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환상을 쓰겟다-118화 (118/200)

#117

통화 시간 9분 44초.

거의 한 달만의 전화였건만, 어머니는 역시 어머니였다.

‘전화는 용건만 간단히’를 온몸으로 실천하는 분이었다는 뜻이다.

“…나, 뭐한 거지.”

전화를 끊고 생각해 보니 약간 민망한 기분이 들었다. 힘들어서 전화한 것도 아니고, 그냥 좋은 일 있어서 전화한 건데 갑자기 멋대로 울컥하다니.

“…물이나 마셔야지.”

아까보단 덜하지만, 지금도 여전히 맹한 여운이 명치 언저리에 남아서 정상적인 사고를 방해하는 느낌이었다.

위이잉-

냉장고 문을 열자마자 휴대폰이 울렸다.

혹시 어머니가 다시 전화를 걸었나 싶었는데 역시나 그럴 리가 없었다. 연수의 전화였다.

메시지라면 모를까, 딱히 전화가 올 만한 일이 없었기에, 형우는 긴가민가한 기분으로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연수야, 무슨 일이야?”

“선배! 저저저저저저저! 놀라지 말고 잘 들어요!”

놀란 건 누가 봐도 저쪽이었지만, 일단은 알았다고 했다.

“무슨 일인데 그래?”

“저 오늘 네, 네이비 시리즈에서 편지가 왔거든요? 근데 이게 뭐냐면요, 글쎄! 네이비 올해의 웹소설 어워드 초청장이에요!”

“그거 너도 받았구나. 나도 방금 받았어.”

“선배도요?”

연수의 목소리에 놀란 감이 역력했다.

“그러면 저희 스패로우 팩토리에서만 두 명이 초청된 거네요?”

“으음, 아마 잘은 모르지만, 천우희 작가님도 초대받지 않았을까?”

자신과 연수가 초대받았다면 아마 확실할 것이다.

그렇게 본다면 스패로우 팩토리는 보유 작가 여섯 명 중 절반이 네이비 웹소설 어워드에 초청받은 셈이 되는 셈인데.

“편집자님이 신나서 춤을 추시겠는걸.”

“저는 지금도 춤추고 있어요!”

연수가 씩씩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아, 편집부 하니까 생각난 건데. 이번에 저희 새로 들어온 작가님 있잖아요.”

“안띵 작가님이랑 정진욱 작가님?”

“아뇨, 그분들 말고. 타타룬 작가요.”

“타타룬이면 김정수? 걔가 왜?”

뜬금없이 튀어나온 이름에, 형우의 미간이 살짝 좁혀졌다.

저번 주, 정수를 만난 형우는 초면임에도 불구하고 무자비하게 팩트를 꽂아 넣었었다.

실력도 없으면서 자존심만 세워대며 독자를 무시하는 모습이 영 보기 좋지 않아서였다.

그 행동을 후회하는 건 아니지만, 아예 신경이 쓰이지 않는다면 그것도 거짓말이다.

“…혹시 소설 쓰는 거 그만두기라도 했대?”

“아뇨, 소설 쓰는 걸 그만두지는 않았는데….”

잠시 망설이던 연수가 조곤조곤 이야기했다.

“학교를 그만뒀다는데요?”

“…뭐라고?”

망할 사춘기 몬스터 같으니라고.

“화끈하기도 하네.”

생각지도 못한 상황에, 형우가 미간을 쓱 문질렀다.

* * *

언어 영역 3등급.

수리 영역 7등급.

외국어 영역 6등급.

탐구 영역과 제2외국어 영역, 평균 5등급.

“괜찮아.”

집과 적당히 거리를 둔 한 찜질방.

그 처참한 성적표를 바라보며, 김정수는 조용히 되뇌었다.

“괜찮다고….”

며칠 전부터, 정수는 집 대신 이 찜질방에서 머물고 있었다. 학교는 당연히 안 갔다.

예전부터 학교를 그만두고 싶다는 생각은 늘 갖고 있었지만, 진짜로 자신을 그만두게 만든 기폭제는 단연코 머리가 반쯤 벗겨진 담탱이었다.

“수업 시간 내내 집중 안 하고 딴짓만 하더니, 역시 성적이 개판이구나. 너도 내년이면 고등학교 3학년인데 어쩌려고 그러니?”

하지만 정수는 그 말을 듣고 있지 않았다.

탈모로 벗겨진 머리카락, 가계부나 주식 따위를 보며 투덜거리다가 툭 튀어나온 입.

꿈을 포기하고 현실에 안주해버린 추레한 어른이, 자신에게 훈계하는 것이 얼마나 가당찮던지.

“됐어요, 그러면.”

그렇게 말하고서는, 그대로 학교를 뛰쳐나왔다.

어차피 공부 따위는 처음부터 소질이 없었다.

공부 같은 것보다 소설이 훨씬 더 손에 잡기 쉽다. 게다가, 뼈 빠지게 공부해서 좋은 대학을 가고 공무원이 되어 봐야 손에 쥐는 초봉은 200만 원 남짓이라고 들었다.

그에 비해 소설은 훨씬 쉽다. <해리 포터>까지 갈 필요도 없다. 플랫폼 1위 작품 정도만 해도 월에 천 정도는 우습게 벌어들이는 직업 아닌가.

그래서 학교를 그만뒀다.

정확히 그만둔 건 아니고, 그냥 집을 뛰쳐나와서 학교를 안 가고 있었다. 그러다가 결석이 쌓이면 적당히 중퇴 처리가 될 테다.

타다다닥-

물론 자퇴해서 놀고만 있던 것은 아니다. 자신은 다른 자퇴생과 다르다 믿었다.

오토바이를 끌고 다니며 담배를 피우고 싶어서 학교를 안 나오는 날라리들과도 달랐고, 교우관계가 두려워 문을 닫고 세상과 단절된 히키코모리들과도 달랐다.

꿈을 위해서니까.

“이번 소설은 분명 성공한다.”

앞선 두 작품을 말아먹은 뒤, 새로 쓰는 세 번째 정통판타지는 왠지 성공할 느낌이 들었다.

그래서 정수는 시간 가는 줄도 모르고, 찜질방 미역국에 계란을 씹으며 노트북을 두드렸다.

“한 50만 원 정도 남았네.”

찜질방이 하루에 8천 원이고, 식비로 하루에 오천 원 정도를 쓴다고 계산하면… 대충 한 달 정도는 버틸 수 있을 테다.

“그 사이에 소설로 성공하면 돼.”

분명히 가능할 거라는 확신이 차올랐다.

“열심히 하자, 아자아자!”

그렇게 생각하며 눈에 불을 켜고 노트북을 두드리고 있는데, 옆에서 누군가 정수를 톡 쳤다.

정수 또래의 여자아이였다.

“저기요, 콘센트 언제까지 혼자 쓸 거예요? 저 휴대폰 충전해야 하는데.”

“휴대폰이요?”

지금 자신은 꿈을 위해 노력하고 있는데, 고작해야 휴대폰 때문에 비켜달라고? 정수의 두 눈에 쌍심지가 돋았다.

돋기만 했다.

“…쓰세요. 대신 두 시간 후엔 주셔야 해요. 노트북이 두 시간밖에 안 가서.”

“네에.”

그렇게 콘센트를 차지한 여자아이는 자신의 또래들과 시끌벅적하게 떠들었다.

그리고 두 시간 후,

“저기요, 콘센트….”

“어, 저 아직 충전이 덜 돼서….”

그야 당연하지! 두 시간 내내 휴대폰으로 뭔가를 분주하게 하는데, 충전이 될 리가 없잖아?

그렇게 따지려고 했는데.

“네, 알겠습니다. 조금 있다가 꼭 주세요.”

그렇게 말할 수밖에 없었다. 정수는 꿈을 위해 노력하는 청년이었지만, 동시에 기 센 여자 앞에서는 말을 잘 못하는 숙맥이었으니까.

[배고파요, 전원을 충전해 주세요.]라고 노트북이 말했다.

“나도 배고파.”

성장기인 정수가 하루에 오천 원으로 끼니를 해결하는 건 정말 힘든 일이었다.

미역국은 물렸고, 달걀은 너무 많이 먹어서 입에서 닭똥 냄새가 나는 느낌이었다.

꼬르륵 소리가 너무 심했다.

“그래, 오늘만 좀 배부르게 먹자.”

그렇게 생각한 정수는, 그대로 찜질방 가판대에서 컵라면과 어묵을 시켰다.

컵라면은 싸고 양이 많고, 어묵은 작은 거 하나를 시키면 배 터지게 국물을 먹을 수 있었다.

핫바와 떡볶이도 먹고 싶었지만, 일단은 자제했다.

“9천 원이요.”

하루 숙박비에 맞먹는 금액이었지만, 지금은 먹는 게 먼저였다.

“잠시만요.”

그대로 주머니를 뒤적거리는데, 잡히는 게 없었다.

“어라?”

정수의 표정이 낭패감으로 물들었다. 그 모습을 본 매점 아줌마가 쯧쯧, 혀를 찼다.

“소매치기당했네. 이런 데에서는 조심해야죠. 찜질방에는 CCTV도 잘 없는데.”

“아니, 그게 그럴 리가….”

그렇게 한참을 뒤적거리는 순간, 누군가가 정수의 옆을 쓱 하고 지나갔다.

“이걸로 계산해 주세요.”

그렇게 말하며, 매점 아줌마에게 카드를 내미는 남자는 정수가 이미 알고 있는 사람이었다.

“참새치 작가님?”

“어.”

놀란 정수를 보며 형우가 고개를 끄덕거렸다.

하고 싶은 말은 꽤나 많았지만.

“일단은 밥부터 먹자. 이거면 충분해? 아니면 더 시킬래?”

“필요 없어요. 이것도….”

라고 말하는 순간, 배에서 꼬르륵 소리가 벼락처럼 울렸다.

“…떡볶이 2인분이랑 순대랑, 또 핫바도 주세요. 오뎅도 주시고.”

형우가 메뉴를 이것저것 더 추가했다.

* * *

“호오, 선배. 이분이 타타룬 작가예요?”

“맞아, 이름은 김정수고.”

형우가 허겁지겁 떡볶이를 먹는 정수를 바라봤다.

자존심이 아무리 급해도 식욕은 못 이기는 건가. 처음에는 절대로 안 먹을 것처럼 굴더니만, 한 번 이쑤시개를 대기 시작하더니 와구와구 잘도 먹었다.

“정수야, 이쪽은 서연수, 내 후배야.”

“아아요, 으, 영앙앙 에에에….”

“다 먹고 말해라.”

꿀꺽, 콜라와 함께 떡볶이를 밀어 넣은 정수가 캑캑거렸다.

“알아요, <멸망한 세계의 무도가> 쓰신 분이잖아요. 맞죠!”

“맞아요! 제 작품 아세요?”

“제목 정도는 알아요.”

또 버릇이 도진 모양이다.

“초반부는 흥미로웠는데, 중반부 넘어가서는 뭐랄까, 흡입력이 떨어져서 그만 읽었어요. 만약 저였다면 갈등 부분에서… 아얏!”

형우가 재빨리 정수의 귀를 잡아당겼다.

폭력을 쓰려던 건 아니고, 녀석을 구해주려고 그런 거다. 당긴 귀에 그대로 속닥거렸다.

“연수는 중학교 때까지만 해도 격투기 선수였어. 남자 다섯이랑 싸워도 이긴다고. 그러니까 말조심하는 게 좋을 거야.”

허억 하고 정수가 끄덕거렸다.

천방지축인 녀석도 격투기 선수가 무섭다는 건 알고 있는 모양이다.

“…그나저나, 여기는 어떻게 알고 왔어요?”

“네가 알려줬잖아. 출판사에 주소 남겨 놨던데.”

“어어.”

정수가 머리를 긁적거렸다.

“그거 출판사 관계자 말고는 못 보는 거라고 했는데, 이거 불법 아니에요?”

“불법은 무슨. 내가 그냥 작가인 줄 아냐? 나 스패로우 팩토리 공동대표야.”

“진짜요?”

녀석이 불신 가득한 눈빛으로 바라봤다.

“형우 선배 공동대표 맞아요.”

연수가 옆에서 거들었다.

지금까지 명함뿐이던 ‘공동대표’라는 직책이 이럴 때는 도움이 됐다.

“그나저나, 학교는 대체 왜 안 나가는 거야?”

“다닐 필요가 없어서요.”

정수가 대답했다.

“생각해 봤는데, 학교는 방해만 돼요. 그냥 소설에 집중하려고요.”

“그래?”

형우가 물었다.

“그래서 그 집중해서 쓴다는 소설은 잘 되어 가? 내가 듣기로는 아닌 것 같은데.”

이곳에 오기 전, 형우는 정수가 새로 연재하는 정통판타지 소설을 읽고 왔다.

한마디로 요약하자면, 더럽게 재미가 없었다.

설정은 진부하고, 주인공은 쓸데없이 결의에 차 있었으며, 내용은 어디서 본 것 같았다.

“진짜 궁금해서 물어보는 건데 정수야. 소설가가 되고 싶어?”

“…네.”

정수가 고개를 끄덕거렸다.

고분고분 따르지 않으면, 떡볶이를 도로 빼앗아 갈까 봐 무서웠기 때문이다.

형우는 그런 정수를 정면에서 바라봤다.

“그런데 말야, 너처럼 하면 소설가가 될 수가 없어.”

수포자라는 말이 있다.

수학 포기자라는 뜻인데, 난이도가 높은 수학 과목을 극복하지 못하고 문과로 달아나는 학생들을 말한다.

그런 학생들을 볼 때마다, 모든 사람들은 입을 모아서 말한다. ‘문과는 도피처가 아니다.’라고. 그 말은 언제나 옳다.

물론 스스로 ‘나는 수포자라 문과에 왔어.’라고 말하는 사람은 드물다. 대부분은 ‘문과 쪽에 꿈이 있어서.’라고 이야기한다.

하지만 누구라도 조금만 유심히 관찰해 본다면 수학이 싫어서 문과로 온 아이들과 진짜 문과 쪽 진로에 꿈을 가지고 노력하는 아이들을 구분해 낼 수 있다.

수포자들은 절대 수학을 건들지 않으니까.

“그리고 너는 따지자면 공부 포기자. 그러니까 공포자지.”

차라리, 정말로 소설이 좋아서 공부를 포기한 거면 나았을 테지만, 형우는 ‘소설을 좋아한다’라는 정수의 말을 처음부터 믿지 않았다.

진짜 글 쓰는 게 재밌었으면, 자신의 글을 도와줄 수 있는 누군가를 만났을 때 자존심을 챙기기보다는 먼저 도움을 요청했을 테니까.

그야말로, 열등감에서 벗어나기 위해 ‘꿈’이니 ‘소설’이니 하는 허상을 좇는 짓이라는 거다.

“너는 소설을 쓰고 싶은 게 아냐. 공부가 하기 싫은 거지.”

그런 식으로 소설을 쓰고 있으니, 겉핥기식으로 빙빙 도는 것은 당연하다.

“아익…!”

그렇게 팩트를 맞은 정수는

타다닥-!

그대로 고개를 돌려 달아났다.

“어어, 어? 어디 가!”

연수가 그런 정수의 뒤를 쫓아 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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