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8
데뷔.
문예지를 통해 등단을 해야만 작가로서 인정받는 순문학과 달리, 웹소설은 그 등용문이 꽤 넓은 편이다.
하지만 그중에서도 특히 사람들이 애용하는 등용문을 뽑으라면, 크게 두 가지다.
자신이 쓰는 것이 남성향 소설이라면 달피아의 ‘일반 연재란’을 이용하는 것이 좋고, 여성향을 노린다면 조이라나 네이비 웹소설의 ‘챌린지리그’를 통하는 것이 승률이 좋다.
“여기는 처음 들어와 보네.”
형우는 네이비 챌린지리그 화면을 천천히 살폈다. 찾던 소설은 금방 발견할 수 있었다.
<황태자는 황국을 살아간다.> - 연수
[승급 후보작]
다른 것보다도 ‘승급 후보작’이라는 글씨가 눈에 띄었다. 무료 웹소설을 유료 웹소설로 전환하는 방식으로 운영되는 달피아와 달리, 네이비 웹소설은 ‘리그’라는 이름에 걸맞게 승격제로 운영된다.
챌린지리그에서 두각을 나타내면 베스트리그로 승격되고, 베스트리그에서도 두각을 나타내면 오늘의 웹소설로 승격되는 식이다.
‘…접근성 측면에서는 달피아가 조금 더 낫고, 작품의 질을 관리하는 측면에서는 네이비 첼린저리그가 조금 더 나은 건가.’
아무래도 네이비라는 플랫폼 자체가 검색엔진을 겸하고 있다 보니, 기업 이미지를 조금 더 신경 쓴다는 느낌이었다. 조금 더 정확하게 알기 위해, 형우는 네이비 웹소설의 승격 기준을 확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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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스트리그 승격 기준]
-최신성, 조회수, 관심작품수를 기반으로 산출된 주간 랭킹에 의해 매주 1회, 화요일마다 장르별 10위까지의 작품이 자동 승격됩니다.
-웹소설 게시글 원칙에 부합되지 않은 작품의 경우 승격 후보작에 선정되어도 승격이 제한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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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등까지는 올라가고 11등은 떨어지는 시스템.
그러니, 절대평가가 아닌 상대평가라는 거다.
‘…아슬아슬하군.’
연수의 순위는 정확하게 10위였다.
형우는 일단 15화까지 연재된 <황태자는 왕국에서 살아간다>를 읽었다. 군데군데 문장을 손보기는 했지만, 예전에 봤던 것과 큰 차이가 없었다. 감상평도 그때와 똑같았다.
“…나쁘지 않네.”
연수의 소설을 한번 정독한 후에 형우는 그대로 다른 소설을 찾아 읽었다.
연수의 소설 뒤를 바짝 쫓고 있는 승격 후보작인 <주홍빛 연애>라는 소설이었다.
“이 둘이 승급을 다투는 건가….”
3화쯤 읽었을 때, 형우는 그대로 안경을 벗었다.
더 이상 안 봐도 알겠다.
굳이 형우가 아니라도, 누가 봐도 알 수 있을 것이다. 90% 확률로, <황태자는 왕국을 살아간다>의 승급 실패.
형우는 천천히 두 작품을 비교했다. 연수의 작품에는 군더더기가 없다. 학구열로만 써진 작품 같다.
하지만 평론이라면 모를까, 소설은 단순히 학구열로만 쓸 수 있는 게 아니다.
“…자기 주관이 부족해.”
그에 반해, 연수의 작품 뒤를 바짝 쫓고 있는 11위 작품인 <주홍빛 연애>. <셜록홈즈> 시리즈의 첫 작품인 <주홍빛 연구>를 현대식으로 패러디한 작품 같았다.
팬이 많은 고전 작품을 자기 입맛대로 패러디할 수 있다는 점만 봐도, 작가의 뚜렷한 자기주장과 담력을 엿볼 수 있었다.
거기에, 설정도 나름 현실적이다. 탐정이 없는 대한민국이니만큼, 주인공은 남자 사설탐정인 셜록 홈즈 대신, 국과수 검시관으로 바뀌었다. 그 묘사는 전문가가 본다고 하면 꽤 허점투성이겠지만, 전문가가 아닌 사람이 보기에는 상당히 그럴듯하게 느껴졌다.
그에 비해 연수는, 지나치게 디테일에 집착한다. 황실의 엄격한 직위 표현이라던가, 황실 예법, 그리고 미술사적 양식까지 나왔다.
“…대체역사 소설이라면 모를까, 로맨스에서는 확실하게 과해.”
디테일하고 사실적인 묘사가 무조건 좋은 것은 아니다. 웹소설이라는 건 기본적으로 5,500자 시장이고, 디테일은 필연적으로 분량을 많이 먹는다. 소설이 너무 섬세해지면 전개가 느려진다는 뜻이다.
“…그 탓에 기세가 누그러졌어.”
소설에도 당연히 기세라는 게 있다. 잘 써질 때는 팍팍 써지고, 안 써질 때는 죽어라 안 써진다. 그리고, <주홍색 연애>는 확실하게 기세를 탔다.
아직까지는 소설의 전개 부분이라 티가 안 날 뿐이지, 중반부에 진입하며 템포가 빨라지는 순간 <주홍색 연애>는 연수의 소설을 끌어내리고 순위권에 이름을 올릴 것이다.
“…이걸 어쩐다.”
형우는 찬찬히, 연수의 소설을 다시금 읽어내려갔다. 그리고 결정적인 문제를 알아차렸다.
연수의 잘못이 아니라 자신의 잘못이었다.
‘지금까지 로맨스를 구상했다기에 나름 재능이 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자신의 생각이 틀렸다.
“이건 별로 좋지가 않은데…….”
그렇게 중얼거린 형우는 5분 후, 천천히 뭔가를 써 내려가기 시작했다.
* * *
젊음이 넘치는 거리, 홍대.
바깥에서는 한낯의 버스킹 소리가 들려오는 가운데, 천우희가 돈까스를 살살 썰었다.
“내 생각에 인간은 두 종류가 있는 것 같아요. 하나는 인생의 매운맛을 덜 본 인간이고, 하나는 매운맛을 즐기는 인간이죠.”
“…네?”
“하지만요, 제 생각은 이래요. 맵고 거친 걸 두려워하는 사람은 결코 좋은 삶을 살 수 없다고. 누군가는 인간은 행복해지기 위해 산다고 하지만, 그건 다 헛소리야. 그럴 거면 차라리 술을 마시고 말죠.”
말을 마친 우희는 썰어놓은 돈가스 하나에 붉은 소스를 잔뜩 발라 그대로 입 안에 집어넣었다.
“…괜찮아요?”
지원이 조금 걱정된다는 느낌으로 우희를 바라봤다. 정확히는 그 뒤에 걸린 푯말을 말이다.
[경고 : 너무 매워서 실신할 경우 음식점은 해당 사람에게 책임을 지지 않습니다.]
홍대 거리에는 매운맛의 3대천왕이 있다.
한식韓食의 홍스쭈꾸미.
중식中食의 신길동매운짬뽕.
그리고, 일식日食의 디진다돈까스.
불닭볶음면을 즐겨 먹는 것 정도로 스스로가 매운맛에 강하다고 착각하는 치기 어린 젊은이들에게 진정한 매운맛이 뭔지 알려주는 장소랄까.
먹다가 실신하는 사람도 종종 나온다고 하니, 혓바닥으로 즐기는 익스트림 스포츠라고 해도 그다지 과언은 아니다.
“…뭐, 생각만치 엄청 맵지는 않네요.”
손가락 두 마디만 한 돈까스를 꿀꺽, 삼킨 후 우희는 태연한 듯이 그렇게 말했다.
“…괜찮아요? 먹으면 입에 불난다는데.”
“후훗, 지원 언니. 저는 매운 것을 아주 잘 먹는 편이랍니다. 아까 말했듯이 인생의 매운맛에 비하자면 이 정도야 아무렇지도 않….”
그 순간, 우희의 표정이 살짝 일그러졌다.
매운 음식의 가장 무서운 점은, 그 충격이 조금 나중에 올라온다는 것이다.
“…거, 든요…? 하나도 안, 맵, 후, 하!”
그 모습을 본 지원이 그럴 줄 알았다는 듯 한숨을 푹 쉬었다.
“여기 쿨피스 주세요! 한 팩, 아니, 두 팩이요!”
* * *
“후하, 살겠다.”
꼴딱, 꼴딱.
종업원이 후다닥 들고 온 500mL짜리 쿨피스 한 팩이 그대로 사라지기까지는 오 초가 걸렸다.
“하나 더 드세요.”
“고마워요, 언니. 후하, 후하.”
“그렇게 매워요?”
“맵지는 않은데, 목이 좀 말라서요.”
“…목이 엄청 말랐나 보네요. 쿨피스 다섯 개를 비운 걸 보니까.”
양으로 치면 거의 2.5L다.
역시 디진다돈까스. 돈까스 먹으러 왔다가 쿨피스로 배 채우고 간다더니, 그 소문이 헛된 건 아니었던 모양이다.
“…그래서 뭐예요, 언니? 할 말 있다면서요. 고민이라도 있는 건가?”
“흐음, 고민이라고 할 만큼 엄청 대단한 건 아니고, 그냥 간단한 거예요.”
“간단하다면 어느 정도?”
“음, 만약 우희 작가님이 거절하면 제가 해고당할 정도요?”
“어, 음. 농담이죠?”
“절반 정도는요.”
절반이라고 해도 이야기는 전혀 가벼워지지 않았다. 해고의 절반이라면 뭘까? 사직? 시말서? 징계?
“그, 이번에 C&N에서 공모전 하는 거 알죠?”
“슬슬 그럴 땐가? 지금이 몇 회에요?”
“7회요.”
“와, 벌써 그렇게 됐나? 하나, 둘, 셋, 내 이후로 여섯 번이나 더 한 거네!”
우희는 제1회 C&N 장르소설 공모전을 통해서 데뷔했다. 지원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셈이죠.”
“그리고 그중에서 내가 제일 잘 나간다는 거지. 그거 기분 좋네요.”
“…그게 문제에요.”
1회에서는 천우희라는 걸출한 작가를 배출해내는 데 성공했지만, 그 이후로 C&N의 장르문학 공모전은 이렇다 할 괴물 신인을 배출해내지 못했다.
심지어 작년에는 대상 자체를 못 뽑았다.
“그래서 저희 공모전 자체가 사람들한테 약간 의심을 받고 있다고 해야 하나. 그런 상황이거든요. 편집부 내에서도 고민이 심해요.”
“언니는 편집장 싫어하잖아요. 편집장을 잘라낼 찬스인가?”
“천우희 작가님은 가끔 회사를 안 다녀 본 티가 너무 난다니까요. 블사복에서도 그랬잖아.”
“이익….”
블사복은 우희의 전작인 <블랙기업이지만 사장님 얼굴이 복지라 괜찮아요!>의 약자였다.
한 중견기업을 배경으로 한 회사 로맨스물이었는데, 회사를 잘 모르는 우희에게 지원이 많은 도움을 줬었다.
만약 지원이 없었다면, 대리가 사장을 찾아가서 뭔가를 요구하는 장면이나 회장이 신입사원의 이름을 달달 외우고 있는 등의 말도 안 되는 장면들이 그대로 나가 버렸으리라.
“…아무튼, 그다음은요?”
“아, 그러다가 윤진 님이 아이디어를 냈어요. 이번 공모전에는 다른 걸 추가해 보자고. 특별 심사 위원이라는 거죠.”
C&N 소속의 잘나가는 작가 몇 명을 특별 심사위원으로 삼아 심사평을 써 주면, 신인 작가들이 그 점에서 메리트를 느끼지 않을까? 하는 것이 윤진의 의견이었다.
“그거, 나쁘지 않은데요?”
천우희가 고개를 끄덕였다. 아닌 말이 아니라, 충분히 가능성 있는 의견이었다. 실제로 얼마 전 한 출판사에서 교과서에도 실린 유명 판타지 소설가를 특별 심사위원으로 초빙하여 판타지 소설 공모전을 연 적이 있었다.
결과는 대호평. 업계 내의 믿을만한 소문에 의하면 해당 출판사는 발족 이후 가장 많은 수의 투고작을 받아냈다고 들었다.
“그 이야기를 듣자마자 가장 먼저 떠오르는 작가님이 천우희 작가님이더라고요. 작가님 생각은 어떠세요?”
그렇게 말하며 지원은 우희의 얼굴을 바라봤다. 칭찬 듣는 걸 좋아하는 천우희니만큼 이쯤 됐으면 이미 입이 귀까지 올라가서 샐쭉거리고 있을 줄 알았는데, 의외로 차분했다.
“언니, 하나만 물어볼게요.”
“…물어보세요.”
“이거, 김형우도 해요?”
“아마도 그럴 것 같은데요.”
“그러면 혹시 저 만나러 오기 전에 김형우 만났어요?”
“형우 작가님이요? 안 만났는데….”
그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천우희의 입꼬리가 쭉 올라갔다.
만약 지원 언니가 자신보다 김형우를 먼저 찾아갔더라면, 분명 자존심이 엄청 상했을 테다.
“그러니까, C&N에서 제일 좋은 작가를 떠올렸을 때 김형우보다 제가 먼저 떠올랐다는 이야기죠?”
“그렇… 죠?”
“역시!”
천우희가 당당한 몸짓으로 가슴을 쭉 폈다.
“당연히! 해 줄게요, 특별 심사위원! 언니 부탁이잖아요.”
“아… 넵.”
“그러면 몇 명이나 오는 거예요? 일단 저랑, C&N ‘2등’ 소설가 김형우랑. 두 사람이 전부는 아닐 것 같은데?”
묘하게 2등이라는 단어를 강조하는 천우희였지만, 지원은 애써 그 강조점을 못 들은 척 했다.
“어어, 그 외에도 안띵 작가님이랑… 추가로 한 세 명 정도는 더 섭외할 생각이에요.”
“뭐, 언니가 어련히 잘하겠죠! 저는 돈까스나 마저 먹을게요!”
그렇게, 히죽히죽대며 천우희는 다시 돈까스를 썰었다.
매운 돈까스는 이미 다 치워 두고, 다시 새로 시킨 하나도 안 매운 돈까스였다.‘으음.’
그 천진한 모습을 본 지원은 약간 양심이 찔렸다.
천우희를 먼저 만난 건 사실이었지만, 사실 이 이야기를 듣자마자 가장 먼저 연락한 건 형우였다.
‘저 죄송하지만 이번 주는 좀 바쁠 것 같은데요?’
‘아, 죄송할 것 없어요 작가님! 저는 뭐, 천우희 작가님이나 다른 작가님들부터 만나면 되니까요!’
...이러한 사정으로 인해 형우보다 천우희를 먼저 만나게 된 거였다.
‘…이거, 사실대로 말해야 하나?’
순간 그런 생각이 들었지만 이내 단념했다.
무엇보다도 본인이 저렇게 착각 속에서 즐거워하고 있지 않은가.
원리원칙주의자인 칸트는 ‘모든 거짓말은 나쁜 것이다.’라고 말했지만, 지원은 그 말을 ‘유명한 철학자라고 꼭 옳은 말만 하는 것은 아니다.’라는 의미로 받아들이기로 했다.
‘…사람이 꼭 정직할 필요는 없지.’
선의의 거짓말이라고 애써 포장하며, 지원은 속에서 느껴지는 양심통을 꾹꾹 눌러 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