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7
“이보쇼, 안 작가.”
“네.”
유동현의 말에, 안재욱이 빙긋 웃으며 돌아봤다.
“아까, 일부러 안 말린 거지? 둘이 싸울 때 말야.”
“엥, 그게 무슨 소리죠?”
“티 다 나던데.”
말수가 적기에 약간 초연한 사람인 줄 알았는데, 유동현은 눈치가 빨랐다.
“…맞다, 개그물 작가셨지. 눈치가 빠른 게 당연하시네요.”
“어디서 듣기로는 안재욱 작가 성격이 골든 리트리버만큼 좋다고 하던데.”
골든 리트리버는 성격이 순하기로는 사모예드와 투톱을 달리는 견종이다. 안재욱이 피식 웃었다.
“골든 리트리버라니, 언제 그런 별명이 붙었대요?”
“그냥 뭐, 어디서 그러더라고. 성격 엄청 좋은 작가라고.”
“에이, 쑥스럽게. 저 그렇게 성격 안 좋아요. 게다가….”
안재욱이 테이블 쪽으로 살짝 고개를 숙였다. 목소리도 그만큼 덩달아 작아졌다.
“골든 리트리버가 성격이 좋다고는 하는데, 일단은 그 친구도 사냥개거든요. 사람은 잘 안 물어도, 다른 건 의외로 잘 문다네요.”
“다른 거라면?”
“사람이 아니면 뭐….”
안재욱이 자연스럽게 시선을 돌렸다.
“…사람 같지 않은 거겠죠?”
그 시선의 끝에는 휴대폰을 보며 씩씩거리는 정진욱이 있었다.
* * *
뷔페가 끝나고, 다섯 작가들이 한자리에 모였다. 형우는 눈앞에 놓인 항균 수건으로 손을 벅벅 문질렀다.
‘…장르만 다른 게 아니라 다들 식성도 다르네.’
형우는 오늘 처음 보는 음식들 위주로 먹었다. 이왕 비싼 뷔페에 왔으니, 아는 맛을 즐기기보다는 새로운 경험을 하고 싶다는 느낌이 더 강했다. 고수가 들어간 몇몇 음식은 좀 부담스러웠고, 몇몇 음식은 꽤 만족스러웠다.
“천우희 작가님, 이 빵 이름 뭐예요?”
“마들렌이잖아. 설탕 안 들어간 거네. 왜?”“나중에 소설에 써먹게요.”
“에휴, 너도 진짜 징하다.”
천우희도 흔하게 먹지 않는 음식 위주로 고르기는 했는데, 형우와는 달리 이미 그 음식들의 맛을 정확히 알고 있는 듯한 느낌이었다. 형우 쪽이 모험심이라면, 천우희는 견문에 가깝다.
형우도 천우희가 고르는 음식 몇몇 개를 똑같이 먹어 봤는데, 상당히 괜찮은 맛이 났다. 특히 빨간색 게살 스프는 여태껏 먹어 본 음식 중 열 손가락 안에도 넣을 수 있을 거다.
‘안재욱 작가님은 체계적이고.’
마치 코스요리라도 먹듯, 샐러드로 시작해서 단백질에서 탄수화물로, 옅은 맛에서 짙은 맛으로 옮기는 솜씨가 꽤 놀라웠다.
“안재욱 작가님, 혹시 여기 와 보신 적 있으세요?”
“네. 저번 직장에 있을 때 업무차 몇 번 들렀었거든요.”
“아….”
역시, 훌륭한 셀러리맨의 느낌이 났다. 그다음은 개그물을 쓰는 유동현 작가.
“…나는 별로 배가 안 고파서, 디저트나 좀 먹을까.”
그렇게 말한 유동현은 진짜로 샐러드와 초밥 몇 개를 집어먹은 후, 커피랑 디저트만 주구장창 먹었다.
‘…단 케이크에, 짠 프레첼에, 다시 달달한 마카롱에, 씁쓸한 아메리카노. 거기에 팥빙수로 마무리라.….’
그렇게 먹은 케이크가 네 개에, 마카롱이 여섯 개. 커피가 두 잔에 홍차가 세 잔이다. 저 정도면 식사와 별 차이가 없는 듯싶었지만, 본인이 디저트라고 했으니 디저트일 테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정진욱.
“…정 작가님. 천천히 드세요.”
“…엉엉이 엉오 잉응이아.”
아마, 천천히 먹고 있습니다. 라고 말한 것일 테다. 정진욱은 음식을 아주 특이하게 먹었다.
일단, 연어 스테이크로 시작했다.
그리고, 소고기 스테이크를 먹었다.
그다음엔 또 연어 스테이크를 먹었고, 이어서 또 소고기 스테이크를 먹었다. 또 연어, 또 스테이크, 또 연어, 또 스테이크.
‘…뭐지?’
처음엔 소고기 스테이크랑 연어 스테이크를 엄청 좋아하는 사람인가 싶었는데, 알고 보니 훨씬 이상한 이유였다. 이 호텔에서 가장 유명한 요리가 연어 스테이크와 소고기 스테이크라서 그런 거다.
”뷔페에 왔으면 뽕을 뽑아야죠. 연어 스테이크 원가가 만 이천 원 정도고, 스테이크도 그거랑 비슷하니까 대충 여섯 번만 더 먹으면….”
거기까지만 했어도 참 좋았을 텐데.
“거, 안 작가님은 왜 돈 아깝게 가리비 같은 것만 드십니까? 저기 새우도 많던데요.”
“아, 제가 가리비를 좋아해서요.”
“유동현 작가님. 저쪽에 바리스타가 직접 뽑아주는 아메리카노가 있는데 왜 굳이 믹스커피를 드십니까? 아깝게요.”
“…나는 단 커피가 더 좋아.”
라며, 여기저기 오지랖까지 뿌리고 다녔다. 아마 국밥집에 갔으면 묻지도 않고 깍두기 국물을 부었을 것 같다.
하지만 이 곳에 모인 사람들은 자기 스타일 하나는 확실하다는 작가들이다. 정진욱의 조언을 들은 사람이 아무도 없다는 뜻이다. 결국, 정진욱은 토러져서는,
“…뭐, 사람 생각이야 다 다른 거니까요. 제가 이해해야지요.”
라고 중얼거리며 일곱 번째 연어스테이크를 거칠게 집어삼켰다. 그러는 와중에도 천우희와 형우한테는 말 한마디 안 거는 게 참 징했다.
“…저한테 말 안 거는 건 싸워서 그렇다 치고, 천우희 작가님한테는 왜 말을 안 걸까요?”
“내 생각에는 말야…. 처음 보는 여자한테 말 못 거는 것 같은데?”
“아… 그럴 수 있죠.”
형우가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렇게 두 시간.
[16시까지의 식사가 종료되었습니다. 다들 즐거운 식사 되셨길 바라며, 안녕히 가십시오.]
하고, 알람이 울렸다.
“여기 괜찮죠?”
“그렇네요. 나중에 한번 부모님이라도 모시고 와야겠어요.”
“좋기는 무슨.”
…당연하게도, 마지막에 투덜거리는 건 정진욱이었다. 모두의 시선이 정진욱에게 쏠렸다.
“식사가 마음에 안 드셨나요?”
그렇게 물은 건 매니저인 지원이었다. 행사를 총괄한 입장이니, 작가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고 하면 그녀 나름대로 큰일일 테다.
“뭐, 음식값에 비해 음식이 그렇게 좋진 않았습니다. 특히 스테이크는 좀 실망이더군요. 특히 오버쿡이….”
말문이 막히거나, 아니면 헛소리를 할 줄 알았는데 의외로 불만 사항이 꽤 구체적이었다. 의외의 모습에 형우가 오, 하는 소리를 냈다.
“…나름 전문가인가 봐요.”
“전문가는 무슨.”
천우희가 코웃음을 쳤다.
“여기 스테이크, 수비드야.”
“수비드라면, 그 식은 물로 익히는 거요?”
“맞아. 오버쿡이라면 너무 과하게 익혔다는 건데, 타이머 다 맞춰놨는데 어떻게 오버쿡이 돼? 게다가 수비드에서.”
그냥 있어 보이고 싶어서 어디서 주워들은 말 줄줄 읊는 거지. 천우희는 그렇게 말했다.
지원과 이야기하던 정진욱이 난처한 표정을 짓는 것을 보니, 아마 비슷한 이야기를 듣고 있는 모양이다.
* * *
“가볍게 시작해 볼까요?”
식사를 마친 후, 지원은 다섯 명의 특별심사위원에게 두툼한 A4를 몇 장씩 돌렸다
살펴보니, 소설이었다.
“유료화에 성공한 소설 중 20개를 뽑아 왔어요. 이 중 열다섯 개는 그저 그런 작품을 저희가 임의로 선정해 왔고, 남은 다섯 개는 꽤나 성공한 소설이에요. 아, 완전 엄청 잘나가는 소설을 가져오지는 않았답니다. 그랬다가는 여기 모이신 분들이 다 알 테니까.”
…이곳에 오기 전에 넌지시 최근에 읽었던 소설들과 좋아하는 소설 동향을 물어보더니만, 아무래도 오늘의 시험을 위한 준비였던 모양이다.
“특별심사위원도 일단은 심사위원이니까요, 어느 정도 소설 보는 눈은 갖춰야 한다는 게 저희 의견이었거든요.”
“만약 실패하면 어떻게 되지요?”
그렇게 물어본 것은, 잠자코 듣고 있던 유동현이었다.
“그러니까, 골라내지 못하면 말씀이시죠?”
“넵.”
“흐음, 아마 심사위원 자리를 재고해 봐야겠죠. 하지만 크게 걱정하지는 마세요! 오늘은 어디까지나 연습이니까요. 애초에, 작가님들이라면 충분히 할 수 있을 만큼 쉬운 문제기도 하고요.”
뛰어난 편집자는 소설을 런칭하기 전부터 그 상업성을 읽어내고, 유의미한 예상 수익을 뽑아내기도 한다.
하지만, 지금 지원이 바라는 건 그 정도 단계가 아니다. 따지자면 그보다 훨씬 더 간단했다.
‘좋은 글과 나쁜 글을 구분해 내는 것.’
따지자면, 기초 중의 기초다.
‘…그렇지만, 여기서도 재능은 분명 드러나는 법이지.’
지원은 턱을 괴고 다섯 명의 작가를 지켜봤다. 모두가 통과할 거라 믿어 의심치 않았지만, 누가 가장 재능이 있는지 구경하는 건 또 다른 즐거움이었다. 가장 뛰어난 건 예상대로 천우희였다.
‘5분도 안 읽네.’
작가임에도 불구하고, 작품의 가치를 환산하는 능력은 거의 편집자에 맞먹는다. 세상의 흐름을 읽어내고, 독자의 니즈를 캐치하는 능력이 뛰어나다는 방증이다.
‘…질투 나네.’
그야말로 다재다능多才多能. 세상에 천재는 존재한다는 것을 몸소 보여주는 케이스랄까. 1등은 이미 확정, 그렇게 생각하며 지원은 다른 작가들에게로 눈을 돌렸다.
안재욱과 유동현은 거의 비슷한 속도로 작품을 읽어내려가고 있었다. 약간 고민하는 듯한 느낌이긴 했지만, 그 결과물은 썩 나쁘지 않았다.
걱정했던 정진욱은 의외로 부진하지 않았다. 하기야, 여기 모인 다섯 명의 작가 중 가장 최신장르인 ‘레이드물’을 전문적으로 다루는 작가다.
‘성격은 좀 그렇지만, 실력은 진짜지.’
애초에 그러지 않았으면 이 자리에 오지도 못했을 것이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지원은 자신과 멀찍이 떨어진 형우를 바라봤다.
“…흐음, 이거 괜찮은데?”
“어엉?”
한참을 고민하던 형우가 슬그머니 내려놓은 소설의 제목을 본 지원이 자기도 모르게 소리를 냈다.
“편집자님? 왜 그러세요?”
“아, 아니에요. 잘하고 계시나 해서요.”
“나름 열심히는 하고 있는데, 잘 모르겠어요. 그래도 그 소설은 확실하게 재밌더라고요.”
형우가 내려놓은 소설의 제목은 <보랏빛 드래곤이 되었습니다>
지원의 기억에 없는 소설이다.
그 말인즉슨, 명백하게 상업 가치가 없는 소설이라는 뜻이었다.
‘…뭐, 한 번쯤은 실수할 수도 있지.’
그렇게 생각하며, 지원은 계속해서 형우를 힐끔거렸다.
<보랏빛 드래곤이 되었습니다.> 다음에 고른 작품은 <악덕영주는 설렁탕을 잘 끓인다>였다.
그다음은 <고려매국노>, <갤럭시를 사용하는 여신님은 가끔 너무 졸리신 모양인지 하품을 자주 합니다>
마지막으로 <마추픽추의 밤>까지.
‘…지금 뭐 하는 거야?’
지원의 얼굴에 당혹감이 어렸다.
다섯 작품 모두, 오답이었다.
* * *
다섯 명의 특별심사위원 중 지원의 테스트에 불합격한 사람은 단 한 명, 형우밖에 없었다. 그 모습을 본 천우희는 자기가 직접 특강을 해 주겠다고 나섰다.
“잘 봐봐! 애는 감성이 좀 팍! 하고 오잖아. 애는 좀 문체가 와르르, 하는 느낌이고!”
팍? 와르르?
천우희는 나름 열심히 설명하고는 있었지만, 뭐라고 하는지 알아듣기는 힘들었다.
“…로맨스는 잘 설명하던데.”
“난 지금도 잘 설명하고 있는데?”
“로맨스 설명할 때는 팍! 와르르! 이런 식으로 말 안 했잖아요.”
“로맨스는 내가 나름 공부한 거니까 그렇지. 소설 보는 눈이야, 원래 타고난 거고.”
그렇게 말은 했지만, 천우희도 답답한 건 매한가지였다. 마치 색맹 앞에서 색깔을 설명하는 느낌이랄까.
‘…왜 이걸 모르지?’
아무리 설명하려고 애써도 방법이 없었다. 뭔가를 잘하는 재능이랑, 뭔가를 설명하는 재능은 비슷해 보이지만 완전히 다른 영역이었다. 천우희는 자신이 설리반이 아니라는 것을 다시금 느꼈다. 형우가 고개를 푹 떨어트렸다.
“…이래서야 좋은 심사위원은 못 되겠는데요.”
“그, 그게 뭐가 중요한가? 심사위원 같은 건 하나도 안 중요하잖아.”
천우희의 말은 맞았다. 심사위원이야, 어차피 크게 중요한 감투도 아니다.
“어차피 우리는 작가잖아, 심사는 그냥 덤일 뿐이고. 아까 차에서도 말했듯이, 모든 것에 집중할 필요는 없지 않아?”
“맞아요. 심사위원 자리 자체는 별로 안 중요할 수도 있죠. 그런데 지금 문제는 심사위원이 되느냐 마느냐가 아니잖아요. 심미안이 있느냐, 없느냐지.”
심미안審美眼. 해석하자면 아름다움을 찾아내는 눈이라는 뜻이다.
“예전에 누가 그러더라고요. 예술가로서 가장 중요한 게 심미안이라고.”
“아냐, 아냐! 그런 게 뭐가 중요해?”
천우희는 재빨리 형우를 위로할 만한 말을 찾았다.
“내 생각에 소설가는 말야, 응, 글만 잘 쓰면 되는 거야! 심미안이 제일 중요하다니, 누가 그런 헛소리를 했담?”
“저희 교수님이요.”
“아?”
천우희가 당황해서 손을 허둥거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