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환상을 쓰겟다-119화 (119/200)

#118

“여기 있었네.”

찜질방 근처 뒷골목에 앉아 훌쩍거리는 정수를 먼저 발견한 것은 연수였다.

“괜찮아?”

“……아니요.”

정수가 솔직하게 고개를 저었다.

더 이상 센 척을 할 기분도 들지 않았다. 이미 밑바닥을 다 보여줬는데, 뭘 센 척을 한단 말인가.

“선배가 말을 좀 심하게 했지?”

“…으흑.”

따뜻한 말을 듣자마자, 고등학교 2학년 김정수의 눈에서 눈물이 왈칵 터져 나왔다.

“끄흡… 그 사람은… 뭐가 그렇게 대단한 사람이라고 저한테 그래요?”

“…으음, 솔직히 좀 대단하기는 하지.”

거기에 대해서는 반론의 여지가 별로 없었다.

그래서 정수는 말을 바꿨다.

“…그 사람은 천재잖아요. 참새치! 그런 사람이 어떻게 저 같은 사람을 이해하겠어요?”

“뭐?”

“실패해 본 적도 별로 없잖아요?”

“에엥?”

연수가 어이없다는 듯 정수를 바라봤다.

그녀가 알기로, 형우보다 더 많은 실패를 경험한 작가는 없었으므로.

“형우 선배는 40번 넘게 공모전에서 떨어졌어.”

“네?”

“그것 때문에 난독증까지 왔었지, 아마.”

연수의 말이 계속될수록, 정수의 눈이 계속해서 커졌다.

“그런데 선배 말은 어떻게 생각해?”

“…어떤 말이요?”

“너에 대해서 한 말, 정말로 공부하기 싫어서 소설 쓴다고 한 거야?”

“아니거든요.”

정수가 고개를 저었다.

공부가 싫은 건 맞았지만 그 이유 때문만은 아니다.

“소설가는 멋있잖아요.”

“아닐걸?”

연수가 고개를 저었다.

소설가는 그렇게 멋진 직업이 아니다. 매일 치질과 허리디스크로 고생하고, 손목 터널 증후군을 예방하기 위해 두 달마다 약국에서 9,000원짜리 손목 보호대를 두 짝씩 구입하는 직업이다.

“내 생각도 선배랑 비슷하긴 해. 정수 너를 보면 뭐랄까, 소설을 쓰고 싶은 게 아니라 소설가가 되고 싶어 하는 느낌이야. 그 둘은 비슷해 보여도, 아주 많이 달라.”

“아니에요.”

정수가 고개를 저었다가 다시 숙였다.

“…사실 맞아요.”

지난 몇 주간 정수도 많은 생각을 했다.

호언장담했던 소설은 생각보다 쉽지 않았고 독자 수는 점점 깎여나갔다.

점점 자신감이 떨어졌다. 하지만 그래도 공부보단 낫다고 생각했다.

“공부는 아무리 해도 찔끔찔끔 오르잖아요. 그런데 소설은….”

“…한 번만 터지면 되니까 나머지는 됐다, 그렇게 생각했지?”

그 말은 연수가 한 것이 아니다. 어느새 다가온 형우가 숨을 헐떡거리면서, 둘을 바라보고 있었다.

“이상하게 웹소설은 쉬운 이미지가 있단 말야.”

‘할 것도 없는데 의사나 해 볼까?’, ‘순문학이나 해 볼까?’라고 하는 사람은 없지만 ‘나도 코인이나 해 볼까?’ ‘나도 공무원이나 할까?’라고 하는 사람은 많은 느낌이랄까.

“하지만 현실은 좀 다르거든.”

애초에 그 정도로 쉬우면 다들 뛰어들어서 천만 원씩 들고 가지, 어느 누가 힘들게 일을 하겠는가?

“사람들이 쉽다고 하는 일 중에서 진짜로 쉬운 건 드물다는 거지.”

오십 개의 작품 중 하나만이 유료화되고, 유료화된 다섯 개의 작품 중 하나만이 공무원만큼 돈을 번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월 천’이니 ‘대박 작가’는 그중에서도 한두 명뿐이다.

“…하지만 이걸 알면서도 소설이 쓰고 싶다면….”

형우가 품속에서 뭔가를 꺼냈다.

바나나우유였다.

“잘못 꺼냈네. 이거 마실래?”

고개를 끄덕이는 정수에게 휙 던져준 다음에 진짜로 준비했던 걸 꺼냈다.

꼬깃꼬깃 접힌 종이였다.

그 위에는, 올해의 네이비 웹소설 어워드 초대장이라고 적혀 있었다.

“이건….”

“총 세 명을 초대할 수 있는 초대장이야. 두 자리는 이미 찼고, 한 자리 남았어. 그리고 나는 그 자리를 전도유망한 작가에게 쓸 생각이야. 가고 싶어?”

작가를 꿈꾸는 입장에서 가기 싫다면 그건 거짓말이다.

“가고 싶어요.”

“그러면 너는 네가 전도유망한 작가라는 걸 증명해야 해.”

“…어떻게 증명하는데요?”

“간단하지.”

형우가 손가락을 치켜들었다.

그 끝에는 정수의 성적표가 걸려 있었다.

“이제 곧 기말고사지? 그전까지 평균 등급을 2단계 올려. 원 등급이 낮으니 그렇게 힘들지는 않을 거야.”

“성적이랑 소설이랑 무슨 상관이에요?”

“상관이 있지.”

형우가 씩 웃었다.

“공부가 싫어 소설로 도망친 게 아니라 진짜 소설이 좋아서 노력하고 있다는 걸 증명하라는 거야.”

그렇게 말하며, 형우는 예전에 카페에서 안재욱과 했던 대화를 떠올렸다.

정수의 소설을 읽은 안재욱은 그 소설을 보고 주제가 흐리멍덩하다며, ‘자기가 좋아하지 않는 것을 쓴 느낌의 작품.’이라고 혹평했다.

‘겉멋이 들어서, 좋아하지도 않으면서 괜히 있어 보이는 걸 쓰고 싶어 하는 것 같네요.’

하지만, 형우는 그 말에 동의하지 않았다.

정수는 자신이 좋아하지 않는 것을 쓴 게 아니다. 그저,

‘자신이 뭘 좋아하는지 몰랐던 거지.’

소설에서 주제란 곧 작가의 욕망이다.

그리고 그 욕망을 찾기 위해서 작가는 반드시 자기 자신을 마주 보아야만 한다.

그러니, 정수의 소설의 주제가 흔들리는 것은 당연하다.

고등학교 2학년인 김정수는 지금까지 자기 자신을 마주 본 적이 거의 없으니까.

독자를 탓하고, 운을 탓하고, 공부만 우선시하는 사회 제도를 탓하고, 고리타분한 말만 하는 담임선생님을 탓하고, 도망만 쳤으니까.

“지금 너한테 필요한 건 소설에 대한 몇 가지 팁 같은 것이 아니라, 정확한 현실 인식이다.”

도망치면서 자신을 부풀리면서도 꿈을 꿀 수는 있다. 하지만 그 꿈은 그저, 한낱 백일몽에 불과한 꿈이다.

진짜 성공하기 위해서는 낮의 꿈을 꾸어야 한다. 도망치지 않고, 현실에 눈 돌리지 않고, 자신을 부풀리지 않고, 정확하고도, 객관적으로.

그럼에도 생각보다 작은 스스로를 하찮게 여기지 않으면서 눈앞의 길을 정확히 바라보는 것.

“그게 내가 생각하는 작가라는 생물이다.”

라고, 형우는 말했다.

그리고 그 모습을 본 정수는

“와아.”

그 말이 꽤 멋지다고 생각했다.

* * *

그렇게, 정수를 집에 돌려보냈다.

학교에 삼 일 무단결석해서 개근상을 못 타게 되겠지만, 그 정도로 세상이 무너지지는 않았다.

팔자에도 없었던 질풍노도의 청소년 멘탈 케어를 마친 형우 또한, 집에 가기 위해 택시를 잡았다.

처음 해 보는 것 치고는 생각보다 잘 됐다고 생각했다. 어쩌면 자신에게 설득의 재능이 있나? 라고 생각할 법도 할 정도의 호재였지만 형우는 그런 것에 기뻐하는 대신,

“으허억!”

…양손에 얼굴을 묻고 있었다.

“내가 무슨 말을 한 거지?”

자신이 한 말 한마디 한마디가 다 부끄러워 미칠 것 같았다.

“저, 선배? 괜찮아요?”

그 모습을 보며 옆에 타고 있던 연수가 조심스럽게 말을 걸었다.

“안 괜찮아. 부끄러워 죽을 것 같아.”

“아, 아까 한 말들이요? 그러니까 뭐였더라….”

연수가 목소리를 깔고 형우 흉내를 냈다.

“지금 너한테 필요한 건 정확한 현실 인식이다!”

“으아악!”

현실 인식을 못 하고 있던 건 자신이었다. 그딴 쪽팔린 말을 하다니!

“그게 내가 생각하는 작가라는 생물이다, 라고도 했어요.”

“에에엑으아악!”

올해 1년간 들었던 가장 쪽팔린 말 1위에 랭크할 수 있을 정도로 어이없는 발언이다.

“그리고 또….”

“제발 그만해 줘.”

형우가 얼굴을 파묻고 부탁했다.

“진짜 쪽팔려 죽을지도 몰라.”

“왜요? 멋있는데.”

“…정말? 멋있었어?”

그렇게 말하며 고개를 들어 올렸다.

볼을 부풀린 채 필사적으로 웃음을 참고 있는 연수와 눈을 마주쳤다.

“…날 속였어.”

다시 고개를 숙였다.

그런 형우의 귀에 연수의 목소리가 들렸다.

“선의의 거짓말이었어요.”

“악의밖에 안 느껴지는데.”

“그렇게 부끄러워할 거면 처음부터 말하지 않았으면 됐을 텐데….”

“그게 좀… 분위기에 휩쓸렸다고 해야 하나.”

뭔가, 분위기에 너무 휩쓸렸다. 뭔가 고양되어 있기도 했고, 상대가 고등학생이다 보니, 자신도 고등학생이 되어 버린 느낌도 좀 있었다.

“그래서 후회해요?”

“후회? 어떤 거?”

“그런 말 한 거요.”

잠시 고민하던 형우가 고개를 저었다.

솔직히 말해서 꼭 필요한 말을 했다고 생각한다.

“표현 방식은 좀 잘못된 것 같긴 하지만….”

“으흠….”

연수가 이상하다는 듯이 고개를 살짝 저었다.

“선배 좀 변한 느낌이 있네요. 원래 이렇게 오지랖 넓은 사람은 아니었는데.”

“뭐?”

“그렇잖아요, 원래 선배는 도움 되는 사람이랑 도움 안 되는 사람이랑 구분이 좀 엄격한 편이었는데.”

도움이 되는 사람이면 형우는 그게 누구든지 기꺼이 돕는다. 하지만 자신에게 도움이 안 된다고 판단하면 그 인간은 거들떠보지도 않는다.

그게 연수가 지금까지 봤던 형우였다.

“으음….”

딱히 반박할 말은 없었다.

기브 앤 테이크는 형우가 삶을 살아가는 방식 그 자체나 다름없었으니까.

“무슨 심경의 변화가 있었던 거예요?”

“뭐, 심경의 변화까지는 아니고.”

꿈에 빠져서 현실을 외면해버리는 사람.

정수를 보자마자 형우가 떠올린 것은 공교롭게도 그를 죽어라 괴롭혔던 선배 공태준이었다.

“그거 알아? 공태준, 처음 한국대학교 들어올 때는 수석이었대.”

지금은 공부도, 작문도 개판인 공태준이었지만 그때만 해도 공태준은 신동 소리를 들었다고 했다. 하지만 신동일 뿐 수재는 못 됐다. 현실의 벽은 높고도 냉담했다.

그사이 자기보다 못하다고 생각했던 자들이 자신을 지나쳐 달려 나가는 그 불안감.

“그렇게 사람이 변하기 시작한 거지.”

그렇게 공태준은 세상을 탓하며 벽을 외면해버렸다. 장르소설 탓을 했고, 건방진 후배 탓을 했고, 학교의 커리큘럼 탓을 했다.

“교수님께 그 이야기를 들으면서 그런 생각이 들더라고. 누구라도 말을 했으면 다르지 않았을까?”

네가 하고 있는 짓은 조금 이상하다고 알려줬더라면 어땠을까?

잘나가는 부잣집으로 태어난 것은 분명한 행운이지만, 동시에 불행이기도 했다.

그가 무슨 짓을 해도, 주변 사람들은 그에게 ‘네가 옳다.’라고 말하고 말았으니까.

차라리 유명한 집이 아니라 평범한 가정의 사람이었다면, 그래서 사람들이 설설 기지 않았다면, 조금은 달라지지 않았을까.

“그래서 좀 더 세게 이야기한 것도 있는 것 같아.”

일부러 정수의 자존심을 박박 긁고, 멘탈을 박살 냈다. 꿈에 빠져 하늘을 날며 다른 사람들을 우습게 보는 것보다는 차라리 추락하는 게 낫다고 생각했으니까.

그것이 형우가 생각하는 조언의 방식이었다.

“맞아요. 듣기엔 좀 그렇지만, 듣고 나면 확 깨는 이야기들이 있는 법이죠.”

누군가는 남에게 미움받기가 싫어 타인의 방식이 틀렸다는 걸 알면서도 그냥 ‘잘하고 있어.’, ‘힘내.’, ‘넌 잘될 거야.’ 같은 입바른 소리를 한다.

하지만 다른 누군가는, ‘그렇게 하면 안 된다.’, ‘그건 틀렸다.’, ‘다른 길을 알아봐라.’라는 전문적인 조언을 해 준다.

“저부터가 거기에 도움을 많이 받았으니까요.”

형우의 그 조언 덕분에 연수는 작가가 됐다.

그리고 그보다 더 좋은 건, 더 이상 도망치지 않게 됐다.

“지금은 겨울이라 어쩔 수 없지만, 팔의 흉터도 이제는 가리지 않으려고요.”

중학교 시절, 꿈이 부러졌던 흔적.

지금까지는 그 모습이 보기 싫어 가리고 살았지만, 형우의 도움으로 과거와 마주친 이후 연수는 더 이상 그것을 두려워하지 않게 됐다.

전문 용어로 하면, 트라우마의 극복이다.

“여름이 되면 비키니라도 한번 입어 볼 생각인데 어때요, 선배? 같이 바다라도 갈래요?”

형우가 고개를 저었다.

“싫어, 글 써야 돼.”

택시에서의 시간도 아깝다는 건지, 어느새 노트북을 펼쳐 들고 뭔가를 써 내려가고 있다.

“우욱.”

그러면서도 멀미 때문에 입을 틀어막고.

‘이걸 뭐라고 해야 하지.’

병x 같지만 멋있다는 말이 이럴 때 쓰는 건가,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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