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환상을 쓰겟다-112화 (112/200)
  • #111

    “작가님한테 ‘달이 빛나는 밤’에 출현 제의가 왔다고요?”

    스패로우 팩토리의 대표, 지원이 눈을 반짝반짝 빛냈다.

    “그래서? 어떻게 했어요?”

    “당연히 나가기로 했죠.”

    약간 부담스럽게 느껴지기도 했지만, 형우는 결국 조명윤의 제안을 받아들였다.

    “다른 조건도 좋았는데, 뭣보다 제 작품을 전부 다 읽으셨더라고요. 뭐, 전부라고 해 봐야 세 개밖에 없기는 한데.”

    <전설의 보안관>과 <전설의 보안관> 웹툰, 거기에 지금 연재 중인 <아이언 타이거>까지.

    조명윤과 그의 아내는 그 모든 이야기들을 몇 번이나 정독했다고 했다.

    “그렇게까지 말하는데 마음이 동했다고 해야 하나?”

    “완전 마음에 들어!”

    참으로 오랜만에, 지원이 그런 소리를 냈다.

    “진짜, 형우 작가님은 복덩이라니까요? 아, 이럴 때가 아니지. 준비해야죠, 준비. 스케줄이 언제 비더라….”

    “스케줄은 왜요?”

    “작가님 방송 준비해야죠! 이번에 작품 홍보 빵빵하게 할 기회인데!”

    “그럴 시간 없으실 텐데.”

    형우가 씨익 웃었다.

    “라디오, 편집자님도 같이 나가시는 거예요.”

    * * *

    형우가 나간 뒤, 스패로우 팩토리의 사무실.

    지원은 살짝 당황한 채로 책상을 툭툭 두드렸다.

    ‘라디오에 나간다고? 내가?’

    며칠 전, 달이 빛나는 밤의 PD인 조명윤으로부터 프로그램의 출연 제의를 받은 형우는 조명윤에게 한 가지 제안을 했다.

    자신의 편집자이자 스패로우 팩토리의 청년 창업자인 지원이 함께 참여하면 어떻겠냐는 것이다.

    “그거 괜찮겠는데요.”

    조명윤은 곧바로 그 제안을 흔쾌하게 받아들였다.

    웹소설에 대한 문단의 편견을 뚫고 발전하는 작가와 거대 출판사의 횡포를 참지 못하고 뛰쳐나와 처음부터 시작하는 청년 창업자. 곧바로 괜찮은 컨셉이 떠올랐다.

    [취업이 힘들어진 시대, 창업과 예술을 논하다.]

    이 정도면 대박은 몰라도 중박은 무조건 친다.

    물론 시사 프로그램이 아니라 어디까지나 라디오 프로그램이니만큼 ‘취업이 힘들어진 시대’보다는 ‘창업과 예술’ 쪽에 조금 더 힘을 실어서, 비전과 전망이 넘치게 구성하면 될 것이다.

    “한번 식구들과 토의를 해 봐야겠지만, 일단 긍정적으로 보겠습니다.”

    그렇게 자신도 모르는 사이 지원은 라디오 출연자로 내정되었다.

    “부럽다, 사장님. 달빛밤도 나가고.”

    “좋은 거 맞겠죠, 혜선 씨?”

    “방금 형우 왔을 때 그러셨잖아요. 이참에 스패로우 팩토리 홍보도 하라고. 그거, 직접 하시면 되겠네.”

    “…으윽.”

    지원이 고개를 설설 저었다.

    “역시 몇 번을 생각해 봐도 좋은 기회기는 한데, 형우 작가님도 참. 이야기라도 해 주지.”

    “나름의 서프라이즈 아니었을까요?”

    “놀라기는 했는데 꼭 그렇게 해야 했을까요?”

    “어찌 됐건 축하할 만한 일이긴 하잖아요. 와아. 우리 사장님 티비 나간다. 녹화 떠야지.”

    “지금부터 대본 준비해야겠네요.”

    걱정은 딱 여기까지만 하기로 했다. 누가 그러지 않았던가, 걱정은 인생에서 가장 필요 없는 행위라고. 내 손으로 더 나아질 수 있는 일이라면 걱정하는 시간에 뭐라도 하는 게 낫고, 내 손을 떠난 일이라면 걱정해서 바뀔 것이 없으니.

    * * *

    출판사에서 집으로 돌아오자마자, 형우는 <아이언 타이거>의 새 소식을 확인했다.

    [천혜문학당의 웹소설 평론, 이제 더 이상 거스르기 힘든 시대의 요구.]

    [웹소설에 평론 가치가 있는가? 김일준 평론가, ‘웹소설의 90%는 쓰레기다. 세상에서 제일 쓸모없는 행동이나 다름없다.’라고 일축.]

    [천병옥이 김일준 평론가에게 고함. 무슨 기준으로 90%가 쓰레기라고 하는 것인지? 백번 양보해 그 말이 맞다고 한들, 남은 10%의 좋은 문학을 평론해서는 안 될 이유는 무엇이란 말인가?]

    [웹소설 평론이라니, 글과 종이로 되었다고 다 똑같은 것이 아니다. 마치 테니스장에서 야구 하는 꼴. 라켓과 공을 쓴다는 것 외에는 공통점이 없다.]

    [참 우스운 비유. 테니스 선수들에 비해 야구선수들이 ‘덜 신사적’이라는 이유만으로, 야구를 테니스보다 ‘못한 스포츠’라고 평가하는 멍청한 행위. 예술 계급론은 벗어던질 때도 되지 않았나?]

    […세상에는 장르문학으로 할 수 없는 이야기가 참으로 많다. 천 교수는 순문학을 혐오하는가?]

    [순문학을 혐오한 적은 단언컨대 한 번도 없다. 인종차별 철폐를 외쳤더니 백인 혐오주의자로 몰아가는 꼴.]

    거의 뭐, 예송논쟁 수준의 격전이었다.

    천병옥 교수님, 적일 때는 무서웠는데 같은 쪽으로 돌아서니 진짜 세상에서 제일 든든하다.

    특히 누구에게도 꿀리지 않는다는 점이 멋지다고 할까. 같은 말을 젊은 평론가가 했으면 치기라던지 예의라던지 하는 이야기가 나왔겠지만, 천병옥 교수에게는 해당 사항이 없었다.

    “정진욱 작가님.”

    “아, 왔냐.”

    정진욱은 형우의 방안에 틀어박혀 소설을 열심히 탐닉하고 있었다. 뭘 읽고 있나 봤더니, 이번 연도 이상문학상 작품집이었다.

    저번에 형우의 집에서 기거하면서 순문학을 접했던 것을 계기로, 정진욱은 순문에도 눈을 떴다.

    “예전에는 돈도 안 되는 먹물 글이라면서요?”

    “험험, 내가 언제 그랬어?”

    “…마저 읽으세요.”

    잠시 후, 단편 하나를 다 읽은 정진욱은 약간 찡한 표정으로 한숨을 푹 쉬었다.

    내용이 마음에 든 모양이다.

    “이번 이상문학상 당선작, 진짜 좋네.”

    “<하와이의 눈사람>말이죠?”

    “응. 타지에서 살아가는 동양인 부부를 눈사람으로 비유한 게 참 감명 깊었어. 특히, 눈이 녹는다는 이미지를 몇 번이나 변주한 게….”

    어이구, 아주 그사이 평론가가 다 되셨다.

    “독서하러 온 거예요?”

    “아니지, 아냐. 공부하러 온 거지.”

    정진욱이 손을 내저었다.

    일반적으로 ‘독서’라는 단어는 ‘책을 읽는다’라는 의미를 가지지만, 작가라는 인간 군상에게는 조금 다른 의미로 다가온다.

    ‘독서’는 말 그대로 온전히 책만 읽는다는 이야기고, ‘공부’는 책을 읽으면서 배울 점을 찾는다는 뜻이었다.

    그리고, 정진욱은 ‘공부’를 위해 순문을 찾았다.

    “타지의 이방인이라는 키워드랑 환경에 적응하지 못해 녹아내린다는 이미지가 좀 좋더라. 차기작에 써 볼 생각이야.”

    “어떤 내용인데요?”

    “아직까지는 구상인데, 얼음을 다루는 마왕이었던 주인공이 어쩌다가 따뜻한 남쪽 지방에서 용사 대접을 받게 되는 거지.”

    그렇게 말하며, 정진욱은 으쓱거렸다.

    “순문학을 장르문학에 차용하다니, 나는 천재가 아닐까?”

    “예?”

    형우가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정진욱을 바라봤다.

    “진심이에요?”

    “왜, 내 진보적인 생각에 놀랐나?”

    형우가 고개를 저었다.

    확실히 놀라기는 했다.

    “그건 원래 다들 하는 거잖아요?”

    그 생각이 너무 특별한 것이라서가 아니라, 너무 당연한 것이라서 그랬다. 마치 누군가가 ‘놀라지 마. 사실 나는 산소로 호흡을 해!’라고 말하는 느낌이랄까. 굳이 좋은 것이 있는데, 그게 순문학이라거나 장르문학이라는 이유로 배격할 이유는 없다. 순문학 작가들도 장르문학적 문법을 채용하고, 장르문학 작가들도 순문학적 아이디어를 자신의 작품에 녹여낸다.

    ‘작가란 인종이 어떤 인종인데. 좋아 보이는 걸 보고 그냥 넘어갈 리가 없지.’

    애초에 한국에서 가장 위대한 판타지 소설 중 하나로 추앙받는 <독약을 마시는 새> 시리즈도 그 모티프를 니체와 헤밍웨이에서 가져왔다는 것이 정설 취급을 받고 있으니. 이제 와서 특별한 아이디어라고 평가하기에는, 지나치게 늦은 감이 있다는 거다.

    “요즘 대세 장르 중 하나인 이세계물도 그 원류를 쫓아가면 남미의 환상문학이 나온다고 하니까요.”

    “…몰랐어.”

    정진욱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하지만 형우는 그 점에 대해서 딱히 가타부타 말을 덧붙이지는 않았다. 백 명의 작가가 있다면 백 개의 작품론이 있고, 상류에서 시작해서 하류로 뻗어나가는 연역演繹적인 방법 또한 웹소설을 공부하는 하나의 방법론일 뿐이니.

    이걸 가지고 주변의 웹소설들을 취합하여 나름의 질서를 찾아내는 정진욱의 귀납歸納적인 방법을 무조건적으로 비판한다면, 그건 남의 국밥에 깍두기 국물을 멋대로 집어넣는 식의 아집에 찬 사람에 불과하다는 거다.

    “하지만 뭐, 색다른 방법을 시도해 보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봐요.”

    “정말?”

    “네. 그리고 방법이 평범하다는 거지, 그 내용까지 평범한 건 아니잖아요. 이방인을 다루는 웹소설이라, 벌써 기대되는데요?”

    둘 중 하나만을 무조건 옳다고 생각하는 고집과, 둘 모두를 긍정하면서 그중 하나를 고르는 선택은 그 결과가 같을지언정 분명 다른 행위일 테다.

    고집이 아니라 선택을 하게 됐다는 것부터, 정진욱이 처음 봤을 때와는 다른 사람이 되었다는 증명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힘내세요, 작가님.”

    형우의 응원에, 정진욱의 표정이 확 밝아졌다.

    * * *

    여의도로 향하는 택시 안에서, 형우는 자신의 SNS를 확인했다.

    37 게시물, 팔로워 7,322 팔로잉 44

    계정을 만든 지 어언 한 달, 솔직히 말해 그렇게 열심히 활동하지는 않았다. <아이언 타이거>나 <전설의 보안관>에 대한 소식을 올리거나, 팬들이 보내준 팬아트에 고맙다고 답장을 하는 게 전부였다. 그럼에도, 형우의 팔로워 수는 자릿수를 세 번이나 바꿨다. 오늘 라디오를 출현하면 자릿수가 한 번 더 바뀔지도 모른다.

    “대박인데.”

    20세기 작가의 이미지는 아마 둘 중 하나였을 것 같다. 학술가거나, 혹은 수공업자거나. 전자의 경우 대학 연단 같은 데서 발표를 하는 사람들이었을 테고 후자는 골방에 틀어박혀 문장 하나를 두고 고민하는 사람의 모습일 것이다.

    하지만 21세기, 소위 말하는 소셜 네트워크 시대에 작가라는 직업은 학술가와 수공업자 외에 한 가지 이미지를 더 갖게 됐다.

    “인플루언서(influencer)라….”

    해석 그대로 영향력이 있는 사람이라는 뜻이다. 20세기처럼 대중 매스컴이 TV뿐일 때는 인플루언서 또한 대부분 가수나 연예인들이었지만, 지금은 강산이 두 번이나 변했다.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라던지, 뉴튜브라던지 하는 새로운 매체를 통한 ‘비 연예인 인플루언서’들이 급증하기 시작한 것이다. 작가라는 직업도 당연히 그 예외는 아니었다.

    “김일하 작가님은 아예 공중파 TV에 나오시고, 김진혁 작가님은 영화 평론 채널을 운영하시네.”

    유명한 작가들이 TV에 고정 패널로 출현하거나, 아니면 뉴튜브 100만 채널을 운영하거나 하는 일들은 이제 딱히 새삼스러운 일도 아니다.

    말을 잘하는 작가들은 아예 공중파에서 강연을 뛰기도 하고, 예술적 소양이 높은 작가들은 영화 평론이나 사회평론에서 재능을 드러낸다. 거기서 한 발 더 나가서 아예 <99분 토론> 같은 데에 논객으로 출현하는 작가들도 있었고, 그런 데서 쌓은 인지도와 영향력을 바탕으로 아예 정계에 진출하는 사람까지 있었다.

    “뭐, 내가 그럴 건 아니지만.”

    소설가는 분수에 맞게 집에서 글이나 써야 한다- 라고 생각하는 쪽은 아니었지만, 글이 최고 우선이 되야 한다는 부분은 맞다고 생각했다.

    만약 자신이 사회참여 소설을 쓰는 소설가라면 모를까, 자신은 어디까지나 사람들에게 소소한 즐거움이 되는 웹소설을 전문으로 하는 사람이었으니. 지금은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버겁고 보람찼다.

    “굳이 다른 작가들 따라 하다가 가랑이 찢어질 필요는 없지. 뱁새는 뱁새만의 방식이 있고, 황새는 황새만의 방식이 있는 거니까. 그렇지, 참치야?”

    “뺘아욱….”

    참새가 힘없는 소리를 냈다. 그와 동시에, 여의도로 향하는 택시가 덜커덩, 하고 흔들렸다.

    “뺘욱.”

    그럴 때마다 참치의 표정은 시시각각으로 변했다. 하늘을 나는 동물이라고 해서 꼭 차멀미가 없으라는 법은 없나 보다.

    “잠시 자고 있어.”

    형우가 참치를 향해 속삭였다. 방송국의 조명윤 PD는 참치를 꼭 데려와 줬으면 좋겠다고 부탁을 했다.

    “참새 키우는 작가, 특별하잖아요. 회사 이름이 스패로우 팩토리기도 하고요.”

    “라디오인데, 방해되지 않을까요?”

    “에이, 그럴 리가요. 정 방해되면 녹음실 밖으로 빼도 되고, 게다가 보이는 라디오라서 가끔 동물 데리고 오시는 분도 계셨어요.”

    그렇게까지 말하니 더 거절하기도 뭐해서 그냥 데리고 가기로 했다.

    평소라면 매니저인 지원의 차를 얻어 타고 올 텐데, 오늘은 지원도 게스트로 초청받아 바쁜지라 그냥 택시를 타기로 했는데.

    ‘…기사님 운전 솜씨가 영 거친데.’

    아까부터 새장이 이리저리로 쏠리는 게 영 느낌이 좋지 않았다.

    그리고 급격히 커브 길을 돈 순간.

    “뺘아아아아악!”

    비명을 지르던 참치가 결국 점심에 먹은 것을 형우의 바지에 게워내고 말았다.

    “으허억.”

    형우가 울상을 지었다.

    오늘 검은 바지 입고 왔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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