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환상을 쓰겟다-134화 (134/200)

#133

귓가에 울려 퍼지는 히사이시 조의 를 들으며, 형우는 눈을 감았다. 뜨뜻한 온기가 눈물샘을 자극해주고 적당한 압력이 눈을 꾹꾹 눌러주는 게 꽤 기분이 좋았다.

“요즘은 진짜 별별 물건이 다 나온단 말야.”

형우가 지금 쓰고 있는 물건은 ‘눈 안마기’라는 것인데, 솔직히 말하자면 요즘 구입한 건강관련 물품 중에서는 블루라이트 안경 다음으로 좋았다. 눈알이 빠질 것 같을 때 쓰면 눈알이 다시 제자리를 찾아가는 듯한 느낌이 들었으니.

면봉으로 눈꺼풀 아래를 쓰윽 문지르자 노란 진액이 묻어나온다. 적절한 온기에 눈물샘이 열리고 그 안에 쌓여있던 노폐물이 삐져나온 것이다.

“다시 작업해 볼까.”

면봉을 아무 데나 던지면서 중얼거렸다. 그러자 기다렸다는 듯이 멀리서 표로로롱- 하는 소리가 났다.

“뺘약!”

던져진 면봉을 낚아챈 참치가 그걸 그대로 쓰레기통으로 내던진다. 저런 거 보면 참 영리한 녀석이다. 추운 겨우내 산책도 못 하고 집에만 있는 게 속이 탔는지, 아주 별짓을 다 한다. 조류 프리스비 대회가 있었으면 참치가 아마 대상을 타지 않았을까 싶다.

녀석의 머리를 쓰다듬고 해바라기 씨 하나를 던져준 후에, 다시 글을 쓰는 데 집중했다. 요즘 쓰는 글은 예전에 교보재문고 주민호 팀장과 약속했던 <아이언 타이거>의 중간문학 버전이다.

진작에 쓰려다가 어떤 식으로 써야 할지 감이 잡히지 않아 고민했었는데, 이진아에 대한 글을 썼던 것이 좋은 계기가 됐다. ‘위로’라는 키워드는 <아이언 타이거>의 중간문학화와 꽤 잘 어울리는 마지막 퍼즐 조각이었고, 그 덕택에 연재와 겸하면서도 소설을 시일 내에 마무리 지을 수 있었다.

위이잉, 마침 기다렸다는 듯이 전화가 왔다. 주민호 팀장이다.

“어떻습니까, 팀장님?”

“더할 나위 없습니다. 좋네요!”

주민호의 말에 형우는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혹시 이것도 문학상이라도 받는 거 아냐? 하고 오랜만에 김칫국도 한 사발 들이켰다. 너무 많이 기대하는 것 같은 느낌이 들긴 하지만, 기대감에 잡아먹히는 단계는 이미 지난 지 오래였으니.

이제는 기대감이 배신당해도 그냥 이불 몇 번 차고 끝낼 수 있을 것 같은 생각이 든다. 그렇게 흡족한 마음을 잠깐 즐기고 있자니, 테이블에서 머리를 벅벅 긁는 제자, 김정수가 보인다.

“아, 또 이 모양이네.”

웹소설 어워드에서 상을 탄 이후, 자신을 바라보는 정수의 시선에는 존경심이 가득 어렸다. 그 똘망똘망한 눈으로 3월이 올 때까지 우리 집에서 머물면서 글을 배우고 싶다기에, 그러라고 했다.

‘글을 배우는 건 좋은데, 저건 좀.’

아니나 다를까, 소설이 아니라 또 댓글을 읽으면서 셀프 고문을 하고 있다. 댓글로 독자 반응을 살피는 거야 물론 중요하지만, 그렇다고 너무 댓글에만 빠져버리면 소위 주화입마가 온다. 글쟁이에게 주화입마라면 당연히 ‘내글구려’병이다.

“내 글이 진짜 재미가 없나?”

<당신의 그림자를 조심하세요>. 정수가 쓴 공포 계열 라이트노벨은 솔직히 말해 재밌다. 약간 감성이 안 맞는 부분을 제외한다면 구조적으로도 잘 짜인 이야기라고 생각한다. 특히 첫 화인 <키보드 귀신> 편과 최근 편인 <잔소리 괴물> 편은 마치 어디서 본 듯이 미칠 듯한 디테일이 살아 숨쉬는 파트다.

하지만 그럼에도, 글쟁이로 살아가는 이상 비판이란 건 피할 수가 없다. 21세기의 세상이란 참으로 다양한 사람들이 있어서, 셰익스피어와 세르반테스가 부활해서 와도 비판을 피할 수 없을 거라고 하지 않는가. 하물며 우리는 세르반테스도 셰익스피어도 아니니. 비판은 당연한 일이다.

…라고 몇 번이나 이야기했는데. 정수 녀석은 여전히 그 댓글들에 도 넘을 정도로 가슴 아파한다. 저러다가 멘탈이라도 터지면 어쩌나, 하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슬쩍 물었다.

“김정수, 뭐 하고 있어.”

“…헛!”

하지 말라는 걸 하다 들켰으니, 당연히 생각보다 더 많이 놀랄 수밖에. 하지만 거기에 대해 질타할 생각은 없다.

“또 비난 많이 달렸어?”

“네. ‘하차합니다. 작가님은 상하차나 하세요’라는 글도 달렸고요, ‘바라는 건 목돈이지만 이런 소설로 잡을 수 있는 건 기껏해야 푼돈’이라는 글도 달렸고, 또, ‘작가님이 아니라 짜가님이네. 어디서 징글징글하게 본 글임’이라는 글도….”

“좀 심하네.”

라임까지 살려서 저런 댓글을 달다니. 댓글 단 사람은 아마도 <기브미더머니> 디스전 같은 데 나가면 무조건 우승할 것 같다.

“그래서 어떻게 했어?”

“그, 다른 유명한 작품 들어가서 악플 구경했어요. 특히 최근 논란 터져서 악플 많은 작품으로.”

배고플 때 북한 보기 전략인데, 거참. 이걸 뭐라고 해야 할지 모르겠다.

“어떤 작품은 악플이 1만 개더라고요. 그런데 생각해 보니까, 악플이 1만 개라는 건 독자가 1만 명이라는 건데, 그건 또 그것대로 부러워서….”

미치겠다. 딱 2차대전 직전의 미국 같은 모습이다. 이걸 생각하면 저게 꼬이고, 저걸 생각하면 이게 꼬이는 대공황의 상황. 자칫하면 슬럼프가 온다.

슬럼프는 작가라면 한 번은 겪게 되는 일이라지만 이왕이면 안 겪는 게 좋다. 그런데 지금 정수의 행동은 슬럼프를 피하려는 것도 아니고 아예 거기로 걸어 들어가고 있는 꼴이니.

셰익스피어의 말을 인용하자면,

‘언젠가 다가올 죽음이 나를 찾아오기 전에 내가 먼저 그의 문을 두드리는 것은 잘못된 일일까?’

당연히 잘못된 일이라고 생각한다.

퓌시식-

전기포트로 물을 끓였다. 이럴 때는 말보다는 화학성분의 힘을 좀 빌리는 게 좋다. 일단 찬장을 뒤져서 마그네슘 함량이 높은 허브차를 꺼냈다. 마그네슘은 감정을 진정시키는 데 좋다. 두통은 안 온 것 같으니 아직 타이레놀은 필요 없겠지.

그대로 급하게 마그네슘을 먹인 뒤, 녀석이 진정하기를 기다렸다. 표정이 침울한 게 아무래도 타격이 좀 커 보이지만. 어쩔 수 없다.

대단한 작가가 되기 위해서는 멘탈이 중요하지 않을지도 모르지만, 대단한 웹소설 작가가 되기 위해서는 멘탈이 좀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정수는 지금 고작해야 18살. 멘탈이 강하다고 하면 그게 더 이상하겠지.

“소설을 쓰기만 할 때랑, 진짜로 쓰면서 독자평을 볼 때랑은 느낌이 많이 다르네요.”

홀짝- 하고 차를 마시며 녀석이 훌쩍거렸다.

글로 쓰면 홀짝, 훌쩍인데. 실제로 들으면 느낌이 많이 다르다. 의성어의 한계다.

“선생님은 40번 넘게 공모전을 떨어졌다면서요. 어떻게 그럴 수 있죠? 멘탈 갑인가?”

진중한 이야기에 ‘멘탈 갑’ 같은 말이 섞이니 좀 덜 진중해 보이지만, 진중한 게 맞다. 그냥 그 나이 또래의 표현 방법인 것이다.

“멘탈 갑은 무슨. 나 멘탈 걸레짝이야. 그거 때문에 구멍 숭숭 나서 난독증도 왔었잖아.”

“맞아, 그랬다고 들었어요.”

달리기 선수가 슬럼프가 오면 다리가 고장 나듯, 형우는 슬럼프가 심하게 오면 글이 안 읽혔다.

“어떻게 극복했어요?”

“재활.”

그렇게 말하며 참치를 봤다. 저 녀석이 내 재활 교사였다고 말한다면 사람들은 미친 사람 취급을 할 테지만, 그게 맞다.

부리로 쪼면서 글을 읽으라고 보채는데, 어떻게 하겠어.

“노력하면 뭔가 나아질 줄 알았는데, 노력해도 힘들어요.”

“당연하지. 노력만 해서 다 되면 세상에 힘든 사람 아무도 없게?”

“그러면 왜 노력해야 해요?”

참 청소년다운 질문이다, 라는 생각이 듦과 동시에 뭔가 데자뷰가 들어 기억을 되짚어 보니, 예전에 정진욱이 비슷한 말을 한 적이 있었다.

하지만 뉘앙스가 많이 다르다. 정진욱은 ‘어차피 노력 안 해도 중간은 가는데 뭐하러 노력하냐? 힘들게?’라는 게으른 천재의 뉘앙스였다면, 지금 정수의 말은 ‘노력을 해도 중간도 못 가는데 왜 노력해야 해요?’에 가깝다.

“어렵네.”

노력을 왜 해야 하나, 세상을 왜 열심히 살아야 하나. 그런 것에 대한 답이 사실 뾰족하게 있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두루뭉술하게라면, 충분히 있다고 생각한다.

“내 생각에, 노력이란, 불안감을 긴장감으로 바꾸는 일인 것 같아. 내가 겪어 보니까, 불안감보다는 긴장감이 낫더라고.”

그러니까 노력이란, 개인에게 있어서는 너무 견디기 힘든 걸, 견딜만한 걸로 바꿔주는 정도다.

“그게 뭐예요.”

“사람이 기껏 대답해 줬더니, 이게?”

형우가 장난스럽게 정수의 정수리를 콩 때렸다.

“불만 있으면 다른 사람 찾아가서 물어봐라. 나는 이 말밖에 못 해 준다.”

“다른 말 없어요? 노력하면 보상이 온다던가, 고진감래라던가.”

“그거 다 아메리칸 드림이다. 힘든 사람들이 노력 안 해서 힘든 게 아니거든. 그리고 이런 걸 다 떠나서.”

그대로 일어난 형우는, 정수의 어깨를 살살 눌러 줬다.

“난 네가 소설을 계속 썼으면 좋겠다.”

“왜요?”

“다음 화가 궁금하니까.”

“정말요?”

“난 소설로는 거짓말 안 해.”

형우가 부연했다.

“나는 웹소설 어워드 대상을 탄 작가야. 글을 거의 7년 동안 썼고, 플랫폼 순위도 높지.”

“맞아요.”

“그런 내가 고른 첫 제자가 너다.”

…사실은 연수가 첫 번째였지만, 일단은 넘어갔다. 이런 일에는 감성이 중요한 법이니. 연출과 개연성 중에 뭐가 더 중요하냐?를 물어본다면 형우는 주저 않고 ‘연출’이라고 답하는 타입이었으니. 지나친 개연성은 작품을 망친다는 서구의 한 작가의 말을 신봉하고 있기도 하고.

“그러니까, 김정수.”

이왕 오글거리는 말을 시작한 거, 끝까지 했다. 사실 영화 명대사라는 것도 떼어 놓고 보면 다 오글거리는 말들이 태반 아닌가.

“난 널 믿는다.”

그러니까, 상황이 중요한 거지, 상황이.

* * *

“혜선 씨, 저는 혜선 씨를 믿어요.”

“사장님, 그러니까요.”

혜선이 말도 안 된다는 듯한 표정으로 자신의 책상 위를 쳐다본다.

“플랫폼을 만들면서 작가계약 두 건을 체결하고, 거기에 추가로 건물까지 알아보라는 거예요?”

“넵.”

“혹시 이거 권고사직인가요?”

“에이, 설마요. 혜선 씨가 나가면 저희 회사 망해요!”

“…제가 쓰러지면 안 망하고요?”

“녹용? 웅담? 말만 해요.”

“에휴.”

혜선이 한숨을 푹 쉬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이 정도로 끝내는 건, 지원이 자신과 버금갈 정도로 일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2월 말, 스패로우 팩토리가 현제 계약 중인 작가는 총 서른세 명이다.

그리고 그 서른세 명의 교정은 몽땅 지원이 혼자서 담당하고 있다. 플랫폼 사업에 전념하라며 혜선에게 여유를 준 것이다.

물론 취지는 그랬지만, 요 며칠 사이 회사가 두 배로 바빠진 탓에 결국 혜선과 지원 둘 모두가 바빠 죽는 꼴이 되기는 했다.

“이번 일 잘되면, 꼭 직원 뽑아주세요.”

“그래요. 어떤 직원으로 뽑을까요? 스펙 좋은 사람? 아니면 얼굴이 복지인 임시환 닮은 24세 병약 미소년? 말만 해요.”

“…하루 11시간씩 일하면서 안 투덜거릴만한 사람이요.”

“에이, 혜선 씨. 그런 사람이 어딨어요?”

“어디 있긴 어디 있어요, 여기 있지.”

입으로 투덜거리면서도, 혜선의 눈은 재빨리 오늘 할 일의 목록을 주르륵 훑었다. 혜선의 일솜씨는 정말이지 흠잡을 데가 없었다.

“오늘 일 끝나면 간단히 저녁이나 먹죠. 제가 살게요.”

“비싼 거 먹을 거예요.”

스패로우 팩토리가 발족한 지 6개월. 혜선과 지원은 꽤나 친해졌다. 상하관계를 중요시하는 지원조차도 혜선에게 넌지시 ‘사석에서는 말을 놓아도 돼요.’라고 말할 정도로 말이다.

하지만 혜선은 의외로 지원보다도 더 상하관계에 예민한 사람이었으니. ‘사장님은 사장님이죠.’라는 말로 일축했다.

‘그럴 거면 평소에 깍듯하기라도 할 것이지.’

겉으로는 사장님, 사장님 하면서도 할 말은 다 하는 게 가끔은 여우 같아 보일 때도 있었다. 하지만 뭐, 일 잘하는 여우라면 일 못하는 곰보다 백 배는 낫다.

“그러면, 시작해 볼까요?”

그와 동시에 손가락을 당겨 뿌드득- 뼛소리를 냈다. 몸에는 별로 좋지 않은 동작이라지만, 원래 다리 꼬기, 짝다리 짚기, 단 거 먹기 등등 몸에 안 좋은 것이 즐거운 법 아니겠는가.

그리고 새로운 일을 시작할 때는, 무조건 즐겁게 시작하는 게 좋았다.

그 이후로도 즐거울지는 그 누구도 알 수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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