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0
“어이구, 형우 학생, 무슨 카페인 음료를 이렇게 많이 사? 그러다 병들어.”
“혼자 다 안 마셔요. 같이 마실 거예요.”
“으응? 방에 친구라도 왔나 봐? 아니면 여자친군가?”
“여자친구는 아니고요, 공부 좀 같이 하려고요.”
아주머니가 감탄했다.
“친구끼리 모여서 공부를 해? 내 아들도 총각 절반만 닮았으면 좋겠네. 하기야, 그러니 한국대학교를….”
마트 아주머니의 수다를 뒤로 한 형우는 소시지 하나를 씹으며 자취방으로 향했다.
“스터디라….”
거절하려면 거절할 수 있었다. 고태희랑 친한 것도 아니었고, 요즘 하는 일이 없는 것도 아니었으니까.
그럼에도 둘에게 글을 알려주겠다고 한 것은, 사실 얼마 전에 들었던 지원의 부탁 때문이었다.
‘곧 공모전이 시작하니까, 혹시 이쪽에 뜻있는 학생들 있으면 몇 명만 추천해 주세요! 꼭이요!’
이때 말했던 공모전의 시작일이 바로 다음 주다. 형우는 태희와 연수를 어떻게든 잘 키워서 C&N 장르문학 공모전에 참여시킬 생각이었다.
뭐, 그런 거창한 거 없이도 그냥 학교 내에서 장르소설을 쓰는 사람이 조금 더 있었으면 좋겠다 하는 개인적인 바람도 좀 있었고.
“애들아, 나 왔다.”
형우가 양손 가득 들고 온 커피와 에너지드링크를 바닥에 쾅, 소리 나게 내려놓았다.
“뺘악! 뺘약!”
“너 진짜 귀엽다.”
“뺙-!”
연수와 태희는 온 신경을 참치의 재롱에 쏟고 있느라 형우가 온 것조차 눈치채지 못했다.
‘…우리 집 접대 담당이라니까.’
정작 주인인 자신은 음식 자판기 취급을 하면서, 다른 사람만 보면 아주 신나서 온갖 아양을 떨어대는 참치 되시겠다.
“흠흠, 애들아?”
형우가 헛기침을 했다. 그제야 두 후배들이 형우에게 시선을 돌렸다.
“선배, 언제 왔어요?”
“잠깐 이것 좀 사 오느라.”
“에너지드링크랑 커피네요. 어라?”
비닐봉투를 열어 내용물을 확인한 태희가 의아한 듯이 물었다.
“보통 에너지드링크든 커피든 하나만 먹잖아요. 왜 두 개를 다 사 온 거예요?”
“아직 잘 모르는구나.”
형우가 친절하게 설명했다.
“하이브리드 자동차라는 게 있잖아? 전기랑 석유 둘 다 쓰는 거.”
“그렇죠?”
“평지를 달릴 때는 힘이 약하지만 부담이 적은 전기를 쓰고, 오르막길을 오를 때나 시동을 걸 때는 부담이 좀 되지만 힘이 강한 석유를 쓰거든. 무슨 말인지 알겠지?”
고카페인 에너지 드링크는 석유,
커피는 전기였다.
“글을 쓰기 전에 에너지 드링크를 마시는 거야. 그리고 글을 쓰면서 커피를 마시고, 졸려서 미칠 것 같을 때 에너지 드링크를 또 마시는 거지.”
“어, 잘은 모르는데 그거 건강적으로 별로 안 좋지 않아요?”
“으응, 가끔 머리가 깨질 것 같고, 불면증이 좀 오고, 너무 자주 하면 입원을 하긴 하지만… 죽을 정도는 아니야. 날 봐, 아직 안 죽었잖아?”
그렇게 말하며 씩 웃는 형우의 표정을 본 태희는 직감했다.
저 말은 농담이 아니라 진심이라는 것을.
* * *
굴지의 한국 대학교 문창과 학생답게, 연수와 태희의 실력은 나쁘지 않았다.
하지만 달리 말하자면, 그다지 좋지도 않았다.
연수는 성적은 상위권이었지만, 소설은 상당히 애매한 느낌이었다. 약간 자신감이 부족하다고 해야 하나? 자기주장 없이 배운 대로만 쓰려고 하는 느낌이 강했다.
‘아무래도 늦게 소설을 배우기 시작했으니….’
그런 부분이 아마 자신감 하락의 원인인 것 같았다. 형우는 연수를 향해 카페인 음료 하나를 들이밀었다.
“너무 겁먹지 말고 당당하게 써 봐.”
연수에게 충고를 해준 뒤, 형우는 그대로 태희에게 시선을 돌렸다. 태희는 딱 연수의 반대였다.
상상력이 풍부해서 오리지날리티를 잘 살리고, 허를 찌르는 플롯을 잘 썼다. 다만, 소설 전체에서 ‘나는 소설을 정말 잘 써!’라는 느낌이 팍팍 나는 게 거부감이 좀 들었다.
“태희 너는 색깔을 좀 죽이는 게 좋겠다.”
“왜요? 작가한테는 개성이 중요하잖아요?”
“개성도 베이스가 있어야 개성이지.”
기본기와 개인기가 모두 갖춰진 축구선수는 성공할 수 있지만, 개인기뿐인 축구선수는 한순간 반짝하더라도 결국에는 몰락하고 만다.
“뭐든지 기본이 중요한 거야.”
모든 예술이 그렇듯이, 막무가내로 그린다고 창작물이 되는 게 아니다. 그 안에는 나름의 공식과 합리성이 자리를 잡고 있어야 한다.
“너는 그 합리성을 배울 필요가 있어. 너무 밋밋한 것도 안 좋지만, 너무 튀는 것도 거부감이 드는 법이니까.”
“치, 알았어요.”
“알았으면 지금부터 네 소설의 기승전결을 정리해서 차근차근 써 봐. 한번 봐 줄게.”
“넵.”
그렇게 두 후배들에게 숙제를 준 후, 형우는 그대로 노트북 앞에 앉아 카페인 음료를 홀짝거렸다.
* * *
“이제 몸이 좀 풀리네.”
두 캔째의 에너지드링크를 휴지통에 던져넣으며, 형우가 중얼거렸다. 커피는 그 두 배인 네 캔을 마셨다.
‘…몸이 풀렸다고?’
태희는 그런 형우를 이해할 수 없다는 눈빛으로 바라봤다.
형우가 몸이 풀릴 때, 자신은 눈이 풀렸다.
“할만하지?”
그렇게 말하며, 형우는 태희에게 커피 한 캔을 내밀었다. 그렇게 비운 캔이 총 다섯 캔.
하나에 카페인 함량이 50mg정도니, 꽤나 많이 마셨을 것이다.
“에, 에에엑….”
말조차 똑바로 나오지가 않았다. 이 정도면 각성 효과를 넘어서, 거의 환각이 일어나기 직전이었다.
“글 내용 딱 좋네. 아랫부분만 조금 더 고치면 되겠다.”
“…더 한다고요?”
“오늘 다 고쳐 놔야 내일 쓰기 편해. 헤밍웨이 작법론이라고 혹시 알아?”
미국의 위대한 작가인 헤밍웨이는 늘 잠이 들기 전 내일 쓸 글을 1천 자 정도 미리 써 놨다. 24시간 내내 작업의 흐름을 유지하기 위한 전략적 글쓰기였다.
“…선배! 저는 헤밍웨이가 아니거든요!”
“알아.”
형우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니까 더 열심히 해야지. 그런 대작가도 그 정도로 열심히 하는데, 습작생이 농땡이를 피운다는 게 말이나 돼?”
“지금은 깨 있는 것도 힘든데요오….”
“빨리 하면 되겠네. 잠들기 전에.”
“선배 진짜로 미쳤… 아니, 그걸 왜 지워요?”
태희가 비명을 질렀다.
형우가 방금 누른 백스페이스 덕분에, 작업물의 절반이 날아갔다.
“내가 말했잖아. 개성 좀 죽이라고.”
“죽이고 쓴 건데….”
“기승전결에서 ‘전’이 날아가 있는데 뭘 죽이고 쓴 거야. 실험적으로 쓰지 말고 정석대로 쓰라니까? 여기서부터 딱 세 시간만 더 집중하자.”
태희의 주먹이 바르르 떨렸다.
‘여기서 세 시간을 더 하라고?’
눈꺼풀이 바들바들 떨리고, 손가락은 뻐근하고, 손목엔 터널 증후군이 올 것 같은 기분이었다. 헛구역질은 백 번도 넘게 했고, 코에서는 코피까지 났다.
‘…이상해, 이상하다고!’
그녀가 상상한 건 남녀가 서로 어깨를 맞대고 앉아서 함께 모니터를 바라보며 커피를 홀짝거리는 모습이었지, 뭉친 어깨를 두드리며 코피를 줄줄 흘리는 모습이 아니었다.
‘여자 둘이랑 한 방에 있는데, 정말로 일곱 시간 내내 글만 쓴다고?’
아니, 글만 쓰지는 않았다.
조금이라도 집중력이 흐트러진 것처럼 보이면 강제로 에너지드링크를 먹이고 소설에 집중시켰다.
너무 어이가 없어서, 한 번은 직접적으로 물었다.
“선배, 선배 혹시 게이에요?”
“아니, 난 여자 좋아하는데. 왜?”
“…이상형 같은 거 있어요?”
“생각해 본 적은 없는데.”
흐음, 하고 잠시 고민하던 형우가 의자를 팽그르르, 돌렸다.
“조앤.K.롤링?”
“…왜요?”
“글 잘 쓰잖아.”
“농담이죠?”
“절반은.”
형우가 별거 아니라는 듯 덧붙였다.
“적어도, 내가 지금까지 좋아했던 사람은 다 나보다 글 잘 쓰는 사람이었어.”
처음에는 신종 비혼주의 선언인 줄 알았다. 마치 페이커가 ‘내 취향은 나보다 라인전 잘하는 여자’라고 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미친 사람 아냐?’
형우에 대한 선망의 시선은 어느샌가 광인을 쳐다보는 눈빛으로 바뀌었다. 모든 가치판단 기준을 소설에 두는 인간을 광인이 아니면 뭐라고 부른단 말인가?
‘…내가 처음부터 잘못 생각했던 건가?’
애초에 형우를 꼬실 수 있다는 전제부터 잘못됐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인간은 그런 걸 모르는 인간이다. 자신의 글에 도움이 된다는 확신만 있다면 정말로 자신보다 서른 살이나 많은 조앤.k.롤링과 결혼할 수 있는 사람이다.
주륵.
그 사이, 멈췄던 코피가 또다시 터졌다.
“얼굴 뒤로 젖히면 코피 역류하니까, 아래로 숙이고 콧볼 누르고 있어. 피 묻은 휴지는 냄새나니까 쓰레기통에 버리지 말고 변기에 넣고 내리는 거 잊지 말고.”
형우는 익숙한 일이라는 듯, 대충 구긴 휴지를 휘딱 던져 줬다. 고태희의 표정이 와락 구겨졌다.
‘다른 남자들은 내가 손끝만 살짝 베여도 온갖 호들갑을 다 떨었는데, 얘는 대체 뭐야?’
고태희는 여기서 드라마의 주인공처럼, ‘나한테 이렇게 대한 남자는 네가 처음이야!’라고 생각하거나, ‘널 반드시 공략하겠어!’라고 생각하진 않았다.
‘…이러다 나 죽는 거 아냐?’
라고, 아주 정상적으로 판단했을 뿐이다.
“쿠쿡.”
옆에서 그 모습을 지켜보던 연수가 웃음을 터트렸다.
“내가 말했잖아. 멋있는 거 아니라고.”
인정하긴 싫지만, 연수의 말이 맞았다.
형우가 글을 열심히 쓰는 건 멋있는 사람이라 그런 게 아니었다. 그냥 미쳐서 그런 거였다.
거기까지 생각이 미친 순간, 고태희는 결심했다. 이 작업지옥作業地獄에서 탈출하기로.
‘…이런 인간한테 환승이라니, 내가 미쳤지!’
똥차를 만나 봐야 자기 차가 명차인 걸 안다고 했던가.
약간 멍청하고 푼수끼가 있긴 하지만, 그래도 자신의 건강만큼은 진심으로 염려해 주는 농구부 남자친구가 너무나도 그리워진 고태희였다.
* * *
“그래, 고생했고 잘 가.”
“오늘 고마웠어요….”
태희는 고개를 꾸벅 숙이고서는 풀린 다리를 하느작거리며 멀어져갔다.
“아쉽네, 재능 있어 보였는데…….”
아쉽다는 듯 혀를 차는 형우를 보고, 연수가 아랫입술을 비쭉 내밀었다.
“저보다요?”
“센스 측면에선, 확실하게 너보다 나았지.”
형우가 본 고태희의 센스는 확실했고, 세상에 노력보다 재능으로 글을 쓰는 사람이 아주 없는 것도 아니다.
한국의 소설가 중 김승옥이라는 사람이 있다. 김승옥의 스승인 이어령 선생은 자신의 제자가 재능에 비해 소설을 쓰는 시간이 턱없이 적은 것이 낭비라고 생각한 모양이다. 이어령 선생은 김승옥을 잡아다 방에 가둬 두고, 장편 소설 한 편을 완성하라고 했다. 요즘 말로 하자면 통조림이었던 셈이다.
이렇게까지 했는데도, 김승옥 소설가는 결국 장편 소설의 프롤로그인 0장章밖에 완성하질 못했다. 이어령 선생은 그 순간, 김승옥에게 1장, 2장을 기대하는 것은 어리석은 짓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결국 어쩔 수 없이 이어령 선생은 해당 소설을 장편의 프롤로그가 아니라 완성된 단편소설로 취급하기로 했다.
그렇게 통조림 속에서 미완성으로 나온 소설이 바로 70년대 한국소설의 최고 보물 중 하나로 취급받는 <서울의 달빛 0章>이다.
단편소설조차도 아닌 장편의 프롤로그격인 <서울의 달빛 0章>이 당시의 기라성같은 단편들을 밀어내고 최고의 단편중 하나로 극찬받으니, 천재성이란 과연 아주 지어낸 이야기는 아닌 듯하다.
솔직히 말하자면, 노력만으로 김승옥 소설가 같은 천재를 따라잡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고태희가 그 정도로 천재는 아니야. 애초에 그랬으면 나한테 글을 가르쳐달라고 하지도 않았겠지만.”
범재가 천재를 따라잡는 건 불가능하지만, 적당한 재능을 가진 수재 정도라면 충분히 해 볼만 하다.
그리고, 형우가 보기에 태희는 딱 그 정도였다.
“연수, 네가 보기엔 어때? 태희가 노력하는 편인 것 같아?”
“글쎄요. 글을 쓰면 반짝거리는 느낌은 있다고 생각이 드는데… 그건 1학년 때도 그랬어요. 뭐랄까, 발전한다는 느낌이 없다고 해야 하나.”
“악마의 재능이로군.”
적당한 재능을 흔히 악마의 재능이라고 부른다.
자신이 천재라고 굳게 믿게 만들었다가, 결국 더 큰 재능 앞에서 추락하게 만든다.
신동神童 소리를 듣던 그 많은 아이들이 다 어디로 사라졌는지에 대한 해답이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엄청난 천재가 아닌 이상에야 노력이라는 게 상당히 중요한 요소라는 거지. 그리고 그런 면에서, 나는 연수 네가 태희보다 훨씬 낫다고 생각해.”
“오….”
연수가 다시 봤다는 듯, 형우를 보며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런 말 듣고 있으니 가만있기 힘드네요. 먼저 들어가서 작업하고 있을게요. 선배는요?”
“나는 전화할 데가 있어서. 곧 들어갈게.”
연수가 들어가는 걸 지켜보며, 형우는 휴대폰을 들어 의재에게 전화를 걸었다.
“여보세요? 형우냐? 무슨 일이야?”
“응. 방금 콘티 확인했다고. 이번 것도 역시 좋더라.”