 거잖아요? 호르몬에 영향을 받는다는 뜻이죠.”

    “그건 갑자기 왜….”

    “제가 <흡연 검성>을 다 읽었을 때 느낀 가장 큰 문제는 바로 소설이 균등하지 않다는 거예요. 어떤 부분은 감성이 충만하고, 어떤 부분은 부족하고. 또 어떤 부분은 적당했다고 해야 하나. 감정이 과잉된 소설이나 부족한 소설들이 매력이 없다는 건 아니지만, 매화마다 그게 바뀌면 아무래도 읽는 입장에서는 혼란스럽다는 말이죠. 그래서 생각을 좀 해 봤는데, 김뿔테 작가님 혹시 소설을 쓰는 시간이 매일 바뀌지 않으세요?”

    …귀신이었다.

    “그걸 소설만 읽고 알아요?”

    “어느 정도는요. 저도 쓰는 입장이잖아요. 그래서 말인데, 앞으로는 소설을 쓰는 시간을 한번 일정하게 맞춰보는 게 어때요? 그러면 분명 감정을 분배하는 데 좀 도움이 될 거예요.”

    “그게 정말 도움이 될까요?”

    “으음, 사실 그건 모르죠. 만약 김뿔테 작가님이 나름의 방법을 갖고 계시는 분이면 딱히 조언도 안 드렸을 거예요. 그런 편이신가요?”

    “아, 아니요.”

    김뿔테가 고개를 저었다.

    “그러면, 한번 속는 셈 치고 해 보시는 건 어때요? 저는 진짜로 도움 많이 됐거든요. 만약 이 방법 썼는데 별 도움 안 됐다, 하시면. 그때는 제가 밥이라도 한 끼 사드릴게요.”

    “어….”

    잘나가는 작가가 그렇게까지 말하는데, 거절할 이유도 없었다.

    “네, 일단은 한번 해 볼게요.”

    그렇게, 형우의 루틴을 베껴서 만든 루틴을 실행한 지가 이제 1주일째다.

    처음에는 대체 이게 무슨 짓인가 싶었지만, 놀랍게도 이 간단한 생활패턴의 변화는 꽤 괄목할 만한 변화를 가져다줬다. 댓글 창만 봐도 알 수 있을 정도였다.

    “놀랍네, 진짜.”

    그렇게 말하며, 김뿔테는 시계를 확인했다.

    지금 시간은 오후 2시. 루틴에 따른 작업 시작 시간이었다.

    “오늘도 글 한번 맛깔나게 써 볼까?”

    끝내주게 잘나가는 작가가 자신에게 해 준 조언을 그대로 날려버릴 생각은 추호도 없었으니까.

    ‘그건 바보 멍청이지.’

    그렇게 생각하며, 노트북 앞에 선 김뿔테는 자신의 안경을 스윽 하고 올렸다.

    * * *

    2월이 반쯤 지난 봄 날씨에는 달콤한 기운이 만연했다. 새롭게 돋아나는 새싹들은 빠르게 대기 중의 산소를 빨아들여 그 성장을 가속한다.

    그 약간 떨어진 산소농도와 노곤하게 풀어진 날씨 덕에 춘곤증春困症이 도질 만도 하건만, 스패로우 팩토리의 직원들은 오히려 상기된 기분을 느끼며 얼굴에 웃음꽃이 잔뜩 피어 있었다.

    “혜선 씨. 저희 진짜 이러다가 엄청 부자 되는 거 아닐까요? 진짜로, 조만간 사무실도 옮길 수 있을 것 같아요. 종로로 갈까요, 아니면 명동으로 갈까요? 차라리 청량리는 어때요?”

    “진짜 매일매일이 오늘만 같았으면 좋겠네요.”

    “맞아요. 날씨도 좋잖아요. 새들은 지저귀고, 꽃들은 피어나고. 이런 날에 저희 같은 사람들은.”

    혜선이 말을 받았다.

    “하루 종일 일해야죠. 평소처럼.”

    “그래도 이왕이면 잘 되는 일이 좋잖아요. 지금 플랫폼도 엄청 잘 나가던데.”

    혜선이 고개를 끄덕였다. 지원의 말대로, 요즘 플랫폼 신인들의 성장세가 아주 장난이 아니었다. 2주 전까지만 해도 ‘가능성이 보이는 수준’이었다면, 지금은 봄에 걸맞게 그 가능성의 넝쿨을 쭉쭉 뻗고 있는 느낌이라고 해야 하나.

    “이게 다 형우 덕분이죠.”

    지원의 말에 혜선이 동의를 표했다. 형우가 다른 신인들을 하나하나 찾아다니며 조언을 해 주고 용기를 북돋아 줬다는 말을 들었을 때는 상당히 놀랐다.

    “보통 그렇게까지 하는 사람은 별로 없는데.”

    “별로 없는 수준이 아니라, 제가 C&N에서 일할 때도 그런 사람은 한 번도 본 적 없다 이거죠. 아무튼 아주 복덩이에요, 복덩이.”

    “오늘도 또 다른 작가들이랑 약속 잡은 것 같던데요.”

    “어어, 그러다 몸 상하는 거 아닌지 몰라. 아 맞다, 말 나온 김에 이번에 선물 좀 보내죠?”

    “뭐라고 하고 보낼까요?”

    “이유야 뭐 꼭 필요한가요. 목록은 제가 예전에 골라 놓은 거 있어요. 장뇌삼이랑, 녹용이랑….”

    선물 목록을 뒤지며, 지원이 다리를 턱 꼬았다. 혜선이 그 모습을 보고 혀를 쯧쯧 찼다. 다리 꼬면 건강에 안 좋아서- 같은 이유는 아니었다.

    “털 자랐네요.”

    “엥, 진짜요?”

    바쁜 남자들은 수염을 깎지 않아서 티가 나고, 바쁜 여자들은 다리털을 깎지 않아 티가 난다는 이야기가 있다. 두 사람이 얼마나 오랜 시간 동안 회사에 콕 박혀서 일만 했는지를 나타내는 증거였다.

    “나중에 한 번 깎든지 해야겠네.”

    “저는 그냥 데니아 높은 스타킹 신으려고요. 깎을 시간도 없어.”

    “그거 괜찮네요. 나도 그렇게 할까?”

    그렇게 말하며, 둘은 다시 노트북으로 고개를 푹 처박았다. 봄은 내년에도 똑같이 돌아오겠지만, 회사에 물은 언제 들어올 지 모르는 법이니.

    * * *

    같은 시간, 형우는 카페에서 다른 한 작가와 만나고 있었다. 델리만쥬라는 필명을 사용하는 한 작가였다.

    “그러니까! 빌어먹을 독자 놈들이 저를 가만두지 않는 거예요. 소설을 똑바로 읽기는 한 건가?”

    “어, 물론 그런 거 보면 좀 가슴이 아프긴 하죠. 인터넷이 원래 좀 그런 경향이 없는 것도 아니고. 그런데 말이죠.”

    형우가 머리를 긁적거렸다.

    “델리만쥬 님 댓글을 보면요, 거의 태반이 욕이잖아요? 이건 좀 뭐랄까, 문제가 있는 게 맞지 않을까요?”

    “아니죠! 그건 그 사람들이 이해하려는 노력을 안 한 거잖아요. 제 소설이 재미가 없다니! 저는 제 소설이 재밌다는 걸 설명하기 위해서 그 사람한테 메일까지 보냈다고요!”

    “메일을요? 독자한테? 무슨 내용이었는데요?”

    “그따위로 글을 읽을 거면 그냥 읽지 말라고 했죠. 그 사람은 분명 문맹일 거니까!”

    듣도 보도 못한 행보에 형우가 입을 쩍 벌렸다.

    ‘작가가 독자한테 메일로 욕을 때려 박는다고?’

    혹시 내가 소설가가 아니라 래퍼를 찾아왔나? 하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세상에, 래퍼가 헤이터들한테 디스랩 때려 박는다는 소리는 들어봤어도 소설가가 자기 소설 비판한 사람한테 키보드 배틀 뜬다는 소리는 또 처음 들어 봤다.

    “게다가 문제는 그것뿐만이 아니에요!”

    다음에는 무슨 말이 나올까, 이제는 아예 공포스러울 지경이었다. ‘깜짝 놀라는 동영상 모음집’을 보는 듯한 느낌이랄까. 그런 형우의 기분을 아는지 모르는지, 델리만쥬는 <미저리>에 나오는 애니처럼 소리를 질렀다.

    “저는 편집자를 도저히 못 믿겠다고요. 그 사람은 너무 게을러요. 제가 소설을 보내도 답장을 해 주지를 않는다고요!”

    “어어, 지원 편집자님이 게으르다고요? 그럴 리가 없을 텐데.”

    “없긴요! 이것 좀 보세요!”

    델리만쥬가 자신의 휴대폰을 들이밀었다.

    델리만쥬 : 저번 화 수정한 거 답변이 왜 안 오죠?

    지원 : 저 작가님, 말씀드렸잖아요. 여기서 BL전개는 분명 반응이 분명 좋지 않을 거예요. 게다가 태그를 단 것도 아니잖아요. 이건 국밥집에서 갑자기 피자가 나오는 상황이나 마찬가진걸요.

    델리만쥬 : 마음에 안 들면 편집자님이 쓰시던가요. 제 글인데 왜 제 맘대로 못 한다는 거죠? 빨리 수정해 주세요.

    지원 : 그러니까, 이건 수정이….

    ‘미저리가 아니라 머저리였잖아!’

    형우가 이마를 붙잡았다.

    “그러니까 이건, 편집자님이 수정을 안 한 게 아니라 의견을 준 거잖아요?”

    “말도 안 되는 의견이었죠!”

    “어, 그게 그렇게 말이 안 되는 의견인가요?”

    “당연하죠! 제 작품인걸요! 뭔데 제 작품에 의견을 다나요?”

    “어, 그렇기에 델리만쥬 작가님은 아직 그, 신인이시잖아요?”

    “참새치 작가님. 지금 메시지를 반박하지 못하니 메신저를 공격하고 계신 거예요.”

    “아이고.”

    솔직히 말해, 형우는 저 말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반만 맞는 말이기 때문이다.

    말이란 건 누가 하느냐에 따라 달라지는 게 당연한 거다. ‘신은 죽었다’를 니체가 말하면 세계 철학사에 길이 남을 명언이 되지만, 중학교 2학년이 말하면 중2병 취급을 받는 것과 마찬가지다.

    <방망이 깎는 노인>에 나오는 장인 같은 사람이 저런 말을 한다면 모를까, 델리만쥬는 아직 그런 영역에 들어서진 못했을 텐데.

    “일단은 작품 보면서 이야기할게요.”

    델리만쥬가 쓰는 작품의 제목은 <17세기 귀공자, 헌터가 되다>였다.

    ‘캐릭터 성격이 너무 확확 변하는데.’

    하지만 좀 더 읽어 보니, 그건 문제도 아니었다.

    ‘히로인이 이 캐릭터가 아니었어?’

    20화 넘게 한 캐릭터에 대해 묘사하다가, 갑자기 21화에서 처음 등장한 캐릭터를 보고 주인공이 ‘사실 나는 쟤랑 사귀고 있어.’라고 고백해버린다. 아무리 찾아봐도 복선이나 언급조차도 없었고, 심지어 2화의 주인공의 대사 중에는 ‘나는 연애를 한 번도 해 본 적 없어.’라는 말까지 있다.

    “이건 설정 오류잖아요.”

    “그럴 리가요.”

    델리만쥬가 고개를 저었다.

    “연애랑 사귀는 건 다른 거잖아요?”

    “어, 그런 식으로 전개할 거면 앞에 복선이라도 있었어야죠!”

    “그러면 반전의 매력이 떨어지니까요.”

    형우가 한숨을 푹 쉬었다.

    “이걸 편집자님이 그냥 통과시켰어요?”

    “아뇨. 처음에는 작가님이랑 똑같은 말을 했죠. 하지만 어쩌겠어요? 제 말이 맞는걸요. 애초에 편집자님이 방해만 안 했어도 제 소설은 분명 더 좋아졌을 거예요.”

    솔직히 말하면, 편집자 욕하는 게 이해가 안 됐다. 이런 소설을 가져가서 유료화까지 시켜 줬으면 오히려 능력 있는 편집자한테 감사하며 하루 세 번 삼보일배를 해야 하는 게 아닌가?

    그런데 삼보일배는커녕, 러시아 삼보선수처럼 매니저를 패대고 있으니 아주 속이 터질 지경이었다.

    “후우….”

    그 모습을 본 델리만쥬의 눈에 쌍심지가 켜졌다.

    “작가님, 지금 한숨 쉬신 거예요? 그럴 거면 그냥 가세요!”

    지금까지 델리만쥬가 했던 말들 중 단연코 가장 마음에 드는 말이었다.

    고장 난 시계도 하루 두 번은 맞는다던데, 이 사람은 한 번만 맞았으니 고장난 시계보다 못한 사람이로군.

    “말 나온 김에 그래야겠네요.”

    그대로 형우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여기에 대고 ‘내가 당신을 돕도록 도와줘요.’ 같은 말을 한다면, 그 사람은 둘 중 하나일 테다. 세상에서 가장 시간을 형편없이 낭비한 사람으로 기네스북에 등재되길 바라는 사람이거나, 아니면 미쳤거나.

    ‘정진욱은 글이라도 잘 썼고, 사춘기인 정수도 독자랑 키보드 배틀을 뜨지는 않았는데.’

    델리만쥬는 그 둘을 섞어 반죽한 뒤 이스트를 잔뜩 때려 넣어 세 배로 불린 느낌이었다. 그래서 필명이 델리만쥬인가?

    ‘편집자님도 고생이 심하시겠네. 이런 작가는 누가 안 데려가나?’

    * * *

    같은 시간, C&N의 장르소설편집부.

    새롭게 사장에 취임한 윤정아가 또각거리는 소리를 내며 사무실 중간을 가로질렀다.

    “여러분, 이번에 스패로우 팩토리에서 새로 ‘스페셜 위크’라는 플랫폼을 런칭한 걸 아실 겁니다.”

    “네, 네!”

    “솔직히 말해, 그쪽으로 빠져나간 작가가 한둘이 아닌 거 다 아시죠?”

    타악-!

    윤정아가 바닥에 발을 탁, 하고 굴렀다.

    “당하고만 있으면 분명 C&N이 우습게 보일 테죠. 그러니, 어떻게든 스패로우 팩토리의 작가들을 빼 오세요. 방식은 상관하지 않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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