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4
옛날 중국에 살았던 새옹은 불의의 낙마 사고로 평생 걷지 못하는 몸이 되었다고 한다. 그 사실에 슬퍼하던 와중, 옆 나라와 전쟁이 벌어졌다는 소식이 들린다. 마을의 모든 남자들은 전쟁에 차출되어 목숨을 잃었고, 걸을 수 없는 새옹만이 살아남았다는 고사에서 나온 말이 새옹지마塞翁之馬라는 말이다.
세상의 모든 나쁜 일에도 좋은 점이 하나는 있고, 세상의 모든 좋은 일에도 나쁜 점이 하나는 있다는 이 새옹의 이야기야말로 변화무쌍한 세상을 가장 잘 나타내주는 말이 아닐까 싶다. 동물보호법을 최초로 만들었던 히틀러라던지, 사실은 우생주의자였던 헬렌켈러라든지. 똥에도 쓸모가 있고 옥에도 티가 있는 법이니. 지금 스패로우 팩토리에서 작정하고 준비했던 소설 런칭 사이트, 스페셜 위크가 딱 그런 꼴이었다.
“일단 이용자는 생각보다 많은 편입니다.”
미국 히어로 코믹스 식의 세계관을 차용하여, 한국식 멀티 유니버스를 웹소설로 구현한다. 라는 아이디어 자체는 어느 정도 먹힌 것 같다. 형우의 소설인 <아이언 타이거>를 중심축으로 하는, ‘헌터의 도시’라는 세계관을 기반으로 하는 스핀오프 이야기들과 여러 외전들이 꽤 많이 출현했고, 그 내용을 즐기는 이용자 또한 많았다.
지난 1주일 동안 총 54만 명의 이용자가 사이트를 이용했으며, 748개의 작품이 등록됐다.
그리고 ‘스페셜 위크’의 좋은 점은 딱 여기까지였다.
“전반적인 작품 수준이 별로 높지가 않네요.”
한국형 거대 세계관을 노린다는 취지는 그럴듯했으나- 결국 세계관이란 작품의 퀄리티가 따라주지 않는다면 성립되지 않는다. 등록된 748개의 작품들 중 절반은 잘 쳐줘 봐야 팬픽 수준이었고, 그중에서 실제로 유료화가 가능할 만큼 퀄리티 있다고 생각되는 작품은 몇 작품 안 됐다.
“일단 정진욱 작가님의 <빌런의 뒷골목>은 확실하게 수작이고, 그 외에 유저 평점이 좋은 작품은 <블론드 헌터>, <텔레포네이터>, <흡연 검성>, <나비효과 챌린저> 정도네요.”
“그 외에 눈여겨볼 작품은 없나요?”
“흐음, 대충 한 스무 작품 정도요. 그리고 그중 절반 정도만 성공하겠죠.”
열 개 남짓한 작품으로 플랫폼을 유지한다? 소수정예라도 정도가 있는 거다.
최소한 그 다섯 배의 작품은 필요하고, 그 중 10% 정도는 소위 말하는 대박을 쳐 줘야 어느 정도 장삿속이 성립할 텐데.
“끄응.”
혜선의 대답을 들은 지원의 미간이 좁혀졌다.
‘아무리 세계관이니 멀티 유니버스니 하는 말을 덧붙일지언정, 기본적으로 개별 작품의 퀄리티가 따라주지 않으면 아무 소용 없는 공허한 외침일 뿐인데….’
다른 말로 하면 빛 좋은 개살구라는 거다.
빛 좋은 개살구면 차라리 나은데, 이건 사업이다. 자칫하다가는 빚 많은 개살구가 되어버릴 거다.
“아예 처음부터 전문 작가들에게 부탁해 보면 어떨까요? 기획연재를 하는 거죠.”
혜선의 제안에, 지원이 고개를 저었다.
“이미 시도를 해 봤는데, C&N이 먼저 수를 좀 쓴 모양이에요.”
이미 기성들 사이에서는 공공연하게 ‘스페셜 위크는 조만간 망할 사업이다.’라는 말이 돌고 있는 모양이었다. 그리고 지금 손가락만 빨고 있으면 그 말은 진짜로 진실이 되어버릴 것이다.
“지금으로서는 이 작품들로 어떻게 해 봐야 할 것 같아요.”
돌을 던져서 골리앗을 이기는 것 만큼이나 힘든 일이겠지만, 지금으로서는 달리 방도가 없었다.
“그나저나 다른 작가님들은 어때요?”
“맞다. 아까 형우한테 연락 왔어요.”
“형우 작가님이요? 무슨 연락이었는데요?”
“새로 계약한 소설가들의 연락처를 알려 달라던데요?”
혜선의 말을 들은 지원이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새로 계약한 소설가들을 형우 작가님이 왜요?”
* * *
“그러니까요, 여기서는 조금 더 뽕맛을 주는 게 나을 것 같아요.”
“그렇게 되면 현실감이 좀….”
“현실감도 소설에서 중요한 요소지만, 거기에 너무 집착하는 것도 좋지 않다고 생각해요. 터트릴 때는 터트려 줘야죠.”
형우의 말을 들은 남자가 뿔테 안경이 흔들거릴 정도로 고개를 크게 끄덕거렸다.
“그러면 김뿔테 작가님. 앞으로도 좋은 작품 부탁드립니다.”
“아, 예예! 감사합니다!”
결국 남자는 뿔테 안경을 바닥에 툭, 하고 떨어트리고 말았다. 형우는 그대로 남자의 집에서 나와 고급 자동차에 올라탔다.
“다음은, 아. 명일동이네요.”
“…너 지금 뭐 하는 거야?”
자동차의 주인, 천우희가 선글라스를 살짝 내리며 물었다. 오늘 아침, 천우희는 형우에게서 걸려온 전화를 받았다.
‘저 죄송한데요, 천우희 작가님. 오늘 하루만 저 좀 도와주실 수 있어요?’
‘무슨 일인데?’
‘어디 좀 갈 데가 있는데, 대중교통으론 좀 빡셀 것 같아서. 하루만 차 좀 태워주세요.’
‘내가 네 기사야?’
‘진짜, 나중에 백 배로 갚는다니까요.’
‘일단 알았어.’
평소에 예의 바른 형우가 이 정도로 부탁을 하는 걸 보니 꽤 커다란 일이 있겠구나 싶었다. 게다가 백 배로 갚는다는 말이 꽤 마음에 들기도 했고.
부우웅-
그렇게 전화를 끊은 뒤, 천우희가 차를 몰고 형우의 집 앞에 도착한 것이 오전 10시였다. 그리고 세 시간째, 천우희는 밥도 먹지 못하고 서울의 여기저기를 쏘다녀야만 했다.
“지금까지는 좀 심각한 표정이라 안 물어보고 있었는데, 지금 대체 뭐 하는 거야?”
“아. 다른 작가님들 좀 만난 거예요. 저분은 김뿔테 작가님이라고 <흡연 검성> 연재하시는 분인데, 몇몇 부분이 좀 아쉬워서….”
“원래 아는 사람이야?”
“아뇨. 오늘 처음 봤는데요?”
“…그걸 네가 왜 신경 써?”
그 질문에, 형우가 눈을 깜빡거렸다.
“당연히 돈 벌려고 그러는 거죠.”
“돈 벌려고?”
“네.”
형우 또한, 스페셜 위크의 현황에 대해 어느 정도는 파악하고 있었다.
결국 문제는, 작품의 퀄리티다.
“그래서 한번 생각을 해 봤어요. 어떻게 하면 스페셜 위크가 살아날 수 있을까?”
그리고 형우는 이 점에 대해서 확고한 신념이 한 가지 있었다.
“C&N이 아무리 방해를 해도, 결국 플랫폼의 소설이 좋다면 독자들은 스패로우 팩토리를 이용할 거예요.”
그러기 위해서는, 한 두 개의 작품으로는 안 된다. 플랫폼에 연재되는 소설 전반의 퀄리티를 끌어 올려야 한다.
“좋은 소설과 열정 있는 작가가 있는 플랫폼이 결코 망할 리 없으니까요.”
“그래서 오늘 하루 종일 차 타고 돌아다닌 거야? 작가들 만나면서?”
천우희가 기가 차다는 듯 물었다.
“진짜 엄청난 이상론인데.”
“뭐, 제가 할 수 있는 일이니까. 해야죠. 저도 일단은 스패로우 팩토리 공동대표기도 하고.”
“하아, 나 참.”
천우희가 질린다는 표정으로 형우를 바라봤다.
“그거 진짜 멍청한 짓인 거 알지?”
“알죠.”
“그런데도 할 거지?”
“네.”
그 단호한 말을 들은 천우희가 질린다는 듯 고개를 휘휘 저었다. 미친 소리라고 생각하면서도, 천우희는 자연스럽게 페달 위에 발을 올렸다.
“그래서, 오늘 만날 작가가 몇 명인데?”
“일단은 다섯 명 정도 생각하고 있는데요.”
“서둘러야겠네. 이래서 언제 다섯 명 다 만나?”
“아, 예!”
천우희의 재촉에, 형우가 재빨리 조수석에 올라탔다.
“그 아래 열어 보면 안에 초코바 있을 거야. 그거 점심 삼아서 대충 먹고, 빨리 가자.”
“어어, 그렇게까지 해 줄 필요는 없는데.”
“무슨 헛소리래?”
천우희가 흥, 코웃음을 쳤다.
“나도 스패로우 팩토리 공동대표거든?”
천우희가 경쾌하게 악셀을 밟았다.
부아앙- 소리를 내며, 고급 외제차가 서울의 도로 위를 달려 나갔다.
* * *
“우아, 끝났다!”
오전 10시에 시작한 형우의 방문교육은 밤 9시가 되어서야 끝났다. 카X라이더를 해도 11시간 연속으로 하면 손이 아픈 게 사람인데, 진짜 운전을 11시간 연속으로 한 천우희는 거의 손목이 마비될 지경이었다.
“너 이거 100배로 어떻게 갚을래?”
손목에서 뚜둑, 소리를 내며 천우희가 물었다.
“글쎄요, 뭐 갖고 싶은 거라도 있어요?”
“갖고 싶은 거? 자신 있어?”
형우의 얼굴에 당황한 기색이 어렸다. 그 모습을 본 천우희가 피식 웃었다.
“이번에 새로 나온 샤넬백이 좀 이쁘더라. 대충 천만 원쯤 하던데.”
“에엑.”
“농담이야. 뭘 쫄고 그래.”
천우희가 형우의 등을 툭 하고 쳤다.
“지금 당장은 뭐, 딱히 생각나는 게 없네. 나중에 술이나 한잔 사줘. 근사한 와인바로다가.”
“그, 제가 술은 잘 모르는데. 와인이라 함은 한 병에 일억이 넘는 것도 있다고….”
어이없다는 듯 천우희가 눈을 길게 찢었다.
“너 대체 날 뭐라고 생각하는 거야?”
…처음 만났을 때의 이미지가 너무 강렬했던지라.
“하아암, 나 진짜 피곤해. 생각 같아서는 바래다주고 싶은데, 거기 들렀다 집 가면 진짜 졸음운전 할 것 같아.”
“괜찮아요, 지하철 타고 가면 되거든요. 오늘 고생했어요.”
“응, 너도.”
그렇게 천우희를 보낸 후에, 형우는 지하철로 내려가 개찰구에 카드를 찍었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위이잉- 하고 휴대폰이 울렸다.
[작가님, 오늘 시간 좀 있으세요?]
지원이었다.
* * *
지원과 만난 곳은 이태원에 위치한 한 와인 바였다.
“일찍 오셨네요, 많이 기다렸어요?”
“아뇨. 저도 방금 왔어요.”
와인바에 도착하자마자 지원은 로얄 어쩌고 하는 긴 이름의 와인을 시켰다.
이름만 들어서는 진짜 1억 원짜리 와인 같았는데, 슬쩍 메뉴판을 확인해 보니 4만 9천 원이었다.
“와인 나왔습니다.”
“아, 감사합니다.”
형우가 재빨리 두 손으로 지원에게 와인을 따라 줬다. 그 모습을 본 지원이 파핫, 웃었다.
“누가 와인을 그렇게 따라요?”
“어라, 이거 아녜요?”
“와인은 한 손으로 따르는 게 정석이죠. 이렇게요.”
지원이 와인병을 슬쩍 쥐었다.
“봐요, 이렇게 한 손으로 잡고 따르는 거예요. 잔에서 살짝 떼도 좋죠. 공기랑 마찰하는 부분이 늘어나면 풍미가 좋아지거든요.”
그렇게 말하며, 지원은 와인잔에서 15cm 정도 병을 들어 올렸다. 금방이라도 쏟아질 듯 위태로워 보였지만, 의외로 붉은 선은 튀는 일 없이 와인잔 안으로 들어갔다.
“이렇게 4분의 1만 따르는 거예요. 작가님처럼 절반 채우는 게 아니라.”
“아하.”
그 모습을 본 형우는 ‘술이야 어떻게 먹든 맛만 있으면 그만이지’라고 꼰대스럽게 말하지는 않았다. 몇몇 효율주의자들은 형식을 혐오하지만, 그런 사람들은 똑같은 방식으로 인간의 감정 또한 혐오한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인간이 로봇과 다른 이유는 감정과 감각이 있기 때문이고, 형식은 그런 감정과 감각을 자극해준다는 점에서 반드시 필요하다는 것이 형우의 생각이었다.
“이렇게 하는 거 맞나요?”
형우는 방금 본 것을 거의 비슷하게 따라 했다. 지원이 박수를 짝짝 쳤다.
“완전 마음에 드는데요.”
“이제 마셔도 되는 거죠?”
“작가님이 무슨 관우도 아니고, 허락받아가면서 술 마실 필요 없잖아요.”
꼴깍꼴깍-
“오.”
익숙하지 않은 와인의 맛은 꽤 산뜻하고 괜찮았다. 사실 지원의 센스가 잘 드러난 부분이었다. 초보자들이 익숙하지 않은 산미 대신, 감미가 중심이 되는 와인을 선택한 것이다.
“오늘 제가 왜 술 한잔하자고 했는지 아세요?”
“글쎄요.”
형우가 고개를 젓자, 지원이 그럴 줄 알았다는 듯이 피식 웃었다.
“아까 김호수 작가님한테 연락받았어요.”
“김호수 작가님이요?”
“필명은 김뿔테 작가님이요. <흡연 검성> 쓰시는 분. 작가님이 찾아가서 도와줬다고 하시던데.”
“아… 작가님이 뭐라고 하시던가요?”
“엄청나게 좋았대요. 출판사가 이런 식으로 도와주는 것도 처음이라고 그러시고.”
“아하.”
형우가 멋쩍게 웃었다. 칭찬받으려고 한 일이 아닌데, 칭찬받으니 조금 머쓱한 기분이었다.
“저도 스패로우 팩토리 공동대표인데요. 할 수 있는 건 해야죠.”
“할 수 있는 건 한다. 그 말도 맞아요. 하지만, 오늘 형우님이 하신 건 작가가 할 일이 아니라 편집자인 제가 할 일인 걸요.”
형우는 조금 당황했다. 혹시 월권행위가 일어나서 자신에게 뭐라고 하려는 건가? 하는 생각이 넌저시 드는 순간.
“고맙습니다, 작가님.”
지원이 형우를 향해 고개를 꾸벅 숙였다.
“작가님이 안 계셨다면, 저 오늘 정말로 힘든 하루가 됐을 거예요.”
“아, 그게.”
감사를 받으려고 한 일은 아니었는데, 약간 어색한 기분에 형우가 뒷머리를 긁적거렸다.
“도움이 됐다니 다행이네요. 편집자님도 요즘 볼 때마다 꽤 힘들어 보이셔서.”
“어라. 티 났나요?”
지원이 눈을 깜빡거렸다.
“화장품도 바꿨는데? 일부러 스모키 화장인 척하고 다녔는데?”
“그 정도로 가려질 다크서클이 아니라서요.”
“에휴. 그런가요.”
체념한 듯 지원이 한숨을 쉰다. 그 모습을 보니, 지원이 스패로우 팩토리라는 회사에 얼마나 사활을 걸었는지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무리하지….”
무리하지 마세요, 라고 말하려던 형우가 멈칫했다. 목표를 향해 달리는 마라톤 선수에게 ‘무리하지 마.’라고 말한다면, 그건 그 사람을 온전히 이해하지 못한 말이 아니겠는가.
그런 사람에게 해야 하는 말은,
“저도 같이 할게요, 무리요.”
위로가 아니라 다짐이다.
힘을 너무 줘서 조금 딱딱하게 느껴지는 말이지만. 가끔은 따뜻한 말보다, 딱딱한 다짐이 더 와닿는 사람도 있는 법이니.
“푸흡.”
그 문법적으로 제멋대로인 말을 들은 지원이 웃음을 터트렸다. 짧고 강렬하지만, 배려가 느껴지는 문장이라고 생각했다.
“건배할까요?”
“그러죠, 뭐.”
둘의 잔이 짠, 하고 부딪힌다. 밤의 하늘은 어둡지만, 서울의 거리는 행인들을 유혹하는 네온사인들로 반짝거린다. 어쩌면 글쓰기란, 저 사람들을 모두 이해하기 위해 노력하는 일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