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환상을 쓰겟다-108화 (108/200)
  • #107

    방이동에 위치한 한 술집.

    “스패로우 팩토리를 위하여!”

    그곳에서는 SF(스패로우 팩토리)의 회식이 한창이었다.

    가장 먼저 운을 띄운 것은 지원이었다.

    “형우 작가님도, 연수 작가님도 다 성공이에요. 진짜 대단해요.”

    지원의 말에 천우희가 흥, 하는 소리를 냈다.

    “…물론 천우희 작가님도 아직 유료화는 안 했지만, 유료만 되면 날아다닐 테고요!”

    무료 때의 성적이 꼭 유료 때의 성적을 100% 담보 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50% 정도는 담보한다.

    그리고 천우희의 신작 <쓰면 예뻐지는 안경을 주웠다>는 지금의 50%만 되도 대박이라는 말을 아깝지 않게 붙일 수 있을 만한 작품이었다.

    “비록 아직은 세 명뿐이지만, 3타석 3홈런이라는 거죠. 게다가 더 좋은 소식은, 드디어 처음으로 수익이 났답니다!”

    지금 상황에서, 지원과 혜선의 월급, 사무실 임대료를 합쳐 한 달에 700만 원 정도가 SF의 한 달 지출 규모였다.

    그리고 이번 달에, SF가 형우와 연수의 작품으로 벌어들인 돈은 700만 원하고도 13만 원.

    지원은 그 돈을 회식 값으로 쓰기로 결정했다.

    “13만 원 한도 내에서, 얼마든지 드시라고요! 제가 쏩니다!”

    “…무한리필 집에서 그렇게 말하는 건 좀 그렇지 않아요?”

    형우의 말에 천우희도 동의한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도 첫 회식인데 삼겹살이라니. 차라리 내가 돈 낼 테니까 소고기라도 먹으러 가지?”

    “에이! 천우희 작가님, 제가 누누이 말했잖아요! 편집자가 작가한테 돈 내게 하는 거 아니라고!”

    “그래도 이게 뭐야. 삼겹살이 싫은 건 아닌데… 분위기가 좀 그렇잖아. 집들이에서 자장면 먹는 느낌이랄까.”

    “정 그러시면요.”

    혜선이 끼어들었다.

    “이번 작품을 성공시켜서 돈을 많이 벌어 주세요. 그러면 뭐, 다음 회식은 더 좋아지겠죠.”

    “하핫, 맞아요, 맞아!”

    지원이 마음에 든다는 듯이 호탕하게 웃었다.

    회사가 어떻게 굴러갈지는, 그 누구도 모른다.

    지원도, 혜선도, 형우도, 이곳에 모인 누구라도 미래를 알지는 못하니까.

    ‘하지만.’

    화기애애하게 떠드는 사람들을 보며, 형우는 왠지 모를 고양감을 느꼈다.

    전에 일했던 C&N에 비하자면 조촐한 회식 메뉴지만, 모인 사람들은 하나같이 기대감에 부풀어서 더 나은 미래에 대해서만 이야기했다.

    “다음에는 회 먹으러 가요. 참치회. 요즘 격투 소설 쓰느라 다시 스파링 뛰는 중인데, 단백질이 좀 부족한 느낌이야.”

    연수가 우물거렸고,

    “다음 작가는 누구 데려올 거야? 뭐, 안띵 작가? 헌터물에, 판타지에, 로맨스에, 그다음엔 현판인가? 밸런스적으로 좋기는 하네.”

    천우희가 끄덕거렸고,

    “…빨리 사무실부터 옮기죠. 난방 안 나와서 엉덩이가 너무 시려워요. 치질 걸리겠어요.”

    혜선이 투덜거렸고,

    “그렇게 오래는 안 걸릴 거예요. 지금 추세로 보면, 세 달? 세 달 내로 옮깁시다.”

    지원이 방긋, 웃었다.

    회식 메뉴, 회사 전략, 사무실 위치, 상승 추세.

    모두가 미래에 대한 기대감으로 가득 부풀어 있었다.

    그저 막연하기만 할 뿐인 현실도피로서의 자기세뇌적 망상이 아니라, 지표와 실력에 기반을 둔 자기확신과 긍정 호르몬인 세로토닌이 잔뜩 버무려진, 단단한 지반 위에 세워진 비전이었다.

    망상은 사람을 추락하게 만들지만, 구체적인 비전은 인간을 더 높은 곳을 바라보게 만드는 법.

    그날, 형우와 연수는 나란히 네이비 시리즈 올해의 웹소설 어워드 후보에 올랐다.

    * * *

    [문예창작과 공태준 학생과 관련된 교내 징계위원회 알림.]

    [최근에 크게 이슈가 되었던 C모 회사 공모전 순위 조작사건과 더불어, 자체적으로 시행된 교내 징계위원회에 의하여….]

    [다수의 학칙 위반과 학교의 명예를 훼손하였다는 점, 또한 좋은 문학 환경에 이바지한다는 학교의 설립 취지에 반한다는 점을 사유로, 최종적으로 한국대학교의 징계위원회에서는 위 학생을 퇴학 조치하도록 결정 내렸음을 알립니다.]

    “우와.”

    문창과의 게시판을 보자마자, 형우는 그런 탄성을 내뱉을 수밖에 없었다.

    사건이 터지고 어언 한 달, 천병옥 교수의 예상대로 공태준은 결국 퇴학을 당했다.

    …형우보다 무려 2년이나 빠르게 학교를 들어와 누구보다 길게 학교를 다녔던 사람인데, 이렇게 끝나다니.

    “그러게 잘했어야지.”

    아무리 그래도 안됐다거나, 8년이나 학교를 다녔는데, 졸업조차 못 해서 불쌍하다거나, 그런 생각은 하나도 들지 않았다.

    솔직히 말하면 측은지심도 감정인데 사람 봐 가면서 드는 거 아니겠는가.

    다리 다친 강아지는 불쌍해 보일지언정, 터져 죽은 모기는 봐도 통쾌하기만 하다는 거다.

    [공태준 퇴학까지는 안 당할 줄 알았는데.]

    진짜 저번에 술 먹고 술병으로 싸웠던 애도 퇴학까지는 안 당했는데, 이걸로 한 방에 가버리네. 지금까지 학교 다니면서 징계퇴학 처음 봄.

    익명2 : 술 먹고 싸웠던 사람은 나 아는 철학과 선밴데, 취해서 실수한 거지 평소에는 모범적인 사람이었음. 공태준이랑 비교할 게 못 됨.

    ㄴ익명(글쓴이) : 님 철학과인데 공태준을 앎?

    ㄴ익명2 : ㅋㅋㅋ문과대학에서 그인간 모르는 사람이 어딨음? 이과대학도 알겠다.

    익명 11 : 이거 이슈되면 한국대 입결 떨어지는 거 아님?

    ㄴ익명9 : 그래서 안 떨어지려고 퇴학시켰잖아 ㅋㅋ

    ㄴ익명13 : 선 빡그음ㅋㅋ

    익명4 : 휴학계 바로 내면 징계위원회 런할 수 있는 거 아님? 왜 휴학 안한거?

    ㄴ익명(글쓴이) : 졸업 2년째 유보라 휴학 풀로 다 채움

    ㄴ익명4 : 미친ㅋㅋ 대체 학교생활을 어떻게 한거? 진짜 X나게 개판 친거 아님?

    ㄴ익명5 : 야 씨 나도 대학교 9학년인데 개소리하지 마라. 그럴수도 있는 거다

    ㄴ익명4 : 9학년 ㅋㅋㅋㅋㅋ 초등학교도 6년인데ㅋㅋㅋㅋ

    ㄴ익명6 : 대학교는 4학년이 끝인데 9학년이 대체 어디있나요? ㅋㅋㅋㅋㅋ

    ㄴ익명4 : ㄷㅊ

    ㄴ익명7 : 요즘은 암모나이트가 말도 하네 ㅋㅋ

    모두의타임을 봐도, 공태준을 옹호하는 사람은 단 한 명도 찾아볼 수 없었다.

    변화는 그것뿐만이 아니다.

    “저, 형우야….”

    그렇게 다가온 한 무리의 남자 셋. 형우는 그 이름을 모두 안다.

    최태훈, 유지석, 정한구.

    공태준과 함께 몰려다니며 자칭 ‘노는 무리’라고 주장하며 한국대학교의 물을 흐리던 놈들이다.

    물론 학과 내에서 게네들을 잘 노는 애로 인정해주는 사람은 없고, 보통 애.트라고 불렀다.

    ‘애매한 트리오.’

    고등학교 때까지 공부만 해서 명문대까지 온 놈들이라, 당연히 노는 법을 잘 모른다.

    그래도 뭔가 야테 공부만 하느라 꾹꾹 참은 게 있는지, 노는 사람처럼 보이고 싶어한다.

    결국 대학교까지 와서 자기가 중학생이나 고등학교 시절 동경했던 소위 ‘잘나가는’ 형들을 따라 해 보지만… 흠. 애석하지만 그것도 타고나야 하는 기질인지라.

    범생이들 사이에서는 노는 것처럼 보이지만, 진짜 노는 애들 앞에서는 순식간에 범생이가 되어 버리는, 그런 잘못된 방향으로 간 ENFP 녀석들이라고 할까.

    게다가 지금 쭈뼛거리며 다가오는 걸 보니, 그 양아치 놀이도 오늘부로 끝날 것 같다. 자신들이 졸졸 쫓아다니던 구심점인 공태준이 퇴학까지 당해 버린 사건은,

    “…그, 형우야. 지금까지 미안했다.”

    겉멋에 취해 있던 녀석들이 현실을 파악하기에는 꽤 적당한 충격 아니었을까.

    하지만, 사과를 받았는데도 기쁘다거나 만족스럽다거나 하는 느낌은 없었다. 오히려 조금 화가 났다. 무엇보다, 바로 그 이도 저도 아닌 태도가 정말 마음에 안 들었다.

    “지금까지 뒷담 신나게 까 놓고, 이제 와서 사과라고?”

    끝까지 나쁜 새끼였던 공태준도 화났지만, 자기네들은 아무 관련 없다는 듯이 손을 털려고 드는 이 셋도 짜증 나기는 매한가지였다.

    “아니, 우린 그냥 태준 선배가 시켜서, 어쩔 수 없이 그랬던 거야!”

    “맞아. 우리라고 그 인간이 그렇게 악독한 사람인 줄 알았겠냐? 몰랐으니까 그랬지!”

    “…그래서 바로 사과하러 온 거고. 사과하러 온 사람한테 그렇게 말하면 우리도 서운하지.”

    어쩔 수 없어서, 몰랐으니까 그랬지, 서운하다?

    <그것이 알고 싶네>에 나와도 될 정도로 뻔한 레퍼토리로군. 그 말을 들은 형우의 미간이 팍 좁혀졌다.

    “…너희도 속았다는 거야?”

    “그래! 바로 그 말이야! 형우야. 진짜 미안했어. 그러니까 앞으로 잘 지내면 안 될까?”

    “잘 지낸다면, 어떻게?”

    “그, 다른 문창과 애들처럼 말야. 소설 이야기도 좀 나누고, 지식도 공유하고.”

    녀석들의 말을 들은 형우는 한숨을 푹 쉬었다.

    지금까지 공태준 쫓아다니며 칠렐레팔렐레 놀기만 한 놈들이랑 대체 무슨 소설관을 공유하고 대체 무슨 지식을 나눈단 말인가?

    “니들한테는 내가 배울 게 없어. 사과도 안 받아. 그러니까 저리 가서 양아치 짓이나 마저 하지 그래?”

    “…뭐야?”

    제 버릇 개 못 준다고, 녀석들이 눈을 부라렸다.

    “너무 말이 심한 거 아냐?”

    “네 말이 맞네, 실수했어, 내가.”

    형우가 피식 웃었다.

    “양아치 짓을 하는 게 아니라, 양아치 놀이를 하는 거였지. 양아치 짓 하려면 좀 진짜로 문신 좀 많은 형들 앞에서 하던가, 한국대 범생이들 앞에서 그러면 쪽팔리지도 않냐?”

    “…뭐, 뭐얏?”

    “온갖 허세란 허세는 다 부리면서 뒤에서 씹어댈 때는 언제고, 이제와서 사과래? 애초에 미안해서 사과하는 게 맞기는 하냐? 내가 보기에는 그냥 얄팍한 술수 부리는 것 같은데.”

    지금까지 소설이라고는 F 학점 면할 정도로 쓰는 척만 했던 놈들이 갑자기 소설관 어쩌고 이야기하는 걸 듣자마자, 형우는 이게 무슨 상황인지 대충 감을 잡았다.

    ‘안 봐도 비디오지.’

    저 무리의 대가리였던 공태준은 아마 저 녀석들 사이에서 이빨을 꽤나 털고 다녔을 거다.

    자기 숙부는 C&N의 편집장이고 외삼촌은 부회장이다. 그러니 자기한테 잘 보이면 쉽게 작가가 될 수도 있고, 쉽게 성공할 수도 있다. 학교 사람들도 나를 함부로 못 건드린다.

    그러니, 나한테 잘 보여라. 대충 그런 말이었겠지. 저 녀석들은 그 말을 철석같이 믿었을 테고.

    그런데 그런 공태준이 나가리가 되어 버렸으니, 이 세 명 입장에선 발등에 불이 떨어진 격이리라.

    “지금까지 믿었던 공태준은 하루아침에 날아갔고, 지금 와서 다시 공부를 시작하고 소설을 배우기에는 어영부영 보냈던 시간이 너무 많아. 아주 머리가 아팠겠지.”

    말하고 보니 진짜 어이가 없었다. 공태준은 빽이라도 있으니 놀았고, 의재는 따로 노력은 안 했을지언정 자기 할 일은 했었는데, 이 자식들은 대체 무슨 깡으로 잘 알지도 못하는 사람의 말 몇 마디에 홀라당 넘어가서 청춘을 냅다 까먹었을까?

    “…그렇게 어쩌지 어쩌지 하고 있는데, 갑자기 연수가 형우한테 소설을 배워서 웹소설로 성공했다는 소식이 들리네? 아, 그러면 나도 개과천선한 척 저 녀석한테 가서 글 좀 알려달라고 해야겠다. 어차피 김형우는 착한 놈이니 용서해 주겠지. 용서 안 해주면 우리도 피해자인 척 공감대 만들면 봐줄 거야. 지금 딱 그 마인드 아냐?”

    형우의 말이 정곡을 찔렀는지, 애매함 트리오의 얼굴이 바로 싹 굳었다.

    “…그걸 어떻게….”

    “…알았냐고? 당연한 거잖아.”

    형우가 씩 웃었다.

    “니들이 이 학교에서 제일 멍청한 놈들이니까. 무슨 생각하는지는 뻔하다고.”

    “뭐얏!”

    결국 애매함 트리오중 가장 성격이 급한 정한구가 형우의 어깨를 향해 손을 뻗었다. 그 셋 중에서는 제일 덩치가 크기는 한데, 그래봐야 공태준만큼 큰 것도 아니고.

    부우우웅!

    대충 잡아서 넘겨버리기에는 충분한 무게였다.

    녀석이 땅에 부딪히기 직전에, 팔을 당겨서 충격을 줄여 줬다. 안 그랬으면, 정한구 녀석 아마 어깨뼈에 금 정도는 갔을 거다.

    아무리 그래도 깽값 무는 건 사양이란 말이지.

    “…허억.”

    그 모습을 본 남은 두 놈, 그러니까 최태훈과 유지석이 입을 떡 벌렸다.

    “뭐.”

    형우가 그 두 놈을 보며 눈을 부라렸다.

    더 할 말 없으면 당장 꺼져라, 그런 뜻이었다.

    그리고 놈들은 진짜로 꺼졌다.

    “…끈기도 없는 놈들.”

    소설도 좀 될성부른 놈들한테나 가르치는 거지, 이깟 놈들한테는 절대 안 가르쳐 준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