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환상을 쓰겟다-113화 (113/200)

#112

“시간 다 됐는데?”

스패로우 팩토리의 사무실에 사람들이 옹기종기 모여 앉아 있었다.

“뭐야, 라디오 이거 잘 안 되는데? 혜선 언니, 이거 되는 거 맞아요?”

“어라, 어제 산 건데. 왜 안 될까?”

“어, 잠시만요. 제가 한번 볼게요.”

연수의 손이 자연스럽게 라디오를 훑었다.

천우희와 혜선과는 다르게 연수는 컴퓨터를 조립하는 게 취미인 기계광이었고, 당연히 라디오 정도의 간단한 기계는 만질 줄 알았다.

“아하, 설정이 좀 이상하게 되어 있었네요.”

라디오를 재설정한 연수가 그대로 주파수를 맞췄다. 잠깐 치익거리던 라디오는 곧 명료한 음색을 뿜어내기 시작했다.

“아, 시작했네요.”

마침 타이밍 좋게 광고가 끝나는 타이밍이었다.

* * *

“안녕하세요, 청취자 여러분들. 보이는 라디오, 달이 빛나는 밤의 MC 제나입니다.”

제나가 활발한 목소리로 인사했다. 예전에는 솔로 여성 보컬로 활동했지만, 결혼 후에는 활동 영역을 넓혀 라디오 MC부터 공중파 예능까지 고루고루 출현하는 방송가의 블루칩이라고 들었다.

“오늘 게스트로 모신 분은, 요즘 문학계에서 엄청 핫하신 분이시죠? 참새치 김형우 작가님과 스패로우 팩토리 출판사의 서지원 대표님 모셨습니다. 안녕하세요!”

“안녕하세요, 참새치 김형우입니다.”

<요그>나 뉴튜브 인터뷰 등, 자잘한 인터뷰 경험이 꽤 많이 쌓인 형우는 자연스럽게 인사를 받았지만.

“아, 안녕하세요! 스, 스패로우 팩토리 대, 대, 대, 대표 서지원입니다!”

지원은 조금 당황한 것처럼 보였다.

“대표님, 오늘 많이 긴장하신 것 같으신데요?”

“아, 네. 이런 자리가 처음이라.”

“흐흐, 지금 직원들도 라디오 듣고 있을 텐데. 한마디 해 주세요.”

“어, 어떻게요?”

“대표님 마음대로 하셔야죠. 지금 라디오 들을 시간 있어? 일이나 해! 그렇게 말하셔도 되고요.”

하하하, 하고 여기저기서 웃음이 새어 나왔다.

MC의 노련한 진행 덕분에, 라디오 녹화 현장이 상당히 부드러워졌다.

“일단은요, 형우 작가님, 아니, 참새치가 편하신가요?”

“참새치로 해 주세요. 그 점이 독자분들이 더 알아듣기 쉬울 테니까.”

“알겠습니다. 참새치 작가님, 본격적인 이야기에 들어가기 전에, 질문드리고 싶은 게 있거든요.”

“네, 뭐든지요.”

녹화하기 며칠 전, 형우는 PD인 조명윤으로부터 대본을 미리 받았고, 그 대본대로 며칠간 출판사 직원들과 머리를 싸매며 좋은 대답까지 준비했다.

하지만, 제나의 질문은 대본에 없던 거였다.

“조금 실례일지도 모르는데, 바지에 하얀 얼룩이 있네요. 오다가 뭐 흘리신 거예요?”

“아아….”

형우가 약간 부끄러운 듯이 머리를 긁적거렸다.

“오는 길에 참치가 좀 놀랐는지, 제 바지에 대고 토를 했지 뭐예요.”

“어머, 참치야! 네가 그랬니?”

“뺘아악!”

참치가 억울하다는 듯 고개를 저으면서 날개를 퍼덕거렸다.

“애는 아니라는데요?”

“거짓말하는 겁니다. 얘가 한 거 맞아요.”

“그런데 저희 쪽 스타일리스트도 있는데, 바지 보고 아무 말도 안 하던가요?”

“아, 친절하신 분들이시더라고요. 갈아입으시겠냐고 몇 번이나 말씀하시는데, 제가 거절했습니다.”

“어라, 이유가 있을까요?”

“이 바지는 돌아가신 아버지가 물려주신 거거든요. 그래서 중요한 일 있을 때는 무조건 이거 입습니다. 징크스랄까요.”

“아하, 그건 그만큼 참새치 작가님께서 저희 방송을 중요하게 보고 계신다, 그런 뜻이죠?”

자칫하면 분위기가 칙칙해질 수도 있는 주제였는데, MC가 노련하게 잘 비켜 지나갔다.

“하하, 맞네요.”

“네. 감사합니다. 그나저나 참새치 작가님! 요즘 큰 이슈가 되고 있으시잖아요? 그, 평론 관련해서요. 거기에 관련해서 뭔가 특별히 하실 말씀은 없는지, 그 점을 좀 여쭤보고 싶거든요.”

이건 대본에 있었던 질문이다. 물론, 그 대답도 확실하게 생각해 왔다.

“일단, 제가 장르 소설가다 보니 이러한 방향성 자체는 좋다고 생각합니다.”

“방향성이라면, 어떤 방향성을 말하는 걸까요?”

“문학에 테두리가 있어야 한다면, 그 테두리가 설치되어야 하는 장소는 좋은 문학과 좋지 않은 문학의 사이일 거라고 생각합니다. 장르문학과 순수문학의 사이가 아니라요.”

“오오, 역시 작가님이라 그러신지, 말하는 게 좀 남다르신데요.”

제나가 엄지를 치켜올리며 맞장구를 쳤다.

“그런 의미에서, 오늘 게스트인 참새치 작가님의 신청 곡은 이승기의 <음악시간>입니다! 노래 후에는 광고 듣고 가실게요!”

* * *

클래식 말고 가곡말고

내가 하고 싶은 음악 어디서 하나

왜 우리는 다 다른데

같은 것을 배우며 같은 길을 가게 하나

왜 음악을 잘하는데

다른 것을 배우며 다른 길을 가게 하나요-

이승기의 <음악시간>을 들으면서, 제나는 천천히 헤드폰을 벗었다.

한 5분 정도는 광고가 흘러나올 테니, 그 사이에 조금이라도 쉬어 둘 요량이었다.

“여보, 어때?”

‘달이 빛나는 밤’의 PD인 조명윤이 슬쩍 다가와 제나에게 물었다.

“상당히 좋아. 저번에 김일하 작가님도 그렇고, 요즘 작가들은 다 말도 참 잘한단 말야.”

게다가 뭔가, 인터뷰를 하는데 느낌 자체가 굉장히 좋았다.

자신이 하는 일에 대한 자부심이 넘친다고 해야 하나, 스테미너가 끓어오른다고 해야 하나.

“멋있는 사람이야.”

제나는 연예인들 사이에서 웹소설 광으로 유명했다. 언제나 스케줄이 빡빡한 그녀였기에, 짧은 시간만으로도 충분히 즐길 수 있는 웹소설을 취미로 삼은 것이다.

그래서 그녀는, 이런저런 사건 사고가 터지기 전부터 참새치라는 작가에 대해서 알고 있었다.

“글만 잘 쓰는 줄 알았는데….”

직접 만나 보니 말도 잘하고, 사람 자체도 상당히 호감상이다.

본업인 글쓰기에 대해 말할 때는 약간 완고해지는 감이 있었지만, 요즘 시대에 그 정도 직업적 프라이드는 오히려 플러스 요소랄까.

“만나기 전보다 두 배는 더 좋아진 것 같아.”

그렇게 말하며 제나가 싱긋 웃었다.

요즘 제나와 조명윤은 라디오 외의 일로도 상당히 바빴다. 오디오북 출판 건 때문이었다.

“오늘 보니까 사람이 좋아 보여. 나중에도 딱히 논란 터질 것 같지는 않아. 형우 작가님 작품을 시범작으로 해도 될 것 같은데?”

좋은 소식이었지만, 그 말을 듣는 조명윤의 표정은 그렇게 좋아 보이지 않았다.

“여보, 남편 앞에서 다른 남자 칭찬 너무 많이 하는 것 아냐?”

“뭐가?”

“걔가 그렇게 멋있어 보였어?”

그렇게 빤히 보이는 질투를 하는 남편이 얼마나 귀엽던지. 그 모습을 본 제나가 싱긋 웃었다.

“저 김형우 작가, 보면 볼수록 당신 젊었을 때 생각나잖아. 그래서 마음에 든다는 거야.”

“정말?”

“그런데 아직 당신처럼 노련미는 없네. 손 줘봐.”

제나가 조명윤의 손등에 살짝 입을 맞췄다.

조명윤의 표정이 순식간에 헤실헤실해졌다.

“……PD님이랑 MC님 또 저러시네.”

“남들 눈에는 안 보일 거라고 생각하나?”

“에이, 설마….”

“그럼 알면서 저런다고?”

“그것도 이상하네.”

“아무튼 부럽다! 저것만 보면 나도 결혼하고 싶다니까.”

“남자는 있고?”

그 모습을 본 주변 사람들이 소곤거렸다.

방송국 내에서도 잉꼬부부로 유명한 둘이었으니.

“아, 광고 끝났네. 여보, 열심히 해!”

“당신도.”

그렇게 헐레벌떡 조명윤이 녹음실에서 나가고 정확히 3초 뒤.

녹음실의 입구 위에 적힌 ON AIR라는 글씨에 빨간 불이 딱, 하고 들어왔다.

“네, 이제 2부 시작하겠습니다. 1부에서는 참새치 작가님을 중심으로 다뤘으니까, 2부에서는 참새치 작가님의 보스! 스패로우 팩토리의 서지원 대표님을 만나보도록 하겠습니다. 서지원 대표님?”

“예? 아, 아, 안녕하세요! 제 이름은 서, 서지원입니다!”

“인사는 아까 처음에 하셨잖아요?”

“그, 그랬었죠? 하하. 제가 좀 긴장해서. 아, 이런 말 하면 안 되나요?”

와하하 녹음실이 또다시 웃음바다로 뒤덮였고,

“…으윽.”

지원은 빨개진 얼굴을 두 손으로 폭 가렸다.

* * *

“와, 나 지원 언니가 그렇게 쫄아 있는 거 처음 봤다니까.”

형우와 함께 스패로우 팩토리로 돌아온 지원을 보자마자 천우희가 낄낄거리며 놀려댔다. 지원은 듣기 싫다는 듯이 손바닥으로 귓구멍을 막았다, 뗐다, 했다.

“안 들리거든요! 안 들려요!”

“제 이름은 서서지원입니다.”

“으아악!”

“서서지원이라, 뭔가 삼국지에 나올 것 같은 이름이네요. 제갈공명, 서서지원! 나 참. 그렇게 인터뷰 못 하는 사람은 처음 봤네! 형우 넌 어땠어? 직접 봤잖아.”

“저도 좀 놀라긴 했어요. 전에 인터뷰할 때는 또 잘했던 것 같은데.”

얼마 전 지원이 수많은 기자들 앞에서 C&N의 비리를 또박또박 폭로했던 일을 말하는 거였다. 그 말을 들은 지원이 볼을 긁적거렸다.

“그거랑 그거랑은 좀 다르죠. 앞에 건 비즈니스고 뒤에 건 예능이잖아요.”

“비즈니스는 잘해도 엔터는 못 한다?”

“…제가 예능을 해 봤어야 말이죠.”

약간 혁오 밴드 같은 느낌인가 싶었다. 관객 1만 명 특설공연장에서 노래는 잘 부르지만, MC랑 인터뷰하면 바싹 얼어붙는 그런 스타일 말이다.

“편집자님은 뭐든 잘하실 줄 알았는데.”

“사람마다 잘하는 게 다른 거잖아요. 형우 님은 소설을 잘 쓰고, 저는 일을 잘하고.”

그리고 지금은, 일을 해야 하는 타이밍이었다.

“방송 들었으면 아실 건데, 지금이 딱 물 들어온 거 아시죠?”

지원의 말에, 연수가 고개를 끄덕거렸다.

“완전 나이아가라 폭포잖아요.”

“노 젓기 좋죠, 사장님.”

혜선도 한마디 했다.

“그래서 말인데, 오늘 진짜 끝내주는 노가 들어왔거든요. 거의 모터보트 수준?”

“뭔데요?”

“놀라지 마세요. 오디오북이에요!”

지원의 말에 반응은 가지각색이었다.

이미 알고 있던 형우는 그저 고개를 끄덕이는 것에서 멈췄고, 시장 동향에 민감한 혜선과 천우희는 꽤 크게 놀란 듯 보였고, 신입 작가인 연수는….

“그게 뭐예요?”

하고, 되물었다. 그 질문에 가장 먼저 답한 건 천우희였다.

“킬로의 서재나, 밀라 오디오북 같은 거 못 들어 봤어요?”

“들어는 봤는데, 그게 그렇게 대단한 거예요?”

“대단하죠.”

현재 출판계를 세 갈래로 나눠보면 이렇다.

하락하는 추세긴 하지만, 여전히 가장 강세는 오프라인 서점을 위주로 한 종이책 시장이다.

그 아래로는 성장세가 매서운 전자책 시장이 있다. 웹소설 또한 이 전자책 시장에 속한다.

“그리고 요즘 뜨는 신흥강자가 바로 오디오북이라는 말이죠.”

오디오북, 따지자면 듣는 책이다.

종이책의 타겟이 여유 있는 사람이고, 전자책의 타겟이 틈틈이 책을 읽고 싶은 사람들이라면, 오디오북의 타겟은 누구일까?

답은 ‘끊임없이 움직이는 사람들’이다.

“말은 저렇게 하지만 사실은 거의 둘 중 하나지. 운전자들이거나, 운동하는 사람이거나.”

운전을 하면서 소설 한 편을 볼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혹은, 아침에 일어나서 한 시간 정도 산책을 하면서 시집을 읽을 수 있으면 꽤 괜찮지 않을까?

그런 고민으로 인해, 1900년대 TV 시대가 오면서 사실상 외곽으로 밀려났던 ‘오디오북’이라는 녀석이 21세기에 들어 다시금 스멀스멀 올라오더니, 2020년대를 전후해서는 거의 주류문화 중 하나로 자리 잡은 것이다.

“운전자도 엄청 늘었고, 뭣보다 헬스 열풍이 불고 있으니까.”

“아, 헬스 열풍. 저도 알아요.”

천우희의 말에 연수가 공감을 표했다.

“아이돌들만 해도 이미지가 좀 많이 바뀌었죠.”

10년 전에 나오던 아이돌은 뭔가 여리여리한 인상이 대세였는데, 요즘은 남자든 여자든 근육이 빵빵한 체형이 인정받는 시대가 됐다.

좀비를 잘 때려죽일 것처럼 생긴 근육질의 배우가 ‘귀엽다!’라는 평가를 듣고 먹방을 주로 하던 여자 개그맨이 운동하는 예능이 뉴튜브 조회 수 천만을 찍는 시대가 온 것이다.

“그리고, 그 틈새시장을 교묘하게 파고든 게 바로 오디오북이지. 요즘 나오는 건 거의 오디오북이 아니라 오디오 드라마 느낌이라니까. 소설에 ‘퍽, 퍽’이라고 써져 있는데, 입으로 퍽! 퍽! 소리를 내는 게 아니라 샌드백 치는 소리를 넣어놨더라고.”

“네, 맞아요.”

천우희의 설명이 끝나자마자, 지원이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리고 그 MBS에서, 이번에 저희 스패로우 팩토리의 작품을 오디오북으로 만들어보고 싶다고 연락이 왔어요. 그 방송국에서는 최초로 말이죠.”

짝짝짝!

그 말이 끝나자마자, 혜선이 다짜고짜 박수를 쳤다.

박수는 참 쉽게 전염된다. 혜선으로부터 시작한 박수는 연수, 형우, 천우희를 타고 번졌다.

“…박수 왜 치는 거예요?”

“좋은 일이잖아요, 사장님. 좋은 일이 있으면 박수를 치는 거예요.”

생각해 보니 틀린 말도 아닌 것 같아서, 지원도 같이 박수를 쳤다.

뭔가 바보가 된 듯한 느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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