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5
이리저리 쓸 만큼 썼는데도 이만큼이나 남아 있었다.
2차, 3차 플랫폼에 웹툰화까지 겹치면서, 완결 난지 세 달이 넘은 현시점에서도 매달 몇백만 원씩은 꼬박꼬박 돈을 벌어다 주는 효자 중의 효자 작품.
그리고 형우는 <전설의 보안관>을 볼 때마다 부모가 효자에게 으레 느끼곤 하는 것과 비슷한 감정을 느꼈다.
“…더 잘 쓸 수 있었는데. 미안하다.”
끝발이 아쉬웠다.
초반부는 좋았으나, 후반으로 갈수록 약간 한계를 느꼈다.
몸이 안 좋아진 것도 이유 중의 하나였고, 장편을 연재한 것이 처음이다 보니 작품이 몇 번이고 꺾인 것도 좀 컸다.
“10점 만점으로 보면… 7점 정도인가.”
작품 하나로 억 단위의 돈을 손에 쥐었으면 만족할 만도 하건만, 형우는 오히려 갈증을 느꼈다.
아쉬움을 넘어서 어느새 미안함에 가까워진 감정. 형우는 소설 속 헤럴드와 베아트리체를 거의 실존 인물처럼 애정하고 있었다.
“…내가 조금만 더 글을 잘 썼더라면.”
옛날 게임인 <프린세X 메이커>로 비교하자면, 500점짜리 SS급 여왕 엔딩은 아니어도 200점짜리 A급 근위대장 엔딩쯤은 충분히 찍은 셈이지만, 그걸로 만족하기에는 뭔가 부족한 느낌이 들었다.
‘해리 포터와 헤르미온느는 조앤.K.롤링을 만나서 1조 3천억을 벌었고, 유종혁은 숑숑 작가님을 만나서 한 달에 16억짜리 작품이 됐는데, 헤럴드와 베아트리체는 하필 나를 만나서 여기서 멈춰버렸구나.’
게임에 하드 게이머가 있다면, 형우는 하드 노벨러나 하드 포에머라고 해야 할까.
모든 엔딩을 베스트로 봐야 성이 풀리는 하드 게이머처럼, 형우도 이왕이면 ‘명작’의 반열에 오를 만한 작품을 쓰고 싶었다.
누군가는 ‘웹소설 같은 스낵컬쳐에 명작이라고?’라고 비웃을 테지만, 고상함과 명작은 사실 큰 관련이 없다고, 형우는 생각했다.
명작을 쓰지 못한 이유는 자신이 웹소설 작가라 그런 것이 아니다. 그저,
“노력이 부족했을 뿐이야.”
그렇게 중얼거리며, 형우가 주먹을 꽉 쥐었다.
* * *
“허억, 허억!”
올해로 열한 살이 되는 딸의 아버지인 천을룡 씨는 15년 근속의 택배기사다.
지금까지 일하면서 물을 100통씩 시킨다던가, 음식물 쓰레기를 대신 버려달라던가, 차량을 쓰지 말고 손으로만 옮기라던가 하는 온갖 진상들을 다 만났던지라 적당한 일에는 눈도 깜짝하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오늘은 그 생각이 조금 바뀌었다.
‘무슨 책을 이렇게 많이 시켜?’
그것도 굵직굵직한 양장본들이다. 대충 보니 죄다 판타지 소설들인 것 같은데, 이 정도면 거의 서점 코너 한 장을 그대로 긁어온 수준이었다.
“아, 오셨네요.”
택배를 확인하자마자 안에서 트레이닝복을 입은 한 남자가 튀어나왔다.
“김형우 씨 맞으신가요?”
“네, 저예요. 어제부터 기다렸거든요!”
그 말을 증명이라도 하듯 그대로 신발을 신고 나와 배달 트럭 안 그득하게 쌓인 책들을 바라봤다.
“여기부터 여기까지죠?”
“네. 총 186권 맞죠?”
“넵. 잠시만요. 끄응, 차!”
그렇게 말하면서, 시키지도 않았는데 박스를 집어 들었다. 천을룡이 말렸다.
“어어, 손님. 그러지 않으셔도 됩니다. 제가 옮기겠습니다.”
“아녜요, 제 물건인데요. 저도 당연히 도와드려야지요. 이렇게 많이 시켜놓고 손 놓고 있으면 그것도 도리는 아니고요.”
“허어.”
익숙하지 못한 손님의 모습에, 김을룡이 어쩔 줄 모르겠다는 표정을 지었다.
형우는 그런 을룡을 뒤에 둔 채 영차, 영차, 하며 책들을 번쩍번쩍 들어 옮겼다.
“아, 얼음물에 오미자 준비해 놨으니까 끝나면 드시고 가세요! 엄마가 고향에서 보내 준 건데, 맛이 진짜 끝내주거든요.”
“뺘악! 뺘악!”
그 말이 맞다는 듯, 형우의 어깨 위에서 참치가 우짖었다.
그렇게 몇 분이 지나고, 두 남자는 땀을 뻘뻘 흘리면서 오미자 꿀물을 나눠 마셨다. 형우가 이야기를 먼저 꺼냈다.
“너무 제가 많이 시켰죠? 좀 죄송해서.”
그 말을 들은 천을룡이 하하 웃었다.
“하하, 죄송할 것 없습니다. 오미자 꿀물이 있는데 그깟 책 186권쯤이야, 아무것도 아니죠.”
반복되는 일을 할 때도 가끔 보람이 느껴질 때가 있다. 천을룡에게는 지금이 딱 그런 순간이었다.
* * *
심각한 형우와는 다르게, 스패로우 팩토리에서는 거의 잔치 비슷한 게 벌어졌다.
“<아이언 타이거>, 이번에 4위까지 찍었네요. 게다가 뭣보다 빠진 독자가 거의 없어요.”
“<멸망한 세계의 무도가>도 마찬가지예요. 사장님. 이번에 20위권에 안착했는데, 나쁘지 않아요.”
혜선과 일을 시작한 지 어언 한 달. 지원은 슬슬 혜선이라는 사람을 이해해 나가기 시작했다.
혜선이 나쁘지 않다고 말한다는 건, 정말로 딱 ‘나쁘지만 않다’라는 뜻이었으니까.
“<멸망한 세계의 무도가>에 뭐 문제가 있어요?”
“서연수 작가님이 장면전환에서 좀 약해요.”
“전달은 했나요?”
“네. 바로 전화로 이야기했습니다.”
장면전환이 약하다는 이야기를 들은 연수는 약간 당황한 것처럼 보였다.
애매한 장면전환은 독자에게 혼란을 줄 수 있다. 동전을 뒤집듯 홱홱 돌리는 게 아니라, 문어가 자신의 몸을 바꾸듯 자연스러워야 한다고 설명했다.
그렇게 <멸망한 세계의 무도가>의 급한 불을 끈 다음에, 혜선이 본 것은 <아이언 타이거>였다. 연수의 작품에 비하면 몇 배는 진중하고 어두침침한 내용이었지만, 혜선은 오히려 그 내용에서 편안함을 느꼈다.
“학교 다닐 때부터 어느 정도 알긴 했는데, 글 진짜 잘 쓰더라고요.”
“이번에 4위까지 찍었죠?”
“3위도 갈 만한데.”
지표를 말할 때마다 혜선과 지원의 입에서는 미소가 떠나지를 않았다.
“<아이언 타이거>가 몇 화 구성이라고 했었죠?”
“형우한테 듣기로는 300화 정도요.”
“으음, 500화까지는 늘려도 될 것 같은데요.”
판타지 소설의 시작이 톨킨의 <반지의 제왕>이라면, 무협에는 중국의 작가인 김용이 있다.
어느 날 한 기자가 김용에게 물었다. 어떤 무협소설이 재밌는 무협 소설인가요?
그러자 김용은 대답했다고 한다. 무협 소설은 장편일수록 재밌다고 말이다.
물론 소설이 무조건 길게 늘여 쓴다고 재밌어지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재미가 없는 소설은 애초에 길게 쓸 수가 없다.
소설이 안 팔리면 쓸 맛이 안 난다. 쓸 맛이 나더라도, 돈이 안 된다. 아무리 자신의 작품에 대한 애착이 강한 작가라도, 밥을 굶으면서까지 예술혼을 불태울 수는 없는 법이다.
예술혼이라는 것도 결국에는 칼로리가 필요한 법이니 말이다.
그리고 김용의 이 말은 현대 웹소설에서도 어느 정도는 그대로 적용이 된다.
본래 200화 구성이었던 것이 잘 팔리면 300화, 400화로도 늘어나고, 역으로 안 팔리면 100화쯤에서 조기 종결이 날 수도 있는 것이다.
슬프기는 해도, 시장 질서란 본래 이런 법이다.
“…어, 방금 3위 됐네요, 대박.”
혜선이 말했다.
“3위에서 6위까지 왔다 갔다 하는 건가요?”
“5시에 피크를 찍고, 11시 이후에 6위까지 가는 걸 보니… 주로 학생들이 글을 읽나 봐요.”
직장인이 좋아하는 작품은 출근하는 7시와 퇴근시간인 오후 8시쯤에 피크를 찍는다.
반면 학생들이 좋아하는 작품은 등교하는 8시와 하교하는 5시가 피크였다.
“좀 잔인하고 어두운 이야기라 학생들이 좋아하나 보네요.”
혜선의 분석에, 지원이 물음표를 띄웠다.
“그 반대 아니에요?”
“에이, 사장님. 요즘 애들 진짜 잘 모르시는구나. 애들이 잔인한 거 얼마나 좋아하는데요.”
“정말요?”
“네. 근데 잔인한 영화나 드라마 같은 건 보통 19세 걸려 있고 보기도 번거로우니까, 웹소설 같은 걸 대신 보는 거죠. 아무래도 영상매체에 비하면 허들이 좀 낮으니까?”
“…직장인들이 잔인한 거 좋아하는 줄 알았는데.”
“그 사람들은요. 적당히 잔인한 걸로는 눈도 깜짝 안 해요. 사장님도 알잖아요.”
“뭘 알아요?”
“직장 상사 얼굴보다 끔찍한 게 세상에 별로 없다는 거.”
“…그거 혹시 저 들으라고 하는 말?”
혜선이 아, 소리를 냈다.
“그건 아닌데. 그렇게 들렸어요?”
“조금요.”
“…아니에요.”
“농담이에요. 제가 사장 명의는 달고 있긴 하지만 일단은 혜선 씨나 저나 같은 공동 대표니까요. 같은 거죠.”
“지분 차이가 좀 크긴 하지만, 말이죠?”
스패로우 팩토리는 자본금 1억 5천으로 시작한 스타트업이었다.
그중 가장 지분이 큰 건 1억을 투자한 지원이었고, 그다음은 3천을 투자한 형우였다.
천우희와 혜선은 나란히 천씩 냈고, 연수는 150만 원을 투자했다.
비율로 따지자면, 지원이 66%, 형우가 20%, 혜선과 천우희가 각각 6.6%, 연수가 1%다.
“좀 더 투자할 걸 그랬나.”
“에이, 아직 주식회사도 아닌데 지분까지 신경 쓸 거 뭐 있어요. 게다가 아직은 수익도 안 나는데요.”
<아이언 타이거>의 이번 달 예상 매출액은 1,500만 원 정도다.
이중 30%는 플랫폼 수수료로 나가고, 50%는 작가의 몫이니, 회사로 오는 건 20%인 300만 원 정도다.
“<멸망한 세계의 무도가>는 그보다 조금 적긴 하지만, 매출액 천만 정도는 찍을 것 같아요.”
“그러면 회사 이익은 200이네요.”
“어쩌면 300이 될 수도 있고요.”
그렇게 된다면, 형우와 연수만으로 출판사가 벌어들인 돈은 600만 원 정도다.
“월세 빼면 남는 것도 없네요.”
말은 그렇게 했지만, 지원의 표정은 그렇게 나빠 보이지 않았다. 당연한 일이었다.
“이제 시작일 뿐이니까요.”
C&N에 있을 때는 작가 15명을 담당했었는데, 지금은 고작 두 명뿐이다.
반대로 이야기하면, 지금으로서는 작가 두 명으로도 충분히 회사가 굴러간다는 뜻이었다.
“그러니까, 앞으로 구하는 작가들은 죄다 수익이라는 이야기죠.”
“맞아요, 사장님.”
“그런 의미로, 저는 천우희 작가님 신작 상담하러 갈 건데, 혜선 씨는요?”
“저는 모니터링이요. 이번에 쓸만한 작가 몇 명한테 컨택을 넣었거든요.”
“으음.”
지원이 약간 걱정된다는 투로 말했다.
“…신생 출판사라 잘 오려고 하지는 않을 텐데. 작품도 두 개뿐이고.”
“이번에 천우희 작가님 작품 받으러 가시는 거 아녜요? 그럼 세 개죠.”
“세 개라고 해도 많지는 않죠. 보통 출판사라고 하면 아무리 작아도 작가 서른 명은 데리고 있는데. 체스로 치자면 말이 세 개뿐인 느낌?”
“사장님 말이 맞기는 한데….”
혜선이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 세 개가 전부 퀸이라는 점을 잘 어필해 봐야죠.”
혜선의 비유는 정말이지, 지원의 마음에 쏙 들었다.
* * *
[웹소설 시스터즈의 오늘의 웹소설 한줄평! : <아이언 타이거>는 마치 민트초코와 같다. 비록 시작할 때 호불호는 갈리지만, 일단 ‘호’가 된 순간 놓칠 수 없기 때문.]
현주면주 : 민트초코에 불호가 어딨음?
멍애 : 민트초코에 호가 어딨음?
현주면주 : 맛알못;
멍애 : 님 혹시 하와이안피자도 먹음?
현주면주 : 파인애플은 익히면 맛있어짐.
멍애 : 윽
[연수 작가, <멸망한 세계의 무도가> 프로모션 시작!]
3대500침 : 이거 진짜 명작인데 왜 안뜨지?
바끄무성 : 근데 이거 작가님 이름 연수인데, 혹시 여자임? 그러면 대박인데.
하빕 : 여자 작가는 이런 장르 잘 안쓰지 않나? 도로연수, 어학연수 할 때 연수인 듯.
스턴건 : 왜. 축구와 격투기와 군대이야기를 좋아하는 여성 작가분이 계실 수도 있지.
원펀치쓰리강냉이 : 제가 체육관 관장인데, 여자들이 제일 싫어하는게 격투기 이야기임. 체감상 군대축구보다 더 싫어함.
디스이즈스파르타 : 성급한 일반화임.
원펀치쓰리강냉이 : 체육관 30년했는데 대체 얼마나 더해야 안 성급한 일반화 됨?
코리안좀비 : 근데 이거 진짜 잼씀. 작가님 격투기 지식 상상 이상임.
멍애 : 댓글 단 사람들 아이디만 봐도 소설의 전문성이 예상가네요;
[올해 12윌, 웹소설 어워드 대상은 어떤 소설이? 오늘부터 투표 시작!]
장장맨 : 아마 무조건 타이미 작가가 받을 듯.
론리아일랜드 : <전설의 보안관>은 받을만 하지 않나?
마타도르 : 에이 <전설의 보안관>나도 재밌게 보긴 했는데, 그래도 참새치 작가는 신인상으로 시작해야지.
소설괴물 : 대상은 아마 타이미 작가님이나 글땡땡 작가님이 받을 듯.
[지금까지 2타석 2홈런, 신규 출판사 ‘스패로우 팩토리’를 묻다!]
[스패로우 팩토리의 서지원 대표, ‘지금까지는 운이 좋았다’. 공동대표 신혜선 대표, ‘앞으로는 더 좋을 거다’.]
[천우희 작가 신작 <쓰면 예뻐지는 안경을 주웠다> 연재 시작!]
도깨비11 : 이제 5환데 벌써 재밌다. 역시 천우희 작가님!!!!
효블리 : 안경은 보통 벗어야 이뻐 보임.
뀨윰꾸 : 저는 벗어도 안 예쁜데 어째용? ㅠㅠ
효블리 : 상대 안경을 벗기라는 뜻임.
효블리 : 내 얼굴 인식을 못하게.
뀨윰꾸 ; 오 꿀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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