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환상을 쓰겟다-77화 (77/200)
  • #76

    짧은 식사가 끝난 뒤, 형우는 곧바로 노트북 앞에 앉아 에너지드링크 캔을 따서 마셨다.

    그러면서도 반대쪽 손으로는 능숙하게 마우스를 조정해 노래 하나를 틀었다.

    빰빰빠라밤 빰빰빠라밤 빠밤 바바밤~

    잠시 후, 약간 조야하면서도 끈적한 브리트니 스피어스의 목소리가 창작실을 가득 메웠다.

    “ 맞죠?”

    지원이 아는 체를 했다. 제목은 몰라도, 그 특이한 반주를 들으면 대부분은 ‘아 이 노래!’하면서 박수를 딱 치는, 희대의 명곡 중 하나다.

    “…작가님, 원래 음악 들으면서 소설 써요?”

    작가들 사이에서는 의견 일치가 되는 주제보다 의견 일치가 되지 않는 주제가 더 많지만, ‘작업 중에 음악 듣기’는 그중에서도 특히 의견이 크게 갈리는 주제였다.

    누군가는 소설을 쓸 때 절대 음악을 들으면 안 된다고 이야기하고, 다른 누군가는 잔잔한 BGM이나 클래식 정도는 괜찮다고 말한다. 아예 가사가 있는 음악을 들어도 상관없다고 생각하는 부류도 있다.

    “왠지 형우 님은 노래 안 들을 것 같았는데.”

    “흐흐, 저도 매일 듣는 건 아니고, 가끔 들어요.”

    가끔이란, 작품 내용과 기막히게 어울리는 음악이 생각났을 때를 뜻한다.

    “뭐랄까, 소설에 BGM이 깔린다는 느낌으로 쓴다고 해야 하나요?”

    형우가 스스로 고안해 낸 작법은 아니고, 예전에 한 시나리오 작가의 인터뷰에서 본 거였다.

    작가가 되기 전에는 작법서를 많이 찾아봤는데, 작가로 데뷔한 후에는 작법서는 일부러 멀리했다. 필체에 혼선을 주지 않기 위해서였다.

    그 대신 찾아보기 시작한 것이 작가의 인터뷰였는데, 거기에 나온 몇몇 팁들은 확실하게 도움이 됐다.

    “그래도 한국 노래는 안 들어요.”

    “뭐야, 중2병이에요?”

    “…왜 중2병이죠?”

    “한국 노래는 다 쓰레기야! 라면서 팝송이나 일본 음악 같은 거 들으면 중2병인데.”

    “그런 거 아니거든요.”

    형우가 억울하다는 듯 손을 내저었다.

    “한글로 소설 쓰면서 한국어 노래 들으면 집중이 하나도 안 되거든요. 잠깐만 정신줄 놓으면 가사 따라 적고 있다니까요?”

    “…형우 님, 한국대학교 학생이잖아요. 영어도 꽤 하지 않아요?”

    “어… 그렇기야 한데요.”

    교육 강국인 대한민국의 명문대 학생답게 형우의 영어 실력은 원어민과 지장 없이 대화를 할 만한 수준이었다.

    “그러면 팝송도 받아 적는 거 아닌가?”

    “에이, 그렇게는 안 되죠.”

    형우가 느끼기에, 한국어를 듣는 게 ‘심장 근육’이라면 영어는 ‘팔 근육’과 비슷했다.

    “심장은 제가 움직여라! 안 해도 혼자 뛰잖아요? 그에 비해 팔 근육은 아무리 가벼운 걸 들어도 일단은 ‘움직여라!’라고 해야 움직이니까. 그런 느낌이죠.”

    “이해는 되네요. 그래서, 오늘 브리트니 스피어스 노래 들으면서 쓰는 건 어떤 부분인데요?”

    “제목 그대로요.”

    의 뜻은 독성.

    형우는 그 말 그대로, 자신의 소설 속에 독을 잔뜩 담을 계획이었다.

    “딱 한 시간 반만 기다리면, 직접 볼 수 있을 거예요.”

    그렇게 말한 뒤, 형우는 바로 노트북으로 눈을 돌렸다. 만두 기름이 잔뜩 묻은 매끈한 열 손가락이 키보드 자판 위를 내달렸다. 지원은 그 모습을 보며 아리송한 표정을 지었다.

    ‘…독성이 뭐 어쨌다는 거지? 소설을 독하게 쓰겠다는 뜻인가?’

    하지만 이미 형우는 초집중 상태에 들어간 후였고, 지원은 그런 형우를 별로 방해하고 싶지가 않았다.

    “…나도 멍하니 있지 말고 일하자.”

    21세기의 가장 좋은 점이자 가장 나쁜 점은, 굳이 회사가 아니어도 일을 할 수 있다는 거다.

    그렇게 생각하며, 지원도 가방에서 태블릿PC를 꺼냈다.

    타닥, 타다다닥, 형우의 적축 키보드가 크고 우렁찬 소리를 냈고,

    토독, 톡토도도독, 지원의 태블릿PC에서는 그런 소리가 났다.

    째깍, 째깍- 하는 아날로그 시계 소리도 난다. 불규칙한 두 개의 기계와, 규칙적인 하나의 기계음이 매분 매초 다른 방식으로 서로 부딪혔다.

    “다 됐어요!”

    이윽고 소설이 완성되었다. 지원은 싱긋 웃으며 아이패드를 다시 가방 속으로 집어넣었다. 그 대신 품을 뒤져 늘 가지고 다니는 볼펜을 꺼냈다.

    “좋아요, 한번 볼까요?”

    마치 살아 있는 것처럼, 볼펜이 손 위에서 휘리릭 회전했다.

    * * *

    세상에서 가장 위험한 독은 무엇일까?

    <네셔널 지오그래픽>이나, <동물의 왕국> 같은 프로그램을 즐겨 보는 사람이라면 아마 배에 난 붉은 점이 인상적인 검은과부거미나 춤을 잘 추는 것으로 유명한 인도의 킹코브라를 떠올릴 것이다.

    하지만 생각 외로 이 맹독성의 동물들은 사람을 많이 죽이지 않는다. 이들의 독은 무서운 독이지만, 역설적으로 그렇기에 조금 덜 위험하다. 검은과부거미나 킹코브라에 물린 사람은 자신이 독에 중독되었다는 것을 깨닫고 바로 해독제를 찾기 때문이다. 이들의 독은 너무 정직하다.

    그렇다면 가장 위험한 독은 무엇인가? 답은 바로 ‘독인 줄 모르고 먹는 독’이다. 속임수가 섞인 독이야말로 사람을 죽이고, 미치게 만들고, 손발을 벌벌 떨게 만든다. 지금 지원의 상태가 딱 그랬다.

    ‘…어지럽네.’

    지원은 조금 얼떨떨한 표정으로 목 뒤를 주물렀다. 그제야 형우가 말한 소설 속의 독毒이 무엇인지 깨달았다. 반전反轉이다.

    생각해 보면 간단한 일이다. 아무도 모르게 독자의 마음속에 파고들어, 가장 방심한 순간 뒤통수를 물어뜯는 장치가 바로 반전이라는 녀석이니.

    게다가, 단순한 내용적 반전인 것도 아니다.

    ‘…하나의 소설 속에 두 개의 장르가 들어가 있어.’

    반전에는 두 가지 종류가 있다. ‘사실 그 아이는 네 아이야!’라던지, ‘우리가 남매라고요?’로 대표되는 내용적 반전과, 특정한 사건을 계기로 장르 자체가 뒤집혀 버리는 장르적 반전이 그것이다.

    영화 <관상>을 보면 이해하기 쉽다. 주인공이 알고 있던 수양대군이 사실 가짜 수양대군이었다는 것은 ‘내용적 반전’이고, 진짜 수양대군이 등장하면서 활극에서 정치극으로 영화의 방향이 바뀌는 것은 ‘장르적 반전’이다. 이번에 형우가 <아이언 타이거>를 쓰면서 좀 더 힘을 준 쪽은, 후자인 ‘장르적 반전’ 쪽이었다.

    형우는 <아이언 타이거>를 헌터물로 쓰고 싶어 했지만, 독자들은 <아이언 타이거>를 공포물로 읽었다. 독자와 작가의 해석이 극명하게 갈라지는 가운데서, 형우는 그 방향성을 선택하기 위해 오랜 시간 고민했다. 그리고 끝내, 고르지 못했다.

    “그래서 그냥, 둘 다 가져가면 어떨까, 싶더라고요.”

    [김철호 님은 각성하셨습니다!]

    [헌터협회랑 계약해서, 헌터가 되어주세요.]

    [나랑 같이 세상을 구해보지 않을래?]

    형우가 새롭게 고쳐낸 <아이언 타이거>의 전반부는 헌터물의 정석을 탄탄하게 따라가는 왕도적 전개를 보여줬다. 특이한 점은 없지만, 딱히 흠 잡을 데도 없는 10점 만점에 8점 정도 줄 수 있는 적당히 잘 쓴 수작 헌터물이었다.

    [지금 보니 네 능력, 완전 사기 아니냐?]

    [에이, 선배 능력이 더 낫죠.]

    [아니야, 철호야. 오늘 게이트에서 봤잖아. 너, 진짜 잘만 하면 S급 헌터 되겠는데?]

    [너 진짜 꼭 헌터 해라. 나랑 같이 회사 차리자.]

    [저랑요?]

    그리고 3화. 헌터가 될지 말지 고민하던 주인공은 결국 존경하는 선배 헌터를 보고 자신도 헌터가 되겠다고 결심한다. 그런 주인공에게 ‘나중에 소주에 삼겹살이라도 한잔하면서 이야기하자.’라며 씩 웃는 선배.

    [네가 있어서 다행이다. 뭐든지 할 수 있을 것 같아.]

    그다음 장면에서, 사람 좋은 주인공의 선배는 그림자에서 솟아난 조폭에 의해 그대로 참수당한다.

    날아가는 선배의 머리를 보며 입을 쩍 벌린 건, 소설의 주인공만이 아니었다.

    ‘…진짜 깜짝 놀랐어.’

    이 작품이 정도定道 헌터물이라고 굳게 믿게 된 타이밍에 갑자기 튀어나온 스릴러적 작법이 얼마나 당황스러웠는지, 몇 번이나 눈을 깜빡이면서 앞부분을 다시 확인했다.

    ‘이게 복선이었구나!’

    반전을 알고 나면 보이는 복선들이 1화와 2화 여기저기에 전략적으로 뿌려져 있었다. 거기까지 확인하니, 또다시 소름이 돋았다.

    “진짜 제정신 아닌데요? 완전 마음에 들어!”

    지원이 극찬했다. 굳이 말로 하지 않아도, 팔에 오소소 돋아 있는 두꺼운 닭살이 그것을 증명했다.

    “이걸로 가죠. 이건 무조건 성공이에요.”

    지원은 내친김에 형우의 소설을 출판사 직원 몇 명에게 샘플로 보냈다. 교과서로 쓰기 위해서였다.

    “소설을 어떻게 고쳐야 더 좋은 소설이 되는지에 대한 좋은 예시가 될 거예요.”

    “그렇게까지요?”

    지원의 극찬을 들은 형우가 좀 쑥스럽다는 듯이 머리를 긁적거렸다.

    * * *

    지이잉.

    <아이언 타이거>에 대해 형우와 이야기를 나누던 중, 지원의 휴대폰이 울렸다.

    “잠시만요.”

    문자를 보낸 사람은 공판석이었다.

    공판석 : 공모전을 최우선으로 신경 쓰고 행동할 것. 다들 명심해주기를 바람. 당신들이 월급을 얼마나 받아 가는지 명심할 것.

    메시지를 확인한 지원의 표정이 확 구겨졌다.

    “…누가 보면 월급 지가 주는 줄 알겠네.”

    “무슨 일 있어요? 표정이 안 좋은데.”

    “아….”

    다른 눈치 빠른 직장인들도 아니고, 눈치가 약간 메롱인 형우에게 들킬 정도라니.

    아무래도 요즘 자신이 힘들긴 힘든 모양이었다. 지원은 재빨리 자신의 표정을 관리했다.

    “별일은 아니에요. 작가님이 신경 쓰실 거 없어요.”

    “무슨 일 있으면 제대로 말해 주세요.”

    “그건 제 대사거든요.”

    편집자로서 형우와 처음 만났을 때 했던 말인데, 이런 식으로 돌려받을 줄은 몰랐다. 지원은 피식 웃고서는 어쩔 수 없다는 듯 손을 저었다.

    “얼마 전에 C&N 공모전을 시작했는데 응모가 잘 없어서, 그게 좀 걱정이에요.”

    “신인 작가가 없는 건가요?”

    형우가 되묻자, 지원이 고개를 끄덕거렸다.

    “광고도 충분히 하고 상금도 크게 걸었는데… 아무래도 작년에 한 번 논란이 있어서 그런지 올해도 공모자가 별로 없네요.”

    “허어, 어려운 문제네요.”

    “신경 쓰지 마세요, 작가님이 신경 쓰실 문제는 아닌걸요.”

    “그렇게 말하면 신경 안 쓰기야 하겠는데… 다른 게 좀 신경 쓰이네요.”

    “다른 거요?”

    “편집자님 혹시 그런 경험 없으세요? 평소에 엄마가 청소 좀 하라고 매일 혼내서 하루 날 잡고 열심히 청소해 놨는데, 오늘따라 이상하게 엄마가 청소하라는 말을 안 하는, 그런 상황이요.”

    “있기야 있는데, 갑자기 그건 왜요?”

    “지금 제 기분이 딱 그렇거든요.”

    형우가 지원을 보고 사람 좋은 표정을 지어 보였다.

    “평소에는 맨날 그러셨잖아요. 좋은 작가 있으면 소개 좀 해 달라고. 오늘은 왜 그 말 안 하세요?”

    * * *

    서울 소재의 한 대학병원. 수간호사 한 명이 대기 중인 환자에게 아는 체를 했다.

    “서연수 환자분?”

    “어! 수간호사 언니?”

    1년 만에 보는 얼굴이었지만, 둘은 서로 동시에 알아봤다.

    “오늘이 검진 날이었구나. 어깨는 좀 어때요?”

    “헤헷, 완전 멀쩡해요.”

    “그렇다고 해도 너무 무리한 운동은 하면 안 되는 거 알죠?”

    “무리한 운동이 아니라 그냥 운동할 시간도 없어요. 요즘 엄청 바쁘거든요.”

    연수가 어른스러운 표정으로 씩 웃었다. 그 모습을 본 수간호사는 참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서연수 환자분, 들어가세요.”

    “아, 언니! 나중에 봬요!”

    그렇게 활달하게 말하며, 연수는 진료실로 들어갔다. 문이 닫히는 걸 확인한 후에, 수간호사는 옆쪽을 힐끔 봤다.

    새로 들어온 의사 한 명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이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저 환자, 왠지 낯이 익은 것 같은데. 혹시 유명한 사람이에요?”

    “유명했었죠. 태권소녀라고, <스타왕>같은 데도 몇 번 나왔었으니까요.”

    “아아….”

    의사가 안 됐다는 듯이 문 쪽을 바라봤다.

    유망했던 운동선수가 재활치료과에 왔다면, 그 이유는 하나밖에 없으니까.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