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환상을 쓰겟다-83화 (83/200)
  • #82

    “…그렇게 된 거예요. 제가 뭘 쓰든! 갑자기 왜 오지랖이래요?”

    분통을 터트리는 후배, 연수를 바라보며 조현수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거렸다.

    “오지랖이라. 그렇게 볼 수도 있겠네. 그런데 형우한테는 왜 그렇게 말 안 했어?”

    “그야….”

    이유는 간단했다.

    “오지랖이 아니라는 걸 알았으니까요.”

    뭔가, 말로 내뱉으니 뭔가 자존심이 상하는 기분이 들었다.

    “형우 선배는 분명, 저를 생각해서 한 말일 거예요. 저도 알고요.”

    “응.”

    “그, 소설 써서 저한테 망신 준 거. 그것도 이해할 수 있어요. 그렇게라도 안 하면 제가 고집을 안 꺾을 테니 그랬겠죠.”

    “그런데 왜 화를 냈어?”“……형우 선배 말은 맞을지도 모르지만, 꼭 그 말만 맞으리라는 법은 없잖아요.”

    연수가 무릎을 그러모으고, 입술을 비쭉였다.

    “나는 그냥, 즐겁게 글 쓰고 싶다고요.”

    그 모습을 본 현수가 피식 웃었다.

    “이런 말 하면 좀 그런데… 나 꼰대짓 한 번만 해도 되냐?”

    “꼰대짓이요?”

    연수가 그게 대체 뭔 말이냐는 듯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현수는 멋쩍은 듯이 뒷목을 긁으며, 천천히 말을 이어나갔다.

    “우리가 흔히 쓰잖아. 악마의 재능이라는 말. 너도 들어 봤지?”

    대부분의 시인들이 말하기를, 재능에는 두 종류의 재능이 있다고 한다. 신이 주신 재능과 악마가 내려준 재능.

    “신이 준 재능은 마르지 않지만, 악마의 재능은 그 끝이 명확해서 언젠가 말라버린다고 해. 하지만 한번 재능의 맛을 본 사람들은 자신의 영감이 다시 솟아나리라 믿으며 그 길에 매달리고 말지.”

    현수는 1학년 때의 형우를 떠올랐다.

    ‘현수야, 이번에 붉은노을 대학생 순문학 공모전 있잖아. 나 은상 받았다.’

    솔직히 말해 그렇게 큰 대회는 아니었고, 큰 상도 아니었다. 하지만 형우는 거기에서 어떤 확신을 얻어낸 모양이었다. 그리고 그 은상이야말로, 형우에게는 악마의 재능이었다.

    “6년 동안 공모전 39개를 냈고, 모두 떨어졌지.”

    “…알아요.”

    “그다음은 모를걸.”

    지나가던 전동 퀵보드와 부딪힌 탓에 내보지도 못하고 40번째 공모전을 실패한 그 날 밤, 형우는 몇 번이고 자신의 두 눈을 비볐다. 눈꺼풀에 피가 맺힐 정도로.

    “글이 읽히지 않았다고 해. 난독증이라고 하지.”

    어제까지만 해도 멀쩡히 글을 읽을 수 있던 사람이 갑자기 하루아침에 난독증이 온다고? 연수는 그 부분을 상상할 수가 없었다. 글이란 건 좋아하기만 하면 계속 쓸 수 있는 거라고 생각했다.

    글자들이 저절로 뛰어다니고 흐트러지는 모습을 상상했다. 뱀처럼 하얀 노트를 기어 다니다가, 끝끝내 아무것도 남게 되지 않는 그 모습을.

    “평생 글을 못 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더라.”

    그게 바로 악마의 재능의 무서움이다.

    아주 약간의 기대를 대가로 모든 것을 빼앗아 가 버린다. 하지만 형우는 운이 좀 좋았다.

    “장르 소설 쓰라고 조언해 준 게 선배라면서요?”

    “아니.”

    연수의 질문에 현수는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

    “주구장창 리얼리즘 소설만 쓰던 놈이니까, 모더니즘으로 쓰면 어떻겠나 싶어서 해 본 말이었거든. 장르 소설 쓸 거라고는 상상도 못 했어.”

    “…선배가 그랬다면서요. 형우 선배 소설의 설계는 아주 잘 되어있지만, 기계인 듯이 영혼이 하나도 안 느껴진다고.”

    “좀 심한 말이라고는 생각해.”

    “누가 저한테 그렇게 말을 했으면 아마 울었을 거예요. 난독증에 걸려 고생한 사람한테, 그런 말을 잘도 했네요.”

    “…으음, 그때는 걔가 글을 못 읽는다는 걸 몰랐거든.”

    “알았으면 그 소설 영혼 이야기 안 했을 거예요?”

    “으음, 그래도 했을 것 같은데.”

    “하아, 열심히 쓴 소설인데 재미가 없다니….”

    연수가 한숨을 푹 쉬었다.

    “제 소설도 그렇대요. 왜 별로일까요? 분명 엄청 열심히 썼다고 생각했는데, 이상하잖아요.”

    “이런 말을 좋아하지는 않지만, 결국에는 재능 차이라는 말밖에는 할 수가 없네.”

    “결국 예술은 재능빨, 그건가요?”

    “그 소리 형우 앞에서 하면 분명 화낼걸.”

    현수는 곧 적당한 비유를 떠올렸다.

    “사냥꾼이 집에 총을 두고, 주먹으로 사냥을 한다고 생각해 보자. 어쩌면 총을 쓰는 것보다 백 배는 열심히 했을지도 모르지. 하지만 그걸 노력이라고 부를 수 있을까?”

    “…에?”

    “노력이란 건 그런 걸 다 포함해서 노력이라고 생각한다고, 형우가 그러더라고.”

    총을 쓰지 않고 주먹으로 곰과 싸우는 사냥꾼.

    자신의 진짜 재능을 내버려 두고, 미천한 재능으로 글을 써내는 형우.

    끝내 곰에게 패배하고 피투성이가 되어 사냥꾼으로서의 삶을 포기당한다.

    끝내 벽을 넘지 못하고, 글을 읽지 못하는 눈으로 작가의 꿈을 박탈당한다.

    “……대가 없는 노력은 비참해.”

    뭔가, 많은 의미를 내포하고 있는 말이라고 생각했다. 연수의 속에서 수많은 심상이 떠올랐다.

    형우의 처지가 불쌍하기도 하고, 아무리 그래도 자기한테 한 짓은 너무했다는 생각도 들고, 하지만 본인이 힘들었으니 주변 사람은 같은 꼴을 겪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배려라고 생각하면 또 거기에 짜증 내는 자신이 쫌생이인 것 같기도 하고, 뭣보다.

    “그럴 거면 직접 말하지, 왜 선배한테 시켜요?”

    “…어? 어? 그게 무슨 소리야?”

    현수가 어색하게 눈을 돌렸다.

    “나는 진짜 우연히 길 가다가 본 건데?”

    “그걸 제가 믿을 것 같아요? 초등학생도 안 믿겠다!”

    “…그, 연기력 문제인가…?”

    “상황이 엄청엄청엄청 작위적이거든요? 말해 봐요. 왜 직접 안 하고 선배한테 시켰대요?”

    “나, 나도 몰라…. 그냥 부탁만 들었어.”

    연수가 자리에서 일어나 소설 창작실 쪽을 쭉 째려봤다.

    * * *

    “이크.”

    창밖으로 현수와 연수를 바라보던 형우는, 연수가 갑작스럽게 이쪽으로 시선을 돌리자 깜짝 놀라 고개를 푹 숙였다. 볼이 책상에 닿았다.

    “…들킨 건 아니겠지?”

    볼이 책상에 닿자마자, 그 충격으로 코에서 뭔가가 주륵 흘렀다.

    코피였다.

    “…너무 무리했나.”

    평소에도 잠이 많지 않은 형우였지만, 최근에는 특히 무리했다. 과로사 기준이 1주일 60시간의 작업이라는데, 이번 주 형우의 작업시간은 그 1.5배인 90시간에 달했다.

    <아이언 타이거>의 집필에 <후천성 설렘 증후군>까지 동시 집필을 했으니 어쩌면 당연한 거였다. 그렇게 힘들게 짠 계획이다.

    ‘현수가 잘 해줘야 할 텐데.’

    새는 알에서 나오기 위해 투쟁한다. 알은 새의 세계이다. 누구든지 태어나려고 하는 자는 하나의 세계를 파괴하지 않으면 안 된다.

    여기저기 하도 많이 인용되어서 누구든지 한 번은 들어본 문장. 그 원전은 헤르만 헤세가 쓴 소설 <데미안>이다.

    실제로 소설을 읽어 보면, 뭔가 성장에 대한 경구라기보다는 보다 신비적인 종교적 체험 같은 것을 묘사한 글에 가까운데, 주로 저 부분만 뚝 떼어다가 성장통에 대한 비유로 쓴다.

    평소라면 그런 편한 대로의 인용을 좋아하지 않는 형우지만, 지금에는 그 표현이 퍽 적합했다. 요약하자면, 어찌 됐건 자신의 세계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충격이 필요하다는 뜻이었으니까.

    ‘나도 그랬었지.’

    형우의 경우에는 하나도 아니고 세 개의 충격을 연속으로 받았다. 40번째의 공모전을 떨어지고, 가장 선망했던 친구에게는 글에 혼이 없다는 혹평을 들었으며, 난독증까지 겹쳤다.

    그리고, 그제야 지금까지 걸어왔던 길이 잘못되었음을 깨달았다.

    ‘…너무 고집스러웠던 거지.’

    그걸 알기까지 너무 많은 것들을 잃었다. 만약 할 수 있다면, 자기 주변 사람들은 그런 일을 겪지 않기를 바랐다. 그래서 연수에게 본의 아니게 모진 짓을 좀 했다. 요컨대 충격 요법이다.

    “…충격 자체는 잘 들어간 것 같은데.”

    단순히 충격만 주고 끝낸다면 그건 충격 요법이 아니라 단순한 아집이고 폭력이다. 충격 요법의 요의는 잘못 구성된 것을 부순 다음에 다시 재조립하는 것에 있는 것이지, 깨부수는 것에 있는 것이 아니니까.

    그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깨부수는 사람’과 ‘조립하는 사람’이 같아서는 안 된다는 거다.

    ‘…그랬다가는 비극이지.’

    깨부수는 사람과 조립하는 사람이 같다면, 그건 충격 요법 따위가 아니라 세뇌고 가스라이팅이다.

    조립은 연수 스스로가 할 문제다.

    “현수도 어련히 잘해 줄 테고.”

    생각이 깊은 친구니, 아마 연수를 잘 북돋아 줄 것이다. 이쯤 되면 계획한 대로는 다 됐다.

    대충 일을 마친 형우는 그대로 시간을 확인했다. 수업 시작까지는 한 시간이 남아 있었다.

    “…과제라도 할까.”

    가장 먼저 생각나는 건 역시 그 무지막지한 천병옥 교수의 과제다. 형우는 그대로 컴퓨터를 향해 눈을 돌렸다.

    “정리 좀 해놓지….”

    분명 컴퓨터 앞에도 [사용을 마치셨으면 다음 사람들을 위해 사용한 파일들을 정리해 주세요.]라고 쓰여 있건만, 그 부탁이 무색하게 바탕화면에는 온갖 한글파일들이 이리저리 늘어져 있었다.

    <가시>, <그 겨울의 추억>, <도둑맞은 노래>, <드러눕는 풀은 언제 잠 깨는가>, <가로수>, <타이런트Tyrant>, <노스텔지어의 꿈>

    “…응?”

    수많은 파일 중 한 파일의 제목이 형우의 시선을 잡아 끌었다.

    ‘<타이런트Tyrant>?’

    폭군이라는 뜻이다. 아무리 봐도, 순문학처럼 보이지는 않는 제목이다. 심지어 뒤에 영문명까지 달아 놨다.

    “남의 소설을 멋대로 보는 게 예의가 아니라는 건 알지만….”

    어디서 떠벌리는 게 아니라면 몰래 읽는 것 정도는 괜찮을 테다. 애초에 삭제 안한 쪽도 책임이 좀 있기는 하고.

    주위를 살짝 둘러본 형우는 그대로 <타이런트>를 클릭했다.

    “역시.”

    A4용지 반 페이지, 그러니까 대충 1,000자 정도 써진 소설이다.

    소설이라기보다는, 소설의 러프라고 해야 하나. 구상 같은 거였다.

    <타이런트Tyrant>

    이세계로 소환된 대학생이 대륙을 통일하는 황제가 되어가는 이야기였다.

    “허얼….”

    형우의 입이 떡 벌어졌다.

    그 1,000자에 담긴 내용이 엄청나게 훌륭해서는 아니다. 놀란 건 주인공의 이름 때문이었다.

    ‘…주인공 이름이 공태준이라고?’

    정확히는 ‘서대륙의 유일한 적합자이자 신성의 통일자. 다른 세계에서 넘어온 구원자이자 최후의 아스토리우스’라고 길기도 길게 쓰여 있었다.

    우연히 이름만 같은가 했는데, 그것도 아니다. 한국 명문대의 대학생이며, 헬스를 즐겨 하고 글에 재능이 있다고 설정되어 있다.

    물론 뒤에 있는 성격이 좋다거나 주변 사람들의 선망을 받는다거나 김형우라는 놈을 따까리로 부린다거나 여자에게 인기가 많다거나 하는 거짓말들이 좀 붙어있기는 했지만, 전체적으로 보면 현실의 공태준을 모티브로 한 캐릭터가 맞는 것 같았다.

    ‘…자기 이름을 그대로 캐릭터에 박는다고? 그것도 이 정도로 부풀려서?’

    어쩌면 이건 공태준이 쓴 게 아니라 공태준을 엿 먹이고 싶어 하는 누군가가 쓴 게 아닐까? 그런 합리적 의심까지 들었지만, 그렇게 보자면 작품 전체에서 느껴지는 주인공에 대한 무한한 애정을 설명할 방법이 없었다.

    게다가 아까 창작실에서 나오던 공태준과 마주치기까지 했으니, 거의 빼박이나 마찬가지였다.

    “…와 미친.”

    공태준이 장르소설을 쓰든, 자기 엉덩이로 점묘화를 그리건 상관할 바는 아니었지만, 자신이 쓴 소설 주인공의 이름에 본명을 가져다 박는 그 기묘한 센스는 상당히 충격적이었다. 그것도 심지어, 현대판타지 같은 것도 아니고 먼치킨 판타지물에!

    “어후…… 내가 다 부끄럽네. 이 인간은 부끄러움이라는 감정이 없나?”

    지금까지의 공태준의 행보를 생각해 본다면, 어쩌면 그게 사실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 * *

    <소설창작론>

    문창과의 유일한 4학점짜리 수업이자, 동시에 가장 중요하다고 평가받는 수업 시간이다.

    “…흐음.”

    학생들의 얼굴을 쭉 살펴보던 한다은은 뭔가 이상함을 느꼈다.

    ‘연수 표정이 왜 저러지?’

    늘 수업을 열심히 듣는 아이였는데, 오늘은 무슨 바람이라도 난 건지 천장만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다. 이해되지 않는 것은 그뿐만이 아니다.

    ‘…쟨 또 왜 저래?’

    김형우는 수업 시간 내내 참을 수 없다는 듯이 웃음을 쿡쿡 터트렸다. 그냥 웃기만 하는 거였으면 어제저녁에 본 재밌는 예능프로그램이라도 생각났나 보다 하고 넘어갈 텐데, 단순히 그것만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모양새였다.

    “……푸흡.”

    형우는 계속 공태준을 힐끗거리며 참을 수 없다는 듯이 피식거렸다.

    “…뭐냐?”

    그 낌새를 알아챈 공태준이 화난 표정으로 형우를 바라봤다.

    “아무것도 아니… 억!”

    그 모습을 보자마자 형우는 숨이 턱 막히는 느낌이 들었다. 동시에 <타이런트>의 한 장면이 떠올랐다.

    ‘공태준은 Lv82에 달한 카리스마를 내뿜으며 순식간에 멍하니 서 있는 좌중을 사로잡았다. 사로잡히지 않은 사람들은 얼어서 굶어 죽었다.’

    아니, 이왕 먼치킨으로 할 거면 그냥 레벨 99나 랭크 SSS로 하지, 왜 애매하게 82일까?

    그리고 좌중은 앉아있는 사람이라는 뜻인데, 서 있는 좌중이란 대체 뭘까?

    사로잡히지 않은 사람들의 사인은 동사일까 아사일까?

    이런저런 고민을 하던 형우는 결국 참지 못하고, 21세기 문학사의 최고 걸작이라고 평가받는 폴 프라이의 <문학이론>을 펼쳐 얼굴을 가렸다.

    “서대륙의 황제… 푸흡!”

    비록 수업 시간이었지만, 이 상황에서 웃음을 참으라는 게 더 너무한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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