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환상을 쓰겟다-93화 (93/200)

#92

우리가 흔히 재능이라고 말하는 것은, 사실 두 가지의 측면에서 해석할 수 있다.

효율과 극단이다.

‘남들이 100시간 걸리는 걸 1시간에 푸는 것도 재능이고, 100명이 덤벼도 해결 못 하는 문제를 혼자서 해결하는 것도 재능이지.’

남들이 힘겹게 하는 일을 쉽게 해내느냐, 아니면 남들이 엄두도 못 하는 일을 해내느냐의 차이랄까. 좀 더 세부적으로 나누자면, 우리는 전자를 흔히 ‘요령 있다’라고 하고, 후자를 ‘기발하다’라고 한다.

그리고 굳이 따지자면, 정진욱의 재능은 ‘요령 있다’ 쪽에 더 가까웠다.

‘그리고 요령이란 건 결국 원리만 알면 어느 정도는 쉽게 따라 할 수 있다는 거지.’

기발함이 마법이라면, 요령은 마술과 같다.

언뜻 보기에는 아주 대단해 보이는 마술도, 사실 그 원리를 알게 되면 아주 간단한 경우가 있지 않은가? 요령이란 것도 결국 그렇다. 그 안에 있는 원리와 논리를 이해하면, 의외로 쉽게 재현해 낼 수 있는 것이다.

‘이런 식으로 말이지.’

형우가 노트북 화면을 바라보며 씩 웃었다.

<아이언 타이거> - 참새치

달피아 무료 웹소설 투데이 베스트 1위.

★(선작) 29,144

이유가 확실한 만큼 결과도 확실하다고 해야 하나. 눈에 띌 정도로 선작수가 올랐다. 노하우의 힘이랄까. 게임으로 치자면 사기 스킬을 몇 개 배운 거나 마찬가지였다.

‘레벨업이 별거냐? 이게 레벨업이지.’

형우는 책상 위에 널브러진 수많은 노트들을 바라봤다. 간단하게 ‘노트’라고 부르기는 하지만, 이곳이 무협이었으면 저것은 ‘비급서’였을 것이고, 이곳이 게임판타지 속이었으면 저것은 ‘스킬북’이였을 것이다.

<헌터물의 캐릭터 분석도> 외에도, <주인공의 파워인플레 척도>, <단문과 장문의 전환 타이밍>, <전개보다 연출을 우선시 하는 경우에 대해>, <1,500자 내로 이목을 잡아끄는 법>, <연참 타이밍> 등을 배웠다. 500만 원은 무슨, 그 열 배를 줘도 안 바꿀 만한 귀중한 지식들이었다.

그리고 지난 시간 동안, 형우는 그 모든 것을 집어삼켰다. 집요하게 비교하고, 분석하며 혹시 모를 오독誤讀과 오해誤解를 방지했다.

헌터물과 레이드물에 대한 전문가가 되겠다는 일념으로, 형우는 끊임없이 부족한 부분은 보완하고, 넘치는 부분을 깎아 냈다.

‘이런 식의 서술 트릭을 한번 써 볼까?’

새로운 기술을 접목하고,

‘표정으로 캐릭터 성격을 표현하는 방법이라…. 가끔은 행동보다 더 정확히 표현할 수 있겠어.’

기존에 있던 기술은 더 좋은 방식으로 개선했다. 몇 번이고 반복하자, 곧 숙달됐다.

공식이란 처음 만들 때는 천부적인 재능이 필요하지만, 배워 익히는 것은 범인의 재능만 있어도 충분한 법. 형우의 헌터물 작법은 마치 인류가 미적분을 알기 전과 후만큼의 급진적인 성장을 보였다.

‘앞으로 2주 정도 지나면 유료화가 가능하겠어.’

현재 <아이언 타이거>의 화수는 36화. 형우는 평소와 마찬가지로 50화 때 유료화를 할 생각이었다.

‘50화 때 유료화를 하자마자 10화 정도를 풀면 되니까, 비축분도 충분해.’

지금 준비해 놓은 비축분은 총 50화.

그중 절반 정도가 퇴고 과정을 마쳤다. 준비는 완벽했고, 그 결과물도 상당히 만족스러웠다.

‘어찌 보면 당연한 거지.’

<아이언 타이거>는 헌터물에 스릴러를 병합한 작품이다. 그리고 형우는 이 작품을 쓰기 위해, 헌터물 마스터인 정진욱의 힘과 전직 형사인 고덕호 영감님의 힘을 빌렸다.

‘이 정도면 거의 치트키 수준이지.’

그 결과물은 작가인 형우와, 편집자인 지원 모두 충분히 만족할 수준이었다.

지이잉.

때맞춰 지원에게서 메시지가 도착했다.

지원 : 작가님, 보내 주신 70화까지 다 읽어봤습니다!! 70화까지는 완전 마음에 들었는데, 문제가 하나 있네요.

형우 : 문제요? 무슨 문제가 있죠?

지원 : 70화까지밖에 없다는 게 문제죠! 다음화 빨리 주세요!!!!

후우, 형우가 가슴을 쓸어내렸다.

‘편집자님도 참, 가끔 무서운 장난을 치신다니까.’

하지만, 편집자가 작가에게 장난을 친다는 건 곧 뭔가가 잘 되고 있다는 뜻이다. 애초에 작품이 잘 되지 않으면, 분위기가 험악해져서 이런 장난조차 못 친다.

‘한 2주 전까지만 해도 그랬지.’

신작인 <아이언 타이거>의 설정 변경에 관해 지원과 꽤 많이 충돌하고, 작품의 갈피를 잡기 위해 좀 이리저리 많이 방황했다.

그때는 만날 때마다 서로 모아이 석상마냥 얼굴을 굳히고서는 무거운 이야기만 했었는데, 상황이 풀리니 분위기는 저절로 풀렸다.

‘계속 이랬으면 좋겠네.’

그렇게 싱글거리고 있던 차에, 형우의 옆에서 뭔가가 흐느적거리면서 다가왔다.

“저… 김 작가.”

“으앗, 깜짝야!”

형우에게 말을 건 것은, 거의 반쯤 액체가 되어 버린 정진욱이었다.

“다음엔 뭐 해야 하나…?”

정진욱을 집에 데려온 지 정확하게 30일.

하루에 12시간씩 작업했으니, 시간으로 치자면 360시간이 지났다.

‘내가 굴리긴 했지만… 몰골이 말이 아니네.’

첫날에만 해도 좀 통통했는데, 일주일쯤 지나니 좀비처럼 되더니 이제는 거의 슬라임처럼 보였다.

한 달간 잠, 밥, 글, 잠, 밥, 글의 연속이었으니, 익숙하지 않은 정진욱에게는 상당히 고통스러웠을 것이다.

“더 시킬 게 이제는 없네요.”

“…응?”

정진욱이 고개를 들었다.

“이제 끝났습니다. 가셔도 돼요.”

정진욱과 작업하기 시작한 지 30일 차.

형우는 계약 만료를 선언했다.

처음에 약속했던 500시간에 비하자면 꽤 빨리 끝났지만, 아쉬움은 없었다.

‘생각 이상으로 잘 해줬어.’

애초에, 결과물이 마음에 차지 않았다면 단 1초도 봐주지 않고 500시간을 꽉꽉 채웠을 것이다.

‘이미 볼장 다 봤으니, 더 붙잡고 있을 필요는 없어.’

믿을 수 없다는 듯 주변을 두리번거리는 정진욱을 향해 고개를 꾸벅 숙였다.

“지금까지 수고 많으셨습니다, 정진욱 작가님.”

“…나, 정말 끝난 거야?”

“네. 이제 가셔도 됩니다.”

“드디어 끝인가…! 저, 김 작가.”

정진욱이 질린다는 듯이 형우를 째려봤다.

“……만나서 더러웠고, 다시는 보지 맙시다.”

“그건 힘들겠는데요. 저희 1주 뒤에 봅니다.”

지금으로부터 1주일 후부터, C&N의 특별심사가 시작된다.

* * *

한국대학교, 10월의 캠퍼스.

어느새 하늘에는 가을 색이 만연했고, 학생들의 얼굴도 빨갛고 노랗게 물들기 시작했다.

“야, 시험 잘 봤냐?”

“완전 망했어. 중간고사야 그렇다 치고, 너 졸업작품은 어때?”

“에휴, 말도 마라. 도서관 앞 재떨이 봤냐? 담배가 아주 산처럼 쌓였더라. 그거 다 미대생들이 작업하면서 피운 거라며?”

저학년들은 중간고사와 학점에 치여서, 고학년들은 졸업작품과 취업에 치여서, 가을의 대학생들은 점점 메말라 간다.

그중에는 당연히 의재와 형우도 있었다.

“에라이, 하늘은 높고 말은 살찐다는 계절인데, 왜 우리는 거꾸로 살이 빠지고 있냐?”

의재가 투덜거렸지만, 형우는 그 말을 듣고 있지 않았다.

“이 자식, 또 멍 때리면서 걷네.”

하지만 이해는 됐다. 요즘 녀석이 얼마나 바쁜지는 의재가 제일 잘 알았다. 학업에, 연재에, 거의 투잡을 뛰고 있는 것과 마찬가지니.

그러다가 몸이라도 축나는 거 아닌가 싶을 정도의 강행군을 유지하는 녀석을 보면 좀 무모하다 싶을 정도였다.

‘뭐, 나도 남 말할 처지는 아닌가.’

의재도 만화가 생활을 시작한 이후 요즘 꽤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솔직히 말하면, 형우와 의재 사이에는 다크서클 0.5cm 정도의 차이밖에 없었다.

“아.”

그렇게 한참을 멍 때리며 걷던 형우가, 뭔가 깨달았다는 듯이 박수를 딱 쳤다.

“자면서도 필력 늘리는 법을 찾았다.”

“…뭐라고?”

“잘 때도 머리맡에 오디오북 틀고 자면 자면서도 독서하는 것과 마찬가지니까, 필력이 늘어나지 않을까?”

미래설계나, 작품 구상이나, 아니면 그보다 더 복잡하고 어려운 것들을 고민하고 있는 줄 알았는데, 기껏 멍 때린 이유가 저런 헛소리 때문이라니.

“미친놈아. 정신 좀 차려.”

“아, 미안. 혹시 다른 이야기 하고 있었어?”

“10월에 대학생들이 무슨 이야기를 하겠냐?”

의재가 질린다는 듯이 고개를 저었다. 의재는 지금 기분이 썩 좋지가 않았다. 오늘 치렀던 중간고사 때문이었다.

“나 시험 망한 것 같다고.”

“뭐, 크게 상관없잖아. 어차피 마지막 학기인데. 네가 성적 잘 받아서 취업할 것도 아니고.”

“형우야. 우등생인 너는 이해할 수 없겠지만, 나 같은 열등생이 시험을 망했다고 한다면 그건 진짜로 못 봤다는 뜻이란다.”

의재가 한숨을 푹 쉬었다.

“총 맞고 졸업 못 할 수도 있다고.”

“그게 뭔데.”

“뭐긴 뭐야, F 학점 받고 재수강한다는 거지.”

“그거 어떻게 하는 건데.”

잠시 후, 형우가 자신을 놀리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린 의재는 녀석의 머리통을 그대로 팍 눌렀다.

“아얏!”

형우가 비명을 질렀다. 그 표정을 곰곰이 보던 의재가 그제야 생각났다는 듯이 물었다.

“너는 시험 잘 봤다 이거지? 아까 보니 제일 먼저 나가던데?”

“시험이야 뭐, 나쁘지 않았지.”

완전 자신 있다, 장학금은 내 거다! 까지는 아니었지만, 적어도 모르는 문제는 없었다.

“그런데 왜 그렇게 표정이 안 좋아? 시험도 잘 친 놈이?”

“…시험 망쳤는데 웃고 있는 네가 이상한 거 아닐까?”

“나야 미쳐서 그런 거라 치고, 너는 뭔데?”

“어제저녁에 공부했거든.”

지난밤, 형우는 시험을 위해 약간의 시간을 공부에 투자했다.

“…그래서 글손실이 났어.”

“글손실이라고?”

“아가사 크리스티도 실종되었던 1주일 동안 글손실 났겠지?”

“야.”

“연재 시작 34일 차인데 벌써 3일이나 글을 못 썼다. 글손실 더 오면 안 되는데….”

별 미친놈이 다 있다는 듯, 의재가 형우를 보고 고개를 좌우로 저었다.

“그나저나, 웹툰은 잘 배우고 있어? 요즘 그림 배운다고 들었는데.”

“인마, 시작한 지 이제 두 달이야. 아직 풋내기지 뭐.”

“두 달은 무슨. 예전에도 짬짬이 그렸잖아. 그, 우리 1학년 축제 때 간판도 의재 네가 그리지 않았었나?”

미대생들 솜씨만큼 엄청 잘 그린 그림은 아니었지만, 의재 특유의 넘치는 센스와 특이한 개성 덕분에 나름 호평을 받았었다.

“그거 학교 SNS에도 올라가고 그랬었잖아. 사람이 간판을 들고 다니는 게 아니라 사람 자체를 간판으로 할 줄은….”

“인마, 그만해. 그거 나한테는 나름 흑역사야.”

하긴, 전신바디페인팅 상태로 학생포차를 홍보하고 다닌 게 흑역사가 아니면 그게 더 이상하다.

“아무튼, 내 말은 그거지. 넌 곧 잘하게 될 거라고.”

“말이야 고맙지만, 그래 봐야 아직은 초보야.”

“뭐, 웹툰이 꼭 그림 엄청 잘 그려야 성공한다는 것도 이제 옛말 아닌가? 요즘 보면 디테일하고 화려하게 그린 그림보다 오히려 개성 있는 그림체를 더 쳐주는 모양이던데….”

“뭐, 그것도 틀린 말은 아니지. 그래도 역시 기본기를 빼놓을 수는 없는 거 아니겠냐.”

기본기라, 어떤 분야든 그게 중요하지 않은 분야는 없는 모양이다. 하긴, 애초에 중요하지 않았다면 ‘기본’이라는 말이 붙지도 않았겠지.

“그런 의미로, 형우야. 이 형님은 지금 송 선생님에게 그림을 배우러 가봐야 한단다. 너는?”

“나도 바빠. 오늘 공모전 있거든.”

“공모전? 뭐 또 냈어?”

“아니, 낸 건 아니고.”

형우가 멋쩍게 웃었다.

“심사위원이라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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