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환상을 쓰겟다-110화 (110/200)

#109

<순수의 굴레를 넘어서> - 조현수

-참새치 작가의 소설, <아이언 타이거>를 중심으로.

[…새로운 소설의 시대가 도래했다. 무엇이 더 좋은 시대이고, 무엇이 더 나쁜 시대인가, 그런 걸 따지는 것은 지금 내가 말하고자 하는 바가 아니다. 그저, 여태껏 굳게 디디고 있던 소설의 세계 너머로 새로운 지평이 나타났다는 것을 이야기하고 싶을 뿐이다.]

[…참새치 작가의 <아이언 타이거>는 그 지평선 사이, 중간수역에 있는 작품이다. 예를 들자면, 이 소설은 장르소설적인 클리세를 거리낌 없이 채용하고 있다.(대한민국에 밤이 없어진 그 날, 사람들은 동시에 낮도 사라졌다는 것을 깨달았다. 밤낮을 가리지 않고 포탈은 붉은 열기를 뿜어냈고, 존재하는 어떤 방법으로도 그 불을 끄는 건 불가능해 보였다. - <아이언 타이거> 2화)]

[…하지만 동시에, 그 내부에는 인간 탐구적인 끊임없는 인간적이고 철학적인 고뇌들을 심어 놓는다. 그 고뇌들의 이름은 ‘현실에서 벗어나고자 하지만, 결국 현실로 순응할 수밖에 없는 아픔’이다.(나는 포탈 밖의 삶보다 포탈 안의 삶이 더 좋아. 다른 사람들이 고통받는 건 싫지만, 포탈도 사라지지 않았으면 좋겠어. 포탈이 사라지면, 나도 사라지고 말 테니. <아이언 타이거> 42화)…]

[…<아이언 타이거>는 웹소설로 쓰인 글이지만, 유사 이래로 소설이 수행해야 하는 모든 역할들을 훌륭하게 수행해내고 있다. 인간이라는 존재를 탐구하는 일, 그 해답을 조심스럽게 그려내는 일. 끔찍하고 잔인한 것을 보며 웃음을 터트리는 일은 오직 소설만이 할 수 있는 일일 테니까.]

논리정연하면서도, 강하면서도, 이질적이다.

젊음이 치기의 면책특권임을 강변하기라도 하듯, 위 평론은 다음과 같이 끝을 맺었다.

[…문학적인 것이 문학인가, 혹은 문학이기에 문학적이라고 불리는 것인가?]

* * *

문학잡지 천혜문학당天惠文學黨의 회의실.

오래된 칠판에는 큼지막한 글씨로 회의 주제가 쓰여 있었다.

-조현수 작가의 <순수의 굴레를 넘어서>를 잡지에 올리는 것이 맞는가?

웹소설 평론이라는 낯선 장르 앞에서, 잡지사의 직원들 사이에서도 의견이 분분했다.

지금까지는 이런 일이 없었으니 말이다.

“문학잡지에 웹소설 평론이라니, 이거 완전 야구장에서 축구 하겠다는 소리 아닙니까?”

강경파 편집위원인 정 선생이 불만을 터트렸다.

“조현수 작가, 오냐오냐해 줬더니 아주 도를 넘어도 너무 넘어요!”

그 어투가 너무 강했던 탓에, 사회자인 주선생이 난색을 표했다.

“정 선생. 그렇게 말할 것까진 없잖아요? 장르문학이나 순문학이나 그 골조는 같은데요.”

“글자로 이루어졌다는 공통점이 있긴 하군요. 정정하지요. 야구와 축구도 둘 다 공을 쏘아 보낸다는 공통점은 있지 않습니까?”

약간 억지스러운 말이었지만, 그렇기에 더더욱 공격적이라는 느낌이다.

“게다가 이 <아이언 타이거>는 대체 뭡니까? 차라리 <해리포터>나 <반지의 제왕>의 평론을 썼다면 백번 양보해 이해라도 하겠는데 말이죠!”

일단은 순문학 우월주의, 그런데 사대주의를 조금 곁들인 느낌이라고 할까. 그 모습에 주 선생은 자신도 모르게 미간을 찌푸렸다.

쓴 소설 중에 가장 많이 판 게 기껏해야 500부 남짓인 주제에, 몇천몇만 부를 우습게 팔아넘긴 작품을 이래라저래라 평가하는 꼴이 좀 뭐랄까, 현 문단의 병폐를 그대로 증명하고 있는 듯한 모습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표현방식이 조금 과격할 뿐, 정 선생의 논조 자체는 그렇게 크게 틀린 데가 없다. 여지껏 순문학 잡지에서 웹소설을 논했던 일은 꽤 드물었고, 천혜문학당 같은 메이저 잡지에서 논했던 일은 더더욱 없다시피 했으니.

주 선생은 모든 변화와 진보가 무조건적으로 옳다고 생각할 정도로 급진주의자는 아니었다.

“아무튼, 이건 위깁니다, 위기! 멍청이들이 제멋대로 떠드는 거야 무시할 수 있지만, 조현수 작가는 지금 저희 잡지사에서 팍팍 밀어주고 있는 평론가 아닙니까!”

화가 난 듯이 책상을 꽝꽝 쳐대는 통에 골이 조금 떨렸다. 주 선생이 관자놀이를 꾹꾹 누르며 첨언했다.

“…조 작가에게도 뭔가 뜻이 있었겠지요. 정 선생님 말마따나 요즘 제일 글 잘 쓰는 젊은 평론가 아닙니까?”

“그게 더 문제입니다! 차라리 시정잡배 같은 놈들이면 말이라도 안 하죠. 문단에서 주목받는 평론가가 갑자기 뜬금없이 웹소설 평론이라니요! 주성치가 판타지 영화 나오는 거랑 똑같은 일 아닙니까? 부끄러운 일입니다, 부끄러운 일이에요!”

…웹소설을 비유하면서 홍콩 무협 장르영화의 대부인 주성치를 예로 드는 그 센스도 이상했고, 주성치가 감독 시절에는 <미인어>라는 판타지 영화를 만들었던 것도 사실이지만, 지금 중요한 이야기는 아닌 듯하여 일단 지적하지는 않았다. 지금 중요한 건 어디까지나 조현수 작가의 평론을 반려하느냐, 등재하느냐였으니까. 잠시 고민하던 주 선생의 시선이 테이블 구석을 향했다.

“천 교수님은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제 생각 말입니까.”

지금까지 잠자코 듣고 있던 천 교수, 천병옥이 고개를 끄덕였다.

2000년대, 미친 듯이 날카로운 평론으로 순수문학의 뿌리를 지켜왔던 평론계의 거인. 게다가 최근에는 한국대학교의 교수까지 됐다고 들었다.

“…게다가 이 해괴망측한 평론과 관련된 두 명은 다 천병옥 교수님의 제자라지요?”

정 선생의 공격적인 어투에, 천병옥이 눈살을 찌푸렸다.

“김형우 학생과 조현수 학생을 말하는 거라면, 맞습니다. 가르친 지 그리 오래되지는 않았지만.”

천병옥이 고개를 끄덕거리자, 정 선생은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잡지사의 외인外人이라고도 할 수 있는 천병옥을 이 자리에 부른 연유가 바로 이것이다.

교수이자, 순문학의 선배인 사람이 따끔하게 충고한다면, 젊은 치기에 눈이 돌아간 조현수라도 말을 들을 수밖에 없을 테니 말이다.

“제 의견을 말하자면… 결격사유는 없습니다.”

천병옥이 천천히 말을 이어나갔다.

“작품에 대한 연구는 군더더기가 없고, 현실과의 연결지점도 잘 살렸어. 인용문을 가져올 때 초보 평론가들이 으레 하는 실수도 하지 않았지. 게다가….”

“자, 잠시만요!”

정선생이 황급히 천병옥의 말을 끊었다.

“…뭡니까. 제 말에 문제가 있습니까?”

“지금 제가 물어본 건 그 부분이 아니지 않습니까?”

“제 생각을 물어보지 않았습니까?”

“아니! 그게 아니라!”

정 선생이 쩔쩔맸다.

“지금 말하고 있는 건, 저희 잡지에 웹소설 평론 따위가 가당키나 하나- 그런 이야기였잖습니까?”

“아, 그거 말이군요.”

천병옥이 눈썹을 살짝 들어 올렸다.

“안될 이유가 있습니까?”

“…예?”

“웹소설로 평론을 써서는 안 될 이유 말입니다.”

“하아? 당연한 거 아닙니까?”

정 선생이 경박스럽게 어깨를 흔들었다.

“순문학은 상류문화입니다!”

“굳이 따지자면 그렇지요.”

“게다가 더 고상하지요.”

“그것도 맞는 말입니다.”

천병옥의 거듭되는 인정에 오히려 당황한 것은 정 선생이었다.

“…다 맞다고요?”

“인정 못 할 건 또 뭡니까. 맞는 말인데. 하지만 말입니다.”

천병옥이 눈을 날카롭게 빛냈다.

“언제부터 상류와 하류가 위대하다는 속뜻을 갖고 있었습니까?”

“예?”

“물은 상류에서 시작해서 하류로 오지만, 그걸 보고 북한강과 남한강이 한강보다 위대하다고 주장한다면 그건 분명 모자란 사람이겠지요.”

천병옥의 표정은 마치 ‘사람은 총에 맞으면 죽는다.’라는 당연한 사실을 말하는 사람의 것처럼 무료해 보였다.

“…또한, 17세기 파리의 귀족들은 확실하게 민중들에 비하면 고상한 사람들이었지만, 그것이 곧 그들이 파리의 민중들에 비해 더 위대했다는 뜻이라고 해석한다면 그렇게 말한 사람의 역사관을 한번 의심해 보는 것이 옳은 판별법일 테지요.”

위대함이란 역사에 남는다는 것.

오랜 시간이 흘러, 결국 시대에 남은 것은 그 귀족들이 아니라, 귀족들을 향해 창칼을 들이밀었던 시민들이 아닌가.

“그리고, 저는 소설이 고상함이 아니라 위대함을 추구해야 한다고 믿는 편입니다. 그리고 제가 본 제자들의 글은, 위대해질 구석이 충분합니다.”

처음으로, 천병옥의 표정이 변했다. 만족스러운 듯한 웃음이었다.

“현수의 평론은 말할 것도 없이 좋고, 형우의 <아이언 타이거> 또한 수작이지요. 만약 현수가 먼저 평론을 쓰지 않았더라면, 제가 썼을 겁니다.”

“교수님! 이건 문학이 아닙니다! 장르라고요!”

“정 선생님은 형우의 <아이언 타이거>는 물론, 현수의 글조차 똑바로 읽지 않으신 듯 하군요.”

천병옥이 지적했다.

“문학적인 것이 문학인가, 아니면 문학이기에 문학적인 것인가? 분명 그런 질문으로 끝마쳤었지요. 저는 전자가 맞다고 생각합니다.”

<아이언 타이거>는 충분히 문학적이므로, 문학이라고 불릴 자격이 있다. 그런 뜻이었다.

“궤변입니다!”

정 선생은 이제 고래고래 소리까지 질렀다.

“교수님이 예전에 제 소설을 보고 그러셨지요. 좋은 소설이지만 아직 위대하지는 않다고.”

“기억납니다.”

“그런데 이제 와서 고작 웹소설 따위가 위대하다뇨? 어떻게 그런 말을 할 수 있습니까?”

“…뭔가 오해가 있군요.”

천병옥이 손을 저었다.

“<아이언 타이거>는 분명 좋은 소설이지만, 이 자체만으로는 위대하다는 말을 듣기엔 조금 부족합니다. 그런데도 제가 이 소설을 위대하다고 평하는 까닭은, 전적으로 정 선생님 덕분이지요.”

“…제 덕분이요?”

“지금 선생님의 모든 행동이, 이 평론을 더더욱 가치 있는 것으로 만들고 있다는 뜻입니다.”

천병옥이 현수의 평론을 향해 시선을 돌렸다.

평론이었지만, 참 아이러니하게도 꼭 마크 트웨인의 모험소설처럼 느껴졌다.

“…꽉 막힌 세상을 깨부수고자 하는 청년들의 궐기 같은 느낌입니다. 우리는 보통 그런 걸 위대하다고 부르지요.”

히어로를 위대하게 만드는 건 빌런이다. 그런 의미였다.

“그건…!”

“무슨 말을 더 하실 참입니까? 비판이면 환영히고, 비난이면 더더욱 환영입니다. 그럴수록 제 제자들의 글은 더더욱 위대해질 테니.”

천병옥이 이죽거렸고, 정 선생은 입을 다물었다.

“…문학에 울타리를 세우지 마십시오.”

교수다운 언사로, 천병옥은 말을 마무리 지었다.

주 선생이 재빨리 분위기를 정리했다.

“토론은 여기까지 하고, 투표로 들어가지요. 이 평론을 잡지에 넣자고 생각하는 사람은 손을 들어주세요.”

천병옥을 시작으로, 총 다섯 명의 사람들이 손을 들어 올렸다.

“그러면 반대하시는 분은, 거수해주세요.”

힘껏 손을 들어 올린 정 선생과 함께, 다섯 개의 손이 허공에서 피어났다.

“5대 5로 동률이라면, 남은 건 사회자인 저뿐이네요.”

그렇게 말한 주 선생은 그대로 정 선생 쪽을 향해 고개를 살짝 숙였다.

“죄송합니다, 정 선생님. 저는 아무래도, 천병옥 교수님 말씀이 좀 더 맞는 것 같아요.”

* * *

최종 결과는 5대 6.

<순수의 굴레를 넘어서>는 천혜문학당天惠文學黨의 12월호에 기고되었다.

현수는 친절하게도, 친구인 형우의 집으로 이번 12월호를 직접 보내 줬다.

그리고 형우는, 친구의 평론을 읽는 순간 그대로 굳어버리고 말았다.

“이거 완전 미친놈 아닌가?”

문득 현수의 말이 뇌리에 스쳤다. 자신도 잘못된 질서는 깨부숴야 한다고 생각한다. 라는 말.

‘…그게 이런 뜻이었어?’

기존 질서에 심취해 신문물을 받아들이지 않는 문단의 태도를 비판하고, 깨부순다.

“이런 걸 하려면 말이라도 해 주지.”

그 방향성 자체는 이해 못 할 바 아니지만, 뭐랄까… 너무 갑작스럽다.

자신의 소설에 정성스러운 평론을 써 주고, 극찬까지 해 준 건 분명히 좋다.

아니, 솔직히 말하면 이 정도로 열심히 썼으면 칭찬이 아니라 욕이라고 해도 감사했을 테다.

문제는 다른 데 있었다.

“도마에 오르겠네, 이거.”

도마에 오른다, 다시 말해 논란이 된다.

바이럴 마케팅과 나락은 종이 한 장 차이라는데, 과연 이건 바이럴 마케팅이 될 것인지 나락행이 될 것인지.

“…확인해 보면 되겠지.”

후읍,

그렇게 숨을 크게 들이마신 후, 형우는 휴대폰을 켰다.

어디를 확인하는 게 가장 빠를까? 포털 사이트? 연재처? 플랫폼? 아니면 SNS?

고민은 길지 않았다.

“SNS부터.”

요즘 소식은 포털사이트보다 SNS가 훨씬 더 빠르게 퍼졌다.

아이언라이온@Iron_lion

참새치 작가님 <아이언 타이거> 이번에 문학잡지에서 평론 실렸다는데요?

…과연, 들어가자마자 관련 이야기가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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