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환상을 쓰겟다-90화 (90/200)

#89

세 번째 작품인 <검은 머리 로마 황제>도 정답, 그다음인 <포탈이 히로인을 숨김>도 정답이었다.

“이, 이건 말이 안 돼!”

인내심이 한계에 다다른 듯, 정진욱이 책상을 쿵 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분명 1주일 전만 해도 작품을 보는 기본적인 눈조차 없던 녀석이었다.

‘일주일 만에 없던 심미안이 생겼다고?’

정진욱의 상식으로, 그것은 완전히 불가능한 일이었다.

‘노력은 지랄이고, 인생은 재능빨이다.’

중학교 1학년 시절, 초라한 성적표를 보며 정진욱은 그렇게 생각했다.

‘공부도 재능빨이지.’

그래서 일찌감치 노력을 접었다. 해도 안 되는 공부보다 즐거운 것이 세상엔 얼마든지 있었다. 그중에는 웹소설도 있었다.

‘그래, 내 재능은 이쪽이야!’

그렇게 생각하고, 글을 읽다가, 글을 썼다. 그리고 작가가 됐다.

[대박 작가 글고래 출현!]

[정진욱 인터뷰, 나는 이렇게 작가가 되었다!]

인터뷰 때는 피나는 노력 끝에 성공했다고 말했다. 그편이 사람들이 좋아하니까.

하지만, 사실은 한 번도 그렇게 생각한 적은 없었다.

‘소설 쓰는 건 진짜 쉬워.’

책상 앞에 앉아서 한두 시간 정도 노트북만 두들기면 끝. 그렇게 대충대충 써도, 작품은 늘 팔렸다.

‘역시 인생은 재능빨이야.’

같은 연료를 넣어도 어떤 차는 100km를 가고 어떤 차는 200km를 간다. 어떻게 해도 따라잡을 수 없는 그런 타고난 연비의 차이.

웹소설이라는 아우토반에서, 자신은 롤스로이스였고 람보르기니였다.

‘너무 쉽잖아.’

그렇게 생각하니 세상에 어려울 게 없었다. 하루 두세 시간쯤 글을 쓰고, 남는 시간에는 가끔 다른 작가들의 소설을 읽었다. 감상목적이라기보다는, 감평 목적이었다.

‘진짜 재미없네. 이런 글 쓰느니 차라리 다른 일을 알아보겠다.’

대부분의 작품은 자신이 쓴 것보다 못했다. 그런 글을 볼 때마다 자존감이 마구마구 치솟았다. 물론, 가끔 자기보다 잘 나가는 글도 있었다. 그럴 때는 그냥 욕을 했다.

‘이딴 쓰레기가 진짜 좋다고?’

아무리 훌륭한 소설이라도 흠은 늘 있었고, 그럴 때마다 정진욱은 그대로 미소를 지었다.

자기보다 못 쓰는 사람은 재능 없는 병신, 자기보다 글 잘 쓰는 놈은 운빨 쓰레기.

세상의 진리를 모두 깨달은 느낌이었다. 요즘 제일 잘 나간다는 김형우란 놈도, 결국 이 알고리즘에서 벗어날 수는 없었다.

‘작품 보는 눈이 개판이잖아?’

작가에게 있어서는 상당히 치명적인 흠이었다. 그걸 발견한 순간, 정진욱의 마음 속 형우의 평가는 순식간에 변했다. 재능충에서 운빨충으로.

‘역시 운빨이로군. 작가로서 당연히 있어야 할 감성도 없고, 번뜩임도 없고, 게다가 문창과라지? 그냥 학교에서 배운 대로만 쓰는 먹물이로군.’

그것이 형우에 대한 최종적인 평가였다. 그것을 굳게 믿고 내기까지 걸었다.

‘분명 절대 패배할 리 없는 내기였을 텐데.’

경악한 표정으로, 정진욱은 지원의 손을 응시했다. 이제 남은 건 딱 한 작품, <드라마 속 1회용 악당이 되었다>뿐. 다섯 작품 중에 가장 덜 성공한 작품이라 가장 구별하기 힘들었다.

‘꿀꺽.’

어딘가에서 침 삼키는 소리가 들렸다. 그 소리와 함께, 마지막 소설의 제목이 공개되었다.

“이건?”

그 제목을 보자마자 정진욱은 웃음을 참을 수 없었다. 형우가 고른 다섯 번째 소설은 <보랏빛 드래곤이 되었습니다>, 일주일 전에 오답 판정을 받은 소설이 아닌가! 정진욱의 입꼬리가 그대로 비틀려 올라갔다.

“멍청하기는! 틀린 답을 두 번이나 고르다니!”

흥을 주체할 수가 없어서 형우에게 삿대질까지 퍼부었다. 방금까지 긴장한 게 바보처럼 느껴졌다.

“편집자님, 안되셨네요! 심사위원 한 명 새로 구하셔야겠어요. 아니, 아니지. 이 정도로 소설 보는 눈이 개판이면 작가질도 조만간 그만두게 될 테니 아예 작가를 새로 구하시는 것도….”

“아니요.”

지원이 고개를 살짝 저었다.

“김형우 작가님은 합격입니다.”

“그게 무슨 소립니까?”

정진욱이 발작하듯 튀어 올랐다. 저번 주에는 오답이었던 게 이번 주에는 정답이라니, 당연한 반응이었다.

“지원 매니저님! 지금 담당 작가라고 편들어 주시는 겁니까? <보랏빛 드래곤이 되었습니다>는 명백히 실패한 작품 아닙니까?”

“정확히는 실패했던 작품이죠.”

“그게 무슨 말장난입니까? 매니저님, 지금 장난하십니까? 아니, 이딴 사람이 무슨 매니저를….”

정진욱의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주위에 모인 모든 작가들의 눈이 그에게 집중됐다.

확실하게 선을 넘은 언행.

그 침묵 가운데서, 유일하게 움직이는 건 지원밖에 없었다.

“이걸 한번 보시죠.”

지원은 가방을 뒤져 책 한 권을 꺼냈다.

<자색룡 파프니르>라는 제목의 양장본 책이었다.

“이건….”

“이 책의 원래 제목은 <보랏빛 드래곤이 되었습니다>였습니다. 연재 도중, 웹소설보다는 종이책에 좀 더 어울린다는 출판사의 제안에 시장을 전환했던 작품이지요. 제목은 그 와중에 바뀐 거고요.”

민준의 소설인 <환생이 너무 애매하다>가 종이책화되면서 <리턴 투 디재스터>로 제목이 바뀐 것과 비슷한 맥락이었다.

“오답이 다음 주에 정답이 된 게 아닙니다. 따지자면 문제가 잘못된 쪽에 가깝죠.”

문제는 20개의 소설 중 상업 가치가 있는 5개의 소설을 골라내라는 거였다.

“저희가 의도한 정답은 <역천무왕>, <황금 손을 가진 의사>, <검은머리 로마 황제>, <포탈이 히로인을 숨김>, <드라마 속 1회용 악역이 되었다>까지 해서 5개였습니다만, 약간 실수가 있었습니다.”

사실 정답은 5개가 아니라 6개였다.

후에 <자색룡 파프니르>라는 이름으로 성공한, <보랏빛 드래곤이 되었다>라는 작품이 말이다.

“의도치 않은 복수정답을 만들어 낸 점에 정말 깊이 사과드립니다.”

하지만, 복수정답이라고 해도 일단은 정답을 맞추긴 맞춘 거였다.

“…그러니, 김형우 작가님은 합격입니다.”

“개소리 집어치워!”

정진욱이 테이블을 쾅, 하고 때렸다.

“내가 속을 것 같아? 이건 분명 사기야! 김형우, 저 자식이랑 매니저가 짜고 치는 거라고!”

급기야, 정진욱은 지원에게 삿대질까지 했다.

“그래, 그렇지. 미리 문제를 유출한 거야. 작품 보는 눈이 일주일 만에 생겼다고? 헛소리도 그런 헛소리가 없지. 안 그래?”

“그거 아닐걸.”

그렇게 말한 건 그때까지 뒤에서 쩝쩝거리며 쿠키를 씹던 유동현이었다.

“문제 유출 같은 건 없었어.”

“그쪽은 뭔데 끼어들어요? 그쪽도 한 패요?”

“한 패라…….”

유동현이 미간을 구기며 기분 나쁘다는 듯이 정진욱을 쳐다봤다.

“…내가 뭐 엄청 대단한 사람은 아니지만, 정 작가한테 그쪽 소리 들을 정도는 아닌데.”

그렇게 말하며, 유동현은 지갑에서 뭔가를 꺼냈다.

“이건….”

네모반듯한 명함에는 <한국콘텐츠진흥원 위원 유동현>이라는 글씨가 금박으로 새겨져 있었다.

“한국콘텐츠진흥원이라면….”

소설부터 드라마까지, 대부분의 문화산업에 고루고루 영향을 끼치는 준정부기관이었다. 정진욱의 반응을 보며 유동현이 흡족하게 웃었다.

“이번에 C&N이랑 몇 가지 프로젝트를 진행하기로 했거든. 아, 서 수석. 말해도 되지?”

“이미 다 말씀하셨으면서.”

지원이 아랫입술을 비쭉 내밀었다.

이번 공모전의 성공을 위해 지원이 준비한 것은 특별심사위원만이 아니다.

‘C&N과 한국콘텐츠진흥원의 협력사업.’

공모전을 단발성 사업이 아니라 지속가능한 국가지원협력사업으로 발돋움시키는 것. 그것이야말로 지원이 준비한 두 번째 칼이었다.

“준정부기관과 협력하는 사업에서 채용비리라, 정 작가 생각에는 이게 말이 된다고 생각하나?”

“….”

정진욱이 아무리 철면피라도, 이런 것까지 우기고 들어갈 수는 없었다. 그 모습을 본 지원이 함박웃음을 지으며 박수를 짝짝 쳤다.

“그러면 결정 났네요. 여기 모인 다섯 작가님들이 이번 C&N의 특별심사위원들입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그렇게 자질평가는 끝났고, 정진욱은 아직도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그 자리에 모인 모든 사람들의 얼굴을 번갈아 쳐다봤다.

그리고, 자신보다 더 당황한 듯한 작가 한명을 발견했다.

‘뭐야, 이거. 어떻게 된 거야.’

김형우였다.

* * *

“우와.”

천우희가 놀랍다는 듯이 형우의 얼굴을 뚫어져라 쳐다봤다.

“뭘 놀라고 그래요?”

“글쎄, 나도 뭐에 놀라고 있는지 모르겠어. 놀랄 게 너무 많아서.”

천우희가 호들갑을 떨면서 물었다.

“너, <자색룡 파프니르>랑 <보랏빛 드래곤이 되었습니다>가 같은 작품인 건 어떻게 알았어?”

“에이, 알기는 어떻게 알아요.”

“그럼 몰랐다고?”

형우는 솔직하게 고개를 저었다.

“몰랐어요. 애초에 알고 골랐으면 그것도 그것대로 반칙 아닌가?”

“그거야 맞는 말이긴 한데, 그게 말이 돼?”

이해할 수 없다는 듯, 천우희가 아랫입술을 비쭉 내밀었다. 형우가 하핫, 하고 멋쩍게 웃었다.

“몇 번을 봐도 그 작품은 좋은 작품이었거든요.”

형우는 마지막 순간까지 그 어떤 작품이 정답인지 고르지 못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보랏빛 드래곤이 되었습니다>가 맞는 것 같은데, 저번에 오답 판정을 받았으니까 그야말로 미칠 것 같은 거죠.”

마치 어느 날 학교에 갔더니 친구들이 죄다 1+1이 2가 아니라 3이라고 하는 기분이라고 할까.

“나는 그 작품이 좋은지 모르겠던데….”

“그거야 뭐, 천우희 작가님이 웹소설 전문이시라서 그럴지도 몰라요.”

형우가 천천히 말을 이어나갔다.

“웹소설로 성공하기에는 템포가 너무 길었잖아요. 그러니까 그 작가님도 웹소설에서 종이책으로 방향을 바꾸신 거겠죠.”

스포츠로 비유하자면, 복싱에서는 별다른 성과를 보이지 못했던 격투기 선수가 이종격투기로 전향한 뒤 승승장구하는 느낌이랄까.

“만약 편집자님이 낸 문제가 ‘상업적 가치가 있는 소설’이 아니라, ‘상업적 가치가 있는 웹소설’을 골라내는 거였으면 제가 졌겠지만, 그게 아니었잖아요? 애초에 첫 번째 정답인 <역천무왕>부터가 웹소설보단 종이책으로 더 성공한 작품이었고.”

“아하.”

천우희가 이제야 알았다는 듯 고개를 천천히 끄덕였다. 천우희를 비롯한 C&N의 특별심사위원들이 ‘웹소설’의 전문가였다면, 형우는 대식가답게도 소설 전반에 대한 상세한 지식량을 갖추고 있었다. 그 차이가 이런 결과를 만들어 낸 것이다.

“그래도 보통 사람이면 너 같은 상황에서 그런 짓 못 해. 오답을 한 번 더 고르다니.”

“저도 그때 제가 왜 그랬는지 모르겠어요.”

“흐음, 그건 내가 알려줄 수 있을 것 같은데.”

그렇게 불쑥 끼어든 것은, 그때까지 옆에서 커피를 쪽쪽거리며 마시던 유동현이었다.

“자기확신이라는 거지.”

“자기확신이요?”

형우의 질문에, 노인이 고개를 끄덕였다.

“거기에 대해 이야기하기 전에, 심미안이라는 것에 대해 좀 이야기해 볼까. 예술 하는 놈들이 심미안이다, 미적 감각이다, 뮤즈의 눈이다 이것저것 잘도 가져다 붙이지만, 그 본질은 사실 감성지능이라는 녀석이야.”

감성지능, EQ라고도 부르는 녀석이다.

“지능지수, 그러니까 IQ를 늘리는 방법은 잘 알려져 있지. 공부를 하면 돼. 그러면 EQ를 늘리는 방법은 뭘까?”

“…자기확신인가요?”

유동현이 흡족하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김 작가, 마지막에 고민하다 <보랏빛 드래곤이 되었다>를 골랐지? 그건 될 대로 돼라 식의 도박이었나?”

“그건 아닙니다.”

뭐라고 설명하긴 힘들겠지만, 처음부터 그게 정답이라고 생각했다. 노인이 옳다꾸나, 박수를 쳤다.

“자네의 이성은 분명 이렇게 외쳤겠지. 멍청아! 그건 정답이 아냐! 하지만 자넨 그걸 무시했어. 어떻게 무시했나?”

“생각을 안 했습니다.”

그렇게 말하며, 형우는 천우희를 바라봤다.

‘나쁜 생각만 들 때는 차라리 생각을 멈춰라.’

그 조언을 떠올리면, 저절로 우유 냄새가 나는 느낌이었다.

“그게 바로 자기확신이라는 거군요.”

“맞아. 모든 천재들이 꼭 무한한 긍정력을 갖고 있는 건 아니지만, 무한한 긍정을 가진 녀석들은 가끔 천재가 되는 법이거든. 특히 예술 쪽은 그런 경향이 좀 있지. 이것저것 다 따지는 놈보다, 가끔 우직하게 스스로를 믿고 밀고 나가는 무식한 놈들이 성공하는 곳이니.”

자기확신이 감성지능을 키우고, 감성지능은 곧 심미안으로서 기능한다.

기존의 소설관에서 벗어나 스스로를 솔직하게 돌아보고, 내면의 목소리를 듣고, 자기확신을 키워낸 형우의 승리라는 뜻이었다.

“천우희 작가님 덕이라는 거네요.”

“뭘, 네가 내 덕 본 게 한두 번인가.”

그렇게 말하기는 했지만, 천우희의 기분은 그렇게 나빠 보이지 않았다. 천우희뿐만이 아니다. 카페에 모인 대부분의 사람이 그랬다.

‘저 사람만 빼고.’

정진욱은 지원의 카드로 제일 비싼 민트초코프라푸치노 벤티 사이즈에 초코 크루아상까지 시킨 주제에 음식에는 손도 안 대고 계속해서 휴대폰만 두드려대고 있었다. 형우가 그쪽으로 성큼성큼 다가갔다.

“그건 그렇고, 저희는 해결할 일이 좀 남았죠?”

정진욱이 깜짝 놀라 휴대폰을 떨어트렸다. SNS에 쓰던 글이 보였다.

Novel_life

가끔 뻔뻔하게 사기를 치는 놈들이 있다. 눈 뜨고 코가 베인 느낌. 이래서야 뭐ㄱㅏ

그새를 못 참고 또 정신승리라니.

이렇게 보니 참 작은 사람이구나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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