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8
공태준이 초등학교를 다니고 있을 적.
“으아아앙!”
한 아이가 크게 울음을 터트렸다.
코에서는 코피가 나고 있었고, 허벅지에는 멍이 잔뜩 들었다.
“씨익, 씨익.”
공태준은 가쁜 숨을 내쉬며 그 아이의 위에 올라타 있었다. 자신의 승리였다.
“흐아앙, 내가 졌어, 태준아, 그만, 그만 때려!”
그렇게 울면서 도망쳤던 녀석은, 다음 날 위풍당당하게 교문을 열고 들어왔다. 자신의 어머니를 대동한 채로 말이다.
“네가 태준이니? 잠깐 아줌마 좀 볼까?”
그렇게 우리는 교무실에 갔다.
교무실에 들어가기까지는 상당히 떨렸다. 어쩌면 선생님들이 자신을 혼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선생님들은 그러지 않았다.
“태준이는 착한 아이입니다. 그럴 리가 없는데요. 오히려 학부모님의 아드님 쪽이….”
“애들끼리 싸운 걸로 넘어가시죠.”
“계속 우기시면 저희도 곤란합니다. 이 정도 일로 학폭위를 어떻게 열겠습니까?”
그 아줌마는 진짜로 억울했을 거다.
자기 아이는 코뼈가 부러지고 다리에 깁스를 했는데 학교 선생님들은 죄다 자기 아이 탓이라고 하니, 미쳐버릴 것 같았을 거다.
“태준아, 네가 말해 주렴. 정말 우리 애가 먼저 때렸니?”
마지막 방법으로, 아줌마는 공태준의 어깨를 붙잡고 물었다. 태준은 눈을 데굴데굴 굴려, 어깨를 움츠리고 앉은 아이의 발을 바라봤다.
‘짝퉁 신발.’
녀석이 짝퉁 신발을 신었기에 놀렸다.
놀렸는데, 녀석이 갑자기 울면서 덤볐다.
그래서 패 줬다. 그뿐이었다.
하지만 10살의 태준은 그렇게 하지 않았다.
“아닌데요, 아줌마. 전 그런 적 없어요.”
그렇게 대답했다. 이유라면 있었다.
“전 잘못한 게 없어요.”
…교무실의 앞에는, 태준의 어머니인 윤정아가 기다리고 있었다.
“오늘은 수업 듣지 말고 집에 가자꾸나. 태준아. 선생님들께는 잘 말해 뒀다.”
차를 타고 집에 가는 길, 어린 태준은 물었다.
“엄마. 사실은, 내가 먼저 걔를 놀렸어. 걔 신발이 짝퉁이었거든. 어쩌면 내가 잘못한 걸까?”
어린 태준의 질문에, 정아가 고개를 저었다.
“아냐, 태준아. 넌 아무 잘못도 없어.”
“정말? 내가 때렸는데도?”
“네 잘못은 하나밖에 없단다. 그런 일이 있었는데도 엄마한테 말하지 않았다는 거.”
그 말은 주문과도 같았다. 중학교 때도, 고등학교 때도 똑같았다. 심지어 군대에서도 그랬다. 부대의 대대장은 자신만 보면 설설 기었고, 자신은 2년간 황제처럼 군림했다.
무슨 짓을 해도 결과는 ‘내가 옳아, 난 틀리지 않았어.’로 끝났다.
‘엄마.’
엄마가 여기 있었더라면, 분명 또 네 잘못이 아니야 태준아. 그렇게 말해줬을 텐데.
집에 가고 싶었다.
“정신이 들어?”
다시 정신을 차리자마자, 형우의 얼굴이 보였다. 자신은 벽에 기댄 채였다.
“아무리 그래도 토사물 위에서 구르는 건 너무 보기 안 좋아서.”
그렇게 말하는 형우의 손에는 휴대폰이 들려 있었다.
“아, 이거.”
형우가 휴대폰을 공태준의 눈앞에 들이밀었다.
‘서지원 편집자님’이라는 글자가 보였다.
“C&N에서 일하시는 전담 매니저야. 방금 공판석이랑 만나고 오는 길이래. 알지?”
“판석… 숙부님?”
“맞아. 근데 내가 방금 재밌는 이야기를 하나 들었거든. 도작은 네 독단이라면서?”
“뭐?”
공태준이 펄쩍 뛰었다.
마치 충격받았다는 듯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무슨 개소리야! 도작이라니, 난 그런 거 안 했어!”
“…아니라고?”
“너도 4학년 창작실에서 내가 쓴 소설 봤다며? <타이런트>, 난 그거 그대로 냈다고!”
형우는 며칠 전 4학년 창작실에서 봤던 공태준의 <타이런트>를 떠올렸다.
확실하게, <타이런트>는 여러모로 부족한 작품이기는 했지만 표절 같은 부분은 없었다.
“나한테 덤터기 씌우고 꼬리를 자르려는 거야! 분명 숙부님이 그랬다고, 편집자인 자기만 믿으라고!”
“…정말 도작은 모르는 일이라고?”
“내가 그걸 어떻게 알아? 난 그냥 숙부님께 이번에 자기 출판사에서 공모전이 있으니 소설을 내 보라는 이야기만 들었어. 엄마도 그러라고 했고.”
그렇게 말하는 공태준은 진짜로 억울해 보였다. 그 앞에서 형우는 천천히 생각을 정리했다.
‘저 말이 사실이라면, 공태준은 표절과 조작에 직접적으로 연루되지 않았다는 건데….’
그건 공판석이 주장했던 ‘자신은 표절인 걸 몰랐다. 도작은 공태준의 단독 범행이다’라는 증언과 완전히 정반대였다.
‘둘 중 하나는 자기 살려고 거짓말하는 거네.’
숙부가 조카를 팔고, 조카가 숙부를 배신한다. 참 콩가루 집안이었다.
“아, 알았다! 숙부님이 우리 엄마한테 잘 보이고 싶어서 괜한 수작을 부린 게 분명해! 엄마는 예전부터 판석 삼촌을 별로 안 좋아했거든.”
“네 어머니라면, 윤정식 부회장의 누나?”
“맞아. 잘은 모르지만 C&N 지분도 꽤나 갖고 있을걸?”
편집장인 공판석이 부회장과, 부회장의 누나인 C&N 거대주주의 환심을 사기 위해 그들의 직계 가족인 공태준의 작품을 억지로 푸쉬해 줬다.
하지만 그게 너무 과했던 나머지 불법 행위를 저질러 버렸고, 자신의 지위를 잃고 싶지 않았던 공판석은 자신의 조카를 팔아넘겨서라도 어떻게든 살아남고자 한다는 건가?
꽤나 설득력 있는 말이었지만, 화자가 공태준이니 영 믿음이 안 갔다.
“…네 말을 어떻게 믿지?”
형우가 물었다. 아직까지는 어느 한쪽의 말만 믿고 뭔가를 결정하기가 애매했다.
공태준은 믿어달라는 듯 형우를 올려다봤다.
“나, 나 그래도 소설 쓰는 놈이야! 내가 미쳤다고 도작을 하겠어? 나도 모르는 일이야. 숙부님이 엄청 나쁜 사람인 거라고. 너도 알잖아? 불공정 계약으로 작가 등쳐먹는 사람이라고. 그런 사람 말을 믿어?”
그 정도는 이미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하지만 다음 말은 좀 놀라웠다.
“그리고 또… 아! 신혜선! 형우 너, 신혜선 알지?”
“신혜선?”
그 이름을 듣자마자, 형우는 자신도 모르게 공태준의 멱살을 세게 쥐었다.
“그 이름이 지금 왜 나와?”
멱살을 잡힌 공태준이 켁켁거렸다.
* * *
“윤정식 부회장까지 얽힌 게 맞았네요.”
어느 한적한 카페, 연수와 지원은 마주 앉아서 노트북을 두드리고 있었다.
“부회장까지 얽힌 이상, 회사 내규 같은 걸로는 아예 상대가 안 되겠어요.”
“그러면 어떻게 하죠?”
“일단 여론전으로 갑시다.”
공판석과 공태준에게서 알게 된 정보를 취합하니, 나름의 스토리라인이 완성됐다.
“이걸 공론화시켜서, 잃어버린 몫을 되찾아 보죠.”
“사람들이 관심을 가질까요?”
“아마도요.”
이번 제8회 공모전은 그 스케일부터가 어마어마하게 컸다.
유명 작가들을 특별심사위원으로 삼은 데다가, 국가 지원까지 받은 사업이었다.
“그런 사업에서 특혜가 있었다면 분명 관심을 가질 거예요. 게다가 당선작이 도작이라면 더더욱이요.”
당선작이 도작이라는 게 가장 치명적이었다.
만약 그 흠집이 없었다면 C&N은 어떻게든 이 논란을 무마시켰을 테다.
“C&N이 가만히 당할까요?”
“아마 그러지는 않겠죠.”
윤정식이 가만있을 리 없다. 어떻게든 수를 써서 판을 뒤엎어보려 할 거다.
방법을 상상하긴 어렵지 않았다. 그에게는 재산이 있었으니까, 언론 플레이든, 아니면 이 또한 지나가리라든, 방법은 얼마든지 있었다.
“그 전에, 한 번에 화력을 모아서 터트려야 한다는 거죠.”
지원이 재빨리 공격을 준비하는 이유였다.
“제가 아는 모든 뉴스에 제보했어요.”
“국회의원 제보도 하죠? 요즘 그런 거 많이 하던데.”
“그것도 좋은 생각이네요.”
권리를 되찾기 위해서는 일을 최대한 키우는 게 좋았다. 아니, 커져야만 하는 일이었다.
“그나저나, 그 <폭군전기> 쓴 학생 있잖아요.”
“아, 공태준이요?”
“그 사람 형우 작가님이랑 사이가 안 좋다면서요. 왜 안 좋아요? 보니까 형우 작가님이 누구랑 척 지고 다닐 사이는 아닌데.”
“아, 그게요.”
한국대 문창과에서는 꽤 유명했던 이야기였다.
“형우 선배 동기 중에 신혜선이라는 선배가 있었거든요. 엄청 예뻤어요.”
자신의 동기 중에도 예쁘기로 유명한 고태희가 있기는 했지만, 연수의 생각에는 혜선 선배에 비할 바는 아니었다.
“공태준, 그 자식이 예쁜 학생들한텐 무조건 한 번씩 찝쩍거리는 놈이거든요. 신입생 오티 때, 공태준이 혜선 선배한테 엄청 찝쩍거렸다 이거에요.”
“그런데요?”
“그때 형우 선배가 나섰다는데요. 지금은 술을 꽤 잘 마시는 선배지만, 그때는 술을 진짜 못해서, 완전 취해서 공태준을 받아버린 거죠. 이 자식아! 싫다는 데 왜 지랄이야! 하고!”
그 후에, 형우는 바로 푹 고꾸라졌다.
그리고 바로 다음 날, 앙심을 품은 공태준은 판타지 소설가를 좋아한다는 것을 구실삼아 세 시간 넘게 김형우를 갈궜다.
“하지만 오히려 그것 때문에 형우 선배랑 혜선 선배는 더 가까워졌고, 듣기로는 잠깐 사귀기도 했다고 해요.”
“그다음에는 어떻게 됐죠?”
“음… 잘 안됐으니까 형우 선배가 군대를 갔겠죠?”
그리고 형우가 군대에서 돌아왔을 때, 혜선은 이미 빠르게 학교를 졸업한 후였다.
“그에 반해, 공태준은 3년째 졸업을 못 해서 학교에 남아있었고요.”
“…참 기구한 악연이네요.”
“그렇죠. 형우 선배 참 좋은 사람인데, 이런 거 보면 가끔 신은 없는 것 같다니까요.”
그렇게 말한 연수는, 안타까운 표정으로 노트북을 바라봤다.
“이것도 마찬가지고요. 지금 뭐 하는 짓이에요, 이게. 그냥 다 때려치울까 싶기도 하고.”
“예전에 형우 작가님이 해 줬던 말이 있어요. 지금 상황에 어울릴 것 같은데.”
“뭔데요?”
지원이 피식 웃었다.
“사람은요, 둘 중 하나면 남을 용서할 수 있대요. 의도가 좋거나, 결과가 좋거나. 의도가 좋으면 참고 넘어가 줄 수 있고, 결과가 좋으면 웃으면서 넘어가 줄 수 있다는 거죠.”
“앞에는 알겠는데, 뒷부분은 좀 속물적이네요.”
“속물적인 게 뭐 어때서요? 중요한 건 그다음이에요. 이 두 조건 모두를 충족시키지 않는 경우. 그러니까….”
“의도도 안 좋고, 결과도 안 좋을 때?”
“맞아요. 그럴 때는 미친개처럼 물어뜯어야 한다고 하시더라구요.”
그렇게 이야기를 나누는 사이, 지원의 노트북에서 띠링 소리가 났다.
From : 창문뉴스
창문뉴스 기자 오대기입니다. C&N과 관련된 제보 잘 받았습니다….
From : 웹타쿠
안녕하세요! 웹소설 전문 뉴튜버 웹타쿠입니다. 방금 보내주신 C&N공모전 의혹으로 영상을 제작하고 싶은데….
노트북 화면 위로, 알림창 몇 개가 떠올랐다.
“이게 시작이에요.”
지금은 비록 몇 개 안 되는 수준이지만,
이제 곧, C&N을 물어뜯기 위한 이빨이 될 것이다.
* * *
하루 만에 인터넷이 난리가 났다.
그 시작은, 공모전에 참여했던 작가 지망생들의 SNS이었다.
[2년차망생이@2yearsnewbee
공유 부탁드려요!
이번에 열렸던 제 8회 C&N공모전에서 순위조작이 있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거듭되는 요구에도 불구하고, C&N은 별다른 응답조차 없는 상황입니다. 여러분의 관심이 필요합니다.
#C&N공모전조작 #C&N해명해]
[유늅@younoob
와, 이거 진짜에요? 저도 저기 냈었는데.
#C&N공모전조작 #C&N해명해.]
콰앙!
윤정식이 결국 참지 못하고 휴대폰을 집어던졌다. 떨어진 휴대폰은 공판석의 발밑에서 완전히 박살이 났다. 튀어 오른 파편이 공판석의 다리를 스쳐 상처가 났지만, 판석은 아픈 티조차 낼 수 없었다.
“일이 왜 이따위로 된 겁니까, 공판석 편집장?”
“그, 그게….”
공판석의 얼굴이 당혹감으로 물들었다.
“도작이란 건 결코 몰랐습니다!”
“…누나랑은 말이 다른데.”
윤정식은 회의실에 들어오기 전, 누나인 윤정아의 전화를 받았다.
“누나 말로는, 오히려 태준이가 아무것도 모르고, 다 공판석 편집장님이 꾸민 일이라고 하던데요.”
“그, 그건 말도 안 됩니다! 저는 조카 놈이 뭘 했는지 아무것도 몰랐습니다!”
“그게 자랑입니까?”
윤정식이 한심하다는 듯 공판석을 바라봤다.
“분명 잘 처리하라고 당부했는데, 들어온 작품 확인도 똑바로 안 했고….”
“그게….”
“아니라면 직원 관리라도 잘할 것이지, 내부고발자 하나도 똑바로 못 막아 결국 이 사달이 났군요.”
“….”
공판석은 억울했다.
윤정식은 공태준의 작품을 ‘무슨 일이 있든 간에 알아서 잘’ 입상시켜 놓으라고 했고, 자신은 그렇게 했을 뿐이다.
시킨 대로 했을 뿐인데, 갑자기 자신의 잘못으로 몰아가다니.
억울해서 미칠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