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6
런칭을 시작하고 한 달.
<아이언 타이거>는 이제 5위 안에 완전히 안착했다. 걱정했던 것에 비하면 상당히 괜찮은 성장세였다.
유입률은 여전히 낮은 편이었지만, 이탈률은 그것보다 더 낮았다. 연독률을 꾸준히 유지한다는 것 자체가 형우는 꽤 만족스럽게 느껴졌다.
“너는 조회수가 계단 모양으로 오르더라.”
형우가 연수에게 말했다.
계단 모양의 그래프는 독자 유입이 폭발적으로 증가했다는 뜻이었다.
“지난 한 달 조회수가 두 배로 뛰었지, 아마?”
“맞아요.”
연수가 히힛 하고 웃었다.
“입소문을 좀 잘 탔나 봐요.”
그 말대로, 처음에 20위권 끄트머리에서 시작했던 연수의 작품, <멸망한 세계의 무도가>는 한 달 사이 11위까지 치고 올라왔다.
“조만간 선배 작품 이기는 거 아녜요?”
“뭐?”
형우가 피식, 하고 웃었다.
“힘들 것 같은데. 나 다음 화가 하이라이트거든.”
“엥, 어제도 다음 화가 하이라이트라면서요.”
“<아이언 타이거>는 매화가 하이라이트야.”
“…어떻게 그런 말을 눈 하나 안 깜빡이고 해요? 선배 진짜 가끔 이상하다니까?”
연수가 핀잔을 줬다. 말은 이렇게 했지만, 요즘 연수의 소설 상승세가 좀 만만치 않다.
스패로우 팩토리를 경영하는 지원과 혜선이야 입이 귀에 걸리다 못해 광대가 끓어오를 일이지만, 막상 연수를 가르친 형우는 약간 밍숭맹숭한 기분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이러다 진짜 신인상 뺏기는 거 아냐?’
매년 12월에 열리는 시리즈 장르소설 어워드.
각 부문마다 상을 하나씩 주는데, 형우가 노리는 게 바로 ‘신인상’이었다.
올해를 쭉 본다면 형우와 비슷한 성적을 낸 작가는 몇 명 있었지만, 신인은 자기밖에 없었다.
그래서 신인상은 무조건 먹겠구나 생각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대형신인인 연수가 빠밤 하고 등장을 해 버렸다.
‘…내가 호랑이 새끼를 키웠나?’
그렇다면, 아주 좋은 일이라고 생각했다.
* * *
“야, 너는 이 힘든 걸 어떻게 매일 하냐?”
예전에 의재가 그렇게 물은 적이 있었다. 한창 웹툰을 배우기 시작했을 때였다.
송의진 선생님의 엄한 가르침 아래 매일같이 머리를 쥐어짜고, 구도 공부를 하는 나날이었다.
“진짜 머리에 쥐 날 것 같아.”
웹소설 원작 웹툰이면 단순히 있는 스토리에 그림만 붙이면 될 것 같지만, 사실은 그렇게 생각만큼 만만하지는 않다.
애초에 그렇게 쉬운 일이었으면 유명 소설이나 만화 원작 영화는 다 흥행했겠지.
하지만 모두가 알듯이, 가끔은 원작이 있는데도 폭삭 말아먹는 것들이 생긴다.
“<쇳덩이의 연금술사> 영화판?”
“…나 그거 영화관에서 봤다. 워낙 좋아하던 작품이라서.”
“넌 <드라군볼 에볼루션>도 영화관에서 봤잖아.”
“…내가 원작자였으면 감독 멱살 잡았어 진짜.”
한국에서 20년 전쯤에 활동하던 아이돌이 준 주연 역할로 나온 것 빼고는 정말이지 건질 게 없는 영화였다.
아무튼, 매체를 변경하는 건 언제나 어렵다. 가장 변화가 적다고 평가받는 만화→애니매이션의 각색만 봐도 말아먹는 작품이 수두룩 빽빽인데, 문자매체인 소설을 시각매체인 웹툰으로 바꾸는 게 어떻게 쉬운 일이겠는가.
연출, 구도, 작화 등, 신경 써야 할 것들이 한둘이 아니다. 그리고 그 모든 것은 당연하게도 창의성을 엄청 많이 요구한다.
어쩌면 스토리를 짜내는 것보다 더 많이.
“…그래도 난 네 연출이 꽤 마음에 들어. 아, 근데 여기는 고치자.”
형우가 의재의 이번 콘티의 몇 부분을 지적했다. 대부분은 캐릭터의 감정표현에 관한 서브텍스트 부분이었다.
“여기서는 베아트리체가 헤럴드를 ‘힐끔’ 쳐다보는 게 아니라 ‘뚫어져라’ 쳐다보는 게 맞는 것 같아.”
“좋아하는 마음을 숨기려고 하는 거 아냐? 그러면 힐끔거려야지. 로맨틱 코미디도 안 봤냐?”
“베아트리체라면 자기 감정에 솔직하기보다 자기 감정을 이기려고 들 거야. 그런 캐릭터니까.”
“오호.”
약 20분 정도 캐릭터에 대해 설명한 후, 형우는 의재의 어깨를 탁 쳤다.
“뭐, 그래도 처음에 비하면 더 좋아진 것 같아.”
“처음이 그렇게 안 좋았나?”
“아니, 처음에도 괜찮았는데 더 좋아졌다고.”
의재가 머리를 긁적거리다 한숨을 푹 쉬었다.
“괜히 좋게 이야기해줄 필요 없어. 나도 아직 갈길 먼거 알아.”
“진짜 좋은데.”
“…그렇게 말해주다니, 넌 진짜 좋은 친구구나.”
“아니, 진짜 좋다고.”
“널 만나서 다행이다, 형우야.”
“…아니 씨.”
몇 번이나 네 웹툰 진짜로 좋다고 말을 해도 믿지를 않았다. 본인 마음에 안 찬다는 거겠지.
하기야, 쉽게 만족하는 것보다야 만족을 모르는 쪽이 본인은 괴롭더라도 발전은 빠르다.
한국의 농구 스타인 서중훈도 그렇게 말하지 않았던가. 자기는 한 번도 농구를 즐겁다고 생각해 본 적이 없다고.
“…진짜 매일매일이 힘드네, 창작이란 거.”
“좀 그렇기는 해.”
“사람들이 창작의 고통, 창작의 고통 할 때는 반쯤 구란 줄 알았는데, 이거 진짜 고통이야.”
“똥을 기억해라, 벌써 잊었냐?”
“…그걸 어떻게 잊어.”
똥을 기억하라는 말은 한다은 교수님이 즐겨 쓰셨던 말이다. 그 쓸모없고 더러운 똥 하나 만드는 데만 해도 인간의 오장육부를 죄다 쥐어짜야 하는데, 세련된 소설을 만드는 건 얼마나 힘들겠느냐, 뭐 그런 뜻이었다.
“…매시간 그 말 하셨지.”
“맞아. 그 시간 다음이 점심시간이었는데.”
“학교 앞 카레집 사장님이 왜 갑자기 이번 학기엔 매출이 절반으로 줄었냐고 따지고 그랬어.”
“…으음.”
뭔가 똥똥거리니까 기분이 좀 이상했다. 의재가 재빨리 화제를 바꿨다.
“그래서 말인데, 형우야. 너는 어떻게 그렇게 매일 영감이 나오냐?”
“영감은 나오는 게 아냐. 찾는 거지.”
영감은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온 몸을 던져 찾아내는 것이다. 여기까지는 교과서에 나오는 말이다.
“어디서 찾아? 주변 환경? 가족? 사회? 다른 소설? 영화? 드라마?”
“그것들도 좋지만, 가장 좋은 건 따로 있지.”
“그게 뭔데?”
“다가오는 마감 시간.”
도스토예프스키가 인류사 최고의 명작인 <죄와 벌>을 쓴 이유는 도박 빚 때문이었다.
“러시아 사람들 알지? 불곰도 패잖아.”
“그치.”
“근데 러시아 사채업자는 그런 러시아인을 패잖아.”
불곰보다 강한 러시아인을 패는 러시아 사채업자. 그런 사람이 뒤에서 칼을 갈며(은유적인 표현이 아니다!) 자신을 쳐다보고 있다고 생각하면, 누구라도 온 힘을 다해 소설을 쓸 수밖에 없을 테다.
“그 사람은 진짜 목숨 걸고 소설 쓴 거야.”
“이게 비유가 아니네.”
“나는 목숨은 안 걸지만, 좀 절박하게 쓰긴 해. 절박함을 셀프로 만드는 것도 능력이라면 능력이지.”
“그, 일부러 게임 난도 높이는 거랑 비슷한 건가?”
“그거지.”
“너는 그, 난도 상승을 어떻게 시키는데?”
“라이벌을 만들지.”
형우가 연수를 보고 기뻐했던 이유다.
라이벌과 목표는 다르다. 유소년 축구선수가 ‘나는 메시 같은 축구선수가 될 거야!’라고 할 수는 있지만, ‘메시는 내 라이벌이야!’라고 할 수는 없는 거다.
메시랑 라이벌이 되려면 호날두는 아닐지라도 그 아래인 네이마르, 수아레즈, 드록바 급은 돼야 그렇게 말해 볼 수라도 있다. 최소한 비빌 구석은 있어야 한다는 뜻이다.
“그리고, 라이벌은 가까이 있을수록 좋아.”
“…그런가?”
“어. 나 군대 있을 때 이야기인데, 80km 행군을 한번 했거든.”
처음엔 자신만만하게 시작했는데, 한 30km 가니 진짜 너무 힘들어서 쓰러지고 싶었다.
“그런데 내 옆에 가는 놈이 안 쓰러지는 거야. 좀 친한 동기였는데.”
“아, 무슨 느낌인지 알아.”
“그치, 내가 쟤보다는 무조건 낫다. 자존심이 있지, 쟤보다는 더 많이 간다. 그런 느낌?”
그 동기는 끝까지 쓰러지지 않았고, 형우도 결국 동기를 따라 80km를 완주했다.
“나중에 물어보니까, 걔도 나보고 똑같은 생각 했다더라.”
서로가 서로를 바라보면서, ‘쟤한테는 안 진다.’ ‘쟤는 뭔데 안 쓰러져? 독한 놈!’이라고 생각하며 끝까지 걸어간 것이다.
“그러니까, 주위에서 좀 ‘내가 적어도 얘보다는 낫다.’ 싶은 놈으로 라이벌 하나 골라잡아.”
“얘보단 내가 낫다 싶은 애?”
의재의 시선이 자연스럽게 형우 쪽으로 향했다.
“……야, 너 설마.”
형우가 어이없다는 듯 손을 내저었다. 하지만 의재의 시선은 여전히 떠나지 않았다.
“…진짜 나라고?”
“너보단 내가 낫지.”
“나 유명 소설간데?”
“난 유명 만화가거든?”
…어어, 딱히 할 말이 없기는 했다.
“그거 내 소설이 원작이잖아.”
“언제는 만화랑 소설은 별개라며?”
“그건 맞긴 한데….”
잠깐 고민하다가, 좀 유치하게 나갔다.
“의재 넌 장학금 받아본 적 없잖아. 등록금 다 내고 학교 다녔죠?”
“응, 공모전 40회 광탈. 열심히 번 장학금 다 우체국에 가져다 바쳤죠?”
“응, F학점 받고 재수강했죠? 학교에 등록금 추가 입금했죠?”
“응 아니야. 그 수업 학점포기했어.”
“자랑이다.”
“응, 대학 생활 내내 모쏠.”
“그거랑 작품활동이랑 뭔 상관이냐?”
“보들레르가 그랬지, 사랑을 모르는 사람은 시인의 심장을 가질 수 없다고.”
형우가 놀랍다는 듯 입을 쩍 벌렸다.
“뭐야, 너 의재 아니지.”
“어?”
“내 친구 의재가 저렇게 긴 말을 외울 수 있을 리가 없는데?”
의재가 발끈했다.
“이 자식이! 나도 한국대학교 학생이야! 너 프랑스어 할 줄 아냐? 원어로 읽어 줘?”
“어?”
형우가 아까보다 두 배는 더 놀랍다는 듯, 과장스럽게 허억! 소리를 냈다.
“…맞네. 너도 나랑 같은 대학이었지.”
“뭐야?”
아차 싶었다.
그 말을 들은 의재는 정말로 상처를 많이 받은 것 같았다.
“저, 의재야?”
“뭐.”
“그게….”
어떻게 사과해야 의재한테 먹힐까 고민하던 형우는, 곧 괜찮은 답을 떠올렸다.
“고기 먹을래? 내가 살게.”
“…고기?”
의재의 눈이 번쩍 떠졌다.
역시, 기분이 저기압일 땐 고기 앞으로 가면 풀린다.
* * *
삐진 의재를 달래주는데는 삼겹살 5만 7천원어치가 들었다.
사실 중간에 ‘삐졌냐?’라는 말만 안 했어도 그 반값이면 충분했을 텐데. 사람이 화났을 때 ‘삐졌냐?’, ‘지금 울어?’, ‘혹시 화난 거 아니지?’라고 물어보면 역효과라는 것을 다시 한번 배웠다.
“뺘악!”
뒤늦게 돌아온 형우를 보고 참치가 아는 체를 했다. 날개를 퍼덕거리며 형우의 손을 힐끔거리며 살피는 걸 보니, 아마 뭘 사 왔나 보는 것 같다.
“여깄어.”
형우는 고깃집 앞에서 파는 뻥튀기 과자를 한 아름 내밀었다. 뻥튀기는 참치가 제일 좋아하는 간식 중 하나였다.
옴뇸뇸!
그런 소리를 내며 참치가 뻥튀기를 와작와작 씹었다.
형우는 새끼손가락으로 그런 참치의 머리를 살살 쓰다듬으며, 이전에 사 뒀던 책을 펼쳐 들었다.
<북유럽 신화>, <그리스 로마 신화>로 시작되는 신화집부터, 흔히 3대 판타지로 분류되는 <목걸이의 제왕>, <나니아 연대기>, <어스시의 마법사> 시리즈와 김용 작가의 <신조협려> <의천도룡기>까지.
형우가 요즘 읽고 있는 건 최신 웹소설이 아니라 50년, 100년 전에 쓰인 장르소설들이었다.
‘옛날 소설에 비해 요즘 소설은 영….’이라는 꼰대스러운 말을 하려는 건 아니다. 그런 말들은 죄다 결과론이라는 걸 알기 때문이다.
옛날 소설이 좋은 이유는 간단하다. 안 좋은 소설들이 죄다 잊혔기 때문이다. 현대문학의 아버지인 셰익스피어와 세르반테스의 시대에도 수준 미달의 작품은 많았고, ‘추리소설의 황금기’라고 불리는 아가사 크리스티와 엘러리 퀸의 시대는 당시에 ‘펄프픽션의 시대’라고 매도당했다.
지금이라고 뭐 다를까. 한 20년이 더 지나면, 사람들은 지금 웹소설의 99.9%는 잊어버릴 거다. 그 시대의 사람들은 남은 0.1%의 마스터피스를 회상하면서 ‘2020년대 소설이 참 좋았는데.’라고 생각할 것이 분명하다.
그리고 형우는 이왕이면 자신의 소설이 그 0.1%에 들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런 연유로, 시대를 뛰어넘는 힘을 가진 작품들을 고른 것이다.
‘진짜 미친 듯이 재밌네.’
처음에는 공부를 하려고 폈지만, 어느 순간 형우는 자기도 모르게 작품의 세계로 빠져들었다.
<신조협려>에서 소용녀가 ‘과이야’하고 주인공을 부를 때는 심장이 두근거렸고, 잊혀진 왕이 이끄는 백만의 유령 군세가 적들을 격퇴할 때는 자신도 모르게 아, 하고 탄성을 질렀다. 나무는 책이 되었고, 책들은 형우의 방에서 거대한 숲이 되었다.
활자를 마시는 느낌으로, 형우는 재빨리 소설 다음 권을 찾아 헤맸다.
책을 구매하기 위한 400만 원의 지출은 정말이지 하나도 아깝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그건 지출이 아니라 미래를 위한 투자였으므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