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9
“그 점들은 정말 죄송하지만, 표절은 정말로 제가 한 게 아닙니다!”
고개를 넙죽 숙이는 공판석을 보며, 윤정식은 지친다는 듯이 한숨을 푹 내쉬었다.
“지금 그게 중요합니까? 회사가 좆되게 생겼는데? 일이 왜 이 지경까지 커진 겁니까!”
“…부회장님! 제가 알아서 잘 수습하겠습니다!”
“일개 편집장이 무슨 수로요?”
“아직까지는 기껏해야 인터넷 찌라시 수준입니다. 발 빠르게 대처하면….”
“후우, 그 말 책임질 수 있습니까?”
공판석이 굳은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거렸다.
“마지막입니다. 어차피 못 해내면 짤릴 테니, 온 힘을 다해야 할 겁니다.”
“명심하겠습니다.”
고개를 숙이는 공판석을 보며, 윤정식은 전화기를 들어 비서에게 지시했다.
“유명 기자들이랑 언론사 대표들, 다 모아서 일정 잡아 놔요. 그리고 의혹 해명글 올리고.”
“만나는 건 누가…?”
“제가 직접 만납니다.”
회사가 위기에 처했는데, 부회장이라는 사람이 뒷짐 지고 기다리고만 있는 것도 이상한 일이다.
어떻게든 회사를 살려내는 것. 지금으로서는 그게 가장 중요한 지상과제였다.
“…망할.”
고층빌딩의 유리 창문 아래, 걸어가는 수많은 사람의 정수리가 보였다.
이제는 아마, 저들과 눈을 마주쳐야 할 것이다.
* * *
“감사합니다, 정진욱 작가님.”
“내가 한 게 뭐가 있다고. 어차피 이렇게 됐을 건데.”
여론전의 첫 불씨를 SNS로 지피자는 것은 형우의 아이디어였다.
최근에 SNS를 시작하면서, 그 파급력이 어느 정도인지를 실감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런 형우를 도와줬던 것이 정진욱이었다
“그래도 정진욱 작가님 도움 없었으면 힘들었을 거예요. 역시 인플루언서는 좋네요.”
“…너 좋으라고 한 거 아냐. 내가 특별심사위원으로 참여한 공모전인데, 거기서 조작했다고 하니까 배알이 뒤틀려서 그런 거지.”
“아무튼 뭐, 나중에 밥이라도 한 번 살게요.”
그렇게 말한 뒤, 형우는 전화를 끊었다.
주변에 반짝거리는 네온사인 탓에 눈이 아팠다.
“이 근처인데.”
서울특별시 방이동의 맛집 거리.
밤의 거리는 마치 드라마 속 30년 전 서울을 보는 것 같았다. 어두운 네온사인 사이에서 직장인들이 술잔을 부딪히는 곳.
여기저기서 수많은 음식이 먹음직스러운 냄새를 풍겨댔지만, 오늘은 뭘 먹으려고 이곳에 온 것이 아니었다.
“저긴가?”
형우의 발걸음이 향하는 곳은 맛집 거리 중간에 위치한 초록색 간판의 편의점이었다.
취한 중년인 두 명이 담배를 피우며 떠드는 것을 뒤로한 채, 그대로 편의점의 문을 밀었다.
“어서 오세요.”
편의점 아르바이트생이 형우를 보고 고개를 푹 숙였다. 그 바른 인사성은 5년 전과 달라지지 않았다.
형우는 천천히 시선을 움직여, 그 알바생의 가슴팍에 적힌 명찰을 바라봤다.
[세븐25 – 신혜선]
5년 전, 조현수와 함께 과탑을 달리던 한국대학교 문창과의 수재이자, 형우의 첫사랑의 이름이었다.
* * *
“나는 사업을 할 거야.”
7년 전의 신혜선은 그렇게 말했다. 형우는 그 말을 듣고 기겁했다.
“문창과 나와서 무슨 사업이야? 너 공부도 잘하고 소설도 잘 쓰잖아.”
“문창과 나오면 꼭 글 쓰라는 법 있니?”
“그러면 편집자?”
“그것도 좋지만, 더 좋은 거.”
그렇게 말하며, 혜선은 자신의 휴대폰을 꺼내 흔들었다.
“난 플랫폼을 만들 거야.”
지금이야 커피콩페이지니, 네이비시리즈니 하면서 모바일 플랫폼이 활성화되어 있지만, 7년 전만 해도 세상에는 그런 것이 잘 알려져 있지 않았다. 애초에 시리즈와 페이지가 런칭하기도 전 이야기였다.
“이제 몇 년만 지나면 종이책 시대는 가고 E-book 시대가 올 거야! 그리고 난 그 시대를 앞서가는 사람이 되는 거지. 부우웅! 하고!”
늘 엉뚱하고 기발한 소설을 쓰는 혜선이었고, 엉뚱하고 기발한 말을 하는 혜선이었다.
“그러니까 네 고백은 좀 미뤄 두지 뭐. 나중에 내가 엄청 성공하면, 그때 다시 받는 걸로.”
그리고 7년 후, 혜선의 예언은 그대로 이루어졌다. 인터넷 도서 시장 규모가 실물 도서 시장을 슬슬 앞서기 시작한 것이다.
하지만, 그 거대한 격변 속에서 혜선의 이름은 어디에도 없었다. 지금까지는 그 이유를 몰랐는데, 어제 공태준에게 들었다.
“걔, 사업 실패했거든.”
혜선은 졸업하자마자 자신의 마음에 맞는 학생들 몇 명을 모아 스타트업을 시작했다고 했다.
그녀다운 포부, 그녀다운 노력이었다. 나름의 성과도 있었다.
그렇게 하루하루 꿈을 키우고 있을 때, 한 남자가 혜선을 찾아왔다.
‘윤정식입니다. C&N의 부회장이지요. 단도직입적으로 말하겠습니다. 저는 혜선 씨의 플랫폼이 꽤 마음에 듭니다. 저희한테 파실 생각은 혹시 없으십니까?’
회사를 팔아라- 라는 제안.
‘죄송합니다. 저는 스스로 키워보고 싶어요.’
혜선은 그 제안을 거절했다. 그리고, 그날부터 이상한 일이 일어났다.
‘저희 출판사에서는 더 이상 그쪽 플랫폼에 작품을 줄 생각이 없다니까요?’
연재 예정작들이 줄줄이 끊겨 나갔고.
[이 플랫폼 연재처로 어떰?]
[개구림. 그냥 다른데 가셈.]
[들어 보니 C&N에서도 플랫폼 사업 기획중이라던데. 좀만 존버하셈.]
인터넷 여론도 돌아섰다. 그렇게, 천천히 혜선의 회사는 망해갔다.
그리고 결국, C&N에 사이트를 팔아치웠다. 윤정식이 처음 제시했던 가격의 반의 반의 반도 안 되는 헐값이었다.
그 돈조차, 회사를 유지하기 위해 여기저기서 졌던 빚을 갚고 나니 남은 게 없었다.
‘실패한 스타트업 대표.’
졸업 후 3년간, 혜선이 얻은 타이틀은 그것뿐이었다. 그다음에는, 일단 직장을 구하려고 했다.
‘저희 출판사에서 일하기는 아무래도 좀….’
‘K출판사입니다. 더 좋은 기회 있으시기를 바랍니다.’
아무리 한국대생이라고 해도, 몇 년이나 스타트업에만 매진하느라 스펙도, 경험도 쌓지 못한 사람을 받아주는 회사는 그렇게 많지 않았다. 하필 전공이 문예창작인 것도 문제였다. 예술은 분야를 벗어나면 할 수 있는 일의 폭이 확연히 줄어들기 마련이니까.
그렇게 혜선이 찾아간 곳은, 소설토끼라는 자그마한 영세 출판사였다.
“맞아. 숙부가 전에 있었던 곳.”
그 이야기를 듣는 순간, 형우의 머릿속에 불길한 예감이 스쳐나갔다.
공판석이 C&N으로 이적하기 전 일했다던 출판사, 소설토끼.
그가 소설토끼에 재직할 당시, 자신이 저지른 잘못 하나를 신입 직원에게 뒤집어씌웠던 전적이 있었다고 들었다.
공판석이 소설토끼에서 일했던 시간과 혜선이 그 곳에서 일했던 시간이 절묘하게 겹쳐 들어갔다. 그렇다면 설마….
“그 설마가 맞을걸. 숙부 잘못을 뒤집어쓰고 나가리 된 애. 걔가 혜선이야.”
그 말을 듣는 순간, 공태준의 멱살을 잡고 있던 손아귀의 힘이 탁 풀렸다.
그때를 놓치지 않고, 공태준이 뒤로 한 걸음 물러났다.
“나도 우연히 들은 이야기야. 아무튼, 이제 알겠지? 숙부는 상종도 못 할 인간이라는 거. 내 잘못이 아니라는 거야!”
그 뒤로, 형우는 혜선을 수소문했다.
다행히 동기 중에서 연락을 하고 있는 애들이 몇 명 있었다.
겨우겨우, 몇 번이고 물어 혜선을 찾았다.
그렇게 포부가 넘치던 혜선이었는데.
우리 학번 중에서 가장 성공할 것 같은 사람을 꼽는다면, 늘 최다 득표를 받던 애였는데.
“저기요?”
형우가 망연히 혜선을 바라보자, 그녀가 형우를 불렀다.
“혹시 무슨 일 있으세요?”
“아니요. 아무 일도….”
그렇게 말하며, 형우는 재빨리 자리를 떠났다.
늘 당차고, 기발하고, 자존심이 강했던 그녀니만큼. 지금 모습을 보여주고 싶지는 않을 테니까.
‘나중에 보자, 나중에.’
그렇게 생각하며, 형우는 방이동의 맛집 골목을 터벅터벅 걸었다.
주변 여기저기서 음식 냄새가 풍겨왔지만, 배고프다는 느낌은 하나도 들지 않았다. 그저,
‘공판석.’
그 이름이, 미치도록 미웠을 뿐이다.
그렇게 바깥을 바라보며, 버스를 탔다.
어느새 10월도 거의 끝나가고, 유리창에 한숨이 맺히는 겨울이 왔다.
형우는 그대로 휴대폰을 들어 지원에게 전화를 걸었다.
“…예, 편집자님. 방금 확인했습니다. 공태준이 했던 말 중에 거짓말은 없어요.”
“그 정도면 충분히 좋은 무기가 될 수 있을 거예요. 그나저나, 작가님. 괜찮으세요? 목소리에 힘이 없는데요?”
“좀 추워서 그런가 봐요.”
“몸 따뜻하게 하고 계세요. 아, 그리고….”
지원이 생각났다는 듯이 덧붙였다.
“방금 C&N에서 사과문 올라온 거, 혹시 보셨나요?”
* * *
C&N 부회장 윤정식입니다.
먼저, 본의 아니게 독자분들과 작가 지망생분들에게 불편을 끼쳐드린 점 깊이 사과드립니다.
다만, 이번 공모전의 조작 논란에는 많은 오해가 있음을 이야기하고자 합니다.
이번 의혹은 <폭군전기>라는 최우수 수상작보다 그 아래 작품들이 더 퀄리티가 좋다는 이야기에서 시작되었습니다. 하지만, 저희 출판사 내부에서 검토를 거친 결과, 위 선정에는 문제가 없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지금까지 많은 성원을 보내주신 독자분들에게 다시 한번 사과드리며, 앞으로 더욱더 정진하는 C&N이 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C&N 부회장, 윤정식 올림.
“와우.”
내용을 읽자마자, 형우는 감탄사를 내뱉었다. 당연히, 사과문을 잘 써서 그런 건 아니다.
사과문을 작성할 때 절대 쓰지 말아야 할 단어들이 있다고 한다.
본의 아니게, 오해, 그럴 뜻은 없었지만, 억울합니다, 저만 잘못한 것은 아닙니다 등등.
‘보자, 본의 아니게는 있고, 오해도 있고….’
쓰지 말아야 할 단어 대부분이 다 들어갔다. 문제는 그것뿐만이 아니었다.
‘표절 관련 내용은 쏙 뺐네?’
쓰지 말라는 건 다 쓴 주제에, 정작 들어가야 할 내용은 빠졌다. 이게 대학교 논문이었으면, 분명 F를 받았을 게 분명했다.
막구@Mack9
다른건 모르겠고 소설로 벌어 먹고사는 출판사가 사과문을 저따위로 쓰는 거 보니까 저기 소설은 안 봐도 될 것 같다는 느낌이 듬.
…그렇게 생각하는 건 형우뿐이 아닌 모양이었다.
* * *
“아니, 왜 일이 커지기만 하지?”
시시각각으로 악화되는 여론을 바라보는 공판석의 얼굴도 시시각각으로 악화됐다.
분명 한국인은 냄비근성이다. 불이 붙어도 한 1주일쯤 지나면 잠잠해져야 하는 것이다. 심지어 최근에는 연예인 스캔들도 터졌고, 정치인 비리도 터졌고, 어느 회사 대표의 갑질도 터졌지 않은가.
그런 큼지막한 일들이 슉슉 터져 나왔는데, 이 이슈라는 것은 도저히 식을 생각을 안 했다. 이걸 덮기 위해서는 아마 북한이랑 전쟁이라도 나야 되지 싶었다.
[C&N이 욕먹는 이유]
[이번 C&N공모전 사태에 대해 한마디 하겠습니다.]
[C&N과 관련하여 제가 알고 있는 내용들.]
[전직 C&N 직원의 폭로!]
[공모전을 주최했던 C&N 직원이 작가들의 공격에 단 20초 만에 한 방 먹은 이유]
인터넷에 C&N이라고 검색하기만 해도, 이런 동영상들이 주르륵 떠올랐다.
“…UCC까지 만들어서 이 정도로 공격하다니? 네티즌들이 이렇게 무서웠나?”
애초에, ‘UCC’라던지 ‘네티즌’이라는 한물간 어색한 표현을 사용하는 시점에서, 인터넷 문화에 대한 공판석의 무지가 드러난 것과 다름없었다.
한국인이 ‘냄비근성’이라는 것도 이미 10년은 더 된 이야기다. 뉴튜브 세대의 한국인들은 절대 눈 감고 ‘난 몰라요.’라는 말로 식을 때까지 기다릴 수 있는 사람들이 아니다.
적절한 해명과 사과가 없으면 미쳐버리는, 정의로운 사이다에 환장하는 세대라는 거다.
[솔직히 C&N이 잘못한 거에 비해 지나치게 욕을 먹고 있다는 기분이 듭니다.]
혹시나 싶어 그런 글을 써 봤는데.
[C&N알바 ㅎㅇ]
[게시글 하나에 돈 얼마씩 받음?]
[전지적 C&N 시점이네 ㅋㅋ]
[분탕 ㄴ]
[C&N 나락ㅊㅋ]
온갖 악플들이 잔뜩 달렸다. 그 중에 ‘나락’은 모르는 단어라서 한번 찾아봤다.
유명하던 사람이 고꾸라지는 것을 비유한 신조어였다. 반대는 ‘극락’이라더라.
“허어.”
생각난 김에 C&N에 대해 검색을 좀 더 해 봤다. 개중에서 특이한 글이 하나 눈에 띄었다.
[C&N 본사 트럭 모금 중!]
트럭? 트럭이 뭐지? 아마 ‘나락’처럼 뭔가에 대한 비유인 것 같기는 했다.
그게 비유가 아니라 진짜 45톤 트럭을 의미하는 것이었을 줄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