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환상을 쓰겟다-132화 (132/200)

#131

어쩐지, 얼마 전부터. 그러니까, 정확히는 네이비 웹소설 어워드에서 상을 받았을 때부터 뭔가 특이한 댓글들이 좀 달리기는 했다.

dbsdk(thddbs***)

ㅁㅁㅁㅁ

dbsdk(thddbs***)

어라댓글잘못달ㅇ안늣데어떻게지우죠

dbsdk(thddbs***)

다음ㅁ화어떠케볼수있나여결재하라는데

dbsdk(thddbs***)

작가님파잍팅^^

뭐랄까, 왠지 오타가 많고, 평소에 웹소설을 잘 이용하는 것 같지도 않고, 그렇지만 뭔가 소설에 대한 애정은 표현하고 싶어하는…

처음에 댓글을 봤을 땐 그냥 좀 특이한 독자인가? 하고 넘어갔는데, 이제 대충 알겠다.

아이디부터가 영어로 친 ‘윤아’고, 옆에 써진 건 ‘송윤***’이다.

…이거, 어머니였구나.

“호, 혹시 다 읽으신 거예요?”

“당연하지. 댓글도 달았다. 무슨 댓글 달았는지는 안 알려줄 테지만.”

……이미 다 알아요. 어머니.

“아악.”

그걸 깨닫는 순간, 뭔가 부끄러움 비슷한 게 차올랐다. 소설을 쓰는 게 부끄러운 건 절대 아닌데, 그 내용을 가족들한테 듣는 건 상당히 부끄럽다.

하지만 그런 것과 별개로, 어머니는 <아이언 타이거>를 꽤 열심히 읽은 모양이었다.

“재미는 있는데, 악당을 응징하는 부분이 뭔가 좀 어색하더구나. 내가 요즘에 <빈센토>라는 드라마를 보는데 말이지….”

“<빈센토>에서도 그렇고, 예전에 같이 봤던 <레전드 오브 조로>에서도….”

게다가 뭔가 짚는 부분도 상당히 정확하다. 그제야 형우는 어머니의 직업을 깨달았다.

농사일을 나가면, 동네 아주머니들과 함께 풀을 뽑으며 몇 시간이고 점심에 봤던 드라마로 심도있는 토론을 나누는 것이 어머니의 삶이었으니.

30년간 3사는 물론 지상파 공중파 외화를 가리지 않고 온갖 드라마와 영화를 섭렵해 온 열혈 시청자의 내공이란, 쉬이 무시할 수 있을 만한 것이 아니었다는 뜻이다.

‘그러면…… 한번 이야기나 해 볼까?’

편집자의 의견이나 작가의 의견도 중요하지만, 오랫동안 장르를 즐긴 고급 독자의 첨언 또한 가끔은 폐부를 찌를 때가 있는 법이니.

“사실은요, 요즘 소설에서 막힌 부분이 이 부분이거든요.”

형우가 설명하는 건 아직 연재되지 않은 <아이언 타이거>의 170화 부분이다.

[오랜 동료의 결혼식장에서, 나는 심상치 않은 기운을 감지했다. 재중파 놈들이었다.]

[눈으로 좇는 것보다, 검을 뽑는 게 더 빨랐다. 그리고 놈들은 그것보다도 더 빨랐다.]

[안 돼! 그 말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놈들은 입자가속장치의 버튼을 눌렀다. 하기야. 안 돼! 라고 했을 때 진짜로 안 하는 놈들이라면 갱단이 되지도 않았겠지.]

[맨홀로 핏물이 꾸르럭대며 빠져나가는 것이 보인다. 그리고 그 뒤로 완전히 박살 난 입자가속장치가 한 군데도 상처가 없는 교회와 대비되는 형태로 서 있다. 입자가속장치는 교회가 아니라 내 몸을 부수는 것에 그쳤다.]

[그리고 내 시야를 3분의 2 정도로 쪼개며, 자그마한 발 하나가 움푹 자리한다. 그 발은 곧 무릎이 되고, 손이 되고, 목소리가 된다.]

[아저씨, 괜찮으세요?]

“……여기까지가 지금까지 쓴 부분인데, 이다음 부분이 고민이에요.”

“구체적으로는 어느 부분이?”

“여기서 죽어가는 주인공이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지 모르겠다는 거죠. 친구를 지켜서 다행이라고 생각할까요, 아니면 아무도 모르게 죽어버리는 게 억울하다고 생각할까요.”

“으음.”

잠깐 생각하던 어머니는 짐짓 심각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혹시 그 내용 어디서 들은 거니? 아니면 갑자기 생각난 거야?”

“굳이 따지자면…… 제가 생각한 거긴 한데, 왜요?”

“그게 말이다…….”

형우를 바라보는 어머니의 시선이 뭔가 심상치 않았다.

“……혹시 지금 시간 괜찮으면 나랑 어디 좀 같이 가자꾸나.”

* * *

부천에 위치한 수목림.

형우는 어머니의 뒤를 쫓아 한참을 걸어올라갔다. 요즘 나름 운동을 해서 체력이 붙었다고 생각했는데, 그래도 역시 농사꾼인 어머니에게는 상대가 안 됐다.

길을 걸으며 양쪽으로 서 있는 나무들은 하나같이 명패를 달고 있다. 이민주, 김영태, 장도민 등등. 물론 사람 이름을 한 나무는 아니다. 나무 아래 묻혀 있는 고인의 이름이다.

이 수목림은 전체가 하나의 거대한 무덤이자, 인간의 삶이 다시 순환되는 공간이다. 그러니까, 수목장터라는 뜻이다.

“다 왔다.”

산의 가파른 꼭대기 쪽에 위치한 한 나무 앞에서 어머니는 멈췄다.

‘이진아’라고 써진 명찰이 나무에 박혀 있었다.

수목장을 잘 알지는 못하지만 아무래도 이 정도로 오기 힘든 곳이면 그렇게 좋은 자리 취급은 못 받을 것 같다. 추리소설 속 셜록 홈즈 흉내를 감히 내 보건대, 이곳에 묻힌 이진아라는 사람은 자연을 엄청나게 사랑했지만 돈은 많지 않았던 사람인 것 같다.

“이진아가 누구예요? 엄마 친구?”

“친구는 아니다.”

“그런데 왜 여기까지 와요? 친구도 아니라면서.”

“나도 거의 20년 만에 오는 거긴 하다. 그런데 형우야, 정말로 기억 안 나니?”

그렇게 말하는 어머니의 눈빛이 사뭇 걱정스럽다. 뭐랄까, 약간 머뭇거리는 것 같기도 하고. 하지만 아무리 고민해 봐도 이진아라는 이름에서 딱히 떠올릴 수 있는 건 없었다.

“하긴, 어릴 때니까. 네 살 때였나.”

“네 살 때요?”

“그래. 느이 고모 결혼식할 때.”

‘느이 고모’라고 말하는 어머니의 말투가 별로 곱지 않다. 하긴, 고모는 아버지가 쓰러진 이후 혹시라도 우리가 손 벌릴까 봐 무섭다며 연락을 끊은 매정한 사람이었으니까.

고모 결혼식이라, 그렇게 생각하니 뭔가가 기억날 듯하기도 하다. 기억이 맞다면 고모는 꽤 돈이 많은 편이었고, 결혼식도 서울에서 했다. 아마 첫 서울 구경이었을 것이다.

길을 가다 하늘을 날아가는 은색 풍선을 봤고, 저도 모르게 그 풍선을 쫓아가다가. 길을 잃어버렸었나. 허억, 하고 숨을 들이마셨다. 뭔가가 기억이 날락 말락 하다.

‘누나, 괜찮아요?’

‘여기, 여기 사람 쓰러졌어요!’

‘으아아아, 으아앙!’

하는- 일련의 대화들이 기억 저편에서 깨어난다. 머리가 조금 아파온다. 어머니가 왜 이 이야기를 지금껏 하지 않았는지 알겠다. 그리고, 왜 하필 <아이언 타이거>를 쓰면서 그런 장면을 넣었었는지도.

무의식의 발현이었다.

* * *

22년 전, 서울.

흔히 ‘서울’이라고 뭉뚱그려 부르지만, 사실 서울이라고 모두 개발되어 있는 것은 아니다. 어딜 봐도 깨끗해 보이는 번화가에서 두 블록만 가면, 여기가 서울이 맞나 싶은 정돈되지 않은 길들 또한 펼쳐지는 곳이니.

풍선을 쫓던 어린 형우가 발견한 것도 그런 허름한 골목이었다. 그리고 네 살의 형우는 그 순간 공포를 느꼈다.

‘여긴 대체 어디지?’

형우가 아는 서울은 밝은 번화가거나, 혹은 <검정 고무신>등에서 나올 법한 화기애애한 달동네였다. 여기저기 거칠게 쓴 현수막이 나부낀다는 이야기도, 외설스러운 욕설들이 페인트로 적혀 있다는 이야기도, 담배꽁초로 발 디딜 곳 없는 뒷골목에 대한 이야기도 들어본 적 없었다.

그리고, 그 가운데서 벽에 등을 대고 쓰러져 있는 여자에 대한 이야기는 더더욱 들어본 적이 없었다.

“허억!”

여자의 눈은 붉게 충혈되어 있고, 숨은 똑바로 쉬지도 못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아마 천식이나, 뭐 비슷한 증상이었던 것 같다. 그 때는 몰랐지만.

“누나, 괜찮아요?”

“이리, 로.”

그 여자는, 힘겹게 그렇게 말하며 손을 뻗었다. 왠지, 그 손을 잡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어린 나이임에도, 왠지 그랬다. 그래서 그 손을 붙잡았다.

“아아, 아.”

손바닥은 얼음이라도 끼얹은 듯 차가운데, 손등은 악에 받친 듯이 뜨겁다. 그 괴리감 가득한 체온에, 형우는 깜짝 놀라 손을 떼고 말았다.

그리고, 울음을 터트렸다.

“으아앙, 으앙!”

“아, 아가야. 우, 울지.”

아마 울지 마, 라고 하려고 했던 것 같다.

하지만, 그 여자는 도중에 말을 멈췄다. 대신, 아무 말 없이 다시금 형우의 손을 꽉 쥐었다.

죽어가는 사람이라곤 볼 수 없을 정도로 강한 손짓이었고, 어린 자신은 깜짝 놀란 채 울기만 했다.

그렇게 얼마나 있었을까.

“형우야! 아들!”

“여기 있었구나!”

잔뜩 얼어붙은 채 울고 있던 형우를 구해준 건 어머니와 아버지였다.

* * *

“그 사람이 이진아였단다.”

어머니의 말에, 형우는 퍼뜩 상념에서 깨어났다. 어린 자신의 앞에서 마지막 수명을 다했던 여자 말이다.

“뒤늦게 발견하고 병원에 보냈지만, 명을 달리했단다. 우울증에 천식이 겹쳤다지.”

골목에 앉아있다가 천식 때문에 호흡곤란이 왔고, 우울증 때문에 도움을 요청하지 않았다. 참으로 비참하기 그지없는 콜라보였다.

어머니와 아버지는 최후 목격자다 뭐다 해서 경찰조사를 받았고, 그러는 내내 욕을 했다. 하기야, 갑자기 어린 자식 앞에서 죽어버린 사람이었으니 화가 나기도 많이 났을 거다.

“혹시라도 네가 충격이라도 받지 않았나 정신병원도 몇 번인가 데려갔었다고.”

“왜 저한테 말 안 했어요?”

“요즘이야 그런 게 없지만, 당시에만 해도 정신과 가면 이상한 사람 취급을 받던 시절이라서. 다행히도 너는 별 이상이 없었지.”

처음에는 어린 마음에 혼란스러웠던 건지, 한 3일 정도 훌쩍거리기는 했지만, 이내 다시 또래처럼 명랑해졌다고 했다.

“그 이후로는 일부러 말을 안 했어. 그냥 머릿속에서 잊혀지도록.”

“흐음, 그런데 왜 갑자기 지금 와서 이야기해 주시는 거예요?”

“네 소설에 도움이 될까 싶어서. 지금 딱 쓰는 부분이 이 부분이잖니. 아니면 내가 잘못 생각한 거니?”

“아뇨.”

형우가 고개를 저었다. 아마 어머니가 아니더라도, 형우는 곧 이 사건을 기억해 냈으리라. 꽁꽁 감춰둔 기억은 언젠가는 풀려나기 마련이니까. 차라리 이런 식으로 명쾌한 게 훨씬 나았다. 하지만, 궁금한 건 여전히 남았다.

“그런데요 엄마. 혹시 서울 온 게 여기 오려고 왔던 거예요?”

“맞다.”

“시간순서가 안 맞지 않아요?”

아들이 소설 때문에 고민하는 걸 알고 이 수목장에 온 게 아니라, 이 곳에 오기 위해 서울에 왔다가 아들의 고민을 알게 된 것이니.

“왜 갑자기 여기 오실 생각을 하신 거예요? 지금까지는 안 그러셨으면서.”

“그게 말이다.”

이것도 운명인가?

송윤아는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이진아는 소설가였다더구나.”

“소설가요?”

“정확히는 소설가는 아니었고, 예전의 너처럼 문창과 학생인 소설가 지망생이었지. 꽤 오래 준비했었는데 잘 안 됐다나 봐.”

죽은 소설가를 목격했던 어린아이가 다음에 커서 소설가가 되었다니.

“참 기묘한 인연이다 싶어서, 한번 와 봐야겠다 싶더라. 꽃이라도 한 송이 두고 오는 게 맞지 않나, 그런 생각이 들더라고.”

다행히 고모의 결혼식 날짜와 이진아의 기일이 겹치는 탓에 기억하는 건 어렵지 않았다.

나무 앞에 꽃 한송이가 소담하게 놓였다.

“좀 그렇네요.”

나무 앞에 꽃을 내려놓는다니. 꽃이란 결국 나무에서 나오는 것인데. 하지만 뭐, 이 또한 순환이라고 생각한다면 너무 글쟁이 같은 생각일까.

그래서 조금 다른 생각을 하기로 했다.

“어떤 기분이셨나요.”

무덤을 향해 형우가 물었다.

휘릭.

대답 대신, 어디선가 바람이 불어왔다.

산이니 바람이 부는 건 당연하다고 생각한다면 그건 너무 글쟁이 같지 않은 생각일까.

“슬슬 내려가죠. 요즘은 해가 빨리 지잖아요. 아, 그리고 고마워요 엄마.”

“고맙다니?”

“여기 데려와 줘서요.”

이 짧은 견학 덕분에, 나름의 해답을 얻었다.

* * *

‘진아야, 이제 수업인데 안 들어가고 뭐 해?’

‘아, 여기 참새가 떨고 있어서.’

‘뭐?’

‘정식이 넌 들어가도 돼!’

‘으음, 오늘 병옥 선배랑 다은 선배도 안 온 것 같은데. 에라, 모르겠다.’

짹, 째잭.

참새들이 우짖는 소리가 어디선가 들려왔다.

“으, 으으음.”

“부회장님.”

“으응?”

비서의 목소리에, C&N의 부회장 윤정식은 감은 눈을 떴다. 아무래도 깜빡 잠이 든 모양이다.

‘춘곤증인가.’

요즘 지나치게 무리한 것인가, 부회장실에서 팔자 좋게 잠이나 자다니. 그대로 눈을 벅벅 문질러 잠을 몰아낸 윤정식이 비서를 향해 물었다.

“무슨 일이야.”

“윤정아 사장님께서 오셨습니다.”

“누나가? 별일이네.”

그렇게 말하며, 윤정식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누나는 어디에 있어?”

“아마도 가신 듯 합니다. 전해 드릴 말이 있다고.”

“무슨 말?”

“그대로 전달드릴까요, 아니면.”

“그대로 전달해 줘.”

잠시 망설이던 비서가 천천히 대답했다.

“어, 참새 놈들이 일을 좀 벌였다고 합니다. 알아서 잘 밟아 놓을 테니 걱정은 하지 말라시더군요.”

“참새 놈들?”

오늘따라 그 단어가 이상하게 많이 들리는 기분이었다. 비서가 재빨리 말을 이었다.

“스패로우 팩토리를 말씀하시는 것 같습니다.”

“뭐, 놈들도 당하고만 있지는 않는다는 건가. 일단 알았어. 그나저나 내가 얼마나 잤지?”

“20분 정도인 것 같습니다. 10분 후에 대회의실에서 이사회가 예정되어 있습니다. 너무 피곤하시면 일정을 미룰까요?”

“아니야, 됐어. 바로 준비하지.”

그렇게 벗어둔 구두를 신으며, 윤정식은 창문 쪽을 바라봤다.

짹짹-!

창문 아래 쪽에, 1월의 추위를 견뎌내기 위해 옹기종기 모인 참새들이 보였다.

‘저것 때문인가.’

한다은, 천병옥, 그리고 이진아와 함께했던 4년간의 대학 시절이 떠오른 이유는.

“비서.”

나가기 직전, 윤정식은 비서를 불렀다.

“창문 밖에 있는 참새들, 저것 좀 쫓아내요. 시끄럽고 짜증나기만 하니까.”

“예, 부회장님.”

그대로 창문을 열고, 추운 겨울바람 속으로 참새를 내쫓는 비서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윤정식은 그대로 부회장실의 문을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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