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4
지원의 솜씨로 이관 작업은 착착 진행되었고, 드디어 <아이언 타이거>의 유료화가 진행되는 날, 형우는 오랜만에 고향으로 올라왔다.
아무래도, 저번 <전설의 보안관>도 이곳에서 성공했다 보니, 약간 기를 받고 싶은 느낌이었다고 할까. 형우는 미신을 반만 믿었다. 그러니까, 나쁜 미신은 안 믿고 좋은 미신은 믿었다.
“이거 뭔데 내가 떨리냐.”
민준 삼촌이 옆에서 팔을 오소소 떨었다. 삼촌도 20년 넘게 작가로 살고 있지만, 신작 성적은 볼 때마다 심장이 벌렁벌렁한다고 했다.
“너 좀 얌전히 있어라. 아니면 가던가!”
형우의 어머니가 투덜거렸다. 말은 저렇게 했지만, 어머니의 표정에도 긴장한 기색이 역력했다.
무료시절 성적은 6위였지만, 유료로 넘어가면 어떻게 될지는 아무도 모른다. 심지어 달피아도 아니고 네이비에서 유료화가 진행되는 것이니 그 정도가 더했다.
“뭐 그리 호들갑이야.”
“이게 다 돈이랑 직결인데, 당연히 호들갑 떨어야죠, 누님!”
“자기 하고픈 거 하면서 사는 것만 해도 소중한 거지. 돈에 연연하는 거 아니다.”
“나 저저번 작품은 100위에서 시작했는데, 그때가 아마 한 달에 100만 원도 못 벌었지?”
“이 자식이, 불길한 소리 할래?”
“…아니, 방금은 돈에 연연하지 말라면서?”
“연연하진 않아도 배 곯을 정도면 안 되지! 그때가 그때로구나, 네가 하도 돈을 못 벌어서 우리 집에 쌀 빌리러 왔을 때….”
“아니 누님. 내가 언제 그랬소?”
“아 맞다, 빌린 게 아니라 훔쳤지. 우리 집 쌀독에서 쌀 훔쳐 달아나다가 논두렁에 빠져서 허우적거리던 게 엊그제 같구나, 민준아. 내가 진짜 쫓아가서 아작을 내주려다가 그게 너무 불쌍해서 참았었지.”
“…알고 있었소?”
“가져가려면 다 가져가던가, 반만 가져가기는!”
“다 가져가긴 좀 그래서….”
“어! 프로모션 떴다!”
실시간으로 판매량이 집계되는 달피아와는 다르게, 네이비시리즈는 24시간을 기준으로 판매량을 잡아 준다.
그 시간은 매일 아침 7시. 형우는 곧바로 네이비시리즈에 접속했다.
<전설의 보안관>의 참새치 작가 신작!
오직 시리즈에서만! <아이언 타이거>!
캔디 + 이용권 증정!
들어가자마자 자신의 소설과 관련된 큼지막한 배너가 보였다.
전작으로 대박을 터트린 형우니만큼 신작을 시작할 때 플랫폼에서 나름의 푸쉬를 해 줄 거라는 말을 지원에게 듣기는 했지만, 그래도 첫날부터 이렇게 밀어줄 거라고는 생각조차 못 했다.
“빨리 순위도 보자.”
민준 삼촌이 보챘다. 형우는 떨리는 손으로, 자신의 소설을 확인했다.
<아이언 타이거>, 일간 NOVEL 랭킹 7위.
“7위? 이거 7위 맞지? 17위도, 27위도 아니고 7위?”
“뭐냐, 민준아! 나도 알아듣게 말해라. 7위면 얼마 정도 버는 건데? 저번만큼 버냐?”
“저번만큼 벌죠! 달에 천!”
“달에 천? 또?”
민준 삼촌과 어머니가 소리를 질렀다.
미칠 듯한 선방이었다. 그와 동시에, 형우의 휴대폰이 지이잉 울렸다.
지원 : 선방이에요! 선방!
지원 : 독자들의 80%가 따라왔어요!
지원 : 축하드려요, 작가님! 게다가, 오늘부터 플모 붙었으니 앞으로 늘어날 일만 남았네요! 완ㄴㄴㄴ전마음ㅁ메들어!
마지막에 오타가 작렬한 걸 보니, 지원도 꽤 감개무량한 모양이다.
* * *
“형우야, 아까는 7위더니, 지금은 5위다.”
민준 삼촌은 한 시간마다 실시간 랭킹을 확인했다. 좋은 댓글이 있으면 읽어주기도 했다.
소설의 몰입도가 엄청 뛰어납니다. 독특하고 재밌는 작품이라고 생각합니다.
수많은 웹소설을 읽었다고 자부하지만, 이런 스타일은 또 신선하고 좋네요.^^
“이야, 다들 칭찬 일색이네. 이 정도로 잘 될지 몰랐는데.”
“왜요?”
“뭐, 내용이 좀 그렇잖냐.”
민준이 생각하는 웹소설은 출퇴근 시간 지하철에서 읽는 스낵컬쳐였다.
“그러다 보니, 일단 쉽게 읽히고 쉽게 이해되고 쉽게 사이다 빵빵 터지는 소설이 아니면 성공 못 할 줄 알았거든. 네 소설이 고구마라는 건 아닌데, 좀 진지하긴 하잖아?”
“그렇긴 하죠.”
“근데 왜 성공했을까?”
“으음, 틈새시장 아니었을까요?”
시장에는 언제나 틈새가 있다. 출판시장에도 예외는 아니다.
통쾌한 소설만 읽다 보면 가끔은 진지한 소설이 읽고 싶어지고, 진지한 소설을 읽다 보면 다시 통쾌하고 빠른 소설이 그리워지게 되는 것.
“운이 좋게 타이밍을 잘 맞춘 것 같아요.”
변화무쌍한 시장에서 운만으로 성공하는 건 불가능하지만, 성공을 위해서는 운이 반드시 따라줘야 한다는 게 형우의 생각이었다.
“운이라, 뭔 주식 이야기하는 것 같네.”
“에이, 주식이랑은 다르죠. 주식 성공한 사람치고 운 좋았다는 사람 본 적 없는데.”
“다들 실력이라고 그러기는 하지.”
“망한 사람은 운 없어서 망한다고 하고.”
“…형우야, 행여 주식은 하지 마라.”
“왜요? 삼촌도 돈 좀 날렸어요?”
“네 엄마한텐 비밀인데…….”
민준 삼촌이 소곤거렸다.
“…지금도 절찬리로 날려먹는 중이야.”
어쩐지, 요즘 표정이 영 안 좋아 보이더라니. 형우는 힐끔 옆을 바라봤다. 어머니는 형우와 민준이 이야기를 나누는 내내 방에서 전화기를 붙잡고 계셨다.
“어, 있잖아. <아이언 타이거> 그래, 그거 우리 아들이 쓴 건데. 작가가 달에 한 백만 원은 버냐고? 이 가시내, 저번에 말해 줬는데 또 멍청한 소리 한다. 우리 아들은 천만 원씩 벌어!”
…돈에 연연하지 말라더니.
누구보다 돈에 연연하는 어머니였다.
* * *
<아이언 타이거>의 성공적인 출발을 축하해주기 위해 온 것은 혜선이었다.
“축하해, 형우야.”
“…응.”
“아, 사장님은 다른 작가님들 미팅 가셨어.”
“사장님? 지원 편집자님 말하는 거야?”
“응. 나한테는 사장님이지.”
“맞네.”
형우가 고개를 끄덕였다.
혜선을 마주 보는 것은 여전히 꽤나 껄끄러운 일이었다.
7년 전에 고백했다 까였던 첫사랑이다.
마주 보는 게 편했으면, 그게 더 이상한 거 아니겠는가.
“뭐라도 좀 먹으러 갈까?”
“술로 하자.”
“술?”
혜선이 의외라는 듯 물었다.
“너 술 잘 안 마셨잖아.”
“그게 언제적 이야기야. 요즘은 나름 마셔.”
옛말에, 어색할 때는 일단 술부터 털어 넣으라고 하지 않았던가.
형우는 그 옛말을 한번 믿어 볼 요량이었다.
‘우희 작가님 말대로 루틴에 자유시간을 좀 넣어 놓기를 잘했네.’
델리스파이스의 노래 가사처럼, 다른 누군가를 생각하며 옛 연인과 술을 마시러 가는….
됐다. 너무 감성적이다.
지글지글-
형우가 혜선을 데리고 간 곳은, 예전에 자주 갔던 학교 앞의 삼겹살집이었다.
“여기는 여전하네.”
“그렇지 뭐.”
“가위 줘, 내가 구울게.”
혜선은 익숙한 듯이 삼겹살을 구웠다.
그리고 절반을 태워 먹었다.
“맞아, 너 고기 잘 못 굽잖아.”
“약간 탄 게 기생충이 죽어서 몸에 좋아.”
“…이 정도면 나까지 죽을 것 같은데?”
조금 시간이 지나니 농담도 슬슬 나왔다. 처음에는 일 이야기로 시작했다.
“<아이언 타이거> 추세 좋아. 독자 수는 좀 부족해도, 충성심으로 메꾸는 타입이랄까.”
“저번이랑 똑같네.”
“응. 아무래도 내용 자체가 무겁다 보니까 유입이 팍팍 늘어나지는 않을 거야. 내가 듣기로, 저번 <전설의 보안관> 때는 유입 신경 많이 썼다며?”
“그렇지.”
2차, 3차 플랫폼으로 유통처가 늘어나는 중에도, 유입을 늘리기 위해서 천우희에게 로맨스를 배우고, 글 스타일 자체도 몇 번인가 고쳤다.
“이번에는 그러지 마.”
“그러지 말라니?”
“괜히 유입 신경 써서 스타일 고치지 말고, 지금 스타일 그대로 우직하게 밀고 나가라고. <아이언 타이거>에는 그 방식이 좀 더 어울려.”
수많은 분석 끝에 혜선이 내린 결론이었다. 내친김에 혜선은 태블릿 PC를 꺼내 독자 추이까지 친절하게 설명해 줬다.
“봐봐, 달피아 때 성적인데, 1화 조회수는 12만인데 2화 조회수는 6만이지?”
“그렇네.”
“그리고 10화까지 가면 이게 3만까지 떨어져. 간단하게 말해서, 네 소설을 본 사람 네 명 중에서 세 명은 네 소설을 거부하는 거야. 다른 말로는 진입장벽이 높다는 거지.”
약간 씁쓸한 기분을 느끼며, 형우가 고개를 끄덕였다.
“실망한 표정 지을 필요 없어, 봐봐, 이건 유료화 이후 판매 추이인데, 첫날로부터 판매량이 거의 떨어지지 않잖아.”
“응.”
“첫날 이용권 판매량이 2만, 최신화 업로드 된 날에는 이용권 판매량이 1만 7천. 낙폭으로 따지면 고작 15%라는 거야.”
혜선이 말했다.
“네 소설을 좋아하는 독자는 4명 중 1명뿐이지만, 그 1명은 진짜 어지간한 일이 없으면 하차하지 않고 쫓아온다는 뜻이지. 다시 말해 애독자가 많다는 뜻이야.”
“그러니까, 애독자를 위해서 스타일 바꾸지 말고 가라?”
“바로 그거지.”
“그건 네 의견이야? 아니면 지원 편집자님 의견?”
“으음, 따지자면 내 의견에 가깝지. 지원 언니는 편집부에서만 일했었지만, 나는 플랫폼 개발을 해 봤으니까. 정량적인 분석은 아무래도 내가 더 자신이 있지.”
“대단하네.”
“그러니 월급 받는 거지.”
살짝 웃으며, 혜선이 한 손에 하나씩 소주잔을 들어 올렸다.
“자, 1시, 6시, 12시!”
그 방향을 따라 혜선이 재빠르게 소주잔을 뒤흔들었다. 도로시도 탈출 못 할 정도로 선명하고 큼지막한 회오리가 소주병 안에 담겼다.
“깡소주? 아니면 소맥?”
“깡소주로 해. 섞어 마시면 머리 아프더라.”
“오올, 형우. 술 감평도 할 줄 알고.”
“애 취급하는 거야?”
“어른 취급하는 거지. 애는 술 마시면 안 돼.”
“…뭐라 말해야 할지 모르겠네.”
“뭐라 해야 할 지 모르겠으면 그냥 노래나 불러. 너 잘 부르던 거 있잖아.”
“잘 부르던 거?”
“아웃싸이더 <외톨이>랑, 키네틱플로우 <몽환의 숲>.”
“아.”
…부끄러운 기억이었다.
* * *
“흐억.”
형우가 쓰린 위를 움켜잡으며 잠에서 깨어났다.
술은 인간을 과거로 보내준다더니, 어제는 너무 많이 과거로 갔다.
얼마나 많이 갔느냐면, 인간이 되기 전까지.
흐느적거리면서 네 발로 걸어 집에 들어왔다는 뜻이었다.
“…여기가 본가였으면 엄마한테 죽었겠는데.”
뺘아악!
멀리서 날카로운 부리가 날아오는 게 보였다. 형우의 늦잠 탓에 아침밥을 거르게 되어 기분이 별로 좋지 않은 참치였다.
본능적으로 고개를 숙이지 않았다면 또 머리카락이 한 움큼이나 빠질 뻔했다.
“…맛있냐?”
“뺘악!”
생쌀을 오독오독 씹어먹으며, 참치가 큰 소리를 냈다. 자세히 들어 보면 옴뇸뇸, 하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기도 하다.
“그래도 고맙네, 깨우지는 않아서.”
형우는 슬쩍 시간을 확인했다.
지금 시간은 10시. 루틴을 만든 지 일주일도 안 됐는데, 벌써 삐걱거린다.
“…지금이라도 지켜야지.”
타다다닥!
형우는 <아이언 타이거>의 집필을 바로 시작했다. 유료화 첫날, <아이언 타이거>의 일매출은 140만 원이 나왔다.
그중 형우가 가져가게 되는 건 절반보다 조금 더인 98만 원 정도.
이 추세를 유지한다면, 첫 달에 손에 쥐게 될 돈은 천만 원 정도다.
“…하지만 그렇게는 안 되겠지.”
새로 나온 소설은 마치 새로 개점한 음식점과도 비슷하다.
처음 일주일 정도에 사람이 가장 많이 몰린다는 이야기다.
“그러면… 예상 수익은 천만 정도인가.”
<전설의 보안관>의 첫달 수익이 1,700 정도였으니, 그보다는 조금 적은 수치.
하지만 딱히 아쉽게 생각하지는 않았다. 웹소설은 작게 시작해서 꾸준히 붙는 작품도 있고, 엄청 높은 데서 시작해서 점점 떨어지는 작품도 있으니.
결말이 나기 전까지는 계속해서 봐야 한다는 뜻이다.
“…작업 시작하기 전에 통장이나 한번 볼까.”
형우는 그대로 휴대폰 뱅킹에 들어갔다.
잔액 : 252,137,820
총 2억 5천만 원.
달피아 평균 구매율 16,000. 외전 포함 총 320화로 완결 난 <전설의 보안관>의 최종 성적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