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환상을 쓰겟다-115화 (115/200)
  • #114

    “으윽….”

    ‘타타룬’이라는 필명으로 인터넷에 글을 연재 중인 고등학교 2학년 김정수는 오늘도 기분이 별로 좋지 않았다.

    지난 한 달간 연재했던 <회귀하니 국회의원>이라는 소설이 말 그대로 폭삭 망했기 때문이다.

    “아니, 이걸 대체 왜 안 읽지? 진짜 어이가 없네.”

    열 번, 스무 번을 읽어 봐도 재밌는데 혹시나 싶어 다른 작품도 찾아봤다.

    “우와, 겁나 구려.”

    다른 작가의 작품을 읽은 감상은 참 쌈박했다.

    대부분의 현대 판타지들은 죄다 그 밥에 그 나물이었고 문장조차 똑바로 가다듬어지지 않은 것 같았다. 그나마 안띵이라는 작가가 쓰는 작품은 좀 괜찮아 보였는데, 그마저도 자신보다 잘 썼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그런데 왜, 나는 조회 수 150이고 얘네들은 조회 수가 삼천, 사천이지?”

    도저히 이해가 안 됐다. 진짜 이해가 안 됐다.

    왜 내 소설 말고, 쟤 소설을 더 좋아하지?

    다른 사람이 진짜 잘 썼으면 자신도 겸허하게 인정하겠는데, 아무리 봐도 그건 아니었다.

    “…장르를 잘못 골랐나?”

    오랫동안 고민한 결과, 그거 말고는 답이 없는 것 같았다.

    처음에는 대체 역사물을 썼고, 이번에는 현대 판타지를 썼는데, 둘 다 결과가 좋지 않았으니.

    “…맞아. 이왕 장르소설을 쓸 거면 정통판타지로 가야지.”

    이일도 작가의 <와이번 라자>나 <피눈물을 마시는 새> 같은 거.

    “아무래도 그런 게 좀 멋지지.”

    남들 앞에서 설명하기에도 그게 좀 더 낫다.

    저 현대 판타지 쓰는 작가입니다, 하면 아무도 안 알아주지만, <목걸이의 제왕> 아시죠? 제가 그런 거 씁니다. 하면 사람들이 다 알아볼 테니.

    “…정통판타지가 뭐가 있더라.”

    그렇게 중얼거리며, 정수는 주섬주섬 가방을 챙겨 도서실로 향했다.

    읽어 본 정통판타지라고 해 봐야, 사실 앞서 말한 서너 질 정도가 전부였다. 심지어 <목걸이의 제왕>은 소설도 아니고 설날 특선 영화로 봤다.

    “뭐, 지금부터 공부하면 될 거야.”

    그렇게 생각했고, 나름 근거도 있었다.

    지금으로부터 2주 전. 김정수는 무려 ‘출판계약’이라는 걸 맺었다.

    자기 또래 친구들은 기껏해야 핸드폰 약정 계약이나 맺어봤는데, 자신은 회사 대 작가로 계약을 맺게 된 것이다.

    ‘부모님이 동반하는 건 좀 마음에 안 들었지만.’

    미성년자라서 어쩔 수 없었지만, 분명 혼자서 계약했어도 잘 해냈을 터다.

    서지원이라고 했던가? 나중에 알아보니 TV랑 라디오에도 나오는 꽤 유명한 편집자였다.

    그런 편집자가 자신을 보고 ‘미래가 기대된다.’라고 했으니, 정수의 마음이 달떠오는 것도 당연한 일이리라.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니야. 자료를 수집해야지. 김정수, 자료 수집해!”

    그렇게 자신의 뺨을 짝하고 때린 정수는 곧바로 노트북 앞에 매달렸다.

    “나는 천재니까, 어떻게든 될 거야.”

    그렇게 되뇌면서.

    * * *

    “정통판타지니까 일단 기사가 나와야겠지.”

    그렇게 생각하며, 트리위키에 ‘중세 기사’라고 쳤다.

    온 세상의 지식이 그곳에 다 있었다.

    “그리고 또 뭐더라, …그래, 마법도 나와야지.”

    인터넷에 또 ‘마법’이라고 쳤다.

    1서클부터 9서클 운운하는 서클 마법식은 너무 한국식이다. 별로 예뻐 보이지도 않는다.

    “좀 더 있어 보이는 게….”

    그렇게 한참을 뒤지다가, <중세 오컬트의 4원소론과 아스트랄>이라는 꽤 있어 보이는 자료를 발견했다.

    잘 이해는 안 됐지만, 서클 마법진보다는 오컬트적인 4원소론이 더 있어 보여서 일단 캡처했다.

    “후훗.”

    저절로 웃음이 피식피식 새어 나왔다.

    ‘나는 남들과 다르다!’

    이번 작품은 무조건 성공이다! 그런 예감이 스멀스멀 기어 올라왔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순간, 띵동 하는 소리가 들렸다.

    “잠시만요!”

    택배라도 왔나 싶어 문을 열었다.

    자신보다 딱 10살 정도 많아 보이는 남자가 그곳에 서 있었다.

    “타타룬 작가님 맞으시죠?”

    “제 필명은 어떻게… 아, 혹시 참새치 작가님?”

    며칠 전, 정수는 출판사로부터 참새치 작가가 자신을 만나고 싶어 한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들어오세요.”

    정수의 말에, 형우가 고개를 끄덕이며 천천히 아파트 안으로 들어왔다.

    부모님과 함께 사는 평범한 20평대 아파트였다.

    “제 방은 이쪽이에요. 헤헤, 부모님은 지금 없고요.”

    형우를 바라보는 정수의 입꼬리는 그대로 하늘 높이 날아갈 지경이었다.

    ‘진짜 참새치잖아!’

    참새치가 누군가, 올해 혜성같이 등장해서 두 작품을 연이어 대박을 터트린 작가가 아닌가.

    심지어 이번 신작인 <아이언 타이거>는 웹소설계 뿐만이 아니라 문단계에도 집중하고 있다고 들었다.

    다른 웹소설 작가들을 반쯤 무시하는 정수조차 참새치만큼은 인정할 정도였으니.

    “헤헤, 작가님 라디오에서도 봤어요. 달이 빛나는 밤이요.”

    “아, 정말요?”

    “네! 라디오에서 본 거랑 똑같이 생기셨어요!”

    “…저니까요.”

    “그러네, 맞네요. 히히.”

    정수가 머리를 긁적거렸다.

    “아무튼, 그래도 작가님 봐서 진짜 영광이에요. 말은 편하게 하셔도 돼요!”

    “그럴까?”

    “네! 저도 그게 더 편해요. 그나저나, 오늘 저 보고 싶다고 하셨다는데. 왜 그런지 여쭤봐도 될까요?”

    물론, 정수는 대답을 이미 알고 있었다.

    유유상종, 초록동색이라는 말이 있다.

    다른 사람은 모르지만, 대박 작가인 김형우는 알아차리고 만 것이다. 자신이 엄청나게 대단한 작가가 될 소질이 충분하다는 것을.

    미래의 동업자, 혹은 라이벌을 만나고자 이곳까지 찾아온 것이리라.

    “아, 네 소설 보고 찾아왔어.”

    역시! 정수가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솔직히 입으로도 쾌재를 부르고 싶었지만, 그건 역시 폼이 살지 않는다. 올라가는 입꼬리를 겨우겨우 억누르며, 쿨한 듯이 고개를 끄덕거렸다.

    “흐음, 제 소설이라… 반응은 별로 안 좋지만 저는 잘 썼다고 생각해요.”

    “…응?”

    너무나도 이상한 말에 형우가 눈썹을 꿈틀거렸다. 반응은 별로 안 좋지만 잘 쓴 작품이라니?

    술은 마셨지만, 음주운전은 안 했다는 것과 마찬가지로 자가당착인 말이 아닌가.

    “그럴 수가 있어?”

    혹시 잘못 들었나 싶어 되물은 건데, 정수는 그 말을 ‘독자들이 네 소설을 안 좋아한다고? 그럴 리가!’라는 의미로 받아들였다.

    “그러니까요. 제 딴엔 진짜 잘 썼는데 인기가 없더라고요. 뭐, 참새치 작가님은 제 소설의 진가를 파악하신 것 같지만.”

    “…진가?”

    “네, 그러니까 저 찾아오신 거잖아요.”

    “…….”

    형우는 잠깐 고민했다.

    소설의 진가? 뭐, 그런 말을 쓸 수 있긴 했다.

    그 값이 터무니없이 낮은 게 문제였지만.

    “정수야. 너는 네가 소설을 잘 쓴다고 생각해? 정말로?”

    철컹하는 소리가 여기저기서 들렸다.

    첫 번째는 정수가 깜짝 놀라 자신의 휴대폰을 떨어트리는 소리였고, 두 번째는 정수의 머릿속에서 환상 몇 개에 금이 가는 소리였고, 세 번째는,

    “나는 말야, 네 소설이 진짜 별로라서 구제해주려고 온 거야.”

    기다란 총신에 팩트가 장전되는 소리였다.

    * * *

    형우는 천천히 눈동자를 굴렸다.

    평소라면 소설을 봤겠지만, 오늘은 작가를 바라봤다.

    “왜, 왜 그렇게 봐요?”

    그런 형우의 시선이 좀 부담스러웠는지, 정수는 몸을 뒤척여 시선을 살살 피했다.

    아마도, 방금 들었던 말이 상당히 충격적이었던 모양이었다.

    “제 소설이 별로라고 했죠?”

    “응.”

    형우는 1초도 망설이지 않고 고개를 끄덕거렸다.

    세상의 모든 것은 기본과 심화로 나누어져 있다. 소설 또한 마찬가지다.

    기술적인 것이 기본이고, 감성적인 것이 심화적인 영역이다.

    “나는 솔직히 그 두 가지를 다 잘 봐.”

    소설의 분석은 예전부터 잘했고, C&N 공모전 사태를 겪으면서 심미안도 길렀다.

    “그리고 넌, 두 부분이 모두 다 부족하고.”

    얼핏 들으면 싸가지 없어 보이는 말이었지만, 그것도 화자가 누군지에 따라 느낌이 다르다. 그리고 형우는 자신의 위치를 꽤 객관적으로 알았다.

    적어도, 자신이 이룬 것들은 글을 배우고자 하는 누군가에게 이 정도 어필을 할 정도는 됐다.

    “만약, 나한테 배우고 싶다면 내가 도와줄 수 있어.”

    형우가 정수를 바라보며 말했다.

    하지만, 정작 그 대상인 정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딱히 설득하지는 않았다.

    “음….”

    대답이 돌아오지 않는다는 걸 알자마자, 형우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앉은 지 고작해야 10분 만이었다.

    “간다.”

    정수는 일어나는 형우를 멀뚱히 쳐다보기만 했다. 아무 이유 없는 행동은 아닐 것이다. 초면부터 ‘네 소설은 참 별로야.’로 운을 뗐으니, 꽁해 있을 만도 했다.

    한창 자존심이 넘칠 학생 시절이라면 더욱.

    하지만 그런 녀석조차도 형우가 진짜 여기까지 와서 그냥 갈 것이라고는 생각지 못한 모양이다. 조금 당황했다는 듯,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하지만 아직까지도 도와달라거나, 배우고 싶다거나 하는 이야기는 나오지 않았다.

    형우 또한 저렇게 자존심을 세우는 녀석한테까지 굳이 뭘 억지로 가르치고 싶지는 않았다. 지금까지 약간 억지로라도 누군가를 가르쳤던 것은 연수 정도밖에 없었다.

    솔직히 말하자면 연수라서 그렇게 한 거다.

    연수만큼은 아니었겠지만, 그때 형우도 꽤 마음고생을 많이 했다. 오지랖은 일 년에 한두 번이면 족하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자리에서 일어나, 문 쪽으로 걸어 나갔다. 이제 아마 그대로 밖으로 나가서 지원에게 전화를 하면 그만일 테다.

    예. 타타룬 작가님 만나 봤는데요. 제가 보기에는 영 의욕 없던데요? 그냥 다른 작가랑 계약하는 게 낫겠어요. 그 정도 내용이겠지.

    그렇게, 문고리를 잡으려는 순간.

    “……잠시만요.”

    그때까지 입술을 씹던 정수가 입을 열었다.

    여전히 뭔가 마음에 안 든다는, 자존심이 상한다는 표정이었지만. 그 정도는 봐줄 수 있다.

    “대체 왜 오신 거예요?”

    녀석이 목소리를 깔고 물었다. 제 딴에는 분위기를 잡은 것 같았는데.

    “아까 말했잖아. 너 도와주러 왔다고.”

    당연히 씨알도 안 먹혔다.

    단순히 형우가 나이가 더 많아서는 아니고, 굴러온 시간들의 차이다.

    “목소리 그렇게 하면 가래 끓지 않냐?”

    천우희, 정진욱같이 기 센 작가들에 공판석, C&N 같은 능글맞은 사람들을 몇 명을 상대했는데.

    고작 분위기 잡은 고등학생한테 쫄기에는 너무 많이 와 버렸다는 말이다.

    “…도와주러 온 사람이 다짜고짜 소설부터 욕하고 시작해요?”

    다행히 생각만큼 멍청한 놈은 아니었다.

    분위기 잡는 게 안 통한다는 걸 알자마자, 바로 감정에 호소하는 쪽으로 전략을 바꿨다.

    “병원이라고 생각해. 의사도 일단 병명부터 말하고 시작하잖아?”

    “…작가님이 의사는 아니잖아요.”

    “의사가 사람 몸 아는 만큼, 소설에 대해 안다고 자부할 정도는 될걸?”

    “정말 그럴까요?”

    녀석이 되물었다.

    궁금해서 되물었다기보단, 믿을 수 없다는 쪽 느낌에 더 가깝다.

    마치 대체 무슨 근거로 그렇게 말하느냐고 묻는 것 같다. 아마도 자기 소설을 낮게 평가한 것에 대한 앙금이겠지.

    “자존심 때문에 그러는 거야?”

    그 모습이 참으로 앙증맞아서 웃음이 나왔다.

    “허허, 이거 웃기네.”

    농담이 아니라, 진짜 웃음이 나왔다. 정수가 눈살을 찌푸렸다.

    “뭐가 웃겨요?”

    녀석의 질문에, 형우가 대답했다.

    “가끔 사람들은 자기한테 없는 게 있다고 착각한단 말야. 뭐, 귀엽게 넘어가 줄게. 어린아이뿐만 아니라 어른도 가끔은 그런 착각을 하더라고.”

    형우는 지금 자존심이라는 것에 대해 말하고 있었다. 물론, 쥐뿔도 없는 사람이라고 해서 자존심을 부리면 안 된다는 뜻은 아니다.

    “하지만 적어도 도와주겠다고 온 사람한테 그러는 건 좀 아니지 않아?”

    남의 도움을 받지 않겠다.

    비판은 수용하지 않는다.

    그건 자존심이 아니라, 오기가 아닌가.

    “왜 깠냐고 물었잖아?”

    “그렇죠.”

    “그러면 너는, 다른 작가들은 서로 칭찬만 한다고 생각했어?”

    형우가 팩트를 때려 박았다.

    “김 작가님 작품 좋아요, 하하, 박 작가님 작품도요. 작품에 대해 논할 때 그렇게 말하는 사람은 별로 없어. 특히, 그 작품이 별로일 경우에는 더더욱.”

    문창과의 수업 시간에서도, 작가가 된 후에 받은 수많은 감평들도.

    상대가 상처 입을까 생각해서 봐주기식으로 정도를 약하게 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내가 만나본 작가란 생물은 지금 자신의 자존심이 꺾이는 것보다 내일의 글이 더 좋아지는 걸 바라는 사람이니까.”

    직설적인 말에 정수의 표정이 까매졌다.

    “그 말은, 저한테는 작가의 자격이 없다는 거예요?”

    “아니.”

    형우가 고개를 저었다. 전 세계 모든 작가들을 다 만나본 건 아니니, 그렇게 말할 수는 없을 테다. 애초에 그런 거창한 걸 말하려고 한 것도 아니고.

    전하고자 하는 것은 그보다 훨씬 간단했다.

    “내가 널 가르치고 싶지 않다고 말하는 거다.”

    객기와 자존심도 구분하지 못하는 사춘기라니.

    규격 외의 생물이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