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환상을 쓰겟다-117화 (117/200)

#116

같은 시간, 스패로우 팩토리.

사무실의 한가운데서는 오디오북 성우의 똑 부러진 음색이 흘러나왔다.

지원과 혜선은 그 앞에서 ‘달이 빛나는 서재’ 사이트를 연신 흥미롭게 분석하고 있었다.

“흐음, 몇 번을 봐도 달이 빛나는 서재의 BM(business model)은 진짜 특이하네요.”

“맞아요, 혜선 씨. 저도 공감해요.”

며칠 사이 얼굴이 홀쭉해진 지원이 힘겹게 고개를 끄덕였다. 지난 몇 주간 이번 계약을 위해 눈코 뜰 새 없이 뛰어다닌 탓이다.

“판권 문제라는 게, 조금만 잘못되어 있어도 바로 일이 터져버리니까요.”

웹소설 플랫폼과 오디오북 플랫폼, 거기에 출판사와 작가까지. 총 4곳의 계약주체가 얽힌 거미줄 같은 이중, 삼중 계약이었다.

진짜 몇 번이고 비틀리려는 것을, 달에 가는 아폴로 비행사의 심정으로 수정하고 또 수정했다.

그렇게 완성된 오디오북을 듣고 있자니, 감정이 복받쳐 눈물을 흘릴 뻔했다.

“살도 빠지고 재정은 부르고. 일석이조네요.”

지원이 말했다.

“끝이 좋으면 다 좋은 거니까. 그렇죠, 혜선 씨?”

“아니에요.”

혜선이 고개를 저었다.

“다 좋아서 끝도 좋은 거예요.”

“어라.”

또 엉뚱한 소리로 초를 치나 했는데, 의외였다.

“어쩐 일로 좋은 말을 해 주네요.”

“좋은 말을 들을 만큼 고생하셨잖아요. 사장님.”

“으흥.”

지원이 조금 더 해 봐라! 라는 표정으로 혜선을 바라봤다.

혜선이 홱 하고 고개를 돌렸다.

‘끄응….’

왠지 모를 패배감에 지원이 머리를 긁적거렸다. 그 사이, 혜선이 자료 몇 가지를 들고 왔다.

“아까 말하던 달이 빛나는 서재의 BM 이야기 말인데요.”

지원의 시선이 혜선이 준 자료로 향했다.

작품의 퀄리티를 우선으로 보던 형우 쪽과는 꽤 다른 시선이었다. 형우는 아티스트였고, 지원과 혜선은 사업가였으니 당연한 일이다.

“진짜 보면 볼수록 감탄밖에 안 나오더라고요. 거의 일석이조, 아니 일석삼조랄까?”

돌 한 마리로 잡은 세 마리 새의 이름은 각각 효율, 교육, 수익이다.

원래 한가하던 방송사의 잉여 인력을 오디오북 쪽으로 돌렸으니 효율적이고, 그들의 실력을 향상시키는 기회가 되니 교육적이고, 그 행위를 통해 돈을 버니 수익적이다.

“이건 우리도 한 수 배워야 되겠는데요.”

지원의 말에, 혜선이 고개를 끄덕였다.

다른 부분보다도 교육과 수익을 연결 짓는다는 아이디어가 가장 놀라웠다.

‘직원교육은 미래를 위한 투자’라는 고정관념을 깨고 오히려 교육을 통해 돈을 벌어들인다. 이 정도 부가가치 사업이면 ‘적자만 안 나도 이득’이라고 할 만한데, 심지어 달이 빛나는 서재는 예상보다 더한 수익을 벌어들이고 있었다.

그 BM이 담고 있는 지향점과 비전, 그리고 수익구조에 대해 면밀한 분석을 일단락 지은 후에서야, 혜선과 지원은 다른 이야기로 넘어갔다.

“오디오북으로 떴으니, 저희 출판사에도 영향이 있겠죠?”

지원의 질문에 혜선이 가방을 뒤적거렸다.

“미리 조사해 놨죠, 사장님. 오디오북 런칭 이후 독자 변동량입니다.”

가방 안에서 나온 건 태블릿 PC. 입사 기념으로 큰맘 먹고 하나 장만한 녀석인데, 애플에서 나온 것 중에서도 제일 비싼 300만 원 짜리 모델이다.

딱히 필요하다기보단 기분 때문에 샀다. 비싼 기기를 쓰면 돈이 잘 들어온다는 느낌. 누군가는 미신 취급하지만, 의외로 일을 하다 보면 미신이나 징크스 같은 것도 신경이 쓰이기 마련이니까.

“보시면 아시겠지만, 일단 신규 독자 유입량이 굉장히 늘어났어요. 여기서 조금 더 신경 써야 할 점은 독자들의 나이대가 30, 40대라는 거죠.”

30대와 40대. 소위 말하는 ‘경제 인구’다.

자동차를 이용해 출퇴근하는 인구들, 소위 말해서 돈에 여유가 있는 큰손들이다.

유입 경로는 아마도, 운전 중에 들었던 오디오북일 테다.

“큰손들에게 호감을 쌓는 건 언제나 좋죠.”

웹소설을 좋아하는 직장인들은 한 달에 30만, 40만 원어치 소설을 읽기도 한다. 10대 20대에게는 큰돈이지만, 30, 40대에게는 기꺼이 취미에 투자할 만한 금액이므로.

혜선은 여기서 멈추지 않고, 태블릿 PC를 두 번 톡톡, 클릭했다. 수많은 그래프들이 등장했다. 그 정체는 혜선이 나름의 방법으로 예상한 독자들의 예상 구매력이었다.

“지금까지 독자들의 평균 구매력은 한 달에 1만 7천 정도였어요. 하지만 이번 1주일간 유입된 독자들의 구매력은 그 네 배 정도인 6만 2천 원이네요.”

예상치일 뿐이지만, 네 배라는 숫자는 오차를 감안하고서라도 상당히 높은 수치다.

“이 정도로 헤비한 독자들이라면 웹소설에 도가 튼 사람들이라 사소한 문제점도 쉽게 찾아낼 거예요. 고증에 조금 더 신경을 쓰는 편이 좋겠다고 작가님에게 미리 말해 둬야겠어요.”

뒤이은 글쓰기 전략 수집도 수준급이다.

“오히려 한두 작품만 읽는 라이트 독자님들보다, 많은 작품을 읽으시는 헤비 독자님들의 이탈률이 더 높을 때도 있으니까요.”

아이돌을 하나밖에 모르는 사람은 죽으나 사나 그 아이돌만 좋아하지만, 많은 그룹을 알고 있는 사람은 언제든지 환승을 할 수 있다.

“그러니까 지금보다 훨씬 더 견고하게 글을 만들어야 한다는 거죠.”

이야기를 듣던 지원이 눈을 빛냈다.

소설을 보는 ‘편집자’로서 이야기하자면, 당연히 혜선보다는 자신이 낫다. 하지만 시장에 대한 분석 능력은 확실하게 혜선이 훨씬 나았다.

이전에 사업을 했던 경험 덕분이었다.

대기업의 직원과 중소기업의 오너. 당연히 그 사이에서는 전문성의 차이가 생길 수밖에 없다.

급하게 구한 직원이 꼭 필요한 인재였다니, 예상치도 못한 행운이었다.

“그래서 이러한 독자 추이와 구매력 변화로 예상해 볼 때, 근 2주 내로 프로모션을 한 번 준비하는 것이….”

그 행운에 감사하며, 지원은 그 말 한마디 한마디를 모두 받아적었다.

그녀의 말에는 근거가 있었고, 자료에 기반하고 있었으며, 알아듣기가 쉬웠다.

‘강남에서 학원을 차렸어도 잘했겠는걸.’

지원은 임진왜란의 선조가 아니라 후삼국 시대의 유비에 더 가까웠다.

다재다능한 부하직원에게, 시기와 질투가 아닌 끝없는 자부심을 느꼈다는 것이다.

* * *

“응, 알았어.”

편집부로부터 혜선의 충고를 전해 들은 후, 형우는 다시 노트북 앞에 앉았다.

‘고증에 조금 더 신경을 쓰라고 했지.’

지금까지 묘사 3, 설명 7 정도의 비율을 유지했으니, 묘사를 조금 더 줄이는 쪽으로 가면 될 듯싶었다.

그렇게 한참을 타닥거리며 집필에 집중하고 있던 중,

“택배요!”

하는 소리가 들리기에, 형우는 문을 열어 줬다.

“김형우 님 맞으시죠?”

택배원이 묻자, 형우가 고개를 끄덕였다. 재빨리 싸인을 해 준 뒤, 택배를 받아들고 들어왔다.

“최근에 뭐 시킨 게 없는데… 출판사에서 보냈나?”

처음엔 출판사에서 오디오북을 기념해서 선물이라도 보냈나 했는데, 아니었다.

“시리즈에서 보낸 거잖아?”

출판사가 아니라, 플랫폼에서 보낸 거였다. 지금까지 작가로 일하면서 플랫폼에서 출판사를 통하지 않고 직접 형우에게 뭔가를 보낸 적은 딱 한 번, 건강검진에 관련된 서류밖에 없었다.

“…건강검진표는 아닌 것 같은데 그러면 혹시?”

뭔가 눈치챈 형우는 즉시 봉투를 뜯었다.

올해를 빛내주신 수많은 웹소설 작가님들에게.

택배를 뜯자마자 고풍스러운 글씨가 보였다.

올해의 끝을 맞아, 작가와 독자가 함께하는 축제에 작가님을 모시고자 합니다.

올해 새롭게 네이비 시리즈에 올라온 179분의 신인 작가님들.

그리고 꾸준히 활동을 이어오신 844명의 기성 작가님들.

여러분이 있기에, 저희 플랫폼이 여기까지 발전할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의미로, 올해의 웹소설 어워드에 ‘참새치’ 작가님을 초청드립니다. 부디 참가하시어 시상식을 조금 더 밝혀 주셨으면 합니다.

역시, 웹소설 어워드 초청장이었다.

만년필로 유려하게 쓴 듯한 필체가 형우를 반겼다. 특히, 마지막 부분이 인상 깊었다.

또한, ‘참새치’ 작가님은 이번 행사의 수상 후보 중 한 명이라는 점을 미리 공지해 드립니다.

수상 후보는 최대 세 명까지 주변인들 초청이 가능합니다.

세상에.

형우가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겨울이라 그런가, 경사가 눈사태처럼 몰려왔다.

“웹소설 어워드 수상 후보라니!”

대한민국 영화계에 청룡영화제가 있고, 순문학계에 올해의 소설이 있다면, 웹소설계에는 올해의 웹소설 어워드가 있다.

플랫폼에 연재된 천여 개의 작품들 중, 최고의 작품들에게 상을 주는 거대한 이벤트라는 거다.

“…맞다, 초대할 사람.”

세 명까지 초대할 수 있다고 들었다. 형우가 어딘가로 전화를 했다.

뚜르르르, 뚜르르르, 척.

“여보세요, 형우니?”

첫 번째는 누가 뭐래도 이미 정해져 있는 거나 마찬가지였다.

“네, 엄마. 저예요.”

“꽤 오랜만에 연락하는구나.”

“죄송해요, 요즘 좀 바빠서.”

“아니, 죄송할 건 없다. 네 일 하느라 바쁜 거야 어쩔 수 없지.”

분위기가 분위기라 그런지, 왠지 모르게 울컥한 느낌이 들었다.

“그나저나 무슨 일이냐? 네가 내 목소리 듣고 싶어서 전화할 녀석은 아닌데.”

“에이, 엄마. 제가 언제 그랬어요. 제가 언제….”

별것 아닌 단순한 안부 대화였는데도 뭔가 속이 꿍하니 맺힌 듯 울컥했다.

“형우야?”

눈치 빠른 어머니가, 아들의 변화를 눈치채지 못했을 리 없었다.

“…이렇게 전화하는 것도 오랜만이구나.”

그 말에, 형우는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

전화라는 걸 아는데도.

얼굴이 보이지 않는다는 걸 아는데도.

그냥 왠지 그렇게 됐다.

“사실은 나도 너한테 전화를 할까 했다. 하고 싶은 말이 있었거든.”

“하고 싶은 말이요?”

“그래.”

형우의 어머니, 송윤아는 형우가 대학에 합격했던 순간을 떠올렸다.

‘저 법학과 합격했어요, 어, 엄마.’

윤아는 자신의 아들인 형우를 누구보다 잘 알았다. 거짓말을 할 때 왼쪽 약지를 꿈틀댄다는 것도, 잘 알았다.

그렇게 캐묻고 캐물어서, 결국 고른 전공이 문창과라는 걸 알게 됐다.

‘문창과라니, 공부도 잘하는 네가 왜 그런 데를 가? 법대는 아니어도 좋으니 차라리 다른 데를 가렴!’

그때는 소설을 쓰면 죄다 치질이나 달고 궁핍하게 사는 줄 알았다.

지금까지 윤아가 보아 온 소설가들은 모두 그랬으니까.

하지만, 누굴 닮은 건지 녀석은 완고하기 그지없었다.

‘제 갈 길은 제가 알아서 할 거예요. 엄마, 지금까지 고마웠습니다. 갚을 수 있으면 나중에 꼭 갚을게요.’

윤아는 그 마지막 인사를 받아주지 않았다.

‘형우 엄마, 형우가 그 돈도 안 되는 과 갔다며?’

‘나 참, 공부도 잘하는 놈이 어쩌다가 그런 게으름뱅이들이나 가는 곳을. 안 됐네, 안 됐어.’

시골 사람들은 종종 꽤나 직설적이다. 그런 사람들은 윤아에게 부정적인 말만 했다.

하지만, 형우를 믿는 사람도 있었다.

‘형우잖소, 뭐라도 잘할 거요.’

민준도 형우를 믿었고.

‘철호 형님이 있었어도 분명 형우를 믿었을 거요.’

죽은 아이의 아버지도 형우를 믿었다.

그리고 그 바람대로, 자신의 아들은 서울로 내려가 누구에게나 인정받는 작가가 됐다.

“생각해 보니까, 아직 네게 하지 않은 말이 있더구나.”

그때 믿는다고 말해주지 못해서 미안하다고,

그렇게 말하려는 순간.

“엄마.”

형우가 말을 끊었다.

어머니가 아들의 감정을 이해하듯, 아들 또한 어머니의 감정을 이해하고 있으니.

“저, 이번에 상 받을지도 몰라요. 웹소설 어워드라고 소설 상인데….”

그 말을 들은 윤아는, 그대로 피식 웃고 말았다.

전화라는 걸 알면서도,

얼굴이 보이지 않는다는 걸 알면서도,

그냥 그러고 싶은 기분이 들어서 그랬다.

“고생했다.”

윤아가 말했다.

“고생은 무슨, 하나도 고생 안 했어요!”

“내 앞이라고 괜한 소리 말고.”

“에이, 그냥 앉아서 글만 썼는데요, 뭘, 하나도 안 힘들어요. 그래서 말인데….”

윤아는 안다. 세상에 쉬운 일이 없다는 걸.

안심하라는 듯 호언장담하는 아들의 왼손 약지가 꿈틀하고 흔들리는 모습이 마치 눈에 보이는 듯 선했다.

그러면서도 동시에, 자신의 마음을 헤아리게 된 아들이 불쑥, 큰 것처럼 느껴졌다.

시원하면서도 섭섭한 느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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