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환상을 쓰겟다-114화 (114/200)
  • #113

    오디오북 외에도, 스패로우 팩토리의 경사는 몇 가지 더 있었다.

    일단, 최근 스패로우 팩토리는 세 명의 작가들과 소설 계약을 맺었다.

    “안재욱 작가님, 그러니까 안띵 작가님은 역시 가장 잘하는 걸 쓰셨네요. 현대 판타지요.”

    이번에 새로 플랫폼에 들어온 안재욱의 소설을 보며, 형우가 고개를 끄덕거렸다.

    보험설계사를 주인공으로 한 전작에 이어, 이번 작품은 제약회사 연구원을 주인공으로 했다.

    전염병이 창궐하여 인류의 30%가 절멸하고 자신의 여동생까지 잃은 공대생이 우연한 계기로 10년 전으로 돌아가 여동생을 구해낸다는 내용인데, 살짝 오버스러운 설정처럼 보임에도 불구하고 그 내용이 상당히 자연스러웠다.

    그 점을 배우고 싶어서, 형우는 직접 안재욱을 만나서 물어봤다.

    “스페인의 콩키스타도르가 남미 대륙에 갔을 때, 그들이 갖고 간 전염병 때문에 죽은 인구가 그 정도 된다고 해요. 그 사료를 참고했죠.”

    “과연, 왠지 현실감이 넘치더라니, 현실을 베이스로 써서 그런 거였군요.”

    “흐흐, 평소에 역사에 관심이 많았거든요.”

    형우가 생각하기에, 소설은 너무 상상으로만 써도 안 되고 너무 현실적으로 써서도 안 된다.

    상상으로만 쓰면 어이가 없고, 현실적으로만 쓰면 재미가 없어지기 일쑤니 말이다.

    그런 의미에서 안띵 작가의 소설은 그 두 영역의 밸런스를 절묘하게 잘 맞춘 느낌이었다.

    “정진욱 작가님 작품은 읽어 보셨어요?”

    “아, 네. 그랬죠.”

    “사람이 좀 변한 느낌이던데.”

    고려호텔에서 봤을 때만 해도 열등감에 찌들어 있는 성공한 루저 그 자체였는데, 최근 계약을 위해 찾은 스패로우 팩토리에서 만나서 대화해 본 정진욱은 뭔가 다른 느낌이 들었다.

    “뭐랄까, 철이 들었다고 해야 할까요? 그 나이 먹은 사람한테 이런 말 하기도 뭐 하지만.”

    “철이요?”

    “고생하면 철든다고 하잖아요.”

    “흐음, 고생을 시키기는 했죠.”

    형우는 안재욱에게 정진욱과 있었던 일을 모두 이야기해 줬다.

    500시간의 노동을 시킨 일.

    그 무시하던 순문학을 은근슬쩍 읽힌 일.

    그래서 결과적으로는 최근에는 순문학을 찾아 읽을 정도로 독서광이 되었다는 이야기까지.

    “아하핫! 그게 정말입니까?”

    이야기를 다 들은 안재욱은 참 재밌다는 듯이 웃었다.

    “와, 그 사람 절대 안 바뀔 줄 알았는데.”

    안재욱이 아는 작가라는 인종들은, 자기 고집이 꺾이느니 차라리 혀를 깨물고 죽는 인간들이다. 정진욱은 그런 작가들 중에서도 유달리 심해 보이는 인간이라고 생각했는데.

    “제가 잘못 생각했나 보네요.”

    “뭐, 그렇죠. 정 작가님, 요즘은 글 엄청 열심히 쓰세요. 이번 신작도 괜찮던데요.”

    <나는 절대로 용사가 아니다>

    정진욱의 신작 제목이었다. 예전에 말했던 대로, 얼음성의 마왕이었으나 모종의 사건으로 인해 따뜻한 남부에서 용사 취급을 받는 마왕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겉으로는 코믹의 형태를 취하고 있긴 하지만, 몇몇 에피소드에서는 확실하게 주인공의 고뇌를 살려주는 것이, 꽤 흥미로운 작품 구성이었다.

    “그거 아세요? 정진욱 작가님 신작, 순문학에서 영감 얻은 거예요.”

    “어라, 정말요?”

    안재욱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난 형우 작가님 이야기 듣고, 다른 데에서 영감 얻은 줄 알았는데.”

    “다른 데라면, 어디요?”

    “본인 이야기잖아요, 이거.”

    안재욱이 <나는 절대로 용사가 아니다>가 띄워진 휴대폰 화면을 톡톡 건드렸다.

    “세상에서 자기가 제일 잘난 줄 알았던 마왕이 남부에서 개고생하면서 철드는 내용.”

    “푸흡.”

    뜬금없는 내용에, 형우는 그만 웃음을 터트리고 말았다.

    뭐, 소설가들이야 일단 죄다 자기 살 파먹고 사는 사람들이라고는 한다.

    판타지 소설을 쓰고 무협 소설을 쓴다고 그게 자기 이야기가 아닌 것은 아니다. 의식적으로든, 무의식적으로든 그 안에는 어떻게든 작가 본인의 인생이 녹아나게 되는 것이다.

    “아무튼 뭐, 두 작품 다 상승세가 무섭더라고요. 저도 재밌게 읽었습니다, 안재욱 작가님.”

    “칭찬 감사합니다. 김형우 작가님 <아이언 타이거>도 늘 잘 읽고 있습니다.”

    “정말요?”

    “네, 어제 올라온 것까지 읽었는데 몇 화까지 써 두셨어요?”

    “그 두 배 정도요.”

    “어제 게 80화니까 160화요?”

    안재욱이 약간 놀랍다는 듯 눈썹을 꿈틀거렸다.

    “엄청 빨리 쓰셨네요?”

    “잘 써져서요. 뭐, 지금은 이렇게 되다가 또 언제 막힐지 모르니까. 잘 써질 때 써야죠.”

    “흐흐, 형우 님 작품은 안 막힐 것 같은데. 문장이 너무 좋아서 가끔은 그냥 가져다 쓰고 싶어진다니까요. 아, 혹시 41화에 나온 문장 하나 저 주실래요?”

    “에이, 몰래 쓰세요. 안 들키게.”

    형우가 웃으며 대답했다.

    당연히 말 그대로 진짜 가져다 쓰라는 뜻은 아니고, 작가들의 유구한 농담이랄까.

    풋내기 작가는 남의 것을 훔친 뒤 들키고, 대단한 작가는 절대 안 들키게 훔친다는 말이 있다.

    여기서 들키지 않게 훔친다는 건 남의 소설에서 소재나 구성의 영감을 얻되, 자신의 것으로 어레인지시켜 자신의 것으로 만들라는 이야기다.

    ‘모방은 창조의 어머니’라는 말과 비슷한 맥락이랄까.

    “흐흐흐, 그렇죠. 몰래 가져가야죠, 몰래.”

    안재욱도 인정한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나저나, 다른 작품은 이야기 안 하시네요? 스패로우 팩토리의 세 번째 작품이요.”

    “아. 타타룬 작가님 신작 말씀이시군요.”

    방금까지 웃고 있던 형우의 미간이 살짝 좁혀졌다.

    ‘타타룬’이라는 필명을 사용하는 작가는 이번에 새로 스패로우 팩토리와 계약한 작가였는데, 듣기로는 고등학생이라고 들었다.

    사실 웹소설 시장이라는 게 고등학생이든 중학생이든 재밌는 글만 쓸 수 있다면 모두에게 인정받는 시장이니, 나이는 문제가 아니다. 문제는 대부분 작가가 아니라 작품에 있다.

    “이번 작품도 말아먹은 모양이더라고요.”

    “네, 벌써 자물쇠가 세 개네요.”

    출판사에서 소설가를 컨택하는 기준은 크게 두 가지가 있다.

    첫째는, 이미 성공한 작품의 소설가를 컨택하는 것이고, 두 번째는 성공할 가능성이 보이는 소설가를 컨택하는 것이다.

    보통 대형 출판사들은 첫 번째 방법을 주로 사용하고, 중소형 출판사는 두 번째 방법을 선호한다. 단순한 이유였다.

    당신이 잘나가는 작가라고 하면 작품 수가 100개가 넘는 흥행 보증수표 C&N같은 곳에 가고 싶겠는가, 아니면 스패로우 팩토리처럼 갓 시작한 조그마한 출판사에 가고 싶겠는가?

    물론 형우나 안재욱의 경우 서지원이라는 편집자의 능력에 대해 알고 있으니 스패로우 팩토리를 택했지만, 새롭게 시장에 뛰어드는 대부분의 신입 작가들은 그런 정보가 없다.

    그런 연유로, 스패로우 팩토리의 편집자들 또한 이미 성공한 작가들을 데려오는 대신, 무료 연재란을 매일같이 살피며 성공할 느낌이 드는 유망주들을 주 타겟으로 잡고 컨택했다.

    타타룬은, 그중 1호로 컨택한 작가였다.

    “그런 만큼 성공해 줬으면 좋겠는데 말이죠.”

    “형우 작가님은 문제가 뭐라고 생각하세요?”

    안재욱의 질문에, 형우가 칼을 그었다.

    “말하고 싶은 게 없는 것 같아요.”

    소설의 3요소는 흔히 주제, 구성, 문체라고 한다. 이 중 하나라도 문제가 있으면, 소설은 제구실을 하지 못하고 급격하게 무너져내린다.

    문체라는 건 기본적으로 ‘필력’이라고 부르는 부분인데, 만화로 치면 그림체 같은 거다. 좋을수록 좋다고 해야 하나. 형우의 <서울낭인괴담>이 망했던 이유 중 하나이기도 했다. 순문학에서 쓰던 문체를 그대로 장르문학에 썼으니 말이다.

    그리고 다음은 구성. 소설을 담는 그릇을 말하는 거다. 연수의 전작인 <황태자는 왕실에서 살아간다>는 구성에 문제가 있었다. 로맨스 판타지라는 구성은 연수의 재능을 담아내기에 결이 달랐던 것이다. 그래서 연수는 ‘액션’이라는 새로운 구성을 택했고, 결국 자기 몸에 맞는 구성을 통해 작가로 발돋움할 수 있었다.

    그리고 세 번째인 주제.

    “타타룬 작가님이 제일 부족한 게 바로 이 부분이라고 생각해요.”

    주제란 작가가 작품을 통해 담아내고 싶은 메시지를 말한다.

    딱히 ‘세계평화’라거나, ‘전쟁범죄의 근절’, ‘소외된 이웃들에 대한 관심 증가’같이 거창할 필요는 없다. 그보다 훨씬 간단한 욕망이면 충분하다.

    조앤.K.롤링의 <해리포터>는 기차를 타고 어딘가 신비한 장소로 떠나고 싶다는 노스탤지어에서 기인했다고 하고, 할리우드의 거장인 쿠앤틴 타란티노는 이보다 더하다. ‘멋진 여자 킬러가 칼로 수백 명을 썰면 재밌을 것 같아서.’라는 간단한 이유로, <킬 빌> 시리즈를 제작했다고 한다.

    “제가 아는 소설가분 중에 <성직자 출신 아이돌>이라는 작품을 쓰는 분이 계시거든요. 그분은 자기 최애가 스캔들 나는 거 보고 너무 화가 난 나머지, 어디 스캔들 절대 안 나는 최애 없나? 아, 최애가 차라리 신부였으면 좋겠다. 그럼 적어도 스캔들은 안 날 텐데. 라는 생각으로 글을 썼다고 해요.”

    안재욱이 덧붙였다. 세태가 이러하니, 꼭 주제라는 게 엄청 심오하고 그럴 필요는 없는 것 같다.

    “하지만, 주제가 아예 없는 건 또 이야기가 다르죠. 첫 번째 작품이 아마 2차대전 이야기였죠?”

    타타룬이 쓴 첫 작품의 제목은 <2차대전의 무솔리니가 되었다>라는 대체 역사물이었다.

    아무리 지망생이라고 해도 지원이 컨택한 인물이니만큼, 기본은 확실하게 잡혀 있었다. 특히 소재를 선정하는 센스가 좀 좋았다.

    히틀러도, 괴벨스도 아니고 2차대전 당시 최약체 취급을 받았던 이탈리아의 무솔리니가 되었다는 특이한 설정은 누가 봐도 독자를 잡아끌기에 좋았으니까. 하지만 딱 그뿐이었다. 소재는 좋은데 내용이 구렸다.

    “2차 세계대전에 대한 기반 지식이 거의 없어요. 있는 것도 대부분 커뮤니티에나 돌아다니는 낭설이고요.”

    역사를 좋아하는 안재욱이기에, 그 점을 더 잘 느낄 수 있었다.

    “이 정도면 실수를 했거나 자료조사에 소홀했다 정도가 아니라. 그냥 2차 대전에 별로 관심이 없는 거예요.”

    “관심이 없는 이야기를 썼다?”

    “적어도 저는 그렇게 느꼈습니다. 다음 작품도 마찬가지고요.”

    두 번째 작품은, <회귀해서 국회의원>이라는 소설이었다.

    과거 지저분하게 살았던 깡패가 과거로 돌아와 국회의원이 된다는 내용이었는데, 역시 소재에 비해 내용의 전문성이 현저히 떨어졌다.

    “이건 전작보다 더 안 좋아요. 전문성이 떨어지는 수준이 아니에요. 솔직히, 이런 현대 판타지는 의외로 전문성이 엄청 중요하진 않거든요? 조금 개연성을 우그러트려도 연출을 잘해서 카타르시스는 팡팡 터트려주면 오히려 좋단 말이죠.”

    현대 판타지를 써 본 사람이니만큼, 놀랄 만큼 눈이 정확하다.

    “하지만 이건 그런 것도 없어요. 현실적이어야 하는 부분은 작위적이고, 오히려 작위적이라도 터트려줘야 하는 부분에선 현실에 집착해요. 마치….”

    “마치?”

    “나는 국회의원에 대해서 이만큼이나 알아! 하고 자랑하는 느낌이랄까요. 소설에 대한 욕망보다 작가가 되고 싶은 욕망이 더 크다고 해야 하나? 아니면 이걸 겉멋이라고 해야 하나?”

    ‘소설을 잘 쓰고 싶다’와 ‘작가가 되고 싶다’는 비슷해 보이지만 사실은 엄청 다르다.

    사고만 치는 작가가 엄청 좋은 글을 쓸 때도 있고, 누가 봐도 훌륭한 작가처럼 보이는 양반이 사실은 소설에는 별 관심이 없는 경우도 파다하니까.

    “뭐, 제가 상관할 문제는 아니지만요.”

    그렇게 말하며 안재욱은 커피를 홀짝 마셨다.

    맞는 말이다. 작가인 안재욱이 출판사의 동료 작가를 걱정해 줄 이유는 없으니. 하지만, 형우의 경우에는 조금 달랐다.

    ‘곤란한데, 이거.’

    형우는 작가임과 동시에, 스패로우 팩토리의 공동대표였으니 말이다. 기껏 새로 섭외한 작가가 죽만 쑤고 있는 상황은 결코 좋지 않았다.

    * * *

    “여보세요.”

    안재욱과 헤어지자마자 형우는 핸드폰을 꺼내 들어 스패로우 팩토리에 전화를 걸었다.

    “응, 무슨 일이야?”

    지원이 받을 줄 알았는데, 의외로 혜선이 받았다.

    “뭐야? 지원 편집자님 어디 가셨어?”

    ”사장님은 미팅. 왜? 사장님한테 해야 하는 말이야? 연결해 줄까?’

    “아니, 그런 건 아니고. 혹시 타타룬 작가님 한번 만날 수 있을까 해서.”

    “타타룬 작가님은 왜?”

    “이번에 작품 말아먹었던데. 좀 도와줄 수 있을까 해서.”

    겉멋에 취한 고등학생 소설가 지망생 타타룬.

    그 이야기를 듣자마자, 어쩌면 자신이 조금 도와줄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형우 네가 직접? 굳이 그럴 필요까지는 없는데. 너도 네 작품으로 바쁘잖아.”

    “최근 비축분도 좀 쌓았고, 그 정도 시간 여유는 있어.”

    “요즘 빨리 쓰는 건 인정. 그런데 너무 무리하는 거 아냐? 오지랖 부리는 것일 수도 있어.”

    “그냥 오지랖… 이라고 하기는 좀 뭐하지. 잊었어?”

    “아, 맞다. 미안.”

    혜선이 바로 사과했다. 형우와 스패로우 팩토리는 단순한 계약관계가 아니다.

    형우는 회사의 지분 중 15%를 쥐고 있는 공동대표였다. 그 말은 즉.

    “타타룬이 성공하면 나한테도 돈이 된다는 거잖아. 맞지?”

    으흐흐흐, 형우가 속물처럼 웃었다.

    인간의 이야기를 담은 것이 소설이라는 것을 강변하듯, 인간과 소설은 닮은 구석이 많다.

    “…그 정도까지 말한다면 뭐, 타타룬 작가랑 일정 잡아 둘게.”

    소설의 주제가 꼭 복잡할 필요가 없듯이,

    인간의 동기 또한 간단할수록 좋을 때가 있는 것이다. 그리고 ‘돈’이란 그 짧은 글자 수에서 알 수 있듯, 인간을 움직이는 가장 쉽고 강력하고 설득력 있는 동기라는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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