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0
[헤럴드▼@Herrold
진짜네, 대박!]
[개소리꾼@manyong
저 잡지 진짜 보수적인 곳인데. 예전에 장르문학 대차게 깠던 데임. 작년 2월호하고, 재작년 11월호 보면 됨.]
[롱테이크@Long_take
제가 알기로도 그런데, 왜 갑자기 아이언 타이거를 평론했을까요? 그렇게 재밌나?]
[재밌는소설보면짖는개@NovelDog
멍멍멍!와르르르를크르러러럴! 멍멍멈ㅇ머ㅓㅓ멍ㅇ멍멍!]
[관종[email protected]
ㅋㅋㅋ저사람 저렇게 맹렬히 짖는 거 첨보네.]
[막시무스[email protected]
이런 식으로 점점 더 웹소설이 인정받는 시대가 왔으면 좋겠다 ㅠㅜ]
“휴우!”
게시글을 전부 확인한 형우는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방금까지만 해도 잔뜩 쫄아 있었는데, 다행히 반응은 그렇게 나쁘지 않았다.
애당초 SNS는 장르소설을 좋아하는 독자들이 많이 모여 있는 공간이었으니, 그럴 만도 했다.
형우는 노트북 책상 앞에 앉았다. 한 손으론 참치의 머리를 긁어 줬다.
“뺙!”
참치가 기분 좋은 듯이 우짖었다.
형우는 좀 더 많은 가십들을 찾아 읽었다.
“…?”
…뭔가 특이한 게 있었다. 마지막으로 메일창을 뒤적이던 와중이었다.
[달이 빛나는 밤, 조명윤 PD입니다.]
달이 빛나는 밤이라면, 분명 표준 FM에서 운영 중인 최장수 라디오 프로그램이다.
50년이 넘는 역사 덕분에, 라디오라는 매체가 비주류가 된 지금에도 고정 청취자가 꽤 있는 편이라고 들었다. 형우는 홀린 듯이 버튼을 클릭했다.
[달이 빛나는 밤에서 참새치 작가님을 게스트로 모시고자 합니다. 관심 있으시다면 해당 메일주소로 연락 주세요.]
“게스트라고?”
의심이 앞섰다. 뭔가 말이 안 되는 것 같기도 하고. 괜히 답장 적었다가 개인정보 유출되는 거 아냐? 그런 생각이 앞섰다.
그래서, 메일 주소를 인터넷에 검색해 봤다.
해당 메일은 달이 빛나는 밤에서 공식적으로 사용하는 메일이 맞았다. 혹시 몰라 찾아본 메일 IP의 위치 역시 MBS의 본사 건물이었다.
…그러니까, 진짜 형우가 게스트로 초대되었다는 뜻이다.
“세상에, 마상에.”
약간, 벙찐 느낌이 들었다.
전에 <요그> 잡지에도 실려본 적이 있는 형우였지만, 잡지와 라디오는 그 느낌이 상당히 달랐다.
게다가 ‘달이 빛나는 밤에’는 요즘 트렌드를 따라 보이는 라디오로 송출된다.
방송실이 스트리밍으로 생중계된다는 뜻이다.
“…반쯤은 TV 출연이나 다름없잖아.”
두근대는 심장을 겨우 진정시키며, 형우는 재빨리 달이 빛나는 밤의 역대 출연자 목록을 살폈다.
대충 2년 정도를 살폈는데, 수많은 회차 중 작가가 게스트로 참여한 것은 딱 두 번밖에 없었다.
[초대석with 김일하 소설가]
[초대석with 김윤희 시나리오 작가]
한 명은 대한민국 순문학계를 휩쓸고 다니는 거장 선생님이었고, 다른 한 명은 대한민국을 넘어 세계를 휩쓸고 다니는 글로벌 드라마 작가다.
“허억.”
숨이 턱 막혔다.
내가 이런 데를 나가도 되나?
“…못 본 척할까?”
오늘 아침 막 도마 위에 올랐다.
몸을 사리는 게 나을지도 모른다.
잡지 인터뷰랑은 다르다. 생방송이다, 생방송.
실수하면 고칠 수도 없다는 뜻인데.
“뺘악!”
답답해 죽겠다는 듯이 참치가 울었다.
푸드덕-!
그대로 날아올라서.
찰싹!
하고, 따귀를 때렸다.
“…아야.”
형우는 자신의 볼을 살살 쓰다듬었다. 생각보다 아팠다.
하지만 덕분에, 정신은 좀 차렸다.
“…역시 하는 게 맞겠지?”
애초에, 조심성 있게 살고자 했으면 소설가라는 직업을 고르지도 않았다.
발전할 가능성이 보이는데 가만있는 건 성미에 맞지 않는다. 그대로 소매를 걷어붙였다.
타닥, 타다닥!
사뭇 진지한 표정으로, 메일의 답장을 썼다.
[안녕하십니까, 초청 감사드립니다.]
…특별히 감사한 마음과 예의를 가득 담아 한 자 한 자 적어 내렸다.
[…저는 해당 초청을 감사하게 생각하며, 그에 응하도록 하겠습니다. 좋은 하루 되십시오.]
그렇게 쓰고, 보내기를 눌렀다.
“답장은 언제쯤 오려나? 늦어도 오늘 중에는….”
중얼거림을 끝마치기도 전에, 띠링!
답장이 바로 왔다.
역시 21세기 대한민국의 빨리빨리형 인간이라고 할 만한 반응속도였다.
꿀꺽.
형우는 침을 삼키고 답장을 확인했다.
[해당 번호로 전화 주세요. 010 – 90….]
답장은 짤막했다. 형우는 그대로 다이얼을 꾹꾹 눌렀다.
“여보세요. 김형우 작가님이신가요?”
전화도 역시 빨리 받았다.
“네, 네, 맞습니다!”
스스로 듣기에도, 긴장한 티가 역력했다.
촌스럽다고 생각하지 않으려나, 싶었다.
“아, 반갑습니다. 달이 빛나는 밤 PD인 조명윤 PD라고 합니다.”
과한 생각이었던 것 같다.
* * *
청담동에 위치한 한 카페, 형우는 조명윤 PD와 마주앉았다.
“처음 뵙겠습니다. 조명윤입니다.”
“아아, 김형우입니다.”
조명윤의 첫 인상을 요약하자면, 생각보다 젊다라는 말로 설명할 수 있겠다.
‘MBS 라디오 최장수 프로그램의 담당 PD라기에 나이가 많을 줄 알았는데.’
실제로 보니 아무리 높게 잡아도 40대는 아닐 것 같은 외모였다. 뭐, 동안일지도 모르지만.
“갑자기 연락드려서 놀라셨죠?”
조명윤의 말에, 형우는 솔직히 고개를 끄덕거렸다.
“조금요.”
“흐흐, 죄송합니다. 제가 마음이 급했었거든요.”
“어떤 일로요?”
조명윤이 휴대폰을 꺼내 한 기사를 보여 줬다. 형우도 아는 기사였다.
[웹소설의 학문화, 그 전망은 어떠한가?]
[오랜 역사를 가진 대한민국의 문학잡지 ‘천혜문학당’은 고상하고 강단 있지만, 동시에 보수적인 것으로도 유명한 잡지다. 그 탓에 최근 천혜문학당의 몇몇 평론들은 젊은 문학도들에 의해 많은 공격을 받아 왔다. 소위 말해 꼰대라는 것이다. 하지만, 이번에 그런 천혜문학당에서 큰 이변이 하나 일어났다. 타 잡지에서 한 번도 시도하지 않았던 기상천외한 시도- 무려, 웹소설의 평론을 기고한 것이다.]
조명윤이 재빨리 형우에게 연락한 이유였다.
그는 사람들이 어떤 이슈를 좋아하는지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사람이었다.
“게다가, 김형우 작가님은 저번에 C&N과 크게 싸우셨지 않습니까?”
“…흐음.”
잠깐 고민한 끝에, 고개를 끄덕였다. 망설인 이유는 간단했다.
방송국의 직원인 조명윤이, 출판사와 맞짱을 뜬 형우를 어떻게 생각할지 감이 잡히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용기 있는 행위라며 좋게 생각할 수도 있지만, 예민한 타입이라며 경계할지도 모른다.
“그거 정말 멋지던데요.”
다행히, 조명윤은 전자에 속하는 사람이었다. 형우가 고개를 꾸벅 숙였다.
“좋게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뭐, 안 참고 터트리는 걸 껄끄러워하는 사람도 분명 있기야 하지만 저는 아니거든요. 애초에 모든 사람들이 다 참고만 살면 방송국 직원들은 다 굶어 죽을 수밖에 없기도 하고요.”
대충 어떤 사람인지 알 것 같았다.
적당한 일들은 그냥 하하- 웃고 넘기지만, 적당하지 않은 일에는 분노할 줄 아는, 그런 사람.
요컨대, 느슨하지만 확실한 선을 가진 타입이다.
“라디오는 좀 들으세요?”
형우가 멋쩍은 표정으로 머리를 긁적였다.
“그게, 사실은 잘….”
솔직히 말해서, 형우는 라디오 세대가 아니다. 들어본 라디오라고는 기껏해야 고등학교 시절 영어 공부를 하는 척하고 몰래 들었던 <깔투쇼> 정도가 전부였고, 그마저도 엄청 열심히 듣지는 않았다.
“…뭐, 저도 마찬가집니다.”
조명윤이 이해한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형우보다 10살 정도 많기는 하지만, 조명윤 역시 잘 쳐줘야 TV 세대지, 라디오 세대는 결코 아니다.
“라디오란 게, 사실 지금은 대중문화보단 매니아 문화에 가까우니까요.”
마치 클래식 음악처럼, 듣는 사람만 듣는 장르라고 할까. 메이저 중에서는 마이너, 마이너 중에서는 메이저라는 느낌이었다.
“아직 완전 죽지는 않았죠.”
“그렇군요.”
“게다가 요즘에는 출판시장과 협업하는 추세기도 하고.”
조명훈이 여러 가지 예시를 들어주며 설명했다.
처음에는 그냥, 라디오 방송국 PD니만큼 자신의 직업에 대한 자부심의 어필인 줄 알았다.
하지만, 그게 아니었던 모양이다.
“그래서 말인데, 이번에 저희 라디오 방송국에서도 오디오북 프로젝트를 밀고 있거든요. 전문 성우진들이랑 아나운서분들 목소리를 빌려서, 인문학부터 소설까지 폭넓게 런칭해 볼 생각이에요.”
그것이 조명윤의 포부였다. 그 말을 들은 형우의 머릿속에 그럴듯한 시나리오가 하나 떠올랐다.
“그렇다면, 저를 부르신 게….”
“맞아요.”
조명윤이 고개를 끄덕거렸다.
“<아이언 타이거>를 녹음해 보고 싶어요.”
형우의 눈이 커졌다.
“왜 하필 제 소설이죠?”
“세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일단 첫째는, 작가님도 아시다시피 <아이언 타이거>가 이슈가 됐다는 거지요.”
이슈. 현대 엔터테인먼트 사업에서 가장 중요한 한 가지를 꼽는다면 그건 단연코 화제성이다.
유명함이 유명함을 낳고, 유명한 것으로 유명한 사람들이 넘쳐나는 세상이다.
“외적으로도 완벽한 소설이라고 해야 할까요?”
가장 보수적인 문학 잡지사를 매료시킨 웹소설. 그 수식어만으로도 소설의 가치는 충분하고도 넘쳤다.
“두 번째는요?”
“당연히 소설이 재밌다는 거지요.”
예전에 확 떴다가 사라진 브랜드 중 ‘스바누’라는 곳이 있었다.
탑급 연예인들을 중심으로 공격적인 인플루언서 마케팅을 펼치던 곳이었는데, 그 덕에 한창 인기몰이를 했었다.
하지만, 그 인기는 불과 2년도 채 가지 못했다.
“간단한 이유였죠. 대부분의 영업이익을 마케팅에 쏟느라, 정작 중요한 기술에 대한 재투자가 거의 이루어지지 않았었거든요.”
마케팅 비용을 충당하기 위해 제품 단가는 올라갔으나, 재투자가 이루어지지 않아 제품 품질은 역으로 떨어졌다. 속된 말로, 가성비가 형편없는 제품이 되어 버린 것이다.
“사람들은 분통을 터트렸고, 소문은 순식간에 퍼졌죠. 브랜드 가치는 나날이 떨어지고, 그대로 브랜드 철수. 마케팅 시대라지만, 소비자를 바보 취급하면서 마케팅에만 올인하면 결국 망한다는 걸 보여 준 예시라고 할까요.”
공격적인 마케팅이라는 건 역설적으로 늘 조심스러워야 하는 법이다.
별것 아닌 제품으로 공격적인 마케팅을 시도하다가는 금방 역풍이 불고 마는 것이다.
“이런 말씀 드리면 좀 기분 나쁘실지도 모르지만, 저희가 회의해 본 결과, <아이언 타이거>는 충분히 괜찮은 작품이라는 결론이….”
조명윤은 말끝을 얼버무리며 형우의 눈치를 살폈다.
가끔 예술을 하는 사람들 중에서는 자신의 작품이 타인에게 평가받는 것 자체를 극도로 싫어하는 사람도 있다.
조명윤도 초임 PD 시절, 선배의 예능이 잘 되는 걸 보고 ‘선배님, 예능 진짜 재밌던데요? 대박입니다!’라고 한 마디 건넸다가 감히 후배 주제에 선배의 작품을 평가한다고 얼차려를 당한 적이 있었다.
“아, 저는 괜찮습니다. 오히려 평가받는 걸 되게 좋아하거든요.”
“그렇다면 다행입니다.”
“그나저나, 세 번째 이유가 궁금한데요.”
“흐음….”
조명윤이 조금 당혹스럽다는 듯 볼을 긁적거렸다.
“사실 이건 말해주기 좀 그런데, 방송국 이미지도 있고 해서요. 옵더레로 하시죠?”
오프 더 레코드. 그러니까 비밀 이야기라는 뜻이다.
형우가 고개를 끄덕거리자 조명운이 살짝 고개를 숙이고 소곤거렸다.
“…달이 빛나는 밤 메인 MC가 형우 작가님 팬이라서, 꼭 이거 하고 싶다고 그랬거든요.”
형우가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그게 그렇게 큰일이에요? 몰래 말할 정도로?”
“당연하죠! 부끄럽잖아요!”
“뭐가 모양이 빠져요? 방송국 PD가 프로그램 MC 말 잘 들어 주면, 그건 좋은 거 아니에요?”
“와, 작가님 진짜 저희 프로그램 안 보시는구나.”
조명윤이 주위를 휙휙 둘러보더니, 형우에게 한 번 더 속삭였다.
“…지금 MC가 저희 집사람이거든요.”
그렇게 말하며, 조명윤은 고개를 푹 숙였다.
“안 그래도 방송국 사람들이 아내한테 꽉 잡혀 산다고 놀리는데, 이것까지 들키면 저 얼굴 못 들고 다니거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