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2
연수가 형우로부터 소설을 배우기 시작한 지 3일차, 본격적인 소설 강습이 시작됐다.
“설정은 어제 어느 정도 다 짰으니까… 오늘은 내가 보는 앞에서 한 번 써 보는 걸로 할까?”
“1화를 다 쓸까요?”
“그게 제일 좋겠지만, 그건 시간이 너무 오래 걸려. 나도 할 일이 있어서 하루 종일 네 걸 봐줄 수는 없어. 그러니까, 일단 꽁트 정도만 쓰자.”
꽁트Conte.
기승전결을 원고지 5장 이내, 그러니까 1,000자 정도로 완성시키는 짧은 소설을 뜻하는 용어다.
보통 단편 소설이 원고지 80매인 15,000자 정도인 것을 생각해 보면 상당히 짧은 분량이기에, 나뭇잎에 쓸 수 있을 정도라는 뜻에서 엽편소설(葉片小說)이라고도 한다.
“입학할 때 써 봤지? 시간은 3시간 줄게.”
“에엑, 시험도 아닌데 제한 시간까지요?”
“웹소설을 쓰려면 익숙해져야 해.”
종이책 시장에도 물론 커트라인이라는 개념은 있다. 하지만, 그래 봐야 웹소설 시장을 따라올 수는 없다.
오 분만 늦어도 독자들이 늦었다고 질타를 한다. 세 시간이 늦으면 사과문을 올려야 한다. 하루가 늦으면 독자들이 상당히 떨어져 나간다.
“웹소설의 한 화는 6천 자야. 네가 지금 쓰는 양의 여섯 배지.”
아무리 쥐어짜 봐야, 인간이 작업할 수 있는 시간은 18시간이 한계다.
잠을 자지 않더라도 밥은 먹어야 하고, 휴식도 취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3시간 만에 어떻게든 1천 자를 만들어야 한다는 이야기지. 알아들었으면 시작해!”
연수는 허둥거리며 노트북 자판을 두드리기 시작했다.
‘…<황태자는 왕국에서 살아간다>라.’
연수가 도전하는 장르는 천우희와 비슷한 장르의 로맨스 판타지였다.
[수능의 ‘수’가 사실 물 수水라는 것을, 나는 그날 처음으로 알았다. 수능이 나한테 물을 맥였다는 뜻이다. 그것도 아주 많이.]
굴지의 문창과 학생이라는 것을 증명이라도 하듯, 시작하는 문장이 꽤 괜찮았다. 조금 긴 느낌은 있었지만, 그런대로 익살맞고 재밌었다.
‘도입부도 저 정도면 적당해.’
그렇게 생각한 순간, 연수의 노트북 위에 새로운 문장이 자리했다.
‘…프롤로그의 절반을 설명으로 때운다고?’
형우의 눈살이 찌푸려졌다. 그건 아니야! 라고 외치고 싶었지만, 일단은 끝까지 지켜보기로 했다. 문제는 그다음 문장에서 바로 또 터져 나왔다.
‘설명을 한 다음에 일이 터지는 것보다 일이 터진 후에 설명하는 게 더 좋은데….’
내용상의 문제와 연출적인 문제.
그다음은 문체의 문제였다.
‘…문장이 좋긴 한데 힘을 빼는 법을 너무 모르네. 저러면 독자들이 지칠 텐데.’
답답함을 못 이긴 형우가 자기도 모르게 다리를 벌벌 떨었다. 그 표정에 연수마저 불안감에 휩싸였다.
‘소설 내용이 이해가 안 되나 봐. 설명이 너무 부족했나?’
그렇게 생각한 연수는 재빨리 문장 속에 고유명사 몇 개를 넣었다. ‘레헬른 제국’, ‘크린토피아 문명’, ‘트레이더스 워리어’같은 것들이었다.
그러다 보니, 어느샌가 약속했던 천자가 훌쩍 넘었다.
‘…조금 오버해도 괜찮겠지?’
그렇게 세 시간 후 연수가 완성한 소설은 거의 2천 자 분량이었다.
분량이 두 배나 오버됐다.
“…한 번 읽어 주실래요?”
“그래. 재밌게 읽을게.”
말은 그렇게 했지만, 사실 재밌지는 않았다.
‘소설이 제멋대로야. 어우러지지가 않아.’
이유는 알 것 같았다.
지금까지 단편 순문학을 주력으로 써 오다가, 갑자기 장편 장르문학으로 뛰어든 바람에 두 작법 사이에 혼선이 발생한 것이다.
그렇게 만들어진 결과물은 참혹했다.
‘그냥 웹소설 마니아가 써도 이것보단 잘 쓰겠는데.’
적당한 음식 두 개를 섞어서 잡탕이 된 느낌이라고 해야 하나. 형우의 참혹한 표정을 본 연수는 상황을 대충 짐작했다.
“…뭔가 문제가 있나요?”
“문제가 있다기보다는… 뭐가 없어.”
“뭐가요?”
“재미.”
괜히 어정쩡하게 말해주는 것보다, 강하게 말하는 게 나을 것 같았다.
* * *
“피곤하지?”
“아, 선배. 어디 다녀왔어요?”
“도서관 좀. 오다가 슈퍼도 들렀어.”
연수는 두 시간 째, 노트북 앞에서 한숨을 푹푹 내쉬고 있었다.
“이거 마시고 해.”
“고맙습니다.”
형우가 내민 하얀색 에너지드링크를 연수는 꼴깍거리며 잘도 마셨다. 이것까지 마시면 검정색, 하얀색, 분홍색, 초록색, 노란색 해서 시중에 나와 있는 다섯 가지 맛을 모두 채우는 것이다.
다섯 가지 색의 에너지드링크가 볼링핀처럼 서 있는 걸 보니, 마치 악당을 물리치는 파워레인저처럼 보이기도 했다.
하지만, 이번 악당은 좀 강했다. 연수의 앞을 막아선 ‘어쩌면 재능 없음’이라는 이름의 악당 말이다.
‘…에휴.’
소설을 아무리 봐도 어디가 문제인지조차 알 수 없었다. 문제를 모르니 해결 방안도 안 나왔다.
“…내가 쓴 소설의 문제조차 똑바로 못 찾아내는데, 뭐가 명문대 문창과고 뭐가 우등생이야.”
“응?”
작업 중이던 형우가 고개를 홱 돌렸다. 저절로 둘이 눈이 마주쳤다.
“방금 뭐라고 한 거야?”
“엣?”
연수는 당황해서 혀를 씹을 뻔 했다. 혼잣말이라고 한 건데, 카페인을 너무 많이 마신 건지 그만 입 밖으로 말이 새어 나온 모양이었다.
“그, 그게….”
“방금 한국 최고의 대학 어쩌고 하지 않았어?”
“그건 맞는데….”
“아, 혼잣말이구나.”
형우가 천천히 고개를 끄덕거렸다.
“음, 글 쓰다 힘들면 혼잣말 좀 할 수도 있지. 나도 가끔 그래. 물론 나는 혼자 있을 때만 혼잣말을 하지만… 아, 보통은 혼자 글을 쓰니까.”
“어….”
“혼잣말은 모른척 해 줘야 하는데, 내가 좀 예민했나 봐.”
“그게….”
“아니면 나 들으라고 한 소리야? 작년에 중학교 들어간 내 사촌동생도 그러더라고. 나 들으라는 듯이 가끔….”
연수가 얼굴이 새빨개졌다.
“풋.”
형우가 그대로 웃음을 터트렸다.
“뭘 그렇게 화내고 그래. 긴장 풀라고 농담 좀 한 거야.”
형우도 연수의 글 실력을 안다.
학과 꼴지로 입학했지만, 거기에 굴하지 않고 오히려 학구열을 불태우며 다른 학생들을 앞질러 나가기 시작했다.
의재보다 성적을 잘 받기 시작한 지는 오래되었고, 형우조차도 가끔은 자신의 2등 자리에 위협을 느낄 정도였다.
“너무 긴장할 필요 없어.”
“없어요?”
“응. 긴장은 실수 안 하려고 하는 거잖아? 근데 우리는 실수해도 돼. 다시 지우고 쓰면 되니까.”
그러니, 아마 연수의 글이 오늘 개판을 친 이유는 지나치게 긴장해서일 테다.
‘…내가 옆에 있어서 그렇겠지.’
아무리 친하다고 해도 자신은 연수의 선배.
그런 사람이 눈을 부릅뜨고 모니터를 바라보고 있는데, 글이 잘 써질 리가 있나.
아까도 보니 시선이 마주칠 때마다 황급히 고개를 돌리거나 말을 더듬는 것이, 분명 부담스러워 하는 것이 분명했다.
‘나는 그것도 모르고….’
약간 미안함을 느끼면서, 형우는 그대로 연수의 옆에 걸터앉아 노트북을 켰다.
“네가 쓴 걸 내가 한번 수정해 볼게.”
“…수정을요?”
“사실 1차 수정은 수정이라기보단 지우고 다시 쓰는 거나 다름 없기는 한데… 일단 봐봐.”
“넵.”
형우는 그대로 <황태자는 황국에 살아간다>를 화면에 띄운 후, 자신이 아까 기억해 뒀던 내용들을 수정하기 시작했다. 200자쯤에 등장하는 첫 번째 TMI가 그 시작이었다.
“이 설명은 일단 지우자.”
“어어? 꼭 필요한 부분인데요!”
“플롯을 이럴 때 활용해야지.”
플롯(Plot).
여기저기 많이 쓰는 말이지만, 간단하게 말하면 스토리에 연출을 더한 것이 플롯이다.
‘왕이 죽었다. 그리고 왕비가 죽었다’라는 말은 그저 스토리일 뿐이지만, ‘왕이 죽었다. 그 슬픔 때문에 왕비가 죽었다.’같은 식으로 연출을 삽입하거나, ‘왕비가 죽었다. 왜냐하면 왕이 죽어서 슬펐기 때문이다’ 라는 식으로 사건의 순서를 시간의 역순으로 바꾼다면 그건 플롯이 되는 것이다.
“이 왕국에 대한 설명 부분을 완전히 뒤로 빼 버리자. 대신 복선 하나 정도만 남겨 두는 거야.”
‘뒤로 빼기’와 ‘떡밥 깔기’.
장편에서만 쓸 수 있는 일종의 스킬이었다.
“게다가 고유명사도 너무 많아.”
판타지답게 고유명사가 많았지만, 형우가 지적한 것은 그중에서도 세 개였다.
‘레헬른 제국’, ‘크린토피아 문명’, 그리고 ‘트레이더스 워리어.’
“레헬른 제국과 크린토피아 문명은 아직 작중에 등장할 필요도 없잖아. 지금 이것들에 대해 이야기하는 건 단순한 설정놀음일 뿐이야.”
“하지만 <반지의 제왕>이나 <왕좌의 게임>에서는…….”
“그건 한 권짜리 종이책이잖아. 종이책을 산 독자는 그 책을 끝까지 다 보겠지. 하지만 우리가 쓰는 건 6천 자 웹소설이잖아. 눈에 보이는 것 이상으로 기술하는 건 좀 과한 것 같아.”
“아.”
연수가 그제야 자신의 실수를 알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세 번째인 ‘트레이더스 워리어’인데. 묘사를 보면 이거 그냥 로마시대 검투사 같은 거 아냐? 검투사라는 표현을 두고 왜 이상한 말을 만들어서 써?”
연수가 고개를 좌우로 저었다.
“조금 달라요.”
“뭐가 다른데?”
“그… 검투사는 노예 계급이지만 이 사람들은 제물이랄까.”
“그러면 제물 역할의 검투사라고 쓰면 되잖아. 고유명사는 잘 쓰면 멋있지만, 보통 상황에서는 혼란을 가중시킬 뿐이라고.”
“아하.”
“그리고 그 외에는…….”
형우는 하나하나 연수의 작품에서 나오는 실수를 지적해 줬다.
처음에는 그렇게 많이 실수한 것 같지도 않은데 너무하는거 아닌가, 라는 생각에 약간 서운했었는데, 들으면 들을수록 틀린 말이 하나도 없었다.
예전에도 비슷한 소설 스터디를 한 적이 있었다.
그 때는, 그냥 ‘네 소설 좀 좋아.’ ‘다 좋은데, 주인공이 조금 약하네.’ ‘조금 더 독자들이 감정이입을 쉽게 해 주는 건 어떨까?’같은 말만 들었다.
문창과 학생이라면 모두가 알고 있는 당연한 말들. 겉으로 듣기엔 그럴듯하지만, 실제로 까 보면 알맹이가 하나도 없는 말들이었다.
아, 가끔 반대가 있기는 했다. ‘이 소설 개 구려요.’처럼 예의 없는 말을 뱉는 인간들. 강하기만 한 감평이 좋은 감평이라고 생각하는 애들 말이다. 이 경우에도 괜히 기분만 나쁠 뿐, 그렇게 도움이 된다고 여겼던 적은 없다.
하지만 형우의 감평은 달랐다.
“네 소설이랑 비슷한 소설 중에서 3년 전에 유행했던 <소설 속 왕따가 되었다>라는 로맨스가 있었어. 여기서 작가는 아예 가상의 교과서를 만들어서 그걸 중심으로 이야기를 전개했거든. 네 소설과 차이를 알겠어? 그러니까, 너도 여기서 나오는 거울이나 정원이라는 소재를 좀 더 확대시키는 편이 좋을 거라는 거지.”
형우의 말은 언뜻 듣기에는 칼처럼 날카롭지만, 동시에 뭔가 시원한 느낌이 있었다. 상처를 주는 칼이 아니라 정확하게 환부를 도려내는 의사의 메스라고 할까.
“이런 점을 염두하면서 내가 한번 고쳐 볼게.”
그대로 형우는 노트북을 잡고, 퇴고를 시작했다.
‘…연수가 짜 놓은 구성이 전부 기억나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아까 연수의 글을 보면서, 캐릭터의 성격과 이야기의 얼개 정도는 확인해 뒀다.
‘주인공은 분명 수능을 망쳐서 멍하니 집에 가다가 이계로 떨어진 고등학생이었지. 현실에 미련은 별로 없는 편일 테니까, 아마 돌아가기보다는 새로운 모험을 꿈꿀 거야.’
‘고유명사는 반으로 줄이고.’
‘설명보다는 연출로….’
탁. 형우가 마지막 문장에 온점을 찍었다.
“됐다.”
그렇게 수정한 글은 정확하게 1,202자에서 끝났다.
아까 연수가 썼던 게 2천 자가 넘었던 것을 감안하면, 거의 50% 정도로 압축한 것이다.
자신의 소설이었으면 이보다 더 줄일 수도 있었을 것 같은데, 200자가 미처 아쉬웠다.
“저… 제대로 처음부터 읽어 봐도 돼요?”
“어, 응. 읽어 봐. 잘 썼을는지 모르겠네. 물론 내 방법이 정답이라는 건 아니고, 그냥 참고만….”
형우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연수는 이미 노트북 화면에 빠져들 듯 시선을 고정하고 있었다.
‘…이게 내 구상대로 쓴 글이라고?’
연수의 입이 헤, 하고 벌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